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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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아홉 번째 선정 도서

(모임 날짜: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세상에 처음 나오자마자 혁명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된 책이 있다. 이런 책은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 온 관습과 도덕을 파괴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다. 혁명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책은 엄청 뜨겁다. 그 책을 펼치자마자 확 퍼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독자들의 눈빛을 달군다. 종이 위에 펼쳐진 혁명을 느낀 독자의 눈은 뻘겋게 달아오른다. 책의 열기에 흥분한 독자는 혁명가가 된다하지만 책에서 뿜어나오던 혁명의 불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뜨겁게 활짝 핀 혁명의 불꽃은 점점 시들어 간다. 불꽃이 완전히 사라진 책은 한 줌의 재가 된다. 햐안 재 속에 뜨겁지 않은 과거가 된 단어, 혁명이 남아 있다. 후세 사람들은 수많은 혁명가를 키운 책을 기억하거나 칭송하기 위해 고전이라고 부른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을 다시 한번 흔들 만한 열기와 힘을 여전히 품고 있는 책도 있다. 이런 책은 휴화산과 같다. 과거에 세상을 요동칠 정도로 크게 한 번 혁명을 분출했지만, 지금은 멈춘상태다책 속의 혁명은 완전히 죽지도 않았고, 케케묵은 과거도 되지 않았다휴화산 같은 책은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언젠가는 다시 터진다. 다시 한번 혁명을 일으킬 만한 힘이 충분히 남아 있다. 그래서 과거에 혁명이라 불리던 책들은 지금 다시 봐도 새롭다







[대구 페미니즘 독서모임 <레드스타킹> 첫 번째 선정 도서, 2017년 10~11월 총 6주 모임 진행]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민예숙 · 유숙열 함께 옮김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


* 한우리 기획 · 옮김 페미니즘 선언: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 년들의 목소리(현실문화, 2016)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스물다섯 살에 쓴 성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Sex)1970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을 읽고 페미니스트가 된 여성이 많다. 성의 변증법은 가히 혁명적인 책이라 할 만하다파이어스톤은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가족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비혼과 비출산을 제안한다. 파이어스톤은 1970년대 초반 당시에 현실성 없는 공상과학 기술로만 알려진 인공 생식(artificial reproduction)을 진지하게 논의한다. 그녀는 인공 생식이 가능해지면 여성은 고통스러운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남성 또한 출산하고 양육 노동을 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시대를 앞서간 이 책을 고전이라고 부르는 독자들이 많다. 그렇지만 나는 성의 변증법을 고전이라는 진부한 단어 대신에 휴화산 같은 책이라 부르고 싶다.






2018년에 만들어진 <레드스타킹> 책갈피.


책갈피 뒷면에 모임 때 읽은 책들과 다음에 읽을 책 제목이 나열되어 있다나는 2018212일 월요일에 처음으로 <레드스타킹> 모임에 참여했다이때 네 번째 선정 도서인 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젠더 무법자: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바다출판사, 2015, 절판)를 읽었다.




파이어스톤의 생각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 또 한 번 혁명의 불꽃이 되어 피어올랐다. 국내의 젊은 급진적 페미니스트(Radical feminist)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비혼과 비출산을 생물학적 여성을 위한 삶의 강령으로 내세웠다. 그들은 여성의 몸을 통제해서 남성의 욕망만 충족시키는 연애를 거부하기 위해 비연애와 비 섹스를 주장했다. 파이어스톤은 출산과 가족 제도를 비판했지만, 연애와 섹스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나는 에로티시즘(성의 변증법225)’을 옹호했으며 에로틱한 불꽃이 없는 삶은 지루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여성과 아이들에게 성적 자유를 허용하는 세상을 꿈꿨다(같은 책, 297).


파이어스톤은 사랑을 다루지 않은 급진적 페미니즘 책은 정치적으로 실패작이라고 했다(같은 책, 183). 그녀는 출산보다 훨씬 더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요인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비판하는 여성의 사랑은 남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승인(approval)받기 위해 헌신하고,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는 형태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 여성은 절박한 심정으로 연애에 매달린다. 좋은 남자를 만나 연애하면 결혼할 수 있고, 한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행복한 여자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성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성은 남성의 승인을 받지 못한 여성이 된다. 여성은 자신들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서사랑을 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가 만든 연애를 끊지 못한 여성은 진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이 여성은 언젠가 남편이 될 사랑꾼을 잘 만나서 잘살고 있다고 만족하지만, 그녀의 삶은 남성의 감정과 욕망에 끼워서 맞춰져 있다.


