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
김현준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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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재즈 현장을 비추는 거울, 캐논

- 캐논, 김현준의 재즈 + 로그

 

김현준 지음, [한울] (2022)




책을 통해 재즈비평가 김현준을 처음 알게 된 건 25년 전의 일이다. 우울증인지도 모르고 내 안의 세계에 갇혀 있던 시절, 나는 어떤 음악도 듣지 않는 아이였다. 우연한 만남. 재즈는 나를 세상으로 향하도록 처음 문을 열어주었다.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올 때 어미 새는 밖에서 알을 쪼아 도와주기도 한다던가.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문을 잡아준 것에는 김현준의 재즈 파일(1997)과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도 있었다. 군 시절 라디오로 그가 진행하던 재즈 프로그램을 듣던 기억이 난다. 점호가 끝난 한 밤중, 고참들이 잠든 시간.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눌러 그가 진행하던 방송을 테이프에 녹음하곤 했다. 내무반에서 방송을 녹음 한 테이프를 늘어져라 듣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기억도 새롭다.


 

캐논, 김현준의 재즈 + 로그(이하 캐논)18년 만에 나온 그의 세 번째 책이라고 한다. 책에 담긴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다. 간간이 그가 번역했던 쳇 베이커마일즈 데이비스 평전을 서점에서 만나면 반가웠지만, 나는 나대로 생활에 매몰되어 오랫동안 음악을 잘 듣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는 여전히 재즈비평가로, 또 공연기획자와 프로듀서로, 그리고 교육자로 치열하게 자신의 역을 맡아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캐논은 그가 지난 세월 함께 했던 국내 재즈 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기에 저자가 가상의 피아니스트 한세영과 대화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을 도입했다. 비평가만이 아니라 음악과 연주자에 대한 애정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가슴에 꾹 눌러 담았던 이야기였다. 그가 써야할 책이었다고 말할 때, 재즈 클럽의 문을 여는 순간 떠들썩한 공기의 떨림과 실내의 열기가 살갗을 때리는 듯 느껴졌다. 여기에는 지난 20여 년 간의 무게가 실려 있었을 것이다.


 

책 전반에서 저자가 비평가로 지내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 되물었을 법한 화두를, 재즈곡의 중요한 프레이즈(phrase)처럼 만나게 된다. 바로 비평가란 누구인가?’, ‘비평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저자에 따르면, 비평가의 역할이란 물밑에 감춰진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눅눅하게 처져버린 우리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일”(7)이다. 그에게 비평이란 짝사랑하기다. 그렇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포기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주어본 이만이 상대방을 미워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이해한다. 조금 과장해본다면 배교자라도 한때는 열렬한 숭배자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의 비평은 연주자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재즈 연주자들에게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대안과 자성의 소중함’(125)을 지향한다. 이런 내막으로 그동안 그의 눈길은 줄곧 무대 위 연주자의 표정과 몸짓을 향하고 그의 숨소리 하나까지 듣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왜 비평을 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나의 비평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데 대한 감성의 화답이다.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미학적 신념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이성의 손길이다.”(125)


비평가는 무엇보다 먼저 연주자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대상 없는 비평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124)이다. 지난 25년간 재즈계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연주자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당부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이 말들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의 당부가 재즈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서 재즈나 재즈인이라는 표현을 다른 분야의 예술로 대체해보라. 여전히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미술가는? 사진가는 또 어떤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느 예술 분야를 떠올려보아도 대상 없이존재하는 분야는 없다.


 

또한 저자는 연주자의 궁극적인 목표가 스타일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과 주변 세계를 면밀히 관찰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예술가는 세상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대상의 상태를, 특히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입은 상처와 슬픔을 제일 먼저 감지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대면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짐으로써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수단’(27)을 갖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각자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172) 존재들이기도 할 것이다. 비평가로서 그가 재즈계에 전하는 당부를 나는 모든 예술인들에게 전하는 정언명령으로 읽는다. 이 길이 고귀한 길인 반면, 누구나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코로나 시국으로, 또는 기득권이 들어앉은 높은 성벽에 가로막혀 재즈인의 길을 걷지 못한 연주자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손에서 놓아 버린 가슴 아픈 사연들이 찬바람 이듯 지나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재즈라는 서브컬처는 굽은 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음악이 경력을 쌓는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이유’(264)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 말을 읽고 어느 작가가 언급한 표현을 떠올렸다. 그가 자신의 글쓰기 수업 중 언급한 표현을 대강 옮기면 이렇다. ‘글쓰기는 결코 직업이 아니다. 글쓰기는 여러분이 좋아하기 때문에, 나아가 쓰지 않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물론 음악인의 경력을 쌓는 문제는 중요하다. 다만 여기에 선행되어야 하는 건, 음악가가 자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다. 달리 말해, 저자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당신이 음악을 좋아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음악가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연주가가 아니기에 이런 말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비평가가 후배 연주자들에게 하는 말은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보다 먼저 재즈 현장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그는 새로운 세대에 대해 무한한 관심과 지지를 보내면서, 음악을 가까이하는 대중에게는 국내에서 왜곡되어버린 재즈의 위상을 바로 알리고자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나름의 위치에서 분투해온 시간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10년 전 즈음의 기억이다. 이탈리아 재즈계의 거장 트럼페터 엔리코 라바의 공연에 간 적이 있다. 2012년 즈음이므로 당시에 라바는 이미 73세 정도였다. 젊은 시절만큼의 에너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분한 연주였지만, 특히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연주 중에 빈번히 젊은 연주자들에게 연주할 기회를 더 주고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좋은 작품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표현력(연주력), 독창성, 진정성을 들었다. 엔리코 라바의 연주 기량이나 독창성은 비평가의 입장에서 인상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 연주자의 소리를 정성껏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배려하는 모습은 선배 연주자가 보여주는 진정성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재즈를 여전히 잘 모르는 나에게도 그 날의 연주가 뭉클한 감동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저자가 책에서 들려주는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이 날의 연주를 떠올리며 읽었다. 언제 그의 연주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저자가 한국 재즈계와 후배 연주자들에게 하고자했던 말은, 문학을 하고 싶었던 중학생시절의 저자에게 친척이 해준 말에 아마도 모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의 고향을 잃지 마라.”(109) 앞서 이야기한 선배 연주자 엔리코 라바의 사례처럼 이미 정상에 오른 이들이 후배들에게 더 많이 배려할 때, 후배들은 새로운 마음의 고향을 얻게 될 것이다. 선배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후배 연주자들에게 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재즈 1세대는 그야말로 어려운 여건에서 열정과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만든 세대다. 아울러 후배들을 많이 챙기고 배려했던 이들이기도 하다. 이제 그 몫은 다음 세대에게 주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후배 재즈인들이 해야할 일은 마음의 고향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이들에겐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대한민국에서의 재즈는 앞으로도 서브컬처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한 소수 음악이 사회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로부터 그 존재를 인정받을 때 젊은 연주자들은 최소한 마음의 고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책을 읽는 동안 재즈비평가가 오랫동안 묵혀놓았던 이야기들을 밤새 옆에서 들은 느낌이다. 자연 생태계가 건강한지의 여부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이 서로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종의 다양성 확보에 달려 있다. 한국 재즈계도 그렇다. 젊은 재즈연주자들이 마음의 고향을 잃고 존재 이유인 음악을 손에서 놓아버린다면, 한국 재즈 생태계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나아가 언젠간 대한민국 재즈의 미래 역시 소멸 위기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오래도록 음악과 멀어져 있던 나 역시 한국 재즈계에 침묵의 봄이 오지 않길 바란다. 음악은 음악인 혼자 수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속한 생태계는 건강해야만 한다. 예술은 국내 어느 한 기업가가 말했던 것처럼, 한두 명의 천재가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분야가 결코 아니다. 효율성과 성과를 기준으로 예술인들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것은 다양성이 확보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생명력을 잃고 하나의 화석처럼 되어 버린 퓨전 국악의 사례를 떠올리면 된다.


