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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년의 선택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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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가 최근 느끼고, 아파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교육에 대한 필자 나름의 문제인식의 제기와 이에 기초한 향후 우리들이 선택해야 하는 당위적 사안들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필자의 서문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이제 30일 남짓 남은 대통령선거 즉, 나라의 최고통치권자인 리더의 선택이 한나라의 향방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비교적 작의적이고 저열한 잡문이기도 하다.

다만, 매력 있는 나라에 대한 정의와 그 서술같이 역동적인 사회건설을 위한 제안이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글로벌한 인식은 민족주의적 편협사고에 기초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여 줄 수도 있다.

또한 규제정책이 관료들의 사적이익의 기득권적 수단으로 날로 양산되며, 사회 및 경제성장의 지대한 장애요인임을 지적하고 규제의 폐지와 완화가 가지는 효과에 대한 설명은 새 정보가 변화와 혁신측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으로서 적절한 항목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수도권성장의 억제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정과 그의 폐해적 의미에 대한 술회는 이미 오랜기간 여러 해당 전문가들이 언급한바와 같이 전향적인 새로운 정책의 수립이 요구될 듯하다.

이렇듯 원칙과 포지티브한 정책방향에 대한 접근을 하던 필자가 당혹스럽게도 천박한 정치가들의 논리를 책의 사방에 펼친 것은 참으로 납득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필자는 ‘개인’이란 단어에 지대한 동력을 부여하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의 기초는 개인일 뿐 아니라 권력의 원천임을 거듭 명시하고 있다. 반면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집단주의적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편협된 사고라고 이의 정략적인 왜곡의 이용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많은 공감을 획득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최선의 낙원과 행복을 자져다주는 제도처럼 주장하는 것은 불편하기 그지없게 한다. 자유주의 경제는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선진국들을 비롯한 세계사회 모두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숭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는 인류사회 유일의 구원경제체제이지도 않다. 필자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중시하는 분배정책의 오류로서 복지정책을 대표적 예로서 거론하고 있으며, 이 정책은 “안일한 무위도식의 인간을 양산하며 국가재정을 축낼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사회경제비용을 증가”시키는 무익한 시스템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복지정책은 빈곤층에 대한 일방적 재원의 수혜가 아니라 그 방식을 근로력 제고를 통한 경제에 기여하는 시스템으로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다. 필자의 이렇듯 무리한 일면적 가치비판으로 많은 독자들의 이해를 왜곡시킬 수 있음에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필자는 세계사회 속에서 한국사회가 국민 일원에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신뢰받는 국민이기도 하며, 성장중심의 경제발전을 위한 가치창조를 위한 노력과 작은 정부의 의미와 그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나름 자유주의적 의지에 따라 상식적 이야기들을 배열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성장론의 장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은 경제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비실증적이고 감성적인 인식으로 일 측면이 전체인 냥 이야기하는 것은 온전한 학자의 도리가 아닌 듯 하다.

또한, 고용보험에 대한 필자의 언급에서 보면 실업자(고용보험을 자신들의 급여로 납부했던 사람들)들을 “고용보험이란 방패막이에 기대어 의지를 상실한 채 안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무지를 자랑하기도 한다. (필자의 천박한 자본적 기득권 계층의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교육부문중 영어의 국가 공용어 이야기는 일면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가치 있는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어교육이 우리의 교육경쟁력 제고의 일순위 대안일 수 없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지 못해서 비즈니스가 실패하고 외교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경제자문위원 및 산업자원부 국장을 역임한 국제전략전문가인 A교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투박한 영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많은 외교관, 비즈니스맨들이 다양한 학문에 대한 이해의 부족, 역사인식의 미흡, 해당전문지식에 대한 이해부족등 무식해서 무시당하는 것이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지 못해서가 아님을 꼬집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끝으로 독자들을 비롯한 “국민대다수가 취약한 지적기반을 가지고 있어 (좌파정권)선동가들에게 틈을 내어주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사회에 계몽된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멸시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새롭지도 새로운 시선의 확대를 지원하고 있지도 못하다. 필자의 주장처럼 무지(?)한 국민들을 계몽하기위해 쓰여 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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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청년 2007-11-2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21세기북스의 책을 사랑(?)해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이번달에 21세기북스에서 신간이 많이 나오는데, 오셔서 관심있게 봐주셨으면 하네요...^^
매일매일 한분께 책을 선물해드리고 있으며, 수시로 서평단을 모집하기도 합니다.
카페로 놀러오셔서, 좋은 책과 사람들을 만나시길 바래요^^
카페 주소 : cafe.naver.com/21cbook
 
