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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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를 먼저 본 후 원작소설을 만났다. 역시나 소설은 영화와는 살짝 다른 분위기이다. 로기완이라는 인물의 존재는 분명히 있지만 스토리의 흐름은 다르다. 그렇기에 소설은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던 작품이다. <단순한 진심>을 읽었기에 작가의 작품은 처음은 아니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무국적자. 난민으로 명명. 신분증 하나 없는 미등록자. 합법적인 절차 없이 유입된 불법체류자. 유령 같은 존재. 인생과 세계 앞에서 무엇 하나 보장되는 것이 없는 다른 땅에서 온 다른 부류의 사람, 곧 이방인이기도 했다." (7쪽) 영화의 로기완을 무수히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이 문장의 인물을 무수히 되뇌게 한다. 로기완이 영화로 작품성을 지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물을 파악하였을지 짐작하게 된다.

<숨그네> 소설의 책표지 그림이 무수히 떠오르는 인물이 된다. <굶주림>소설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성장한 그는 성장이 멈춘 20살이다. 15살 정도의 아이로 착각할 정도의 왜소한 몸을 가진 그는 굶주림에 익숙한 날들이 많았던 인물이다. 탈북하면서 로기완의 어머니는 자신들의 신분증을 모조리 버리게 된다. 공안에 잡히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포상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된 공안들에게 젊은 로기완은 노동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안전한 어머니가 홀로 일을 여러 개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는 어두운 집안에서 어머니의 노동을 바라보는 존재로만 남아 있었고 힘든 노동으로 부은 다리를 끌고 귀가하는 어머니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귀가할 시간에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면서 사건을 급진적으로 전개된다. 그가 방수포에 싼 돈의 가치는 어머니의 생명값임을 알게 된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쉬는 사람 236

살아야 하는 존재가 있다. 살아있을 가치가 분명한 인생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 간암 말기 환자와 전직 의사, 윤주와 방송작가인 화자가 있다. 다양한 인물들이 부유하는 느낌이었는데 결국에는 모두가 살아야 하는 가치가 진중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살아야 어머니가 사는 것이었던 로기완이 있다. 간암 말기 환자가 의사였던 박에게 부탁한 안락사에 대한 내막도 전해진다. 그 환자와 많이 닮았던 방송작가인 화자에게 친절하였던 이유와 헤어지는 순간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한번, 말해 주겠소? 고생했소. 평생을 고생이 많았지." ( 226쪽)라고 말할 때는 먹먹해진다. 안락사를 부탁하는 환자의 심정과 어쩔 수 없이 들어주었던 의사의 절박한 상황이 전해진다.

시청률을 위해 윤주의 수술을 늦추었던 작가는 의도와 다른 수술 결과에 놀라면서 도망친 자신의 모습을 회고하면서 입안에 맴돌았던 말을 어느 순간 용기를 내서 말하게 된다. 윤주가 수술로 잃어버린 감각을 방송작가인 그녀는 온전히 느끼면서 살게 된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혼재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도망친 작가는 로기완의 일기와 자술서를 읽고 그가 경험한 시공간을 직접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내밀하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박이라고 불린 전직 의사의 이야기와 자신의 도피성 집필 여행도 하나씩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로기완을 만나면서 그녀는 수면 유도제와 약상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잠들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용기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도망가고 의존한다고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 인생을 받아들여야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도 한다. 로기완이 고아원에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참아낸 이유, 벨기에가 부여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영국으로 간 로기완의 선택도 이해되기 시작한다. 연인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쥐여준 그의 사랑이 그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숨 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박이라고 불리는 그의 삶도 다르지가 않다. 그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의사를 그만둔 마지막 환자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의무가 아닌 관심으로 로기완을 찾아간 박의 발걸음과 두 손의 물건들이 진실하게 전달된다.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들을 보게 한다. 유럽의 선택들과 한국 대사관의 반응도 기억하게 된다.

소설이 집필된 이유가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난다. 종교와 국가, 대사관, 경찰, 화려한 거리, 가난한 거리는 상징성을 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로기완을 폭행한 고아원 아이들의 모습과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밤은 이질적이고 상반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사관의 비협조적인 반응과 무관심적이고 사무적인 태도, 속이면서 권리를 찾으려는 사람들과 진정성을 증명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기구한 사연들로 절망과 불안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음을 보게 된다.

