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 표지 사진이 너무 귀엽다. 이렇게 귀엽고 상큼한 존재들에 둘러싸여 살고 싶단 마음이 든다.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이와 반대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듣기 좋은 말, 보기 좋은 것들만 있는 세상은 없겠지만, 가능하면 이런 것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쿵야 레스토랑즈'라고? 처음 들어본 이름들. 캐릭터들. 하긴 SNS를 하지 않고, 유튜브를 애써 찾아보지도 않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빅이슈가 아니면 들어보지 못할 이름들이 많고, 또 빅이슈가 아니면 보지 못한 존재들도 많다.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고, 다른 존재들을 알게 해주는 빅이슈라서, 내가 지내왔던 생활에 다른 경험들을 덧붙일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쿵야 레스토랑즈 캐릭터를 통해서 우리들 삶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는데,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상큼한 표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번 호에서는 홈리스들의 생활과 빅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리지 않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남의 집을 소개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 실렸고, 얼마 전에 돌아가신 홍세화 선생을 기리는 글도 실렸다.


홍세화 선생이 했다는 말, "알잖아요." 이 말, 참 어려운 말이다.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지행일치(知行一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보통 사람은 잘하지 못하는 일. 그러나 누구나 해야 할 일.


내가 아는 것을 실행하는 일,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더더욱. 우리는 모두 알고는 있지만, 선뜻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는지도.


그런 점에서 이번 호에서 박현주가 쓴 '사소하게 연연하는' 장의 "나의 상처가 당신의 반창고는 아니다"는 글은 큰 울림을 주었다.


'스토킹과 가스라이팅' 전혀 다른 행동이라고 받아들이는 이것들이 실은 비슷한 행동일 수 있음을. 둘 다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는 의미에서.


상대가 힘들어 할 때 그 틈을 비집고, 상대의 상처를 자신의 반창고로 삼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래서는 안 됨을. 그것을 우리는 홍세화 선생의 말을 빌려 "알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줄을."이라고 말을 해야 함을 생각한다.


오히려 상대가 상처를 입었을 때 그를 위로하고 감싸줄 수 있어야 함을... 스토킹이라는 상대를 괴롭히는 행위도 하지 말아야겠고, 상대의 약함을 이용해 그를 더 힘들게 하지도 말아야겠음을.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부처가 이 세상에 왜 왔을까를 생각하면, 종교를 빙자해서 남을 스토킹하는 사람들도, 또 종교를 빙자해서 상대를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들도, 진정 부처님오신날을 잘못 알고, 잘못 행동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부처님오신날만이 아니라 예수님오신날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스토킹이나 가스라이팅이 되지 않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번호 표지에 나온 쿵야 레스토랑즈의 이 상큼한 표정처럼 우리가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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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이 가고 있다. 신동엽 시인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무엇을 갈아엎었던가.


  오히려 4월은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은 달이 되지 않았는가. 4.3, 4.16. 4.19... 그리고 올해는 4월 총선까지.


  총선에 대해서 야당의 압승이라고 한다. 당선된 의석수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여당도 그렇지만 야당 역시 비례대표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하고, 비례대표로만 12석을 얻는 정당이 있으니, 비례대표가 자리를 잡아간다고 할 수도 있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꼼수정당이 여전히 유효하게,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현실에서 비례대표제는 무력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나 싶다.


여기에 총선의 이슈는 '심판'이라는 말과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의 경연장이었다고 봐도 좋다. 이들의 선거운동에서 [빅이슈]가 내걸고 하는 일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10년의 세월 동안 아직도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 고통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외면한 정치는 정치라고 할 수 없는데...


이번 호에 실린 '바람의 세월'을 만든 이들인 유가족 문종택 씨와 감독 김환태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으니... 아, 4월은 갈아엎는 달이 되었어야 하는데...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 원내에 진출한 지 근 20년 만에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원외 정당이 되는 현실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갈아엎었던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고 했는데, 진실이 10년이 지나가도록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으니, 10년 전 세월호와 2년 전 이태원 참사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채상병 사건 등 도대체 어떤 진실이 밝혀졌는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책임 회피로 일관하거나.


