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개학하면 꼭 <리틀 포레스트>부터 보러 가려고 했는데 

지난 금요일 오전에야 겨우 보게 되었다. 진정한 스포주의, 영화 한 편 분량임 

 

임순례 감독, 류준열, 김태리 다 믿고 볼 수 있는 감독과 배우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상상되어 마음이 편했다. 영화를 보고 인터뷰를 찾아보니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고 일부 황폐한? 아니 범죄현장인 영화판과 판이하게 달라 안심이 되었다.

 

서로 존중하고 협업하고 표준근로계약을 지켜가며 만든 영화,

사람만이 아니라 곤충들, 소, 개와 같은 동물들 컨디션을 고려하며 만든 영화,

눈과 귀가 편안했다.

 

 

@사진은 류준열 배우가 찍었다고 함, 현장 분위기가 보이는 사진 +_+

 

 

원작과 다른 것은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엄마가 혜원의 수능을 끝내고서야 길을 떠난 것과 친구들이나 가족과의 관계도 공들여 표현한 것이다.

 

요즘의 험한 현실을 의식하여 혜원이가 혼자 외딴 시골집에서 살 때의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돗개(이름마저 너무 예쁜 오구, 오구오구), 근처에 있는 고모를 작품 초반에 빈번히 등장시켰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감독 인터뷰 기사에서 봤는데 일본영화에 우체부가 등장하면 따스한 일이 일어날듯한데 한국영화에 우체부가 등장하면 긴장된다고. 후. 스릴러나 이런 데에 우체부가 나오기도 하고. 

다행히 이 영화에서는 우체부 역을 맡은 배우가 담백하게 잘 처리해주셨다.

 

혜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사를 준비하다 남자친구는 합격하고 자신은 떨어지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낙향한다.

 

어릴 적 친구이자 읍내 은행원인 야무진 친구 은숙은 아픈 데를 콕콕 찌르며 왜 왔냐고 묻지만 혜원은 단지 배고파서 내려왔다고 한다. 도시의 인스턴트로는 혜원의 근원적 허기를 달랠 수 없기 때문이다.

 

혜원이 배고픔을 달래려고 언 밭에서 배추를 뽑아와 배춧국을 끓여 맛있게 먹고 난로를 피우고 편히 드러눕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수제비, 팥떡, 막걸리, 파스타, 아카시아꽃 튀김, 크렘브륄레 등 다양한 요리가 펼쳐진다. 아침도 대강 먹고 나온 터라 보는 내내 침이 고였다.

 

요리를 잘 못하는 별주부이긴 하지만 그릇이나 조리도구를 보고 경북 의성의 농가 부엌에 있을 도구들이 아니라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분당 새댁 주방을 옮겨온 듯 너무 이질적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나중에 인터뷰 찾아보니 혜원의 엄마가 일본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관련 직업을 가졌던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라고 한다. 아마 영화 주 타겟이 20-30대 여성이라 그런지 모든 장면장면이 예뻤다. 

 

사과밭에서 재하가 입었던 체크 남방마저도 사과와 초록잎이 어우러지는 그런 패턴이었고 혜원이 입었던 니트 그리고 몸빼마저 아기자기 고왔다.

 

영화 초반부터 일찍 재하가 등장했고 혜원에게 오구를 안겨주고 자주 혜원을 돌봐주는 걸 보고 약간의 썸을 기대했지만 정말 담백하게 셋이 어울려 노는 게 보기 좋았다. 혜원의 말대로 서울이나 여기나 그놈의 연애, 연애. 여기에 보태서 어리건 늙었건 연애, 연애.

 

언제나 우리에겐 담백한 우정이나 굳건한 신의가 더 필요할 뿐.

 

애늙은이인 재하나 혜원은 애인에게 이별을 고할 때도 성숙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예의있게 보내준다. 젊은층이 흔히 택하는 잠수이별이 아닌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이 선택해서 하는 이별의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혼자 제일 크게 웃은 장면.

 

은숙이랑 혜원이 재하를 두고 농담으로 공정 경쟁을 하네마네 하는 와중에 재하의 구여친과 마주한 장면이다. 둘 다 추레하게 입고 있는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차려입은 재하의 구여친님이 바람에 살랑살랑 긴 생머리 휘날리며 등장해주신다. 그 옆에서 쑥스러운듯 지나가는 재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라는 속담은 조상님이 이런 상황에서 민망하지 말라고 만드신 속담이라지.

