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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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은영 님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었단다. 최은영 님의 책은 그 전에 <쇼코의 미소> <밝은 밤>을 읽었는데, 둘 다 좋았지만 아빠는 특히 장편인 <밝은 밤>이 아주 좋았단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아빠는 단편보다는 장편 체질은 것 같아. 이번에 읽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지은이가 최은영 님이라고 고른 책인데, 책 앞 표지에 최은영 소설집이 아니고 최은영 소설이라고 써 있어서 아빠는 장편 소설인줄 알았단다. 하지만 이 책은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더구나. 이 경우 보통 소설집이라는 적는데, 그냥 소설로만 적혀 있네. 비록 장편은 아니었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단다.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2020년 젊은작가상을 받은 작품이었다고 해서, 아빠 독서이력을 찾아보니 2020년에 읽었던 작품이더구나. 당시 써 놓은 독서편지를 보니 내용도 생생히 기억나더구나. 그런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던 거구나. 저질 기억력이구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다시 읽어봤는데, 2009년 용산 사건과 그 시대를 살았던 두 젊은이의 우정을 잘 접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 같구나. 이 소설의 이야기는 2020년에 이야기했으니 패스할게.


1.

<>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도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짧은 소설이라서 그런지 이번 소설집에도 포함을 시켰구나. 해진과 정윤은 같은 학교 대학신문사 선후배 사이였단다. 정윤이 선배이고, 해진이 후배였어. 해진이 졸업한 지도 오래되었는데 오랜만에 모교에 갔다가 오랜만에 정윤을 우연히 만났어. 정윤과 대학신문사 편집부 선배 용욱의 결혼식 때 보고 처음이었어. 그러면서 해진은 옛 생각이 떠올랐단다. 대학교 일학년이었던 해진은 무턱대고 대학신문사에 지원해서 최종 합격 두 명에 포함되었어. 나머지 한 명은 글쓰기를 무척 잘하는 희영이었어.

희영이는 여성 문제를 주로 기사로 썼단다. 그것 때문에 남자 선배들이 싫어하기도 했어. 해진과 희영은 함께 주제 조사도 했는데, 희영이 고른 여성 문제로 가정 폭력에 대해 조사를 했단다.  그러면서 직접 여성 인권 집회에도 참가했어. 희영이 계속된 여성 문제를 기사를 쓰다 보니, 정윤 선배도 희영 의견에 반대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단다. 3학년이 되어서 희영은 대학신문사를 그만 두었고, 졸업 후 여성인권 사회운동가가 되어 활동을 했단다.

희영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단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 일학년이면 이제 고등학교 갓 졸업했을 때인데 그때부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바를 알았던 것 같아. 반면, 해진은 대학 신입생 때 글쓰기도 서툴러서 대학신문사 편집부 일을 힘들어 있는데, 해가 거듭되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졸업하고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정식 기자까지 되었단다. 안타깝게도 사회운동가를 하던 희영은 병에 걸려 39살 짧은 삶을 마감한단다.

이 소설의 제목을 왜 <>으로 했을까? 사람마다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것을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 소설은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어서 그런지 읽을 때 아빠의 그 시절 친구들이 생각나더구나.


2.

<일년>

세 번째 작품은 <일년>이라는 작품이란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지수는 8년만에 다희를 우연히 만났단다. 8년 전, 27살인 지수는 한 회사의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다희는 인턴으로 그 회사에 들어왔단다. 사는 곳에 같은 근방이고 해서 같이 카풀을 하게 되었는데 지방출장도 같이 가곤 했어. 둘이 친해지긴 했는데, 성격은 전혀 다른 성격이었어. 지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희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활발해 보였어.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있다 보니 지수도 어느 날은 자신의 속마음도 이야기를 했어. 그렇게 성격이 물과 기름처럼 다르지만 서로 섞여서 또 다른 좋은 물질을 만들 수 있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희는 인턴 이후 정규직에서 떨어졌단다.

보통 그렇게 친하게 되었다면 회사에 떨어져도 가끔 연락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아빠도 퇴사한 사람들과 거의 연락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연락이 끊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8년 만에 병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안부를 전하고, 그 이후로도 병원에서 몇 번 만났지만 지수가 퇴원하면서 또 연락은 끊기게 되었단다. 지수 성격에 굳이 연락처를 물어볼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아빠와 참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를 소설 속에 만난 것 같더구나…^^


3.

<답신>

이 소설도 참 좋고도 안타깝더구나. ‘가 언니의 딸 조카에서 보내는 편지 형식이란다. 그런데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더구나. ‘ 4살 때,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때문에 엄마는 도망을 하고, 3살 많은 언니와 는 고모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되었단다. 언니는 고등학생 때 못된 학교 교련 선생님을 만나 추행을 당하면서도 계속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졸업 후까지 그 선생님을 만나 21살에 그만 임신을 하게 되었어. 교련 선생님은 마지못해 결혼한다는 식으로 티를 내면서 언니와 결혼했어.

형부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단다. 언니를 종처럼 부려먹었어. ‘가 언니 집에 몇 번 놀러 가서도 그런 모습을 보게 되어 는 언니에게 뭐라 했더니 언니는 형부를 감싸는데 급급했어. 형부 때문에 언니 집에 가지 않았는데, 사랑스러운 조카가 태어나고는 안 갈 수가 없었단다. 너무 사랑스러운 조카를 보기 위해서

는 호텔 식당에 취직을 했는데, 그 호텔에서 우연히 형부를 보았어. 어떤 여고생과 함께 있는 형부를 말이야. 화가 난 는 형부에게 가서 따지듯 이야기하고 여고생과 따로 둘이 만나 공감해주면서도 충고도 해주었단다. 얼마 후 형부의 학교에서는 형부와 그 학생에 대한 조사를 했대. 형부는 당연히 가 신고했다고 생각을 했어. 화가 난 형부는 를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어. 언니에게 이야기했지만 언니도 를 믿지 않았어. 언니는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는 것 같았어. 어느날 언니가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형부는 언니가 대준 대학교 학비를 왜 주었냐고 언니를 폭행했단다.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는 형부를 폭행했는데 형부가 크게 다치게 되었어. 재판에서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언니가 형부 편을 드는 바람에, ‘는 실형을 받고 감옥까지 가게 되었어. 몇 년 뒤 출소를 했지만 언니의 연락은 없었어. 8년 뒤에 고모할머니의 장례식 때 언니를 잠깐 보고 또 연락이 끊겼어. 이젠 언니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조카가 얼마나 컸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도 몰랐단다. 어느덧 23살이 된 조카. 조카의 23살 생일 날, ‘가 조카에서 편지를 썼단다. 그 편지 전문이 이 소설이란다. 보낼 수 없는 편지, 받을 수 없는 편지.. 어린 시절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조카를 생각하면서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는데, 언젠가는 다시 꼭 만났으면 좋겠구나.


4.

<파종>

민주가 8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15살 많은 오빠 민혁이 민주를 키웠단다. 오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란 민주는 결혼까지 했지만 딸 소리가 5다섯살 때 이혼을 하고 말았어. 실패한 결혼이라고 할 수 있지. 이혼을 한 민주는 딸 소리를 데리고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오빠의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단다. 소리는 삼촌을 잘 따르고 텃밭도 함께 가꾸며 나름 행복하게 지냈단다. 그런데 민혁은 소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어. 민혁이 죽고 시점이 소리가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시점이라서 더 충격이 컸을 것 같구나.

중학생 이후 소리와 민주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어. 고등학생이 된 소리를 자주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단다. 민주와 딸 소리의 갈등의 원인은 민혁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었던 거야. 둘은 처음으로 둘이 텃밭에 가서 밭을 일구고 파종을 하면서 다시 예전처럼 친해졌단다. 민혁이 죽은 이후 한 번도 가지 않았었거든. 파종이 또 하나의 생명을 싹 틔우는 시작이듯이 민주와 소리의 관계가 새롭게 싹을 틔어 값진 열매를 맺기를하늘에 있는 민혁 삼촌이 크게 미소 지을 수 있게


5.