로기완에게는 기적과 같은 은인들이 있었는데 고아원의 엘렌, 사무실의 흑인 직원, 박이라고 불렸던 전직 의사의 따스함이 부각된다. 화려한 거리,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무채색이 되어버린다. 종교와는 상반되는 사회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절박한 로기완에게 기회를 주고 따스한 눈빛과 길을 열어준 손길과 마음을 기억하게 된다.

자진해서 청소와 설거지, 세탁일을 한 로기완의 노동의 의미는 죽은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기 위한 노동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고귀해진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허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두드러진다. 로기완이 살아야 하는 이유, 박이 살아가는 이유, 작가가 윤주에게 용기내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약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낌없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선명해지는 이야기이다. 공항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방송 작가에게 말해주는 박의 대화에 방점을 찍게 되는 소설이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222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

관습 혹은 단순한 호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커뮤니티,

실체도 없이 우리 삶이 테두리를 제한하고

경계 짓는 국적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회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프린트된 명함,

출생과 죽음, 결혼과 건강을 기록하는 관공서의 수많은 서류들도

개인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기념사진, 약속과 일과를 적어 내려간 수첩,

여권 속의 스태프들, 녹슨 열쇠, 책의 접힌 페이지 같은 것들 역시

우리 삶의 부분적인 단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생애 전체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몸의 리듬마저 변하지 않는 소속감을 약속해 주지 않는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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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04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가 본 영화 트레일러의 송중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됐어요. ㅠㅠ

구름모모 2024-04-04 10:55   좋아요 1 | URL
원작소설이라 영화와 분리하는 작업이 매번 필요한 것 같아요. 로기완 이미지 여러번 다시 주입하면서 읽었어요. 저도...
 
마지막 거인 (15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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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림책 비평가들을 사로잡은 다수 수상작 그림책이다. 펜 터치와 담수로 그려낸 듯 맑은 수채화가 특징이며 상상력을 무한히 펼치게 되는 그림책이다. 한국어판 15만 부 판매 기념으로 스페셜 에디션으로 다시 읽으면서 작품의 이끌림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주인공 루스모어가 우연히 발견한 거인의 이를 통해 전설에 등장하는 거인족의 나라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험준한 탐험길을 전하면서 자연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삼체 시리즈를 보고 있는데 이 내용과도 상통한다. 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 수많은 자연 생명체가 파괴되고 있음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그림책도 다르지가 않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칼럼집 내용이 떠오른다. 다양한 매체들이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언급하지만 환경파괴는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시선을 멈추지를 못하게 된다.



​삶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철학이 담긴 인문서이다. 12-13세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깊은 사유의 길을 걷다보면 철학적인 질문도 놓치지 않게 된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이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지금까지 인간이 황폐화시킨 것들을 보게 한다. 인간의 아둔함과 협소한 사고는 이 이야기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존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지 거듭 확인시켜주는 이야기이다.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철학적인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시가 되는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프랑수아 플라스의 작품이다. 거인들이 사는 나라를 찾아갔던 한 지리학자의 회고담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탐험을 떠나면서 경험하는 위험들도 전해진다. 문명을 유지하고자 다른 문명을 거침없이 침범하는 인류의 역사가 이야기된다.


침략자는 상대를 적대시하고 문화와 문명을 탐험한 탐험가들은 상징적인 것을 소유하고 전시한다. 거침없이 도륙당한 역사들이 있다. 살인하면서 상대 문명을 침략하지만 스스로를 탐험가라고 명명한 역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기울어진 역사관을 비틀어서 제자리에 놓고 보는 역사관도 필요해진다. 이 그림책도 도움을 주는 내용을 이룬다. 누군가에게는 탐험이며 탐험가라고 말하겠지만 침략당하는 누군가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운명이 된다. 편협한 사고는 위험하다. 다각도로 살펴보면서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대이다.



주인공은 기이한 거인들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치유해 주면서 보호해 준다. 거대한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피부의 문양과 기묘한 경험을 목격했던 나날들을 그는 잊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전하자 거인들은 그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주기까지 한다. 자신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은 스케치하여 사람들에게 거인들이 있다는 것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유명해진다. 그가 지키지 못한 것과 자신의 욕망의 민낯을 어느 순간 목도하게 된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거인의 머리는 많은 충격과 슬픔으로 전해진다.