인생샷 뒤의 여자들: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은 소위 인생샷이라고 부르는 셀카를 자주 찍는 여성들의 감정 상태와 생각들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젊은 여성들이 왜 인생샷 찍기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싶어서 열두 명의 20대 여성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한다기성세대는 셀카 문화를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일로 치부한다. 어른들이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한참 멋 부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철부지다. 하지만 인생샷 뒤의 여자들은 셀카를 단순히 보여주기식 문화로만 바라보는 기존 분석을 거부한다. 이 책의 저자가 만난 여성들이 셀카를 즐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딱 한 가지 이유만 집어서 셀카 찍는 여성들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그녀들도 셀카 문화의 부작용을 안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세상에서 만난 익명의 타인에게, 또는 인터넷 세상 밖에 만나는 실제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셀카를 찍는다. 비록 실제 모습과 다르지만, 그녀들은 셀카를 여러 번 보정하면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SNS는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음’, ‘존중받음’, ‘인정받음을 확인해야지 관계가 맺어지는 만남의 장소. SNS에 접속한 여성들은 익명의 타인들이 좋아할 만한 셀카를 찍어서 온라인 인맥을 넓힌다. 내가 찍은 셀카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SNS 친구가 된다. SNS 친구의 수를 많이 늘리려고 타인의 셀카에 좋아요를 눌러준다반면 셀카를 찍되 보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타인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으며 최대한 자신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려고 한다.








인생샷 뒤의 여자들사랑과 인정 욕구를 모두 다룬 페미니즘 책이다. 만약 저자가 럽스타그램’ 관련 사진(연애하는 이성과 같이 찍은 사진 또는 남자/여자친구가 여자/남자친구를 찍어준 사진)을 찍는 여성페미니스트로 인정받기 위해 SNS 계정에 탈코르셋사진을 찍어서 공개한 여성을 만나지 않았으면, 이 책은 ‘2% 부족한 실패작이 되었을 것이다저자는 연애하는 여성들이 사랑꾼남자친구의 선택을 받은 행복한 여성임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럽스타그램 사진을 남긴다고 분석한다. 결국 여성들은 한 남자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승인을 받기 위해 사랑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모두에게 공개한다. 저자는 연애하는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럽스타그램에서 불평등한 이성애 중심 성별 권력 구조를 읽는다. 파이어스톤이 지금 살아 있었으면 럽스타그램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분석에 동의할 것이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SNS에서 남성 중심 문화를 향해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그녀들의 공개 발언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저자는 SNS 여성 운동이 페미니스트가 된 나를 전시하는 기능으로 사용되는 점을 비판한다. 페미니스트는 동료 페미니스트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페미니즘적 발언을 하고, 페미니즘에 반하는 발언과 이미지를 되도록 SNS에 공개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검열한다.


모든 남성이 선호하는 ‘완벽한 여성이 없듯이 이 세상 모든 페미니스트로부터 인정받는 완벽한 페미니스트도 없다. 페미니스트도 연애할 수 있으며 결혼도 할 수 있다. 예전부터 비혼, 비연애, 비 섹스를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페미니스트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하면 그녀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면서 조롱해야 할까? 페미니즘과 연애/결혼이라는 갈림길 앞에 선 페미니스트들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부딪힐 때 어떤 삶이 자신에게 좋은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삶의 길을 동시에 가기로 결정했다.[주1] 힘든 결정을 내린 그녀들을 응원해줘야 한. 어떤 페미니스트는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그녀의 결정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서 당연히 응원해줘야 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인정받으려고 여러 갈래로 이루어진 인생길들을 하나둘씩 제거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지루하고 때로는 위태롭다. 인생의 재미만 놓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될 자신의 한계를 애써 외면한다SNS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자신의 단점을 끝까지 숨겨야 한다. 자신의 진짜 삶을 스스로 갉아먹으면서까지 여성 운동을 하고, 페미니스트로 승인받기 위해 애쓰면서 산다면 진짜 나는 사라지고 없다.





