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새물결)에서 가장 어렵다는 3장(도덕의 지질학)을 읽다가 옐름슬레우(Hjelmslev)로 빠지게 됐다. 사실 내가 관심있는 건 들뢰즈/가타리의 기호학 비판과 언어철학인데(그래서, 4-5장만 읽으려고 하다가, 3장을 먼저 읽어야겠기에 작전상 후퇴했다), 그들의 주장에 결정적인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 옐름슬레우의 언어학, 즉 언리학(Glossemantics)이다(그레마스의 기호학 또한 옐름슬레우라는 언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장, 수도없이 쏟아지는 ‘표현과 내용’, ‘형식과 실체’란 말의 감을 잡지 않고서는 <천 개의 고원>을 읽어나갈 수가 없다.

이진경의 <노마디즘1>(휴머니스트)에서 비교적 친절한 설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역시 그걸로는 부족해서 관련서적을 뒤적이게 된다. 이때 요긴한 참조가 되어주는 책이 존 레흐트의 <현대사상가 50>(현실문화연구)이다. 약간의 오타/오역이 흠이긴 하지만, 그만하면 80%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그리고 서정철의 <기호에서 텍스트로>(민음사). 5명의 언어학자/기호학자를 다루고 있는 책의 한 장이 옐름슬레우에게 할당돼 있다. 내가 읽은 바로는, 그래도 국내 필자가 쓴, 옐름슬레우에 대한 가장 자세한 소개이다.

옐름슬레우의 주요어 중 번역에서 문제가 되는 건, 형식form과 짝을 이루는 substance이다. 철학에선 주로 ‘실체’라고 옮기고 언어학에서는 ‘실질’이라고 옮기기 때문에(서정철도 ‘실질’로 옮기고 있다) 좀 애를 먹이는데, 같은 언어학자인 최승언의 <일반언어학강의>(민음사)나 김성도의 <그라마톨로지>(민음사) 번역에서도 ‘실체’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그냥 일률적으로 ‘실체’로 옮겨도 무방하겠다.

 

 

 



문제는 번역된 옐름슬레우의 주저 <랑가쥬 이론 서설>(동문선)의 번역이 수준이하라는 것(동문선은 오역 전문출판사로서 수위를 다툴 듯하다). 이 책은 이진경도 참조하고 있지만, 용케 오역인 부분들만 피해가고 있다. 원저가 덴마크어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불역본도 어차피 중역이어서, 영역본과 비교해 보는 것이 적반하장격은 아니다. 가장 짜증나는 건 'substance'를 전부 '본질'로 옮겨놓은 것. 비록 철학에서 ‘실체’란 말이 ‘본질’과 비슷한 뜻을 가질 때도 있지만, 불어학 전공자들인 두 역자의 언어학적 상식이 의심스런 대목이다. 레흐트에 의하면, 옐름슬레우의 ‘실체’는 가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비가시적인 '본질'과는 차이가 나며, 따라서 그렇게 옮겨서는 안된다.

더불어 마음에 안드는 건 ‘형식’을 또 전부 ‘형태’로 번역하고 있는 것. 화용론의 주장대로,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만, 웬만하면 관례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가령, <천개의 고원>의 역자는 언어학/기호학 용어중 ‘화용론’을 ‘화행론’으로, ‘의미작용’을 ‘기표작용’으로 생경하게 옮겨놓는데, 그럴 듯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번역임을 면치 못한다. 마치 ‘등신’이란 말을 좋은 취지로 썼다는 딴나라당 국회위원의 경우처럼.

<랑가쥬 이론 서설>이란 제목도 그렇다. 불어에서의 랑그와 랑가주를 구별해주기 위해서 쓴 거 같지만, 랑그와 달리 랑가쥬는 언어학에서도 그다지 상용되는 말은 아니다. 해서, 랑그로서의 언어와 랑가주로서의 언어가 혼동될 경우에만 괄호안에 넣어주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가령, 크리스테바의 <언어, 그 미지의 것>(민음사)에서의 ‘언어’는 ‘랑가쥬’를 가리키지만, <랑가쥬, 그 미지의 것>이란 제목을 일반 독자가 언어학 책으로 알아볼 확률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번역본만으로는 의미파악이 거의 되지 않거나 아주 힘든, 의미의 변비통만 안겨주는 책인데, 한 대목만 보자;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본질은 전적으로 형태에 좌우되고 우리는 어떤 의미로도 - 정확히 말해 그 여건에 따라 - 독립적인 존재를 형태에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만 한다.”(68쪽) 이에 대한 영역은 “If we maintain Saussure's terminology- and precisely from his assumptions - it becomes clear that the substance depends on the form to such a degree that it lives exclusively by its favor and can in no sense be said to have independent existence."(50쪽)이다.