<이모에게>

희진은 엄마가 23살 때 태어났단다. 희진의 엄마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었어. 22살 차이였어. 희진이 태어났을 때 이모는 혼자 살고 계셨는데, 희진의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라서 이모는 희진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희진을 보살펴주었단다. 그러니까 희진은 엄마 아빠보다 이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 밖에 이모와 함께 나가면 할머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그런데 엄마가 희진을 낳은 후 유산을 여섯 번이나 했단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임신을 하면 위험하니 임신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희진의 아빠는 계속 둘째를 원했어.

희진의 아빠는 권위주의로 만들어진 사람 같았어. 서울대까지 나와서 지 잘난 줄만 알았지, 집안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사업을 하다고 계속 망해서 집안 사정도 안 좋아졌어. 그러자 처형, 그러니까 희진의 이모와도 갈등이 쌓였어. 결국 희진이 고등학생 때 이모는 집을 나가 독립하셨단다. 희진이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아빠와 이모의 골은 너무 깊었어. 이때 이모는 마음을 굳혔는지 희진이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냉정하게 집을 나갔단다.

희진의 아빠도 사업이 망해서 열세 평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단다. 희진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소위로 임관하고 나서 25살에 7년만에 이모를 만났단다. 이모가 냉정하게 집을 떠나서 한동안 희진도 이모에게 삐쳐 있었거든. 다시 이모를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는 일년에 한두 번씩 이모를 만났어. 그리고 79살이 된 이모는 뇌졸중에 걸리셨고, 엄마가 이모 집에 들어가서 보살펴주셨지만 결국 이모는 그렇게 돌아가셨단다. 희진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채워주셨던 이모. 이모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이 소설 또한 가슴 먹먹해짐이 느껴졌단다.


6.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마지막 소설은 기남이 딸 우경의 가족을 만나러 홍콩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단다. 기남의 가족 구성원을 먼저 이야기를 해주어야겠구나. 우경은 기남의 둘째 딸이고, 첫째 딸은 진경이었단다. 진경은 박사까지 땄지만 알코올 중독이 있었어. 동생 우경과 그리 친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알고 보니 진경은 기남의 친딸이 아니었단다. 기남은 진경의 계모였단다. 기남은 어렸을 때 버림을 받고 이집 저집에서 식모로 일하면서 자랐는데, 남편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애가 있는 유부남이었어. 기남이 남편과 살기 시작했을 때 진경은 다섯 살이었단다. 그리고 우경이 태어났는데 진경보다 여덟 살이 어리단다.

진경은 커서 미국 교포인 제임스와 결혼하여 미국에 살다가 이번에 회사 때문에 홍콩으로 이사를 와서 기남이 우경 식구를 만나러 가게 된 거야. 그런데 기남은 진경보다 오히려 친딸인 우경의 눈치를 더 보는 것 같았어. 홍콩에서 지내는 것도 불편했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우경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싫었어. 그런 모습이 손자 마이클에게도 보였는지, 마이클이 기남에게 와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를 했단다. 소설 속에서는 기남의 노년 생활만 짧게 그려졌지만, 기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훤히 보이는 듯 하구나. 진경이 비록 친딸이 아니지만, 사랑을 다 주면서 키웠을 것 같구나. 진경이 기남에게 자신의 엄마여서 좋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알기에 코끝을 찡하게 하더구나.

….

이렇게 이 책에 나온 소설들을 급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모든 소설들이 따뜻함으로 덮여 있고 그 안에 사랑과 정()이 있는 것 같았단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 스마트폰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보드라운 이불 같은 소설들아주 좋았단다. 최은영 님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해봐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녀의 수업은 금요일 오후 세시 삼십분에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그 작고 연약한 순간이 아직은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을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이나 번역서를 찾을 수 없었다. 구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 P43

다희의 눈썹. 다희가 얘기할 때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눈썹을 보면서, 사람에게 눈썹이라는 게 있었구나. 눈썹이라는 게 꼭 마음과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그리고 사실 그녀는 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게 껍질을 까서 하나하나 손바닥에 올려주던 마음이 고마워서 그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고, 결국엔 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도.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다희가 그녀로 하여금 말하게 했고,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싶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녀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P120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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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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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를 멈출 때>라는 책을 읽었어. 그 책은 수학자와 과학자에 에피소드를 소설로 쓴 책인데, 양자역학 등 흥미로운 소재로 쓴 소설이지만, 읽는 것은 쉽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구나. 하지만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은 아빠에게는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어. 그 책을 쓴 벵하민 라바투트의 신작 <매니악>이라는 소설이 새로 나와서 읽어봤단다. 소설 제목 매니악(Maniac)은 광적으로 열중한다는 영어 단어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폰 노이만이 개발한 컴퓨터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건 조금 이따 이야기해줄게. 그 외 말고 너희가 이 책의 제목을 보더니 노래 “Maniac”을 흥얼거리더구나.

소설 <매니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부마다 한 사람과 과학, 특히 컴퓨터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단다. 1부에서는 불확정성과 양자역학을 연구했던 에렌페스트라는 사람이고, 2부는 오늘날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든 폰 노이만이고, 3부는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했던, 너희들도 알고 있는 우리나라 바둑기수 이세돌이란다. 이세돌이 이런 외국 소설의 등장인물로 나오니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구나.

, 그럼 그들의 이야기를 해볼게.

 

1.

먼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파울 에렌페스트는 1927년 그 유명한 솔베이 5차 회의에 참석을 했었고, 세계 최고의 정모 사진이라고 하는 그 사진 속에도 있던 사람이고, 아인슈타인의 친구이기도 해. 그는 양자역학의 한 축인 통계역학을 연구하였단다. 그런데 이 책에서 파울 에렌페스트를 다룬 것은 불행한 그의 가정사였단다. 그는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데, 결국 다운증후군 장애를 겪고 있는 막내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단다. 파울 에렌페스트의 스승이 루트비히 볼츠만인데, 볼츠만도 자살로 삶을 마감한 이력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2부에서는 천재 과학자 폰 노이만에 관한 이야기란다. 가장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 소설의 제목 <매니악>도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 이름에서 따왔으니 실질적인 주인공이 아닌가 싶구나. 폰 노이만은 헝가리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노이만 야노시 러요시라고 한단다. 2부의 진행 방식은 좀 폰 노이만의 주변 인물이 폰 노이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단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구성하는 경우가 있는데, 2부의 구성이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단다. 폰 노이만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유명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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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6)

우리와 다른 외계인, 진정한 천재가 존재한다니. 전교생이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두 살에 글을 깨쳤다고 했다.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여섯 살에 암산으로 여덟 자리 숫자 두 개를 나눗셈할 줄 알았으며, 한번은 여름방학 때 펜싱 교사 머리에 불을 붙인 벌로 아버지 서재에 감금되었다가 심심풀이로 미적분을 혼자 깨쳤고 급기야는 마흔다섯 권이나 되는 빌헬름 옹켄의 일반 역사서를 달달 외웠다. 모든 소문을 진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마침내 그 아이가 운동장에서 내 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적잖이 실망했다. 아직 통통하게 살이 찌기 전이었음에도 움직일 때 어쩐지 투실투실하고 굼뜬 느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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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재는 27살에 프린스턴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어. 자타공인이던 폰 노이만은 자신보다 더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는 순간이 있는데, 1930년 학회에서 만난 쿠르트 괴델이라는 사람이란다. 이 사람도 유태인으로 미국으로 망명 온 과학자인데, 아빠가 다른 책들에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주었던 사람이란다.

작년에는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라는 책의 독서편지에서도 이야기했던 사람이야. 폰 노이만은 학회에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단다. 이후 폰 노이만은 몇 달 동인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연구해서 따름 정리를 발표하기도 했다는구나. 그리고 폰 노이만은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가를 했어. 작년에 이야기해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책의 독서편지에서도 잠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단다.