[주1] 페미니스트의 삶을 포기하고 연애와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도 있다.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는 결혼을 했는데, 과거에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페미니즘 관련 글들을 모조리 지웠다(비공개로 전환한 것일 수도 있다).




* 33



 



 얼짱 1기였던 구혜선은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MBC 시트콤 <논스톱 5>의 주인공이 되었고, 박한별은 영화 <여고괴담>에 캐스팅되었다. [2]


[2] 박한별이 주연으로 데뷔한 첫 영화는 2003년에 개봉된 <여고괴담 3-여우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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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4-05-16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 중에 페미니즘 문학이라 볼 수 있는 책은 부끄럽게도 82년생 김지영이 다인 것 같습니다. 좀 더 분발해야겠어요. 공교롭게도 저는 어제까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한방에 몰아보고 (장장 6시간의 편집영상이에요!) 오늘부터는 아들과 딸을 보고 있는데요. 재미는 있는데 아들과 딸은... 혈압 오르네요. 이 두 드라마가 모두 90년대에 방영된 작품인데 (저는 당시 초등학생), 지금 다시 보면서 아니 미친거 아님?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걸 보니 그래도 지난 30년간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stella.K 2024-05-1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횡무진이군. 건강 잘 챙겨라.
 
종과 종이 만날 때 - 복수종들의 정치 아우또노미아총서 80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 갈무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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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도나 J. 해러웨이(Donna J. Haraway)20세기 후반기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 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녀는 철학은 물론 문학, 생물학, 과학기술학, 페미니즘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와 관점을 제시하면서 얽히고설킨 지적 모험의 지평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화려한 명성에 비해 생소하고 까다로운 학자가 해러웨이다. 그녀는 인공지능 기술과 유전공학의 발전 속에서 과학과 페미니즘을 접붙인 철학자로 명성을 누렸다. 해러웨이는 1985년에 발표한 논문사이보그 선언(A Cyborg Manifesto)에서 남성 중심 과학이 초래한 여성과 과학기술의 분리된 관계를 비판하고, 인간과 비인간인 기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그녀에게 사이보그는 /, 백인/흑인(을 포함한 유색인), 인간/비인간(동식물, 기계) 등의 근대적 이원론을 극복하는 존재이다.


해러웨이의 이원론 해체는 단순히 공동체 안에 있는 서로 이질적인 의견과 정체성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한 숙원의 과제가 아니다. 다양한 의견과 정체성이 만날 때 생기는 모순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면서 돌보는 주체적인 결속이 가능해진다근대적 이원론의 재료인 인간중심주의는 지구상 모든 존재의 공존을 도모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는 단절과 차별,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해러웨이는 한쪽만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게 만드는 모든 형태의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한다해러웨이의 사이보그는 인간, 기계, 동물, 주류로부터 배제됐던 그 밖의 존재와의 만남을 선호한다. 그들은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합일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모순을 외면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모순에 응답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만들려는 해러웨이의 지적 모험은 2003년에 나온 반려종 선언(The Companion Species Manifesto)에서 이어진다해러웨이가 첫 번째 지적 모험에서 만난 존재가 사이보그라면, 두 번째 모험 중에 만난 존재는 개는 인간과 아주 친한 반려동물이다. 개를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보는 관점은 개와 인간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개를 친근하게 바라보는 인간의 눈앞에 인간과 비인간을 무 자르듯이 구분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른거린다. 인간중심주의를 투과한 인간의 시선에 비친 개는 반려동물이다반려동물이라는 언어로 된 철창에 갇힌 개는 인간의 손길을 받으면서 자라는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반려동물은 인간이 허용한 관계의 영역 안에서 살아간다. 인간이 만든 도시는 반려견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반려견은 산책할 때마다 목줄과 입마개를 착용한다. 인간의 보호와 통제에 벗어난 반려견이 인간을 공격하는 순간, 그들은 동물이 되고 안락사해야 할 존재가 된다.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온정적이지만, 여전히 개를 인간에게 의존하는 비인간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에 갇힌 개를 구출한다. 반려종은 사이보그와 마찬가지로 종(, Species)의 경계 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반려종에 속한 개와 인간은 자연과 문화 또는 동물과 인간으로 구분되는 이원론을 아늑한 거처로 삼지 않는다. 거처 밖에 이원론에 맞지 않은 기이하고, 잡다한 존재들이 돌아다닌다. 해러웨이는 이들을 묶어 크리터(critter)’라고 부른다크리터와의 만남이 지속되면 범주가 무의미해지고, 모든 존재가 뒤죽박죽 섞인 관계망이 만들어진다. 이 관계망 속에서 종과 종은 서로에 대해 관심을 멈추지 않으며 차이를 존중하면서 만난다. 해러웨이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돌보는 함께 되기(becoming with)의 삶을 강조한다.


