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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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남의 앞에 서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우린 어른이라고 부른다.


굳이 남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올라, 소위 출세했다고 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을, 꼭 자기 일을 드러내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어른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말들이 있었지만, 아니, 어른은 있다. 어른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어른들을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인터뷰를 하려는 사람은 무언가를 이룬 사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대단한 성과를 거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또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주변에 있는 어른을 인터뷰했다.


은유가 쓴 [크게 그린 사람]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은유 작가의 인터뷰는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려는 사람들을 크게 그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면, 이 이슬아의 인터뷰 책은 우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드러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가령 첫 인터뷰 대상자는 응급실 청소노동자다. 응급실 의사는 조명을 받지만, 높은 보수도 받지만, 그 응급실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 온갖 것들을 치워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주목했다. 그래, 병원에서 의사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이루고 칭송을 받는 존재지만, 병원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청소노동자들이다. 온갖 의료쓰레기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병원은 치료하는 공간이 아니라 병에 걸리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한 청소노동자 이순덕 씨, 그리고 작가 이슬아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아파트 청소노동자 이존자, 장병찬 씨는 소중한 존재다. 이런 소중한 존재를 우리에게 소개해준 작가가 고마울 따름이다.


여기에 농사를 짓는 윤인숙 씨. 그렇다. 농사는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된 '새 마음으로'도 윤인숙 씨의 말에서 왔다. 늘 새 마음을 먹으면 원망하는 마음이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과거의 마음에 사로잡히지 말고 새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그러면 삶이 더욱 소중하고, 더 잘살 수 있게 된다고. 그것이 바로 농사하는 마음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여기에 책이 나오기까지 뒤에서 일하는 인쇄소 기장과 회계 일을 맡은 김경연, 김혜옥 씨. 책이 나오기까지 인쇄소를 거친다는 생각은 했지만, 출판사가 더 중요하지 않나 했는데, 이들이 한 말을 보니 한 권의 책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는지를 알겠다.


가끔 오타가 나온 책이나, 파본, 낙장이 있는 책을 보면 쯧쯧 혀를 차곤 했었는데 책 만드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최선을 다해서 꼼꼼히 살펴본다는 사실. 그럼에도 간혹 실수가 나오면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는 사실. 


그런 인쇄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었는데, 이슬아의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어른임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수선소에서 일하는 이영애 씨다. 수선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맞지 않는 옷을 맞게 만들어주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일이다. 옷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한번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선하면서 입는 옷은 환경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다. 그런 일을 하는 수선소 이름이 '미래로'다. 겉으로 드러나는 삶들 속에 그 삶들을 받쳐주고 있는 다른 삶들이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로 가는 우리 삶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 그런 어른들이다. 바로 우리 이웃 어른이다. 이런 이웃 어른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그들의 삶을 들려준 작가가 고맙다.


어른이 있음을,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그들의 삶이 실은 특별한 삶이었음을, 그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어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니까.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개탄하는 사람들. 이 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른은 밖으로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임을. 그런 어른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이 있음을. 우리가 보려고만 하면, 찾으려고만 하면 그런 어른들을 만나게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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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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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인터뷰집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해주는 책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을 인터뷰할까?


그 대상에서 인터뷰 하는 사람의 관점이 드러난다. 그래서 은유는 '인터뷰는 삶과 삶의 합작품이(299쪽)'다고 말한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한다. 또다른 듣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까? 어떻게 들어야 할까?


조지아 오키프의 말을 인용한다. '내 눈에 보이는 걸 그리련다. 그 꽃이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련다. 엄청나게 크게 그려 그 꽃 한 송이를 보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7쪽) 


이 말에 이어 자신의 인터뷰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혹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사람을 보지 못한다. 세상이 축소해서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좋은 인터뷰는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하는 것 같다.' (7쪽)


이렇게 이 책에서는 은유가 만난 18명이 크게 그려져 있다.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비록 분량은 몇 쪽씩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그 몇 쪽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인터뷰 내용은 엄청 크다. 커서 안 볼 수가 없다. 자연스레 은유가 들은 말에 우리 역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분야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오히려 더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는 사람, 인터뷰어. 인터뷰이는 말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그들을 크게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이미 그들이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들여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듣고 그것을 자신 안에 가두지 않고 남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은유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이렇게 먼저 듣는 사람이다. 인터뷰어보다 먼저 듣는 사람이 되었던 사람들. 그들이 말을 한다.