 

책을 덮고서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피아니스트 한세영을 다시 떠올려본다. 한세영이란 인물은 대한민국에서 소수 음악을 어께에 짊어지고 고군 분투해온 이 땅의 모든 재즈 음악인들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책에 제시된 한세영의 경력이 피아니스트인 점을 제외하면 저자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닮았다는 점에서, 한세영은 저자를 비추고 있는 하나의 거울상으로도 읽힌다. 따라서 한세영이 하는 말은 비평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할 테다. 나아가 저자가 또 하나의 자신한세영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었던 이 거울이야말로 하나의 캐논’(예술가들이 삶과 창작 과정에서 지켜야할 규범, 176)이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가 지향했던 삶과 마찬가지로, 그가 바라보던 연주자는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 길을 헤매기도 할 것이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고 있을 것이다. 또 어디선가는 마음의 고향을 지키며 자신의 작품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마음의 고향을 지키며 자신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든 예술인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전영애 역, 도서출판 길, 91)









[책 속으로]

[1] "나는 재즈가, 수많은 이들의 갈채 속에 시대를 풍미하는 상업 음악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재즈를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가 되레 그 가치를 왜곡하기 쉽다는 점도 현장에서 몸으로 배웠다."(9)

[2] "삶과 동떨어진 음악은 현실 속에서 생명력을 얻지 못하며 울림의 폭도 좁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음악은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면, 음악은 없다."(70)

[3]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의 고향을 잃지 마라."(109)
- 문학을 하고 싶었던 저자의 중학생 시절, 친척 한 분이 저자에게 했던 말.

[4] "비평은 짝사랑이다. 비평가로 세상을 산다는 건 설렘의 포로가 된 채 ‘마냥 기다림‘의 끈기를 요구받는 일이다."(124)

[5] "비평가는 그대가 꿈에 그렸던, 그대의 작품을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했던 열렬한 짝사랑의 주체였다."(125)

[6] "건강한 서브컬처로서의 소수 음악이 사회에 의해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건 견디기 힘든 폭력이다."(126)

[7] "연주자로서 눈여겨봐야 할 재즈의 교훈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태도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있어요."(172)

[8] "세상 그 누구도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모든 이들에게서 사랑받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쳐라."(231)
- 재즈 연주자 앤드루 시릴이 2014년 사천 국제 재즈워크숍에서 저자에게 건넨 말.

[9] "우리는 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351)

[10] "(연주자는) 조건 없이, 자기 작품을 아낌없이 무조건 사랑하라."(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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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
사울 레이터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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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c)사울 레이터




평범한 일상에서 놀라운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

-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

(원제: The Unseen Saul Leiter)

 


사울 레이터(사진), 마깃 어브 & 마이클 파릴로(편집/) | [윌북] (2022)

 



언젠가 뉴욕 맨해튼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도시의 모습이 궁금하여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랬다. 제한된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대략 18시간을, 도시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북쪽의 200번가에서 무역센터가 무너졌던 남쪽의 그라운드제로까지, 그리고 강 건너 브루클린까지 말이다. 12시가 다 되어 가던 맨해튼의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후드 티를 입고 마주 오던 사람과 지나칠 때 등골이 서늘했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일부러 이런 경험을 하진 마시길.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제는 시간과 돈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다니질 못할 테지만, 그 때는 내게 그런 절실함이 있었던 것 같다.