사이보그 선언반려종 선언은 나온 지 상당히 오래된 글이다. 이 두 편의 글은 2019년에 번역되었다(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황희선 옮김, 책세상). 우리말로 번역되기 전까지 사이보그 선언반려종 선언은 일부만 인용된 채 소개되었다. 길어야 서너 줄인 인용문은 해러웨이의 철학을 설명하는 글에 박힌 장식품에 가까웠다. 그동안 독자는 해러웨이의 철학을 장식품에 의존하면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접근해야 했다. 이러면 얽히고설킨 해러웨이의 철학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려는 오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래서 해러웨이는 이해하기 까다로운 철학자다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When Species Meet, 2008)해러웨이가 쓴 사이보그 선언반려종 선언의 주석서반려종 선언에 일부만 소개된 스포츠 기자 딸의 노트도 수록되어 있다. 해러웨이는 스포츠 기자로 살아온 장애인 아버지의 삶과 가족 전체의 일상에 영향을 준 반려종을 되돌아본다(respecere).[주1] 독자는 스포츠 기자 딸의 노트에 기록된 그녀의 지적 모험을 유쾌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해러웨이는 반려 종 선언의 초기 원고를 토대로 종과 종이 만날 때2장과 4장을 썼다. 그래서 종과 종이 만날 때134쪽에 있는 사진은 해러웨이 선언문222(반려 종 선언)에도 나온다.


종과 종이 만날 때을 혼자 읽어도 버겁다면, ‘반려 독서를 해보면 어떨까. ‘반려(companion)’는 라틴어 쿰 파니스(cum pains)’에서 유래됐다. 쿰 파니스는 빵을 함께 하다(먹는다)’라는 뜻이다. 해러웨이가 강조한 반려는 식탁에 함께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서로 돌보면서 식사하는’ 존재. 내가 생각하는 해러웨이식 반려 독서는 이렇다. 여러 사람이 탁자에 함께 앉아서 혼자 읽은 책을 다시 본다(respecere). 반려 독서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가 읽은 내용을 알려주고, 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힌다. 이 모임에서 본인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이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존중해주고 받아들이자. 반려 독서의 목적은 지식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려종인 우리는 ‘함께 읽기를 통해 서로 다른 지식과 정체성이 만나면 생기는 차이(또는 모순) 속에서 함께 번영하는 법[2]을 배워야 한다.






[주1]레스프레체라고 읽는다. respecere는 종의 어원인 specere로부터 나온 말로 respect의 어원이다. specere보다라는 의미이므로 respecere 거듭해서 보다는 뜻이다. (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 1장 종과 종이 만날 때: 서문, 31쪽 각주)


[주2] 종과 종이 만날 때, 371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96




 

P. T. 바눔 P. T. 바넘(P. T. Barnum)

 

 




* 198쪽 각주(옮긴이 주)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83[주3]~1966)는 간호사로산아제한 운동을 활발히 벌였던 여성 운동가이다.


[주3] 마거릿 생어의 출생 연도는 1879이다.

 

 




* 204




 

콜로라도 록키즈(Colorado Rockies) 콜로라도 로키스

   

 

 



* 후주, 381


 



A. N. 화이트헤드, 과학과 근대세계, 오영환 옮김, 서광사, 1990.

[주4]

 


[주4] 2008개정판이 출간되었다.