 

영화 내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거둬들이고 보관하고 요리해서 먹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세 친구는 가끔 만나 먹고 놀지만 서로의 영역을 무리하게 침범하는 법은 없다.

 

막연하게 혜원과 재하는 어쩌면 연결되는 건가 하는 기대도 품어 보았지만

영화 마지막에 혜원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어쩐지 엄마일 것만 같다.

 

이 영화에서 혜원과 엄마의 관계는 친구들과의 관계보다 더 공들여 그려진다. 아빠의 요양차 시골로 내려왔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혜원을 시골에서 홀로 키우다가 혜원이 독립할 즈음 엄마의 삶을 찾아나선다. 말이 쉽지 이렇게 살아가는 엄마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필요할 만큼 충분히 보살펴주다가 아이가 독립할 즈음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기보다는 아이가 어릴 때 제대로 필요한 걸 채워주지도 못하고 아이가 독립할 시기에 엄마는 오히려 나약해져서 자식에게 기대려 하는 부모들이 꽤 많다.  그런 면에서 혜원의 엄마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어머니 상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이며 여자이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며 역시나 류배우.

어떻게 자신이 필요한 그 자리에 꼭 맞게 찾아가는지.

분량은 많지 않지만 무게감 있게 작품 전반을 받쳐주고 있다.

 

시골에서 자라 대기업에 입사한 재하가 직장에서 상사에게 받은 모멸감은 미투 운동의 본질과 맥을 같이한다. 미투 운동이 거센 가운데 미투를 성 대결로만 잘못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위력에 의해 인격을 말살당하는 일은 남녀 불문하고 사회생활 초창기에 종종 겪게 되는 일이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만을 다루며 나도 당했다는 수동적인 외침이 아니라 위력에 의한 모든 사회악을 나도 고발한다는 것이다.  

 

재하는 위력에 굴복하는 삶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태풍으로 사과가 모조리 떨어지는 시련을 겪기도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인다.

 

은숙 역을 맡았던 그간 내가 잘 몰랐던 진기주 배우의 연기도 좋았다. 

노래방에서 성희롱을 일삼는 과장을 탬버린으로 과감하게 내리치는 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을 것이다. 사실 저런 상황이 닥치면 대개 몸이 굳기 마련이다. 은숙 역시 혜원에게 몇 번이나 고민을 토로하고서야 실행했을 것이다. 더 이상 참다참다 참아줄 수 없어서. 그 과장은 처벌받은 것도 아니고 전근갈 때가 되어서 다른 데로 가버렸을 뿐이라 아쉽긴 하다. 현실이 그러니 적절하게 그려진 것이다.

 

*

길지 않은 러닝타임인데 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져버렸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건 결국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저마다의 숲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

 

언제나 마무리는 어려우니

어서 미사를 드리러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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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이들 개학하고 새학년이 되면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힘들었던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신의 신>과 <딸에 대하여>를 읽으며 답답하고 막막했다.

 

억압을 가하는 제도권을 벗어나도

자유롭지 않고

궁핍과 굴종이 기다리는 삶

 

늑대 소굴에서 벗어나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여인이 가여웠다.

아프다고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상황.

 

연일 미투

구역질나는 그들.

<읍산 요금소>는 도처에 널려 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들과 딸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아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 를

기계적으로 외치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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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만 더 과학, 수학을 잘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늘 생각한다. 

인생 전반적으로.

 

늘 '감성' 아닌 '감정'이 앞서고 이성과 논리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주 가끔이라도 과학 에세이 정도는 봐주어야 한다.

 

<랩걸>,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월에 걸쳐서 약간씩 보고 있는 책이다.

 

유시민 님이 추천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랩걸>

 

역시 명성에 걸맞게 좋구나.

 

일단, 초반이라서 작가의 가계도와 성장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P.52 : 인간의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이 작은 씨앗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작은 식물의 열망이 어느 실험실 안에서 활짝 피었다. 그 연꽃은 지금 어디 있을까.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내가 특히 저 구절에 주목한 것은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 때문이다. 

