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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이제는 그래도 다행히 집이다.

 

난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고 그럭저럭 사회 안에서 기능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아직도 허둥대는 아이같이 어쩔 줄 모르며 지난 열흘을 보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이런 상황 속에서 읽어낸 책이다.

 

전작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와 많은 부분이 겹치기도 하면서 약간은 다른 내용이다. 쓸쓸하고 서글프다가도 후반부에는 그래도 작가 참 대견하구나,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가난한 가정은 왜 이다지도 서로 닮아 있는지, 우리 집안 사정도 비슷한 부분도 있다.  

 

어떤 방향이나 지향 없이 그저 열심히만 사는데 참 안 풀린다. 가난한 부모 세대가 자식을 열심히 키워 교육을 받게 하면 그 과정에서 서로 엄청난 정서적 거리감이 생겨난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미워하게 된다. 아버지 세대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게 되고 자식 세대는 내가 이 풍요의 세상에서 얼마나 혼자 괴로워하며 컸는데 하면서 서로를 원망하게 된다.

 

'보통'이라는 닉네임같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청소년기에 남들만큼은 살겠다는, 혹은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곧 남들만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된다.

 

사실 '중상층'의 삶으로 대변되는 '보통'이나 '평범'이 얼마나 높은 기준인지 가랑이 찢어지게 달려보고야 알게 된다.

 

P.76 : 타임머신이 있어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수능을 마친 시점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너는 쉽게 불행해지거나, 순순히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고. 인생은 그저 맥락 없이 흘러갈 뿐이다

 

지나고 보니 그런 듯하다.

 

행불행은 순순히 찾아오는 게 아니고 마음의 어떤 상태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행불행이란 게 노력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행복을 노력을 통해 얻으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

 

 

<태풍이 지나가고>는 참 힘들 때 병실에서 틈틈이 읽었다. 병실 생활을 작년에도 해보았지만 이번은 정말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태풍이 지나가고>도 '어른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어릴 때 바라던 그런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시하고 하찮은 뭔가가 되었더라도 그게 바로 나다.

 

도박과 허랑함이라는 아버지의 단점을 그대로 바보같이 답습하고 마는 어리석은 사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만이 아닌 생활습관, 패턴 면에서 무서우리만치 닮아 있다. 장점만이 아니라 단점까지도 빼다박은듯 닮게 된다.   

 

그저 매서운 태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 보게 될 하늘이 맑게 갠 하늘이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품어본다.

 

어찌되었든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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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11시 정도에 잠들어 5시에 일어났다. 딱 좋구나.

 

중간에 한번 깼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엄마가 어느 정도이실지 염려되었고 동생 결혼식이 다가와 할일들을 점검해보았다. 이사갈 집 평면도를 주면 세탁기 둘 곳도 보고 세탁기를 사주기로 해서 틈나면 세탁기를 구경하고 있다.

 

어제 도서관에 딸아이 방학독서교실을 신청해둔 게 있어서 거기 들여보내고 아들이랑 책을 읽었다.

 

우연히 집어든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흔한 미니멀리즘 책인 줄 알았는데 '데스클리닝'에 대한 책이었다. '데스클리닝'은 죽음을 염두에 둔 정돈이다. 이사라든가 사별 등으로 집 규모를 줄여갈 때에도 적용된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손수 하기도 하고 미처 이것을 못하고 떠난 가족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도 해당된다.

 

학교 다닐 때 사적인 일에 대해서 별로 얘기하지 않으셨던 어떤 선생님이 몸이 아파 쓰러졌을 때 제일 먼저 아침에 입은 팬티가 너무 낡아 어쩌지 하고 의식을 잃으셨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혼술남녀>라는 드라마에서 노량진 학원강사가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 옷이 낡은 걸 보고 슬퍼하는 장면도 떠오르네.

 

남은 사람들 슬프지 않게 매일 쓰는 물건이나 옷은 멀쩡하고 정결한 걸로 남기고 자주자주 버려야겠다.

 

정리하기 제일 쉬운 품목은 역시 옷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것이 무척 힘들 수 있다. 뭔가 세련되고 나아진 내가 되는 듯한 느낌에서 옷을 충동구매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따라서 옷을 정리하기가 그나마 수월한 것이다. 옷을 사느라 들인 품과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속은 좀 쓰리겠지만.

