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이 책을 사서 고이고이 모셔두었었지. 읽어야지. 너무 궁금했던 책이니까, 읽고야 말거야.

시간이 흐르고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또 생각했지.

언젠가는 읽겠지. 그냥 지금은 다른 책에 밀려있을 뿐이야...









세월이 흐르고 한 권으로 모아놓은 이 책을 다시 샀지. 

세 권짜리보다 더 금방, 한번에 읽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새책을 사고 신났었지.

합본 개정판이 있으니 이제 구판은 필요없어. 책장에 자리도 없는데 구판은 팔아야지 싶었지.

그래서 냉큼 구판을 팔고 이 책을 또 고이고이 모셔두기 시작했지.


2년쯤 전에 이사하면서 어느 정도 책장 정리를 시작했는데, 그때 이 개정판도 정리 목록에 있었다.

이제까지 안 읽었는데, 아마도 이 책을 금방 읽지는 않을 것 같아?

그리고 다시 읽고 싶어지면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는 거지 뭐. 그래도 좀 아쉽기는 한데.

아, 정말 생각도 단순하고 판단도 빠른 인간이여... 그래서 중고로 팔아버렸네. 미련이 없.............이?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이 또 새로 나왔다는 말입니다.









두번이나 중고로 팔아버린,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셔두다가 내보내버린 이 마음은 뭐란 말인지...

출간 소식을 듣고 다시 사버렸단 말입니다. 하아.....


네에, 받고 보니 양장입니다. 탄탄해 보입니다. 그동안 출간된 버전보다 표지 디자인이 참, 좋습니다.

이거 이거 오래 책장에 모셔두어도 될 정도로 저의 인내심이 생길 것 같은 소장각입니다만............

이번에는 제발, 혹시 되팔더라도, 읽고서 내보내고 싶은 간절함에,

새책 사고 기분이가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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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10-14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읽기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첫 합본으로 읽었는데, 에곤 실레 그림 좋아해서
새로 나온 표지보다 예전 표지가 더 맘이 듭니다만~

구단씨 2022-10-14 16:07   좋아요 1 | URL
제발요...... ^^
저도 첫 합본 표지 정말 좋아했어요. 이 책이 합본으로 나오다니!
합본으로 나온 세 가지 표지 다 예뻐요. ^^

호우 2022-10-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저를 보는 기분이네요. 너무 끌려서 사고 안 읽고, 정리하고 후회하고. 표지 그림이 좋군요. 어쨌든 새 책은 기분을 좋게 하지요^^

구단씨 2022-10-26 23:0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ㅎㅎ 새책은 기분을 좋게 합니다. 정말 이번에는 꼭 완독하고 싶습니다!!!

여명에선풍적수 2022-10-25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이 책보다 님 글이 더 재밋습니다 진짜로

구단씨 2022-10-26 23:03   좋아요 1 | URL
저만 이런 거 아니죠? ^^

정상맘 2022-10-2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링링 2022-12-1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너무 재밌어요 ㅋ ㅋ ㅋ
 


자라면서 끊임없는 비교에 시달리고 괴로웠던 게 나만의 기억은 아니리라.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비교와 간섭으로 받아왔던 고통이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럼 결혼하면 끝이냐고? 그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낳는 데로, 딸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 혼자는 외로우니 둘 이상은 낳아야 한다 등등 남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연관 없는 사람들이 나의 자녀 문제를 정하려고 든다. 듣기 싫은 소리 들으면서 참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이러다가 정말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정도의 극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자기 인생이 아니고, 남의 인생이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사는지,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살아가는 순간마저도 그들의 몫인 거다. 제발 멋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헤치고, 걱정이랍시고 오지랖 떠는 일 좀 그만해주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행이 아니라 불쌍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나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지곤 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 문제 때문이다. 새로 관계를 맺고, 무슨 통과의례처럼 호구 조사가 시작된다. 나이는 몇이냐, 어디 학교 나왔냐, 결혼은 했냐, 아이는 몇이냐. 특이 이 나이 먹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특히 같이 일하는 사이로 엮이는 사람들은 아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다. 여기 나와 일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는다. 아이가 없다고 말하면 순간 몇 초쯤 침묵.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대답은 '아...' 이미 아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특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이 없는 우리 부부의 삶을 불쌍하게 보는 눈빛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아이를 낳는 건 개인의 선택이고, 낳았으면 책임을 다해 길러야 하는 게 부모의 의무이다. 그거면 된 거다.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처음부터 계획했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그냥 각자가 감당하면 되는 일 아니었나.


