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방학이 겹치는 시기.

 나의 살림은 개학을 맞아 빡빡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느긋해진 시간만큼 핸드폰과 게임에 가까워지는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함께 시간을 보내보려 1월 초, 구매한 책들을 소개해본다.

 

 

 

 올해 12살, 8살이 된 두 아이들이 퍼즐북에 호기심을 갖기까지 엄마의 인도가 필요했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풀면서 답을 찾아가자 무척 즐거워했다. 금방 다른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보려하고 책 내용을 복사해서 누가 먼저 해결하나 시합을 하기도 했다. 책이 온 첫 날, 엄마는 아이들과 오후 4시에 책을 보기 시작해 이 책의 피크로스, 브릿지, 특별문제 등을 새벽 1시까지 풀게 되었다는 사실! 날 말리지마~~~ 머리가 하얗게 어질어질 멀미가 날 지경에 이르자 아들은 뇌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신나했다. 그 후에도 몇 페이지를 복사해 거실 책상에 두면 아이들이 풀어보고 해결되지 않으면 나에게 물어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좋았다. 8살 딸에겐 좀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피크로스와 미로를 꽤나 좋아했고 아들도 새로 접한 문제에 호기심을 갖고 브릿지 등에 도전했다. 함께 받은 사은품 큐브도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의 영향인지 생각하는 일을 잘 하지 않으려한다. 금방 답을 알 수 없으면 모른다고 하고 고민해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 아들도 그렇다. 수학의 지문 문제를 읽고 단서를 잡아 유추하는 일을 어려워한다.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찾아가는 재미를 아이들이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찾아가기에 좋은 책이었다.

 

 

 

 올해 둘째가 1학년이 된다. ㅁ이나 ㄷ, ㅏ,ㅓ 등 글씨쓰기 순서가 서툴러 글씨 모양이 잘 잡히지 않아 연습을 위해 구매했다. 교과서 내용을 담아 연습 단어들이 전개되며 단어 하나에 따라쓰기를 위한 흐린 글자 칸, 점선이 그려진 스스로 써보는 글자 칸이 있어 가운데 쓰기와 글자 크기 조절 연습을 적절히 하고 있다. 아이는 스스로 학습지 숙제 후 반 장씩 쓰기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순서를 잘 맞게 써야 연습이 되는 건데...... 딸 혼자서 잘하고 있는 거지?^^

 맨 뒷장엔 학년에 맞는 받아쓰기 급수표가 있어 학교에서 있을 받아쓰기 연습도 필요시 참고하여 할 수 있다. 

 

 

 

 

 

  만화 읽기에 주력하고 있는 두 아이들이 글자책에 관심도 갖고 역사도 즐겁게 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처음 구입해 본 역사책이다. 그림과 글자 구성이 시각적이고 재미가 있다. 두 권으로 한국사 전체를 담아 지루하지 않게 중요한 부분만 언급하여 부담이 없다. 그런데 스스로 읽지를 않아서... 결국 엄마가 먼저 읽으면 아이들이 옆에 하나 둘 앉는다. 그러면 슬쩍 책을 넘기고 빠지기 ㅋㅋㅋ 중간 중간 숨은그림찾기와 십자말풀이 등 읽은 내용을 되새겨 볼 부분들이 있어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다.

 

 

 

 

 

 지문 문제를 유독 어려워하는 아들과 연습 겸 풀어보려 준비했다. 기초부터 탄탄히 채워가는 훈련으로 이 문제집을 추천받았다. 문제가 빽빽하지 않아 아이에게 부담이 없고 기본문제도 각 주제별로 자세하게 들어 있었다. 단원을 정리하며 강화문제와 단원평가가 간단히 들어있어 학기 중 시험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단, 아들이 처음엔 열심히 풀더니 점차 관심이 없어진다... 응? ㅡ.ㅡ

 

 

 

 

 

 

 

 

 

  이 방학, 치열해질 나를 위해 준비한 책!

아름다운 문장들이 엄마를 호랑이가 되지 않게 지켜줄거야~~

잠깐 잠깐씩 읽다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평범한 단어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파장들이 좋아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과 같이 읽게 된다.

 

나는 이런 것들 앞에서 목이 멘다.  

