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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크리스천들 앞에서 쩔쩔매는 크리스천 대통령 
 

요즘 미국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게 되면 나라 안의 여론 분위기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시끄럽기만  

하다. 특히나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이번 2010년은 자신의 임기 중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일지 
도 모른다. 불황에 빠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각종 정책들을 마련해보지만 번번이 죽을 쑤기 
마련이다. 멕시코 만 기름 유출 사건 이후 안일한 사고 대응 태도 때문에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 
아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이슬람 모스크 사원을 9.11 테러 사고 추모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인근에 세우자는 발언 때문에 이번에는 미국 국민들이 발끈하게 된 것이다. 다수의 미국인
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임을 감안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생뚱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 

령의 의중은 9.11 테러에 희생된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 신자들도 함께 추모하자는 뜻 

서 사원을 세우자는 것이었으며 결국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교 간의 불신의 기억을 지우고 평화 

위한 화합을 모색하자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미국 여론의 뜨거운 감자 

가 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이유는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서 모스크 사원 

세우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많고 많은 다른 주도 아닌 하필이면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뉴욕 한
복판에, 그리고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특별한 곳에서 이슬람 사원을 세우는 것이
문제의 화근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참혹한 테러를 일으켰던 주범인 이슬람에 대한 앙금
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모스크 사원 건립 발언 이후 미국의 다른 주에 계획되
어 있던 모스크 사원 건립에도 반발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대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오바마 대통령의 인지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로 
생각하는 국민이 예전 여론 조사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슬람 교 신자로 생각
된다는 국민은 오히려 많아지게 되었다. 점점 하락하고 있는 대통령의 인지도가 이제 곧 다가올 
11월 중간 선거에 변수가 될 우려를 민주당은 눈치를 챘던 것일까? 빌 버튼 백악관 부대변인은 
기자 회견에서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종교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대통령은 확실한 크리스천
임을 주장하였다. 
 


※ 기사 인용 출처 및 링크
[모스크 건립 갈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 중앙일보 8월 21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399464   

 

 

 

 ‘종교’라는 이름에 포장된 순교자들 
 

‘순교(殉敎)’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뜻하
며 사상(思想)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반미주의 경향이 강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미국 중심부에 있는 뉴욕 월드트레이드 빌딩을 무너뜨리게 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알라 신을 
위해 희생한 순교자라고 추앙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은 자들은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정말 신을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항공기를 빌딩 건물로 향하는 순간 그들은 그 짧은 시 

간동안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알라 신의 영광과 모든 이슬람 형제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곧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종교적 믿음이 강하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 

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한 인간이다. 눈앞에 곧 일어날 건물과의 충돌에 공포를 느꼈을  

법하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되자 후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믿었던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자, 여러분, 당신들의 위대한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나 알고 싶다고 했지?  
   당신네의 그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갔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먼.  (중략)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
   하고 동료들을 헐뜯는 꼬락서니라니 과연 한번 보기 좋았지.”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140 -

죽음이 코앞에 있는 인간들이 겪는 공포는 단지 테러리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빌딩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나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이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죽기 직전
에는 예수께 구원을 빌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불행한 테러 사고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의
해서 천국으로 간 순교자로 변주되었다. 그리고 무너진 빌딩 지역은 테러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숭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테러를 일으킨 죄인이며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성지를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세우는 것에 대해 반발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모스크 건립이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
이다.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는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 그 순교자들을 결코 싼 값에 팔아 넘겨선 안 돼.  
   빨갱이들에 대한 그 순교자들의 정신적 승리를 모든 사람이 목격하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75 -

<순교자> 속에 등장하는 장 대령은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공산당에 의해서 
희생당한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려고 한다. 작품 속 배경이 6.25 전쟁임을 감안하
면 장 대령의 순교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남한 내의 반공 헤게모니를 위한 초석인 것이다. 죽은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그들을 희생하게 한 공산당을 반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동시에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적’이라는 반공 사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자신들의 종교적 믿음과 우월성을 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코란을 내세우는 자들은 테러리스트 

을 위대한 순교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테러의 희생자들은 알라 신이 내려주신 벌의 댓가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성경을 내세우는 자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반 기독교적인 범죄 집단이라 

고 비난하는 있으며 오히려 희생자들을 주님의 은덕 아래 천국에 간 순교자라고 말한다. 서로 엇 

리는 두 종교 간의 주장은 웃지 못할 난센스를 연출하고 있다.  

 

 종교 앞에 선 인간의 고통   

 

장 대령의 반공 프로파간다는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는 미국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 

의 속내는 자신의 종교 이외에는 타 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 모습을 보이는 종교적 쇼비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반 이슬람주의 사상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들을 평화를 음해 

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자신들의 기 

독교 사상를 전파하는데 이용한다. 물론 기독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도 종교를 위해서  

쩔 수 없이 목숨을 바쳐야 했던 테러리스트들을 위대한 알라 신의 영광으로 기록될 순교자로  

만들고 있다. 

