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더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4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4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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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쓸 적의 고민 하나. 어떻게 하면 최대한 원작을 스포일링시키지 않으면서 좋은 서평을 쓸 것인가! 보통의 일반소설의 경우에는 살짝살짝 맛보기 식으로 내용을 소개할 수가 있지만 끝까지 내용을 알면 절.대. 안 되는 스릴러 소설에서는 그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말이다. 자, 그렇다면 방법은 몇 가지로 축약이 될 수가 있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 출신의 작가 테스 게리첸이 빚어내는 현란한 스릴러 <바디더블>의 두 주인공인 마우라 아일스와 제인 리졸리의 캐릭터 분석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어느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바디더블>의 시작은 훗날에 벌어질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불길한 암시와 전조로 시작된다. 그리고 유능한 시체부검 의사이자 병리학자로 스탠포드 대학 출신(아마 테스 게리첸 자신의 ‘페르소나’인 듯)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 마우라 아일스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리비어(Revere) 출신의 보스턴 경찰(Boston Police Department) 소속의 여성 민완형사 제인 리졸 리가 만삭의 몸으로 차례로 출현한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 하나는, 여성 작가가 두 명의 여성 메인 캐릭터들을 장기판의 말들처럼 심사숙고해서 이동시키면서 여성 희생자들만 살해하는 범인을 뒤쫓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 소설 <바디더블>에서 남자들의 역할은 대개의 경우 사건을 은폐하려거나 혹은 사건현장에서 삽질을 하는 등의 보조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바디더블>은 미스터리에서 시작해서, 스릴러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시전해 주고 있다. 자신과 외모나 성격 그리고 모든 면에서 일치하는 애너의 살인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들 줄과 씨줄처럼 얽히고설키는 이합집산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인물의 교묘하게 짜인 심리묘사를 통해, 결말로 나아간다.

어떻게 보면 평면적 대입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뛰는 마우라 박사의 심리적 불안정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녀는 만나는 남자들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과거의 실패한 결혼으로부터 오는 트라우마는 그녀의 방어기제만을 작동시킬 뿐이다.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극 초반에 그녀가 의지하는 남성으로 나오던 대니얼 브로피 신부의 존재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었다.

다음으로 영화 <에일리언>의 열혈 여전사 리플리를 떠오르게 하는 여경 제인 리졸리(이름도 비슷하지 않은가). 소설에서도 우스갯소리로 언급이 되지만,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에서 역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만삭의 민완형사 캐릭터가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두 주인공은 공통의 과제인 사건해결을 위해 뛰면서, 같은 동지애를 느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갈등하기도 한다. 아마 작가 테스 게리첸이 여자가 아니었으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마우라의 사십 여년 인생만큼이나 긴 세월 가운데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끈을 추적하는 재미가 이 소설 <바디더블>의 묘미였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는 자마이카 플레인, 네이틱, 브라이튼, 브루크라인 등의 익숙한 지명들이 한결 더 친근함을 형성시켜 주었다. 초복을 맞이하는 이 여름, 서늘한 서스펜스와 숨 막히는 스릴러를 원한다면 테스 게리첸의 <바디더블>이 제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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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없다면!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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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이라는 KAIST(우리나라에서 이 단어가 뜻하는 위력을 잘 알 것이다)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젊은 과학도들과 치열한 토론과 계속되는 퇴고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빚어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있다면? 없다면!>이란다. 이 책은 모두 17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풀어 나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왜 우리는 그렇게 과학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무지한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을 돌아봐도 인문학도 출신이어서 그런 진 몰라도, 압도적으로 과학계열의 서적들보다 인문학 계열의 책들만을 꾸역꾸역 읽어 대고 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기피하는 건 아닐는지.

만약에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와 함께 <있다면? 없다면!> 여행에 동참할지어다. 이 책은 다양한 생각들로 넘쳐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시선을 기르는 입문서에 비유할 수가 있겠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주스비로 시작하는데, 고등학교 시절 무더운 수업시간에 나도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었다. 당시 인기 음료수였던 ‘하이씨’(Hi-C) 비가 내리면 더 바랄게 없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지은이들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서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맹물비가 내리는 것이 인류를 위해서 좋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산성 성분의 주스비가 내린 후에 창궐할 세균과 곰팡이들은 어쩔 거냔 말이다.