 

동생이 결혼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상견례를 하고도 수개월이 지나서야 이 한파에 결혼하기까지 (내 사정이 아니라 밝힐 수는 없지만) 정말 힘들었다.  한 사람이 저렇게 고난을 당해도 좋은가 싶은 일이 많았다.  물론 그 곁에서 나에게도 크고 작은 시련이 있었다.

 

그런데 아주 단순하게도 동생의 결혼식으로 모두 보상받았다.

가족 누구도 공식적으로는 울지 않고 잘 마무리했다.

 

간혹 하객석에서 친구들이 눈물 짓기도 하는 걸 봤지만 다 동생이 제대로 살아왔다 증거이고 친구들 심성이 곱다는 징표이니, 뭐.

 

정말 눈에 넣으면 많이 아플 푸우를 닮은 커다란 제부는 신부를 위한 축가를 부르다 핸드폰을 컨닝하기도 하면서 큰 웃음을 주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를 부르다 끝에 나랑 결혼해 줄 거니? 하고 유머러스하게 마무리하며 하객들을 미소짓게 했다.

 

이런 모든 노력이 편찮으신 엄마의 표정도 풀어드린 듯해 더욱 고마웠다.

 

*

<나무 위 나의 인생>은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랩걸>과 겹쳐진다. 인생과 자연을 사랑하는 여성과학자의 분투기.

 

그중 압권은 과학자판 며느라기라는 것이다.

시가에서는 여자의 본분?에 충실하기를 바라지만 저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찾아 중심을 잡고 연구를 계속한다.

 

이 값진 책의 번역은 유시민 님 동생이 하셨다.

 

 

 

 

 

 

 

 

 

 

 

 

 

 

 

 

 

동생 결혼식만 하고 나서 책도 보고 집도 정리하고 하려 했는데 한동안 허탈해서 멍하니만 있었다. 

 

책이 정말 눈에 안 들어와 이 책 저 책 늘어만 놓았는데 < 그 겨울의 일주일 >을 단번에 읽었다. 오래 전 아일랜드 이야기인데 가족간의 갈등이라든가 가족에 대한 애증이 뭔가 한국적 정서와 맞닿아 있어 신기해 하며 읽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진리.

 

남자들은 허황되게 사랑을 약속하곤 떠나버리고 남겨진 여자들은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려 노력하고 자신의 삶을 힘겹게 꾸려간다. 아무런 원망이나 불평 없이.

 

각자의 사연을 지닌 호텔 투숙객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얽혀든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은 부유한 독신 세 자매, 열정적인 사랑은 해봤지만 아이는 없는 여자, 열정적인 사랑의 결과로 아이가 생긴 여자,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 싫어하는 여자와 그 여자의 아들과 살고 싶은 여자 그밖에도 상처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등장한다. 모두가 마음 아픈 사연을 지녔지만 엄마의 불륜을 목격하고 아빠에게 말해서 가정이 해체된 후 마음의 문을 닫은 여교장이 제일 가여웠다.

 

다 읽고 나서 허황되게도 역시 유산을 많이 받은 미혼 여성들이 제일 평탄하게 살다가는군, 하고 웃었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이제 보편의 경험이 아닌 세대가 되어갔고

피, 이런 이야기는 관두고

내가 지금 양가 부모 봉양과 양육으로 인한 감정 소모에 지쳐서 그런가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혼자 자립하기까지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 절실한데 가족, 특히 엄마에게 그 책임이 전가된 사회에서 여성은 온전히 삶을 누릴 수 없다.

 

좀 제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보려 하면 늙거나 병들거나 생의 끝자락에 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 엄마같이.

 

 

명절 연휴에 조금씩 읽은

유명한 <이상한 정상가족>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한 시가

체념한 부분도 있고 감사한 부분도 있고 그렇다.

이제 가끔은 정 힘들면 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집에 오면 정말 하고픈 이야기는 남아서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부장 제도 밖의 어려움을 어릴 때부터 겪어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정상 가족' 범주에 있다는 게 참 안도되는

정말로 괴상한 자기 분열을 겪고 있다.

 

나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평안하다고 최면을 걸고 있다.

엄청 사소하다고 하는 것들이 계속 쌓여서

나중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 무게에 짓눌린다.