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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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 갖는 의혹의 중층구조라든가 대중적 흥미를 자아내는 요소들을 고루 배치하여 사건속에 독자를 매몰시키는 작품이다. 화자인 의금부 도사 이명방을 중심으로 ‘열하일기’를 작품의 핵심 제재로 하여 등장인물과 당시대의 배경, 사건의 재미, 그리고 넌지시 권하는 고전의 소개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융합하고 연결되어 오늘의 우리에게 거시적인 문명사적 인식을 선사한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열하(熱河)로 상징되고 대표되는 당시 실학파 인물들의 작품집들이 열거된다. 조선후기 인문학 사전을 방불케 하는 작가의 권유가 낯설지만은 않다. 이 작품을 꼼꼼하게 집어준 조선조 한문학을 친근하게 소개하고 있는 안대회 선생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작가의 말’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생경한 한자어(용정호목, 몽롱춘추등)와 고어, 그리고 원전(原典)의 소개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고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개혁과 노론 기득권계층간의 어두운 투쟁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군왕은 군왕만의 편”일 뿐이다는 인식과 같이 어느 계층이나 세력에 치우친 것은 아니라는 이해를 펼친다. 군왕 정조의 종친인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열하일기가 상징하는 북학에 대한 실사구시와 새로운 문풍인 패관소설(稗官小說)과 소품(小品)을 추구하는 현실의 문체(文體)를 주창하는 신진세력의 중심인물로서 이덕무, 박제가, 박지원, 유득공등과 친교하는 세력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또한, 사적으로도 많은 비판적 주제가 되고 있는 정조(正祖)의 군사론(君師論)의 요체로서 친왕세력의 육성과 개혁이론의 전파를 위해 설치한 규장각을 무대로 하였다는 측면에서 자못 흥미롭고 지적 열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당시 청이라는 선진적 문명의 창구역할을 하던 연경의 방문을 통해 접한 그 새로움의 세계는 민중에게 가히 환호를 불러일으킬 만 한 대세적 충격이었을 것이며, 이에 실리적이고 대중적인 삶에 더욱 가까이 하는 소설적 문체와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을 사용한 작품의 등장은 기존의 사대부들에게는 기득권 유지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작품은 이렇듯 밀려오는 개혁의 밀물에서 일어나는 왕과 기득권 세력과 신진개혁 세력과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추리물로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독자들은 범인을 쫓느라 어느새 상권을 읽어치우고 하권의 중반을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것이다. 기막힌 반전, 반전이라는 언어로 가당키나 할까? 그 재미에 푹 빠져 컥! 하고 손뼉을 칠만큼 카타르시스를 전해줄 것이다. 완벽하다할 소설적 구성과 작품의 사적가치, 그리고 친절한 작품소개에 이르기까지 그냥 지나쳐 버릴 곳이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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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 코난 1
로버트 E. 하워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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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는 아주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생경한 분야의 작품이다. 작가에 대해서도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바 없이 어쩌면 이렇게 조악한 책이 있을까 하며 집어 들었다.

아마 하워드의 코난 시리즈에 대해 특별히 붙여진 장르가 검마(劒魔)소설이라는 판타지소설의 한 가지가 되었나 보다. 시종 칼과 낭자한 피, 마법과 괴이한 현상이 등장하는 그래서 그것자체로도 충분히 하나의 흡입력 있는 소재장치가 되어 일군의 독자층을 형성한 그런 부문 말이다.

가히 남성적 영웅주의에 휩싸여 있던 당시 미국(1920~30)의 대중들에게는 환호를 불러일으켰을 만 하다. 바로 이렇듯이 편협 되고 시류에 부침하는 이야기 거리로서 지난 시절에 이러한 소설도 있었다는 의미에서의 접근은 보아 넘길 수 있겠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장대한 사나이가 종횡무진 괴물과 사악한 세력들을 잔인하게 처단하는 장면은 인간의 심원에 자리 잡은 숨겨진 욕망을 깨워 흥분과 들뜬 감정을 오가는 쾌락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르겠다.

상상속의 고대사회와 낯설기만 한 이방의 나라에서 행해지는 바바리안 코난의 도전과 모험, 작품속에 그려지는 두려움과 공포의 어두움, 이질적 생물들의 지나치리만큼 디테일한 묘사, 붉게 물든 피의 흐름과 인간육체의 다양한 잘림(분리)과 훼손등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용 이야기로 흥미를 자아 낼 수는 있겠다 싶다.

