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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nki in New York : 김환기의 뉴욕일기 - 김환기 뉴욕일기를 통해 본 삶과 예술
김환기 지음 / (재)환기재단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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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10년 여를 뉴욕에서 화가로서 고투하다 타계한 김환기의 일기. 생각보다 일기가 두툼하지는 않다. 생전에 그가 세계 미술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일기는 안스러움, 혹은 안타까움 속에서 읽힌다. 화가는 무엇보다도 육체 노동자라는 말도 실감하게 된다. 미국에 건너간 시점에서 이미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베테랑 화가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국의 시장이나 평단을 뚫어내기에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어떤 것이 더 필요한가? 이런 모색과 고민, 고투가 일기 전체의 기조를 구성한다. 그리고 김환기가 내린 결론은 당대성에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합류시키자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이는 올바른 결정이었다. 여기서 이 당대성이라는 말은 참 애매하다. 당대성을 (미국이나 서구의) 시대가 포착하고자 하는 어떤 사상을 둘러싼 지성적 논쟁점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 대척점에는, 김환기 자신의 지역성(로컬리티, 즉 한국적인 것)이 있게 된다. 즉, 당대성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지역성은 최소한으로, 배경으로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이 그 당대의 주류의 언어와 사고, 논리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혹은 그런 언어, 사고, 논리를 창안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말을 철저하게 반박하고 싶다. 세계적 고민 속에서 운동하는 것만이 세계적이다. 만일 한국적인 어떤 것이 그러한 고민을 형상화하고, 거기에 일정한 빛을 던져주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런 한에서만 그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에 속하게 될 것이다. 내 생각에 김환기는 이러한 점을 천천히 깨달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근방 어느 시점에서 그의 육체는 그의 고투를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예술이든 삶이든 무엇이든 무엇을 완결짓는다는 것에는 형식적인 의미 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이 그의 예술적 고투의 최종적 형상화를 방해했다는, 그런 아쉬움을 들게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그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죽는 것과 같은 이상적 죽음을 취한 또 한 명의 예술가로, 즉 진정한 예술가로 내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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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04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환기가 내린 결론은 당대성에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합류시키자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이는 올바른 결정이었다. 여기서 이 당대성이라는 말은 참 애매하다. 당대성을 (미국이나 서구의) 시대가 포착하고자 하는 어떤 사상을 둘러싼 지성적 논쟁점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 대척점에는, 김환기 자신의 지역성(로컬리티, 즉 한국적인 것)이 있게 된다. 즉, 당대성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지역성은 최소한으로, 배경으로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이 그 당대의 주류의 언어와 사고, 논리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혹은 그런 언어, 사고, 논리를 창안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말을 철저하게 반박하고 싶다. 세계적 고민 속에서 운동하는 것만이 세계적이다. 만일 한국적인 어떤 것이 그러한 고민을 형상화하고, 거기에 일정한 빛을 던져주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런 한에서만 그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이 매우 인상깊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말이 요즘 회자되고 이는 한국 드라마와 BTS때문인듯하지만...저두 위클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저도 시대성이라는 화두 같아요. 이걸 어떻게 그림으로 형상화시키느냐가 그 작가의 퀄러티를 결정짓는 척도 같다고 요즘 느낍니다. 그럴려면 미학 이전에 현대철학의 논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추상은 그렇다고 봐요. 당대가 포착하고자 하는 어떤 사상을 둘러싼 지성적 논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할 듯해요. 이 당대성을 자신의 언어로 간파할 줄 알아야 하는데 무척 힘든 지점이긴 합니다.

근데 이건 예술계에서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이죠. 요즘 미술작가 중에 책 안 읽는 작가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합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당대성을 논하기에는 너무 먼 나라 얘기 같아요. 당대성을 담아보기 위해 노력해도우리나라 미술계에선 현재까지 형상을 너무도 중하게 여겨서뤼...