 

 

 

 

 

 

 

 

함께 받은 #1월알라딘굿즈 #행잉백인백-로미오와줄리엣 은

캘리용품들을 정리하여 사용하고 있다.

가방 크기에 알맞은 박스를 넣어 공간을 나누고 재료들을 수납했다.

재질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고 벽 등에 걸어 고정할 수 있게 달려 있는 고리는 힘이 없어 잘 빠지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내부 공간과 주머니 등의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좋아 마음을 달래본다. 이제 요 가방 하나랑 종이만 있으면 캘리연습 준비 끝!

 

  

1월도 이렇게 지나간다.

매일매일을 온전히 감사하며.

 

2월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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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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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 즈음 『어두워진다는 것』으로 처음 만난 나희덕 시인은 새 시집이 출간될 때마다 반갑게 구입하는 시인 중 한 분이다. 따뜻한 슬픔. 어지러운 일들 속에 슬픔이 찾아와 아름다운 시가 된다면 그건 괜찮은 일 아닐까 생각하게 해준, 습작이 잘되지 않을 때면 펼쳐보고 위로받았던 시들. 나의 시간 속엔 시인의 시가 혈액처럼 흐르고 있다. 신작 시집 출간 소식을 듣고 시인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찾아 펼쳤다. 나의 시선은 자주 머뭇거렸고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무엇을 찾고 싶었는지 알 수 없어 표지를 쓸어보았다. 다정한 마음이 일었다. 잊고 있었던, 시인의 시를 읽던 언젠가의 마음이 잠시 나를 찾아왔다.

오랫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문단내성폭력 이후부터였다. 시를 쓰고 싶었던 마음도 잃어버렸다. 시집을 사는 일은 동경하는 시인의 문장을 탐하는 일이었다. 다 읽지 못해도 손에 쥐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던, 그런 시절 밖으로 나는 한순간에 던져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와 같은 꿈을 꾸던 어린 친구들이 꿈으로 인해 많은 것을 참고 잃어버려야 했던 일은, 자신을 동경하는 습작생들을 시인이란 이름으로 유린해온 일은 지금도 여전히 시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막아선다.

 

『파일명 서정시』는 나희덕 시인의 시집 제목이라기엔 너무나 낯설었다. 시들도 내가 기억하는 시인의 시들과 많이 달랐다. 무엇이 시인을 시인의 문장을 밖으로 몰아냈을까. 나를 분노하고 자포자기하게 만든 시간을 시인도 어느 길 위에서 걷고 있었겠지. 증언과 증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불안과 분노, 재난과 난파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시인은 더 이상 개인의 슬픔에 몰두할 문장을 가질 수 없는 듯 보였다.

 

 

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 시인의 말 中

 

 

 

  그날은 돌이 지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작은 아이와 함께 있었다. 아이가 넘어질까 좁은 방엔 온통 이불이 깔려 있었고 곳곳엔 장난감이 어지러웠다. 그 위로 따뜻하고 노란 봄볕이 잠시 어른거렸던가. 잠이 와 칭얼거리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큰 배가, 순식간에, 뒤집어져,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 배 안에 있는데, 무언가가 나타나 배를 끌어올려 주면 안 되나, 어서 어떤 조치든 취해지기를, 구조자를 만나기를 내내 바라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도 침몰해가는 배를 어찌하지 않았다. 뉴스는 에어포켓 가능성을 운운하며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루를 이틀을 믿고 매달렸던 그 말..., 그 말을 믿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TV를 볼 수 없었다. 생중계되는 사건과 사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모든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

    

우리는 그곳을 세계의 항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 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中

    

   더 이상 받아 적을 수도 토해낼 수도 없는, 목에 걸린 말들 속에서

시인은 어지럽게 분노하는 것 같다.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말. 모래 한줌의 말. 혀끝에서 맴돌다 삼켜지는 말. 귓속에서 웅웅거리다 사라지는 말. 먹먹한 물속의 말. 해초와 물고기들의 말. 앞이 보이지 않는 말. 암초에 부딪히는 순간 산산조각 난 말. 깨진 유리창의 말. 찢긴 커튼의 말. 모음과 자음이 뒤엉켜버린 말. 발음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리는 말. 더듬거리는 혀의 말. 기억을 품은 채 물의 창고에서 썩어가는 말. 고름이 흘러내리는 말. 헬리콥터 소리 같은 말. 켜켜이 잘려나가는 말. 잘린 손과 발이 내지르는 말. 핏기가 가시지 않는 말. 시퍼렇게 멍든 말. 눌린 가슴 위로 내리치는 말. 땅.땅.땅.땅. 망치의 말. 뼛속 깊이 얼음이 박힌 말.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말. 감전된 말. 화상 입은 말. 타다 남은 말. 재의 말. 

