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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독서정산


  정산할 시에 완독한 책만 '상품 넣기' 기능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 권을 여러 달에 걸쳐 붙잡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책 소개 화면의 마이페이퍼란에 지나치게 자주 노출되는 단점이 있는 탓이다.


①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포트노이의 불평』,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14), 완독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울분』,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11), 완독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굿바이 콜럼버스』,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14), ~322쪽















  10월부터 붙잡았던 '포트노이의 불평'을 다 읽었고, '울분'은 금방 읽었으며, '굿바이 콜럼버스'도 거의 다 봤다. 1회독인데다가 발췌독도 끝나지 않아서 이 책들이 내게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흡입력이 있었는지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언어화되지 않은 다양한 감각이 내면에 가득 남은 건 확실하다. 그만큼 공명한 부분이 많다는 거겠지. 대략 정체성, 남성성, 배제와 정상성, 종교, 도덕, 정서적 혼란, 이질감 등의 키워드와 연결될 수 있는 편린인 것 같다. 사실 이런 키워드들은 필립 로스의 문제의식, 즉 '유대인으로서 미국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와 뗄 수 없는 것들로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서의 유대담론을 이해하지 않으면 풍부하게 다가오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유대담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이렇게 많은 감정을 남긴 걸 보면, 로스가 인기가 많은 이유도 납득이 간다. 굉장히 특수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인 언어로, 보편적으로 다가가게끔 쓴달까? 

  포트노이의 가족을 보며 역기능적이었던 우리 가족을 떠올렸고, 포트노이증을 보며 윤리적, 이타주의적 충동과 다양한 강박으로 고생했던 나를 떠올렸다. 도착적인 증세를 보이는 포트노이의 모습에서 도덕적, 윤리적인 판단을 잠시 중지하고, 그 맥락을 캐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 보면 생각할 거리가 참 많은 책이다. 그게 잘 되지 않는다면 포트노이를 보며, '뭐 이런 또라이 새끼가 다 있어'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울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커스의 가족과 사촌을 보며 우리 가족과 사촌을 떠올렸고, 다양한(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맥락이 얽히고설켜 마커스의 개인적 신념, 판단과 마주했을 때 일어나는 연쇄작용을 보며 지난했던 나의 삶을 떠올렸다. 과거에 했던 아주 사소한 선택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부정적인 결과. 이거만 아니었다면 더 나아질 수 있었을까? (물론 그랬겠지만 별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본다.) '굿바이 콜롬버스'는 아직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명확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만, 닐과 브렌다를 보며, 닐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감정을 보며 내가 다른 세계에 산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어떤 이질감을 떠올렸다.

 아쉬운 걸 한 가지 언급하자면, '재미도 있고 공감도 많이 되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는 이렇다 할 길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충분히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었으니 이 이상 바라는 건 사치인가?

 

④ 안유경 저,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새문사 출판사, 증보판(2021), 38~116쪽

⑤ 프랑수아 줄리앙 저, 유병태 역, 운행과 창조』, 케이시 아카데미 출판사, 초판(2001), ~31쪽


  성리학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차라리 불교나 각종 고전(논어, 맹자 등)을 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성리학을 좀 이해하고 싶은 이유는, 현재로서는 프랑수아 줄리앙을 읽기 위한 게 가장 크다. 안유경 선생의 저 저작이나 진래 선생의 '송명 성리학'이 입문서의 역할을 아주 잘 해주고 있어서, 내 생각엔 이 두 권과 왕부지에 대한 입문서 또는 연구서 한 두 권 정도만 읽어도 '운행과 창조'를 끝까지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운행과 창조'를 통해 이 질문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유가의 의식이 그 고유한 논리 속에서 인본주의의 표본일 수 있었던 조건과 그 근본적 특성은 무엇인가?"(16),  


⑥ 장회익 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추수밭 출판사, 1판(2019), 33~131쪽

