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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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재밌었다. 주제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러하며 만들어낸 세계도 완성도가 이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전작 '지구 끝의 온실'도 환경과 관련한 주제였지만 이 책도 사실상 그렇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환경파괴를 만들어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듯 하기도 하다.

 현대 인간 사회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존재와 협력자로서의 인간 존재 중 사실상 전자가 승리한 상태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독립적 이성을 갖춘 존재로 인식하여 자연환경과 분리시켰고, 그들의 과학 역시 그러한 전제조건과 분리되고 독립적이라 생각하는 실험 속에서 발달했다. 반면 다른 지역은 좀 더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문명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형태로 존재하곤 했다. 

 하지만 서구 문명의 이룩한 과학 기술이 더 강력했기에 이들은 다른 문명을 침탈했고, 각성한 다른 문명은 서구를 지난 200년간 추종했다. 그래서 지금 거의 모든 인간은 개별자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환경을 이용한다. 그 결과 인간의 개체수는 상당히 늘어났지만 다른 생물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엄청난 환경파괴와 가해자인 인간 자신도 위협을 느낄정도로 온난화로 인해 지구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반면 가해자인 인간은 자신의 이런 가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온난화가 자신을 침탈하자 그제서야 미온치 않게 반응하는 형국이다. 이러서는 안된지 않을까, 인간 자체의 인식과 정체성이 협력자로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작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책의 세계는 암울하다. 언제인지 모를 근미래 우주로부터 일종의 균류로 추정되는 것들이 지구로 침투한다. 이들은 우주를 떠돌면서 그 행성에 자신들을 뿌리내는 종 같은데 균류들이 그렇듯 제한없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보다도 무섭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침투한다. 침투된 생명체들은 변이를 일으켰다. 특히 인간은 자아를 잃고 광폭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우주 균류들, 아니 범람체라 부르는 이것들이 내뿜는 포자롤 광증 아포라 부르면 두려워한다.

 결국 인간은 이상하게도 범람체들이 침투하지 않는 지하(오히려 좋아할 법한 장소인데)에 몇몇 기지를 건설해 간신히 문명을 유지해나간다. 하지만 지하도 아니아. 환기구나, 통로 등 갖가지 경로로 범람체는 침투해왔고, 그 결과 지하기지는 몇몇 구역을 상실하곤 했다. 그리고 기계는 범람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광증아포에 침투되 광증을 보이는 이들을 실시간으로 체포하는 구금 기계가 돌아다니고 있다. 

 주인공은 태린이라는 여자아이다. 광증에 지나칠 정도로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 태린의 꿈은 파견자이다. 파견자는 책 제목이기도 한데 이들이 하는 일은 그 위험한 지상으로 나아가 범람체를 채집하고, 인간의 영역을 늘리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일이 위험한 만큼 이들에게 높은 지위와 보수가 따랐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태린이 파견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이제프 파로딘의 존재때문이다. 그녀는 제1의 파견자로 태린이 어릴 적 보살펴주고 지상에 대한 꿈을 심어준 소위 멘토 이기 때문이다.

 태린은 파견자 시험에 임한다. 하지만 이즈음 태린에게 이상증세게 나타나는데 난데 없이 무슨 소리가 뇌리에 울리는 것이었다. 태린은 시험 중 이 존재로 인해 패닉에 빠져 이론 시험을 망치고 만다. 하지만 태린은 뇌리의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시작하며 그와 소통한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 가장 어려운 실전 시험을 1등으로 통과한다. 하지만 태린은 자신이 솔이라 명명한 이 존재에 의해 실전시험에서 포집한 위험한 범람체를 지하도시 한복판에서 풀어버리는 범죄를 범하고 만다. 

 그로 인해 태린은 추방의 위기에 놓이나 이제프가 나서 태린은 파견자로 임명하고 가장 위험한 실전임무에 투입하는 조건으로 그를 구한다. 그렇게 태린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향하고 범람체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그를 다루는 과정으로 치닿는다. 

 작가가 내놓는 결말은 좀 재밌기도 하고 고민스럽다. 어쩌면 그런 선택이 개별자로 변해버린 인간을 치유할 유일한 방법같기도 하다. 무척 재밌는 소설로 두껍지만 높은 가독성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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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온다 - 일본의 부상, 한국 경제의 위기
김현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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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외 팽창은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1592년 임진왜란, 두 번째는 대륙침략과 태평양 전쟁, 세 번째는 2012년의 팽창으로 인도 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시도다. 이 세 번째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국의 중국 견제와 합류하여 세계적 흐름을 타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시들한 일본엠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온다'라는 책 제목이 걸린 것은 바로 이 흐름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한국이 보기에 소위 넘사벽 강국이었다. 일본은 1968년 서독을 추월해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 타이틀을 2010년 중국에 넘겨주기 전까지 무려 40여년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오일쇼크 이후 미국 경제가 주춤한 사이 에너지 절약형 제품과 가볍고 작고 얇고 짧은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1980년이 되자 심지어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미국을 추월했다. 1989년 세계 20대 기업에서 일본 기업은 무려 14개일 정도였으며 이 증대된 부로 미국의 핵심자산을 대거 구입하기도 했다. 