마천루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떠다니던 하얀 구름들, 군데군데 영원히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도시의 보수공사 현장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던 하안 연기들, 도로 위로 아치의 일부처럼 뻗어 있던 노란 신호등 기둥과 여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신호등, 노란 택시,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던 집과 가게의 실내, 빨간 색의 우체통과 코카콜라 광고, 붉은 벽돌집, 차이나타운의 붉은 글씨나 가게 천막, 가끔 볼 수 있는 붉은 코트나 드레스를 입은 여인, 아일랜드와 이탈리아계 사람들이 많이 쓰던 초록색 등등. 내가 기억하던 도시의 색이 있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도시의 색은 대략 흰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이 모든 색들을 사울 레이터의 슬라이드 사진집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소 빛이 바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내 기억 속의 맨해튼과 여러 색들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은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출간된 사진집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이미 공개되어 있던 그의 대표작을 보여주는 도록 같은 느낌에 흑백 사진이 섞여 있어서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컬러 사진집은 1만장이 넘는 슬라이드 사진 가운데 76장이 선별되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책 전체는 마치 레이터의 사진을 환등기에 꽂아서 그가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 사진집은 좀 더 사진집다운 모습을 갖추어 더 마음이 간다. 사울 레이터가 생전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환등기로 비추어 보여주길 좋아했다는 편집자의 글을 보니, 다른 이들도 사진집을 펼치면 환등기로 슬라이드 사진을 보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지금까지 공개된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면, 그가 깨어 있던 시간이라면 줄곧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면밀히 바라보고 있었을 것 같다. 철학자들처럼 삶을 추상적으로 통찰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오감과 직관을 총 동원하여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주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차 안에서 창밖을 보거나,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 반사된 상과 만나는 새로운 형태를 찾아낸다. 혹은 거리의 난간 뒤에서 숨죽이며 바라보았을 사진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사울 레이터가 분수대에서 물이 솟구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양산을 든 여인이 멀리서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사진을 보자(98). 현상되어 마운트에 끼워진 필름을 라이트박스 위에 올려놓고 웅크린 채 루페(loupe)로 이 사진을 들여다보았을 사진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분명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놀라워했으리라.


레이터의 사진에 남아 있는 빛바랜 뉴욕의 색은 눈 오는 길거리에서 차가 지나가는 사진(27)에도 남아 있다. 형체가 분명하진 않지만 노란색과 초록색이 있는 전경의 차와 원경의 빨간 차가, 그리고 길게 늘어진 흰 눈의 이미지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줄 뿐이다. 이어지는 몇 장의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거리의 붉은 리본과 노란색 차나 빨간색 글자, 어느 가을날 거리 벤치에 앉아 연인에게 키스하는, 빨간 코트를 입은 여인의 모습에서 내가 기억하던 맨해튼의 색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강렬하지만 오래된 코다크롬 필름 특유의 빛바랜 상태로 말이다. 20대에 입성하여 집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해외 전시나 강연을 제외하고는 거의 뉴욕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레이터에게 이 지역은 익숙한 장소, 익숙한 거리였을 테다. 하지만 업으로 패션 사진을 찍던 사람의 눈이 거리로 향했을 때, 그 눈은 뻔해 보이는 일상에서 새로움을 지치지 않고 발견해나갔다.


사울 레이터 재단의 이사장이면서 이번 사진집 제작에 참여했던 마이클 파릴로는 레이터를 아주 평범한 것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즐겁다”(67)라고 말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화가의 재능을 지니기도 했던 레이터가 나에게 일러주는 삶의 깨달음은 일상의 삶 속에 놀라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분수사진에서처럼 서로 무관한 사건, 이를테면 멀리서 양산을 들고 가는 여인의 이미지와 가까운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분수사이의 우발적인 관계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하듯 말이다. 하지만 분수사진은 전통적인 흑백 사진의 문법이 강하게 엿보인다.


여기에 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레이터의 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어보면, 대부분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발견의 즐거움이나 잔잔한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반면 나와는 무관한 대상들을 찍었지만 오래된 슬라이드 필름 특유의 빛바랜 사진들은 내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아픔의 기억이나 상처를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이 작용이 레이터의 사진과 내가 연결되고 내가 비로소 그의 사진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색은 추상적인 요소다. 누군가에겐 우리의 유한한 삶의 덧없음을 일깨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에겐 흑백사진의 명암 변화에 버금가는 사진의 정서와 분위기를 더해주며 컬러 사진을 완결하기도 한다. 내겐 사울 레이터의 아름다운 컬러 사진들이 바로 그렇다.


물론 이 사진집은 사울 레이터가 직접 편집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감은 있다. 하지만 그가 우선 골라놓은 사진 중에서 사진가를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선별한 것이기에 같은 사진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 차이가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독자가 레이터의 사진으로부터 받는 즐거움과 감동이 덜하진 않을 것이다. 문자텍스트로 이루어진 다른 책들의 운명처럼 원고 혹은 책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상, 이를 즐기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마찬가지로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것이 레이터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사진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하는 일을 거절했던 이유일 테다.


10여 년 전에 사울 레이터를 알지 못했지만, 그의 말년에 그가 살던 장소, 그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도시 거리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신기한 느낌이 든다. 어디로 가야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고 방황했던 시절, 그의 존재를 알았다면 필름 카메라를 메고 한번쯤 그를 찾아가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레이터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고 대뜸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나도 필름카메라를 꽤 오래 썼지.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로 써. 디카로 찍기 시작한지 한 10년쯤 되었을 거야. 필름카메라로 찍고 결과물을 볼 때가 더 재미있긴 했었어. 필름카메라를 쓰고 있다면 익숙한 주변에서 계속 찍어 보라구. 시간은 사진가의 편이니까!*’(마지막 문장은 사울 레이터가 한 말(98)에서 인용함.)