17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황당한 에피소드는 바로 ‘불개’였다. 책표지에 나와 있는 선글래스를 쓴 채, 불을 내뿜는 불개를 보라, 우리네 애완견이 불을 뿜는다니! 아예 실현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들은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이 책의 지은이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 숨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중에 상당수는 실현가능하다, 하지만 그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 예를 들면, 타산성이 맞지 않는다든가 사회적 비용의 증가 - 많은 아이디어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공군에서 군용으로 쓰기 위해 계약직전까지 갔었다는 배낭로켓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에피소드는 바로 전선(電線)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기 에너지 없이는 1초도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우리의 전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전달하는 전선이 없다면? 사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상당수의 전기 에너지들이 전선을 통해 각 가정으로 배달되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그 대안은 바로 건전지이다. 다만 이 건전지는 지속적으로 충전을 해야 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전기도 전파처럼 송수신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하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의 나래 속으로 빠져 드나 보다.

이 <있다면? 없다면!>을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만들어 주는 결정적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정훈이의 삽화다. 그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남기남/씨네박 스타일의 주인공이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곳곳에 등장해서 해학적 설명을 해준다.

이 여름, 황당하면서도 유익한 과학 세계 탐험을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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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만화성경 - 성경 66권을 단숨에 한 권으로 읽는
아킨.시쿠 지음, 강주헌 옮김 / 위즈덤로드(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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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만화성경” 앞에 예스가 붙었을까 하고 책을 펼치기 전에 앞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책을 보는 순간 그 의문은 단박에 풀려 버렸다. Young Easy Speed 의 이니셜을 따서 예스(Y.E.S.)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쉬운 것과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성경이라고 할까? 게다가 만화까지 더해진다면 더 말할게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아킨과 시쿠의 공동 작업은 그야말로 한 편의 걸작을 빚어냈다. 개인적으로 이런 강렬한 터치의 그림들을 좋아하는데, 시쿠의 그림은 그런 개인적인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사실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성경을 만화화한다는 작업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예스만화성경>의 원제는 <The Manga Bible>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망가’가 가지는 의미 때문에 그런 제목을 붙였으리라.

구약 39편 그리고 신약 27편을 합해 모두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을 정독하는 것은 믿는 이들은 물론이고 안 믿는 이들에겐 엄청난 도전일 것이다. 하지만 아킨과 시쿠가 재창조해낸 <예스만화성경>은 그 두 그룹을 모두 어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이들에게는 좀 더 흥미진진한 새로운 사실들을, 어느 정도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과 비교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스토리를 맡은 아킨이 선정한 것으로 보이는 모두 11개의 에피소드들은 그야말로 성경의 핵심정수들만을 골라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책의 시작은 이미 애니메이션 영화 <이집트의 왕자>를 통해 많이 알고 있는 모세가 이집트 파라오 군대의 추격을 피해 홍해 바다를 가르는 이적을 앞두고, 창세기 이야기를 히브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생과 사가 경각에 달린 마당에, 자신들의 뿌리에 되짚어 가는 과정 가운데 있는 그들의 모습은 1948년 독립 이래, 주변의 호전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여 가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쿠 스타일의 그림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시쿠 스타일의 그림들에 빠져 있었다는 고백을 해야 할 것 같다. 형이상학적인 부분도 다뤄야 했기 때문에, 정밀한 묘사와 캐리커처와 같이 특징을 잡아내야 하는 두 마리의 토끼사냥을 시쿠는 멋들어지게 해내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제한된 지면에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압축해서 실으려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특히 신약부분!) 내용면에서 질적으로 떨어지는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만화성경 프로젝트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많이 아쉬웠다.