 이랬던 일본은 이후 30년간 장기침체에 빠져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 4번의 충격이 있었다. 우선 1985년 플라자 합의다. 달러당 240엔이던 환율은 120엔으로 초강세전환하게 된 합의다. 대미수출이 큰 타격을 입자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내수를 진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이런 고환율에도 호조를 보이자 국내에 엄청난 통화가 돌게 되었다. 이에 부동산과 주가가 폭등했는데 버블이 일어나 붕괴하게 된다. 이때 자산들은 1/3에서 1/4까지 떨어졌는데 투자한 개인과 기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다음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다. 버블 붕괴 후 근근히 버티던 일본 경제는 이로 인해 완전불황에 빠지게 된다. 한계 기업이 도산하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도 부실화했다. 경제와 금융이 엮인 복합 불황으로 실업률이 5%에 달했다. 이를 제 1취업 빙하기라 한다. 15-64세의 생산인구도 처음으로 줄기시작했고 본격적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지게 된다. 수요가 약해지니 기업은 가격을 내렸고, 가격이 내려가니 소비자는 더 내려갈 기대감으로 구매를 미룬다. 고이즈미 총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로 고용을 유연화하여 위기를 탈출하려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일본사회에 처음으로 양극화란 멍애를 낳게 된다.

 세 번째는 2008금융위기다. 일본은 크게 충격을 받아 2009년 -5.4%성장하고 실업률도 무려 5.5%달한다. 제2취업 빙하기였다. 엔화강세도 겹쳐 수출도 부진했다. 이 충격으로 2009년 처음으로 정권이 야권으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환경, 의료, 복지를 중시했다. 내수는 회복되었지만 수출기업이 부진해 비판받았고, 결정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붕괴한다. 2012년 다시 집권한 아베는 3개의 화살 정책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이는 과감한 금융완화, 적는 재정, 감세와 규제 완화다. 이를 통해 주식과 부동산이 상승했고, 기업실적이 좋아지고 실업률이 내려갔다. 

 네 번째는 코로나 팬데믹이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일본 재흥의 상징으로 여겨 여기에 너무 집착한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대비가 너무 소홀했고 이전 아시아를 덮친 감염병의 여파도 적었었기에 대응 메뉴얼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병이 퍼지자 외국인의 방일을 전면 금지하고 가게 영업을 제한했으나 2020년 무려 -7.8%역성장을 하게 된다. 

 일본의 이 네 쇼크는 결국 30년간 겨우 0.8%성장이라는 제자리 걸음으로 귀결되었다. 세계 주요선진국들은 성장한계에 도달하면 대개 연간 2% 정도의 성장을 이론상 하게되고 실제로 그러했는데 일본은 상당히 예외적 저성장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일본이 이렇게 대처를 못한데 대해선 우선 대미굴종의 자세가 꼽힌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일본 입장에서 상당한 주권침해였지만 일본 지도층은 의외로 이를 쉽게 받아들였다. 2차대전 이후 형성된 일본 지도층의 대미굴종 자세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쟁당시 미축귀영이란 용어로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국민에 심었지만 패전과 동시에 친미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우산하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켰기에 이런 태도가 만성화하였다. 또한 이들은 지역구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기득권이 영원히 유지된다.

 또 다른 원인은 무책임의 구조다. 일본 정치권은 진정한 책임을 지기 보다는 여론이 악화하면 수상자리를 놓고 자신을 지지하는 다른 이를 내세워 막후 정치를 펼친다. 이런 식이다보니 일본의 불황기에 수상교체기는 무척이나 빠른 편이다. 

 한국은 전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내 선진국에 진입했다. 한국은 그 과정에서 1950년의 농지개혁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초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얻어낸 일본의 자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트남 전 참전으로 미국에서 얻어낸 돈의 역할이 상당한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였는데 이것이 큰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항상 좁은 내수 시장으로 힌해 해외시장진출과 영업, 해외 시장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내에서도 경쟁사를 강하게 인식하고 경쟁하며,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한국은 매출 점유율 확대를 늘 추구하며 가격경쟁력을 위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한국은 또한 트랜드를 중시하고 디자인과 마케팅에 공을 들인다. 이런 전략은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래서 한국기업의 황제경영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경영자가 전권을 휘두르기에 빠르고 신속한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장인정신을 중시하며, 종업원 경영체제다. 그러니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서로 간 협조지향적이며 안정적이고 장기적 전략을 선호한다. 그리고 인재육성을 중시하고 기술과 품질 경쟁을 한다. 이는 경제가 안정적이고 기술혁신도 크게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선 강점이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시기를 놓친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서 일본이 실패한 이유다. 