[번역에 관한 사항]

121면에 사울 레이터가 <에스콰이어> 작업용으로 촬영한 슬라이드 500여 장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어서 재즈 연주자 찰리 파커에 관한 기사 새의 발라드(Ballad of the Bird, 1957)’를 언급하는데, 아마 번역가는 찰리 파커의 별명이 (the Bird)’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 같지만 여기에 주석을 더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the Bird'를 단순히 로 번역했는지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신 찰리라고 번역해두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단순히 라고 번역을 해두면 이 가 찰리 파커와 무슨 상관인지 그 뉘앙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번역자와 편집자의 결정일 테다. 아쉬운 것은 모든 독자가 이런 점을 알지 못할 테니, 주석을 달아 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1] "우리는 색채의 세상에서, 색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67)

[2] "어째서 색을 홀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색은 삶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며, 사진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합니다."(67)
- 2002년 뉴욕 유대인 박물관 강연에서 사울 레이터가 ‘색’에 대해 한 말

[3] "아주 평범한 것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즐겁다."(67)
- 내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4] "컬러 슬라이드는 벽에 영사해 볼 수도 있고, 인화해 볼 수도 있어요. 네거티브 필름과는 다르죠. 라이트테이블에 올려만 놓아도 그 고유하고 특별한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인 컬러 슬라이드는 라이트테이블 위에 올리는 순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입니다."(68)

[5]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는 그 나름의 고귀함이 있습니다."(68)
- 아마도 이 말의 진의는 사진의 본질 외에 사진을 꾸미려고 의도하거나 감상자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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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울 레이터
사울 레이터 지음, 이지민 옮김 / 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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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울 레이터

: Forever Saul Leiter

사울 레이터 사진 | 이지민 옮김 | [윌북] | (2014)

 



컬러 사진의 대가 사울 레이터가 전하는 삶의 비결

 


몇 년 전 사진가 사울 레이터의 컬러 사진 몇 장을 처음 보았을 때 곧바로 매료되었다. 그 사진들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빛바랜 프레임 속에 멈춘 상태로 비밀스럽게 담겨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붉은 코트의 여인, 혹은 붉은 우산을 들고 펑펑 눈이 내리는 길을 가는 여인, 붉은 벽돌 건물 앞에 서 있는 우아한 곡선의 초록색 롤스로이스와 같은 사진들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사진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레이터의 사진집에 얽힌 한 사건으로 나는 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사람뿐만 아니라 책에도 인연이란 것이 있다면, 사울 레이터는 참 독특한 인연으로 내게 찾아왔다.


 

아마 2018년이었을 텐데, 내가 이용하던 공공도서관에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윌북, 2018)이라는 사진집이 신간 도서로 도착했다. 이 책은 본래 20174월에 일본 도쿄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의 도록으로 출판된 책이었다. 책을 대여할 때, 도서관의 사서는 내가 대출한 후 반납하자마자 이 책은 폐기될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신간 도서가 바로 폐기될 예정이라니. 그 이유가 궁금하여 사서에게 물어보았다. 난감한 표정을 지은 사서는 사진집에 노출사진이 있다는 이유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누드 사진 몇 장이 있다는 이유로 사진집이 도서관장서 보관 규정에 어긋난다고 폐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이의를 제기해도 규정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는 단지 이 책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불편했기에 여러 가지 고민을 한 끝에, 이 책을 분실했다고 신고했다. 도서 정가에 해당하는 벌금을 도서관에 내고 말이다. 이것이 내가 ‘OO도서관이라는 스티커와 분류 기호가 붙은 사울 레이터의 책이 내 책장으로 입양된 사연이다. 원래 있던 표지(빨간 우산을 쓰고 눈길을 걷는 표지 사진)는 사라지고, 도서 정보 칩이 심어진 후, 이제 분실로 변제된상태로 내 책장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그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영원히 사울 레이터 Forever Saul Leiter역시 2018년에 출간된 전시 도록 형태의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책과 빼닮았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책은 과거에 선보인 작업이 아니라 주로 새로 발굴된사진들이 추가된 책이다. 레이터는 1948년부터 컬러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40년이 지난 90년대가 되서야 그의 필름이 본격적으로 현상되었고, 대중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현상되지 않은 수만 장의 사진들이 세상에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작업을 노출시키고 성공할 기회를 잡으려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야망의 도시 뉴욕에서, 레이터는 오히려 드러나지 않으려 했던 사진가였다.


 

레이터는 패션 사진업계에 종사하면서 미국 사진 역사의 주역들과 친분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기준과 다른 자신만의 성공 기준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의 삶에서 중요했던 것은, 책과 그림,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소장하는 게 좋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좋아서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준다.

내게는 이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155)


 

원문에서 레이터는 enjo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저 자신이 좋아서 했고, 그 일을 꾸준히 하며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이 행복감을 사람들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사진가의 소소한 삶이 군더더기 없이 솔직하고 간결한 문장에서, 그리고 'enjoy'라는 표현에서 온전히 느껴졌다. 책에는 사진가의 글이 많이 담겨 있지 않지만, 그가 남긴 몇 마디의 언급만으로도 그의 일관된 삶을 그대로 짐작해볼 수 있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 (출처: 영원히 사울 레이터, 윌북, 2021)


 

레이터의 사진에서 보이는 두드러진 특징은 그가 대상을 그대로 촬영하기보다 유리창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면서 표현 효과를 의도하거나, 사진가와 대상 사이에 있는 물체를 화면의 구성요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거리에서 흑백사진을 찍었던 앙드레 케르테즈나 카르티에-브레송, 혹은 워커 에반스, 윌리엄 클라인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 레이터의 남다른 색에 대한 감각이 더해지는 것 같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는 사울 레이터의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그가 찍는 방식을 고려한다면 색(color)이 그의 사진에서 차지하는 남다른 역할을 실감할 수 있다. ‘자체가 지니는 추상성의 존재감이 아주 크게 차지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색이 관람자와 상호작용하며 일으키는 심리적 역할이 컬러 사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 (출처: 영원히 사울 레이터, 윌북, 2021)



미국 사진사에서 컬러 사진의 대표주자인 스티븐 쇼어나 윌리엄 이글스턴과 같은 이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와 비교하면, 레이터는 이미 1948년부터 컬러 슬라이드 필름으로 묵묵히 작업을 했지만 이것이 타인의 인정을 받고 세간의 주목을 받기 위함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시선과 비판(흑백 사진만이 예술 사진이라는 생각으로 컬러 사진 작업을 무시했던 경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던 점에 주목해본다. 그는 그저 쭉 계속하기만 하면 선구자가 된다!라고 말했다. 그가 컬러 사진의 선구자가 된 비결이었다.