우선, 우리말 번역문에서 ‘본질’과 ‘형태’는 앞서 말했듯이 오역이므로 ‘실체’와 ‘형식’으로 바꿔서 이해해보자. 일단 번역문은 (1)실체는 형식에 좌우된다, (2)우리는 독립적인 존재를 형식에 부여할 수 없다, 라는 두 가진 진술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왜 ‘실체’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형식’으로 초점이 넘어갔느냐는 것이다. 뒷부분의 불어 원문은 이렇다: “il nous faut alors rendre compt - et precisement d'apres des donnes - que la substance depond exclusivement de la forme et qu'on ne peut en aucun sens lui preter d'existence independante."(불역본, 68쪽)

나로선 불어사전을 가지고 더듬거리며 읽는 수준이기에 유창하게 번역하진 못하지만, 역자들이 마지막에 있는 대명사 lui를 substance가 아닌 forme를 받는 걸로 해석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다시 느끼는 거지만, 번역에서 대명사나 관계사의 선행사를 잘못 짚게 되면, 치명적인 오역을 낳을 수밖에 없다. 통사적으로 모호할 경우엔 논리적으로 따져봐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역자들은 만만한 불어실력에만 의존한 듯하다.

해서 다시 옮기면,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실체는 전적으로 형식에 의존한다. 때문에 (그의 전제/가정들에 따라서) 실체가 독자적인 실재성을 갖는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괄호로 묶은 “and precisely from his assumptions”나 “et precisement d'apres des donnes”은 앞의 전제/가정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즉 실체와 형식에 관한 내용이 앞에 주어져 있는데, 그에 따라서 이러이러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국역본이 “정확히 말해 그 여건에 따라”라고 옮긴 것 역시 오역이다.

사소한 대명사 착오가 사소하지 않은 오역을 낳는다. 엘름슬레우와 관련하여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민음사/동문선)이다. 존 레흐트를 참조한 것이지만, 국역본 117-121쪽 정도에서 옐름슬레우의 언리학에 대한 데리다의 평가를 읽어볼 수 있다. 물론 이해할 수는 없다. 역자는 언어학자임에도 불구하고(그나마 언어학자의 번역이어서 사정이 좀 나은 걸까?), 여러 곳에서 치명적인 오역을 범하고 있다. 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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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sboy 2007-05-16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역만을 고려해보면,

"우리가 소쉬르의 용어를 따른다면(그리고 정확히 말해 그의 전제들에 입각해본다면), 실체는 반드시 형식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고, 결코 [그 자체로는] 독립적인 실존을 갖는다고 얘기될 수 없다는 점에서 명백히 실체는 형식에 의존해 있다."

로쟈 2007-05-1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페이퍼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번역해주신 대로입니다. 숙제가 여기도 남아있었네요.^^;
 

얼마 안되는 분량을 두고 오래 뜸을 들이는 것도 별스러운 것이어서 마저 해치우기로 한다. 우리가 가장 바쁠 때 가장 많은 일을 한다는 속설에 의지해 보면서. 어제는 프로이트-라캉 카페에서 소개받은 지젝 관련 글을 읽었는데, 지젝의 근황과 최근의 사생활이 비교적 자세하게 드러나 있어서 흥미로웠다. 지젝을 이해하는 데, 아니 이해하기 시작하는 데 아주 요긴해 보이는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미친 척하고 요약/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아니, 그 전에 찾아서들 읽어보시면 되겠고, 어느 분이 먼저 요약/정리해주시면 더욱 좋겠지만...



-데리다 인터뷰로 넘어와서, 대담자의 다음 질문은 좀 어리숙하다(독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인지).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 둘은 서로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이건 원문의 "They aren't heterogeneous."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아무래도 논리상 맞지 않는다. 뒤에 나오는 내용을 고려해 보건데, '그 둘은 서로 이질적입니다'가 돼야 할 거 같다. 아마도 녹음된 구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오타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They are heterogeneous."라고 말했을 것이고, 그래야 말이 맞다. 데리다의 영어발음이 부정확했거나 필사자의 청력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해서 이어지는 대목은, "그래서 당신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아무런 지혜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번역하면서 계속 께름직했는데, 결론은 오타일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 "지식과 행위 사이에는 심연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심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능한 한 더 많이 알고자 하는 노력이 방해받는 건 아닙니다. 철학, 즉 필로소피아는 지혜에 대한 사랑입니다. 필리아가 사랑이고 소피아가 지혜죠. 따라서 지혜에의 의무가 바로 철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전적으로 지식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능한한 많은 것을 알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결정의 순간에 내가 가진 지식으로부터 어떤 비약을 감행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지혜가 문제되는 건 행위이다. 즉 지식과 행위(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이에는 심연이 있고, 철학은 그 지혜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 데리다의 주장이다, 고 나는 생각한다.

-지식과 지혜에 대한 이런 얘기는 좀 고리타분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목들은 재미있다. 그리고 데리다의 '사생활'이 조금씩 내비친다. "1967년에 출간한 책들 덕분에 당신은 더 행복해졌습니까?" 나로선 좀 예기치 못한 질문이다.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데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나는 매우 활동적이고 정력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만약에 내가 20세때 누군가 지금 나이인 72세에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 말해줬다면, 나는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 나는 아주 병약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반에 반만 하더라도 쓰러졌을 겁니다. 그 작업(책)이 얻어낸 호응이 내게 지금과 같은 에너지를 준 것이죠. 사람들은 저와 제 작업을 관대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만약 그런 관대함이 없었더라면 확신하건데, 나는 진작에 주저앉았을 겁니다."