 일본에게 2010년은 치욕의 한 해다. 세계 2위를 중국에 내준데 이어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의 충돌로 인한 외교 전쟁에서 희토류 등의 압박으로 인해 중국에 사실상 굴복하게 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 한국에선 이명박이 갑작스레 독도에 방문하게 된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당한 이 충격으로 강한 반중 반한 정서가 생겨난다. 일본정치권은 이를 적극이용했고 이로 이냏 아베가 다시 집권하게 된다. 

 중국을 강하게 의식한 일본은 아베가 쿼드와 인도 태평양전략을 구사하여 중국을 봉쇄하려 했고 미국의 트럼프가 이후 이것에 호응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여기에 바이든 정권도 힘을 싣고 있는데 한국의 보수 정권이 여기에 너무 쉽게 호응한 것이 문제다. 

 미중패권 전쟁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첫째는 디커플링 전략으로 양자가 직접 맞붙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10년간 GDP가 3% 중국은 4%가 감소하게 된다. 다른 전략은 우회적 대결로 미국과 서방자유진영이 연합해 중과 대결하는 구도다. 이 경우 미국은 1%감소하는 한편 중국은 무려 8%역성장을 하게 된다. 한국은 둘다 좋지 못하며 5%정도 역성장을 하게 된다. 유럽연합은 3% 일본은 2%역성장인데 비해 한국은 유독 타격이 크다. 이는 우리가 내수가 작은 통상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쉽게 블록화되지 않고 꾸준히 대결구도에서도 중과 교역하면 오히려 1%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호한 전략적 입지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중과 미일사이에서 모호한 위치를 고수하면서도 다른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인도와 아세안 시장이다. 양자모두 연간 5-6%의 고도 성장 지역이다. 특히, 아세안은 건설업도 활발하고 한류가 활발해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다. 한국인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으로 이런 것을 추구하려 했으나 역시 보수정권이 폐기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너무나도 쉽게 얻은 것도 없이 미국, 특히 일본이 원하는 구도에 한국이 편입된 것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표한다. 사실 역사상 한국은 일본의 진출에 대해 희생자의 입장이었고 한번도 동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3번째 흐름에 얻는 것도 없이 너무나도 쉽게 동조한 것이다. 그 결과는 대규모 무역적자다. 뉴스에 의하면 30년래 최대의 무역적자가 올해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한다. 외교가 경제이고 안보가 되는 지금 시점에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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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 - 해양생물학자의 경이로운 심해 생물 탐사기
에디스 위더 지음, 김보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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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혁명 이후 유럽 세력을 필두로 반지름 6400km나 되는 이 광활한 행성은 인간의 발자취로 뒤덮였다. 그들은 사람이 가보지 못한 지역은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현대에 이르러 지구에 대한 탐험은 사실상 끝난 듯 하며 이제 남은 것은 우주로의 진출 뿐인 듯 하다. 하지만 지구상엔 아직 인간이 가보지 못한 광활한 지역이 남아 있는데 바로 심해지역이다. 아직 인간이 진출하지 못한 이 지역의 영역은 인간이 가본 지역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 여기는 탐험이 매우 어려운데 햇빛이 들지 않고, 기온이 낮은데다가 내려갈수록 수압이 엄청나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가 우주보다 더 위험하다 생각하는데 우주에선 우주복과 바깥 사이가 고작 1기압 차이지만, 심해에선 수백, 혹은 수천 기압의 압력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틈만으로도 바깥의 물은 엄청난 압력으로 침투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찢어 놓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심해와 그 중층수에는 생각보다 많은 생물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해양생물학자로 수백번은 잠수정과 잠수복에 몸을 싣고 이 생물들을 관찰해왔다. 매우 중요한 첫 발견도 저자가 해냈는데 팰리컨 장어나 대왕오징어에 대한 것들이 그런 듯 하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중층수와 심해생물을 발광을 한다. 발광은 진화사에서 무려 50회나 독립적으로 진화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만큼 생존에 꼭 필요한 형질이란 뜻이다. 

 중층수에 사는 생물이 발광하는 이유는 이 곳에 마땅한 은신처가 없기 때문이다. 그야 말로 망망대해다. 연안이라면 해초도 있고, 가까운 해저도 있고, 산호도 있어 은신하기 충분하나 물밖에 없는 이곳은 360도로 뚫려 있다. 하지만 바다는 빛을 잘 투과시키지도 않고 산란시킨다. 그래서 반드시 빛이 거의 없는 어두운 곳이 존재하는데 이를 어둠의 가장자리라 한다. 지구가 자전을 하기에 이 어둠의 가장자리는 위치가 변화한다. 한 낮엔 바다 깊이 이동하지만 밤이 되면 표층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지구상 가장 거대한 생물군 이동이 하루에 일어나게 된다. 해양 중층수 생물들은 낮엔 어두운 중층수에 머무르다 밤이 되면 표층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서로 사냥을 한다. 

