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몇 주 전에 힘겹게 읽었다. 마침 체육계 미투 조재범 코치 사건으로 시끄러운 시기였다. 제목만 들으면 하이틴로맨스 같기도 하지만 어둡고 힘겨운 소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팡쓰치들이 있는 것일까.

 

행여나 나까지 말을 보태 상처가 될까 글을 쓰기 망설여졌다.

 

아침에 조간 뉴스를 클릭하기 무서운 세상이다. 세상 젠틀하고 성실하게 사는 이미지를 밀었던 아이돌 출신 사업가는 실상은 유흥업계와 깊이 관여되어 있다고.

 

너무나 더럽고 흉포해 호기심에 하나만 선택해 읽고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했다.

 

*

소설 속 팡쓰치, 류이팅은 둘도 없는 친구이다. 집안은 유복하고 학업성적도 뛰어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이 소녀들은 리궈화라는 문학강사를 만나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이원이라는 소녀들 주변의 인물은 중상류층 새댁이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무기력한 여성이다.

리궈화에게 찍혀 제물이 되어 인생이 망가진 또다른 학생도 나온다. 꼭 다시 찾아 이름을 기억해둘게. 이 학생의 사연도 너무나 마음 아팠다.

 

작가 린이한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 있어 팡쓰치의 절절한 내면을 보는 것이 너무 아팠다.

 

읽고 나서 한동안 예전 동네 골목에서의 일이나 만원 지하철이 꿈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알았던 어떤 선생님들 얼굴도 스쳐갔다.

 

선생이기보다 한 '남자'로 보이고 싶어했던 그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언니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든 인생이든 운명이든 아니면 신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정말 형편없어요.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왕자와 공주가 결국에는 결혼하는 해피엔딩이 혐오스러워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세상에 영합하는 비열한 결말인지!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원망하는 게 뭔지 알아요? 차라리 내가 세속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차라리 내가 세상의 이면을 본 적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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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동안 리궈화라는 아동성애자가 타깃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심리상태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일단 리궈화의 원칙은 가난하고 부모의 영향력이 적은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팡쓰치는 이런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 부유한 집안의 아이였다.

 

그렇지만 리궈화는 팡쓰치의 결벽에 가까운 자존심이 자신을 안전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범행하고 팡쓰치를 길들여간다. 팡쓰치는 혼돈과 공포 속에서 차차 자신을 잃어간다. 리궈화는 팡쓰치를 만나면서도 다른 대상을 물색하고 동료들과 다른 나라로 원정 성매매를 가기도 한다.

 

팡쓰치는 자신의 생활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범행 사실이 알려진 후에 팡쓰치는 이미 손쓸 수 없게 심신이 망가진 상태였다.

 

팡쓰치의 교양 있는? 부모는 나이 많은 그와 팡쓰치 사이를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손쉽게 딸을 내어준다. 친구인 류이팅은 처음에는 팡쓰치와 함께 리궈화를 두고 인정 경쟁을 벌인다. 팡쓰치의 속사정도 모르고 다만 친구가 자신보다 스승의 관심을 더 받고 있다고만 여긴다.

 

팡쓰치는 고통 속에서 선생님을 사랑해보려고 한다. 차라리 그 편이 고통을 견디는 데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고회로가 망가진 상태였다.

 

그루밍 성폭력의 전형적인 사례.

 

농담으로 하는 말인 '키워서 잡아먹지' 하는 류의 멍멍소리들이 섬뜩하게만 들린다.  

 

 

*

2017년 대만에서 출간된 책에 실린 작가 소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타이난에서 출생. 전공이나 학력은 없다. 모든 신분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은 정신병 환자라는 것.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처럼 책벌레가 독서 애호가가 되었다가 다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책이 나오고 폭발적 반응을 얻었지만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부디 그곳에서는 고요하게 원하는 책 많이 읽고 산책도 하기를.......

 

어제 <롤리타>를 빌려왔다.