이런 가려진 진실들을 드러낼 때 비로소 갈아엎는 달이 될 수 있을텐데... 그렇게 갈아엎을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지녀야 하는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빅이슈] 이번 호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럼에도 [빅이슈]에는 따스한 글들이 많이 있다.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변호사 이야기도 있고,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하는 프로야구 장에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구장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영화를 통해서 장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도 있다.


또 이번 호에 처음으로 소개된 빅판과 독자의 인터뷰도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이런 따스함들이 모이고 모이면 4월을 갈아엎는 달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굳이 4월이 아니어도 우리는 갈아엎을 수 있는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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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여름인가 싶은 날씨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중에서 춘추는 점점 짧아지고, 하동은 점점 길어지고 심각해지고 있으니,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두 계절은 뚜렷하고, 나머지 두 계절은 온듯 가버리는 현상이 만들어졌나 보다.


  이번호 편집자의 말 주제가 '인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는데,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겹쳐 그러한 인연이 만들어졌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곳에 있는 만물들이 다 나하고 인연이 있어서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가끔 목이 잘린듯이 뎅강뎅강 잘라져 나간 나무들을 볼 때가 많다. 요즘은 두꺼운 가지 몇 만 남기고 다 잘라버려, 저 나무들에 언제 무성한 가지와 잎이 나올까 싶은 나무들도 있다.


나무들이 아니라 전봇대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잘라버린 나무들. 집 근처 공원 산책길에 자목련 나무가 있었다. 색깔이 특이해서 이 맘때면 예쁜 색깔을 자랑하던 자목련. 사람들이 자목련 나무 곁에서 한참을 구경하다 사진을 찍다 하곤 했었는데...


올해 그 나무가 사라졌다. 분명 자목련 꽃을 피웠어야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 왜 없어졌지? 자목련 나무를 봤던 자리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없어졌다. 뿌리째 뽑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그나마 나았으련만, 그럴 수고를 했을지 의문이다. 그냥 베어버렸다면, 왜?


나무와 맺었던 인연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한 순간에 끊기고 말았다. 해마다 그 자리에서 예쁜 꽃을 피웠던 자목련이 이렇게 나와의 인연이 끊기다니...


서운하면서 화가 났는데, 이번 호에서 이와 비슷한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자연과의 관계를, 인연을 함부로 대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에, 그런 존재들이 대부분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자리에 있다는 씁쓸한 현실에 마음이 상했다.


한창 화사한 봄꽃들이 제 자태를 뽐내고, 그러한 봄꽃들로 인해서 우리들 마음도 함께 환해지려는 이 때, 마음의 등불을 꺼버리는 행동들을 하다니...


전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나 보다. 윤은성 시인의 글 '쓰지 못하는 사람'에 전주천에 있던 버드나무들을 베어버린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버드나무는 시민사회와의 소통 절차가 필요했음에도 새벽에 불시에 잘려나간 것으로, 이 일은 전주 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홍수 피해 예방을 목적으로 베어냈다고 하지만 버드나무가 홍수 피해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를 전주시는 제시하지 못했다.' (63쪽)


시에서 이런 행위를 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행위는 자연과 시민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와 소통하지도 않았다면, 자연과 교감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인연을 소중히 여길 수가 없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와 관계 있는 일을 하기 전에 여러모로 따져보았으리라.


길을 걷다가 흔히 보게 되는 다 잘린 나무들.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함부로 뽑힌 식물들, 그런 존재들을 더는 보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이 자리를 누리고 있는, 인연을 맺은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소중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이렇게 이번 호를 읽으면서 자연과 사람의 인연을 생각했다. 나는 과연 나와 인연을 맺은 존재들을 소중히 여겼는지, 그 존재들에 내 마음을 주기는 했는지를...


봄이 가고 있다. [빅이슈]를 읽으면서 빅이슈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나와 인연을 맺은 많은 존재들이 있음을 생각한다. 그 존재들이 내게는 소중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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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한다. 착하다는 말이 멍청하다는 말과 통하는 사회는 좋지 않은 사회다. 똑똑하다는 말이 영악하다는 말과 통하는 사회가 좋지 않듯이.