⑦ LEX 저, 강현정 역,『수학으로 배우는 양자역학의 법칙』, 지브레인 출판사, 초판(2020), ~97쪽 

⑧ 김영건 저, 『이성의 논리적 공간』, 서강대 출판부, 초판(2014), ~48쪽


  물리학과 관련된 '통합적 앎'에 대한 관심으로 장회익 선생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읽다 보니 이제는 그 '통합적 앎'이라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모든 것의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보려는 신적인 관점을 갖고자 했던 건 아닌지, 이 책에서 말하는 통합적 앎이 과연 정말 통합적 앎인지, 그게 우리의 삶에 말해주는 바가 무엇인지 등등. 떠오르는 의문은 점점 구체적이고 커져가는데 충분히 해명되지 못하니, 전체적인 그림을 다르게 그려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뭐, 여튼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생각들이다. 다만, 장회익 선생의 책을 읽다 보니 되레 샐라스가 이야기하는 '현시적 이미지와 과학적 이미지' 사이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⑨ 이호규 외 저, 『한무숙 문학세계』, 새미 출판사, 초판(2000), ~20쪽

⑩ 한무숙 저, 『한무숙 단편집』, 지만지 출판사, 개정판(2021), ~108쪽


  어렵다. '한무숙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이 초판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가 옛말, 한자가 너무 많다. 작가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그래서 썩 가독성이 좋진 않다. 그래도 천천히 완독하고 싶은 책들. 


한 달을 뒤돌아보며


  네이버 블로그를 삭제하며 알라딘에 올렸던 서평도 모두 삭제했었다. 일기장처럼 쓰던 블로그를 조금 바꿔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저품질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서평을 모두 삭제한 이유는, 3년 전 블로그를 옮기는 과정에서 네이버 블로그와 알라딘에 같은 서평을 비슷한 시기에 올렸던 게 저품질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삭제했던 건데, 얼마 전에 다시 찾아 보니 블로그와 알라딘을 동시에 운영하면서도 방문자 수가 꽤 많은 블로거를 여럿 보았다. 갭만 조금 주면 같이 올려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쓰는 게 중요했지... 다 지워버린 게 좀 후회스럽지만 그냥 전에 썼던 글 다시 읽어보며 천천히 올린다 생각하고, 갭을 어느 정도 두고 다시 올려보려고 한다.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나 해보자.

  글로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도 더 자주 드는 요즘이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그리고 책과 글을 주제로 남과 소통할 때 나는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하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것과, 글로 먹고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한다. 솔직히 내가 글을 쓰고 그것으로 소통하는 방식은 글로 먹고사는 것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글로 먹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얼마 없는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답은 없다. 꾸준히 고민하고, 꾸준히 쓰는 수밖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나아가는 수밖에. 두렵고 무섭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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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재적인 삶에 대하여


1) 인본주의자로서의 삶 : '신 없이 사는 삶'을 '인본주의'로 바꿔봤다.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무신론자'나 '신 없이 사는 삶'같은 단어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바를 더 잘 설명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① 필 주커먼 저, 박윤정 역,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판미동 출판사, 1판(2018), ~262쪽

  10월에 다 읽고 싶었지만 우선순위가 밀리는 바람에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종교 없이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주제는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거나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 생각하기에 '아 미국에서는 이런 게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구나.'하며 읽었던 것 같다. 다만, '무신론자를 위한 공동체가 가능할까?'라는 장에서는 계속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많아 감명 깊게 읽었던 거로 기억한다.

  우선, 나처럼 인본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려는 시도 자체가 드물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내 주변에서만 봐도 종교가 딱히 없는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종교와, 종교인들에게 대체로 무관심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자주 종교 자체에 관심을 가졌고, 내가 왜 초월적인 대상을 믿지 못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렇게 신 없이 사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이는 무종교성 자체를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생각한다는 증거였다.


"무종교인 그룹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종교인이라는 점을 자기인식의 핵심 요소로 생각한다는 점이었다."(217)


"인류학자 프랭크 파스퀘일(Frank Pasquale) 박사 (...) 아주 적은 비율의 무종교인만 무종교성 자체를 정체성의 중심적 혹은 핵심적 요소로 생각하고 이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종교인 그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죠. 제가 말하는 '무종교인'은 거의 종교적 정체성처럼 무종교성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자아의식의 이데올로기적 핵심으로 여길 정도로 무종교주의(secularism)나 무종교성(secularity)에 계속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비율이 아주 낮습니다."(216,217)


   무언가 반대만 하는 게 아니라 생산적인 뭔가를 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책의 저자는 한 인터뷰이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컨대 무언가 반대만 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 그룹에는 있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부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일을 위해, 우리만의 일을 위해 존재하고, 좋은 일을 할 기회들을 찾고 싶었어요."(204)


  이 인터뷰이는 좋은 일을 하는 인본주의자들 모임을 만들어 공동체를 위해 이런저런 좋은 활동을 했다. 내 삶에 빠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지난한 싸움보다 이런 생산적인 고민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나는 어떻게 나의 무종교적 정체성을 가지고 남들과 함께 살 것인가?