아이 없는 우리 부부가 어떤 마음과 계획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되던 중에, 아이 없이 살아가는 부부에 관한 책 몇 권을 읽게 됐다. 사실 다 읽을 필요도 없긴 했다. 온전하게 우리 둘이 잘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고, 노후의 삶이 불행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외에 뭐가 더 있을까. 그런데도 굳이 읽어본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 부부가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게 잘한 일인지 아직도 100%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까지 다 고려해야 하니까. 그래서 인생에서 아이를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가 더 듣고 싶었다. 어떤 자세로 노년을 준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를 거로 예상했지만, 역시나. 각자의 이유로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고, 각자에게 맞는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자발적으로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인 10년 차 부부의 이야기 우리, 아이 없이 살자에서는 부부 사이의 변화를 찾아냄으로써, 관계 재정립과 아이 없는 부부생활을 잘 만들어가는 계기로 여행을 선택했다. 1년간의 여행 후 이 부부는 분명 달라졌다. 보편적인 정답이 아니라 그들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 말고도 부부 관계에 조금은 고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들이 함께 겪은 여행지에서의 고단함을 같이 경험해도 좋겠다. 어쩌면 실컷 싸우기만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그 힘든 시간을 같이 경험하다 보면 사랑을 넘어선 동지애가 싹틀지도 모른다. 전통적 사고나 사회적 규범이 만든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던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룰을 만들어 지켜나가기로 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175페이지, 우리, 아이 없이 살자)


딩크족 여성 18명의 이야기를 직접 담아낸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역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그들의 선택이고, 본인의 선택에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의 시선과 말들은 어김없이 이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듯이 참견하며 인생 지도를 다시 그려주려고 한다. 타인이 잊고 있는 그것, 아이 없는 삶을 여성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와 같이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라는 것. 무례한 오지랖에 상처 입으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노하우를 같이 듣게 된다. 실질적인 경험담을 듣는데 최적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서른을 지나고 마흔을 향해 가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 여자들의 친구 관계는 대개 결혼을 중심으로 한 번, 출산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재편된다. 삶의 형태, 사는 지역, 관심사, 친밀도,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 자유와 책임의 문제까지 서로 달라지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60페이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몇 권 더 읽긴 했는데, 비슷하게 중복되는 부분도 많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중에 객관적으로 들리면서도 당당하게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이었다. 저자는 아이 없는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선택을 위한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확신을 들려준다. 중립자의 시각에서 아이 없는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다. 저자가 상담했던 사람들은 거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으면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는 사람들(어쩌다 보니 아이 없이 살게 된 사람들), 행복하게 아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 아이를 낳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들(사정상 어쩔 수 없이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 기저에는 위의 세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본인의 선택에 잘 책임지며 살아가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치 비정상의 삶이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은 좀 거둬주시기를.