김환기의 고뇌가 무엇이었는가는...지금도 진행형인듯해요. 저도 이 책을 구매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weekly 2023-10-04 19:15   좋아요 1 | URL
김환기의 작품들을 인터넷으로 죽 찾아보면서 아내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나네요. 아내는, 김환기의 달 항아리 그림들이 좋다고 했고, 저는 그런 그림들은 우리같은 한국 사람들에게나 정서적 울임이 있지, 저쪽 사람들에게는, 이게 뭐지? 둥근 선에 대한, 혹은 하얀 색면에 대한 연구인가, 하는 반응 밖에 이끌어낼 수 없다고 말했었죠.
그러나 어쨌든 현실은 개념의 운동사가 아니기 때문에, 현상들은 수 많은 외부 효과, 우발성 등에 의해 주조될 테지요. 그 작가가 왜 떴지? 그러면 우리는 사후적으로 근사한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겠지만, 내러티브는 그저 내러티브일 뿐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 잭슨 폴락을 감명 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혹 보지 않으셨다면 꼭 보세요.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yamoo 2023-10-05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위클리님의 추천작 꼭 보겠습니다. 저도 달항아리 그림을 부정적으로 보는데....김환기 이후 달항아리 그리는 작가 엄청 많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그리는지 이해가 안되는데...달항아리가 한국적 정서를 잘 나태낸다고 생각해서 그린다고 합니다. 저는 전혀 아닌 거 같은데...뭐 수요가 있으니까 줄창 그리겠죠. 우리나라에서 지명도 있는 작가 치고 달항아리 안그리는 작가가 없는 듯합니다. 잘팔린다는군요..^^;;
 
Art (Paperback)
Yasmina Reza / Faber & Faber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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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가 쓴 코메디. 입소문을 따라서 나도 읽어보았다.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상연되었고, 유튭에서 한국어판 연극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세 친구 사이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친구들 중 하나가 거금을 치르고 그림 하나를 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그림이 거의 단색의 한 화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의 단초가 된다. 허영에 빠져 저런 쓰레기에 거금을 쓴 것인가? 


읽으면서 계속, 너무 프랑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규정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뉘앙스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말싸움을 벽 뒤에서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 그 지리멸렬을. 그런 애매한 뉘앙스들의 뒤에 무엇이 놓여 있을까? 나는, 살인이 벌어지는 것으로, 아니면 그림을 파괴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겠지 하며 작품을 읽었고, 작가는 많은 관객들이 이런 결말을 예상할 것을 짐작하고 결말을 살짝 비튼다. 물론 이런 비틈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연극은 현대 회화에 대한 것도 아니고, 친구들 사이의 힘의 관계---푸코를 불러오든 헤겔을 불러오든---에 대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이 연극의 기술적 장치들에 불과하다. 현대 회화니 철학이니 하는 이런 요소들이 이 연극을 심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데 관심을 가진 나같은 사람을 낚기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연극은 뉘앙스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뉘앙스가 실체적 힘을 갖고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가볍게, 음... 프랑스적 삶에 대한 자기 성찰 아닌가,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현대인들의 편집증적인 삶의 양태들에 대한 기술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나는 후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의 그 눈빛이 나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그의 그 눈빛은 무엇이었을까? 경멸이었을까? 그가 그때 지었던 그 눈빛이 경멸의 눈빛이었는지 누가 확인해 줄 수 있을까? 혹 나의 피해망상의 결과는 아닐까? 그렇더라도 그런 눈빛에 정신적 고통을 겪고, 삶의 일부를 부정당할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런 눈빛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제도나 법이 필요하지 않는가? --- 아마 현대의 필연적 발명품 중 하나는 법적, 제도적으로 규율되기 힘든, 이런 무수한 뉘앙스의 공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다시금, 모던의 조건, 혹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일런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사건들은 곧잘 이념화된다. 아동인권조례의 폐기나 교사에 대한 일정한 면책 조항의 도입을 촉구하는 것 등은 그런 이념화의 시발로 보인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이 법이나 제도로 쉽게 규율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즉, 뉘앙스의 공간에서. 그것은 폭력이었을까? 그것은 낙인이었을까? 그것은 학대였을까? 그걸 가지고 규율을 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은 과연 진상 학부모였을까? 등등. 문제삼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지만, 일단 문제가 되면 그것은 결코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견고하고 완고한 실체가 되어 버린다. 물론 답은 없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조건짓는, 현대성의 한 양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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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의 이념 -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
에드문트 후설 지음, 이영호 이종훈 옮김 / 서광사 / 198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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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 이렇게 적고나니 스스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입문서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쉬운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부 때 동기가 읽고 있던 책을 물물교환을 통해 입수한 후, 책 두께가 만만해 보이길래 한달음에 읽어내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이해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현상학의 이념>과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을 번역해 묶은 것이다. 이렇다는 것도 이 번에 책장 구석에 낑겨있는 것을 찾아내어 먼지를 털고 살펴 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현상학의 이념>은 이미 여러 판본으로 여러 번 읽었기 때문에 한국어 판으로 다시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현상학의 이념>은 후설이 현상학적 환원을 주제로 강의한 것을 묶은 것이다. 내가 만약 후설의 저 강의를 당시의 강의실에 앉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설에게 넘어갔을까? 그에게 설득되었을까? 아마 두 가지 태도를 보였을 것 같다. 우선, 환원을 통해 절대 순수 영역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기괴한 생각이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그때에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원을 통해, 제5강에서 특히 잘 드러나듯이, 어떤 광대한 탐구의 영역이 새로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감할 정도로 그 당시의 내가 우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우둔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후설에게 설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환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환원을 실재(reality)에 대한 주체성(subjectivity)의 기여 부분을 측정하는 한 방편으로 간주했을지도 모른다. --- 지금의 내가 그렇게 생각하듯이.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은 이번에 이 한국어판으로 처음 읽은 것이다. 전혀 예기치 않게도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 아마 철학에 대한 나의 생각, 고민들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들 중에는 스피노자를 마지막 철학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삶과 동행하는 것으로서의 철학은 스피노자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예컨대, 칸트나 헤겔은 철학 교수, 혹은 철학 전문가이지 철학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철학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런 것이 혹 있다면, 시야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른바 테크니컬한 철학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후설은 세계관으로서의 철학과 엄밀한 학이라는 이념으로서의 철학을 구분한 후, 전자에 십분 동의하는 가운데, 후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내가 느끼기로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저작에서 저자의 인격, 고민, 고투가 독자의 가슴으로 이렇듯 곧장 와닿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후설의 이념에 설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설의 진정성, 그 울림은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나의 가슴에 남아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네덜란드의 고흐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들 앞에 섰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도대체 그 그림 조각들이 무엇이 그리 대단할까? 고흐의 삶, 고흐의 동생 테오의 삶, 그리고 테오의 부인의 삶의, 고민, 오해, 갈등, 사랑, 고단함, 결단들의 종합으로 지금 거기에 고흐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는 그 사실 말고 무엇이 예술 작품의 존재를 지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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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1-2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클리 님 오랜만입니다!!
이 책 저도 있어요!! 근데 번역이 좀..
그래서 읽다 말았습니다요..ㅎㅎ