그가 거인들에게서 받은 친절은 어디로 흩날려버렸는지 질문하게 된다. 그의 생각과 판단들은 되돌릴 수 없는 슬픔으로 눈앞에 펼쳐지면서 실망스럽고 잔혹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침략의 역사는 탐험의 역사로 기록되면서 미화되는 것을 무수히 보게 된다. 넷플릭스 <아웃랜드> 시리즈를 통해서도 영국의 침략에 고통당한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인디언들의 역사도 떠올리게 된다. 침략당한 문명은 박물관에 전시되는 문물이 된다. 그것이 진정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될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품들이 피에 물든 역사는 아닌지 관람객들은 진지해질 필요를 느끼게 된다. 폭력의 역사, 전쟁의 역사, 살인의 역사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도 인간은 거인의 머리를 과시하면서 자랑스러워한다. 전쟁의 훈장은 결코 자랑스러운 전리품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선악을 무수히 목도하게 된다. 잔혹한 전쟁을 고발하는 문학들을 무수히 읽으면서 영혼이 피폐해진 참전 군인들을 무수히 보게 된다. 상대를 살인하는 행위는 정당한 것인지 질문을 놓으면 안 된다. 허구이지만 이야기에는 역사가 숨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인류가 반복하는 어리석음의 역사이며, 후회는 늦은 것임을 보여준다. 인류가 파괴한 것들과 지금도 파괴되고 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최재천 교수의 "스스로 자기 집을 부수고 있는 인간들에게" 글도 유익하게 자리잡는다.



탐험은 고행이었습니다. _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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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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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소실점이 두 번 언급된다. 도입부와 후반부에서 소실점은 다시 조명을 받는다. 소실점은 사라질 준비로 연결된다. 죽음을 의미하면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한다. 반면 조산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여인도 기억하게 된다. 죽음만큼 탄생도 큰 축을 이루게 된다. 조산원이 되어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맞이하는 것은 축복이 되는 일이 되면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죽음도 다르지가 않다.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소설은 인물을 통해서 보여준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까지 위대한 삶의 여정들을 담담하게 전하는 소설이다. ​ 태어난 이유와 죽음의 의미는 늘 질문을 쌓아 올렸던 과제였고 이제는 질문이 아닌 초연한 자세로 삶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이유로 답하게 해준 굵직한 의미가 된다. 이 소설을 자주 기웃거리게 한다. 그만큼 큰 나이테를 만들어준 소설이 된다. 매끄러운 번역과 인물들을 통해서 깨닫는 수많은 것들을 열심히 다시 주워담기 위해서이다.

마음이 없는 가족이 있다. 이곳에 있지 않은 마음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지도 보여준다. 준비했다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인물을 통해서 전해진다. 대립하는 인물들은 없지만 상황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부당하지만 인물들은 견디는 존재로 남는다.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 강하게 자리잡는 작품이다. 버티고 있는 존재이며 인생이다.

떠나는 마지막 상황에 보여주는 모습들은 저마다 달랐으며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도 있다.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달력 뒤에 쓴 유서> 민병훈 소설이 생각난다. 가족으로 이해한 것과 떠나고 난 뒤 가족의 존재는 다른 존재로 각인된다. ​​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정리가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인물들의 가계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시대적 상황과 번뇌, 갈등, 사랑 등이 전해진다. 천문학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동기와 그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 첫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된다. 대학 강의 내용도 인상적이다. 존재에 대해, 방출과 흡수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언젠가는 죽어갈 바보들은 그저 북적거릴 알아채지도 못한다." (426쪽) ​

'도요코'라는 소에지마 아유미의 어머니가 있다. 그녀의 성장 이야기와 결혼, 시어머니인 요네가 첫 출산 때 태아에게 건네는 말과 태어났을 때 첫 손녀에게 건네는 말들은 일상 속의 시어머니와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남편의 행동에 마찰하지 않는 태도와 자신의 일과 생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울증 증세가 있는 에미코에게 보여주는 언행을 기억하세 된다. 그녀가 느낀 부당함에 분노를 한 번도 분출하지 않으면서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견딘 여성이다. "도요코는...어머니가 야단친 것도,... 감정의 배설이며 어깃장이라고 생각했다." (35쪽) ​


'요네'라는 그녀는 조산원이라는 일에 집중한다. 남편이 집에 거주하지 않고 다른 여인과 살고 있지만, 그녀는 그것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에 삶의 비중을 더 두게 된다. 자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기모노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요네의 아들은 사춘기 때 그가 누릴 수 있었던 반항은 소실된다. 타인을 읽지 못하는 결점은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아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삶이 되어버린다. ​

치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청결하고 깔끔한 노인이었지만 치매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는 것죽음에 대응하는 나름의 방식도 전해진다. 에토 이치이가 아유미의 죽음을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아프고 눈물나지만 떠나가는 사람에 대해 평화롭게 보내주면서 떠나는 자도 떠나보내는 자도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