저자는 우리 사회의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자녀를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자녀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일부 부모는 자녀를 낳은 일을 후회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다. 피임약의 등장은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결혼했으니(결혼하지 않았어도)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겼던 시대는 지나갔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누가 탓하거나 혀를 찰 일이 아니라는 것. 부모가 아이를 낳은 것에 책임을 지듯,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있는 가정과 아이가 없는 부부가 겪는 경제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기에 이 부분에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노키즈존을 선호하는 사람과 비선호 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시선의 차이가 있는지, 아이가 있는 집에는 세금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혜택을 주면서 아이가 없는 집에는 필요해도 받지 못하는 혜택이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더 많고 다양한 생각들이 언급되는데, 싸움판 벌어질까 봐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어떤 정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이 선택이든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의 문제일 텐데, 개인의 선택 문제에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여길 문제가 있다면, 이는 깊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이 주제의 많은 책이 아이 없는 삶 자체를 찬양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고, 그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이 고단함에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일의 긍정적인 면만 말하지도 않는다. 아이 없이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이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고민에 저자는 말한다. 아이 있는 삶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고, 어떤 불안이 더 큰지 비교할 것 없이 비슷하다고, 이런 고민 자체가 헛된 일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이 없는 삶에 대해 누군가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려고 든다면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사생활을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다고, 이 삶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말하면 된다고,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를 인지할수록 불안감은 덜하다고 말이다.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하는 게 인생이 아니었던가.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없다면 택할 수도 있는 몇 가지 길을 부모가 됐다면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혹은 생물학적인 조건으로 부모가 될 수 없다면, 인생의 다른 목적을 찾아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의 사명은 각자 내린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풍요롭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270~271페이지,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아이 없는 삶을 먼저 살아본 이들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표현하는 ‘childfree’가 더 어울리긴 한다. ‘childless’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반면 ‘childfree’는 아이 문제를 우리가 선택했다는 어감을 담고 있어서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와 더 맞는 듯하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제각각이더라도, 아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건 똑같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을 찾아가게 하는 글이다. 지금 내가 늦은 저녁 시간에 남편과 둘이 각자의 책을 읽으며 뒹굴뒹굴하는 것 같은 취미가 필요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노년의 만족이 다를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성격도 아주 다른데, 다행히 비슷한 거 하나는 책을 보는 일상이라는 거다. 나는 출간된 종이책이나 전자책을, 남편은 지금 연재 중인 작품들을 찾아서 본다. 서로 시간 보내는 일이 아주 다르지 않게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이 없는 부부를 바라보는 편견에 무심해지는 것. 아이가 있어도 불행할 수 있듯이, 아이가 없는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 지금 바라는 소박한 세 가지다.



*) 이 책에는 더 많은 사례와 그들의 선택에 대한 근거, 아이 없는 부부에게 사회가 부여하는 불평등한 정책들이 언급된다. 여기에 다 옮길 수도 없지만, 각자의 선택과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를 것이기에 한마디로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과 다른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국가의 정책과 세금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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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29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동감 합니다!
사회의 관습 통념
가족의 개념 의미가
각자의 삶의 방향과 추구하는 삶의 모습에 맞게 살아 가는 것!

서로 조율 하면서 ^^

구단씨 2022-09-29 22:07   좋아요 3 | URL
그냥요... 더도 바라지 않아요. 서로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지 않다는 것만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미미 2022-09-29 14: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감입니다. 저도 별의별 일 다 겪었어요.
최재천 교수님이 그러더라구요. 출산률이 떨어지고 있어도
워낙 기본값?이 (세계인구) 상당히 커져있기 때문에 인구증가가 소폭 상승해도
증가율이 과거와 비교가 안되게 크다구요.
이런 상황에서 보면 출산율 저하는 ㅡ위기다 뭐다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ㅡ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다수의 횡포는 어디에나 있는것 같아요. 최근 통계를 보니 이제 절반이상은 비출산을 선택하던데
머지않아 왜 안낳느냐등의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는 질문은 사라질거라고 예상합니다.
저도 이 책들 다 읽어보고 싶네요.^^

구단씨 2022-09-29 22:11   좋아요 4 | URL
저하고 무슨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오늘 갑자기 옆자리 20대 중반 남자 동료가 출산율이 더 떨어지고 있어서 큰일이라면서,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말 듣고 깜작 놀랐어요. 어디서 내가 쏟아내는 속내를 듣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가치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하길 바라고 있네요.

서니데이 2022-10-07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구단씨 2022-10-10 22:1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mini74 2022-10-07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가 하나인데 어떤 분이 대뜸 하나 더 낳아
애국하라고. ㅎㅎ 아니 이 무슨 소리지 했습니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10-10 22:13   좋아요 1 | URL
애국의 기준이 뭘까 궁금해지긴 해요.
감사합니다. ^^