 

 




* 후주, 402


 



낸시 파머, 아프리카 소녀 나모, 김백리 옮김, 느림보, 2007.[주5]

 

[주5] 초판이 출간된 연도는 2005이다.

 

 




* 후주, 428

 




Brian Harre Brian Hare [주6]

 

 

[주6] 브라이언 헤어는 작년에 화제가 된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이민아 옮김, 디플롯)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이다.

 

 




* 후주, 448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닥터 아인의 마지막 비행[주7]



[주7] 번역명: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이수현 옮김, 체체파리의 비법, 아작, 2016.

 


 



* 후주, 449

 




드니 디드로의 달랑베르의 꿈[주8]

 


[주8] 김계영 옮김, 한길사, 2006.

 

 




* 후주, 452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여장을 한 발데모트 경 

볼드모트(Lord Voldem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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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07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선 필독으로 읽어야 할 페이퍼 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축하드립니다 *^^*

cyrus 2022-10-08 02:57   좋아요 1 | URL
이 글을 인스타그램에도 올렸어요. 출판사가 제 글을 확인했고, 오자를 고친다고 답변을 주셨어요. ^^

그레이스 2022-10-07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이하라 2022-10-07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cyrus님^^

서니데이 2022-10-07 2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를 출간하기 전에 이 책에 포함된 내용을 소개하는 발표회에 발표자로 나섰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책 4장에 나올 입덧과 태반 형성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그러자 청중 한 명이 질문했다.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민음사, 2022)

 


남편도 입덧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 입덧의 원인은 사랑인가요?”

대답은 “그것은 입덧이 아닙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72)




이 일화는 저자의 책 4장 후반부에 나온다저자에 따르면 입덧은 임신한 여성의 태반에서 비롯되는 물질적 현상이다. 음식물을 섭취하면 호르몬인 인슐린이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춰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인슐린은 태반에서 융모성 생식샘자극 호르몬(hCG)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하기도 한다. 인슐린 수치가 줄어들고 hCG 분비가 늘어나면 입덧이 일어난다. 입덧이 잦은 임신 3~4개월에 태반이 형성된다.


청중은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쿠바드 증후군이란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도 아내와 똑같이 신체적 증상과 정서적 반응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주로 메스꺼움, 두통, 감정 기복, 근육통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대개 임신 3개월에 나타나 몇 달 만에 사라졌다가, 아기가 태어나기 한두 달 전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 아민 A. 브롯, 제니퍼 애쉬 진짜 아빠 백과사전: 초보 아빠를 위한 세상의 모든 지식(보물창고, 2018)




쿠바드는 프랑스어로 부화를 뜻하는 쿠베르(couver)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쿠바드 증후군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아빠들의 아빠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최고의 아빠 육아 전문가 아민 A. 브롯(Armin A. Brott)은 칼럼니스트 제니퍼 애쉬(Jennifer Ash)와 함께 쓴 진짜 아빠 백과사전에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쿠바드 증상이 나타나는 다섯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1. 임신한 아내에 대한 동정 혹은 죄책감


임신한 아내가 입덧으로 고생하면 그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은 자기 때문에 아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무의식적 죄책감이 메스꺼움과 진통 등을 유발한다.



2. 질투


임산부는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쿠바드 증후군을 겪는 남편은 부성을 과시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다.



3. 호르몬 생성


임산부의 몸속에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자녀의 친밀감 형성을 높여준다. 임산부와 같이 사는 남편의 몸속에서도 옥시토신이 생긴다. 그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조절해주는 코르티솔과 모유 분비를 유도하는 프로락틴도 형성된다.



4.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결혼한 남자는 가정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경제적 걱정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 계급의 남성이 중산층 남성보다 쿠바드 증후군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5. 아내와 태어날 아이에게 보내는 남편의 메시지


남편 자신이 가족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임신한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학 반응이다. 쿠바드 증후군은 아내와 아이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남성이 훌륭한 부양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일 수 있다.
