그 말을 인터뷰어가 듣고 우리에게 전달한다. 자신이 잘 듣고, 자신의 말과 함께 전달하면 우리는 다시 듣는다. 우리는 이중의 목소리를 듣는다. 인터뷰어의 목소리와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그들이 하는 말을 동시에 듣는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크게 그렸기에 인터뷰집에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덧붙인다. 자신도 듣는 사람이 된다. 듣고 말을 한다. 결국 인터뷰집을 읽는다는 말은 세 목소리가 합쳐진, 은유의 말대로 하면 삶과 삶의 합작품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집을 읽은 다음에는 읽기 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미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없던 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과는 다른 사람, 행동이 확 변하지는 않더라도 바뀌어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18명의 인터뷰이들도 듣는 사람이었고, 이들은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듣고 말하는 사람인 은유의 책을 읽은 우리도 듣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인터뷰집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연결되어 사는 사회임을 명심하게 한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 기존에 책을 읽었거나 해서 한번쯤은 들어본 적도 있지만 생소한 사람들도 있다. 이 책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크게 그린 사람, 그래, 안 보이던 것을 보이게 했으니 안 들리던 것이 들리는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글을 맺는다. 누군가는 또 그들과 연결이 될 것이므로.


홍은전(인권기록활동가), 조기현(청년 예술가), 원도(과학수사대 경찰), 김용현(자연주의자), 임현주(아나운서), 김미숙(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엄마), 시와(가수), 김중미(소설가), 이영문(국립정신건강센터장), 김혜진(소설가), 민금채(지구인컴퍼니 대표), 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 김진숙(민주노총 부신지역본부 지도위원), 수신지(만화가),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장), 박선민(국회의원 보좌관), 김도현(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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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개정판
유가영 지음 / 다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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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세월호 이후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삶의 굴곡을 거쳤을까?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직접 겪은 당사자가 아닌데도 세월호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켠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을 받는데, 직접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라면, 거기에 학생이었고, 친구들이 살아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떤 마음일까?


외면하고 싶겠지. 그냥 잊고 싶겠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그 충격으로 그때의 기억을 잃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잊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 그런데 안 잊혀지지. 계속 기억에 마음에 남아 울컥울컥 솟아올랐겠지. 그 아픈 일들이.


그런데도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제는 더이상 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겠지. 이제는 마주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9년이 지난 다음에 쓴 책이고, 다시 한 해가 지나 이제는 10년이 지났다.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하지만 우리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재난사고들이 일어났는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외양간이라도 고쳤으면 좋겠다. 우리는 왜 소를 잃어버렸는지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하고,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니.


저자가 다른 곳에서 생활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더이상 도망갈 수 없다고 여겼을 때 뉴질랜드로 떠났다고 했다. 거기서 새로운 낯선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추스리고 치유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때 이야기 중에 뉴질랜드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 지진 이후에 내진설계를 강화에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했다는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 많은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과연 외양간을 고쳤는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잊으라고, 잊으라고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희석되기는 하겠지만, 그때와 같은 감정은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반복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하고,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저자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세월호 이야기를 10년이 지나서 읽어도 마음을 추스리기 힘든데, 직접 겪은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그토록 잔인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져 그때만큼의 감정이 들지는 않으니까요. ... 하지만 기억이, 감정이 무뎌졌다고 해서 저를 괴롭히는 게 없어진 건 아니에요. 지금도 때때로 불쑥 찾아오는 형용하지 못할 감정들과 두려움, 불안이 저에게 '절대로 잊지 말라'고 일깨우고 있으니까요. 아마 평생 저를 괴롭힐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비록 그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딛고 일어날 힘이 있습니다. ... 이 힘을 만든 건 제가 여태까지 살기 위해 쳐온 발버둥, 그리고 그걸 알아보고 저를 끌어 올려 준 사람들이 그 마음이에요.' (146쪽)