이하라 2022-10-07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2-10-10 22:1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하루 평균 400~500명의 민원인을 나와 옆자리 동료가 상대하고 있다. 짧게는 1~2, 길게는 4~5분씩 많은 사람과 얼굴 맞대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반년이 넘게 일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매일 느낀다. 좀 심하게 말하면 매일 진상을 마주한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진상은 매일 업그레이드되어 나타난다. 말 그대로 X진상.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대한 적도 없거니와 세상에 이렇게 많고 다양한 진상이 있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게 하루하루 멘탈이 뿌리째 흔들리곤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마스크 안에서 내 입은 소리 내지 않고 욕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에 마주할 사람은 더 심각한 진상이다.’라고 읊조리며 눈앞의 사람을 상대한다. 사람 성격 쉽게 안 변한다고, 어차피 두 번 볼 사람은 거의 없으니 진상 개조에 마음 둘 일은 아니다. 빨리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정말 오랫동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는데, 나이 든 사람의 반말이다. (나이 든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볼 때마다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다짐한다. 내가 하루에 마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 나이가 든 사람이다. 보통 60대 이상의 노인분들. 딱히 적당한 호칭을 찾을 수 없어서 보통은 어머님, 아버님,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는 겉으로 보이는 차림새에 상관없이 예의가 바르고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존대하면서, 찾아온 용건을 차분히 말하고 잘 해결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반말인 사람들이 있다. 이거 해줘, 안 했어, 모르지, 내가 어쨌는데, 등등. 반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난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런 거지? 나이를 먹으면 상대가 누구든 저렇게 말을 놔도 되는 건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초면에?


이럴 때마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우리는 나이를 왜 먹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경험도 많아지고, 뭘 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될만한 세월인데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뭔지... 나이를 먹었으니 대접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당연하게(?) 말을 놓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뭐든 양보하고 우선으로 해줘야 한다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었으니 당연하게 먼저 해주고 양보하고 상대가 손해를 봐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몸이 불편할 테니, 판단이 둔해질 수도 있을 테니, 한번 말한 것을 바로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 도와 드리고 안내하고 살피는 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도 계속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눈앞 노인의 나이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건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여겼다. 나의 부모이고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 배려를 버리고 싶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많은 노인을 만났고, 많은 반말을 들었다. 반쯤 올린 존댓말에 거의 내린 반말에 익숙한 하루를 보내던 중,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민원인을 마주했다. 너무나도 심한 반말 폭격에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표현해야 하는데, 싸우지 않으면서 적나라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몇 초 고민하다가 말이 쏟아져 나왔다. 민원인이 찾아온 목적을 다 해결해주고 한마디 건넸다.


구단씨 : 어머님, 혹시 저를 아시나요?

민원인 : 그럼, 알지~

구단씨 : 어머, 정말요? 저를 어떻게 아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민원인 : . 전에도 여기서 본 적 있어~

구단씨 : 아니요. 그런 거 말고요. 혹시 원래 저를 알던 분이신가 해서요. (진짜 내 기억에 없는데?)

민원인 : 아니, 그건 아니고. 여기서 처음 봤는데?

구단씨 : , 그러세요. 저는 또... 처음 오시자마자 너무 편안하게 반말을 막 하셔서, 제가 아는 분인데 못 알아뵌 줄 알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 여쭤봤어요.

민원인 : (정말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죄송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사과하는 걸 보니 알아듣기는 한 것 같은데, 아마 뒤돌아서서 육두문자를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저 대화를 끝으로 나는 다음 사람을 부르며 그 민원인에게서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옆자리 동료 역시 나와 비슷하게 정신이 피폐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20대 청년이 한 달 반가량 겪은 정신적인 피폐함은 그에게 절대 서비스직은 못 할 것 같다는 교훈을 주었다지. 내가 그 민원인에게 하는 말을 듣고 옆자리 동료가 잠깐 감탄의 눈으로 쳐다보기는 하더라만. 글쎄, 반년 넘게 벼르고 벼르다 꺼낸 말이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모르겠지만, 그 민원인이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처음 본 사이에 전혀 친하지도 않고, 많은 관공서나 은행 등등 이용하면서 만나는 직원에게, 자기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말부터 시작하는 무례한 태도가 바로 본인의 얼굴이라는 것을. 자기 자식이 어디에선가 자기같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누구나 늙는다. 언제까지 젊은 나이에 머물 수 없다는 게 인간의 몸이니까.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이렇게 배우면서, 혹시라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을 계속 배워가는 게 나이 듦의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 살아왔던 라떼만 계속 고집하지 말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같은 것만 찾지 말고,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 다른 생각도 들어보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쌓는 것. 말하는 것처럼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의 고통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건 안다. 이렇게 해야지 하는 다짐보다 이렇게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장점으로만 채울 수 없다면 단점을 지우면서 살아가는, 그것도 잘살아가는 잘 늙어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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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8-17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인류애가 사라지게 하는 진상들이 많군요ㅠㅠ 저도 일하면서 반말 제법 듣는데 제 동생은 정말 심한가 보더라구요. 약국에서 일하는데 진짜 자기는 노인포비아라고, 너무 공포스럽다가도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더라구요. 배려를 권리로 여기고 나이를 훈장처럼 생각하고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구단씨 2022-08-18 00:54   좋아요 3 | URL
방송으로 비유하자면, 정말 비방용 진상들이 어마무시합니다.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진상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말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저 정말 노인포비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ㅠㅠ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사람이 존중받으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요...

