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현의 산문집 『환승 인간』 은 여행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환승’이란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소와 공간을 이동하는 뻔한 여행을 기대한 건 아니다. 경험하는 인간, 다른 나로 이동할 수 있는 삶 같은 그런 의미의 환승이었다. 갈아탈 수 있는 삶은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수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갈아타야만 하는 삶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 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정현의 소설은 단편 한두 개 정도가 전부였다.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하지 않았다. 적어도 『환승 인간』이란 산문집을 읽기 전에는 말이다. 그가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소설 속에 자기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그러니까 점점 더 나는 그가 쓴 소설이 궁금해지는 거다. 그는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일까. 이 산문집은 한정현이라는 인간의 삶의 이동경로인 셈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고 공부하는지, 그 모든 걸 그는 ‘환승’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자신을 설명하고 소설에 대해 말하는 방법, 하나의 관심사에서 다른 관심사로 이동하고 확장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가 볼 수 있는 앞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뒷면이 궁금해 파고드는 사람. 그래서 하나가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한 줄의 기사에 숨겨진 이면을 보는 사람, 국가나 사회의 폭력으로 아픈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 결국 그것을 소설로 써야만 하는 사람.


산문집을 읽으면서 좋아서 좋구나 하면서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하지 말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알려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가 아닌 프롤로그 더하기의 이런 부분이 그랬다. 우리는 우리가 환승하고자 원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 속 일원으로 혼자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다른 삶의 환승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한정현은 바깥의 삶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마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손쉽게 쓰지만 사실 요즘은 그런 것마저 만들어내야만 견딜 수 있는 삶도 많다고 느낀다. 그런 삶의 환승의 수가 빈번하게 높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무수한 환승을 경험하면서도 순간 나 자신의 바깥에 놓은 삶에는 또 한 번 무감했던 것 같다. (「프롤로그 더하기」, 18~19쪽)


그러다 또 이런 구절에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사랑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라는 말. 가만 생각하고 돌이켜보니 사랑의 시작은 과연 그러하다.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한 되는 것, 그건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가 남는 것. 헤어짐의 슬픔이든 실연의 아픔이든 감당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69쪽)


감당하기 어려운 일,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삶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이름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 이름으로 환승하여 다른 이름 뒤에 숨어 버리는 일은 재미있다. 소위 부캐라고 할까. 여려 명의 나로 존재하여,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면 비대한 하나로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다운 발상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우리로 환승하면 조금 쉽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작가의 산문집은 작가의 생각과 관심사, 가족, 친구에 대한 개인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무척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별로 일 것이다. 나는 경계에 있다고 해두겠다. 한정현 작가가 뉴질랜드에 갔다가 그곳에서 더 공부하게 되고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의 우정이 그를 살리고 위로가 되었다는 건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너는 한국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외국인 친구의 질문. 그것은 그의 소설과도 연결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 그러니가 이 산문집을 읽고 그의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과 훨씬 더 가까워질 거라는 말이다.


영자원(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본 영화 이야기, 아빠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로 본 히치콕의 영화 <새>로 인해 생긴 조류 공포증부터 다양한 영화 리뷰도 흥미롭다. 그가 소개하는 영화는 제목도 낯선 영화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이다>, <마스터>,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무척 궁금한 영화로 남았다.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 어쩌면 나만 몰랐던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영화를 통해 보고 전하려는 건 약자의 삶, 전쟁의 상흔, 진정한 자유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 다수의 목소리에 가려진 소수의 삶, 잊힌 개인의 이야기.


『환승 인간』에 대한 글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내가 원하던 바일 수도 있다. 나처럼 조금 더 한정현이 궁금해지기를,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해지기를 바라니까. 나는 읽지 않은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더 좋은 나로 환승하는, 더 좋은 쪽으로 나가는 그의 소설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이다. 『마고』, 『줄리아나 도쿄』,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들려줄 한정현이 궁금해졌다. 그의 할아버지 ‘주희’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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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되었고 책을 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책을 사고 책을 쌓아두고 책을 읽는 일 말이다. 8월에는 더위가 책 읽기를 이겨버렸다. 그러니 당연 기록하는 일도 진 것이다. 9월의 셋 째 날이지만 실내 온도는 30도다. 가을이 오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언제쯤 진짜 가을과 마주할까.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지만 뜨거운 커피를 마시지 않고 얼음을 넣은 커피를 마신다.