* [절판] 티나 캐시디 출산, 그 놀라운 역사(후마니타스, 2015)




아주 오래전부터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경험으로만 인식되어왔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산파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남편들은 아내가 힘겹게 출산하고 있을 때 뭐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분만실 밖에서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길 바라면서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 남성이 출산을 지켜보는 행동은 부도덕한 일로 여겨졌다. 놀랍게도 이 금기를 깬 남자들이 있었다1522년 독일의 의사 베르트(Wertt)와 몇몇 의사들은 출산 과정을 알고 싶어서 여장을 한 채 분만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베르트의 무모한 속임수는 발각되었고, 분만실 잠입에 가담한 의사들과 함께 화형당했다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으로만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남성은 출산과 무관하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gender role stereotype)을 단단하게 만들어놓았다.


미국의 기자 티나 캐시디(Tina Cassidy)가 쓴 출산, 그 놀라운 역사에 남편을 출산에 배제하는 문화 속에서 묻힌 분만실 안의 남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소수의 비서구권 원주민 사회에 남편이 아내 출산에 관여하는 문화가 있다분만실에 남편이 들어와서 안 된다고 믿은 서구인은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는 남편을 용인하는 원주민 사회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주민의 생활상을 연구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브라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남편이 아내의 산고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의식의 순기능에 주목했다.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야만 사회의 섹스와 억압 (비천당, 2017)




말리노프스키는 1927년에 발표한 야만 사회의 섹스와 억압에서 남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는 전통 의식이 사회 유지에 필수적 기능을 작용한다고 썼다. 그는 쿠바드 증후군을 유발하는 전통 의식이 서구인들의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겠지만,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도덕적 유대를 강조하는 부족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19년 7월에 읽은 책]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 생애사 그리고 건강(에이도스, 2017)




쿠바드 증후군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학자들은 분만실 안의 남편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국내에 여성의 진화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의 저자인 진화인류학자 웬다 트레바탄(Wenda Trevathan)[주]분만실 안의 남편옹호론자다. 그녀는 자신의 책 <Human Birth: An Evolutionary Perspective>(1987)에서 남편에게 출산 과정에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몇몇 문화권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가서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부 모두가 정서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분만실 안의 남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분만실 안의 남편문화가 임신에 대한 남성의 관음증적 호기심을 부추기며 임산부의 몸을 성적 대상화로 보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여성의 출산 과정을 가까이서 본 남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을 수 있다. 이러면 아내와의 성생활이 불가능해지며 아기와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아내를 곁에서 지원하는 데 어려워한다.


쿠바드 증후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평소에 눈길을 주지 않은 육아 및 출산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집어 들게 되었다. 책을 보다가 확실한 생각이 들었다. 임신과 출산을 막연하게 알아선 안 된다는 점. 쿠바드 증후군의 실체를 인정하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할 땐 회의주의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바라볼 것.






[] 출산, 그 놀라운 역사에서는 웬다 트레버선으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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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01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덧이 아니라 쿠바드 증후군이군요. 저 원인을 설명해놓은거 보니싸 진따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하고도 오묘한 존재인지 싶네요.

cyrus 2022-08-02 18:57   좋아요 1 | URL
네, 임산부가 하는 입덧과 쿠바드 증후군의 증상인 메스꺼움은 달라요. ^^

mini74 2022-08-0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쿠바드 증후군, 남자입덧은 없는거군요.

cyrus 2022-08-02 18:59   좋아요 1 | URL
사실 쿠바드 증후군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는 저도 임산부의 남편은 입덧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입덧이 생기는 원인을 자세히 알고 나니 ‘남편 입덧’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