누나의 죽음 앞에 남동생이 갈등하는 모습과 아버지의 죽음을 집에서 맞이하는 방식도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나 떠나며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며 병원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선택하며 남겨진 가족은 고통을 덜 느끼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소설은 여러 가지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

옥수수 굽는 냄새를 노란 냄새라고 표현하며 냄새의 낱알에 형태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표현에 오랜 시간 머무르기도 한다. 영상미와 다르게 활자가 주는 무한한 상상을 매일 그리워하는 만큼 소설을 읽게 된다. 온전히 읽는 사람만이 독자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정리와 청결, 정심에 대해서도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몸을 사유하게 한다. 탄생과 생애, 죽음이 그러하다. 자기의 것이라고 오만하지 않게 하며 주어진 것임을 인식하는 순간 생명을 확장해서 사유하게 된다. 다시 주어진 시간, 새롭게 태어난 순간을 경험하면서 몸은 기회의 땅이 된다. 쓸데없는 것들과 어리석은 것들로 물들이지 않도록 정진하게 한다. 더불어 느슨한 것들도 존재하지 않도록 매진하게 된다. 겹겹이 쌓여가는 것들을 발견하면서 심취한 이야기이다.


냄새의 낱알에 형태가 있다면 56


옥수수 굽는 냄새. 달콤하게 구워지는 노란 냄새 228

몸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라는 걸 절감해. 406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그 말에 드러났다. 441


예수와 사도들의 세계에는

쓸데없는 것, 느슨한 것,

어리석은 것, 쉬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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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 후회 없는 인생 사용법
류랑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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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인생 사용법이 전해진다. "바쁘게 살지 말고 제대로 살아라."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보다 노동시간이 많다는 보고가 있다. 바쁘게 사는 것이 익숙해지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건강과 가족을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은 자명해진다. 스트레스에 받지 않는 관리가 필요해지면서 조기 은퇴와 경제적 자유는 관심을 받게 된다. 바쁘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영화와 소설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주말도 없고 야근도 자주 하는 남편이며 아버지이다.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진중해지게 한다.

"​부피가 아니라 밀도에 집중하라."라고 한다. 사회적 기준들이 즐비하게 떠오른다. 숫자로 평균을 정하고 기준점 이상과 이하의 가치는 어디에서 시작하였고 누구의 의도인지 보게 된다. 노동의 가치를 높이면서 더 많이 일하라고 부추기는 사회가 펼쳐진다. 하지만 삶의 밀도는 건강한지도 살펴야 한다. 혼탁해진 몸과 정신은 적신호를 알리면서 일중독과 번아웃 증세를 호소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삶의 밀도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미니멀라이프, 무소유, 월든, 소비단식, 조기 은퇴, 경제적 자유가 삶의 밀도와 연결되면서 자유를 선택하는 현대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희망적이며 밀도 있는 삶으로 인도된다.

"오늘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언급한다. 우선 '완벽하다'라는 개념부터 오해 없도록 분명하게 짚어준다. 일반적인 '완벽하다'라는 개념과는 다른 개념이다. 성실히 열심히 달려온 듯하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자기 탓, 남의 탓, 환경 탓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제시된다.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와 문제점을 찾아내려는 확고함이 필요해진다.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이기에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훈련이 될 내용들이 전해진다.

골든타임 플래너가 제공된다. 왜, 무엇으로 나누어진 하루를 계획하고 평가하게 된다. 예상 소요시간 기록과 피드백하면서 달성 여부를 확인하는 플래너이다. 시간 활용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전해진다. 후회도 없고, 불안도 없는 하루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성취의 기쁨으로 전율하는 완벽한 하루로 안내된다. 명언이 되는 글과 키워드 "단절, 방향, 목표, 시간, 지원군, 실행, 성장" 7가지가 전해진다. 가장 먼저 손꼽은 단절이 두드러진다. 7가지 키워드는 명확하게 하루를 채우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 코로노스, 카이로스, 플레로마, 스스로 시간의 주체가 되라고 전한다. "경쟁보다는 협업, 순위보다는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목표로 하루를 시작하는 3가지 원칙, 나만의 하루 화살표를 따라가라고 전해진다. 잘 달리는 하루지만 때로는 휘청거리기도 하는 것이 삶이다.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는 오롯이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서 병원 진료를 받고 다시 펼친 책에서 단단해지는 하루를 계획하는 힘을 얻게 된다. 제한하지 못한 음식들과 방향과 목표가 분명해지면서 지원군에게도 사실을 알리면서 어떤 실행을 할 것인지도 다짐을 한다. 그리고 지난해 알레르기 없이 보낸 날들을 상기하면서 다시 노력해야 하는 것들을 재정비하게 된다. 건강해져야 할 이유가 명확해진다. 완벽한 하루 펼쳐지도록 오늘도 노력하게 된다.