 

책 역시 마찬가지.

뭔가 이것만 더 읽으면 좀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자꾸 사들이는데 결국 크게 바뀌는 건 없다. 세월 보내기 좋아 읽는 것이지.

 

어제는 아이들 교과서와 문제집을 한참 정리했다. 교과서는 정말 학교에 비치해두고 게다가 잘 쓰지도 않아 국어, 수학, 수학익힘을 제외하고는 1년을 써도 새 책 같다. 우리나라 교과서 질이 너무 좋다. 거의 워크북 개념으로 해서 질을 좀더 낮추어도 될듯하다. 디지털교과서에는 아직 호의적이지 않다.

 

문제집도 부끄럽지만 안 푼 것도 많고 게다가 겨우 2년 터울인데 개정되어 거의 다 버려야 한다.

추억에 젖어 전과도 사고 그랬는데 학습지 사이트에 가면 교과서 본문을 제공하는 데도 있으니 고만 사야겠다. (아이스크림 홈@-유료회원 아니어도 교과서 보임)

 

기록물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한다. 사후에 가족들이 봐서 좋을 게 없는 기록이나 민망한 내용의 물건이나 책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 여기저기 노트에 힘들었던 일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서운했던 것들을 잔뜩 적어두고 보란듯이 펼쳐두고 가는 건 좋지 않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모두 다 말하지 않고 묻어두고 조용히 가는 것도 필요하다.

 

잠시 이런저런 공상 중에 약속한 시간이 되어 나가보니 딸아이가 울고 있다. 11시에 약속해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전화를 안 받는 바람에 울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12시에 마치는 데 중간에 나온다는 말을 하기 힘들어 내가 빨리 들렀어야 했는데.

 

피아노학원 시간과도 안 맞고 같은 학교도 아닌 다른 학교 애들과 있는 것도 어색했고 여러가지로 안 맞았는지 울고만 있어서 내일부터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2학년이니 중간에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른인 나도 그런 상황이면 말할 타이밍 잡기 힘든 것이다.

 

그보다 일단 독서교실 학생이 너무 많고 낯설었다는 게 소심한 딸아이는 제일 힘들었던 듯하다. 짜장면을 먹으러 가서야 진정이 되었다. 마성의 짜느님, 탕슈느님.

 

울다가 웃다가.

탕슉 취향마저 부먹 찍먹으로 갈리는 아들 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 힘드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아들은 <용선생 만화 한국사>를 보고 딸은 <봉봉 초콜릿의 비밀>을 보았다.

 

<용선생한국사>도 있고 한국사 책만 거의 한 줄인데 이 책도 사고 싶어 했다. 많다고 고만 사자고 했다. 원래 초급 한국사 시험을 보려다 관두기로 했다. 한자급수 시험도 그렇고 한국사도 그렇고 인증되는 시험은 그게 진짜 인증이 필요할 때 보려고 한다. 진짜로 알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니까. 

 

 

독서교실 소동으로 피아노학원 가는 게 늦어졌지만 덕분에 나는 오후에 애들 학원 간 사이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혼자 있게 되었다. 이제 손이 많이 가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동네산책을 하며 딸아이가 교실 장터에서 사온 '꾀돌이' 찾아 삼만리.

 

집에서 좀 떨어진 문구점에서 찾아내 열 봉지나 사오니 정말 좋아한다.

 

아들은 베이블레이드 팽이를 무려 배틀씩이나 한다고 멀리 친구네로 원정을 나가고 딸이랑 이런저런 정리하고 저녁하다보면 오후도 흘러가버린다. 저녁 먹고 책보다 뒹굴하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씻고 하다보면 잘 시간이다.

 

이제 애들도 초등 고학년이니 열 시 정도에 자도 될듯하다. 어제는 거의 열 시 반에야 잤지만

방학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수면시간이나 질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겠다.

 

역시 돌아다니고 일을 많이 한 것이 꿀잠의 비결.

 

운동은 하고 싶은데 뭔가 어디에 가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해야 하는 운동도 번거롭고 두렵다.

체육관 알레르기, 짐GYM 공포증이 있다.