파이버 2022-08-02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산부의 남편이 하는건 입덧이 아니었군요;; 쿠바드 증후군이라니 인간의 몸과 마음은 정말 연결되어있는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cyrus 2022-08-03 07:01   좋아요 1 | URL
입덧의 원인을 잘 모르면 이게 메스꺼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예전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 - 식사를 선택할 수 없는 삶,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권기석 외 지음 / 북콤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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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보릿고개란 말이 있다. 지난해 가을에 걷은 식량이 다 떨어지고 새로운 보리를 수확하기 전인 초여름 시기(4~6)를 뜻한다. 이때는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했으며 굶어 죽는 사람 또한 속출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 MZ세대에게는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굶주림이 생존에 위협이 될 수준까지는 아니다먹을 게 넘쳐난다하지만 여전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돈 없으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이 무얼 먹고사는지 모른다.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대부분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먹고사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일할 의지가 전혀 없고, 무료 급식소가 제공하는 밥을 받아먹으면서 사는 그들을 비난한다. 잘 먹으면서 잘 사는 우리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된다. 빵을 달라고 외친 시민을 본 프랑스 왕비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왕비가 실제로 한 말이 아니다. 어쨌든 가난한 사람의 식사에 무심한 우리는 프랑스 왕비가 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망언을 가져와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집밥이 없으면 편의점에 파는 김밥이나 라면을 먹으면 되지.”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싸고 간편한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김밥과 라면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은 영양 과잉 시대로 들어서면서 나타난 식사 빈곤 문제에 주목한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한 국민일보 소속 네 명의 기자는 가난한 사람이 집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지 취재했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무료 급식 대상자인 노인,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는 중년 남성, 자식과 함께 사는 주부, 고시원에 살면서 국가고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청년 등이다. 이들은 종일 쫄쫄 굶지 않을 정도로 밥을 먹는다. 매일 같은 밥을. 반찬 가짓수는 많아야 세 개. 다 떨어질 때까지 매일 먹는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고기로 만든 반찬은 만들지 않는다. 제철 과일을 사서 먹는 건 그들에겐 사치다. 집밥이 없으면 저렴한 가격의 음식이 나오는 식당이나 편의점으로 향한다


기자와 인터뷰한 사람들이 직접 차린 밥상이나 하루에 먹은 것들을 찍은 사진은 식품 불안정성(food insecurity) 문제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과제임을 보여준다. 식품 불안정성은 양적 · 질적으로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가난할수록 식비를 아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먹는 음식의 양이 적어지고, 주식 이외의 음식을 충분히 먹지 못한다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식습관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건강이 좋지 못한 저소득층은 약값과 진료비 부담을 크게 느낀다. 그래서 식비 지출을 줄이려고 하는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진다. 우리나라 저소득층은 이러한 형태의 빈곤에 처해 있다(이 책에 나오지 않은 사회 취약 계층에 속한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북한 이탈주민, 의료적 트랜지션[주1]을 받는 성소수자도 매일 같은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식사 빈곤을 겪을 수 있다).


이 책이 보여준 빈자의 식탁사진은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가 아니다.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저소득층에게 동정과 연민의 눈길을 주게끔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오로지 배를 채우려고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다헌법에 제시된 기본권은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이다. 사회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한 권리다.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식품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인간은 최소한 배고프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건강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권리도 있다이제는 식품 안정성과 관련된 사회권 보장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무료 급식소를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사회 취약 계층에게 양적으로, 질적으로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복지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 주



[주1] 의료적 트랜지션(medical transition)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정신과 진단이나 호르몬 치료, 성전환 수술 등의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 비용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관련 도서: 김승섭, 박주영, 이혜민, 이호림, 최보경,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오롯한 당신: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책공장더불어, 2018)






정오표




* 51쪽





 복지관에 음식 지원을 신청한 노인은 주말에 인기 많은 대형 쇼핑물 주차장에 들어간 운전자와 같은 신세다.

 


대형 쇼핑물 대형 쇼핑몰






* 136

 




 우리가 얻은 교훈은 가난한 사람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현금이 아니라 음식을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이리저리 돈 나갈 구멍이 많았다. 현금을 손에 쥐어 주면[주2] 식사하는 데 쓰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식비는 늘 의료비와 교육비, 학비에 밀렸다.



[주2] 쥐여 주면이라고 써야 한다. 쥐여 주다무언가를 남에게 건네주는 상황일 때 쓴다. 쥐어 주다스스로 무언가를 잡았을 때 쓰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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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9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란 책이 생각나요 부모의 빈곤한 식사에 의해 약하게 태어난 아이들의 잘병, 그런 부모들이 또 중년기에 이르러 질병으로 무너지면서 가난이 더 악화되는 모습들 ㅠㅠ

cyrus 2022-06-25 09:30   좋아요 1 | URL
mini님,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가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책 제목이 길어서 정확한 제목은 몰랐지만요.. ^^;;

짜라투스트라 2022-06-21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드시 필요한 주장인데 이게 되지 않는 현실이 참 안타깝네요

cyrus 2022-06-25 09:32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 복지 문제가 정치 이념과 연관되어 있어서 이에 대한 의견을 소신 있게 밝히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사는 게 팍팍해질수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신감은 커지지요.