햇살과함께 2022-08-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힘드시겠어요..
제 친구도 공무원인데 민원실 발령 받으면 정말 괴로워하더라고요.
전화 받자마자 욕 하는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나이 들어가면서 의식적으로 반말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되요.
친근감 표시(언제 봤다고??)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2-08-18 09:53   좋아요 1 | URL
저는 공무원은 아닙니다만, 정말이지 어느 관공서든 일반 회사 민원실이든 괴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알라딘 고객센터 통화도 조심히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

오후즈음 2022-08-1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비슷한 일을 해 본적이 있어요. 마스크 없는 그때 집으로 오면서 수없이 혼자 속으로 욕했던때가 있었어요. 특히 특정한 지역 사람들이 너무 괴롭더라고요, 저도 늘 반성합니다. 난 저렇게 늙지말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님 내일도 화이팅 입니다

구단씨 2022-08-25 21:59   좋아요 0 | URL
고된 한주였어요. 월요일부터 사건이 터졌고요.
결국 사건이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다른 파트에서 다른 민원 건으로요... ㅠㅠ
결론은 뭐, 저희가 참고 해야 한다는 지침 같은 조언 같은 뭐 그런 공지가 있었더랬죠...
화가 난다고 다짜고짜 반말부터 쏘아대는 인간들 보면, 누가 잘못 했는지가 아니라 그냥 저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 합니다.
 



오메, 두권짜리네.

신간 알림 소식 듣고 들어왔더니, 이렇게 두툼한 장강명의 책은 처음 만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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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올라오는 애서가들의 책장 사진을 본다. 한쪽 벽면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사방팔방 책장이 자리하고 있는 이도 있더라. 책장에 꽂은 책뿐만 아니라, 좁은(?) 집에서 자리를 못 잡고 바닥에 누워있는 책들, 책장에 이중으로 꽂혀 있거나, 그것도 모자라 방 천장과 책장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빈틈을 꽉 채운 책들이 가득하기도 했다. 맙소사! 처음에는 부러웠다. 그들이 그렇게 간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책의 무게와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나에게 주어지지 못한 물리적 공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다. 어차피 내가 갖추지 못할 공간이라면 어쩔 수 없다. 내 옆에서 이중 삼중으로 바닥에서부터 쌓여 있는 책들을 내보내는 수밖에. 한 번씩 책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애서가는 아니었구나. 그냥 책을 읽는 게 좋아서, 읽는 그 순간을 만족하면 되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책이 얼마나 있느냐고? 글쎄, 세어보진 않았지만, 500권쯤 되려나? 그중에서도 중고로 판매하려고 올려놓은 책이 100권이 넘는다. 소장한 책 300권쯤에서 1년 사이에 불어나서 그 정도다. 항상 결심한다. 책은 그저 읽는 게 좋은 것으로, 가진 책은 300권 이하로 만들기. . 이게 쉽지 않다는 건 우리가 모두 아는 일. ㅠ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면서 애서가의 기준을 만났다. 저자의 마법에 맡기고 싶은 책이 있는 정도라면 분명 애서가일 테다. 저자의 직업은 망가진 책을 되살리는 일이다. 완벽한 복원이 아니라, 그의 상호처럼 책을 수선한다. 찢어지고 떨어져 나가고, 곰팡이가 잠식한 책들. 그 정도로 망가졌으면 그냥 버려도 될 거로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책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시간, 기억, 감정이 담긴 책들이었다. 버린다고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망가진 책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 게 마음 아플 정도였다. 계속 간직해야 할 그 책을 지금보다는 낫게, 제법 온전한 모습으로 소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수술해야 하나 고민할 때 저자의 두 손이 마법을 부렸다. 약간의 흉터는 남아 있을지언정, 거의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켰다. 때로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옷을 입혀 새로운 느낌으로 재회하게 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해? 보면 볼수록 부러워죽겠다. 간직하고 싶은 책을 의뢰하는 사람들도, 그 책들을 정성으로 수선하며 회복시켜 퇴원하게 하는 저자도. 마음이 닮았고, 닿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만약 이 책을 읽고 계신 분들이 나에게 책 수선을 의뢰한다면 어떤 책을 맡기실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동화책?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한 책? 부모님의 유품? 수집용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254페이지)