  - 「문턱 저편의 말」 中

 

입을 막아선 손아귀에 괴로우면서도 시인은 끊임없이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고 말한다.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고를 수 없는 말들 속에서 시인들은 그저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이란 말을 꺼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먹고살기 바쁜데, 정치인이 그렇지 뭐, 내가 뭐란다고 달라지겠어? 외면하며 지켜온 삶이 그들의 잘못된 행동과 결정에 동조한 일이 되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입술을 내어주고 먹구름 앞에 짧은 고요를 택했다.

  우리가 길을 잃은 시간 위에서 시인이 건져낸 서정시는, 너무나 슬프다.

  거친 언어들 속에서 '아버지, 당신의 틀니가 결국 당신보다 오래 살아남았어요' (「자기만의 틀니에 이르기까지」 中)하는 시인 본래의 서정에 가까스로 닿기까지, 그럼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살아있는 자, 씹고 씹고 또 씹어야 한다 씹어 삼켜야만 한다' 스스로를 재촉한다. 그 채찍질이 나에게도 아프게 묻는다. '당신은 도망치고 있습니까?' (「단식광대에게」 中)

   도망치려는 자신을 부여잡고 시인은 이 시들을 썼을 것이다.

   그런 시인의 모습을 붙잡고, 나도 시집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좋아요'와 '슬퍼요'에 감정을 다치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들에 생각을 조작당하며 '우리는 투명인간처럼 살지만'(「혈거인간」 中) 우리가 어렵게 뱉어낸 '나의 말' 은 살아남아 분명 무언가를 바꾼다. 시인에겐 시가 자신의 가장 센 무기이며 자신을 지키는 방패일 것이다. 거친 언어들을 지나 삼십 년 만의 고백이 든 「시인의 말」 앞에서 나는 시인이 두렵게 한 발 한 발 나아왔을 시간을 짐작해본다. 얼마나 어렵게 뱉어낸 시이며, 일궈낸 시집인지도. 그렇게 먼 둘래를 돌아 나희덕의 '서정'으로, 시인이 찍은 마지막 마침표에서 내가 기억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마음을 포개보는 일로 다 되었다. 이 시집이 품고 있는, 우리가 표류한 시간들이 부디 누군가를 일으키고 보호하며 '차마 사람으로 건널 수 없는 사람의 일들을 건너는' (박준 '추천사'中) 다리가 되길 바라본다. 오늘이 만날 수 있게 한 '우리가 처음 만나는 서정시' 속에서,

 

그러니 부디,

안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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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제주 -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그리워질 제주의 시간들
안솔 지음, 김영권 사진 / 인사이트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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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겁의 시간이 쌓인 대자연 앞에 서면 나의 존재는 늘 한없이 작고 초라해진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런 순간들이 나에겐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거대하게 느껴졌던 고민도 결국 아주 작은 점 하나일 뿐이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도 결국 찰나일 뿐이라고 자연은 말없이 나를 토닥여준다. 

 - 본문 중

 

 

 제주의 풍경을 종이 위에 따뜻하게 담아내는 안솔 작가님(@sol_ahn_)의 그림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아왔었는데 『날마다 제주』 다이어리북 출간소식을 듣고 구매하게 되었다. 기대만큼, 너무나 사랑스러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제본 방식으로 활짝 펼쳐지고, 처음 펼쳤을 때 뽀드득뽀드득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너무 좋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 없었어ㅎ

 

 

 구성은 작가님의 제주 그림과 이야기들,

그리고 열두 달 monthly와 weekly, bucket list, wish list로 되어 있다.

글과 그림을 보다보면 바쁘던 호흡은 느려지고 마음이 다정해진다.

가만히 이곳에 적을 이야기들을 생각하게 된다.