 

60년 넘게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살면서 줄곧 같은 장소에서 꾸준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면서, 여기에서 무한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재능이라 할 수 있다면, 레이터는 이 부문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출간된 미공개 사진들 역시 한 장 한 장이 삶의 경이를 발견하는 하이쿠를 연상하게 한다. 젊은 시절 그가 카르티에 브레송의 작업과 사진을 인상 깊게 보았던 것, 그가 모은 책과 그림에 일본 관련 서적이 많았던 것 역시 그의 사진에 큰 영향을 주었던 셈이다.


 

또한 이번에 출간된 레이터의 사진집은 그가 직접 사진 선별과 전체적인 사진집의 성격, 흐름에 직접 관여를 한 것이 아니라, 사후에 출간된 것이기에 다소 아쉬운 점은 남는다. 나아가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을 섞어서 배열한 점은 개인적으로 그의 느긋하고 고요한 사진을 감상하는 데 산만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생전에 출간한 정식 사진집 Early Colors(2006)을 아직 감상하지 못했기에 나의 아쉬움과 주관적인 판단은 잠시 보류하기로 한다. 이 사진집은 35 mm 슬라이드 필름으로 40-50년대에 작업한 사진들을 담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지는 사진집이다. 앞으로 레이터의 사진들이 더 빛을 보게 되어 소개되기를 바란다.


이번에 출간된 사진집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그의 삶과 생애에 좀 더 다가간 것으로 만족한다. 개별적으로 말하는 레이터의 수록 사진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루면, 이 때부터 사진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사진가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그의 사진들은 겉으로 드러나고 인지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현실의 이면을 관람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간결한 텍스트(text)를 제시하되, 화면의 맥락, 콘텍스트(context)는 오로지 사진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중요한 건 매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긍정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또 이 책에는 자신의 모습과 2살 터울의 여동생 데버라(Deborah)에 대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앳되고 명민한 동생의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데버라는 안타깝게도 20대에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하여 보호시설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던 것 같은데, 다시금 레이터가 담은 어린 동생의 모습에서 동생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그대로 묻어있는 듯하다. 인생의 덧없음과 더불어 말이다. 사진은 대상의 부재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대상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주는 매체다.


 

사울 레이터의 동생 데버라(왼쪽)와 평생의 연인 솜스 밴트리(오른쪽)

(출처: 영원히 사울 레이터, 윌북, 2021)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레이터가 동생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여성의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그는 패션모델로 일했던 솜스 밴트리를 50년대 말에 만났다. 그녀가 2002년에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40여 년 간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서 함께 살았다. 사진가의 곁에는 언제나 그의 사진이 최고라고 인정해주었던 여인이 있었고, 그녀 곁에는 그녀가 음악을 들으며 그림 그리던 모습을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있었기에 레이터가 솜스를 담은 사진들을 보면 외설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친밀한 신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이 책이 모두 고인이 된 사람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나 밀착 인화지를 조금 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독자의 호불호는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레이터가 여러 여성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고 인화한 사진들을 거칠게 명함 크기로 잘라 만든 조각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렌즈 앞에 마주한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존중하는 마음 없이 결코 나올 수 없는 사진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울 레이터의 삶은 물질적 가치가 최우선시 되고 있는 시대에 그림이나 사진, ,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과 함께 평생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물론 삶에서 어려운 국면은 누구나 겪을 테지만, 이를 견디는 힘이 단지 물질이나 돈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기도 한다. 사울 레이터가 보여준 모습에서 삶의 비결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아직 아이패드로도 그림 그리기를 시도하며 즐거워하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호크니가 그저 네가 좋아하는 걸 그려라고 했을 때, 그는 사실 인생에서 행복의 비결을 알려주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젊어서 화가가 되고 싶었던 레이터는 그림 그리는 일을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을 견디고 보다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사울 레이터는 60년 넘게 한 장소에서 살면서, 55년 넘게 사진을 끊임없이 찍고, 40여년 넘게 같은 여인 곁에서 사랑과 돌봄의 시간을 함께 나누며 살았던 행복한 사진가였다. 그는 82세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첫 단독 사진집을 출간했다. 그의 사진과 삶이 내게 건네는 말은 자신에게 결여된 것에 한눈팔지 말고,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이를 아끼고 즐길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삶의 태도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할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할 것이다. 레이터가 남긴 사진과 그림, 그리고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었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세상과 사람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보고 기쁨과 경이를 발견하기로 한다.  



도서관에서 '입양'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윌북, 2018)과 

이번에 출간된 영원히 사울 레이터(윌북, 2021)




[1]
"책을 소장하는 게 좋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좋아서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준다.
내게는 이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155)

[2]
"사진은 찾아내는 것이지만 그림은 만들어내는 것이다." (78)
- 사진과 회화의 본질적인 차이를 간결하게 설명한 말.

[3]
"우리는 색채의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색으로 둘러싸여 있다." (97)
- 사울 레이터는 색이 갖는 추상성에 대한 본능적이고 탁월한 감각을 지닌 사람 같다.

[4]
"신비로운 일은 친숙한 장소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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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02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의 기지로 사울레이터의 흔적이 폐기될 재앙이 막아졌네요. 이런 입양 스토리라면, 한 번 듣고도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psyche 2022-02-04 0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출 사진이 있으면 도서관에 둘 수 없군요! 옛날도 아니고 2018년인데!
초란공님 덕에 폐기될 처지에 있던 책이 구출되었으니 다행이에요.
 
강가의 아틀리에 - 장욱진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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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아틀리에

: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을 사랑한다.”(33) 장욱진 화백의 그림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읽고 남는 인상을 떠올리자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문장을 꼽겠다.