하도 고전이라고 하고 롤리타 컴플렉스니 뭐니 하는 말이 고전을 왜곡했다고 해서 좀 제대로 보고 싶었다.

 

한 다섯 장 읽고 벌써 불편하다.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17쪽

 

주석에 4피트 10인치는 147센티라고 나온다.

자연스레 키가 그 정도 되는 딸아이가 떠오르면서 엄청 불편하고 무섭다.

표지의 젓가락같이 마른 다리는 딱 딸아이의 다리 모양이다.

 

다 읽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

오후에 딸아이가 공원에서 잠시 친구랑 노는데 어떤 남자고등학생이 어느 학교 다니냐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교육받은 대로 친구랑 일단 다른 데로 가서 놀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공원의 다른 지점에서 다시 그 학생과 마주쳤는데 반갑게 손을 흔들어서 집에 왔다고 한다.

 

엄마, 그 오빠는 왜 모르는 우리한테 인사한 거야, 하고 해맑게 묻는다. 

 

물론 그냥 심심하고 너희들이 귀여워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일단 안전한 쪽으로 생각해야 해.

 

친절보다는 안전이야.

 

아주 잘했어, 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딸아이가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좀더 많이 지켜봐주어야 한다.

 

 

동네에서 많이 예민한 엄마 소리를 듣지만

시사 프로그램에 나왔던 갑자기 사라진 소녀들을 생각하면

좀더 과잉 보호해도 지나친 것은 아닐듯.

 

집에서 이십 분 거리에 성범죄자가 거주하고 있고

한 시간만 가면 나오는 군에서는 6월마다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

 

내 아이가, 내 아이 친구가 피해갔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

 

 

지금부터 운동 많이 해야겠다.

 

20년 후엔

노란 형광 조끼를 입고

유흥가를 돌면서

술 취한 학생들을 깨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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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지나고 나서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소문보다는 별로 세지 않았다. 그냥 주위에 있을 법한 에피소드들.

 

전형적인 고부 갈등.

독립영화계의 '사랑과 전쟁' 맞다.

널리고 널린 소재.

 

그러나 시가에 잠시라도 발길을 끊고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내 아들도 볼 수 없다고 당차게 선언하는 며느리는 아직 많지 않다.

 

초반의 이 당돌한 선언이 나오기까지 원인 제공자인 진짜 평범한(?) 시어머니의 횡포에 한숨이 나왔다. 결혼하기도 전에 일터에 전화를 해서 고양이를 키우면 결혼할 수 없다고 하고 조리원에 있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다가 하도 안 받으니 조리원에 방송이 울려 퍼지게 했다는 데에서 머리를 절레절레.

 

그런데 이 정도는 사실 지역 육아카페에서 펑 사연(속이 답답해 썼다가 나중에는 껄끄러워 지우는 사연)으로 널리고 널렸다. 며칠 전에도 조회수 엄청 높은 게시물에서는 시아버지가 부부끼리 놀러갔는데도 수시로 영상통화를 수십 통이나 남겼다는 사연을 보고 절레절레.

 

도대체 왜 평범한 인간관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왜 가족관계에서는 허용되고 묵인되는지.

 

사지 멀쩡한 어른들이 여럿이어도 왜 늘 음식장만과 설거지는 그중 서열이 낮은 여성의 몫인지.

 

물론 난 물음만 가득하고 어느 모임에 가든 그냥 일을 자처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는 체념했고 싸워 나가기에는 용기가 없는 그런 사람이라.

 

*  

 

흥미롭게 모든 현상을 보기만 한다.

왜 저 사람들은 저런 대화를?  저런 행동을 하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내가 이런 심리 상태가 되었고

내 상황에서 내가 편한 길은 어떤 것인지 궁리한다.

 

이번에는 그냥 남편에게 명절 당일 아침 7시에 가고 싶다고 했고

가서 손님 대접, 설거지를 하고 오후에 돌아왔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

구구절절 설명 없이.