-그 다음 뜬금없는 질문. "왜 여성 철학자는 없는 걸까요?"(그런데, 왜 여성 대법관은 없는 겁니까?) 페미니즘에 대한 데리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질문이다.

-" 왜냐하면 철학적 담론이란 건 자체가 여성과 아이들, 동물과 노예 들을 주변화하고, 억압하고, 침묵시키는 방식으로 조직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철학적 담론의 구조입니다. 그걸 부인하는 건 어리석은 것이죠. 따라서 당연히 위대한 여성 철학자는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여성 사상가들은 있었지만 말이죠. 하지만, 철학이란 건 여러 사고양식 중에서 대단히 특별한 사고양식의 하나(일뿐)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변화되어 가는 역사적 국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건 거창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많은 저작들이 남근중심주의의 해체와 관련돼 있습니다. 자화자찬하자면, 나는 그러한 문제를 최초로 철학적 담론의 중심에 놓은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한 억압은 특히 남근중심주의의 철학적 근저에 끈질기게 남아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는 페미니즘 문화의 동맹군입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몇몇 선언적인 주장들에 대해서는 유보적입니다. 단순히 위계를 뒤엎는다든가 관습적으로 남성적인 행동으로 간주돼 왔던 가장 부정적 측면들을 여성들이 전유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저작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오해는 무엇입니까?"

-"그건 나를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텍스트는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적인 니힐리스트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그러한 오독은 35년전에 시작되었고 이젠 깨뜨리기도 어렵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언어적이며 우리가 언어에 갇혀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나는 정반대를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로고스중심주의에 대한 해체는 모든 것이 언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러한 철학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내 책을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내가 긍정과 신앙을 고집스레 주장하며, 내가 읽은 텍스트들을 전적으로 존경한다는 점을 이해할 겁니다."
-"타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살인의 충동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살인충동은 제거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물로서의 인간(human animal)의 한 부분이니까요. 동물로서의 인간은 잔인하며, 타자의 고통으로부터 쾌락을 얻습니다. 그건 제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살인에의 권리는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철학과 사유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즉 이 제거될 수 없는 충동을 제어하는 것이죠. 잔인성과 공격성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을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변형시킬 수는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쓸 때 그러한 활동엔 공격성도 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 공경성을 뭔가 유용한 것으로 변형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공격성은 살인보다 흥미로운 어떤 것으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은 실제로 살인하지 않고도 죽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도 나는 타자를 (다른 방식으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격적이라는 것은 그렇게 천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조훈현이나 유창혁의 공격바둑을 생각해 보라. 박지은의 공격적인 드라이브샷, 전성기 박찬호의 공격적인 피칭, 홍세화나 박노자의 공격적인 글쓰기 등등...)

-"영토나 소유권 등의 개념들이 인간들간의 갈등의 뿌리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관념들은 어디에서 유래하며, 왜 우리는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요?"(이건 달라이라마에게 질문해야 하는 거 아닐까?)

-"수세기동안 도시는 교역의 중요한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더불어 이젠 더이상 그렇지 않죠. 장소의 정치학은 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한 친구가 최근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오늘날 탈영토화하거나 가상화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건 예루살렘과 석유이다, 라고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석유에 의존해 살고 있습니다. 비록 그런 상황이 변화할 수는 있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석유가 고갈된다면?) 모든 사회가 붕괴될 것입니다(이 부분의 번역은 원문을 확인해 주셨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석유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건 유럽보다도 미국에서 더 큰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항상 미국에서는 더 문제가 됩니다. 거기엔 분명한 이유들이 있고요."

-"과거가 사람들에게 쉽게 고통이나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지요?"(이 또한 멍청한 질문에 속한다.)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내 경우엔 다행스럽게도 나는 과거와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조차도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꺼이 나의 삶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이 일어났던 그대로 끝없이 반복되는 걸 수용할 수 있습니다. 즉 영원회귀를 말이죠."(답변은 똑똑하다.)

-"요즘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우문의 퍼레이드다.)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적이고, 공적이고, 정치적인 일들이 나에겐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과 함께 끊임없이 의식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고,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입니다.(영화 <데리다>에도 나오는 그의 백발과 눈가의 주름들을 떠올려 보라.) 인생은 짧습니다. 나는 항상 내게 남아있는 시간들에 민감합니다. 그리고 비록 이건 내가 어릴 때부터 죽 그래왔던 성향이긴 하지만, 72세가 되면 문젠 좀 심각해집니다. 아직까지는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거 같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자각이 나의 모든 사유에 침윤돼 있습니다.(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후기 데리다는 상당히 실존주의적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끔찍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내 마음속에서도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죽음의 충격(terror)에 비해 주변적(alongside)입니다."(우리도 72세가 된다! 될까?...)