  착하다는 말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 못한다는 말과 통하기도 하는데, 이익 우선 사회에서 착함은 곧 뒤처짐을 뜻하기도 한다. 뒤처짐,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패배라고 할 수 있는데,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서 패자는 다시 일어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착함이 이익을 챙기지 못함, 패배함,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의미하게 되는 사회에서 착한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착함이 멍청함이라고 해도 여전히 착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착한 사람들은 천성이 그렇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착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더 불편하고,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이런 착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패자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착함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착하다고 멍청하다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착함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퍼져나갈 수 있도록.


그것을 [4.3이 나에게 건넨 말]에서 '선의 시민성'이라는 말로 나온다. 개인의 착함이 집단으로, 사회로 번져나가 시민성이 착함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행복한 사회다. 바람직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다. 말은 누구나 다 함께 사는 사회,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고 하지만, 권력을 쥐고자 하는 자들은 말로 포장을 할 뿐이다.


그들의 말은 착함과는 거리가 있다. 말로야 무엇을 못하랴는 식으로 그들은 온갖 착함의 수사학을 구사하지만, 그것은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불과하다. 말로만 끝나고 실천은 착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런 권력자들,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사회가 되지 않게 하려면 '선의 시민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라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착함이 무엇인지, 착한 척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언제라도 돌아설 수 있는 자들의 말과 진정 착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착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들이 발휘하는 착함은 상황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냥 그들은 당연히 해야할 행동처럼 할 뿐이라는 사실을.


[빅이슈] 이번 호를 읽다가 그런 착함, 선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선함을 생각하게 하는 표지와 글들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빅이슈] 자체가 선함이다. '이번 호에도 사랑과 선의와 희망을 믿는 기사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없더라도 그것을 믿는 독자들과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기를.'(8쪽)라는 편집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빅이슈에 나오는 그들은 바로 이런 사랑과 선의를 보여주고 있다. 착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글들이다. 그런 착함이 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함께 착함의 세례를 받는다. 개인의 착함이 아니라 시민의 착함으로, 그러한 착함이 사회를 더 좋은 쪽으로 만들어간다.


그렇게 착함은 멍청함과는 거리가 멀다. 함께 착함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다가 만화 [좋은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다. 착한 주인공. 그가 퍼뜨리는 착함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만화. 


이 참에 [좋은 사람]을 보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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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인물이 박위다.


  <위라클>이라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호가 아닌 다른 호에서 유큐브 소개할 때 소개된 적이 있었다.


  몇 편을 찾아서 보기도 했었는데, 그가 표지 인물로 나오니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생활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렇다. 장애가 불편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어려운 사람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 아니던가.


박위를 통해서 그런 세상이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그가 '아,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런 거구나.'(26쪽)라고 한 말처럼 적어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지만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을테니까. 그래서 박위의 유튜브는 소중하다. 그런 그가 표지 인물로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도 소중하다.


빅이슈가 그런 역할을 많이 하고 있지만, 3월!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달(새학년이 시작되니까), 첫 표지 인물로 선정되었다니 더욱 반갑다.


이번 호에는 집에 관한 글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빅이슈가 하는 일이 주거복지에 관한 일들이기도 하니까.


홈리스들이 집을 마련해 독립된 생활을 하도록 돕는 잡지가 빅이슈니. 그런 점에서 이번 호에는 기쁜 소식이 있다.


여성 홈리스에 관한 글인데, 그 중 두 분이 고시원을 벗어나 지원주택에 살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 집을 얻어 자립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에서 희망을 엿보게 된다.


여기에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니 기쁨이 두 배가 된다.


"선생님, 저는 여기 와서 제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이런 곳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저는 이제 꼭 이곳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70쪽)


정말 기뻤으리라. 이렇게 남의 도움에서 자신이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이런 글들을 보면서 '듣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번 호 글 중에 '듣는 사람'(50-51쪽)이라는 글이 있는데, 정말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글이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특히 권력을 쥐고 있으면 잘 들어야 한다. 예전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양약고어구 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 忠言逆於耳)'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고 해석될 수 있는 이 말.


자신에게 하는 쓴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된다. 이번에 집을 얻은 홈리스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이들도 자기 맘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지만 도와주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결과로 자립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무엇보다도 듣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빅이슈]를 한번 읽어보는 것이 어떨지.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막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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