 

나는 이제 잠은 그래도 집에서 자고 싶고, 너무 오래 시가에 머무는 것이 싫다.

너무 오래의 기준은 "나와 아이들의 기분, 상태"

 

삼십 분 거리에 살지만 어머님은 몇박 몇일 자고 갔으면 하신다는 것을

나는 알기는 한다.

 

그래도 이제는 다 들어드리기는 어렵다.

 

*  

 

오랜 부부간 불화로 시숙은 부인을 동반하고 명절에 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다행히 관계를 회복해 형님이 오려고 했는데 시숙이 막았다고 한다. 형님이 오면 시숙은 형님 처가에도 가야 하는데 그건 싫다고.  코메디가 따로 없다. 물론 두분만의 역사가 있으니 함부로 판단하지는 말아야겠지.

시숙에 대한 내 감정은 그냥 별로 좋지 않구나. 이런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어머님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분이시고 시집살이 시키는 것과 거리가 먼 분이다. 그렇지만 나는 첫 명절에 어머님 친구분 댁에서 한나절 동안 만두를 남의 집 것까지 오래오래 빚은 적이 있고, (며느라기 시절이라 바보같이 힘드니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못했다) 가끔은 여자 집이 더 기울어야 남자가 기 펴고 산다는 류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너 데리고 왔을 때 어려운 집 아이라 좋았다고(아버지가 안 계신 우리집 상황을 빗대어ㅎ)

 

그리고 십오년 동안 명절에 가도 내가 마실 수 있는 커피류는 발견되지 않아 늘 싸들고 들어간다. 아들 셋과 손주들 취향은 단번에 파악해 늘 종류별로 구비되지만 이번에도 커피 사두는 걸 깜박했다는 머쓱한 고백을 듣는다.  엄청나게 비싼 것도 아닌 맥심 종이봉지 믹스일 뿐인데.

 

서운하기보다는 그냥 그 정도가 며느리에 대한 감정인가 싶다. 옛어른들의.

 

나 역시 어머님을 온전히 헤아리기에 부족한 사람이고 그런 관계이기에,

사람 자체로 만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기에, 적절한 수준의 평화를 유지한다.

 

 

*

 

갈등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어떤 계기로 부인이 마음을 돌려 시가에 다시 가게 되었는지 명확히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하고픈 메시지는 강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스스로 마음을 먹었을 때 시가에 갈 수 있어야 편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시가에 가까운 이곳에 내려와 살면서 강요 아닌 강요를 접하다 이제 어느 정도는 접점을 찾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순간이 자주 있다.

 

나는 이 불편한 마음을 오래 들여다 볼 것이고

내가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할 뿐이다.

 

 

나는 어머니에게는 그냥 며느리일뿐이고

며느리로 잘 기능해야 사랑받고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 사랑과 인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께 해드린 것보다

늘 분에 넘치게

충실하게

늘 되돌려주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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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2-1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서 두 번째 문단.... 제가 옮겨가서 간간히 써 먹고 싶은 그런 문장이예요.
그래도 되나요? 뚜유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침부터 심쿵한 글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막 스쳐가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뚜유 2019-02-12 15:2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명절 보내고 영화 보고 나서도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도 개운하지만은 않더라고요.
이렇게 세게? 말해도 되는 건가, 하고 수정하려고 들어왔는데
심쿵하다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

어찌 되었든 누가 뭐라고 하든
나의 감정과 생각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
 

 

 

 

 

 

 

 

 

 

 

 

 

 

 

 

 

 

엄청 좋다고 이야기만 들었던 이슬아 님의 책을 얼마 전에 보았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무거운 가족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을 틀렸다. 