-드디어 마지막 질문. "당신은 언제 어른이 되었습니까?"(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이다. 내가 읽은 어떤 인터뷰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질문!)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나는 항상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나이를 가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 가지 나이를 갖고 다닙니다. 내 나이 스무살때, 나는 내가 이미 늙었고 너무 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일흔 둘)은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엔 멜랑콜리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마음속으론 아직 젊다고 느끼지만, 나는 객관적으론 내가 더이상 젊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가지고 다니는 세번째 나이는, 이건 내가 프랑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데, 내가 막 책을 출간하기 시작하던 나이입니다. 그때가 35세, 서른 다섯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내가 한창 작업하던 때의 문화적 환경(cultural world) 속에서 35세로 멈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죠. 왜냐하면, 나는 많은 분야에서, 좀 많은 책을 출간한 늙고 저명한 철학자로 간주되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내가 이제 막 책을 출간하기 시작한 신출내기 저자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글쎄, 꽤 전도유망한 녀석이군.""

마지막 질문에 대한 데리다의 답변은 감동적이다. 여러 시간을 이 인터뷰 번역에 쏟아부은 것도 이 마지막 답변을 여러 사람과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모른다. 이 인터뷰의 원래 제목도 '자크 데리다의 세 가지 나이(The Three Ages of Jacques Derrida)'이다. '데리다의 사생활'이란 타이틀이 크게 빗나간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영화 <데리다>에서 데리다는 나이가 들면서 같이 늙어가는 '손'과 나이를 먹지 않는 '눈'에 대해서 아주 흥미로워하는 듯한 표정(그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야기한다)으로 얘기한 바 있다. 그 데리다가 이젠 73세, 일흔 셋이다. 103세까지 장수했던 가다머에 견주면, 아직 30년의 세월이 남았다.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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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쓴 글을 여기에 옮겨둔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발췌 번역하고 있는 글은 2002년의 글이다...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점심시간이라 빈둥거리고 있다(너무 일찍 점심을 먹은 탓에). 자투리 시간이 난 김에 엊저녁에 읽은 데리다의 대담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지에 작년 11월 둘째주에 실린 건데, 그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것. 대담자는 Kristine Mckenna이고, 분량은 A4지 3쪽 반이다. 어제 퇴근길에 전철에서 읽으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작년에 본 영화 <데리다>를 떠올리며) 시간이 나면 완역이라도 하고 싶지만, 요즘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해서 흥미로운 부분만 요약한다.  

대담의 첫머리에는 그의 약력이 소개되고 있다. 스페인계 유대인 가계인 데리다는 잘 알다시피 1930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난다. 10살 때 비시치하의 반유대인 정책 때문에 학교에서 쫒겨나는데, 사유는 나중에야 담임으로부터 듣게 된다. 19세에 고등사범에 들어가기 위해 파리로 가고 두 번인가의 낙방끝에 프랑스 수재들의 전당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아내인 마거릿 오쿠튀리에(Marguerite Aucouturier)를 만난다(아주 고전적이지만, 고등사범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정신분석의가 된다. 영화 <데리다>에는 이들 부부의 사생활이 잠깐 비치는데, (눈치를 보니)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둔 것 같다. 1952-56년까지 고등사범에 다니면서 주로 후설과 하이데거를 읽는 데 전념한다(그가 초기에 인정받은 것은 유망한 현상학자로서였다). 하바드 장학생에 선발되어 5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며 60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오고 소르본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결혼을 한 건 1957년. 어디에선가 읽은 건데, 하바드에서 그는 조이스를 발견하고 탐독한다(그의 제임스 조이스론은 그 읽기의 경험에서 얻어진다).  

 

철학자로서 데뷔하게 되는 건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고 거기에 장문을 서문을 붙인 책을 출간하면서부터이다. 이게 1962년이다. 그리고는 1967년에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를 한꺼번에 출간하면서 철학적 담론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다. 그는 현재까지 45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이 책들은 2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1986년부터 어바인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방문교수로도 일하고 있으며, 이 대학에는 데리다 문서고(아카이브)가 1990년에 설치됐다(영화 <데리다>에 자세히 나오는 장면들이다).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데리다는 처음엔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사진에 찍힌 자신의 이미지가 불편했기 때문에. 하지만 학술계의 저명인사가 되면서 점점 더 저널리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의 컨트롤이 힘들어지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고. 그리고 자신이 찍은/찍힌 영화에 대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럼면서 질문을 던진다. "한 철학자가 반드시 전기를 가져야만 합니까?"

"어떻게 철학자는 전기를 안 가질 수 있나요? 어떻게 당신은 한 철학자의 삶으로부터 그의 저작들을 분리시킬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자는 다시 반문하고,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영화 <데리다>에 얼마간 주어져 있다. 당신은 이해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철학자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즉 철학자들은 자신의 삶은 주변적이거나 우연적인 걸로 간주했다. 자주 드는 예이지만,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아리스토텔레스 강의를 예로 든 바 있다(그는 태어나서 사유했고, 그리고 죽었다는 식. 모든 철학자의 전기/생애는 그걸로 끝이다. 중요한 건 사유의 내용이니까).

그 다음 질문이 바로, 철학자의 전기로부터 자연스레 도출되는 거지만, 철학자의 사생활, 성생활에 대한 것이다. 질문자는 영화 <데리다>의 내용을 다시 상기시키면서("당신이 존경하는 철학자들과 대담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란 질문에 데리다는 "그들의 성생활"이라고 답한다. 왜나면, "그건 그들이 말하지 않은 거니까.") 영화속 질문자의 짓궂은 질문. "그럼, 당신의 성생활은 어떠한가?" 여기에 대해 데리다는 답변을 거절/유보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거기엔 어떤 한계/금지가 있는 것인가?