mini74 2022-07-0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며 읽었던 리뷰 👍축하드립니다 *^^*

이하라 2022-07-08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기분 좋은 소식 축하드립니다.^^
상쾌한 날들 되세요.^^

새파랑 2022-07-08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또 즐거운 책 만나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22-07-0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당선 축하해요^^

thkang1001 2022-07-1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정말 먹는 문제는 중요하죠. 특히 아이들을 생각하면 맘이 많이 아픕니다. 국가가 먹는 문제만이라도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권 다툼 이런 거 하지 말구요ㅠㅠ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의료윤리학의 질문들
김준혁 지음 / 반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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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도덕과 윤리가 없으면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가 흔들린다. 도덕과 윤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도덕과 윤리의 정의다. 라틴어 ‘mores’는 도덕과 풍습을 뜻한다. 도덕적 또는 윤리적 삶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공동체의 규율이나 관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덕과 윤리는 우리 귀에 대고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윤리가 풍습을 지키기 위한 복종과 같다고 봤다. 그는 자신의 책 아침놀에서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야말로 공동체의 풍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은 개인의 자유와 비판 정신을 말살하는 도덕과 윤리에 따지지 못한다.

 

의료윤리학자 김준혁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따지는 윤리의 역할을 따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여러 번 선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한다. 김준혁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윤리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윤리를 가지고 의학이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따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변화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관습을 낳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가장 대표적인 도덕적 관습은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 쓰기.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식당 및 카페의 영업시간과 모임 인원을 제한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확진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과도하게 비난한다. 확진되지 않은 사람(사실 이 표현에 문제점이 있다)은 확진자들을 비도덕적 인간으로 간주한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돌아다녀서 확진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안 맞았는데도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고, 게다가 감기도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건강하다고 확신하며 건강하지 못한 확진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니체는 아침놀서문에서 도덕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철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준혁은 개인과 인간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건강의 정의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따지기 위해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썼다. K-방역으로 알려진 신속항원검사는 한때 전 세계가 주목했다. 하지만 저자는 K-방역의 장점으로 주목받은 빠른 진단 검사에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의학적 검사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 양성과 음성으로 판정하는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확진자로 진단받을 수 있고(위양성), 감염되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수 있다(위음성). 위음성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받은 확진자는 스스로 건강하다는 확신 속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을 확진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확진되지 않은이라는 표현에 결점이 있다. 우리는 건강의 정의를 질병의 부재와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확진자가 아니더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착각한다.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은 질병이 생각보다 많다.

 

건강 상태가 안 좋으면 그 원인을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개인의 부주의한 건강 관리와 생활 방식을 지적하는 것을 질병의 개인적 책임담론이라 한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건강의 정의를 개인의 능력과 결부시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의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질병의 원인을 환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면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건강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의학과 의료 제도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실외 마스크 의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조치에 기분이 들뜨기 쉬운 지금 시기에 읽어야 할 책이다. 감염병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면 팬데믹 시대의 문제점도 다시 나온다. 확진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고,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확진자를 비난하면서 선량하고 건강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팬데믹이 길어지면 장애인과 노인의 돌봄 사각지대는 더 커진다. 지구에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밝혀진 야생동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네가 건강해지려면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명령하는 윤리와 헤어지자. 건강한 윤리는 자신을 따르라면서 우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과 자연, 동물이 건강해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재차 묻는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30

 




 보통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청년과 노인을 비교하면 청년보다 노인의 신체 상태가 일반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주] 노인은 무조건 건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경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 든 사람은 많다.

 


[]그러므로라는 표현을 삭제하면 문맥이 자연스러워진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102, 104쪽에 있는 25번과 26번 주의 출처는 ‘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2004)’. 출처에 원서명만 나와 있는데 주디스 버틀러의 책은 불확실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10년 뒤에 새로운 역자와 출판사를 만나면서 제목이 바뀐 위태로운 삶: 애도의 힘과 폭력(윤조원 옮김, 필로소픽, 2018)으로 재출간되었다104쪽의 인용문은 위태로운 삶서문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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