<순교자>의 번역가인 도정일 경희대학교 문학교수는 작품의 핵심을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의 

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을 한 층 더 심화시켜면 종교 앞에서는 
인간이 당하고 느끼는 원초적인 고통과 공포가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대위가 신을
믿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신의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처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양대
종교는 자신들의 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죽은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단지 죽은 자들의 

고통만 외면하고 있는가? 심지어 어느 사이비 종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외면하고 있다.  

신자가 온 몸이 아플 정도의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 종교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보호 아래  

을 수 있다는 희망만 심어준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일체 거부하고 무조건 신의 신성한 능력 

으로만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외면한 채  

말이다.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고뇌에는 인간의 고통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자들은 신에게 자신의 고통들을 고백하여 해결하려 한다. 결국 고통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
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이해하고 벗어날 수 있는 신성한 내적 생활이 종교임에도 불구
하고 지금의 종교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고통을 느끼도록 부추기고 있으며 심지어 눈 감고 외면하
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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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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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합방조약, 그리고 대한제국의 왕족들

올해는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강제로 국권을 강탈당한 한일합방조약 100주년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살펴보면 이번 연도는 아주 의미가 있다.
월드컵과 겹쳐서 묻힌 감은 있지만, 6월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잠깐 화제가 되었지만, 다시 한 번 역사의 재조명을 받게 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이다. 한일합방조약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조인한 날은 

8월 29일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본 관리들과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변절한 친일파 관리들의 합작으로 강제적으로 조인한 조약이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한, 일 두 나라의 지식인들이 한-일 과거사 문제 정리에 대해  

한자리에 모여 한일합방조약은 법적으로 무효임을 공동선언하게 되었다.  

일본 지식인들과의 논의 끝에 한국사에서 가장 치욕적이었던
한일합방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언론과  

방송에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한일합방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알고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한일합방조약이 언제 맺었는지 

모르며 심지어 당시 황제였던 순종이 힘없이 쓰려져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과의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고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나 역사책에 찾아보던지 아니면 인터넷 검색창에  

‘한일합방조약’이라고 쳐봐라. 순종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옥새로 직접 조약 서류에  

찍은 것이 아니다. 이완용이 가짜 옥새를 만들어 직접 날인을 하여 한일합방조약이  

맺었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야말로 황제가 아닌 매국노가 조약을 맺었으니  

이 조약은 당연히 무효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 한일합방조약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이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한일합방조약은 가슴 속에 응어리가 된  망국의 한(恨)일 것이다.  

그 사람들이란 바로, 지금 살아남아 있는 대한제국의  왕족의 후손들이다.  

한일합방조약을 맺음으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무너지게 된다.  

왕족들은 힘을 잃게 되었으며 일본은 대한제국 왕족들의 부흥을 막기 위해
강제로 일본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대한제국 왕족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타국에서 국권을 빼앗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한탄에 사무쳤으며, 수십 년 끝에 고국에 돌아와도 나라의 정부는 

왕정 부흥이 염려되어 그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왕족이 아닌 평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몇 몇 왕족의 후손들은 생활고 속에서도  

간간히 살고 있다. 
  

 

 비운의 공주, 덕혜옹주

역사 속의 대한제국 왕족들 중에서는 불행한 삶을 살다간 이들이 많다.
자기 눈앞에서 왕비가 일본의 자객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과 허무하게 나라를  

빼앗긴 것을 봐야만 했던 고종 황제부터 시작을 해서 그의 자손들도 불행이 대물림되었다.
황제로 재위했지만 권력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마지막 황제 순종,
일본의 계략으로 일본 왕족과 정략결혼을 하여 반평생 일본에서 생활한 영친왕,
그리고 어린 나이에 자신의 나라와 가족들이 힘없이 쓰려져가는 것을 본
비운의 공주, 덕혜옹주가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단연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라면  

덕혜옹주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인 고종의 권력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그래서 제대로 된 왕족으로서의 생활과 대접을 누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존재였던 아버지가 승하하게 되자, 이때부터 불행한 삶의 연극의  

막이 올려졌다. 고종이 궁정 내에서 일본과 내통하고 있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녀는 평생 주위 사람들을 경계하는 심리적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일본으로 가게 되면서 고국에 남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마음속에  

버리지 못했던 왕족이라는 자존심, 그리고 일본과 일본 사람에 대한 증오라는 복합적인  

심리 요인들로 인해 그녀의 결혼 및 가정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고, 결국 정신분열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광복 후에 그녀가 바라던 고국에 돌아왔지만  