  그리고 이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하버드 대학교 인본주의자 교목인 그레그 엡스타인. 얼마 전 8월에는 하버드 대학교 교목실장이 됐다. 그레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종교적인 믿음은 전혀 없지만 대단히 종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종교적인 성격이란 다른 게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들과 연결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레그가 종교와 관련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딱 한 가지, 초월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었다." 책에 나오는 그레그에 대한 설명은 내 고민, 문제의식과 흡사하다. 나도 늘 저런 고민과 함께 살았고, 종교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딱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믿음. 이렇게 유사한 생각을 지닌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많은 위안이 됐다. 감동적이었다.




























  ② 호메로스 저, 천병희 역, 『일리아스』, 숲 출판사, 2판(2015), 완독

  10월에 꽤 노고를 쏟은 책이다. 읽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썼다. 생경한 고유명사가 많고 따분한 설명이나 묘사가 잦아 초반 가동성이 안 좋았다. 애를 먹었다. 그래도 독서모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읽었기에 꾸역꾸역 완독할 수 있었다. 10월의 크나큰 성취 중 하나다. 뿌듯하다.

  『일리아스』는 두 가지 뚜렷한 목표를 지닌 채로 펼쳤다. 하나는,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자명함을 깨닫게 할(자각 또는 깨달음을 가져다줄), 어떤 이질성을 맛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겠다. 『말과 사물』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르헤스가 인용한 어떤 중국 백과사전을 푸코가 접했을 때의 충격을 바랐던 것이라고. 사유가 불가능했던 지점까지 가는 것은 차치하고, 약 3,000년 전의 이질적인 생각이 담긴 이야기를 읽고 내가 뭘 놓치고 살고 있는지 숙고해보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유럽인을 만들어 낸 희랍적 사유의 원형을 맛보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동서양 사유의 환경을 노니는 일을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었고 그들의 맥락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해보고 싶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테레자가 기르던 카레닌이 안나 카레니나의 남편 이름이라는 걸 알 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더 풍부하게 다가오듯, 『오뒷세우스』를 읽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보면 『오뒷세우스를』 모른 채로 『율리시스』를 읽을 때와 울림이 다를 것이다. 동서양 사유의 환경을 노니는 일은 프랑수아 줄리앙이 『운행과 창조』에서 했던 작업이었다.

   많은 걸 느꼈다. 필멸의 인간,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 영웅주의, 분노와 감정의 효과, 책을 읽고 보니 더 관심이 생기는 헥토르라는 인물 등. 이렇게 많은 키워드의 관계가 만들어낸 많은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핵심은 역시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


  ③ 강대진 저,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그린비 출판사, 전자책(2010), 완독

  『일리아스』를 읽으며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전을 읽을 때 이런 강독본이 있으면 자주 애용하는 편인데, 해당 고전의 맥락과 구조 및 독서 포인트를 잘 잡아주는 덕이다. 강독본을 읽음으로써 겪게 되는 어려움 - 강독본에 제시된 해설을 읽은 후 가지게 되는 생각의 한계 - 는 내게 큰 골칫거리는 아닌 것 같다. 개똥철학이 아닌 책의 적절한 맥락에 기반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기에 훨씬 더 좋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떤 확정적인 해설을 제시하기보다 『일리아스』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 해석의 가능성을 두루 짚어줌으로써 『일리아스』를 풍부하게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④ 강유원 저, 『인문고전 강의』, 라티오 출판사, 1판(2010), 일리아스 강독 부분만 완독

  각종 고전을 읽을 때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해주는 강유원 선생의 강의 시리즈다. 『일리아스』에 대한 훌륭한 책들이 여럿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아니지만, 신선한 해석이나 고전을 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좋았다. 강유원은 책을 읽으며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이 텍스트는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그 텍스트가 만들어진 세계는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상적인 세계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등장하는가? 훌륭하다고 남에게 칭송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그런 칭송은 그가 가진 어떤 속성 때문인가?"