 

첫장 잉태부터 예상과 달랐다. 부모님의 섹스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딸을 가지게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아빠는 그 기분을 믿지 않은 채로 잠들었다. 그 무렵 엄마는 꿈에서 자주 과수원을 거닐었다고 한다. 동그랗고 빨갛고 윤기 나는 사과들을 따서 광주리에 가득 담았댔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 이야기들을 나는 좀 좋아한다. 옛날 옛적 코끼리가 진흙 위를 밟고 지나가다가 생긴 커다란 발자국을 어떤 여인이 밟고 지나갔더니 임신이 됐다더라 하는 식의 터무니없는 탄생설화도 좋다

 

 15쪽   

 

딸 태몽은 대개 비슷하다.

엄마한테 나는 포도밭에서 한 가득 포도가 열린 것을 보고 마구 따서 먹었더니 치마가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나.

 

하지만 정작 내가 딸아이를 가졌을 때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복숭아인지 딸기인지 꿈이 매번 바뀐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릴 때 엄마를 너무 좋아했고 엄마와 애착이 강한 딸로 자라든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든 좋은 딸이 되기는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작가는 잘해내고 있는듯하다.

엄마를 엄마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이해하려는 좋은 딸이다.

 

그리고 누드모델이자 연재노동자로 열심히 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누드모델을 하면서 느낀 점 중에서 사람들이 작가의 몸을 보고 그리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린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림을 그렸다는 부분에 동의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석할 때 자신과 닮은 부분에 주목하거나 전혀 다른 것을 보고도 자기 식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둥글하면서도 날카로운 그림체도 마음에 들었다. 

우선 빌려보았지만 소장해도 좋을 책.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는

웃을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되는 딸을 원한다.

 

물론 나는 우선은 작가님처럼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되는 딸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요즘 제목 짓는 센스

놀랍다.

 

이분도 유명하신가보다. 정신과의사가 병원을 박차고 나와 무료 정신상담 트럭을 운영하기까지의 과정과 약간의 개인사를 담고 있다.

 

지역 정신보건센터나 방송국과 연결이 되었다는 면에서 저자는 운이 좋은 것이지만, 중증환자들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정신과에 대한 일반의 인식 개선, 그리고 정신과 문턱이 낮아져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정신과 치료에 일반 질병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국가보험이나 사보험 모두 적용이 힘들다. 재발도 잦고 평생 가져가는 것이다.  

 

일회성 상담이나 가족, 주변의 관심 같은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만성질환자가 많다.

 

저자의 고군분투는 물론 소중하다. 그러나 단순 기분부전이나 우울증 초기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회나 개인에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역시 중증 질환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 읽고 썩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암 치료를 재능기부로 하지 않듯이 정신과 관련 질환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더 늘어나면 가족들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도 아니고 죽을 확률이 매우 높은 중증 질환이다.

 

*

 

다행히 병원으로 돌아가셨으니 그곳에서 역시 소명을 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다.

 

병원에서도 환자에게 희생당한 분이 있는데 그런 공간은 환자에게나 의료진에게 다 위험하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교수님을 추모하며 한번 읽어보고 싶다.

 

 

모든 에세이가 왠지 투병기처럼 여겨지는

미세먼지 가득한 우울한 겨울이지만

일주일 전에 애들이랑 남원 눈꽃축제 눈썰매장이랑 근처 백두대간 생태전시장 게판오분전이란 전시도 다녀왔다.

 

갑각류 전시인데

게판오분전

네이밍 센스 보소.

 

전시 보고 나서 인스타 올리면 꽃게랑을 준다. 지역카페에 눈꽃 축제 게판오분전이라고 후기를 올렸다가 제목만 보고 눈썰매장이 준비가 안 되어 개판오분전으로 보았다는 댓글이 속출했다. ㅋ

 

딸이랑 전당이며 박물관 수업도 다녔다.

아들은 물론 두고 다닌다.

민원 발생을 방지하고 아들의 자유로운 생활을 존중하기 위해서.

 

아들은 진짜 일찍 엄마 품을 떠난다.

겨울철에 실수로 끊어먹은 방패연같이 멀리멀리 날아가버린다.  