핵폭탄의 시험 폭발이 성공을 거둔 후, 그 위력이 엄청난 것을 본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정부에 폭탄 사용을 만류하게 된단다. 하지만 폰 노이만은 적극 지지를 한단다. 폰 노이만이 물리와 수학 분야에 있어 초천재인 것은 맞지만 다른 분야에는 좀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윤리적인 면을 판단하는 것도 좀 부족했던 것 같아. 다른 과학자들이 핵폭탄을 만류하는 동안 폰 노이만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가 좋은지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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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54)

실험 직후 우리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서신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을 상대로 폭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대통령을 설득하는 탄원서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 중 백오심 명 이상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유럽의 전쟁은 끝난 후였다. 히틀러도 이미 총을 쏴 자결했으니, 우리가 실제 그랬던 것처럼 일본 민간인 이십만 명을 죽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일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기만 했다면, 일본 장군이 단 한 명이라도 폭탄 실험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랬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탄원서는 트루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탄원서가 결과를 바꿨으리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만든 폭탄은 이미 군의 손에 넘어가 있었으니 어쨌거나 그들은 그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최상의 표적을 고르기 위해 위원회도 벌써 꾸린 터였다. 그런데 폭탄을 지면이 아니라 높은 공중에서 터뜨려야 한다고 군을 설득한 다름 아닌 폰 노이만이었다. 그래야 폭풍파의 피해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그는 최적의 높이가 600미터, 대략 2천 피트쯤이라는 계산도 직접 도출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 높이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예스러운 목재 가옥 지붕 위로, 우리가 만든 폭탄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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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노이만은 끝까지 세상을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시작으로 바라보았다고 하는구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스스로 계산하는 기계장치를 개발하는데 힘쓰는데, 그것이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단다. 이후 줄리언 비글로와 함께 더 좋은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서, CPU에 의한 제어 장치, 기억 장치, 논리연산 장치로 구성된 컴퓨터를 개발한단다. 프린스턴 연구소에 있을 때 만나 결혼한 두 번째 아내 클라리 단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개발에 참여하여 순서도를 제작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들은 수학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가 가증한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MANIAC이었단다. MANIAC 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의 약자였단다. 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최초로 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하기도 했어. 그 뿐만 아니라 군에서는 매니악을 이용하여 수소 폭탄 제조에도 이용이 되었어. 컴퓨터가 군에 의해 많이 생산되었단다. 초창기 컴퓨터는 대부분 군사용으로 쓰였던 거야.

폰 노이만은 53세에 안타깝게도 췌장암 진단을 받았어. 암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연구에 매진했단다. 그러면서 기계가 생물체들처럼 스스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것이 그의 사후 계속 연구되어 오늘날 알파고와 같은 AI 컴퓨터들로 이어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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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어떻게 기계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가? 튜링이 그의 기계를 구상한 것처럼 나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공식화할 수 있을 것 같네.” 연치는 죽기 몇 달 전 내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알레프제로(Aleph-zero)라고 명명한 일종의 자동기계가 존재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데, 만일 당신이 알레프제로에게 무엇에 관한 서술을 제시하면 그 정보를 흡수해 두 개의 사본을 생성한다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계획을 이미 세웠다고 했다. 튜링이 컴퓨터의 탄생으로 이어진 사고실험을 고안했을 때, 또 괴델이 불완전성정리를 증명했을 때 사용한 것과 같은 논리 방법, 자기 참조적이며 재귀적인 추론을 사용해, 단순히 1 0의 문자열이 아닌,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을 생성하는 이론적 기계를 설계해낸 것이다. 그는 일종의 임계점, 티핑 포인트가 존재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기계의 진화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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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지막 3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이세돌과 AI 컴퓨터인 알파고가 바둑을 둔 것이 얼마 전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2016년으로 벌써 8년의 시간이 지났구나. 정말 세월이 빠르긴 하구나. 아무리 AI라고 하지만 바둑은 체스와 달리 경우의 경우가 너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단다. 하지만 첫 번째 경기를 마치고, 두 번째 경기를 마치고 어쩌면 알파고를 한 번도 이길 수 없겠다는 예측들이 나왔던 기억이 나는구나. 결국은 이세돌이 4대국에서 한 판을 이겨 전체 스코어 4 1로 알파고가 최종 승리했는데, 그 한 번의 승리가 AI 컴퓨터를 인간이 이긴 유일한 경기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알파고는 그 이후 계속 더 진화하여 인간이 접바둑을 두고도 이기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 반가웠단다. 이세돌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은 좀 독특하다고 생각할 텐데, 아빠는 그것이 천성적으로 타고나고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어렸을 병을 앓고 목소리가 그렇게 변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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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이세돌, 쎈돌, 바둑 9, 동시대 누구보다 창의적인 바둑 기사.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과 대전을 치러 패배를 안긴 유일한 인간, 그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목소리를 잃었다.

한반도 서쪽 끝자락의 작은 섬 비금도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 오 년째, 프로 바둑 기사가 된 지는 육 개월째이던 1996, 폐에 알 수 없는 병증이 생겼다. 기관지가 상해 성대가 마비되었으니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으나 희한하게도 일부 단어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일시적이었던 실어증의 근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질병(심오한 내적 혼란의 징후가 아니라 정말 질병이었다면)의 여파로 결국 기관지 신경이 영구적으로 마비됐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장난감 인형에서 나올 법한 독특하고 새되고 밭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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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은 목소리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바둑 기풍에 있어서도 독특하다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5남매가 모두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배웠는데 이세돌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구나. 최연소로 프로 9단을 땄으며, 가끔 허세부리기도 하고 돌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K pop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젊은이이고 K 드라마도 즐겨 본다고 하더구나. 바둑을 둘 때도 예상치 못한 수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 주특기였대. 하지만 이세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둑이었고, 그가 바둑을 은퇴하기 전까지는 매 순간 바둑만 생각하면서 지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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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0)

그에게 바둑이란 호흡과 같아서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바둑을 생각한다. 머릿속에 바둑판이 하나 있어서 새 전술이 떠오르면 그 바둑판에 돌을 둔다. 술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고 당구를 칠 때도 늘 그런다.” 지금껏 눈 뜨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바둑에 바치느라 놓친 것들이 아쉽지는 않은지, 사실상 정규교육이란 걸 받지 않았고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를 앞두었는데 곧 닥쳐올 일에 맞설 준비는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바둑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바둑의 무한한 복잡성은 인간 정신의 내적 작동 방식을 거울처럼 비추며, 바둑의 전술과 수수께끼와 풀 수 없어 보이는 난해함이 바둑을 우리 우주의 아름다움, 혼란, 질서를 유일하게 비견할 인간의 창조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바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돌의 위치와 관계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세에 숨겨진, 거의 감지할 수조차 없는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신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이세돌에게는 승패보다는 바둑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따라서 모든 수를 전부 이해하기 전까지는 절대 게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김지석은 말했다. “한번은 이세돌과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만 자기가 막 이기고 온 대국을 만취한 채로 복기하겠다며 흑돌과 백돌의 수 하나하나 다시 두기 시작했다. 이기기는 했으나 딱 한 수가-심지어 자신이 두었던 수인데!-완벽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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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대적한 알파고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알파고는 데미스 허사비스라는 사람이 개발을 했단다. 데미스는 어린 시절 체스를 잘 두어 대회에 입상하기도 했대. 대학에서는 프로그램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는데 인지신경과학 박사 학위도 땄다는구나. 학창시절 많은 논문을 읽었는데 그 중에는 폰 노이만의 논문들도 포함되어 있었어. 2011년 그는 딥마인드라는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했고, 2014년 구글이 4억달러라는 천문학자 금액으로 인수를 했단다. 회사가 인수된 이후에도 데미스는 딥마인드를 경영했으며, 알파고를 개발하게 된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바둑이라는 것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단다. 그것을 다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 그 경우가 수가 얼마냐 하면 아빠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숫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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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바둑판에서 가능한 자리의 수, 즉 두 사람이 대국할 때 발생하는 고유한 돌 배열의 가짓수는 너무 커서 2016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규명되었다.