역시 <예스만화성경>의 핵심은 바로 텍스트였다. 지난 수천 년간 수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읽어 왔고, 지금도 읽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혀질. 과연 앞으로 어떤 형태의 성경들이 출현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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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매니지먼트 - 빠르고 창의적인 문제해결
김성희.김승래.김영한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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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창조경영”이라는 말이 기업계에서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요는 간단하다, 그동안의 총수 혹은 오너 일인독주 시스템 하의 제왕적 결정 시스템이 웹 2.0 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창업을 이루면서, 신속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결정 시스템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위키 매니지먼트>에서는 과감하게, 이런 상명하복식의 탑 다운(Top down)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경영 이념에 바탕을 둔 결정구조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인가. 바로 바틈 업(Bottom up)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언급한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경영”을 위한 밑바탕이 된다는 논리다. 조직 내의 모든 인원들이 자유로운 참여와 정보의 공유를 통해 비로소 창의적인 창조를 이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좋은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높은 산이 하나 있다. 바로 맨주먹으로 신화를 창조해낸 경영 1세대들의 자각이다. 기존에 그런 방식이 통했다고 해서,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레드 퀸(Red Queen) 이론에 의하면, 내가 빠르다고 해서 나의 경쟁자들이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전하는 만큼 따라 오기 때문에 내가 두 배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상 결국 내 존재는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기업 경영을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문제 해결과 의사 결정에 대해 <위키 매니지먼트>에서는 다음과 같은 5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로 문제의 객관화(Problem Analysis), 두 번째로 대안 탐색(Alternative Analysis), 세 번째로 이상적인 해결안(Solution Analysis), 네 번째로 최고 아이디어(Decision Analysis), 그리고 마지막인 다섯 번째로 구체적인 실행 계획(Action Plan)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위해 구소련의 겐리치 알츠슐러(Genrich Altshuller)가 무려 20만 건이나 되는 특허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1946~1971) 창조해낸 TRIZ(러시아말로는 Teoriya Resheniya Izobreatatelskikh Zadatch의 약자로, 영어로는 Theory of Solving Inventive Problems이다)를 통해 40개의 유해요소들을 관리 및 통제할 수 있는 원칙들을 발표했다. 이 원칙들에 의거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모순 해결 매트릭스에 대입을 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40개의 원칙에 대해서는 부록 2에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더 이상 말로만 하는 “창조경영”이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사업 환경이 변화 되어 가는 추세에 발맞춰 스폰서(Sponsor, 결정권자) 이하 모든 직원들이 “위키(Wiki; 빠르다, 참여하다, 창의적이다)”한 사고를 가지고 참여-공유-개방이라는 대명제 아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위키 매니지먼트>야 말로 꼭 필요한 참고서라고 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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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매혹시킨 치명적인 스캔들
이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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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불명의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은 정사(情死)로 끝난다. 어쩌면 해피엔딩보다 비극이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지은이 이철이 쓴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의 대부분은 바로 그런 비극으로 끝난다. 그래서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의 시대 및 공간적 배경은 일제의 식민 치하의 한국, 더 협의적인 개념으로 다룬다면 경성, 다시 말해 지금의 서울이다. 개화시기 서구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자유연애라는 개념이 없던 조선에 새로운 연애풍속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연애라는 말조차 선교사들이 영어인 “LOVE"를 한자화시킨 거라고 했던가.

연애란 모름지기 짝이 맞아야 하는 법. 조선시대 성리학적 개념에서 여자보다 항상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남자들의 권위에 대항해서 새로운 교육과 사상으로 무장한 신여성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남녀 간의 평등권에 입각한 다양한 연애사가 등장하게 된다. 그 중에서 작가는 당시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11가지의 이야기들을 4부로 나눠서 소개한다.

“남녀상열지사”라 해서 개인의 연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배척되고 있던 시기에 신여성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자유연애는 물론이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이혼은 남성지배사회에서 죄악시되고 있었다. 게다가 빈부의 격차, 신분지위의 고하, 조국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운동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들이 겹치면서 이들의 연애사는 개인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던 제 문제들의 분출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은 초기 유행처럼 번지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인들의 정사(情死)로 시작을 해서, 낭만적인 연애사건, 색다른 연애사건에 이어 혁명적 연애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당시의 여성들은 조혼이라는 시대적 풍습 때문에,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가문의 결정에 의해 일찌감치 출가를 하게 되고, 평생을 지아비의 경제력에 의존해서 살게 되면서, 자아의 정체성 확립이나 경제적 독립 같은 명제들은 그들에게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을 것이다.

러기 위해 9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허정숙은 언론매체를 통해 남자들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외쳤지만, 정작 자신은 경제적으로 윤택했던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나 보다. 신식교육을 받고, 여성해방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당시 여성들의 삶은 경제사회적 조건 때문에 전통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꼽히는 김명순의 경우에는 악의에 찬 김동인의 모델 소설이었던 <김연실전>과 지은이 이철이 사이비 사회주의자(177페이지)라는 극언까지 동원을 했던 김기진의 근거 없는 신랄한 비판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이들까지도 여성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 가운데 여성들의 자유연애에는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 중의 하나는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죽어라고 외우던 <폐허>, <백조> 그리고 <문장> 같은 유수한 잡지에 직접 참가한 이들의 이름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이었고, 그 책들에 어떠어떠한 글들이 실렸었는지(이 책에 의하면 주로 가십들?) 알게 되면서 아! 그랬었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뭍 이야기 중에서 타인의 연애 이야기가 가장 재밌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그렇게 드라마 팬들이 많은 게 아닐까? 근 100여 년 전 소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시기를 휩쓸었던 연애사건들을 되짚어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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