스릴과 긴장감, 공포, 관능이 함께하는 이야기이다. 과연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일반 문학 작품의 범위로 볼 수 있는지 수용하기가 거북하다. 영상으로 옮겨 킬링 타임용 무비를 제작하는데 나름 대중적 소재로서의 흥행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작가가 모 잡지에 발표하였던 단편들을 구성하여 이렇게 두 권의 작품집으로 구성하였단다. 이러한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부 작품(집안의 악당들)에서는 나름 인간 삶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교차가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여전히 당혹스럽다. 평이하고 말초적인 이야기로서 독서에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수월하게 읽힐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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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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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랜 주저거림 후에 얻은 연인과의 삶, 그리고 뒤안길에 세워진 아내, 긴 인생길을 걸어 궁극에는 오롯이 회한만 남겨지는 것일까? 걸어오면서 가졌던 많은 감정과 경험은 어떠한 의미도 없는 것일까? 작가의 수필같은 잔잔한 문체와 사실적 묘사는 이내 독자의 감성을 몰입시킨다.

중국의 문화대혁명기, 우리시대로 1960년에서 1970년대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부모님의 소망에 끝내 저항치 못하고 이루어진 전족을 한 전통적 시골 아낙을 아내로 맞이한 쿵린, 그는 군의관이다. 아내 수위와는 같이 살지 않는다. 그리곤 간호장교인 우만나와의 애틋한 인연이 시작되고 그녀와의 만남은 아내와의 이혼을 종용케 한다. 군법률에 따라 아내와 18년이상의 별거가 인정되면 이혼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매년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고향법정에 아내와 서지만 아내는 법정에서 이혼에 동의 하지 않는다.

18년만에 얻은 이혼의 승인과 연인 만나와의 결혼이 이루어진다. 법제도와 도덕율등 사회규범에 순응하는 주인공 쿵린의 우유부단과 소극적인 심성은 연인 만나에게 커다란 형벌 이상이었으리라. 오랜 기다림끝에 만나는 사랑하는 남자 쿵린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당시 중국의 이성 결합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그 시대 인간들의 관습이 안타깝고 낯설지만, 그러한 삶속에서 피어나는 연인들의 건조한 듯한 감성의 흐름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내 수위와 이혼하고 새로운 결혼이 시작되었을 때 만나는 이미 40대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수위와 쿵린 사이에 유일한 자식인 딸 쿵화도 18살 아가씨로 성장했다. 결혼할때까지 쿵린과 만나는 성적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만나는 그런 중년의 남자를 기다렸다. 만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쿵린에게 조강지처를 버렸다고 도덕적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내 수위는? 새로운 결합으로 쿵린과 만나는 들뜬 결합의 시간을 갖는다. 만나의 집착적인 섹스는 그녀의 설움으로만 느껴진다. 애처로움과 그녀의 많은 날의 고통의 보상심리이리라.

그러나 쌍둥이가 태어나고 인생에서 가장으로서의 일상생활을 중년의 쿵린은 비로소 겪게되고 그 기다림 끝에 얻어진 그의 선택인 여자, 만나는 심장질환으로 오랜 삶을 계속 할 수 없게 된다. 일상에 지친 쿵린의 자기연민에 휩싸인 내면의 대화는 이기적이게만 비친다. 명절을 앞둔 어느날 옛아내 수위와 딸 화가 있는 기숙사로 찾아든다. 모처럼의 가정으로서의 평온을 느끼는 쿵린, 얼마남지 않은 마지막 생에 스스로 힘이라도 넣는 듯 큰소리로 명랑하게 외치는 만나의 목소리, 지치고 늙은 남편이 돌아오리라 기쁨에 겨워하는 수위의 생기가 마지막으로 교차한다. 이제 쿵린은 일상의 번민에서 삶의 기다림을 이해하는 걸까?

기다림은 누구의 기다림이었을까? 연인을 위한 만나의 기다림, 언제가 돌아오리라 믿는 수위의 기다림, 이혼이 목적이 되어 버렸던 쿵린의 이혼에 대한 기다림? 사랑을 얻기 위해 매마를 대로 말라버린 만나의 기다림과 그녀의 죽음으로의 이행은 한 여성의 삶에 깊은 연민을 가져다 준다. 지극히 중국적인 사건과 사상, 삶의 의식과 이해의 방법이 세련된 필치로 잔잔하게 펼쳐진다. 오랜만에 진지한 순수 문학작품과 같이했다는 느낌이 상쾌한 충만감을 그득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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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성당 1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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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과 자유에 대한 감동의 대서사시이다. 지중해의 에머랄드빛을 온통 감싸안고 까따루냐의 한 언덕에 자리한 산따마리아성당, 넉넉한 가슴을 모든 인간에게 내어주는 민중의 안식처가 그들로부터 지어지고 있다.