 생물발광은 다양한 색을 띠지만 육지에서 떨어진 외해로 갈수록 압도적으로 푸른색을 띤다. 이는 물속에서 다른 색은 거의 흡수되고 푸른색만이 압도적으로 가장 멀리까지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해와 중층수에 사는 생물들은 대개 적색은 띤다. 적색이 청색광을 흡수해버려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이 대개 청색광이기에 이 지역의 해양생물들의 눈은 거의 청색광만을 포착한다. 간혹, 적색광도 보는 것들도 있는데 이는 먹이 포착을 위해서다. 

 중층수의 생물들은 위장을 위해 몸도 변화시켰다. 이들은 매일 중층수와 표층수를 오가느라 많은 이동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렇기에 발광 외에도 에너지가 들지 않는 다른 위장술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신체 외형의 변화다. 대부분의 어류는 은색의 비늘을 갖고 매우 가는 몸체를 갖고 있다. 비늘이 은색이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빛을 받아 위쪽의 빛과 흡사하게 빛을 반사하게 된다. 때문에 포식자는 이를 잘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어류는 대개 등이 어둡다. 그러면 포식자가 보기에 아래로 갈수록 빛이 약해져 어둡기에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이를 역그늘 효과라고 한다. 또한 어류는 체형이 얇다. 어류는 배부분이 밝은 편으로 노출이 되는데 이를 최대한 줄여 안보이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돛새치나 청새치, 청다랑어, 청새리상어등 매우 빠른 속도를 가진 어류들 만이 둥근 몸체를 갖는 것이 허락된다. 이들은 포식자이거나 포식자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만큼 빠르기에 몸이 얇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발광을 하면 몸이 흡수하는 빛을 대체하여 사실상 역조명 역할을 하게 도니다. 완벽한 위장을 위해서는 생물발광이 방출하는 파장이 그들 위의 빛의 파장과 일치해야 한다. 때문에 발광 생물은 눈이나 다른 기관으로 빛의 변화를 실시간 감지해 발광 정도를 세밀하게 조정한다. 빛의 색상과 각도도 일치해야 하므로 발광색은 언급한 것처럼 당연히 푸른색이고 렌즈, 오목거울, 광섬유등을 사용하여 각도를 맞춰나간다. 

 중층수 생물과는 다르게 심해생물을 발광을 다르게 이용한다. 여기엔 아예 거의 빛이 없기에 발광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치명적 약점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포식자가 다가오면 순간적으로 강하게 발광하여 포식자를 일시적 실명상태로 만들어 도주하거나, 빛이 나는 물질을 뿜어내고 다른 데로 이동하여 포식자를 기만한다. 

 발광은 이처럼 위장 기능 외에도 짝짓기 용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랜턴상어와 바이퍼 상어는 둘다 배쪽에 발광기관이 있는데 랜턴상어는 측면에도 빛표식이 있지만 바이퍼 상어는 그렇지 않다. 랜턴상어의 측면 발광은 짝짓기 용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다양한 종분화를 일으켜 랜턴 상어는 무려 37종인데 반해 바이퍼는 겨우 1종에 불과하다. 짝을 유인하는 발광은 치명적으로 포식자도 유인하기에 짝짓기에 발광을 사용하는 심해 생물들은 빛구름을 방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여 빛과 자신의 몸을 분리시켜 포식자를 피하며 짝짓기에 성공한다. 

 눈의 크기는 빛과 관련이 깊다. 눈이 커지면 작은 빛도 잘 감지하지만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해양에선 수심이 깊어질 수록 생물체가 눈이 커지고 몸은 작아지는 경향을 띤다. 빛이 줄어들고 먹이가 줄어 몸을 크게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중층수로 가면 다시 눈이 작아지게 된다. 이는 은신을 위해 중층수 생물들이 대개 발광하여 빛을 내기에 눈이 굳이 커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해로 가면 발광생물이 다시 크게 줄기에 다시 눈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 중층수 생물은 75%가 발광하는데 비해 심해생물은 1-2%만 발광한다. 

 그리고 중층수와 심해는 발광색이 다르다. 중층수는 언급한 것처럼 파란색을 발광하지만 심해는 녹색광을 발광한다. 이는 해저 가까이 부유하는 퇴적물이 청색보다는 녹색광을 잘 투과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바다에선 세균들도 발광을 한다. 큰 발광 생물은 섬광을 발하는데 비해 세균 발광은 빛을 지속적으로 분출하기에 차이가 난다. 이것은 세균의 발광에 관여하는 화학반응이 호흡과 관련한 화학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생물은 자체 발광 기관이 아닌 세균을 통해 발광을 한다. 아귀나 손전등고기가 그러한데 이들은 발광 세균을 몸의 특정 기관에 가두고 이들에게 산소를 공급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으로 발광한다. 즉, 발광 때는 산소를 공급하고 아닐때는 차단하는 식이다. 이들은 공생관계로 발광 세균은 빛을 제공하는 대신, 보금자리와 영양분을 얻게 도니다. 