9월의 첫 책은 세 권이다. 최은미의 장편소설 『마주』, 단편에서 확장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변화했던 삶을 고스란히 마주할 것 같다. 더 멀어지고 소원해지거나 더 가깝고 밀접해진 우리의 관계. 『마주』의 표지는 평온하고 나른한 오후의 연상시킨다. 평화로움, 그러나 소설이 마냥 평화로울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읽은 최은미의 소설에서 평화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 이즘』은 가장 흔하고 쉽다고 생각하는 에세이에 대한 고찰이 아닐까 기대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그것을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진다. 소설이 되거나 산문, 시가 된다. 진정한 에세이란 무엇인가 배울 수 있을 것도 같고. 아직 읽지 않았으니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이꽃님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해도 맞을 것 같다. 이꽃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쁘지 않았고 이 소설도 그렇다. 문득 이꽃님이라는 이름은 필명일까, 본명일까 궁금하다. 필명 쪽으로 기우는데 본명이라면 더 좋을 것 같은 엉뚱한 생각.


9의 책이 아닌 9월의 첫 책인 이유는 주문하고 싶은 책이 또 생겨서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과 아코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 어쩌면 오후에 주문할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 책들은 또 그 책들의 이야기가 있을 터. 9월에는 8월 보다 조금 알차고 촘촘한 책 읽기를 하고 싶다. 독서의 달이라고 하니, 나만의 독서의 달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책과 나른한 오후를 꿈꾸지만 덥다. 선풍기나 에어컨과 함께 가능한 나른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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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9-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꽃님 작가의 연애소설이라니...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자목련 2023-09-05 08:55   좋아요 1 | URL
완벽한 연애소설은 아니지만 풋풋하고 소중한 감성이 담긴 소설이라 말씀드려요^^
 

태풍이 지나고 나면 더위가 한풀 꺾길 거라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낮의 뜨거운 열기는 밤에도 쉬이 식지 않는다. 그래도 밤에 잠들 때 침대를 내려오는 일은 없다. 대신 잠드는 시간이 늦어진다. 이미 다 본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3~4년에 방영된 드라마, 여름에 걸맞은 스릴러 쪽인데 분명 봤는데 줄거리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아 처음 본처럼 집중해서 보느라 새벽까지 시청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넷플릭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다른 채널을 구독하지 않은 걸 나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알림은 받지 않기, 이게 중요하다. 배달 앱도 자꾸 쿠폰을 준다는 알림에 그 쿠폰이 아까워서 자꾸 뭔가 배달시킨 음식을 찾게 된다. 이러려고 앱을 설치한 게 아닌데. 지금도 어느 앱에서 알림이 왔다. 이 기회에 알람 설정 정리를 해야겠다. 알림을 받아야 할 것과 받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하기. 언제나 좋아하는 것들에서 주저한다. 온라인 서점의 알림이다. 알림을 받지 않으니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도 놓치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모두 구매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책이 나왔는지 알아야 그 책에 대해서 살펴보고 내가 읽고 싶은지, 아닌지 판단한다.


알림과 상관없이 그냥 산 책들은 이렇다. 정은 작가의 에세이 『커피와 담배』는 중고로 샀다. 중고 알림을 설정한 덕분에 구매한 것이므로 알림 받기를 유지해야 하는 쪽으로 기운다. 아, 이런. 알림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아, 이런 생각은 멈춰야 한다. M 과의 통화에 생각난 박시하의 시집은 무려 제목이 『8월의 빛』이다. 표제와 같은 제목의 시는 아버지의 기일에 관한 것으로 공교롭게 오늘은 큰언니의 기일이다.





마지막 그냥 산 책은 김화진의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경로』다. 신춘문예 등단작이었던 「나주에 대하여」가 좋았다. 편집자로 소설을 쓰는 작가, 등단 이후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책을 구매한 결정적인 계기는 이 문장 때문이다.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아직 소설을 읽기 전이라 어떤 문장인지 알 수 없다. 편집자, 마케팅 담당자, 누군가 이 문장을 선택했고 그 문장에 나 같은 독자는 소설을 선택했다.