208,168,199,381,979,984,699,478,633,344,862,770,286,522,453,884,530,548,425,639,456,820,927,419,612,738,015,378,525,648,451,698,519,643,907,259,916,015,628,128,546,089,888,314,427,129,715,319,317,557,736,620,397,247,064,84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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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41로 완승을 했단다. 이것은 이세돌뿐만 아니라 그 경기를 지쳐봤던 관람객, 시청자들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란다. 인간이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아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더 이상 인간이 가장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세돌도 알파고의 대전을 끝내고 소회를 이야기했고, 이 대전과 상관없이 사전에 계획한 대로 은퇴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는 바둑 은퇴를 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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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102)

일종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제대로 결정타를 날렸죠. 어떻게 해도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어요.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바둑을 뒀습니다. 그때 바둑은 예의와 매너가 전부였어요. 게임보다 예술을 배우는 것에 가까웠죠. 크고 난 후에야 바둑을 두뇌 게임으로 생각하게 됐지만 배울 때는 예술이었어요. 바둑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예술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달라졌어요. AI가 도래하면서 바둑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버렸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에요. 알파고는 나를 그냥 이긴 것이 아니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로는 계속 바둑을 뒀지만, 은퇴는 진즉에 결심했어요. AI가 등장한 후로는 내가 최정상에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복귀해서 미친듯이 노력해 최고의 바둑기사가 되더라도, 최고일 수는 없어요. 세계 최고가 되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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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이 책에 대해 아빠가 대충 이해한 것이란다. 이 소설이 심도 깊은 과학 지식을 좀 갖추고 있어야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은데 아빠는 그 정도는 아니라서, 쉽지 않게 읽었단다.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부분도 아빠가 이해한 부분과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주어, 어쩌면 책의 핵심이 빠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이 책이 여전히 인기가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1993 9 25일 아침,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는 암스테르담에 얀 바테링크 교수가 세운 환아 교육 시설에 걸어들어가 열다섯 살 난 아들 바실리의 머리를 총으로 쏜 뒤 자신에게도 총을 겨눴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의 이름은 알파제로이다.


수학이란 신의 정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숭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수학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 힘은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그 힘은 오직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에서 탄생했는데, 은혜로운 우리의 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과 발톱 대신에, 그만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이에 관해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에게 어떠한 심판이 내려지건 간에, 차마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미래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내가 누구보다 먼저 보았음을. 그가 가진 능력이란 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도 보았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자제력을 상실한, 사악하고 기계 같은 지성. 그런데 왜 침묵했냐고? 그가 너무 우월했으니까. 나보다도. 우리 모두보다도. - P111

정말 모든 상황마다 합리적인 행동 경로라는 게 있을까? 조니는 이를 의심할 여지 없이 수학적으로 증명해냈으나 그건 오직 양측의 목적이 정반대로 다를 경우에 한정되었다. 그러니 우리의 추론에는 관찰안이 좋은 사람이면 단박에 발견해낼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이론 전체의 틀을 떠받치는 최대최소정리는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체를 상정한다. 그런 주체는 오직 이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며, 규칙을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의 이전 움직임을 모조리 기억할 뿐 아니라, 게임이 한 단계 진행될 때마다 자신과 상대방의 행동이 일으킬 수 있는 결과를 오차 없이 파악하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확히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조니 폰 노이만뿐이다. - P176

에니악의 특징은 계산이 일어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내부로 걸어들어가면 비트값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도 숫자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조니는 예외였다.
계산의 현장 한가운데 잠자코 서서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던 그를 기억한다.
기계가 또다른 기계 안에 들어가 생각하는 모습을.
그는 다음날 나를 고용했다. 고등연구소에서 더 다은 기계를 함께 만들자는 거였다.
나는 곧장 연구소로 가는 기차를 탔다.
- P186

기계가 못하는 일이 있다고들 한다. 기계가 못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내게 말한다면, 나는 언제든 그걸 해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
- 존 폰 노이만
- P213

클라리는 자기 남편이 그렇게나 컴퓨터를 좋아하더니 아예 컴퓨터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연치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산했고, 그게 아니면 루프에 빠지거나 서서히 멈춰버리거나 오류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절대 미친 것이 아니었다. 대화할 때는 어느 때보다 명민했고, 사후 출간되어 읽은 그의 말년 연구는 생각할 거리가 풍부했으며, 수학적으로 아름다웠고, 기술적으로는 역시나 그의 연구답게 빈틈이 없었다. 그가 정말로 선을 넘어 이성이 굴레이자 제약이 되는 세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성을 옆으로 치워두어야만 하는 영역으로 들어가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표면적으로 암시한 신호는 단 하나, 암이 그의 혈액뇌장벽을 넘어서기 직전 그의 조지타운 집에서 내가 목격한 참으로 혼란스러운 일화였다. - P270

미래를 감춰놓은 베일을 걷어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과학이 다음에 어디로 진일보할지, 다가올 세기에 일어날 과학 발전의 비밀이 무언지 일별할 수 있다면,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 P317

"사실은 알파고가 확률을 계산하는 기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수를 본 순간에 생각이 달라졌어요. 알파고는 분명 창의적입니다. 그 수가 알파고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었어요. 바둑에서 창의성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단순히 좋은 수, 위대한 수, 강력한 수를 두는 능력이 아닙니다. 의미 있는 수를 두는 능력이죠." 대국이 끝난 후 인터뷰를 진행한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그는 말했다. 이세돌은 평소였으면 포기했을 시점을 훌쩍 넘겨 세 시간을 어 기계와 싸웠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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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 2024-05-02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4-05-04 14:3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리랑 7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7권을 이야기해줄게. 7권부터 9권까지는 제3부인데, 3부의 제목은 <어둠의 산하>란다. <아리랑>을 읽을 때마다 지은이 조정래 님이 대단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12권짜리 대하 소설을 쓴다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야기의 흐름과 각 등장인물의 성격의 일관성을 놓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을 보니 소설 속 세계를 만들어낸 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은 지은이 조정래 님에게 달려 있으니 말이야. 뿐만 아니라 소설 곳곳에 들어 있는 역사 상식도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있어서 참 좋았단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역사 상식이 저절로... 기억력이 좋다면 오래 간직할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쉽구나. , 그런 아리랑 7권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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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야의 첩이었던 보름이는 세키야의 아이를 낳았지만 세키야에게 버림을 받고 떡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단다. 그런데 우연히 외눈박이 백남일을 만나게 되었는데, 백남일은 보름이가 수국이의 언니인 것을 알고 홧김에 폭력을 휘둘렀단다. 이 소식을 들은 서무룡이 백남일 고소했단다. 서무룡이 깡패이긴 하지만 그래서 보름이를 대하는 마음은 진정인 것 같았고, 백남일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백남일이 보름이를 구타했으니 가만 있을 수 없었지. 서무룡은 백남일을 고소하였고, 경찰의 뒷줄이 있는 서무룡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무룡의 뜻에 따라야 했단다. 그래서 백남일은 보름이의 치료비뿐만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정미소에 대한 월세를 서무룡에게 내야 했단다.

 

1.

송수익의 장남 송중원은 3.1운동 후 감옥에 갔다가 2년만에 출옥을 했단다. 장인이자 아버지 송수익의 친구 신세호는 중원에게 일본 유학을 제안했어. 중원은 일본에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사귄 친구 허탁과 함께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힘썼단다. 중원이 동경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유명한 동경 대지진이 발생했던다. 1923 9 1일이었어. 송중원과 허탁은 공부도 했지만 한편으로 과자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어. 과자공장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그들은 피해 복구를 도와주기 위해 공장에 갔단다. 그곳에서 신문 호외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그들을 당혹스럽게 했단다.

신문에 적힌 내용은 지진이 발생하여 혼란한 틈을 타서 불령선인(조선인)들이 동경 시내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단다. 일본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단다. 이 때 죽은 사람이 6000여 명이라고 했어. 송중원과 허탁도 일단 몸을 숨겨야 했는데, 다행히 그들을 좋게 본 일본인 과자공장 사장이 그의 집에 숨겨 주어 위험을 면할 수 있었단다.

...