완벽한 하루 일정을 세워라! _ 그레이트 마인드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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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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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7쪽) 소설의 첫문장이다. 첫 문장이 너무나도 강열하게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외동딸이 갑작스럽게 장례식을 준비하며 조문객들을 만나면서 떠올리는 아버지의 인생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화자인 딸의 존재와 아버지가 빨치산의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면서 자신도 빨갱이의 딸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가난하게 살아온 긴 세월을 추억하게 된다. 노동과 가깝지 않았던 아버지가 소주를 마시면서 농사를 지은 이유까지도 들려준다.

작은아버지를 장례식장에서 기다리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전해진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곁에서 죽음을 보고 말문을 닫았던 작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듣게 된다. 겹겹이 닫힌 이야기들이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찾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딸은 아버지를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누군가의 인생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해하고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족이지만 이 소설의 아버지는 더욱 베일에 가려진 한 사람의 인생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조문객이 많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진심들이 거미줄처럼 엮어진다. 진보와 보수라는 양쪽 인물들의 조화로움과 감시당하는 아버지와 보고하면서 살아온 긴 인생의 사상적 역사도 함께 술을 권하면서 이야기 나눌 정도로 대립한 것들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게 된다. 딸의 눈에 들어온 부모의 혁명과 민중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하나둘씩 전해진다. 인간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들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사상 없고 신념 없고

(그쪽은) 순경 그만둔 것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소. 180

아버지는 가부장제를 극복한,

소시민성을 극복한,

진정한 혁명가였다. (딸과 담배) 245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 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 169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추모제. 노인의 눈빛은 젊은 나보다 더 형형했다. 148

목숨을 바칠 각오로 뛰어든 20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인다. 친일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혼돈의 시대가 찾아온 나라이다. 연좌제로 직업 제한까지 당했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전기고문으로 사시가 되고 자식을 낳지 못할 만큼 당했던 고문과 처참하게 죽은 동지들의 최후의 모습까지도 아버지는 수없이 보고 살아남았음을 알게 된다. 곁가지처럼 벗어나가면서 누군가에게는 눈물 날 정도로 희망을 심어주며 응원도 해준 아버지이다. 격동의 시대, 분단의 아픔이 이제는 일상이 된 우리들에게는 잊힐 뒤편의 역사이며 인물들이다. 목숨을 바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이 혼재하면서 살아간 시대의 이야기들에 점점 먹먹해지게 하는 소설이다.

죽은 사람의 몫까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독한 술을 매일 마셔야 하는 이유들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딸은 아버지를 죽은 이후에 이해하기 시작한다. 조소와 비아냥으로 점철된 세월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인간적인 아버지, 이웃 할배인 아버지, 누군가의 아버지와 같았던 아버지, 동지의 아내와 함께 살아간 긴 세월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작은아버지의 등장과 작은아버지가 뒤따라와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준 순간의 이야기도 잊히지 않는다. 감당하기 힘든 시대의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긴 세월 술과 노동으로 견디어온 이야기이다. 아버지를 나라에 빼앗긴 어린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상과 혁명, 민중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대물림되면서 늪처럼 빠져들게 했는지 보게 된다. 결혼도 사랑도 자유롭지 못하였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된다.

소설 『오만과 편견』이 등장한 이유가 설명된다. 화자인 딸의 귀결이 이 소설과 상통하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온전하게 지탱한 것들이 없다. 무언가에 빼앗기고 상실된 이야기들로 가득해진다. 기우뚱한 신체만큼 구멍 나고 헤집은 이들의 이야기들이 무엇도 가볍지가 않다. 활짝 펼쳐진 아버지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례식장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먼지로 돌아가도록 도와준 딸의 움직임과 장소들이 그의 해방의 순간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감시당하고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며 차별당하였던 아버지의 사회주의, 빨갱이는 편견과 관습에 물들이지 않고 곁을 내어주면서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하라는 말을 건네고 장래 준비를 하도록 응원하여 준 할배였음을 보게 된다. 화해하고 이해하는 딸의 모습도 소설의 진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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