작품은 14세기 중세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회와 왕의 권력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던 그래서 민중들의 삶은 한낱 그들의 소도구에 불과한 그러한 세상이다. 작가는 대지의 종이자 귀족의 종인 그리고 운명의 종일 수 밖에 없었던 민중들의 진정한 자유를 향한 인간의 진실성을 쫒는다.

교회의 권위를 앞세운 성직자들 이면의 악취나는 탐욕과 왕과 귀족들의 끊임없는 권력욕구에 한 없이 왜소해지기만 하는 민중들의 고난의 역사이다. 주인공 ‘아르나우 에스따뇰’은 영주의 초야권 행사라는 어처구니 없는 능욕 속에 출생한 소작농의 아들이다. 아버지 ‘베르나뜨’의 대지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희생적 도피를 통해 번영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에 찾아든다. “아들아, 이 아비는 너의 자유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이다!”

작품은 중세 교회의 모순적인 권위, 지속적 권력유지에 몸부림치는 왕과 귀족들의 연합과 배반, 유태인에 대한 배타와 압제, 민중들의 순수한 자유에 대한 갈구를 정교한 플롯으로 이야기 속으로 유연하게 독자를 흡입한다.
도공으로 부를 축적한 사촌집안의 귀족가문과의 혼인, 그리고 그들의 잔인하고 냉혹한 죽음의로의 내침에 아버지 베르나뜨는 아들 아르나우에 ‘삶의 자유’를 각인시키기 위해 의연히 죽음으로 내닫는다. 귀족들의 이기적 허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소설의 팩션적 요소는 14세기 전 유럽에 창궐하여 무수한 민중들을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던 페스트와 교회의 권위와 권력의 확보를 위해 자행되었던 종교재판이 작품의 배경속에 녹아있다. 페스트는 주인공의 삶에 새로운 반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사건으로 유태인 환전상과의 인연, 카톨릭과 유대교 그리고 이방인인 노예 무어인(지금의 아랍권)의 등장으로 유럽인들의 절대적 유일종교에 대한 모순성과 허위성을 은밀하게 내비추기도 한다.

또한 의형제 조안의 사제로의 성장, 그리고 ‘아르나우’의 조국에 대한 헌신적 행동(적의 침입에 대한 해안봉쇄라는 기지의 발휘)으로 맺어지게 되는 왕족과의 불가항력적 혼인, 귀족 칭호(남작)의 사사로 사악한 귀족들에 대한 대항의 기틀이 마련된다. 그러나 진실이라는, 즉 인간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주인공의 행동은 농도들의 영주에 대한 부당한 억압의 해방, 핍박받는 가난한 민중들의 지원으로 이어지나 사제인 동생과 왕을 후견인으로 하고 있는 아내와의 밀약은 그를 다시 나락으로 내몬다. 여기서 작가는 동생 조안을 사제로서 교회의 추악하고 불안한 권위로 그의 형식상 아내인 귀족의 욕망과의 결탁을 보여준다. 즉, 종교의 이면에 숨어 파렴치하고 탐욕적이기만 했던 성직자(사제)들의 모순된 가치와 귀족들의 속물성과 상실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역사속의 진실성을 대중적 이해에 쉽게 접근케 하여준다.
한편,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정념에 시선을 고정하여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도 한다. 어린시절 이성에 대한 사춘기적 호기심과 그 속에 피어나는 순박한 떨림과 육욕, 그리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던 아내와 그녀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 재회한 어린 시절 여인과의 육체에 대한 탐닉과 고뇌, 수양딸에 대한 이타적 사랑과 그의 결실까지 삶의 의욕과 상실과 그의 이해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매혹적으로 피어난다.

종교에 대한 보편적이고 폭넓은 관용과 이해, 민중 나아가 인간 삶의 진정성에 대한 그 균형적 시각, 사랑과 배반의 일상적 삶의 의미, 그리고 중세의 다양한 역사적 궤적이 그 넓은 산따마리아 델마르 성당에 은은히 울리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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