그냥 책을 사고 그냥 살고 있다. 그냥 사는 게 이상한가. 그냥 사는 게 좋다. 요즘은 그런 날들이다. 그냥 사는 날들, 이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도 여름이 지나면 더 이상 더위를 핑계 삼을 수 없으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다. 그냥 산 책을 그냥 읽어야 하고 그냥 사는 날도 이렇게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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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17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지요.저는 넷플릭스 끊고 왓챠를 구독하는데 넷플릭스에 비해 볼 게 별로 없어 시간이 좀 절약되더라고요.
날씨가 너무 더워요.
그래도 자목련님의 책읽기는 끝이 없으시네요~~

자목련 2023-08-18 13:32   좋아요 1 | URL
<더 글로리>때문에 가입했는데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오늘도 고현정 드라마 오픈한다고 알림이 ㅋㅋ
막바지 더위의 날들, 시원하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blanca 2023-08-1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언니의 기일이었군요. 얼마나 그리우실지...그냥 사는 게 좋다,는 말씀이 그냥 좋네요. 저도 요새 스마트폰, 유튜브 중독이라 걱정이에요.

자목련 2023-08-18 13:31   좋아요 0 | URL
작은언니가 있지만, 큰언니라 부를 일이 없다는 게 가끔 슬퍼요. 작은언니에게는 언니가 없다는 것도.
여름은 그래서 좀 복잡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해요. 저는 유튜브 중독은 아니라 다행이네요 ㅎ

독서괭 2023-08-1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산 책이 그냥 좋기를!^^ 자목련님, 언니분 기일이군요.. 8월의 빛 시가 위로가 되셨기를요!

자목련 2023-08-18 13:29   좋아요 1 | URL
그냥 좋은 책, 그냥 좋은 날!
독서괭 님께도 그러하기를 바라요~

그레이스 2023-08-1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사는 것만으로 족한 때가 있죠.
이유 없이 힘든 시간들도 있구요. 근데 다 이유가 있더라구요. 시원한 계절이 와서 밖으로 걸어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자목련 2023-08-18 13:29   좋아요 0 | URL
맞아요,돌아보고 살펴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지요.
곧 시원한 계절이 우리를 감싸고 이 여름이 그립기도 하겠지요^^
 

태풍 ‘카눈’이 오고 있다. 아주 느리게 강력한 힘을 고스란히 지켜내며 오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의 뜨거운 열기가 태풍에게 힘을 더해줄 거라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아직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지 않지만 밤부터는 다를 것이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더위를 사라질까, 그런 기대보다는 이 태풍이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란다.


태풍이 오기 전에 책을 주문했다. 태풍 핑계로 냉큼 주문한 게 맞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아구아 비바』는 서재나 이웃이 올려주는 문장이 좋아서 궁금했다. 실은 표지가 예뻐서, 책 만듦새가 예쁜 이유도 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작품을 읽은 게 없어서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기대한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은 신간 알림을 받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지극히 낮으신』은 13세기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삶을 그려낸 책으로 2008년에 마음산책에서 나온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를 읽은 이라면 새로운 신간이 아니다. 나 같은 독자만이 새로운 신간이 되겠다. 물론 나는 아직 『흰옷을 입은 여인』을 읽지 않았다. 마지막 한 권은 정용준의 산문집 『소설 만세』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블랑카 님이 좋다고 하시니 더욱 기대가 된다. 정용준의 소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책이 아닐까 싶다.






더위에 지쳐서 아주 천천히 책을 읽고 있어서 조만간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태풍이 지나가고 폭염이 누그러지면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 맘대로 살짝 소개하자면 이렇다. 대답의 책처럼 펼쳐서 나온 구절이다. 『아구아 비바』의 이런 구절, 이 소설 대체 뭘까.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조금 겁이 난다. 자유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 자체는 독단적이지 않으며 제멋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거기에 엮여 있지 않다. (『아구아 비바』 중에서)


그녀는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움 이상이다. 그녀는 더없이 부드러운 새벽빛을 띤 생명 자체다. 우리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 그녀의 초상화 한 점도 본 적이 없다. (『지극히 낮으신』 중에서) 크리스티앙 보뱅의 문장이다. 그녀는 누구일까. 가톨릭 신자라면 이 책이 더 아름답게 다가올까.