책을 펼치고 읽을 때 화백이 그림을 곁들여서 창작론, 인생론, 예술관을 조곤조곤 전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진정으로 그림과 술을 사랑한 화가였다. 그가 보여주었던 사랑은 범인(凡人)의 정의로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화백의 그림 사랑과 술사랑은 괴벽에 가까운, 혹은 자기를 혹사하는 행위 내지는 집착의 행위가 아닐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제와 균형이 선이라는 태도에 익숙한 이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그림 사랑, 술사랑은 지나침 혹은 과잉의 한계 너머의 무모함에 가까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방식이야말로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본성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59)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46)


 

장욱진 화백의 담담하고 명료한 믿음의 고백을 읽다보면 그가 말하는 사랑의 강도와 깊이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가 자신의 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겠다. 문명이 개개인에게 둘러친 관습 혹은 규범의 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 같은 문구일 테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환경, 만들어지고 관리 받은모범생 같은 이들이 양산되는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장욱진 화백과 같은 분들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인물의 유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린 낙서처럼 보이는 화백의 그림을 보다가 스위스 태생의 독일 화가 폴 클레(Paul Klee)의 드로잉하고도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동굴 벽화에 담겨있는 시원의 삶을 보여주는 듯 군더더기 없는 묘사 때문이었다. 일종의 상징 기호처럼 보일 정도로 간결한 선들만으로 표현한 사람과 산, 해와 달 등이 어우러진 배경을 보고서 말이다. 혹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뼈대만 남아 있는 조각상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문명이 인간에게 덧칠한 모든 흔적을 제거해버리려는 듯 본질만 남은 선, 간신히 인간임을 알아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만 남은 모습들에서 묘한 연대 의식 같은 것들을 느꼈다고 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그럼에도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는 인물의 표정이 보이고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인물 그림에선 의지와 인격, 그리고 역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고요와 고독속에서만 그림을 그려야 했다. 경기도 덕소, 수안보, 신갈 등 현재는 관광지 내지는 도시 개발로 번잡해진 장소가 되었지만, 그가 작업하던 시기에는 외지고 한적한 곳이었다. 작업장 주변이 개발되어 그림 작업에 집중하기 힘들어지게 되면 그는 미련 없이 떠나 새로운 곳을 물색했다. 역설적으로 작가의 아틀리에 장소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무엇보다 화백이 그림을 그릴 때면 아무것도 방해하는 것 없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후에라야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한 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47)


 

저자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였을까. 무엇보다 이 행위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전제하는 일이었을 테다. 그는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드러내며 나를 발산한다’(181)라고 자신의 그림그리기를 정리했다. 예술에 대한 나의 부족한 감수성과 이해력으로 주목한 작가의 예술관은 다음에 인용한 문장에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이 표현에는 알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뜻이 담겨 있다. 작가의 생각은 무엇보다 현대 미술의 접근 방식을 말하고 있는 듯하며, 그 본질로 자기와의 대면을 언급한다. 결국 예술가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기존의 질서 파괴 행위는 미술 대학교 졸업 전시회에 가보면 고민의 결과물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백의 표현대로 공유되는 전달 수단으로서의 언어를 자기화한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4년에 걸친 미술대학 시절에 자기만의 언어를 획득하는 일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자기만의 언어 뿐 아니라 동시에 공동한 언어를 잊지 않고 반영되려면 나와 마주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향하여 사회와 공동체, 타인에 대한 주도면밀하고 집요한 관찰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가들이 사회 문제와 사람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감지하고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바로 자신만의 언어를 소통의 언어, 공동의 언어로 코딩하는 작업을 몸소 해야 하니까 말이다. ‘언어는 소통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약속이자 기호가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리 저자처럼 홀로 고립되어 작업을 한다고 해도, 예술가가 타자와 사회에 무관심하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기본적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테다. 여기에 예술행위의 기본적인 정치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므로 장욱진 화백이 언급한 자아의 발견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을 바라보라는 주문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타인을 통해서도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아닐까. 결국 예술가의 작업이란 자기에 대한 사랑’, 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알곡 없는 쭉정이에 불과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이 한 가지 과정만 해도 상당한 수련이 필요할 듯하다. 알 듯 모를 듯한 장욱진 화백의 예술관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읽었다.


한 가지 더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사연은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의 만남과 인연이었다. 마해송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 홍난파 등과 교제하고 1924년에 방정환 선생 등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한 분이었다. 장욱진 화백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노인 한 분의 외모가 심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선글라스에 지팡이를 짚고 잠바를 입은 모습을 보던 화백이 마해송 선생에게 가서 통성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인연은 가족으로 이어지고, 마해송 선생의 동화집 작업에 화백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선생의 아들인 마종기 선생은 시인으로도 활동했던 것 같다. 훗날 마종기 선생이 본인의 시집을 낼 때, 장욱진 화백에게 부탁하여 표지 그림을 얻어냈다고 한다.


타인의 간섭에 거부감을 느끼고 이웃하고도 통성명을 하지 않는 요즘 도시 생활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서로 알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옅어지고 관계에 대한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기에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키며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일은 요즘 현실에서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해진다면 타인의 실수와 처지에 공감하기가 더 쉬워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저자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에세이보다는 우연한 인연이 등장하고, 그 관계의 발전이 있는 그런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장욱진 화백의 산문에는 화가 본인의 그림과 예술관, 내면세계가 담겨있지만 여기에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이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더해져 다채로웠다.


저자의 연보를 보다가 특이한 이력에 눈길이 간다. 그는 1944년 겨울, 29세의 나이에 일제의 비행장 만드는 징용에 끌려갔던 경험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곧바로 일본 관동군 해군본부 경리요원으로 배속된 후 9개월 만에 해방을 맞아 돌아올 수 있었다. 저자는 1918년생이므로 출생 후 30세까지 나라 없는 식민지 상태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셈이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토록 생을 사랑할 수 있었고, 예술에서 자신의 언어,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연보를 통해 청년 장욱진의 시절을 상상만 해볼 뿐이다. 이렇듯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는 삶을 온 몸으로 사랑했던 한 예술가의 담담한 고백이다.