이런 마음이, 이런 사람들이 저자를 지금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저자는 앞으로 세월호를 잊지 않고, 또한 그러한 재난 상황에 대한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과 같이 자신도 그러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찬 것 같은 세상에도 행복이,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가 겪어왔던 삶들. 이 삶들이 이 책 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마음을 지니고 행동을 해야 함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먹먹하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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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 나의 이동권 이야기 나의 OOO 1
이규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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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장애가 있는 이규식의 이야기다.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실었다. 담담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결코 유쾌한 삶이 아니었을텐데 이 책을 읽으면 비장해지기보다는 경쾌한 느낌을 받는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이 과거의 일을 추억처럼 풀어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이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런 삶도 있다고. 과연 이런 삶이 당신들과 다른 삶이냐고. 우리는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러니 장애인이라고 특별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같이 살 수 있게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라고.


그렇다. 가장 힘든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했다. 장애인이 불편을 겪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사회, 장애인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장애인도 자신들의 편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리고 이규식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공동체라고 불리는 시설에서도 살아보고, 이동권 투쟁도 해보고, 탈시설 운동도 한 이규식.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과거에는 특별한 일이었을 테니, 그가 겪은 고통은 이 책에 나와 있는 구절들로 우리가 체험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아직은 미약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시설들이 개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은 투쟁 중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이 있고, 저상버스 도입률이 50%도 안되고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 있는 식당가에서는 장애인이 화장실을 가기가 힘들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여행을 할 때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 비장애인도 여행을 할 때는 많은 불편을 겪는데,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은 더욱 심하다는 사실.


오죽했으면 그가 "나도 무계획 여행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274쪽)고 했을까. 비행기도 배도 불편함이 있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숙소부터 시작해 이동 수단을 마련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 더 놀랄 만한 일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도소의 시설이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는 그야말로 감옥인 곳.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곳인데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있기에는 너무도 불편한 곳이라는 사실을 이규식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공공기관부터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리고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로 생활공간을 국한시키지 말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탈시설활동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규식 같은 사람이 있어, 누군가 앞서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좋은 쪽으로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다. 


그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 무용하지 않았듯이, 그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을 통해서 더 나은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 생각해 본다.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라면 비장애인 또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일테니. 이규식과 같은 사람들이 계획을 짜지 않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그런 사회라면 다른 환경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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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무죄다 - 검사 이성윤의 검(檢) 날수록 화(花)내는 이야기
이성윤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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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꽃.


검을 칼이라고 한다면 꽃과 대척되는 지점에 있다. 물론 검사할 때 검은 칼이 아니다. 칼이 아닌데, 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칼 앞에서 식물은 약하디 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칼로 아무리 식물을 베어내도 식물은 완전히 죽지 않는다. 죽은 듯이 보였다가도 어느 때에도 다시 살아난다. 그것이 바로 김수영이 노래한 '풀'이다. 식물이다. 꽃이다.


꽃의 화려함이 10일을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화려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고 지낸 세월을 생각한다면, 화려함을 봐줄 수도 있다. 또한 그 화려함이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존재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데, 어찌 화려하다고 비난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저자는 검찰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검찰이 지닌 칼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꽃에 대한 책을 썼다. 그것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야생화에 대한 글들도 있으니...


그를 아내는 '꽃개'라고 한단다. 꽃 냄새를 잘 맡는 개와 같다는 뜻이다.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꽃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리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꽃을 찾아낸다는 것은 집중력과 주의력이 있다는 뜻이다. 또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도 볼 수 있는 사람이리라.


그런 사람에게 닥친 일들, 이 책에서는 스치듯이 언급하고 있지만, 검찰의 핵심에 있던 사람도 이렇게 검찰에 불려다니면 힘들어하는데,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검찰은 그야말로 칼을 휘두르는 권력자일 수밖에 없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꽃과 식물들에게서 위안을 얻는 그를 보면서, 우리도 역시 자연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


가끔은 하늘을 보라는 말, 이 말은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가는 생활에서 잠시 눈을 돌릴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다.


그런 여유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 생활에 지쳤을 때 자신을 잠시 놓아두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여유. 


그런 여유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자처럼 이렇게 나 아닌 다른 대상을 보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꽃을 찾아다니면서 꽃에게서 느낀 감정들, 그 꽃들이 지닌 속성,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인간의 삶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꽃과 나무 사진들, 그림들이 눈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성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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