 

아이들과 집에서 운동 (보통 홈트라 하죠? 얼마 전에 누가 말하는 데 네에 홀트요? 홀트를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라고 함) 하거나 봄 되면 배드민턴을 꾸준히 치든가 해야겠다.

 

 

오늘은 동네에서 좀 떨어진 도서관에 가서 <아우스터리츠>를 좀 읽고 싶다. 빌려만 두고 통 펴보질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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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2018년 새해 첫날.

 

올해는 선생님들 복장 터지는 한 해가 될듯하다.

 

화나면 한구석에서 조용히 '이천OO년' 하고는

뭐라고 했어 하면 그냥 올해 얘기한 거예요, 할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집에서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년도를 끝에 꼭 붙여 얘기하기로 했다.

 

 

 

*

 

어제 읽은, 아니 읽다 둔 책은 <한국인의 관계심리학>이다.

 

심도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던 부분과 많이 비슷하다.

 

다시 말해 기쁨은 범문화적인 감정이지만 어떤 사람은 내적인 경계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은 내적인 영역을 넘어 타인의 마음에 비춰지는 자신을 알고 난 뒤에야 기쁨을 느낀다. 이 사실은 나와 타인 사이의 최적의 거리는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34-35쪽

 

 

즉, 미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계와 한국인에게 중요한 관계는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화할 수 있고 통합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문제이다.-56쪽

 

건강한 분화는 '따로 또 같이'의 느낌이 지속되는 과정이다. 분명 한국의 부모와 자녀들은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다. 부모와 자녀는 따로 떨어져 살지만 늘 함께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관계적 경계'이다.-84쪽

 

 

모든 관계에서 '건강한 분화'를 맛보고 싶다.

 

어제도 역시 엄마 전화가 많이 왔고 위로도 했다가 아닌 것은 바로잡기도 하다 지쳐서 포기했다.

환자에게는 역시 '건강한 분화'보다 전폭적인 지지와 애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도 3일간 아이들 수발에 지쳐서 더 이상 잘할 수는 없었다.

 

전화를 받고 다시 걸기도 하고 이게 나의 최선,

나를 괴롭히지 말아야지.

 

 

 

*

 

아침에 떡국을 끓여 아이들과 먹었다.

 

신년을 맞아 아버지와 아들은 목욕탕에 갔다.

 

그리고 딸아이는 친구엄마와 친구랑 갔다. 엥?

 

여기 이사와서 거의 5년을 알고 지낸 엄마지만 같이 목욕가는 걸 아직 못 하고 있다. 정말 목욕탕에 가고 싶을 때면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간다.

 

아들은 목욕을 마치고 학습만화와 손글씨 교정 책을 들고 왔다. 아빠가 하루 몇 쪽 하라고 숙제 내준 걸로 잔뜩 부어 있었다. 결국 이걸 매일 시키는 건 내 숙제가 될 텐데.

 

요즘 아이들은 고학년 정도 되면 손글씨 잘 쓰는 아이가 적은듯하다. 순전히 내 느낌이다. 통계를 내본 것도 아니고 우리 아이들과 그 친구들, 나와 수업한 일부 아이들로 미루어 짐작한 것일 뿐이다.

 

80년대 90년대 말에는 필통도 하드보드지로 만들고 이런저런 -장을 만들기도 하고 학교 필기량도 상당했지만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다. 일 년을 마치고 보내온 공책을 보니 세 장인가 썼다. 교수학습의 방식이 많이 바뀌어 그렇다는 것도 알지만 아쉽다.

 

쓰고 말하면서 공부하는 방식도 낡은 것만은 아니다.

순수 '읽기'를 시키지도 않고 쓰기도 잘 하지 않는다. 듣기는 더더욱 잘 하지 않는다.

이런 교육을 제대로 할 여건이 안 되는 것도 안다.

 

듣고 읽고 쓰고 말하고 인데 '말하기'에 비중을 많이 둔다. '이해'가 먼저이고 '표현'인데 '표현'이 눈에 띄기 때문에 그쪽에 더 치중한다. 듣고 읽은 바가 적은데 '말하기' 역시 쉬울 리가 없다.

 

아이들의 언어로 풀어서 같이 계속 고민해보고 싶다.