 발광 세균은 공생 이외에도 자체적으로 발광하기도 한다. 이는 진화상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발광은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기에 충분한 적응도가 있어야 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자외선이 요인이 된다. 자외선은 세균의 DNA를 파괴하는데 발광세균은 손상도니 유전자를 복구하는 포톨리아제라는 광분해 효소를 갖고 있다. 이는 발광 효과를 갖는다. 그리고 세균도 포식 작용을 하기에 발광을 하면 먹이를 찾느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세균은 분변에 모여 발광을 한다. 심해 생물이나 중층수 생물은 표층 생물의 사체나 배설물이 중요한 먹이가 된다. 발광 세균은 이 분변에 모이는데 발광을 하여 분변을 눈에 띄게 하여 포식자의 내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들은 포식자의 내장에서 살아남아 더 영양분이 많은 환경에서 번성하게 된다. 또한 이들의 발광에는 정족수 감지 기능이 있다. 세균 하나하나의 발광은 대단치 않아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게 된다. 따라서 어느정도 규모가 되어야만 발광이 의미가 있는데 이를 위해 세균들은 특정 분자를 방출하고 이것이 어느정도 임계점에 이르러야 같이 발광을 한다. 

 책에는 저자가 다양한 해저 탐험을 통해 훔볼트 오징어나 대왕오징어, 팰리컨 뱀장어, 갈치 등 무수히 많은 해양생물을 만나며 경외감을 갖게 되고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며 위기에 처하게 되는 순간도 나타난다. 하나하나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어릴 적 매우 개구장이 였던 것 같은데 그로 인해 허리가 부러진 채로 자라나로 그 증상이 어른이 되어서야 나타나 죽을 고비에 처하기도 한다. 책 제목처럼 우린 심해와 바다 중층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일으키는 온난화는 알려진 생물 외에도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생물들도 절멸시키고 있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와 탄소가스의 흡수, 남획으로 해양 생태계는 어류보다는 해파리류가 번성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머잖아 해파리 냉채만 먹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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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닷슈 2023-12-05 21: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연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12-06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로벌 워밍의 시대를 지나
이제 글로벌 보일링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하는데...

당대와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별의 환경을 위해 미약하나
마 관심과 신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닷슈 2023-12-07 16:0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 문제 해결 못하면 다음세대는 수영과 부가 모두쥰겁니다
 
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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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발다치의 추리소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그 네 번째 작품이다. 1-3번째는 출간과 더불어 바로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시리즈를 지난 몇 년간 놓치고 있었다. 그 사이 이 작품을 포함해 세 권이 더 나온 것 같다. 모두 봐야겠다. 데커 시리즈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추리 소설을 많이 보진 않지만 그래도 데이비드 발다치와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이 재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도 볼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이 둘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에이머스 데커는 발다치가 만든 독특한 캐릭터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거구를 자랑하지만 뇌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고, 그 다친 뇌가 그를 변화시켜 경찰의 길로 이끈다. 지금은 FBI다. 그는 공감능력과 사회성을 상당 부분 상실한 대신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뇌를 갖게 되었다. 이는 수사엔 축복이기도 하나 지옥이기도 하다. 데커는 자신의 딸과 아내, 처남이 살해당한 장면을 영원히 기억하기 되었기 때문이다.

 4번째 시리즈에서 데커는 배런 빌이라는 곳으로 휴가를 가게 된다. 같은 FBI동료인 재머슨의 자매 집으로 휴가를 따라 나온 것이다. 데커는 재머슨의 조카와 놀아주다가 곧 폭풍우가 들이닥칠 것을 감지한다. 자매집 뒷에는 집이 하나 더 있었는데 데커는 그곳에서 보이는 불빛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다. 곧 폭풍우가 밀어닥치고 데커는 그 집을 향한다. 집을 급습한 데커는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희생자 둘 은 모두 기묘한 방식으로 살해당한듯 했다. 이상한 것은 무척 한적한 이곳에서 범인이 어떻게 이렇다할 목격과 흔적도 없이 두 개의 시신을 이 집에 놓았냐는 점이었다.

 휴가기간임에도 데커는 이를 수사하기 시작한다. 우린 휴가기간이 아니냐는 재머슨의 말에 데커는 바로 휴가니깐 이런 걸 한다는 식으로 응수한다. 사건은 점점 커진다. 사실 배런 빌에서 살인은 총 6건이 발생한 상태였다. 데커는 자신만의 뛰어난 능력을 이용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을 찾아나간다.

 마을 배런빌은 몰락한 미국의 한 소도시다. 과거 탄광이 있고, 제조업이 발달하여 마을 사람들은 대개 이 직업에 종사했다. 그리고 그 탄광을 발견해 굴지의 사업가로 부를 축적한 것이 배런 1세였다. 세계사의 흐름처럼 미국의 제조업과 석탄산업을 몰락했고, 배런빌의 사업들도 몰락해버린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활력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재기하지 못하고, 약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마을에서 6명이나 살해당한 것이다. 