사실 영화속에서도 데리다는 유사한 답변을 하는데, 그건 카메라 앞에서 게다가 (불어가 아닌) 영어로 이루어진 그 대담에서는 자신의 가장 사적인 삶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 또 그런 즉석문답식으로는 제대로/잘 말할 수 없다는 것. 데리다는 말도 잘하지만, 사실 그의 장기는 글쓰기이다. 그는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어하고, 또 사실 여러 차례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남겨놓고 있기도 하다. 그가 거명하고 있는 책들은 <조종>(1974), <우편엽서>(1980) <고백Circumfession>(1991) 등이다. 이 책들은, 데리다에 의하면, 상당히 자전적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종교와 신앙에 관한 것(데리다는 종교에 관한 글들도 상당수 발표한 바 있고, 이것들은 에 묶여 있기도 하다). "당신은 신을 언제 처음 체험해 봤는가?" 혹은 "당신이 처음 신을 만났던 체험을 떠올릴 수 있는가?" 데리다는 먼저 신에 대한 관습적인 정의(당신이 껴안을embrace 없는 존재)를 유지하면,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릴적 경험한 유대교회당과 거기서 울려퍼지던 음악에 대해서 얘기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습관적인/존경이 결여된 신앙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의 나이가 13세이다. 그리고 그때 처음 읽기 시작한 니체에 푹 빠져들게 되고, 니체와 루소는 그의 신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일기가 온통 니체와 루소에 대한 인용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고백한다. 비록 니체가 격렬하게 루소를 비판했지만, 그는 그 둘을 모두 사랑했고, 자기 안에 있는 이 둘을 어떻게 하면 화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다음 질문은 하이데거와 관련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의 인터뷰(그러나 1976년 그의 사후에 비로소 공개된 인터뷰)에서 하이데거는 "니체 이후의 철학은 인류의 장래에 아무런 도움도, 희망도 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제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 당신도 동의하는가?

"나는 신(a god)이란 말은 쓰지 않겠다. 하지만, 이 진술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건 하이데거가 반종교적(anti-religious)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말하고 있는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이 아니다. 그가 가리키는 신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마 존재하지도 않는 신이다. 그는 누군가가 간절히 고대하는 바에 대해 신이란 이름을 부여한다. 즉 누군든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구원할 이는 신이란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진술이 구원에의 희망을 부추기는 것이라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인가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 도래할 자를 환대해야만 한다는 뜻이라면, 나는 동의한다. 이것이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이라고 기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본성적으로 메시아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뭔가 일어나기를 항상 고대한다. 심지어 우리가 아무런 희망없는 상태에 놓여있을지라도 어떤 기대감을 갖는 것은 시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희망없음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뭔가 좋은 일의, 우리를 사랑해줄 이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그런 뜻의 얘기를 한 거라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2차 대전에 관한 질문. 30년생이니까 데리다는 소년시절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다. 그때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데리다는 견딜 만했다고 답한다. 그건 비교의 문제이기도 한데, 알제리의 유대인은 적어도 (유럽)대륙의 유대인들보다 훨씬 나은 상태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알제리에도 반유태주의는 있었지만, 독일인도, 수용소도, 유대인 집단이주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심리적인 외상은 갖게 되죠. 만약에 당신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서 쫓겨난다면, 그 일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계속. 론 로젠바움이 쓴 <히틀러 해명Explaining Hitler>(1998)에서 저자는 '의미'야말로 히틀러의 최대 희생자였다고 말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우리는 어떠한 정합적 의미로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도 동의하는가? 이에 대한 데리다의 대답은 유보적이다. 그는 거기에 답하기엔 아직 준비가 부족하며, 그 문젠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철학이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데리다의 답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건 정치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제기된 것이기도 한데, 철학과 정치는 서로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삶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존재들이며, 그래서 다른 동물들보다 우리 자신을 우위에 놓는다. 나는 동물(성)의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철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동물이 아니며 우리 삶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렇다. 우리가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우리가 이 문제의 해답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다 번역하다간 오후 시간을 다 잡아먹겠다. 내용이 좀 길어진 관계로 (하)편에서 마저 정리하도록 하겠다. 양해하시길...

덧붙임: 대담자가 말하는 하이데거의 인터뷰는 우리말로 완역/소개돼 있다. 하이데거에 관한 훌륭한 사이트인 http://holzweg.netian.com/index.htm로 가보시기 바란다. 오래전에 들러봤던 사이트이고, 생각해 보니까 번역문도 훑어봤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시나 Word님이 일깨워준 정보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1966년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이다. 따라서 본문중에 내가 "2차 대전 직후"라고 한 건 "2차 대전 이후"로 수정했다(영어로는 'shortly after'이다). 데리다의 인터뷰와 관련된 부분만 옮겨온다(번역은 장승규님).