  ⑤ 장영란 저, 『그리스 신화』, 살림 출판사, 1판(2005), ~110쪽

  그리스 신화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 『일리아스』를 읽으며 가졌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붙잡았다. 예를 들자면, 신들의 이름 앞에 붙는 이상한 수식어는 뭘 뜻하는 건지, 신들은 왜 이렇게 묘사되어있는 건지, 신들과 운명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등. 하지만 좀 늦게 붙잡는 바람에 완독은 못 했다. 『일리아스』를 재독하거나 정리하게 된다면 꼭 완독해볼 만한 책이다.


  ⑥ 조대호 저, 『일리아스, 호메로스의 상상 세계』, 그린비 출판사, 1판(2021), 완독

  『일리아스』를 읽다가 알게 된, 10월 최대의 수확 중의 하나. 『일리아스』에 대한 아주 좋은 해설서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조대호 교수가 썼다. 호메로스와『일리아스』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 - 예를 들자면, 호메로스는 누구인가? 『일리아스』는 언제, 어떻게 쓰인 건가?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트로이 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 등 - 부터 시작해 『일리아스』의 구조, 영웅들과 여인들의 관계, 올륌포스의 신들, 희랍인들이 생각한 죽음, 호메로스 서사시의 영향 등을 소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관계다. 저자는 플라톤의 철학을, '호메로스에 대한 긴 반론'으로 읽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⑦ 달라이 라마, 하워드 C 커틀러 저, 류시화 역,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김영사 출판사, 판본 미확인, ~46쪽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또는 어떤 종교를 믿든 우리 모두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행복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 달라이라마.

  삶이 팍팍해지고 부정적인 정서가 일상을 감쌀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천천히 정리 중이다. 세속적인 삶을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별개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2) 과학에서 사는 법을 배우기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중점적으로 읽어나가면서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인간이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이며, 인간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에 대한 답을 과학에 기초에 탐구해보고 싶다, 고 저번 달에 말했던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많아지고 있다. 많은 의문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① 장회익 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추수밭 출판사, 1판(2019), 12~33쪽

  ② 장회익 저, 『과학과 메타과학』, 현암사 출판사, 1판(2012),281~309쪽

  ③ 장회익 저, 『삶과 온생명』, 현암사 출판사, 1판(2014), 17~47쪽

  ④ 진래 저, 『송명 성리학』, 예문서원 출판사, 1판(1997), ~62쪽 

  ⑤ 안유경 저,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새문사 출판사, 증보판(2021), ~38쪽


  이번 달에는 장회익 선생의 책을 읽으며 박이문 선생을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10월에 읽은 장회익 선생의 텍스트에서 아쉬웠던 점은 자꾸만 이전 동양사상에서 근대의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 그리고 동양사상과 현대물리학 간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서양의 문명과 본격적으로 섞이기 이전의 우리가 살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아주 다른 세계여서, 나는 적어도 그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차이를 끊임없이 자각하지 않는 한, 그런 시도가 거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해방 후의 한국 지식인들이 마주했던 절실한 문제의식과 연관된 것인 만큼 이런 시도의 맥락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뭐, 아직은 읽어나가야 할 책의 분량이 많이 남은 만큼 천천히 생각을 더 구체화해볼 생각이다.

  아, 성리학 관련 서적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읽기의 보조 텍스트로 사용하느라 같이 읽어서 여기에 묶어뒀다.


  ⑥ 유상균 저, 『시민의 물리학』, 플루토 출판사, 초판(2018), 완독

  재미나게 읽었다. 수식을 최소화하면서도 꼭 필요한 수식의 경우 수식에 내포된 의미를 언어로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예를 들자면, 로렌츠 변환과 갈릴레이 변환을 비교했을 때, 위치 X바에 대한 식은 분모가 다르다. 로렌츠 변환에서는 1-(v/c)^2의 제곱근이 분모에 위치하는데, 여기에서 빛의 속도(c)를 무한대로 놓으면 위치에 대한 로렌츠 변환식과 갈릴레이의 변환식이 같아진다. 그렇다는 건 갈릴레이의 변환식은 빛의 속력을 무한하다고 가정했을 때 나오는 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용이 마냥 쉽지는 않은 만큼 한 번 읽고 끝낼 만한 책은 아닌 듯하다. 여러 번 읽다 보면 물리학 사에서의 굵직굵직한 맥락과 개념은 교양의 수준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2. 실용서에 대하여


1) 의사소통 : 읽고, 쓰고, 말하는 법과 관련한 책을 못 읽었다.