가장 먼저는 책을 수선한다는 접근이었다. 옷이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핏이 살지 않아서 수선하곤 하는 일반적인 생각이 책에 미친다는 게 놀라웠다. 아니, 오히려 책을 대하는 마음이 근본적인 관심까지 다가가게 하는 건 아닐까. 책을 수선하기 위해서는 그 책을 만드는 종이까지 잘 알아야 한다. 종이의 질감, 형태처럼 그 습성을 알아서 어떤 파손에 어떤 방법으로 구원해야 하는지 배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책이 망가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책을 구성하는 종이의 상처가 시작인 거다. 종이가 찢어지고, 색이 바래고, 때가 타고,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 변형되는 일이 모두 책에 난 상처다. 그것을 하나하나 살피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집도한다.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작은 틈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고치다가 망한 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까. 죽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는 없지 않은가. 오직 단 한 번의 시도로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한다.


의뢰를 받은 한 권의 책을 수선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모든 걸 손으로 해내야 하니, 어떻게 망가졌는지 일일이 확인하면서 한 장씩 회복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을 거라고 저자의 글로 알게 됐다. 어렴풋이 그럴 거로 생각하긴 했는데, 이 정도의 정성과 애정이 담겨야 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게 의뢰인이 들고 오는 책에 스며들어 있었으니, 수선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할머니가 곱게 써 내려간 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30년이 넘고 심하게 곰팡이가 핀 앨범을 아내에게 깜짝 선물하고 싶다고, 어릴 적 아이가 애착하며 읽던 책을 계속 소장하게 해주고 싶다고, 대대로 물려주게 될 것 같은 낡은 성경책을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고, 이제는 보기 어려운 종이로 된 백과사전을 회생시켜달라는 것까지. 사연과 책이 너무도 다양했다. 어디 책뿐인가. 모양이 다 다른 액자의 뒤판을 고쳐달라는 의뢰는 의외였다. 테두리가 뜬 종이 책갈피를 고치고 싶다는 사람, 애정하는 연예인의 굿즈가 상해서 속상했던 이도 있었다. 그래, 이것도 책이니까.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의뢰인들 대부분이 ‘~ 이런 건 의뢰해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며 그 책과 사연을 들려주었다. , 정말이지, 들으면 들을수록 저자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저자가 아니면 이 슬픔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의뢰인 모두에게 그 책을 꼭 간직해야만 하는, 망가져서 아픈 마음을 회복시켜야 할 이유가 있던 거다. 저자 역시 의뢰를 받고, 오랜 시간을 들여 수선하고, 의뢰인에게 되돌려 줄 때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잘 고쳐진 책을 받고 한없이 기뻐하는 그 얼굴을 보며 같이 기뻐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작업하면서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을 듯하다. 마치 자기 책인 것처럼, 잘 고쳐서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책의 구석구석을 손보고 있었겠지? 내 책도 아닌데, 내가 고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아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뭉클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기억은 이렇게 책에 담긴 채로 간직하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기억된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저자의 손길이 돕는다. 새것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찢어진 종이를 붙이고, 무너진 책등을 바르게 세우고, 사라진 조각을 채우면서 책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회복시켜 주고, 새로운 커버나 지지대, 혹은 케이스를 만들어주며 책에게 새로운 시간을 약속하다 보면 사람의 인생처럼 책에도 한 권 한 권 각자만의 책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연들과 파손된 책과 주인의 추억, 그 책이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165페이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까? 점점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 책마저 전자책이 대신하고 있다. 책이 아니어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종이책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미래의 어느 날에도 책장을 넘기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오랜 세월을 견디려면 종이책도 튼튼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손길이 닿는 종이의 수명은 어떻게 보관하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의 귀퉁이가 닳았거나, 잘못 보관해서 틀어졌거나, 약한 접착으로 낱장이 되어버렸거나. 책이 훼손되는 이유도 너무 많지만, 망가져 가는 책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저자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닳고 찢어지고 분리되는 걸 보면서 아플 독자의 마음도 같이 치료한다.