 

 

 

  메모 부분은 예판으로 받은 스케줄러에 있다. 함께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론 따로도 충분히 예쁘다^^ 달력에 숫자가 없어 꼼꼼히 다이어리를 쓰는 편이 아닌 나에겐 여유가 된다. 내 속도로 적어나갈 수 있으니까. 한 해 뿐 아니라 몇 해가 담길지 알 수 없는. 일기장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따뜻한 풍경 그림과 문장들 곁엔 제주의 햇살들이 뭍어난다. 

 당분간은 눈이 호강하는 시간으로 보내겠지만,

 그 곁에 내가 적어갈 새날들이 벌써부터 설렌다.

 

  나에게 준 작은 선물 하나로,

 같은 이름의 계절은 저마다 특별해진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적은 이야기가 남은 이 책은 또 어떤 모습일까.

 

 

 

온세상이 얼어붙던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나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오듯이,

우리의 삶도 그렇게.     

-산방산 유채꽃, 안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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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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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아이의 죽음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그 후의 삶은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지 않는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바라보기 힘들어서 외면하는 진실은 얼마나 많은가
그것에 목매달고 있다가 함께 사그라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거짓과 진실을 가르는 익명된 시선과 권력의 논리.
딸을 잃고 아내를 잃고 홀로 선 벼랑에서 죽을 각오로 진실을 마주하려는 우진에게
딸이 죽은 그날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그러면 잘못된 일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전과 같아질까? 잘못된 길로 가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고 결과가 달라질까
어느 때로 돌아가든 답은 같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지옥이 된 이유는 악마들이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p.377

의문과 공감, 분노와 죄책감을 차례로 밟으며 이 책을 읽었다.
평혼했던 한 가정에 던져진 불씨.
내가 아니어서 다행인 우진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진실을 마주 볼 수 있었을까.
우진과 같은 이에게 두려움 없이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

우진이 찾아낸 진실은 안타깝고 허무했고

언제가 들어 본 이야기인 듯도 했고

만약에, 만약에, 를 자꾸 되뇌이게 했지만,
호기심으로 펼쳤고 빠르게 읽혀졌던 이 책이
여전히 마음속에 펼쳐져 있는 이유는,
어딘가에서 억울함 속에 스스로를 가두려는 이가 있을 것이고
타인의 감정과 면죄를 위해 한순간 사라지는 목숨이 있을 것이고
진실은 돈과 권력의 힘으로 만들어지며
나는 변함이 없이 두려움을 입막음한 채 진실과 거짓 사이를 곡예하며 살고 있기에. 
 
끊임없이 죄인임을 시인하며 살아야하는 삶,
책으로 그것을 마주 본 일이
가장 공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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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는 것 같다 시요일
신용목.안희연 지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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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8일, 나는 카네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연휴를 휘몰아치듯 보내고 직장으로 학교로 식구들이 사라져 혼자 남아 그랬다. 그리는 내내 지난 연휴 속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시부모님께 맛있는 걸 사드린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간 뷔페였다. 식사 후 소화가 안돼 힘들어하셨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친정 아빠는 속이 좋지 않으셔서 맛있는 걸 사드리지 못했다. 나는 연신 바깥 음식들을 말하며 사 오겠다 했지만 엄마는 있는 거 먹자고 말을 접었다. 뭐라도 사드리고 와야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사드리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내 맘 편하려고 내 기준의 '맛있는 음식'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는지. 꽃과 식사와 용돈. 어버이날이 가까워오면 내가 해야 할 몫처럼 여겨지는 일들. 그건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연휴가 고단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내내 배가 불렀고 몸무게는 늘어있었다. 
 카네이션을 그리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있을 때, 책이 왔다. 두 손에 가붓하게 안기는 책이, 내 아버지의 여린 손바닥이 같았다. 괜찮다 나를 다독이려 찾아온, 손바닥 같았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의 한계를 심어준 사람.