, 이번에는 만주 북간도의 상황을 이야기해줄게. 일본의 밀정인 양치성은 북간도에서 결국 자신의 뜻대로 수국과 살림을 차렸단다. 수국은 어쩔 수 없이 양치성과 함께 살고 있지만, 양치성에게 마음을 두지 못하고, 어디선가 고생하고 있는 동생 대근만 생각했단다. 그래서 양치성에게 동생이 있고 지인들이 살고 있는 서간도로 이사를 가자고 했지만, 양치성은 단칼에 안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장사꾼인줄만 알았던 양치성이 밀정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 수국은 두려워하면서 이번이 어머니와 동료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몇 달 동안 준비를 했고 만취한 양치성을 찌르고 서간도로 도망을 갔단다. 수국이 당황하여 칼을 한번밖에 안 찌르고, 양치성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고 도망을 간 점으로 보아, 양치성이 죽지 않았을 확률이 높을 것 같구나. 서간도에 도착한 수국은 지삼출과 필녀를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들도 알고 지내던 양치성이 밀정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 수국이 서간도에 도착하기 열흘 전 동생 대근은 의열단에 가입하기 위해 북경으로 떠나서 동생은 만나지 못했단다.

당시 만주는 경신참변 이루 독립운동이 와해된 상태여서 대근은 의열단에 가입하기로 마음 먹은 거란다. 대근이 의열단에 가기 전에 송수익이 조언을 해주었는데, 당시 만주의 독립군들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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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그래, 자네의 판단이 정곡을 찌르고 있네. 여기 서간도가 북간도보다 다소 덜할지는 모르나 여기 동포들의 동향도 대동소이하네. 경신년 참변 때 이곳 서간도에서도 학살이 자행됐으니까 그런 생지옥을 겪은 동포들이 그리 서간도에서도 학살이 자행됐으니까 그런 생지옥을 겪은 동포들이 그리 생각하게 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세. 그런데 독립군들이 이동을 단행한 것은 무고한 동포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더욱 효과적인 전쟁을 수행하려는 작전계획으로, 이는 어느 나라 어느 군대에서나 취하는 군사행동이지. 그 작전에 왜병들은 당당한 작전으로 맞서지 않고 한다는 짓이 양민들을 대량학살한 것이네. 그건 세계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볼 수 없는 비열함이고 잔혹함일세.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네. 그게 무언고 하니, 동포들이 품고 있는 그런 생각이 바로 왜놈들이 대량학살을 자행한 목적이고 노렸던 바란 사실이네. 우리 동포들을 낙담하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하고, 또한 독립군을 불신하게 하고, 협조를 못하게 만드는 술수, 그게 바로 왜놈들이 조작해 내는 이간책동술이네. 그러니까 지금 독립군들이 해야 할 일은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동포들에게 무작정 협조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왜놈들의 그런 이간책동을 바르게 알리고 이해시켜 가며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일세. 동포들이 곧 조선이고, 동포들이 없고서는 그 어떤 독립투쟁 단체들도 존속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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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했던 독립군들은 일제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연해주로 이동했어. 하지만 연해주에서는 자유시 참변이라는 사건으로 많은 독립군들이 죽고 말았단다. 자유시 참변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조선공산당의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갈등이 있었는데, 이르쿠츠파가 적군의 힘을 이용하여 조선공산당 상해파와 다른 독립군을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 사건이었단다. 같은 민족으로 한 힘으로 일본에 저항해야 시기에 상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단다. 이 일 이후 남아 있는 독립군들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만주로 돌아왔단다.

송중원의 친구로 함께 3.1운동에 참여했던 이중에 이광민이라는 사람이 있어. 이광민은 3.1운동 이후 만주로 와서 홍범도 부대에 참가해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단다. 홍범도 장군이 나이가 드신 이후 독립운동 일선에 물러난 이후 이광민은 연해주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단다. 빨치산들은 일본을 상대로 기습 작전을 벌여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썼어. 이런 계속된 공격으로 일본군은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철수를 하게 되었단다.(1922.10) 연해주에서 활약하던 빨치산 독립군들의 큰 성과였어. 이광민은 연해주에 머무르면서 윤철훈을 만나게 되어 함께 공산주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향후를 도모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윤철훈의 여동생 윤선숙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광민과 윤철훈은 독립운동을 위해 곧 떠나기로 했단다. 이광민와 윤선숙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헤어져야 했어. 사랑을 해야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했기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맥이 오랫동안 끊기지 않고 이어져서 결국 해방까지 이어지는데 큰 힘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단다..

..

 

2.

공허 스님은 국내에서 활동을 하던 중 기차 안에서 순사인 장칠문과 마주치게 되었고, 장칠문은 공허 스님을 알아보고 바로 체포했으나 장칠문이 방심하는 사이 공허 스님은 장칠문을 공격하고 도망을 갔단다. 여기저기 도망 다니다가 홍씨 집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홍씨는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공허 스님이 파계하면서 알게 된 여자란다. 장칠문은 도망간 공허 스님을 찾으러 돌아다녔고, 공허 스님과 친분이 있는 송중원의 집에 찾아왔어. 고향에 돌아와 있던 송중원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다짜고짜 유치장에 집어 넣었단다.

...

농장조합의 회장이자, 오쿠라 농장의 지배인인 요시다는 간척사업을 통해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했단다. 많은 조선인들을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고용하여 노동력을 착취를 하면서 간척 사업을 진행했어. 요시다 지배인과 조선인 노동자 사이에는 악랄한 이동만이라는 자가 있었단다. 요시다의 충실한 수하이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악마 같은 놈이었어. 요시다는 소작료까지 인상하려고 했단다. 소작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단 행동으로 반발했단다. 소작인들이 그렇게 집단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후에 사회주의자들이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야. 요시다의 농장 조합은 그런 소작인들을 군대처럼 편성을 하고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단다. 소작인들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면 연대 책임을 묻겠다고 했어.

한편,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고 간척사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임금까지 체불 당하고, 자신들이 일군 땅을 일본에서 온 일본인에게 공짜로 주고 소작인들에게 주기로 한 땅도 대폭으로 줄어들어 든 것에 불만이 쌓였단다. 이에 정씨 형제의 막내인 정도규와 그의 친구 고서완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소작회를 결성하게 했단다. 정도규와 고서완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공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단다. 고서완의 제자 중에 이경욱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도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항일 정신이 투철한 자였단다. 그런데 이경욱은 악랄한 친일파 이동만의 아들이었단다. 이경욱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아버지의 죗값까지 자신이 받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소작인들과 노동자들을 도와주려고 했단다.

차득보 생각 나지? 잃어버린 동생 옥녀를 찾아 헤매다가 공허 스님을 만나 함께 했잖아. 공허 스님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함께 못 있어. 신세호의 집에 기거하면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단다. 그런데 신세호의 둘째 딸 월엽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신세호가 아무리 신 지식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딸을 차득보와 연을 맺어줄 수 없어 크게 반대했단다. 월엽은 신세호와 점지해준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 옥녀가 오빠를 찾아 신세호의 집에 찾아왔단다. 그렇게 십 수 년 만에 득보와 옥녀가 만나게 되었단다.

….

 

3.

우려했던 것처럼 양치성은 오른쪽 가슴을 칼에 찔렸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단다. 수국에 대해 복수를 다짐했어. 수국은 서간도에 와서야 자신이 양치성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애를 떼어보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 실패를 했단다. 결국 아들을 낳았고 낳자마자 버리려 했지만, 필녀가 막으면서 자신이 키우겠다면서 아이를 데려갔단다. 하지만 모정을 그리 쉽게 끊을 수 있겠는가. 100일이 지나고 수국은 아이를 자신이 키우기로 했단다.

여기까지가 아리랑 7권에 대한 이야기란다. 우리나라에도 가끔 조선족이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일제 시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이들의 후예란다. 친일파의 후예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란다. 그리고 조선족이라는 말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소수 민족들을 부를 때 부르는 말로, 너희들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들은 중국동포나 중국교포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 같구나. 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미국교포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요시다 지배인님 드시느만이라우.”

책의 끝 문장: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긴 한숨을 쉬었다.