설 연휴 잘 보내시고 복 많이 받으셔요~~

weekly 2023-01-22 04: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야무님, 오랜만이예요! 아직 절 기억하고 계시군요.:)
야무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내 건강하세요!
올해도(야무님), 그리고 올해는(저), 책을 많이 읽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3-01-30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31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3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3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23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23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05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FLAKSUIT 2024-05-0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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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요일(그러니까 내일 모레)에 3주 예정으로 한국에 가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을 찾아보았고, 그래서 고른 것이 디디에 에리봉의 이 책이었다. 이름이 생소하지 않다 했는데, 푸코의 전기를 썼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푸코의 연인이기도 했던. 내용은, 자신의 성정체성과 관련된 수치의 경험에 못지 않은,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기에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수치심에 대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마 신좌파와 구좌파 사이의 갈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런데 그보다는 이런 수치심의 근원으로서의 자신의 가족사, 자신의 개인사를 드러내고, 그것이 무엇보다도 지배와 저항이라는 의미에서의 정치와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마치 소설을 읽듯 흥미롭게 읽혔기 때문에 읽다보니 어제 저녁에 배송받아서 오늘 하룻 만에 뚝딱 읽어버리게 되었다. ---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은 다시 골라야겠다.


많은 이야기꺼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이야기를 시작했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단, 하나만 이야기하자. 저 귀환의 의미는, 물론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랭스에서의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과거 삶에 대한 이해의 모색이다. 그런데 그 이해는 철저하게 이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 저러한 개념들을 동원해가면서. 나는 저자가 개념적 틀에 갇혀 있는 것이 내내 안타까웠다. 예컨대, 저자는 진정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끝까지, 우리의 경험을 제대로 포착하게 해 줄, 우리의 경험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공해 줄, 그런 담론과 이론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칸트주의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런 이론 없이도, 오히려 그런 이론이라는 속박이 없어야 비로소 진리의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른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 말인 것이다. 이 책은 참으로 잘 쓴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에필로그가 마지막에 집필된 장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즉, 에필로그를 쓰고 나서 저자는 책 전체를 다시 써야 했다고 본다. 만약 그 귀환이 '진정한 이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만약 진정한 이해란 어떤 참신한 개념 틀에 의한 이해 등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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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분석과 서술의 기초 - 여덟 번째 개정판
실반 바넷 지음, 김리나 옮김 / 시공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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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에 대한 영화를 보고 생각이 나서 읽은 책. 미술 미평에 관해 많은 것을 아우르고 있다. 논문 쓰는 법, 실제 비평문의 예들, 간단한 사조사, 등등, 한 권의 책이 담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 이상을 담고 있다. 특히 좋았던 것은 학생들의 비평문을 싣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의 한 편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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