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터 해야겠다. 사랑고백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3명이 있다. 바로 김연수, 신형철, 정희진. 쓰는 글도 스타일도 주제도 문체도 모두 다르지만, 나는 이 세 명의 글과 책을 통해 결과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3명의 글을 미친듯이 읽던 때는 같은 시기였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 나는 나를 바꿔줄 하나의 문장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그 하나의 문장을 찾기 위해 미친듯이 책을 읽었고, 필사를 하기 위해 까페에 갔고,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썼고, 무리하게 독서모임을 쫓아다녔다.
어쩌면 그때 방황이 나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신형철과 정희진의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나중에 올 것 같고, 오늘은 우선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부터.
<소설가의 일>은 내가 너무나 열심히 닳도록 보던 책 중의 하나였다. 어쩌다 가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다시 꺼냈을까. 아마도 다른 이런 문장을 읽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이 사실을 이해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많이 원하자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고 마음먹었다. 왜 안 되겠는가?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원하는 걸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거나.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엔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는지 얻지 않는지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41p)
"친구들에게 들려줄 때는 정말 멋진 이야기였는데, 그걸 문장으로 옮기려니까 한 줄도 안 나오는 건 문학적 재능이 없거나 문예창작과를 안 나왔거나 부모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쓰려는 그 이야기에 대해 사실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한 줄도 못 쓴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고통을 해결하고 싶다면 벽에다 머리를 박을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기 바깥의 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려면 충분히 시간을 두고 자신이 문장으로 쓰려는 것들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232p)
"나는 알게 됐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 쉽게 감정이입하는 이 마음은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걸,
다만 이 마음은 건너온 다리를 불태운 사람, 모든 걸 걸고 이야기의 중심으로 향하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모든 걸 잃을 사람이 누군지만 알 뿐이라는 걸. 160p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그 이유는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건 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나보다 먼저 살았고, 나보다 먼저 소설을 썼던 소설가들이 그들의 소설에 무수히 남겨놓은 바로 그 문장이었으니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갈 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는 쪽을 택할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이 좌절됐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꿈에 대해서 한번 더 말할 때, 우는 얼굴로 어둠 속에 서서 뭔가 다른 좋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을 때, 바로 그때 이 우주가 달라진다는 말. "(257p)
나는 여기에 나오는 모든 문장에 '소설' 대신에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넣곤 했다.
사업, 창업, 책, 결혼, 남편, 육아, 아이, 관계, 삶, 죽음, 그러니까 인생 같은 것.
그렇게 김연수의 글들은 나의 인생을 바꿨고, 바꿔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