천지에 가득한 그 아름거림은 꿈결인 양 황홀하면서도 서러운 하소연양 슬픔이 깃들여 있기도 했다. 그 슬픔이 깃들여 있기도 했다. 그 슬픔은 서러움 깊은 사람들의 탄식 같기도 했고, 한 많은 사연 품은 넋들의 승천 같기도 했다. 그건 기실 굶주려 배고픈 사람들의 한숨이고 한탄이기도 했다. 아지랑이가 그리도 숨막히게 흐드러지면 보릿고개의 배고픔도 병이 되도록 사무쳤다. 이미 죽으로도 끼니를 때울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부황이 들고 어질병을 앓았다. 그 배고픈 병이 든 눈으로는 아지랑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아지랑이의 아롱거림은 어질병을 더 도지게 했다. 그 사람들은 속 메스꺼운 어지럼증에 휘둘리며 하늘을 향해 한숨짓고 한탄을 토했다. 배곯고 사는 기구한 팔자를 쓰라려 하고 아파하는 그 한숨과 한탄은 풀릴 길 없는 채 아지랑이에 실려 멀고 먼 하늘로 스러져 갈 뿐이었다. - P56

만주에 퍼져 있는 일본영사관들이 독립군을 잡아 넘겨주는 중국관리들에게 상금을 주기로 한 것은 사실 그대로였다. 독립군 토벌에 실패하고 군대까지 철수시킨 그들은 중국관리들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 계획이 바로 이화제한(以華制韓)이었다. 중국의 힘으로 한국을 제재하자는 것이었다. 그전의 이한제한(以韓制韓)의 수법에다 하나를 더 첨가한 것이었다. 조선인 친일파와 밀정들을 투입하여 독립투쟁 세력을 파괴하고 제거하는 것이 이한제한이었다. - P90

저런 인종들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종자들인가. 저런 것들이 바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저런 종자들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가. 영원히 일본세상이 되어버렸다고 믿는 것인가. 저런 놈들한테 꼼짝없이 끌려가야 하는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왜 튀어나온 것인가. 조선인은 허위와 공상과 공론만 즐기고 게으르며 서로 신의와 충성이 없으니 이를 반대방향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 이광수의 주장이었다. 이광수는 왜 저런 못된 인종들을 질타하고 정신차리게 하지 않고 민족 전체를 비하시키고 흉보고 흠집 내고 있는가. 이광수는 3.1운동을 보지도 않았는가. 아니, 지금도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안중에 없는 것일까. 이광수는 왜 그 따위 글을 쓴 것일까. 그건 바로 일본놈들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광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의도나 저의는 무엇일까.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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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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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 평론가 이동진 님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본단다. 수만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장서가이자 다독가인 이동진 님은 가끔씩 책들을 추천해 주곤 하는데, 책에 관심이 좀 있는 아빠도 그 동영상들을 가끔 참고하기도 한단다. 이번에 읽은 마거릿 렌클의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란다.

이 책은 시인이자 수필가인 마거릿 렌클의 짤막짤막한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란다. 그 에세이들 중에 하나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뽑긴 했지만, 이 책의 중심 주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우리는 늘 작별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사람들과 하는 작별뿐만 아니라, 동물들, 식물들, 사물들과 작별하고 지금 이 순간과도 끊임없이 작별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이 책의 원제를 보니 “Late Migrations”로 되어 있는데, 아빠의 생각에는 원제보다 번역본의 제목을 더 잘 뽑은 것 같았단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새 두 마리와 과일, 꽃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에 실린 많은 에세이들이 자연과 새들을 많이 이야기해서 그렇게 디자인한 것 같더구나.

앞서 이야기를 했지만, 이 책은 여러 에세이들이 실려 있지만, 모두 지은이 마거릿 렌클 주변의 이야기이고, 시대순으로 정렬이 되어 있어 지은이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었어. 그 시작은 지은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1931년 전부터 시작한단다. 이 때는 당연히 지은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지은이의 외할머니가 지은이의 어머니가 태어난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시작을 한단다. 그리고 현재의 지은이의 주변 이야기와 옛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들려준단다.

지은이는 1961년생인데, 자신이 태어나던 순간도 할머니의 전해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단다. 아기의 태어나는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온 가족의 사랑이 가장 많이 모이는 순간이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빠는 너희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들이 떠올랐단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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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친족들-어머니와 아버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하얀 후광 속에 온전히 차분하게 잠겨 있는 외외증조할머니-이 모두 내 주위에 모여 있다. 너무 일찍, 작고 허약하게 태어난 나는 모든 사진 속에서 잠을 자고 있으며, 그들은 모든 사진 속에서 내 주위에 모여 머리를 기울인 채 내 입술이 또 다시 파래지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 너무도 얇게 숨을 쉬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너무 작고 항상 추위를 탄다. 하지만 친족들은 마차 태양인 양 나를 보고 있다. 내 부모님과 외조부모님 그리고 외외증조할머니, 그분들 모두가 나를 지켜보기 위해 모였다. 그분들은 내가 태양인 양, 그분들이 그때껏 평생 추위를 탔던 양 나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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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고 지은이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들도 이야기해주는데 이 또한 너희들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구나. 지은이가 어린 시절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할머니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아빠는 너희들이 어렸을 때 너희들이 어땠는지 많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것 같구나. 이제라도 어렸을 때 너희들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많이 해주어야겠구나. 육아일기라도 써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 책을 읽다 보면 너희들의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아빠의 어린 시절도 생각나는데 아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단다. 안타깝게도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신 분들이 별로 없었어. 사진 속에 남아 있는 모습으로 그 시절을 추측하는 하는 수준이지. 그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이 인생에 있어서 참 아름다운 시절이고 사랑을 많이 받던 시절인데,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참 안타깝구나.

다시 책 이야기를 해보면, 지은이는 어려서 시골에 살면서 많은 동물들과 많은 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어. 그런데 늘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지은이의 엄마가 우울증 증세로 고생을 하신 것 같았어. 그래서 어렸을 때는 할머니 등 친척들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것 같구나. 그리고 지은이에게 위안을 주는 것들은 정원에서 만나는 동물들과 식물들이었단다. 그래서 이 책에는 그 동물들과 식물들에 관한 글들이 많이 담겨 있단다. 아빠도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살아서 지은이만큼은 아닐지라도 동물들과 식물들과 어울려 지낸 시간이 많았는데, 남아 있는 기억이 거의 없구나. 작가들은 역시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지은이가 나이를 들면서, 사랑하는 가족들도 하나 둘 떠나게 되는데 그 슬픔이 읽는 이에게도 느껴지더구나. 아빠는 아직 부모님과 이별을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과 이별은 정말 큰 상심일 거야. 지은이도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이 큰 상심이 되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에 대한 글들을 무척 많이 쓰셨단다. 어머니가 기르던 개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에 가슴이 시리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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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어머니의 장례식 2쥐 뒤, 그 개가 가출했다. 얼룩배기 털을 가진 그 개는 제멋대로이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부르면 절대 한 번에 오지 않았고, 가장 낮은 덤불 밑, 꺾어진 가장 작은 나뭇가지 뒤로 몸을 감추었다. 겁에 질린 나는 정원을 뒤집어 엎으며 그 개를 찾았다. 마침내 길 건너편 어머니 집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뒷문 앞에서 들여보내 달라고 뛰어오르고 할퀴고 있는 그 개를 발견했다. 얼마나 절박하게 할퀴었는지 문설주의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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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은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셨다는 마지막 말들도 코끝을 찡하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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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237)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말해도 된다고 내게 허락한 단어.

빌어먹을.

제기랄.

젠장.

우라질.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말해도 된다고 내게 허락하지 않은 단어.

콧물.

 

아버지가 좋아한 농담의 마지막 문장.

  , 제기랄. 내가 개똥을 밟았어.

 

아버지가 좋아한 시의 첫 문단.

   토요일의 저녁이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있다,

   오말리가 바의 문을 닫고 있다,

   그가 몸을 돌리고

   붉은 옷을 입은 여자에게 말했다.

   “나가요, 당신은 여기 머물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한 마지막 말.

   고맙다.

 

아버지가 한 마지막 말.