이 가능과 불가능을 집약할 수 있는 대명사는 아버지밖에 없다. -p.14

 아버지를 부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어서 성인이 되어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제 떠나려는데 교통사고가 났다. 11년 전 퇴근길에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119 구급대원으로부터 다급하게 확인받았다. 아버지가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계시던 일주일 나에겐 아버지의 빚과 카드값 고지서들이 찾아들었다. 세상은 얼마나 냉정하고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신랄하게 배워갔다.  
 정신이 돌아오고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붕대로 감고 누워있는 아빠에게 나는 물었다.
 "왜 이렇게 밖에 못 살았어요?"
 당신은 말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무책임한 말이라고 속으로 당신을 원망했다. 당신의 삶을 비난하는 친척들의 말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감사도 존경도 없는 것처럼, 당신을 나의 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까
따뜻한 걸 먹을까
대학병원 회전문을 나선다

당신은 재가 떨어질 때까지
담배를 피우는 버릇이 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담뱃진이 물든 중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곤 했다

내년에 꽃 보러 오자
길바닥에 떨어진 버찌 열매를 밟으며
국수를 먹으러 간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앞서 가는 뒷목이 붉다

-신미나, 「서울, 273 간선버스」 전문

  아버지에 관한 시와 두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반성문'이 교차되며 나를 울고 웃게 했다.

안희연 시인은 너무나 어린 '아홉 살의 어느 날' '그저 내 앞에 놓인 김밥이 따뜻하고 맛있어서, 이모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한 접시를 전부 비'우며 아버지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여행 가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의 나이가 되어서야 철모르던 그때의 행동까지 주섬주섬 슬퍼지고 마는 그 마음이 내게도 머문 적이 있었다. 흐린 기억은 문득문득 화살처럼 날아와 날카롭게 꽂혔다.   
 영원한 기싸움을 하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일까. 아버지의 뜻대로 꺾이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가까워지지 못했으면서도,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의 사진을 붙잡고 오래도록 놓지 못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신용목 시인이 의외로 느껴지기도 했고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인의 글 「어데서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에는 좀처럼 휘어지지 않는 시인의 고집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버지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 때문이었다!^^  내가 모자라 만든 아픈 자리를 이런 추억들이 덮고 있어 우리는 견디어 또다른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날계란을 쥐듯
아버지는 내 손을 쥔다
드문 일이다

두어 마디가 없는
흰 장갑 속의 손가락
쓰다 만 초 같은 손가락

생의 손마디가 이렇게
뭉툭하게 만져진다

-신미나, 「신부 입장」 전문

  11년이 지나고, 당신은 점점 약해져 내가 두세 걸음이면 도달하는 주방 식탁에 워커를 밀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위태롭게 도착한다. 고단한 일을 하던 손의 시간은 지워지고, 운동으로 다져졌던 몸의 근육도 모두 빠져 앙상해진 당신에게 일상은 작은방 침대에서부터 그 식탁,까지 뿐이다. 그런 아빠가 아이처럼 형님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고로 병원에서 만난 후 뵌 적이 없었다. 아빠 생신에 청양에서 올라오신 이모부는 십 년 만에 본 아빠에게 '이렇게 보니 자네는 잘못 살아온 것 같지 않다고, 자네에게 잘못 살았다고 하는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오래 나를 뭉클하게 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서. 아빠는 안타까운 시절에 태어나 가난한 한 집안의 장남으로, 우리의 아버지로 열심히 살아오셨음을.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이제서야 그 고단했던 삶을 이해한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증명사진 한장을 가지고 다닌다. 누가 봐도 인물 좋다고 할 만한 사진이지만, 증명사진이 으레 그렇듯 사진 속 아버지는 웃지 않는다. 모두 잠든 새벽이나 늦은 밤, 일기를 써내려가는 아버지의 얼굴이 사진 속 표정처럼 꼭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많은 이야기들을 그 사진은 꼭 다문 입술로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진 속의 얼굴은 순간의 진실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나는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아버지의 증명사진 속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한장 한장 넘긴다. 평생을 따라 읽어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말이다.
-p.52,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중에서

 

  늦은 새벽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가고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며 당신은 훌쩍 늙어갔다. 그 안타까움으로 후회로 두려움으로 온몸 아프게 당신을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당신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빠를 마음껏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시인들의 시로 이야기로 숨어들어 아빠를 생각하다 보니 오래전 나 어릴 때 약수터 가는 길에 당신과 달리기를 했던 것도 생각나고, 냇가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로 어느 여름 날 갑자기 비가 퍼부어 냇가에서 높은 지대로 나를 업어 올리던 당신의 단단한 등도 생각이 났다. 당신을 믿고 나는 자랐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었다. 나의 첫 문장일 당신. 시집 속에서 나는 웃으며 마음껏 당신을 생각했다. 떠나와서야 더욱 간절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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