 

 

*

그래도

아이들 방학이라 곁에서 강제 독서

애들 방학이면 휘리릭 읽기 좋은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게 된다.

 

예술 관련 잡다하게 편하게 읽하는 책들도 보았다.

 

엄청 같이 무얼 하고 세 끼 챙기고 다닌듯한데

방학이 겨우 이 주 지났다.

 

그나저나 서재에 글 올릴 때마다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된다.

이건 알라디너라면 다 그렇겠지.

 

커피를 좀더 줄이든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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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지만 전혀 새해답지 않게 해묵은 감정들로 고생한 며칠이었다.

왜 나의 원가정과 새로 이룬 가족들 다 나를 힘들게 하는지.

 

사실 그들은 그냥 저희대로, 그대로 있는데 내가 과민한 경향도 있다. 요즘은 감정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눈물이 갑자기 터질 것 같기도 하고 한숨을 쉬고 있기도 해서 딸이 많이 걱정한다.

 

매일

"엄마, 오늘 기분은 어때? 1부터 10까지 중에서" 이렇게 묻는다.

 

어릴 때 어디가 아프면 내가 물어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딸아이가 되물어온다.

8 정도는 되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해준다.  

 

사실은 요 며칠 4나 3인 날이 더 많았다.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아직도 근심에 짓눌려 있다. 

 

계속 가라앉아 있다가 도서관에 읽고 싶었던 새 책이 들어와 잔뜩 빌려서 차분히 보기 시작하니 좀 낫다. 이제야 8 정도로 회복했다.

 

<보통의 존재>는 정말 좋아서 몇 번 봤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고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중반에 너무 읽기 힘들어 포기했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얼핏 검색하니 젊은층에서는 <보통의 존재>보다 별로라고 하지만 난 작가님과 비슷한 속도로 나이들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잘 보았다.

 

작가님이 뮤지션일 때 청춘이어서 같이 음악을 듣고 이제는 같이 중년에 접어들어서 가족 걱정, 건강 걱정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어서 어쩐지 뿌듯하다.

 

엄청나게 많은 서표를 붙여가며 읽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숫자가 늘어나고 얼굴에 주름 몇 개가 늘어가는 일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노력하고 씩씩해지지 않으면 그 무게에 언제고 잠식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일임을.

89쪽 

 

상처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 그걸 준 사람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책임도 되더라. 누구 때문이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니까, 내게는 누가 주었든 그 상처를 딛고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123쪽

 

우울하고 어두운 것을 즐기려 해도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암에 걸렸다가 완치된 친구가 혹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이제는 뒤가 궁금한 드라마나 내용이 센 영화는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아프면서도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았었는데 이제는 나도 알겠다. 감정과 자극을 즐긴다는 것도 이렇게 체력이 필요하고 그게 안 되면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는 걸. 249쪽

 

나도 그렇다, 이제는 카모메 식당 류의 잔잔한 일본영화나 아이들 애니 정도, 흘러간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살짝 웃는 게 편하다. 몇년 전에 <응답하라 1988> 보면서 감정을 너무 소모했고 최근에 미스터 션샤인도 어떨 때는 버거웠다. 석원 님이 노희경 작가의 라이브 볼 때 힘들었다는 지점에도 공감한다. 형사물이라 사회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고 등장 인물들이 날것의 감정을 분출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이전 작과 비교해서 한층 더 짙은 우울, 출구 없음, 나만 편히 지낸다는 죄책감 등으로 스트레스 받다 드라마 시청 본연의 목적(시간을 편히 잘 흘려보내기)에 어긋나는 듯해서 중도 포기했다.  

 

결국 행복이란 가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은 작은 게 아니더라. 일상은, 일상의 평화라는 건, 노력과 대가를 필요로 할 만큼 힘겹게 지켜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것이더라. 259쪽

 

아픈 발을 이끌고 산책을 하고 노모에게 살림을 맡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쇠잔한 육체에 큰 부담이 될 듯하다.