어떤 기록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퍼져서 같은 감동을 만들기도 한다. 저자에게 의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들의 사연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다른 경험으로 같은 감동을 알게 하는 게 사람의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가 벽의 달력을 찢어서 뒷면에다가 방송에서 나오는 요리의 레시피를 흘려 적는 걸 볼 때마다, 저걸 언제 한번 다 정리해서 노트로 만들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만이 낼 수 있는 손맛을 기록해두고 싶기도 했다. 마음만 그렇지 여전히 나는 그 마음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저자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게으름을 조금은 다그치고 싶어진다. 읽으면서 자꾸만 소박한 내 책장을 둘러보게 된다. 이 책 중에서 나는 어떤 책을 간직하고 싶은지, 혹시라도 사라지면 가슴 아파질 책이 있는지, 잘 보관했다가 누구에게 주고 싶은 책은 있을지...


의뢰인의 이야기 사이 사이에 책 수선가인 저자 이야기가 채워져 있다. 원래 순수미술과 그래픽을 전공하던 저자는 미국 유학하였을 때 이 분야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책 수선 일을 하며 좀 더 깊게 이 분야를 체험했다. 학교 지하의 책 보존 연구실에서 보낸 3년여의 세월이 오늘 저자가 이 일을 더 의미 있게 하는 발판이 되었으리라.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칼질, 풀질, 종이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도서관의 많은 책을 차곡차곡 수선해오면서 쌓은 경험이 이 작업의 섬세함까지 갖추니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져온 이의 능력이겠지. 듣다 보면 책 수선이라는 게 간단하지 않았고, 그 범위가 넓었다. 종이에서부터 종이를 바탕으로 파생한 많은 것이 저자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쩌면 이 책 수선의 진짜 감동은 내가 직접 의뢰하고 고쳐진 책을 돌려받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책에 담긴 많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책에 시간과 추억과 감동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 수선은 책이 진화하는 방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원본의 외형과 아주 똑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비록 원본에는 없던 다른 구조가 덧붙을 수도 있지만, 파손된 부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서 다가올 앞으로의 시간들을 잘 견뎌낼 수 있게,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만드는 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은 수선을 통해 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271페이지)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죽어도 놓지 못할 한 권의 책을, 이 많은 책을 꼭 소장해야 하는 이유도 찾지 못했다. 여전히 책을 사고 읽고, 되팔거나 기증하며 책장에서 내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아끼고 사랑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를 찾은 의뢰인들이 쓸어주고 만져주고 고쳐주면서 아끼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저 읽는 그 순간이 더 애틋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에게는 왜 이런 감동을 주는 책이 없을까 아쉽고 서운했다.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싶어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간직하고 싶은 책이 없다고, 쉽게 책을 사고 내보내고 한다고 해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므로, 지금 이 정도의 마음도 썩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혹시 모르지, 언젠가 심하게 훼손된 책을 들고 저자를 찾아갈지도.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하면서 간절한 회복을 의뢰하며 어떤 시간을 부르고 있을지도. 수술이 잘 된 책을 바라보며 흐뭇해할 내 표정을 상상하는 일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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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08-18 00: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으로 담아낼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많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

이하라 2022-08-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님^^
편안하고 기쁜 시간 되세요.

구단씨 2022-08-18 00:07   좋아요 0 | URL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책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좋았어요. ^^

thkang1001 2022-08-1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08-18 00: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일주일의 절반이 가고 있네요.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