소설을 쓰기 위해 혹은 잘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싶다면 다른 무엇보다 ‘쓰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음과 욕망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 아니다. 가만히 두면 언젠가는 사라지는 평범한 불꽃이다. (『소설 만세』중에서)


정용준의 조언처럼 쓰고 싶다는 마음을 잘 키우고 싶다. 달아나지 않도록 잘 붙잡고 싶다. 책에 대한 마음도 읽는 마음도 쓰고 기록하는 마음도 달아나지 않도록 말이다. 태풍이 가까이 왔고 곧 실체를 확인하겠지만 우선은 아름다운 하늘이 좋다. 아이스크림 같은 구름이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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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8-09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어제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구름도 예쁘더군요.
이게 실은 폭풍전야겠지만.
아마 태풍 지나고나면 하늘이 높아질 겁니다.

자목련 2023-08-10 08:48   좋아요 2 | URL
파랗고 맑은 하늘이 비로 가득합니다.
말씀처럼 조만간 더 놀라운 하늘과 마주하겠지 싶어요.
태풍 피해 없으시길 바라고요^^

망고 2023-08-0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이 비스듬하게도 아니고 한반도 전체로 바로 직진하는 예상 경로 사진을 살면서 처음 본 거 같아요 제발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근데 사실 저도 어제 하늘 보면서 파란 배경에 하얀 뭉개구름 넘 예쁘다고 생각했어요^^자목련님 태풍에 날아갈라 책 읽고 쓰는 마음 단디 붙잡으셔요😄

자목련 2023-08-10 08:49   좋아요 0 | URL
뉴스를 주목하고 있는데 제가 사는 곳은 아직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지만 무서울 정도는 아니에요.
망고 님도 피해 없으시길, 마당의 꽃들도 넘어지지 않기를~~

coolcat329 2023-08-0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용준의 <소설 만세> 저도 재미나게 읽은 책이에요. ‘소설만세‘라는 제목이 좋아서 샀답니다. 중간에 살짝 웃기기도 하구요. 자목련님처럼 우아한 책들 사셨어요~^^

자목련 2023-08-10 08:50   좋아요 0 | URL
정용준의 소설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쿨캣 님도 즐겁게 만나셨다니 기대 상승!
우아한 자목련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ㅎ

독서괭 2023-08-0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폭염에 힘들었지만 하늘은 참 예뻤지요^^
소설 속 문장들이 좋네요. 보뱅 책 더 읽고 싶은데 이번 신간은 종교얘기라 해서 손이 안 갔네요~

자목련 2023-08-10 08:51   좋아요 1 | URL
낮의 하늘도 노을 가득한 하늘도 정말 예뻐요!
종교는 모르겠고 보뱅의 문장이 좋아서 아무 생각 없이 구매했어요. ㅎ
태풍 피해 없기를 바라며,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3-08-09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풍이 가까이 오고 있어서 오늘은 계속 태풍 소식인데,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불안합니다.
날씨가 계속 폭염이예요.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8-10 08:52   좋아요 2 | URL
얼마나 많은 비기 내릴까 걱정하고 있어요.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 보내세요^^

은오 2023-08-09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젤 중요한거 맞는거같아요. 🤧 제 안의 쓰고싶은 마음은 달아난걸까요....? 어디갔니.....

잠자냥 2023-08-09 22:09   좋아요 2 | URL
저기 누워있네.

은오 2023-08-09 22:11   좋아요 1 | URL
그 주인에 그 마음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09 22:19   좋아요 1 | URL
눕쓰대 하나 사줘요…..

자목련 2023-08-10 08:53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 말씀처럼 달아난 건 아니고 누워 있는 듯.
이제 일어나서 움직이라고 말해주세요, 마음이 냉큼 일어나게!!