 마을의 높은 곳에는 배런가의 후손을 살고 있다. 그는 대저택을 갖고 있지만 겉모습만 요란할 뿐 오래도록 관리가 되지 않아 폐가나 다름없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된데는 배런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아무 상관없는 후손 배런을 온 마을 사람들이 증오하고 괴롭히며 부자라 생각한다. 실제 배런은 무척 가난한데도 말이다. 

 데커가 수사한 사건엔 지역 경찰이 가세하고, 미마약수사국도 관여하게 된다. 데커가 발견한 시신 두구가 사실 미마약수사국의 수사관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마약과 배런가, 그리고 과거의 증오와 사건들이 얽혀 흥미진진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에이머스 데커는 습격을 당해 머리에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데커는 긴 숫자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시적으로 격게되는데 위험한 상황이나 살인사건 장면을 보면 나타나는 그의 공감각 색채도 사라지게 된다. 반면 데커는 기존의 능력을 크게 유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챙기고 공감해주는 사회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다. 데커가 변하게 되는 것일까? 아마 시리즈가 계속되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데커는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데 그 뒤에는 배런가와 관련한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긴장감 있고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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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06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이틀만 보고는 왠지 제 생각
이 나더라는 ㅋㅋ

휴가가 필요해~
 
악을 기념하라 - 카체트에서 남영동까지, 독일 국가폭력 현장 답사기 보리 인문학 2
김성환 지음 / 보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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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국가엔 악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그 국가에는 국가가 악을 자행한 시간과 장소, 사람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면 역사가 되어버리고 악을 직접 지시하고 실행한 사람은 무책임하게 죽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장소만은 어떻게든 남는다. 그 건물이 온전하던 아니든 적어도 터는 남는다. 일각에선 이런 장소를 그대로 온존하여 악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 끔찍한 기억을 지워내고 싶어한다. 지워내고 싶은 자는 악에 가세했거나 옹호했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자, 혹은 그 일을 당해서 트라우마를 지우고 싶은 피해자, 혹은 혐오를 보기 싫어하는 일반의 감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악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기념은 아니다. 기억에 가까운데 그런 장소를 지칭하는 한국어가 마땅히 없고 기념관 밖에 없으니 이런 용어를 책전체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악이 많이 자행된 국가다. 굴곡진 역사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 세력과 일반 한국인에게 일본인과 친일파가 자행한 악, 분단 후 전쟁 전 혼란기에 여수, 순천, 제주에서 행해진 악, 한국전쟁 중 양 세력에 의해 행해진 악,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정권기에 행해진 악들이 그것이다. 이 악은 당시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한국은 악이 일어난 장소를 온존하기 보다는 없애려는 쪽에 가깝다. 대표적인 것이 김영상 정권때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였다. 당시에도 논란이 조금은 있었지만 결국 대다수 여론은 그것을 없애는 것 선택했다. 저자는 이것을 온존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저자에게 거의 동의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좀 다르다. 악의 장소는 온존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맞지만 총독부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과 광화문을 너무나도 철저히 가리고 파괴했기에 그냥 두기엔 좀 그랬다. 부수기 보단 어려워도 인근으로 이전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실 우리에게 잘 보존되어 남아 있는 악의 장소는 많지 않다. 저자는 위의 열거된 악이 자행된 시기 중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주로 주목한다. 당시 공포의 장소는 남산 중앙정보부 6국, 서빙고의 보안사 분실. 남영동의 대공분실이다. 이중 위 두 개는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은 남영동 대공분실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곳에 주목하고, 책에서 그 온존 방향을 주장한다. 

 그리고 악이 엄청 자행되었고 그랬음에도 이를 잘 보존하고 기억하며 교육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주목한다. 독일은 2차대전 중 반나치체제인사,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유대인, 집시 등을 격리 수용하고 절멸시킨 수용소와 이를 자행한 국가폭력기구들이 많이 있었다. 저자는 이런 독일을 집적 방문해 살피고, 남영동 개발의 해법을 찾는다.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로 대개 독일과 일본을 지목한다. 그들은 엄청난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후의 행보는 우리가 알듯 사뭇 다르다. 양국다 대표 지도자가 공식석상에서 피해국에 사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횟수와 진정성에서 독일이 앞선다. 또한 일본은 사죄의 발언을 언제했나 무섭게 자국내 정치인이 그를 뒤짚는 망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독일은 그런 면에서 일관된다. 또한 자신들이 행한 악의 장소를 철저히 인정하고 보존하는 점에서도 다르다. 일본은 하시마섬을 국제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조건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기록하기로 하였는데 이런 국제상에서의 약속마저 지키지 않는 국가다. 