 

 

다시 글씨 얘기로 돌아가 아들은 저학년에는 나름대로 글씨가 볼 만했는데 요즘은 도무지 알아볼 수 없게 흘겨쓴다. 원인은 급한 성격과 글씨 쓰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숙제는 대충하고 놀고 싶다. 십대 초반 남자애라면 다들 그럴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교정해주어야 한다. 오래 걸릴듯하다.  일단 글씨를 잘 쓰고 싶은 마음, '동기'가 전혀 없다.

 

아들은 앞으로 디지털 세상에서 글씨 쓸일이 뭐가 있고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냐고 항변한다. 설득하고 달래고 감정을 받아주는 건 엄마 몫이다. 

 

글씨를 잘 쓴다는 건 남이 알아보기는 쉬울 정도는 되어야 한다, 현재는 너만 아는 글씨이다.

ㄹ, ㅁ, ㅇ 구분이 안되고 글씨 크기도 제각각이다.

 

 

 

 

 

 

 

 

 

 

 

 

 

 

 

 

 

 

 

 

 알라딘 상무점에 가서 사온 책들이다. 책 팔러 가서 오히려 애들 책이며 이런저런 책들을 잔뜩 더 사왔다.

 애들 아빠가 고른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나도 읽을 듯하다.

 

 

 

 

 

 

 

 

 

 

 

 

알라딘 상무점은 규모는 충장로보다 적지만 주차가 편하다. 원형방석도 집 의자에 사이즈가 맞을 듯해 사보았다.

 

어제 역시 그럭저럭 보내고 9시에 잠들어 3시에 깼다.

 

11시에 잠들어 5-6시 정도면 좋을 텐데.

 

아이 키우며 수면 장애 11년

그래도 이 정도면 살 만하다.

 

새해에는 커피와 맥주를 줄이고

예능도 좀 덜 보고 책도 덜 보고

운동을 뭔가 찾아서 해야겠다.

 

집밥에 더 많이 신경을 써야겠다.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하고 싶은 일 말고 돈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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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2017년의 마지막 날.

정말 특별할 것이 없는 평온한 하루여서 감사하다.

 

김보통 님이 추천한 <딱한번인. 생.>을 오전에 잠깐 읽은 것이 어제 나를 위해 쓴 시간이다.

왜 좋아하셨는지 알 것 같다.

 

평범 씨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일생을 어떻게 쓰는지 여러 수치로 나타내기도 하고, 그 사이사이 자신의 짧은 감상을 담아낸다. 쉬운 듯하면서 어렵고 가벼운 듯 하면서도 묵직한 책이다.

 

수필가 피천득 님이 새색시가 시집와서 김장 서른 번 하면 어느새 늙는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먹고 자고 울고 웃고 씻고 하는 걸 수량화하니 어쩐지 단촐하다.

 

일생 마실 수 있는 수돗물 값이 고작 8만8천 원이라니.

그밖에도 일생 먹을 수 있는 고기류인 닭 소 돼지 등도 수량화하니 참 하찮고 적다. 물론 누군가는 좀더 많이 먹기는 하겠지만 고작 그 정도 먹으려고 아등바등 사는 것이다.

 

내가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천국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누군가가 말했다지.

참 고운 마음, 고마운 마음.

 

예수님이 따로 없네.

 

갈수록 정말 아무것도 없을 거 같아서 이렇게 성당에 잘 못가나보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있고 

솔직히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면 많이 두렵다.

 

다들 '죽음'을 직면할 자신이 없어서 분주하게 사는듯하다.

다들이 아니고, 나.

 

바로 내 이야기이다.

 

'죽음'을 직면할 자신이 없어 분주하게 산다.

 

<소년이여, 요리하라!>는 그냥 애들 보며 읽으려 빌렸었고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예약 주문해두었다.

 

 

 

 

 

 

 

 

 

 

 

 

 

 

 

 

 

 

 

<알쓸신잡>을 끝부분만 잠깐 보았는데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추천하는 시간이 있었다.