보고 싶어 했던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 후 지병과 실어증에 시달리다가 쓸쓸하게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불행’ 또는 ‘비극’이다. 그녀의 숨겨진 삶은 소설로 통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면서 우리들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 같은 삶을 직접 살다 간 당사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녀를 평생 고통스럽게 만들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왕족의 여자’라는 것이었다.
한창 어리광부려야할 나이에 힘을 잃어가는 나라에 대한 걱정에 빠진 아버지  

고종 황제의 마음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배국인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백작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은 대한제국의 왕족의 힘을 떨어뜨리려는 일본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여자이면서도 평생 여자다운 생활을 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자신이 바라는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아닌 

일본의 백작과 정략결혼을 하였다. 남편은 덕혜옹주의 말할 수 없는 진심을 읽지 못했으며 결국 그녀 스스로 폐쇄적인 성격으로 만들어버리게 되었다. 자신의 뱃속에 태어난 딸인  

정혜도 어머니인 그녀를 무시하게 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고국과 왕족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을 자신의 딸에게라도 말해줌으로써 정신적인 고통들을 벗어나고  

싶어했었지만  딸과 남편은 오히려 그녀를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만다. 
  

 

 어두운 역사가 낳은 불행한 사람들
 

이 소설들을 구성하고 있는 그 밖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들에게도 나름 덕혜옹주와 같은
삶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게 한
공통적인 원인은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35년의 어두웠던 역사였다. 박무영은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지만 않았어도 원래 덕혜옹주와 결혼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작 마음속으로는 덕혜옹주를 흠모하지만 자신의 일은 대한제국의 독립이  

우선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계급인 왕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슴앓이만 할 뿐이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일본에게 지배당하며 살아가야하는  

한국인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정작 자신은 일본에 태어났지만 일본인 동급생들에게 

조센징이라고 놀림 당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왕족임을 항상 강조하는 어머니를 무시하게 된다.
결국, 괴로움 끝에 자살로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된다. 덕혜옹주의 종이면서도 유일한  

벗이었던 복순도 덕혜옹주 못지않게 비극적인 삶을 산 여인이다. 자신도 덕혜옹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감으로써 병든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판으로 갈수록 일본군의 패망  

분위기가 감돌았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일본 사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일본인들은 일본 내의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보이는 족족 한국인들을 잔혹하게 학살과 강간을 하였다.
그 시기에 죽은 일본 내의 한국인의 수는 수천 명이었다. 복순도 잔인한 역사의 희생자이다.
덕혜옹주가 있는 소 다케유키의 저택으로 가는 도중 일본인들에게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아주 소중한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칼 자국의 상처도 남게 된다.
몸과 정신을 유린당한 복순은 덕혜옹주와 고국의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덕혜옹주를 고국에 귀환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박무영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복순은 덕혜옹주가 있는 정신병원의 청소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덕혜옹주 귀환 작전에 가담하게 된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병원 탈출을 시도하던 중 발각되어 복순은 일본 땅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정작 그녀는  

자신의 고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만다. 
 

 

 역사의 아이러니

소설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불행한 삶에 대한 연민보다는 우리나라의 어두웠던  

과거사와 덕혜옹주라는 인물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베스트셀러다,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제국의 왕족의 

삶을 소설화했다는 광고 문구에 넘어가 단순히 나의 역사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읽었다. 

하지만 단순히 소설로 읽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덕혜옹주의 삶이 결국  우리가 알지 

못했으며 알고 싶지도 않았던 일제 치하 때 우리나라의 과거 모습이었다. 작가의 후기에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족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그녀를 먼저 세상에  

소개하였으며 숨겨진 역사적 기록을 찾아냈던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덕혜옹주에 관한 책으로 우리나라에 소설보다 먼저 번역되어 출간하였다.  

소설 덕혜옹주의 흥행에 힘입어 뒤이어 어린이들을 겨냥한 덕혜옹주 관련 도서들도  

나오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평소에 잊고 있었던 역사 인물들이 매스컴이나 출판물을 통해 재등장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인물이기에 알고 있어야 하며 결국 그 인물을 알게 되면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잠시나마 애국심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신문을 보게 되면 소설 덕혜옹주의  

광고 카피와 마주하게 된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은 안 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인물이라고 덕혜옹주의 생전 사진과 함께 신문지면 구석에 기재되어 있다.  

광고 카피가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자극하게 하여 이 책을

읽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래.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이기에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며  

이번 소설로 인해 가려져 있는 그녀의 삶을 알고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녀를 알기 전에 그녀가 살았던 대한제국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소설 덕혜옹주 관련 광고 카피라이터에게 조언 해주고 싶다.  

다음 광고 카피를 쓸 때  대한제국의 슬픈 역사도 꼭 알아야 한다는 문구도 적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카피를 정하면 책도 더욱 잘 팔릴 것이고, 독자들이 대한제국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끔 허황된 기대감도 가져보게 된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 “한일합방 조약은 불법이다”] 한겨레21 5월 14일자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73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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