 양국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뭘까. 혹자는 냉전 체제를 말하지만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한다. 미국은 2차대전의 원흉인 독일과 일본의 전쟁 범죄자를 철저히 엄단하려 하였다. 하지만 발빠른 소련의 움직임이 장애였다. 소련은 유럽에서의 점령지를 빠르게 공산화하였고, 아시아엔선 북한과 중국이 공산화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냉전의 경계선이 있던 침략원흉국가를 빠르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의 재건을 위해선 실무를 행할 공무원과 기업인이 필수였고, 그래서 전쟁에 가담한 이들 상당수가 이렇다할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우린 일본만 그렇다 생각하는데 사실 독일도 그렇게 되었다. 

 양국의 행보가 갈리는 것이 이후다. 저자는 그 차이로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꼽는다. 독일은 나치청산에 사실상 실패한 후, 거의 20년을 그대로 간다. 나치청산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바로 68혁명 세대다. 이들은 전쟁에 무책임하게 동조한 아버지 세대를 비방하고, 나치 청산 문제를 20여년만에 독일사회 수면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독일의 과거 청산은 크게 5단계로 나뉜다. 우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68혁명, 1980년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TV방송을 계기로 일어난 반성 운동, 1980년대 역사 수정주의 논쟁, 1990년 통일 이후 동독 과거사 청산 논의다. 

 이처럼 독일의 과거사 청산운동은 2차대전 종전과 같이 완성된 것이 아니고 수십년 간 독일 시민사회의 노력과 그에 호응한 정치권의 반응으로 인해 조금씩 이뤄졌다. 책을 보다보면 기념관이 1980년대나 90년대 지어진 것도 있는데 그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또한 독일 역시 한국처럼 지방마다 정치색이 보수, 진보성향인 곳이 있기에 지역마다의 접근과 시기도 각각 달랐다. 이런 독일의 모습을 보면 결국 일본이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를 시민사회의 미약한 힘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반면교사로 한국 역시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하다면 우리의 악을 인정하고 온존하기 어려워 지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나치 수용소의 역사와 유대인 절멸정책

독일은 1차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생겨난다. 전쟁의 책임으로 황제는 퇴위하고 공화국이 들어선 것이다. 당시 사회주의 세력와 우파세력의 갈등이 극심했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단적 입장을 배제하고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정치체제를 설립했다. 그래서 공화국을 유일 체제로 삼고, 의회의 권한을 세웠고, 비례대표제를 운영했으며 복지제도와 사회보장제를 도입했다. 또한 평소엔 의회우위의 정부를 운영하면서도 당시 시국이 어지러웠기에 비상시국엔 대통령에 비상대권을 갖춰 혼란을 수습케 하였다. 

 이처럼 바이마르 공화국은 좋은 정치를 시도하였지만 대내외 조건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했기에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또한 패전의 책임으로 상당 부분의 영토도 상실하였다. 여기에 1920년대 세계 경제공황이 불어닥치며 민심이 급격히 이반되었다. 이 때 나치당이 등장한다. 이들은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한 바이마르 공화국을 매도하고, 사회주의 세력이 1차대전에 찬성한 것을 공격하여 이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결국 1930년 내각은 붕괴하고 대통령 비상대권체제가 들어선다. 당시 대통령인 힌덴부르크는 다수당인 나치당의 당수 히틀러를 총리로 지명한다. 히틀러는 이를 수용하자마자 대통령을 가두고 공산당, 사민의원을 체포한다. 그는 입법권을 히틀러 행정부에 위임하는 악법도 통과시킨다.

 그의 이런 과감하고 위험한 행보에 긴장을 느끼는 독일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더 시국이 그를 도왔다. 국회방화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사실 일탈 개인의 소행이었지만 히틀러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사회주의자 유대인의 일로 꾸민 것이다. 대대적 사정이 이뤄졌다. 전국에 걸쳐 공산당직자, 공산, 사민의원을 체포했고 그 수가 무려 8천에 달했다. 히틀러는 경찰력 뿐만 아니라 개인 친위대인 SA를 활용하였고 이들은 훗날 그 악명높은 SS가 된다. 

 한편 수용인원이 많아지자 전국의 유치장이 부족해진다. 나치당은 유대인이 운영하던 공장을 무단 압류하여 수용소로 개조하였는데 이것이 훗날 독일 전역의 유대인 절멸 수용소가 된다. 이 수용소는 나치 초기 공산당, 사회주의자를 가두는 용도로 쓰였고, 격리와 노동력 착취가 주 목적이었다. 나치는 수감자를 식별하려고 여러 색의 역삼각형을 썼는데 유대인은 유독 노랑색의 정삼각형을 썼다. 그러다보니 유대인이면서 사회주의자면은 별 모양의 식별표를 갖게 되었는데 이게 악명 높은 다윗의 별 수감자 식별표식이 된다. 나중엔 거의 죽음을 의미하는 모양처럼 여겨지게 된다. 당시 핍박받고 처형된 의원수는 무려 96명이었다. 민주주의의 완전한 파괴였다.