 

*

궁금하지만 어쩐지 연락은 하게 되지 않는 친구같은 석원님

 

집안에도 일이 많고 많이 편찮으셨군요.

애쓰셨어요.

너무 노력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세요.

 

 

 

 

 

 

 

 

 

 

 

 

 

 

 

 

 

 

 

 

 

오전에 심각한 얼굴로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를 읽어서 딸을 또 걱정하게 만들었다.

 

역시 아무리 내가 힘들어도 이런 증언은 꼭 들어야 한다.

 

오랜 세월 고통받으신 분의 언어를 이렇게나 잘 번역해내다니.

 

말은 자주 끊기고 맥락이 없지만 그 세월이 눈앞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인용을 하기 힘들고 다 줄을 쳐야 할 정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아직 다 읽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재기발랄한 아재 감각은 돋보이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내가 책 보는 동안 딸아이는 이 책에 멋진 작품들을 남겼다. 찍어서 올리려다 전송이 귀찮아 그냥 둔다. 확실히 나에게만 의미 있는 예술작품일 테니.

 

 

 

 

 

 

 

 

 

 

 

 

 

 

 

 

 

 

 

스스로 호를 지은 와식(늘 누워 있음) 김선생은 이런 책을 본다. 초등학생이니 나이에 맞는 것을 보면 좋겠고 그래도 줄글로 된 책을 보면 좋겠지만 이제 내 소관이 아니어서 그냥 둔다.

 

*

 

딸아이는 어린이 미사 가고 아들은 쇼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고

저녁 먹을 건 있으니

 

이만 하면 오늘은 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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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19-01-1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이면 정말 괜찮은 거네요. 저도 그 수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할게요. 잘 지내시죠?

2019-01-12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3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0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계절이면 전에는 그 유명한 <러브레터>를 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남극의 셰프>를 보게 될 것 같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가도가도 끝없는 눈밭.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한 대원이 이탈하려고 한다. 그러자 모두가 포기하지 말라며 기운을 북돋우며 끌고 와서는 고작 마작을 재개한다. '마작' 팀 정식 명칭은 '중국문화연구회'

 

*

남극 대륙 한참 깊은 곳에 ‘돔 후지 관측 거점’, 통칭 ‘돔 기지’가 있다. 이 돔 후지 관측 거점은

해발고도 3,800m, 평균 기온 영하 57도, 최저 기록 영하 79.7도로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관측

지대이다. 오죽하면 펭귄, 바다표범은 물론 바이러스조차 생존할 수 없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만 좋다.

 

이곳에 통신 담당, 차량 담당, 설빙기상학자, 연구원, 전담 의사, 요리사 등 총 8명이 파견되어 함께 일하고 쉬고 먹는 소소한 일상이 펼쳐진다.

 

극지방이니 만큼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인재들이 모여 있지만, 현실은 기다리고 기다리는 지루한 날들이 이어질 뿐이다. 가족과 떨어져서 단신 부임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과 애인과 헤어지는 실연의 고통도 나오지만 그래도 잔잔하고 가끔 피식 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이다. 

 

영화 후반부에 돔 기지와 통신 연결된 아이가 기대에 차서 남극이니 펭귄은 있나요? 바다표범은 있나요? 하고 물으니 꾀죄죄한 아저씨들이 "우리들이 있지요" 라고 답해서 제일 크게 웃었다.

대장이 몰래 라면을 훔쳐먹다 바닥이 나서 니시무라 준이 수제 라면을 개발했을 때 모두가 감동하며 먹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진짜 행복해 보였다. 대장은 늘 나의 몸은 라면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고 외치던 사람이니.

모두가 일생에 한번쯤은 꼭 보고 싶어하는 오로라이지만 극지방에선 오로라보다 오직 라멘. 이런 오로라는 관측하기 힘들다고 하면서도 결국 라멘이 불을 것이 걱정되어 식탁으로 발길을 돌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모두가 외쳤던 에비후라이. 일본에서와 같은 새우튀김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셰프에게 에비후라이를 외쳐대는데 만화에나 나올 법한 왕새우라서 모두가 황당해한다.