슈피겔
좋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개별 인간이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강제의 그물 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혹은 철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또는 철학이 개인이나 여러 개인들을 특정한 행동으로 이끌어 양자가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이데거
짧게 그러나 오랜 숙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철학은 세계의 현재 상태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이 것은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적인 사고와 노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사유와 시작을 통해 신의 출현이나 몰락 속에서 신의 부재를 예비하는 것이다. 부재 하는 신 앞에서 우리는 몰락한다.

슈피겔
당신의 사유와 그러한 신의 도래(到來) 사이에 어떤 하나의 연관이 존재하는가? 당신이 보기에 일종의 인과관계가 거기에 놓였는가? 당신은 우리가 신을 다시 불러내 사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이데거
우리가 신을 다시 불러내 사유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기다림의 예비를 일깨울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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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먼지나 날릴 만한 3월초순에 '백년만의 폭설'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듯하다. 일기와 관계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로선, 크게 불편한 일도 없고. 대학가의 서점들이 주로 수업교재를 구하려는 학생들로 미어터지는 풍경도 보기에 나쁘지 않다. 두툼한 경제학/경영학 책들과 몇 만원씩은 나갈 듯한 자연계 원서들이 수십 권씩 쌓여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왠지 마음이 젊어지는 듯하다. 분명 나에게 그런 날들은 '과거'이지만, 또 그런 날들은 해마다 '비인칭적으로' 반복된다! 왠지 그런 풍경들 속에 나도 (나를 잊고!) 끼여들었으면!...

하는 기분에, 서점에 자주 들러, 다치바나 다카시의 <뇌를 단련하다>도 괜히 쓰다듬어 보고, 이미 봄호가 나오는 계간지들 서가에서 지난 겨울호들을 뒤적이기도 한다. 두어 주쯤 됐지만, 그러다 발견한 글 두 편. 하나는 <과학사상>(47호)에 실린 이진우의 "생명공학 시대의 '주체' 또는 '탈주체'"이고, 또 하나는 <당대비평>(24호)에 실린 윤평중의 지젝과의 대담, "사유와 실천의 유희는 가능한가>이다(*<윤평중 사회평론집>(생각의나무, 2004)에 재수록돼 있다). 후자의 부제는 '지젝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지난 가을 방한시 계명대에서 영어로 발표했던 <유전공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란 강연문의 해제 형식인 이진우 교수의 글은 '유전공학에 관한 지젝의 정신분석학적 계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미 그 강연문을 읽었던 독자에게라면 새로울 게 전혀 없는 내용이다. 필자가 미주에서 밝히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글은 그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비판적 논의라기보다는 그의 사상을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젝 관련 문헌의 하나로 카운트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찾기 어렵다(참고로, 강연문의 번역은 홍준기씨가 맡았었는데, 책으로 낼 수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지젝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만 알아보면 되겠다. 부지런한 분들은 책을 직접 참조하면 더 좋을 거 같고.전반부에서 슬로베니아와 지젝의 가정환경을 다룬 부분, 미국에 대한 견해 등은 생략하고, 바로 철학에 대한 것. 우선, 그에게서 라캉과 헤겔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라캉과 헤겔이 철학적 문제의식이 자신의 사유에 있어서 주요 화두라는 걸 인정하면서 "라캉 없는 철학은 공허하고 헤겔없는 정신분석학은 방향감각을 결여하고 있다"는 패러디적 문구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물론 이때 그가 주로 참조하는 라캉은 초기의 구조주의적 라캉이 아니라 후기의 라캉이다. 때문에, 그는 '주체의 죽음'이라는 포스트모던적 테제를 라캉과 결부시키는 데 완강하게 반대해왔다. "어쨌든 주체라는 행위자를 설명함에 있어 후기 라캉이 훨씬 적합한 이념적 틀을 제공하지요. 독일 관념론, 특히 헤겔에 대한 저의 집중적인 관심도 주체의 문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독일 관념론이 주체 문제에 대한 가장 정교하고 역동적인 철학적 설명의 틀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그의 헤겔론은 곧 역간될 예정인(*이미 역간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에 집약돼 있다(이 책에서, 헤겔은 들뢰즈 이상의 매력적인 철학자로 탈바꿈해 있다). 다른 자리에서, 그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란 데뷔작의 대성공(!)에 놀라는 만큼이나 뒤이어 나온 이 책의 (흥행)'실패'에 의아해 하는데, 정작 자신이 보기에 더 중요하고 더 훌륭한 책은 이 후자이기 때문이다(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있다). 그가 새로이 2판을 내면서 100쪽이 넘는 서문을 다시 붙인 것도 그러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이 역간되면, 지젝에 대한 오해나 비판이 어느 정도 교정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지젝이 그토록 강조하는 혹은 숭배하는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과 <(대)논리학>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면서 유감스럽다(새로운 번역본이 시급히 나오기를 기대한다). 헌책방들을 뒤지면 한두 권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공포의 04학번 신입생들에게 대철학자 헤겔은 말 그대로 '공갈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해마다 헤겔학회가 열리고 가끔씩 헤겔 연구서가 나오는 건 넌센스가 아닐까? 그들의 헤겔은 독일에만/독일에나 있는 것인지? 딴은, 우리나라는 헤겔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인 것이니까 그다지 나쁠 게 없는 것인지도. 들뢰즈라면 이러한 헤겔의 공백을 반가워했을까?...