 히틀러는 수용소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대규모 시설로 격상하고자 하였다. 그런 임무를 맡긴 자가 히믈러였다. 히믈러는 또 아이케를 등용한다. 아이케는 전국의 수용소를 총 관리하였는데 그는 작센 수용소를 먼저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델로 삼았기에 이후 나치의 수용소는 하나같이 비슷한 양태를 띄게 된다. 

 나치는 이후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1941년 이후 유대인 절멸 정책으로 전환하였을 때 존더 코만도를 유대인중 선발했다. 이들은 건장한 자들로 하는 일이 동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인도하고 죽은 뒤 시신을 소각장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임기는 고작 6개월로 이후엔 그들도 같은 운명이었다. 잔혹하고 슬프게도 이들은 그 6개월 간의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위해 이일을 도맡았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동유럽에서 가장 잘 자행되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의도주의와 기능주의가 독일 학계에서 충돌했다. 의도주의는 히틀러의 중앙정부 지휘하에 학살이 일사분란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기능주의는 기존의 반 유대주의와 더불어 학살이 각 지방에서도 나치의 직접적 명령없이도 자율적으로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학계는 양자를 절충하는 것으로 나치의 직접 시행과 이에 자극받고 호응하는 지방조직의 자율적 자행이 같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한다. 

 동유럽에서 유대인 학살이 잘 행해진 것은 당시 동유럽 사람들의 반감 때문이었다. 이들은 전쟁 이전 소련의 강제병합과 침공으로 반소주의 반공주의가 강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전 유럽에 퍼진 반 유대주의도 있었다. 나치는 해방군처럼 여겨졌고 이들이 선전하는 공산주의자가 곧 유대인, 유대인이 곧 공산주의자라는 슬로건은 아주 잘 먹혔다. 동유럽에서 유대인을 살해하는 일반적 방법은 이들을 숲으로 끌고가 땅을 파게한 후 일렬로 무릎끓려 총살 한 후 다시 묻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손이 많이 가자 나중엔 이동한다고 버스를 타게 한 후, 밀폐시켜 배기가스를 다시 집어넣어 일산화탄소로 죽게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후 청산가스가 발명되자 버스안에서 가스를 사용하게 되었고 수용소에서도 가스를 이용한 집단 학살이 일반화하였다. 유대인들은 씻는 다는 목적으로 샤워실에 들어섰는데 이후 문이 밀폐되고 가스가 새어나왔다. 가스는 무거워 아래부터 찼다. 그러다보니 가스실에선 죽음의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가장 약한 아이와 노인들이 위로 오르지 못하고 깔려 가스를 마시고 죽었다. 가스를 피해 그 시신 위로 올라간 여성이 죽었고, 마지막은 그 시신 더미로 올라간 건장한 젊은 남성차례였다. 이렇게 죽음을 맡게 되니 가스실에는 사람이 켜켜이 피라미드처럼 쌓인 죽음의 피라미드가 생겨나게 되었다. 정말 끔찍한 정면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기념해야 하나

저자는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며 기념관에는 조성에 장소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이 무엇보다 기념관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물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픔을 아픔 그대로 드러내어 타인이 그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치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새로 짓고, 치장하는 것은 공감을 약화시킨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엔 이런 대표적인 장소가 있는데 바로 4.19기념장소다. 원래 4.19이후 정부는 기념장소를 서울시청앞과 남산에 조성하려 하였다. 그곳이 대표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이런 민주적 혁명을 부정하기도 옹호하기도 어려웠던 박정희 정부는 장소를 아무 상관없는 수유리로 옮겨버린다. 여기에 조형물도 교체해버렸는데 김경승이 만든 애도상과 수호자상은 남여로 매우 비한국적인 우람한 체격의 사람들이 조각되었다. 이런 장소성과 당대 한국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모습은 기념관을 피상적이고 공감이 어려운 장소로 만들어버렸다.

 서대문 형무소도 마찬가지다. 서대문 형무소는 악이 역사적으로 자행된 곳으로 일제와 독재정권이 모두 사용했다. 하지만 싹 새로 만들어버렸고 시기도 특정지어버렸다. 지금의 서대문 형무소는 주로 일제의 악을 드러내는데 사용된다. 또한 새로 제작한 고문 도구 및 마네킹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성을 훼손하였다. 

 저자는 남영동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남영동은 보존되어야 하고 새로 신축할 필요가 있다면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외양이 색달라 본래 공포건물의 아우라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기념관은 피해자를 기억하나 그 범죄를 기획하고 조직, 실행한 사람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치, 상황도 잘 설명하고 드러내야 한다. 한국은 이런 범죄에 대해 피해자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와 그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필수적이다. 즉, 현장과 피해 기록을 잘 보존하고 국가폭력이 자행된 정치, 사회적 맥락을 기념관을 잘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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