 

남들처럼 쇼핑이나 수다로도 풀리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

 

물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내 쉴 자리가 필요하다.

 

*

어린이집 체벌에는 게거품을 물며 집에서는 아이들 엉덩이나 등짝 정도는 때리는 게 어때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가족 동반 자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시선보다는 가족 몰살 자녀 살해 후 자살이 맞는 표현이다.

 

또 예전이 좋았다고들 하는데 박정희 정권 시대 자살률이 훨씬 높았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은 그냥 압축된 근대화로 인해 내내 자살률이 높았다는 구절이 의미심장하게 꽂힌다.

 

복지나 사회안정망의 부재로 인해서 질병이나 사업실패 등으로 나락에 떨어진 가정은 언제나 해체와 소멸이라는 길을 가게 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동학대 부분은 정말 보기 힘들었다.

 

 

*

여러 일로 나에게는 참 춥고 긴 겨울이었다.

 

인생은 참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간간이 이렇게 책도 보고 미사도 드릴 수 있으니

천천히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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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에서 여러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며 읽은 책들이다. 의외로 장편이 읽히기는 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작년부터 소소하게 읽은 히가시노 작품 중에서 제일 놀라웠다. 범인을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나 흡인력 있게 이끌어갈 수 있는지.

 

천재수학자가 옆집에 이사온 모녀를 통해 생의 의미를 찾고 그들을 위해 '인생'과 '명예'를 거는 크나큰 낭비를 한다.

 

전체적으로 신파인데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의 친구의 말에 더 큰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 필요없는 톱니바퀴란 없고 톱니바퀴의 의미는 그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결말에 야스코가 자수를 한 것도 적절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작가의 하층민에 대한 애정이 보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호스티스 출신 여성들에 대한 이상한 '향수'에 공감할 수 없다.

 

그 바닥이 그렇게 마음 잡고 종자돈을 모아 나올 만한 곳이 아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마음잡고 술집에서 나와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는 호스티스가 나오는데 전혀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 세계가 그렇게 발빼기 만만한 데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뭔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 보면 그만이다.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가준다. 복잡한 일도 잊고 푹 빠져서 보았으니 그걸로 족하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읽기 힘들었다. 처음으로 만나본 작가인데 뭔가 혼돈이었다.

 

여러 판타지 요소들이 한데 섞여 있어 어수선하다. 

 

소년의 현실은 무겁고 한데 마법사는 뭔가 포근하지 않고 흑마술사 같기만 하다. 소년을 분명히 숨겨주고 잘해주고 했는데 캐릭터가 참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잘못잡은 츤데레 캐릭터.

 

실제로는 엄청난 피해자인데 가해자인 배 선생도 그렇고, 소년도 그렇고

끌리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우중충한 느낌이 들어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면 이 책을 읽던 당시의 내 상황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작가님이 무슨 죄.

 

어떤 책이 읽히는 상황에 따라 걸작이 졸작이 되기도 하고 오독도 많아진다.

 

 

*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헌신'에 대해 생각해봤다.

헌신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흔한 말장난,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는 말과 같이 이시가미와 같은 맹목적인 헌신은 무섭다.

 

자신의 생을 낭비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모든 걸 던진다는 것은 그 헌신을 받는 상대에게도 크나큰 부담을 갖게 하는 것이다.   

 

과연 야스코 모녀는 이시가미의 그런 헌신이 필요했을까.

이시가미가 아니었다면 자수를 해서 죄값을 치르고 그들 나름대로의 길을 찾았을 것이다.

 

 

*

나도 아이들에게 너무 헌신하지 말고

이제 내 길을 찾을 시기.

 

동생 결혼도 잘 마무리하면

우리 집도 좀 돌아보고 할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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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큰이모 딸이 결혼을 하는 날이다. 강남까지 가야 해서 긴장하며 잤더니 또 너무 일찍 일어났다.

 

내가 고3 때 그애가 일곱 살이었나. 같이 에버랜드에 간 기억이 있다. 고3이 되어서야 에버랜드에 처음 갔는데 공부할 때에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도 했고 아마존 익스프레스 탈 때 맞은편 커플이 어여뻐서 나중에 나도 대학에 가면 꼭 저렇게 다시 와봐야지 했는데 정작 대학에 다닐 때는 에버랜드 가기도, 커플되기도 모두 이루지 못했었다. 새벽부터 눙물이 ㅜ.ㅠ

 

 

사실 이 어린 사촌을 그렇게 자주 만나지 못해서 어떻게 자랐는지 몰랐는데 구호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20대를 보냈고 거기서 짝을 만났다고 한다. 참 곧고 바르게 잘 컸다.