2) 자기개발 : 자기개발 서적도 마찬가지다.


3) 생산성


  ① 나가타 히데토모 저, 이지현 역, 『100일을 디자인하라』, 유엑스 리뷰 출판사, 1판(2021), 완독

  목표 설정 및 달성에 관한 좋은 도구들이 많았지만 한 번 읽고 체화가 잘 되진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정리한 후 여러번 곱씹어봐야 할 책이니까. 그리고 저자가 제공한 각종 도구를 내 삶에 맞게, 나의 방식에 맞게 변형해야 하는데 이건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방법론과는 별개로 기억에 남는 건, 내가 목표달성 후 얻게 될 어떤 목적에 대한 이미지화를 잘 안한다는 점이었다. 중요한건데. 그러다 보니 정작 목표 달성후에도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다다르게 된 어떤 목적을 충분히 음미하지 않는다. 이건 문제다. 목표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성취를 위한 성취를 하면 쉽게 공허해진다. 내가 자주 공허해하는 이유가 있다.



4) 건강 : 척추 건강, 치아 건강, 피부 관리법 등 생각해 보면 읽어보고 싶은 건강관련 서적이 많다. 10월엔 읽지 못 했다.


3. 경제서에 대하여


1) 투자


  ① 모니시 파브라이 저, 김인정 역,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레미디어 출판사, 1판(2018), ~5장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읽던 책인데 어느 순간 놓아버려 잘 기억나지 않는다. 틀에 박힌 조언이야 다시 읽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 예를 들자면, 항상 안전 마진을 추구하라, 라는 조언같은 거 - 역시나 중요한 건 이 추상적인 격언을 구체화하는 거고 체화해서 직접 해보는 일이다. 이게 참 어렵다.








4. 문학에 대하여


1) 소설 : 역시 소설을 자주 읽어줘야 내가 사는 일상이 구체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① 정세랑 저, 『시선으로부터』,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20), 완독

  쓸 글이 있어 다시 읽었다. 제사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할 말은 많지만 시간상 여기까지.


  ②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 『포트노이의 불평』,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14), ~202쪽

  필립 로스의 책은 남성성을 주제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에 좋은 것 같다. 할 말은 많지만 시간상 여기까지.


  ③ 문학동네 출판사,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판(2021), 전하영 소설만 완독

  재밌게 읽었다. 이것도 할 말은 많지만 시간상...

  

3. 기타


4. 한 달을 뒤돌아보며


 이번 달도 아쉬운 게 이래저래 많다. 순간 어떤 강박에 휩싸이면 쓸 데 없이 책을 너무 많이 펼쳐놓고 이것저것 보는 버릇이 그랬고, 월간 정산을 11월 초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해서 이렇게 급하게 마무리하게 된 것도 그랬다. 특히, 월간독서정산은 월 마무리 일주일 전부터 정리하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게 막 끼적이는 용도긴 해도 한번 끼적이기 시작하면 시간이 꽤나 걸리는 작업이다. 


 <1> 월간 독서정산은 월 말 일주일 부터 준비한다 : 읽은 책 목록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한 달 동안 어떤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정리의 기본적인 틀은 전 달의 것을 참조해서 조금씩 고쳐나가면 될 것 같다. 내용적인 측면은 일기를 쓰듯 편하게 편하게. 정돈된 글을 쓰는 자리는 아니니까.

 <2> 욕심, 버리기, 선택 : 욕심이 많아 버리질 못하고 선택을 못한다. 책을 무작정 붙잡지 말고 생각을 하고 읽자. 내가 지금 이걸 왜 읽으려고 하나? 완독할 자신 있나? 붙잡은 이상, 관련된 다른 서적을 2권 이상 더 볼 자신이 있나?

 <3>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기 : 서평, 독후감을 잘 쓰고 싶지만 서평과 독후감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낮은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서평과 독후감을 떠올리기 전에, 기존에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는 서평과 독후감에 대한 장르적 특성을 습득하자. 변형은 장르에 대한 빠삭한 이해가 있은 후에 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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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독서정산에 이어 월간독서정산을 해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 어떤 책을 붙잡았고 읽었고 읽는 중인지, 그 책은 왜 붙잡았는지, 그 책은 어떤 책인지 등에 관한 잡설을 끼적일 생각이다. 내가 이걸 왜 하려고 했는지 생각해봤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가 떠올랐다.