 

작년에 읽은 책들 중 위의 책들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중년이 되어 부모님들은 편찮으시고 아이들 키우기도 녹록치 않은 누군가에게...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아이들은 아무 걱정없이 크는 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듯하다. 엄마들은 너무 힘들다보니 몇 번 만나지 않은 얄팍한 사이여도 자신의 힘듦을 가감없이 토로하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사실 속내를 잘 풀어놓는 편이 못 되고 내 힘듦을 이야기한다고 상대방의 고통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거의 듣는 쪽이다. 대개 병간호하는 이야기들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엉클어진 기억>은 성소수자이며 알츠하이머인 엄마를 두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사실 아무리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라 해도 버티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사이 감정의 유대가 적었던 가정이라면 어떨까? 이런 과정에서 인연을 끊게 된다.

 

허물어져가는 엄마를 기록으로 남기고 추억하는 따뜻함

닮고 싶다.  

 

<두 여자 이야기>는 요즘 유행하는 많은 페미니즘 도서들보다 더 읽혔으면 좋겠는 그런 책이다.(물론 페미니즘 도서도 보긴 봐야 한다)  돌봄노동으로 쌓아올린 여성들의 시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병들고 늙거나 늙어서 병들거나 한다. 이런 과정 중에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생후 3년과 죽기 직전 몇 년은 꼼짝없이 식사와 대소변을 남의 힘을 빌려 처리해야만 한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죽는 게 아니라 태어나서 죽기까지 여럿의 도움이 필요하니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나 역시 언젠가는 약해질 것이고 막연한 그 시기가 가끔은 두렵다.

(화살기도로 가끔 죽을 복을 내려달라는 기도도 빼놓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신은 노후대비가 다 되었다고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만만해 하던데 얼마나 입바른 소리인지 나중에 깨닫게 되길 바란다.

 

*

 

아이들은 누구나 충분히 예뻐해주고 있으니 노인 분들에게 좀더 잘해야겠다, 는 작은 다짐도 해본다.

 

오늘 도서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본 할아버님이 다짜고짜 커피는 어디있냐고 물어보셨다. 근처 카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파는 데를 얘기하시는 건가요, 하고 다시 여쭈었다.

자판기를 원하시는듯해서 5층이라고 알려드렸다. 내리셔서 허둥지둥 하시는 게 보여 다시 불러서 구석진 곳을 가리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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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적은 일기.

   

어제는 애들 방학이어서 분주하게 보냈다. 애들도 한해를 보내며 자신들도 뭔가 정리를 하겠다며 포켓몬카드를 거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늘어놓고 자기들 나름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점심은 제대로 분식집 떡볶이를 먹는다 해서 비록 냉동이지만 김말이도 해주었다.

 

그 와중에 또 앞 동 친구들 비글남매들이 들이닥쳐서 남자애들은 게임을 하고 여자애들은 자전거를 타러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서 두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는 애들이 어쩐지 중학생 같고 귀여워 웃었다. 딸아이는 방학식 전날엔가 학교 장터에서 산 꾀돌이를 친구랑 한 알 한 알 아껴 나눠먹으며 또 까르르.

 

같이 있던 친구엄마가 공원에서 나와 우리 딸을 처음 보았을 때 인상을 말해주었다. 얼굴이 화끈달아오른다. 시골에서 막 나와 순박함을 벗지 못했을 때 누구라도 사귀어보겠다고 아이는 몇 살이고 남편은 뭐하고 먼저 줄줄 늘어놓던 시기였다.

 

이런 대화 중에 병중이신 엄마는 거의 시간마다 전화를 하셨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차분히 다시 전화했다. 딸아이는 내가 외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이면 무서워해서 아무도 없는 데서 조용히 걸 수 있을 때만 걸려고 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오히려 온화하게 대할 수 있었다. 불안이 날로 심해져서 30분 정도 차분히 진정시켜드렸다.

 

아이들 저녁시간에 애들아빠가 새해결심을 적어내라고 해서 딸아이는 웃으며 흔쾌히 모범답안을 적어내고 아들은 강력히 반발해서 중간에 나만 곤란했다.

 

수면시간을 조정하려 11시에 자려고 했는데 10시 정도에 잠들어 버려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더니 새해를 알리는 카톡이 몇 개 와 있다.

 

2018년에는 그냥 어쩐지 2017년보다는 평안할듯하다고 믿고 싶다.

 

<랩 걸>에서 저자가 기도했듯이 강해지길 기도하기보다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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