어쨌든 지젝이 생각하는 헤겔의 핵심, 혹은 변증법의 핵심: "변증법이 존재계 일반에 대한 이론으로 이해되지 않고 주체의 역동적 자기형성 과정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적으로 독해된다면 부정의 이념은 자연스럽게 주체가 내외부적으로 실험하는 부정의 부정으로 전화하지요. 즉 부정성은 주체의 자기 관계적 부정성이며,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주체의 형성이라는 이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과정 자체를 일반적 차이와 구별하기 위해 절대적 차이라고 명명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윤평중 교수는 "절대정신의 존재론을 설파한 헤겔과 자기 관계적 부정성을 강조한 헤겔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하지만, 지젝은 바로 그 점이 헤겔의 묘한 매력이 아니겠느냐고 받아넘긴다.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에 대한 얘기와 함께 영화 얘기. 그 많은 영화들을 어떻게 다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대목인데). 지젝의 답변은 기가 차다: "제가 분석하거나 해부하는 영화들의 3분의 1도 보지 않았을 겁니다. 예건대 저는 로셀리니의 작품을 한편도 보지 않았으며, 영화관에 가는 것도 그리 즐겨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극장에 갈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정확하겠네요."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의 한 장은 바로 로셀리니의 3부작에 바쳐져 있는데, 정작 그는 단 한편의 로셀리니도 보지 않았다니! 이걸 사기라고 해야 할지, 묘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는 무엇보다도 영화 텍스트가 이데올로기와 일상적 삶이라는 텍스트의 비밀을 응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서 즐겨 말하고 분석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1/3밖에 못 봤다고 하더라도 그 분량은 우리의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네그리/하트의 <제국>에 대한 얘기. 그는 '제2의 자본론' 운운하며, <제국>을 서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서평은 사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쓴 것이며, 정작 책은 아주 실망스러웠다고. 이 실망은 그가 다시 쓴 서평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요점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이라는 게 기대이하라는 것이다. 지젝은 말한다: "저는 지금 이 시점, 그리고 앞으로 전망 가능한 중장기적 지평에서 자본주의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지적으로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내가 좋아하는 지젝은 이런 말을 하는 지젝이다.) "네그리와 하트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한마디로 저는 선진 자본주의 교육제도의 수혜자이자 지식 특권계급으로서의 서구 강단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라크 문제나 유고 사태를 거론하면서 이들 비서구인들에 대해 취하는 거들먹거림이나 위선에는 이제 신물이 납니다."(짝짝짝!)

그럼, 당신의 대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어떤 종류의 해답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문제를 풀 해답이 존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그 범위 안에서 꾸준히 할 뿐입니다. 우리네 일상의 무늬와 결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일성과 균열, 그리고 현대적 삶의 무한한 모순과 복합성을 웅변하는 사례들이 다양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것들을 따져 묻고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으로, 당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음악을 들을 때라고 답한다. 그는 생각을 할 때나 쉴 때나 항상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는데, 덧붙여 자신의 비밀을 문득 털어놓는다: "저는 언젠가는 대작 오페라 한편을 직접 써서, 뉴욕 무대 같은 데에서 직접 연출해 올리는 것을 궁극적 희망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음악미학에 대한 질 높은 연구서, 예컨대 아도르노의 작업에 비견될 만한 책도 펴내고 싶습니다."



이 대담에서 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로셀리니 영화 얘기와 함께 이 음악 얘기이다. 두 이야기는 지젝을 좀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준다. 대담을 마친, 윤평중 교수의 감상도 흥미로운데, 그는 지젝의 경이로운 통찰력과 감수성, 그리고 에너지에는 근본적으로 어떤 불안정한 데가 있어 보였는데, 그것은 그의 고질병인 '당뇨' 때문에 야기되는 불안한 제스쳐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전형적인 조증(manie) 이 아닐까, 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당연히 그러한 조증에나 울증이 동반된다(니체이 경우처럼). 실상 지젝 자신이 라캉주의자들로부터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다(그 자신이 비판적이지만). 그의 결론: "나는 지젝을 니체가 미래 위버멘쉬의 모델로 상정한 '예술가-철학자'의 상에 가장 근접한 인간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어떤 위버멘쉬, 혹은 또 다른 헤겔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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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13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오페라 같은데 어떤 작품인지 혹시 알려주실 수 있을지요?

로쟈 2008-06-01 22:50   좋아요 0 | URL
글쎄요, 오래 돼서... 짐작엔 <돈죠반니> 같습니다...
 

어젯밤에 비로소 <지젝과의 대담 >(Polity, 2004)을 다 읽었다(*지난 1월초에 쓴 글이다). 170쪽 정도의 얇은 분량이지만, 주로 출퇴근 시간에만 야금야금 읽느라고 8일쯤 걸린 듯하다. 그래도 새해 들어 완독한 첫번째 책이라 나로선 뜻이 없지 않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지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익하며 또 필수적인 책이다.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 지론이지만, 어떤 사상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름길은 그의 자전적인 기록이나 대담을 읽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이나 대담은 지극히 평이하면서도 자기 사상의 핵심을 짚어주기 때문에 더없이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 지젝의 이번 대담집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향락의 전이>에 부록으로 실린 “자가-인터뷰”와 함께 지젝 입문서로 적극 추천한다. 지젝의 지명도를 감안하면, 아마 책의 국역본이 의외로 빨리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시켜만 준다면 나라도 나서겠지만).   