  <1>. 무작정 읽은 뒤 뒤돌아보지 않은 것보다 돌아보고 곱씹는 게 중요함. 그래야 머리에 더 잘 남음. 더 잘 써먹을 수도 있고.

  <2>. 한 달을 돌아보며 지난 독서생활을 반성할 수 있음. 너무 적게 읽은 것 같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 읽다가 도중에 관둔 책이 많다 등. 이런 피드백은 독서생활을 더 알차고 풍부하게 만듦.

  <3>. 순전히 기록을 위해. 뭔가 남기고 싶은 욕망.

  <4>. 한 분야의 책만 읽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독서 흐름이랄까 독서 계획을 유지하는 생활을 지속하고자.

  <5>. 연말의 독서정산을 조금 더 쉽게 하고자.


  앞으로 이 초심을 꾸준히 기억 및 구체화하며 월마다 독서정산을 해서 올려보고 싶다. 일단, 9월에 붙잡았다 놓았거나, 읽었거나, 읽고 있는 중인 책들은 다음과 같다.


1. 내재적인 삶에 관하여


(1) 신 없이 사는 삶 : 무신론자를 주제로 한 책 3권을 연달아 보는 중이다. 세속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조금 더 분명히 하기 위한 독서다.


  첫 번째는 알랭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다. 거의 7~8년 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인데 읽고 보니 보통과 내 문제의식 중 유사한 부분이 많아 놀랐다.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우리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전제이다. 또한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분명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보통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종교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것은 필요에 의한 것이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결핍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종교를 사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을 별로 좋지 않게 보고 있지만, 종교 그 자체는 그렇지 않다. 종교에는 흥미로운 개념과 사유, 도구로 가득하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세속적인 방식으로 전유할 수 있을까. 보통은 '공동체, 친절, 교육, 자애, 비관주의, 관점, 미술, 건축, 제도'의 측면에서 종교에서 건져낼 만한 도구를 언급한다.


  두 번째는 로널드 애론슨의 『신 없이 사는 법』이다. 8년도 더 전에 산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가독성이 좋진 않아 독서에 애를 좀 먹었다. 

  이 책은 무신론자, 또는 신 없이 산다는 게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를 서술한 저서다. 종교적인 국가 미국에서, 미국인이 쓴 책이라 그런지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놓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또한, 세속주의자로서의 삶이 특이한 것으로 취급받는 분위기도 인상 깊었는데, 나로서는 이런 삶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탓이다. 애초에 동아시아, 그리고 조선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시선에서 봤을 때 아주 세속적인 나라가 아니었던가.

  감사를 인간의 의존성과 연결 지어 해석하고, 책임을 강조하고, 앎의 선택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이야기한다. "삶의 중요한 질문에 효율적으로 답해 주는 일관되고 세속적인 대중철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쓰인 책인데 역시나 이 문제의식에 무척 공감한다.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세속적 도구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필 주커먼의 『종교없는 삶』이다. 주커먼은 무종교성을 연구하는 학제 간 학과를 개설한 사회학자다. 이건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이것도 역시 미국적 분위기에 쓰여서 그런지 이런 걸 또 해명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게 많다. 예를 들자면,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지, 종교에서 멀어지면 좋은 사회에서도 멀어지는지와 같은 질문.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애초에 세속적이면서도 꽤 괜찮은 공동체를 꾸려나갔던 조선이라는 나라도 있었고, 세속적인 경향이 강한 동북아시아를 생각해보면 그냥 경험적으로 굳이 입증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한 질문들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도 생각보다 종교인의 비율이 높은 나라니 이런 질문에 대한 사회학자의 대답도 한 번 들어볼 필요가 있으려나.






(2) 과학에서 사는 법을 배우기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중점적으로 읽어나가면서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인간이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이며, 인간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에 대한 답을 과학에 기초에 탐구해보고 싶다.