   그만해.

 

부모님이 죽어 가던 방에서 내가 한 말.

   사랑해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사랑해요.

 

부모님이 죽어 가던 방에서 내가 하지 못한 말.

   빌어먹을. 제기랄. 젠장. . , 우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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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보다 또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어머니를 생각하는데, 이것은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구나. 아니, 아버지들도 그럴 거야. 아빠도 너희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가끔씩 아빠가 어렸을 때 부모님들과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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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어머니는 서른 살에서 서른여섯 살 사이에 아이 셋을 가졌고, 나도 서른 살에서 서른여섯 살 사이에 아이 셋을 가졌다. 지금 내 몸은 정확히 어머니 몸의 복제품이다. 내 굵어진 허리에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의 발이 나를 세상 속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안 나는 지켜본다. 내 목의 접힌 부분과 눈썹에서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준 반지를 낀 내 손가락의 곡선에서 어머니를 느낀다. 어머니가 절대 빼지 않던 그러나 남겨 줘야 했던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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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라는 것 같았어. 심지어 작별하는 순간도 말이야. 그리고 아빠의 글 솜씨가 좋진 않지만 너희들과 보낸 시간들을 좀더 많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라는 다짐도 하게 되었단다. 오늘은 대충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그 애가 그렇게 일찍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단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초록색의 이 근사한 세계에도.


생명의 순환을 차라리 죽음의 순환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을 것이고, 죽는 모든 것은 먹힐 것이다. 벌레는 파랑새에게 먹히고, 파랑새는 뱀에게 먹히고, 뱀은 매에게 먹히고, 매는 올빼미에게 먹힌다. 이것이 야생의 작동 방식이고, 나는 그걸 안다.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 P13

사랑의 그늘진 면은 늘 상실이고, 비통함은 사랑 자체의 쌍둥이일 뿐이다. 마마 앨리스가 돌아가셨을 때 내 어머니는 열두 살이었다. 파파 독은 포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채 길가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자라고 있는 장미 덤불을 응시했다. "내 생각에 파파 독은 그때 죽기로 결심하셨던 것 같아."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겨우 한달 남짓 사셨으니까." - P20

그렇기는 하지만, 잔혹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공감할 줄 아는 종이다. 2007년에 베트남에서 심한 장애를 가진 선사시대 인간의 화석이 발굴되었다. 그 화석 인간의 골격은 클리펠파일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선천성 질병의 특징인 융합된 척추뼈와 약한 뼈들을 보여 주었다. 그 남자는 사지 마비 환자였고, 자기 힘으로 음식을 먹거나 몸을 깨끗이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동체 안의 다름 사람들이 돌봐 준 덕분에 성년기-알겠는가, 석기시대에 말이다-까지 생존했다. - P101

하지만 겨울이면 플라타너스의 헐벗은 가지들이 자기들이 여름 내내 보호한, 내 머리 30센티미터 위에 있는데도 거의 보이지 않던 흉내지빠귀 둥지를 보여 준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너무도 많이 흩어져 있어서 가로등만이 유일한 방해물이다. 붉은꼬리말똥가리가 차가운 노란 발 위로 깃털을 부풀리고,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내가 맹세할 수 있는 너무도 고요한 태도로 땅을 조사한다. - P168

내 꿈속에 나올 때 엄마는 저승의 유령 혹은 나 자신이 느끼는 비통함을 반영하는 표정이 아니라, 항상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다. 꿈에 엄마가 나올 때마다 나의 첫 반응은 항상 안도감이다. 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가 착각했어요. 당신은 살아 계십니다. 꿈속에서 내가 엄마를 붙잡고 꼭 껴안으며 몇 번이고 "엄마가 왔네요. 엄마가 돌아왔어요. 하느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항상 놀라고 어리둥절해한다. - P252

그 모든 해를 지나온 후 모성은 여전히 내 안에서 맥박처럼 똑똑 소리를 냈고, 긴 줄에 서 있을 때마다 나는 유령 아기를 팔에 안은 채 안절부절못하며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 아들들을 본다. 이제는 전부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다. 때때로 그 아이들의 머리가 내 엉덩이 근처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그 아이들의 축축한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에 얽혀 있거나 블라우스 뒷자락을 움켜지지 않는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때로는 저녁 식사 중 아이 한 명이 유리컵을 입술에 가져갈 때, 그 아이의 손이 빨대 컵을 붙잡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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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빌 슈트 지음, 김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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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음 책은 무엇을 읽을까? 잠시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Jiny가 읽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서 어떤 책인가 읽어보려고 폈다가 앞 부분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와서 읽게 되었단다. 심장이라고 하면 영어도 “heart”라고 하는데, 피를 온 몸으로 펌프질을 보내는 역할적인 측면이 있어서 pump라는 말을 쓰기도 하나 보구나. 이 책의 영어 원제는 <PUMP>란다. 심장이라고 하면 학장 시절에 배웠던 동물별로 심장의 구조가 다른 것이 기억나는구나. 1심방 1심실부터 2심방 2심실까지 다양한 심장의 구조. 사람은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2심방 2심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배웠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아빠가 생물과는 거리를 둔 학과와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심장에 대한 심도 깊은 글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구나. 이 책이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구나. 잠시라도 심장이 멈춘다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만큼 심장은 우리 신체기관 중에 가장 중요한 기관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구나. 그렇게 소중한 심장에 대한 책이다 보니, 지식 축적의 목적으로 읽고 싶어서 책을 구입했었어. 하지만 방구석 한쪽에 쌓인 책탑에 무심하게 자리를 차지고 있었는데, Jiny가 읽어 보고 싶다고 해서 아빠도 그제서야 이 책을 들쳐보게 된 거야. 지은이라는 빌 슈트라고 하는 동물학자라더구나.

동물학자이다 보니, 심장의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의 심장보다 동물들의 심장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것 같구나. 아빠가 이 책에 관심을 끌게 한 책의 앞부분에 나온 이야기도 다름 아닌 고래의 심장에 관한 이야기란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흰수염고래의 심장 이야기인데, 흰수염고래의 심장은 세상에서 가장 큰 심장이라고 하는구나. 심장이 가장 크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의 몸집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라고 하는구나. 흰수염고래의 심장은 전체 몸의 0.3% 크기밖에 안 된데. 다른 동물들이 보통 자신의 몸의 0.6%의 크기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작다고 하네.

조류들은 자신의 몸에 비해 심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빠른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동물들마다 평균 심박수도 다르다고 하는데, 벌새의 경우는 분당 1260회를, 뒤지는 분당 1320회의 심박수를 가지고 있다는구나. 저렇게 빨리 뛰는데 심장이 제대로 동작을 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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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8)

이렇게 작은 동물들이 조증환자 같은 행동을 유지하려면 세포에 극단적으로 많은 에너지와 산소를 공급해야 한다. 그만큼의 에너지와 산소를 공급하려면 심박수를 늘려서 혈액을 더 자주 펌프질해 산소와 영양분을 신체의 각 부위로 보내주어야 한다. 그 결과 이런 동물들의 심박수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높다. 벌새의 심박수는 분당 1260회에 달하고 뒤쥐는 척추동물 중에서 최고에 속하는 분당 1320회에 이른다. 대략 35세 인간의 최고 심박수의 일곱 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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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심장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진화되어 왔는지 이야기를 해준다. 심장이라는 것은 순환기관이라고 한단다. 피와 영양분들을 온 몸에 전달해 주니까 말이야. 그런데 모든 동물이 심장이 있을 필요는 없어. 단세포 생물이나 미생물들은 심장이 없으니 말이야. 그 동물들은 다른 방법으로 영양분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 팔이야. 투구게라는 동물이 있는데 4 4500만 년 전에 살던 동물인데 신기하게도 요즘도 아직 멸종되지 않고 살아가고들 있단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면서 푸른 피를 가지고 있는 쿠구게의 심장은 심장 진화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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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하지만 투구게는 회복력이 뛰어나다. 가장 오래된 쿠구게의 화석기록은 4 45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최초의 공룡 출현보다 대략 2억 년이나 빠른 시기다. 투구게는 삼엽충을 포함해 한 때 번성했던 절지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며, 아마도 가장 유명한 고대 무척추동물일 것이다. 투구게만큼 지구상에서 오래 존재해온 동물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이들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 데 누구도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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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심장 구조를 가진 동물들도 이야기를 해주었어. 심장이 세 개인 오징어가 있다는구나.