책읽는나무 2023-08-0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만세>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읽지도 못한채 그대로 반납했던 책이어서 오늘 갔었던 서점에서 눈에 띄어 사려다 또 포기했던 책입니다. 살 걸 그랬나? 지금 조금 후회가 되네요. 보뱅의 책도 아까 만지다가 다시 제자리에 꽂았었구요...저 책도 살 걸 그랬나? 또 후회를...ㅋㅋ
암튼 태풍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3-08-10 08:55   좋아요 1 | URL
소설 만세를 만날 좋은 때가 아직 오지 않았나 봐요. 책은 달아나지 않으니 언제라도 책나무 님 곁으로 올 수 있지요.
남부 지방은, 태풍과 인접했을 것 같은데, 피해 없기를 바라요.
만복이네 학교도 휴교일까 싶은데...

책읽는나무 2023-08-10 09:02   좋아요 0 | URL
쌍둥이네 둘 다 가정에서 하는 원격수업 중입니다.
늦잠 자다 일어나 부리나케 노트북 켜서 출석체크하고..전 이제 밥 안치고..한숨 돌리는데... 예전에 살던 이웃집 언니들이 그 아파트 앞에 있는 하천에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 산책로랑 농구장 축구장이 다 잠긴 상황을 사진 찍어 올렸더군요.
제가 있는 곳은 사방팔방 도롯가만 보여서 상황이 그런 줄 몰랐던지라...헐!!! 그러고 있네요.ㅜㅜ
빨리 태풍이 지나갔음 싶네요.
 

다양한 SNS 채널이 있다.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가입을 한 다른 채널이 있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편은 아니다. 미디어를 테마로 한 『연결하는 소설』를 읽으면서 블로그를 통해 누구와 연결되고 싶은지 질문을 받은 것 같았다. 처음 블로그를 개설하고 무언가 쓰기 시작했을 때 아무도 모르길 바라면서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랐다. 익명의 존재, 닉네임으로만 알게 된 이들과 소통하였고 그 가운데 몇 명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고 더 이상 익명이 아닌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한 것이다.


나와 그들을 연결한 건 블로그였다. 미디어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확한 미디어 사용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개인이 개설하고 이용하는 미디어도 다르지 않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진정한 대화가 있을 때 미디어는 빛난다는 사실을 『연결하는 소설』를 통해 생각한다.


미디어를 전면에 내세운 오선영의 「후원 명세서」와 김혜지의 「지아튜브」는 우리가 일상에서 미디어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보여준다. 「후원 명세서」 속 ‘윤미’는 과거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어떤 표정,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현재 아동 복지 재단에서 일하면서 과거 자신과 같은 후원 아동이 솔직함에 당황한다. 미디어로 포장했던 자신과 달리 솔직하고 당당한 아이의 모습.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이들을 후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번도 출연하는 이들의 마음을 생각한 적이 없다. 연출된 장면이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 리얼 리티 프로그램도 대본이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적지 않게 실망하며 놀랐다. 보이는 대로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가.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이제 후원 방송을 볼 때 한 꺼풀 벗겨야 하는 막을 생각할까 걱정이다.


김혜지의 「지아튜브」도 다르지 않다. 아빠와 함께 인기 어린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지아는 아빠가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영상을 찍었다.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아빠도 좋아하고 엄마랑 함께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유튜브 채널 작가였던 희진 언니가 지아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올린 지아튜브의 진실에 대한 글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 친구들과 부모님과의 사이도 나빠졌다. 너도 나도 개설하는 유튜브 방송. 나를 표현하는 1인 미디어의 진정한 목적은 소통이 아닌 이익 창출인가 씁쓸할 수밖에 없다.