  9월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과학과 메타과학』의 서문만 읽었다. 두 책의 문제의식은 결국 현재 지나치게 전문화되고 분화된 자연과학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윤리적인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함께 탐구하고자 했던 자연철학으로 돌아가 통합적, 심층적 앎을 추구해보자는 게 요지다. 아무래도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읽어나가기 위해 다른 많은 텍스트를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 이미 읽고 있는 게 두 책, 나가노 히로유키의 『다시 미분 적분』과 『물리가 쉬워지는 미적분』이다. 전부터 계속 조금씩 붙잡다 놓아버리는 책인데, 이번 기회에 최소 5회독은 해보고 싶다. 안 그래도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우지 못한 탓에 위에 장회익 교수의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많다. 지금부터라도 미리 해놓지 않으면 책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물리학을 쉽게 풀어낸 책도 읽을 필요가 있어서 먼저 고른 저서가 유상균의 『시민의 물리학』이다. 장회익 선생님이 설립한 대안학교에서 활동했고, 그와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는 것 같은 분이다. 아직 고전 역학 부분을 보고 있는데 수식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도 그 수식에 함축된 직관, 의미, 맥락을 명료하고 쉽게 사용하고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는 중이다. 









2. 실용서에 대하여


(1) 의사소통 : 의사소통 부분, 즉,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것은 꾸준히 공부하고 실천하며 닦아나가고 싶은 분야다. 9월에는 세 권의 책을 붙잡았다.


  첫 번째는 『손광성의 수필 쓰기』다. 1/3 쯤 읽다가 다른 게 급해 그만두고 지금은 못 읽고 있다. 일상글, 일기를 좀 잘 써보고 싶어서 붙잡은 책인데 꽤 괜찮다. 글쓰기 책 등 방법론에 관한 책은 디테일이 생명이지만 대개 그 디테일을 살린 작품이 많지 않다. 당위만 많다. 구체적으로 써라, 중심 주제를 잡아라 등등.. 

  이 책은 『논증의 탄생』정도는 아니지만 디테일이 꽤 살아있어서 좋았다. 내가 일상 글이나 일기를 쓸 때 애를 먹는 부분이 어딘지도 알게 됐고. 글이란 것에서는 같지만 주제나 소재, 그리고 그 주제나 소재에 접근하는 방법에 따라 일관적으로 밀고 나가야 할 심상이 있다. 사랑을 주제로 해도, 그것을 추상적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고, 반대로 감각적인 차원에서 논할 수도 있다. 이것을 심상이라고 하는데, 하나의 글에서 두 심상을 지나치게 섞어놓으면 글이 밋밋해진다. 그래서 초반에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두 번째는 나민애 교수의 『책 읽고 글쓰기』다. 근래에 책을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막연히 많이 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독후에 쓰는 행위에도 분량, 목적, 독자에 따라 형식과 스타일이 달라진다. 어느 정도 장르적 특성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분량, 목적, 독자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고 늘 애매한 글을 썼던 것 같다. 내 글은 독후감인가 서평인가? 독후감같은 서평은 안 되는 건가? 독후감도, 서평도 아닌 것 같은 글은 뭔가? 이런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읽어본 책이 이거였다. 장르의 경계를 뒤트는 것도 기본 장르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법. 일단, 독후감과 서평의 기본기를 닦는 게 중요하다.

나민애 교수는 독후감과 서평을 크게 5가지 특징에 대한 유무로 구분한다. 줄거리 요약, 개인적 감상(주관적 느낌), 자기 경험과의 연결, 특징에 대한 논리적 분석, 책 전체에 대한 총체적 판단이 5가지 범주다. 서평은 개인적 감상을 뺀 4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글이고, 독후감은 논리적 분석과 총체적 판단을 뺀 3가지 특징을 갖춘 글이다. 나는 독후감에서도 책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책에 대한 총체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고 보기에, 독후감과 서평을 가르는 기준으로는 아무래도 주관적 느낌의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책은 김나정의『서평쓰기의 모든 것』. 저자는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문예창작으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친 데다가 일본학과로 석사 재학 중이라고 하는데 학구열이 대단하다. 멋진 분이다.

  이 책도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서평'의 장르적 특성을 습득하고자 샀다. CHAPTER1만 읽고는 다른 일이 급해 잠시 읽기를 그만두긴 했지만, 다음에 다 읽어나갈 예정이다.










(2) 생산성 : 생산성은 내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서 뭔가를 산출해내는 정도를 말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그 산출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간관리 기술, 목표 설정 법, 루틴을 만드는 법 등.


  나가타 히데토모의 『100일을 디자인하라』를 읽는 중이다. 짬 날 때 10~20분씩 잡았더니 절반 정도 넘긴 것 같다. 목표, 계획만 세워두고 늘 실패하는 버릇을 좀 고치고자 읽게 됐다.