심장이 멈추면 이내 죽고 마는데, 잠시 심장을 멈추었다가 나중에 다시 뛰는 동물들도 있다는구나. 그래서 이름을 송장개구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송장개구리는 날씨가 추워지면 심장이 멈추었다가 따뜻해지면 다시 심장이 뛰어 살아난다고 하는구나. 이런 동물들이 있어서 SF소설들에게 인간이 냉동으로 보관했다가 다시 몸이 녹으면 살아나는 설정이 많이 나오는 것 같구나. 송장개구리처럼 완전히 멈추지는 않지만,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 중에는 심장 박동수를 급격히 줄여서 딱 필요한 영양분과 산소만 온몸으로 보내면서 겨울을 난다고 하는구나. , 사람도 이렇게 심장 박동수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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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박쥐를 비롯해 동면하는 동물들은 겨울철에 산소와 영양분을 덜 필요로 한다. 따라서 온도 외에도 위와 같은 대사율 하락은 동면의 중요한 특징이다. 동면하는 곰의 심박수가 급격하게 떨어지듯이, 평소에 분당 500~700회까지 올라가는 박쥐의 심박수도 동면 기간에는 분당 20회까지 떨어진다. 이 기간에는, 추위에 또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박쥐도 혈액을 사지로 보내지 않고 몸의 핵심부로 보내 가장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고 온도를 유지한다. 추위에 떠는 사람과 동면하는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동면하는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동면하는 동물의 심장은 저온저산소 조건에서도 세동을 일으키지 않고 정상적으로 가능하도록 진화했다는 점이다. 세동은 심장근육 섬유가 불규칙으로, 동기화되지 않고 수축을 일으키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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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러 동물들의 다양한 심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마무리를 하고, 이제 심장에 대한 연구와 의학적인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심장에 병에 생기면 불치병인 경우가 많단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하게 되면 좋겠지만 한 개뿐인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단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의사들은 동물의 심장으로 대체하려는 노력들을 많이 했어. 1984년 개코원숭이의 심장을 심장병 걸린 아기에게 이식을 했었는데, 혈액형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해서 아이는 금방 죽었다고 하는구나.

혈액형을 맞추었다고 해도 오래 살지는 못했을 거야. 이종 간의 신체 기관 이식 수술은 쉽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 하지만 이종간의 연구는 지속적으로 해왔고, 최근에는 사람의 심장과 크기가 비슷하고 유전자적으로 비슷한 돼지의 심장을 이식하는 것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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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돼지의 심장은 크기나 해부학적 구조, 기능에 있어서 인간의 심장과 매우 비슷하다. 암퇘지는 한배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는 점도 중요했다. 조직부적합성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실험용 돼지의 장기가 사람의 면역계에 의해 거부당하는 사태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돼지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PERV)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 시퀀스를 제거할 수도 있다. PERV는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진보다. 최근 들어 연구자들이 이렇게 유전자를 재조합한 돼지의 장기를 인간이 아닌 영장류에게 이식하기 시작했고, 2021년 이후에는 임상 전 연구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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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대한 연구는 고대 시대부터 꾸준하게 이어졌어.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렇게 이어지던 연구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해부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심장 연구에도 암흑기가 이어졌다는구나. 그랬다가 1600년대에 와서야 해부금지령이 해제되었다고 하는구나. 심장의 역할이 피를 통해서 산소와 영양분을 온몸으로 옮기는 것이다 보니, 수혈의 역사도 이야기를 해주었어. 오래 전에 피가 부족하게 되면 피 대신 포도주나 우유 또는 다른 동물의 피를 정맥에 넣는 시도도 했었대. 물론 실패를 했겠지.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시도도 했지만 ABO식 혈액형이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

시간이 흐르면서 심장 연구도 계속 발전을 했는데 청진기가 발명되어 심장 소리를 듣고 병을 진단하는 하게 된 이야기부터 인공 심장 이식을 받은 최신 의료 기술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아빠가 너희들에게 그걸 제대로 전달할 능력이 안되어 패스해야겠구나. 이야기 하나를 해 줄 것이 있다면 건강한 심장을 위해 먹어야 할 것들을 책에 나온 것을 그대로 발췌해서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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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15)

육류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세계 전체의 육류 소비량은 지난 50년 사이에 네 배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하의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순환계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비교한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다. 전쟁으로 인해 스트레스는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 노르웨이에서는 심장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환자는 20퍼센트가 감소했다. 왜 그랬을까? 가축을 모조리 독일군에게 징발당하여 육류나 계란, 유제품을 먹을 수 없었던 노르웨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채소, 곡류, 과일 같이 저지방 식품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그 결과 심장질환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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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대략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몇몇 적어 보았단다. 책의 앞부분은 재미있는 소재로 흥미롭게 시작하여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전문 용어가 나오고 하니 읽기 그리 쉽지는 않았단다. 지금의 너희들에게도 추천하기 조금 조심스럽더구나. 좀더 큰 다음에 읽어볼 것을 추천하마.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14 4월 중순, 캐나다 뉴펀들랜드주의 작은 어촌 트라우트 리버에서 눈썰미 좋은 한 주민이 세인트로렌스만 쪽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책의 끝 문장: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아무리 괴짜로 보이더라도 말이다.


방실판막은 심방에서 심실로 들어가는 혈액을 조절하지만, 동시에 심실이 수축해서 온몸으로 혈액이 심방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혈액의 역류를 방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질긴 섬유인 힘줄끈(건삭)을 흰김수염고래의 심장에서 열 줄 이상 볼 수 있다. 진짜 끈처럼 생겨서 심금이라고도 부르는 이 끈의 주요 성분은 콜라겐이라고 하는 구조단백질이다. 힘줄끈의 한쪽 끝은 심실 바닥에 튼튼하게 박혀 있고 반대편 끝은 판막첨판에 붙어 있어서, 심실이 수축할 때 판막첨판이 심방까지 밀려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심방과 심실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 P39

헤모글로빈은 철을 함유하고 있어, 산소가 철과 결합한다. 또 헤모시아닌과는 달리, 헤모글로빈은 혈액 안을 자유로이 떠다니지 않는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라는 세포에 의해 운반되는데, 적혈구의 수명은 대략 4개월이다. 또한 헤모글로빈의 중요한 구성 성분은 구리가 아니라 철이기 때문에, 혈액은 산화되어도 파란색을 띠지 않는다. 산소와 결합하는 분자의 색깔 변화는 우리 환경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경계나 출입제한을 표시하기 위해 설치된 철조망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면 붉게 녹이 스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 P85

다윈이 사망한 이후 140년의 세월 동안 여러 연구자들이 이 위대한 과학자의 죽음의 원인을 가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진단 내린 병명에는 불안장애의 일종인 광장공포증, 브루셀라증이라 불리는 박테리아 감염증, 만성 비소중독, 만성 불안증후군, 심각한 수준의 만성 신경쇠약, 만성 장 질환인 크론병, 주기성 구토 증후군, 우울증, 극도의 심기증, 위궤양, 통풍, 유당 불내증, 내이의 장애로 발생하는 메니에르병, 공황장애, 미토콘드리아성 뇌근육병증, 젖산산증, 뇌봉중양증상, 모계유전의 신경근계 이상, 정신신체증 피부질환 그리고 동성애 억제 등이 있다. - P252

이러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의 패션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길고 치렁치렁하게 끌리던 치마는 집 안까지 박테리아를 몰고 들어온다는 이유로 더 이상 입지 않았으며, 코르셋은 혈행을 막는다는 이유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복잡한 속옷 역시 결핵의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남성들의 스타일도 영향을 받았다. 구레나룻이든 턱수염이든 병균이 꼬인다고 생각해서 인기가 시들어졌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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