 

극지방에서의 관측과 연구보다 니시무라 준이 요리하는 과정이 더 세세하게 나온다. 힘겨운 상황에서 오직 셰프의 요리와 소소한 장난들이 그들을 지탱하게 해준다.

영화 말미에 대원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챙겨 꼭 하는 것을 보고 흐뭇해진다.

니시무라 준은 가족들과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정말 그곳에 갔다오기는 한 걸까, 하고 중얼거린다. 거짓말처럼 이전과 비슷한 일상이 펼쳐진다. 놀이동산에서 패스트푸드를 맛보며 '맛있엉' 하고 감격. 역시 뭐니뭐니 해도 남이 해준 건 다 맛있음.  

찾아보니 원작 에세이도 있어서 책으로도 보고 싶다.

 

*

<체공녀 강주룡>은 금요일에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명성대로였다. 이미 십대 때부터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작가는 돈이 되는 다른 여러 일을 하면서 우직하게 이 작품을 완성했다.

지식채널 e에서 보았던 '지붕 위 여자'를 박서련 작가는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냈다. 전반부에 남편 전빈과 주룡의 미묘한 감정선까지 제대로 짚은듯해서 정말 신기했다. 그 시대 어르신들만 아는 그런 애틋한 부부의 정?을 잘 표현했다. 서로 잘 모르고 집안이 정한 혼사이지만 차차 정을 붙여가는 모습. 이때 주룡이 더 주도적이고 더 큰 사랑을 품고 있어 좋았다. 모든 것을 거는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   

주룡은 어린 남편 전빈을 따라 독립군이 되었지만 솥에 강냉이를 끓여내거나 임산부로 위장해 무기를 나르는 한정된 일만 할 수 있었다. 사소한 갈등 끝에 주룡은 독립군을 나와 친정으로 갔지만 친정 잡다한 일에 치여 산다. 이후 반 년만에 남편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의 최후를 지켜보게 된다.

슬픔에 빠진 주룡은 어이없게도 남편 잡아먹은 어쩌고 하는 흉한 소문과 함께 감옥에 갇힌다. 풀려나서 친정에서 지내다가 다른 동네로 이주해서 친아버지가 자신을 중늙은이에게 팔아넘기려 하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홀로 떠난다. 그리고 평양에서 고무공이 되었고 투쟁의 선두에 서기까지의 장면을 지금 읽고 있다. 사료가 풍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가의 생생한 묘사로 마치 전기를 읽는듯하다.

 

*

살다보면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텍스트로, 화면으로 도피하곤 했다.

본가의 상황이나 단신부임(일본 소설 영화에서 나오는 표현, 어쩐지 주말부부보다 더 명확한 표현 같다)해 있는 남편이나 다 힘들어 보여 굳이 나까지 보태려 하지는 않는다.

그냥 니시무라 준처럼, 주룡처럼

매일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말고는

마땅한 수가 없다.

 


천변에 나가 빨래를 해 와서 널고, 보리방아를 찧고, 무채를 썰어 꿰어 말리고, 시간이 남아 정주간 황토 칠을 싹 새로 하고, 식구들 밥상을 올리고, 야학에 나가려는 전빈을 배웅하고, 밤불을 홧홧하게 때고, 큰할머니부터 형님네까지 문안을 돌고, 방에 들어앉아 관솔불을 밝히고 식구들 옷깃을 뜯어고친다.
이만하면 오늘도 떳떳하다.

<체공녀 강주룡> 34쪽

*

버티다 보면

겨울도 지나고

햇볕 따스한 어느 공터에서 지난 겨울에 그런 일도 있었나?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니시무라 준같이

한 끼 한 끼 성의를 다해서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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