 

우리 동생은 2월에 결혼을 한다. 매번 만나면 잔소리인데 차라리 이런 책들을 사줘야겠다. 안 볼 가능성도 높지만. ㅎ

 

<3배속 살림법>은 털뱅이로 유명한 블로거가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수납과 살림법을 알려준다. 물건이 많은 집이면 유용하다. 여러 수납박스를 많이 써서 미니멀리스트라면 조금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

 

<진짜 기본 요리책>은 자취생이나 신혼부부에게 유용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지 하고 마는데 사실 재료손질이나 선택부터 초보자는 힘들어하기 때문에 이런 책 하나 있어도 유용하다.

 

<생활도감>은 도감 시리즈 모으면서 사본 건데 일상에 유용한 팁이 가득이다. 특히 책에 나오는 대로 아이들 데리고 가지 않고 혼자 옷 사러 갈 때 소매 세 뼘, 몸통 두 뼘, 길이 세 뼘 이렇게 재어가서 사면 사이즈 실패를 줄일 수 있다.

 

<1인 가구 살림법>은 도서관에서 잠시 훑어보았는데 신혼이나 자취생에게 유용하다.

 

<이 놈의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는 몇 년 전에 친환경 청소 제대로 해보려고 샀는데 역시나 실천이 따라야 한다.

바지런하게 청소 스케줄 짜고 청소 도구 잘 관리하고 열심히 실행하는 페코 님 그저 리스펙!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명 블로거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타니아의 작은 집>은 물건 고르는 법이나 공간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를 직접 하기보다 공부법 책이나 문제집 사들이기에 열중했듯이 지금도 직접 청소하고 요리하고 정리하기보다 책을 더 많이 봐서 문제다.

 

이중에서 몇 권은 신혼인 사촌과 동생에게 선물해야겠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는 이모께 선물로 드렸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지만 드리고 나니 나이도 더 적은 내가 어른에게 드리기엔 좀 그런 책 같기도 하다.

 

사노 요코 에세이가 더 좋았을 듯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마스다 미리는 진작에 졸업했는데 최근에 <차의 시간>을 알라딘 굿즈 요건 맞추려고 샀다가 역시 후회했다. 조만간 팔아야겠다. 정말 마스다 미리는 동어반복 자기 복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마스다 미리 에세이 중에는 <엄마라는 여자 아빠라는 남자>라는 에세이가 그중 나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순전히 알라딘 굿즈 골덴가방 때문에 구매.

 

<위저드 베이커리>도 크리스마스 담요 때문에 구매.

 

새해에는 견굿즈생심을 버리고 생민 정신으로.

 

책은 우연히 도서상품권이 생겨야 사는 걸로 정하든가 해야겠다. 

 

앞의 소설들도 책을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에 유용한 따뜻한 소설들이다.

 

 

이렇게 적어는 봤지만 사실 책 선물은 참 어렵다.

 

오래 봐왔어도 그 사람이 그 책을 좋아할지는 미지수이고

또 요새 책 읽을 여유가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따 가면서 읽을 책이다.

짐작한 대로의 이야기들이 있고 역시 자기 복제적인 면도 있지만

후반부에 좀더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읽어보련다.

 

글을 잘 쓰려면 문장보다 문단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

 

내가 인터뷰를 해본 거의 모든 사람과 달랐던 점은 수전이 문장이 아니라 정연하고 여유로운 문단으로 말했다는 사실이다.

 

수전 손택은 뛰어난 작가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인터뷰이이기도 하다. 그녀는 글을 쓰듯이 말했고, 말을 하듯이 글을 썼다. 수전 손택은 문장의 아름다움보다는 논리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했고, 깔끔한 말보다는 계속 조정되고 조율되는 말투를 사용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SNS를 사용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문단을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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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9-2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어둔밤꿈꾸는임 2023-01-15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목표가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인데 소개해주신책들로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