 주제는 '목표를 달성하는 법'이다. 저자는 목표를 효율적으로, 잘 달성하기 위해서는 '100일 실행계획'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습관이 형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 66일, 순화 현상이 일어나 뭔가에 질려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 3달, 그래서 100일을 투자하면 뭔가에 덜 질리면서도 습관을 만들어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 나름 디테일하게 '100일 실행계획'을 설명하는데 얻어 갈 알맹이가 많다. 약간의 과장이 있긴 하지만 필요한 부분만 얻어가면 될 듯. 파레토의 법칙에 따라, 목표의 80%를 달성하는 데 쓰이는 시간이 20%가 되게 하라는 사실, 60%는 어중간하고 20%는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시간이 되리라는 사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뭔가를 잘 버리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기억에 남는다. 





(3) 건강 : 식습관, 수면, 영양제, 자세 등 건강한 삶을 위한 습관에는 계속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정선근 교수의 『백년 목』을 읽는 중이다. 드라마, 만화에 한창 빠졌을 때 손목, 목, 허리 뻐근한 것도 모르고 쳐다봤더니 척추위생이 좋지 않다. 팔의 힘 빠짐, 팔 저림이 목디스크 때문인지도 모르고 손목이 안 좋아 그런가 싶어 깁스까지 했었다.

  정말 감탄하며 읽는 중이다. 뭐만 하면 실비있냐, 주사 맞지 않겠냐하며 맞고 나서도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처방에 자연스레 경계하게 된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들의 말과 달리 진짜 도움이 되는 이야기, 처방을 내려주는 책이랄까. 이 책을 보고는 베게, 의자를 비롯해 내 목과 허리 척추 위생에 연관된 모든 걸 바꿨고 신전 운동을 자주 했더니 팔 저림은 금세 사라졌다. 목과 승모근 쪽의 통증은 한 7~8년 달고 살았던 건데, 이제라도 원인을 알고 구체적인 대처를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다. 





3. 기타 
















 『매일 실천하는 마음챙김』은 완독. 나머지 4권은 읽다가 말았다. 『청약의 기술은』 나중에 밥 먹을 때나 이동할 때 틈틈이 읽어서 완독할 거고, 나머지 3권은 언젠가 읽을 날이 오겠지... 특히, 『우리는 실내형 인간』이나 『재난 그 이후』는 평소에 지닌 관심사와 맞닿은 부분이라 언젠간 읽겠지 싶다. 재난의 사회학과 물리적 공간의 배치가 우리를 어떻게 구조화하는가에 대한 관심사.


    








3. 한 달을 뒤돌아보며


  쓸데없이 핸드폰 보는 시간만 줄였어도 책 2~3권은 더 읽었을 것 같은 9월이었다. 핸드폰만 보면 머릿속이 산만해지고 두뇌가 지치는 데도 자꾸만 쳐다보는 내가 싫다. 단번에 끊진 못하겠지만 보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 그렇게 해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데 말이다. 이번 달에 가져가고 싶은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실용서적, 정보전달 서적을 제외한 책들은 한번 붙잡으면 가능한 30분은 보자. 종종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주기가 지나치게 짧아 몰입하기도 전에 끝나버려 뭘 읽었는지 기억 안 날 때가 많다. 최소한 30분-1장 또는 1절 기준으로 읽되 어중간하게 끊지 말자.

  <2> 집에서 책 읽는 시간을 줄이자. 집중해서 책 보려고 독서실 끊어놓고는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잘 가지 않았다. 100시간 권 끊어놓고 30시간만 이용한 상탠데 만료가 눈앞이다. 집에 있으면 딴 거에 눈이 팔려서 낭비되는 시간도 많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3> 글을 쓰기 전엔 늘 생각을 하자. 항상 느끼는 건데 급한 마음에 무작정 쓰기 시작하면, 천천히 생각하며 구상하고 글을 쓰는 것보다 오래 걸리고 글의 퀄리티도 좋지 않다. 이런 일기글이면 크게 상관없지만 조금 더 형식을 갖춘 글은 그러면 안 된다.

  <4> 글을 쓰기 전에 던지면 좋은 질문을 정리해보자. 내가 지금 쓰려는 글이 뭔가? 서평을 쓴다 했을 때, 이 서평을 쓰는 목적이 뭔가? 등 하나의 형식적인 글을 쓰기 위해 던져나가며 단계를 밟아갈 질문을 정리해놓으면 글을 쓸 때 훨씬 편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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