 


 

[1] "검은 것과 흰 것, 그게 제일 힘든 거예요. 색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중에서 흰 건, 이 빛에서 가장 단순하다는 게 아주 교묘한 거거든. (...) 우린 은연중에 흰 것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건 행복한 거예요. 내 환쟁이 바탕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25)

[2] "아기자기하게 닳고 닳은 조약돌에서 읽을 수 있는 세월의 엄청난 흔적과 자연의 기나긴 역사. 그 자연의 줄기찬 흐름 속에서 잠깐, 아주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인생의 덧없음. 이런 것들은 나에게 무한(無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인생은 덧없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生)을 사랑한다." (33)

[3] "강가에 앉아서 물과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상은 어느새 막걸리를 사랑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46)

[4]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한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 (47)

[5]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6] "분만될 시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일, 이것만이 예술가의 삶" (146)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


[7]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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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21 08: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파울 클레 그림과 자코메티의 뼈대를 떠올리는 데에 공감되어요. 열화당 개정판이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담담한 예술가의 삶처럼 담담한 리뷰와 인용문도 참 좋습니다. 취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책 담아가요 ^^

초란공 2021-10-21 12:1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폴 클레라고 쓰면서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파울 클레‘ 때문이었네요 ㅋㅋ^^;;;

scott 2021-10-22 00: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욱진 화백 그림 좋아 합니다
한국의 토속적 질감과 구도!

열화당 요즘 예술 서적 개정판 내면서
가격을 야금, 야금 ㅎㅎㅎ

초란공 2021-11-08 18:51   좋아요 0 | URL
ㅋㅋ 그래도 열화당은 예술 분야 위주로 출간하다보니
다른 출판사보다 여러 가지로 더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벤트성 리커버나 기념판 작업은 열*책들이 두각을 보이는듯 합니다. ㅋㅋ ^^;;
도스토옙스키 기념판을 지르지 못하여 아쉬워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고요 ㅋㅋ


scott 2021-11-05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추카합니다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초란공 2021-11-05 22:48   좋아요 4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요새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서재글 이메일의 주인공 분들이 댓들을 달아주시니 제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몇 년 간 방문자가 거의 없었거든요 ㅋ ^^;; 즐거운 주말, 가을 보내시길요!

mini74 2021-11-05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1-05 22:37   좋아요 3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알라딘 핵인싸분들이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으쓱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6: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1-11-05 22:32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11-06 19: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방문했던 용인에 있는 장욱진 고택은 한옥과 양옥으로 되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란공님의 글을 통해 서로 다른 양식의 두 건물이 조화롭게 하나의 집이 되었던 것처럼 화가 자신이 내면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1-06 22:44   좋아요 3 | URL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장욱진 선생 고택을 이미 가보셨군요.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선생의 문구도 기억나네요.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요~!

초딩 2021-11-07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ㅜㅜ 요즘 제가 갑자기 바빠져서 왕래가 좀 뜸했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초란공 2021-11-07 11: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바쁘셔도 건강 잘 챙기시길요!

이하라 2021-11-07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란공 2021-11-07 11:3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thkang1001 2021-11-07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초란공 2021-11-08 18:53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격려말씀도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Gabriele Basilico사진전

Photography of Italy

2020.10.20 – 12.02 KF Gallery




시내에 잠시 나갈 일이 있어 을지로에 들렀다가 KF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사진전을 관람했다.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가 가보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출신인 사진작가 가브리엘레 바질리코(Gabriele Basilico, 1944-2013)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12 2 까지). 평일인데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서 그런지,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넓은 공간에 대개 혼자 아니면 정도로 관람할 있었다.


바질리코는 대형 카메라로 도시의 풍경을 주로 찍는 작업을 했던 같다. 영상을 보니 말년에는 컬러 작업도 했던 모양인데, 전시된 사진은 모두 흑백 사진 작업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은 1978년에서 2010 사이에 작업한 사진을  고르게 선별했다고 나온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바질리코의 사진 작업 중에서 가장 알려진 작품들은 베이루트 찍은 풍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국내 전시에는 사진이 빠져있었다. 아쉽지만 영상에서 보는 장의 이미지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 8 4, 항구에서 항구에 년간 저장되어 있던 질산 암모늄이 폭발하여, 400 명이 죽고, 6500 명이 부상했다는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바질리코는 바로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찍은 사진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1991년에 여러 사진작가들과 함께 15 지속된 내전으로 파괴된 도시 베이루트에 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도시의 건물에 유리창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고, 모든 건물은 앙상한 구조만 남아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터질 순간 발생한 엄청난 열로 사람이 증발한 흔적을 보는 같은 충격이 느껴진다.


요즈음 그림 전시회나 사진전에서 많은 관람자들이 작품을 보면서 폰이나 카메라로 사진 찍기 바쁜 모습을 본다. 모든 사진을 담아가려는 사람도 있다. 나도 이전에 그렇게 하곤 했지만, 찍어두고는 다시 들여다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촬영이 허용되는 한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 장만 찍어오는 것으로 그치고, 대신 넉넉히 시간을 들여 그림이나 사진을 눈에 담아오는데 집중하는 편이다. 게다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떠밀리듯 감상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작품의 특징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메모해두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집에 와서 메모를 봤을 , 머릿속에서 제법 생생하게 그림이나 사진을 떠올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관람자가 거의 없어서 메모와 함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전공인 친구는 바질리코의 사진에서 어떤 인성같은 것을 느낄 있을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안타깝게 나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바질리코의 사진은 대부분의 대형 카메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처럼 조용하다. 하지만 그의 사진이 조금 색다른 점은 도시의 건물을 찍을 어떤 패턴을 느낄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건축전공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치밀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균형감같은 것들을 느낄 있었다. 평면의 영역 속에 관람자의 관습적인 기억에 의존하는 전경과 후경의 배치, 도시의 수직 구조 같은 기하학적인 느낌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하늘 아래 새로운 없다라고 했던가. 바질리코의 사진 역시 여러 사진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보이는 했다. 영상에서도 작가가 언급하지만, 건축을 전공한 바질리코가 사진을 시작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사진 역시 브레송 사진의 흔적들이 보인다. ‘트리에스테 1985사진 중에서 해질 녘의 바닷가/부두를 찍은 장의 사진이 있다. 전망대처럼 보이는 위쪽의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가드레일은 기하학적인 구조를 하고, 화면의 가운데를 에워싸면서 화면을 중심과 외부로 분할한다. 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는데, 계단을 올라가는 시선 위로는 멀리 바닷가에 척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처럼 보인다.