일상의 대부분이 대면이 아닌 비대면을 가능한 시대, 온라인 쇼핑 훨씬 편리하다 말하지만 정작 장바구니를 볼 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된다. 서이제의 「위시리스트 ♥」란 제목이 말해주듯 검색을 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추천 목록,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은 진짜 내가 궁금한 것일까. 온라인 서재에서 책을 대하는 내 마음도 다르지 않다. 광고가 뜨는 책은 한 번도 클릭하게 된다. 미디어의 장점만 이용할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세대 간의 소통이 어렵다는 걸 앱을 활용하는 태도에서도 확연하게 보여주는 임현석의 「무료나눔 대화법」은 무척 인상적이다. 아내가 미국으로 가면서 집안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나’는 무료나눔에 식탁을 올린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식탁에 대한 문의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모든 건 아내가 알고 있었다. 화자인 ‘나’는 식탁을 무료나눔하면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한다. 오직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나누는 대화에서 상대의 진의를 확인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바라보는 대화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아마 이 단편을 읽고 뜨끔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집에 있으면서 말이 아닌 카톡으로 필요한 것을 전한 적이 있다면 당신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만이 공들이고 신경 쓰던 것, 그것을 들어낸 자리였다. 나는 식탁이 놓여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나는 그 자리가 여전히 식탁의 영역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식탁은 사라졌고 그곳은 아무런 구획도 없는 텅 빈 바닥일 뿐이다. 그 순간 식탁이 놓여 있었던 자리는 유독 더 어두워 보였다. 나는 거기서 식탁의 그들이 차지했던 범위가 얼마만큼이었는지 떠오리며 손으로 바닥을 쓸어 보았다. 먼지 같은 것들과 찬 기운만 손에 들러붙었다. (…) 이젠 그때 흘려들었던 아내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무료나눔 대화법」. 159쪽)


언어와 문자가 사라지는 미래, 마지막 언어를 화자들을 전시하는 ‘소수 언어 박물관’을 배경인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 같다. 우리나라만 봐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있지 않은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우주에 혼자 남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디어로만 소통하는 끝에는 우리도 말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연결되었다고 믿었지만 정작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 살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나누면 훨씬 신날 말. 시끄럽고 쓸데없는 말, 유혹하고, 속이고, 농담하고, 화내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변명하고, 호소하는 그런 말들을…… (「침묵의 미래」, 34쪽)


이처럼 소설을 통해 미디어와 나 사이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제대로 된 미디어 교육을 받았는가 돌아본다. 클릭 한 번으로 언제 어디서든 사회 이슈를 만날 수 있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배운 적이 있나 싶은 거다. 너무도 많은 정보, 쏟아지는 영상들, 올바른 선택과 시청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사고를 그대로 흡수할 수 있으니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올바른 미디어 시청법이라고 하면 좋을 태지원의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를 같이 읽으면 훨씬 유용할 것 같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를 읽으면서 미디어를 제대로 보고 있나 반성하게 된다. 드라마 속 인물의 행동과 말이 유행이 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경험하지 못한 계층의 삶에 대해 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은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재벌가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크고 멋진 저택, 수많은 도우미들. 낙하산처럼 등장하는 재벌의 자제들 모습까지. 반복적인 장면으로 인해 시청자는 그들의 빠른 승진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재벌가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계약직 직원 같은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차별, 불평등에 대해 이 책은 말한다. 총 6장에 나누어 기회의 불평등, 양성평등, 사회적 소수자, 빈부 격차, 인종차별, 외모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은 인식했는지 돌아보게 질문을 던진다.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아이돌을 선택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언급한다.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공평하고 균등한 기회를 준다는 기획의도와 다르게 선정된 이가 있었다는 사실. 대학 입시를 다룬 드라마를 통해서 교육의 평등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양성평등을 생각하면 드라마 속 여성의 직업 변천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문직이 아니나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 살림을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가부장 제도, 남성 중심의 사회 속 조연에 불과했다. 다양한 직업군과 차별받지 않는 여성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방송을 보면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어. 미디어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현실 속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해날 수도 있단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75쪽)


그렇다면 빈부 격차는 어떤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쌍하고 나약하고 게으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고정된 이미지는 인종차별에서도 발견된다. 백인과 흑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같은가? 아니라는 대답이 많을 것이다. 드라마 속 백인은 친절하고 전문적인 직업군인 경우가 많았다. 미디어가 우리에게 보여준 이미지, 백인 중심, 서양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통해 마주한 미디어는 획일된 이미지가 많았다. 그런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청소년들에게 잘 설명해 주는 책이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어. 미디어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현실 속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해날 수도 있단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176쪽)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다양해지는 세상, 우리는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 하나의 기준만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건 무엇일까. 미디어로 만나는 편리함 안에서 진짜 말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잃어버리지 않도록 현명하게 미디어를 활용해야 한다. 쉽게 연결되는 것만큼 쉽게 끊어진다는 걸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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