이 책은 Polity출판사의 Conversations시리즈 중 다섯번째 책이다. 이보다 앞서거나 동시에 나온 책들은 각각 지그문트 바우만, 울리히 벡,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 앤소니 기든스와의 대담들이다. 폴란드의 석학 바우만의 책으론 <자유>(이후, 2002)와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 Globalization>(한길사, 2003)이 번역/소개돼 있고, 독일의 사회학자 벡의 책들은 대표작인 <위험사회>(새물결, 1997)을 비롯하여 <정치의 재발견>(거름, 1998), <지구화의 길>(거름, 2000),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새물결, 2000) 등 다수의 저작이 번역/출간돼 있다. 나에겐 좀 생소한 카스텔은 ‘카스텔 3부작’의 한권인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한울, 2003)란 책으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의 정보사회학자이다. 그리고 ‘제3의 길’의 주창자 기든스에 대해선 군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그의 저작은 거의 20권이 소개돼 있다).

이 시리즈의 근간으로 돼 있는 책들은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과 문화비평가 스튜워트 홀 등의 대담집인데, 연배로만 따지자면, 아마도 지젝이 가장 어린 축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49년생인 그로선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이미 동시대의 핵심사상가들(Key Thinkers) 반열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동시대의 사상가들 중에서 이 ‘괴물 엔터테이너’보다 더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감동적인 사상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재미있으면서 읽을 만한 철학자/사상가는 여럿 있다. 하지만, 동시에 찡한 감동까지 전달해주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나는 좀 오랫동안 지젝과 데리다 사이에 머무를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데리다와 지젝은 서먹한 관계가 아니다. 지젝의 고백에 따르면, 하이데거를 전공하던 그에게(그의 철학박사학위 논문은 하이데거에 관한 것이다) 결정적인 자극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데리다이다: “내 생각에 데리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일개 하이데거 학자로만 남았을지 모릅니다. 내가 하이데거를 떠나도록 처음 자극을 준 사람이 바로 데리다였습니다.(I think that without Derrida I would probably have ended up as a Heideggerian. It was Derrida who provided this first impetus to move away from Heidegger.)”(29쪽) 그래서, 그는 데리다의 첫번째 메이저 저작인 <그라마톨로지>가 출간됐을 때, 하이데거가 직접 다루어지지 않은 것에 무척 실망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저널 <문제들 Problemi>의 1967년 겨울호에 <그라마톨로지>의 2개 장에 대한 번역을 싣는데, 이것이 아마도 데리다 저작의 최초의 외국어 번역일 거라고도 말한다. 아무튼 지젝과 그의 그룹 동료들은 데리다에 이끌려 프랑스 현대사상에 심취하게 되고 라캉과도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초기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라캉으로 마침내 그들의 진로가 결정되는 것은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인데, 이를테면 지젝에게 있어서 라캉은 포스트-데리다였던 셈이다. 실제로 지젝은 자신의 입장/입지를 포스트-해체론(post-deconstruction)이라고 몇 차례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비유컨대, 그에게서 데리다는 하이데거가 데리다에게서 갖는 의미/자리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데리다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해준 건 물론 라캉,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크-알랭 밀레의 라캉이다.

슬로베니아에서 동료들과 함께 80년대 초반에 얼떨결에 ‘정신분석과 문화’라는 국제 콜로키움을 개최했는데, 거기에 초빙되어온 밀레가 자신이 있는 파리 8대학의 (해마다 한두 명씩 뽑았던) 외국인 조교직을 제안한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변변하게 취직도 못하고 있던 지젝의 인생역전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그는 파리로 가게 되고 라캉의 사위 밀레에게서 라캉을 전수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밀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평가에 의하면 밀레는 최고의 교사였다. “그래서 이 말은 꼭 공개적으로 해야겠는데, 내가 이해하는 라캉은 밀레의 라캉입니다. 밀레를 만나기 이전에 나는 라캉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해서 이 시절은 나에겐 엄청난 배움의 시간이었죠.”(So I must say this quite openly that my Lacan is Miller's Lacan. Prior to Miller I didn't really understand lacan, and this was for me a great time of education.)(34쪽)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도 그러한 배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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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04 17:26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 리뷰기사를 옮겨놓은 김에 서문(번역본에서는 'introduction'을 음악용어인 '서주'로 옮겼다. 중간에 나오는 '간주'들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번역에서 의견이 다른 부분들을 지적해두고 싶다(이런 '품앗이' 교정이 방대한 분량의 이론서를 깔끔하게 우리말로 옮긴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나대로의 방식이다). 한 가지 핵심적인 사안과 몇 가지 사소한 부분이다.  
 
 
포월 2004-03-0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습니다. ^^

로쟈 2004-03-0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