반면에 오른쪽 아래 어둑한 그늘 속의 회랑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연인이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처럼 바질리코는 대형 카메라로 화면을 구성하고, 프레임 속의 동적 요소가 나름 균형있는 지점에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작업을 했을 것이다. 하루에 장을 찍을까 말까한 대형 카메라 작업에서 그는 기하학적 요소와 동적 요소가 적절한 배치나 그림자의 위치가 나올 때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린 정황을 곧바로 알아볼 있었다. 조용한 그의 사진에는 대개 사람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보면 사람이 없는 하다가도, 자세히 보면 어딘가에 사람이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영상에서 폐허가 되다 시피한 베이루트의 건물 잔해들 사이로 남자가 걸어가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프레임을 구성하고, 빛과 동적요소가 만족스럽게 혹은 적절하게 배치가 때까지 기다린 사진들이다. 시원한 도시의 풍경 속에 무너저내릴 법한 건물 잔해들, 사이를 외롭게 걷는 사람으로 인간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고요한 피렌체 사진들 중에서도 적막한 도시 공간의 어느 구석엔 자세히 보면 대개 사람의 자취를 발견할 있다. 가본적은 없지만, 이탈리아에서 광장은 자체를 규정하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나라 사람들의 삶은 바로 광장에서 시작해서 광장에서 끝날 같단 생각이 든다.


바질리코가 기록한 오랜 도시의 흔적,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현대 문명의 모습을 보다보면 수직선은 언제나 문명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은 수평선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명은 <밀라노, 공장들의 초상>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수직으로 올라가는 공장의 굴뚝을 낳았다. 혹은 건물 위로 있는 계단, 가로등 그리고 건물의 외벽에 조각되어 있는 그리스 신전 모양의 부조, 이오니아 양식의 신전 기둥을 닮은 가짜 기둥 조각과 같은 구조물을 통해 화면의 수직선을 구성하는 것이다.


베네치아 1998 어느 사진은 인적이 없는 광장에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고, 아래 광장 바닥에는 비둘기 마리가 있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광장에 동상과 비둘기 마리가 외롭게 있다. 장면이 오히려 이미지가 제시하는 장면의 비현실적인 느낌을 배가한다. 베네치아 골목을 찍은 바질리코의 사진은, 파리 골목을 찍은 앗제의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라는 것은 무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앗제의 느낌과는 다르게 화면을 채우는 건물이 무게감과 동적 느낌을 더해준다. 이건 아마도 화면 구성상의 소실점 배치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가끔씩 이렇게 사진의 특징을 메모해놓곤 한다. 그런데 바질리코의 사진은 화면의 구성 뿐만 아니라, 흑백 자체에서 나오는 매력이 있다. 특히 영상에서도 작가가 설명하고 있던 현대적인 건물의 곡선 외양과 계단에서 보여주는 톤의 매력이 인상적이었다. 점은 밀라노 1989작업 밤에 두오모처럼 보이는 건물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느낄 있었다. 둥근 지붕의 위에 나온 구조물이 지붕과 함께 밤의 암흑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한 세심한 톤의 표현이 인상적이 었다. 가운데 중심적인 건물을 양쪽에서 에워싸는 듯한 배치는 작가의 도시 사진 프레임 구성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이런 유형의 작업 중에서 양쪽 건물, 담벽 사이의 톤이 주는 미묘한 매력을 느낄 있는 작업들이 있기도 하다.


건물의 정면을 찍으며 화면을 가득 메우게 만든 구성은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사진가 워커 에반스의 작업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또는 김아타의 작업처럼 오랜 노출로 부동의 건물을 제외한 사람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 버린 도시 풍경을 닮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역시 창밖으로 빨래를 널어 놓은 모습을 발견할 있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있다. 바질리코의 사진은 자세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듯하면서도 언제나 사람의 자취를 있다. 다양한 작가의 영향이 느껴지는 사진들 역시 소형 카메라가 아닌 대형 카메라로 작업을 하니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도시의 풍경을 담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기독교 문화에서 세레자 요한의 탄생을 즈가리아에게, 그리고 예수의 탄생을 동정녀 마리아에 고지한 대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을 사진작가 바질리코. 그는 관람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을지 궁금하다.       

  

 이번 바질리코의 사진전은 그가 컬러 사진 작업을 말년의 작업들, 이를테면 샌프란시스코 사진이나 상하이, 이스탄불 시리즈 처럼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다. 이번 사진전의 주제가 이탈리아의 사진이듯,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촬영한 사진들만을 대상으로 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한 것으로 보아, 이탈리아의 도시와 이탈리아가 낳은 유명 사진작가의 홍보를 겸해서 하는 전시로 보인다. 바질리코의 다른 사진들은 국내 사진 전문 출판사 열화당에서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Gabriele Basilico(2002)라는 제목의 사진문고판이 나와 있으므로, 작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나 작업들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마찬가지로 열화당에서 출간한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2020)라는 책에도 바질리코의 이름이 스치듯 지나간기도 한다.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대규모 사진전에 대한 주석에 가브리엘레 바질리코를 참여 작가로 언급하는 대목이 군데 나온다. 사진 수업 이탈리아의 사진가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 기록을 엮은 책이다. 책은 흔히 보는 사진 관련 서적처럼 미국 중심의 혹은 유명한 (미국인 위주의) 사진이 중심이 것이 아니라, 루이지 기리 자신의 사진, 그리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수업에 많이 활용하는 점이 신선하게 보인다. 게다가 책의 서두에 사진 장비에 대한 설명부터 진부하게 설명하는 사진학 수업 서적이 아니라, 보다 인문학적인 이야기로 주제를 이끌어내는 점이 흥미롭다. 오늘은 미국 위주의 사진가가 아닌 이탈리아의 유명한 사진가의 이야기를 주목해서 메모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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