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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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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0년대 초반에 이 책을 사두고(물론 표지는 이 그림이 아니다) 여태 읽었는줄 알았던 작품. 하, 세상에. 그냥 책꽂이에 있기만 했는데 당연히 읽었다고 치부해 둔 책이 이거 말고도 모레쯤 독후감 쓸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도 있다. 헤까닥! 도무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귀찮음을 무릅쓰고 책을 꺼내 들었더니 전혀 들춰본 자국이 없는 거다. 근데 이런 책의 공통점이, 대단히 좋은 평가를 얻는 책들이라는 점. 그리하여 진짜로 읽어보지도 않고 나도 이 훌륭한 책들을 (당연히) 읽어봤겠지, 이딴 식으로 여기고 넘기고 간 거 아닌가 싶다.


 다이 허우잉을 읽고자 하신다면 <시인의 죽음>, <사람아 아, 사람아!> 그리고 <허공의 발자국 소리>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난 결론적으로 3-1-2 순서로 읽은 셈이 됐지만 앞에 적어놓은 순서로 보는 것이 중국 현대사 최고의 격랑일 수 있는 문화혁명과 그로 말미암은 상처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 허우잉의 글은 다분히 연애소설이고 또 그 연애와 사랑이 시대의 어려움을 오랜 세월 거쳐가며 서서히 사랑의 결정이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가 긴 소설을 통해 우리 앞에 내놓는 사랑의 모습은 보석이 된다. 남루하지만 단단한 시대의식을 공감하는 지식인 남녀가 문화혁명과 그 속에서 돋아나는 허위의식, 기회주의의 역류를 힘겹게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공감과 애정을 북돋는 건강한 사랑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결코 상황과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희망과 이상적 사회주의의 내일을 확신하는 그들의 공감대는 이 책에선 인본주의(휴머니즘)이라고 말 할 것이다.

 격심한 문화혁명의 모습을 먼저 그려본다. 작가의 전작(그러나 발간은 이 작품보다 한 해 늦은 <시인의 죽음>)이나 위화의 <형제>의 장면들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야수상태에서 벌어진 인간모독. 전체주의에 절대 반대하는 공산주의에 의하여 벌어진 변태적 전체주의의 와중에서 인민의 적이라고 규정받은 사람은 대다수의 인민들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만 존재하게 되고, 심지어 친척과 가족의 테두리에서도 발 붙일 곳이 없어진다. <사람아....>에서도 마찬가지. 주인공 쑨위에(이후 "쑨")은 소꼽친구이자 남편 자오져우한(이후 "자오")에게 이혼을 당한 채 모진 세월을 오직 혼자의 힘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세월, 젊은 시절에 쑨을 짝사랑했던 허징후(이후 "허")는 문화혁명 초기에 비판을 당해 혹독한 시절 동안 신분증도 없이 만리장성 노동판을 포함해 전국을 누비벼 험한 생활을 거치다가 돌아와 해방조치를 맞는다. 거칠게 말하면 쑨-자오-허 이들을 둘러싸고 20년 만에 다시 복잡해지는 사랑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연애사건을 독자의 가슴에 한없이 호소하는 건 이들이 겪어온 문화혁명과 그 이후 시절을 만나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표변해버리는 인간들의 군상과 달리 혁명 전이나 도중이나, 혁명이 끝나고나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의지를 굳건하게 지키는 인간들의 만남이 오히려 역경을 거쳐가며 승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쑨-자오-허가 만드는 사랑의 트라이앵글의 결론에 관해선 절대 이야기할 수 없는 건 물론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것은, 다이 호우잉, 다른 건 모르겠고 그가 글 속에서 엄정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반듯한 사랑, 그건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건강하다는 것. 게다가 주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만들어내는 (찍어내는?) 소설에서 가끔 보이는 생경한 커플들, 그들이 누리는 사랑에 대하여 단 한 번의 회의도 없고 반성도 없으며 과거를 돌아보며 혹시 있었을 오해의 여부에 관한 심사숙고도 없는 그런 무대뽀 사랑, 그런 무대뽀 식 운동의 고양, 무대뽀를 능가하는 투쟁은 다이 허우잉의 글 속에선 없다.

 참 아쉬운 건, 그가 환갑상還甲床도 받지 못할 정도로 명이 짧았다는 거. 한 십년만 더 살았더라도 중국 현대문학에 그가 뿌린 자양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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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 13
에밀 졸라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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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졸라가 썼으나 이저 정말 졸라가 쓴 거 맞아? 읽어가며 자꾸 이딴 생각 들었다. 첫 장면, 고아소녀 앙젤리크가 거의 맨발로 한 겨울 밤 성당 앞에서 밤을 새우는 묘사는 정말로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 졸라스럽지만 바로 그 다음 수예手藝장인 위베르 부부가 앙젤리크가 입양한 다음부터 서서히 기독교 성녀들의 삶에 자신을, 이거 뭐라그래, 일체화? 몰입? 동일시? 환자? 광신? 세뇌? 하여간 이딴 거 비슷하게 일평생 기독교적 순결을 지키며 산다는 내용, 이거 <제르미날>과 <작품>을 쓴 졸라의 작품 맞아?

 물론 소설가로서의 졸라, 대단한 관찰력과 사물을 보고 그걸 읽는 사람이 절절하게 공감하도록 만드는 필력에 관한 한 누가 있어서 감히 졸라한테 한 번 겨뤄볼까, 도전할 수 있을까마는, 이 책에서 우리가 졸라한테 경도하게 만드는 건 바로 그런 능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이는 졸라의 필력 말고는, 나한테는 없었다.

 아.몰.랑. 혹시 그것 때문에 색다른 졸라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나한테 졸라 구시렁거리는 인간들이 있을 것이고, 또 평소의 내 소신 '다른 것을 인정하라'와 완전히 딴소리한다고 지청구를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돈 내고 산 책 내가 읽으면서 싫으면 싫은 거다. 나머지는? 나.몰.랑.


 이럴 때 오프라인 책방이 좋은 거 많이 느낀다. 책장에 기대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사도 되는 옛날 책방. 근데 그런 책방 가본지 정말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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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1-1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졸라답지 않게 졸라 착한 느낌이었습니다... ㅋㅋ

Falstaff 2017-01-10 14:35   좋아요 0 | URL
몰라도 졸라의 루공-마카르 스무권 가운데 제일 잼없... 잠자냥님 표현대로 하면 착한 졸라 같습니다. ㅋㅋㅋ

blanca 2021-11-2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다 Falstaff님 글 읽고 다시 꺼내고 갑니다. ^^

Falstaff 2021-11-29 08:5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래도 루공-마카르 총서 전작을 읽는다는 마음으로...ㅋㅋㅋ
저도 지금 또 한 권의 루공-마카르 읽고 있습니다. ^^
 
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3
이즈미 교카 지음, 임태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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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책. <고야산 스님>과 <초롱불 노래>. 분량은 서로 비슷하다. 전형적인 일본식 기담.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단편들하고 어깨를 견줄 것들. 굳이 유럽 소설하고 비교하자면 소위 말하는 고딕문학 작가들 <피로 물든 방>의 앤절라 카터가 문득 떠오르는데(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에드가 앨런 포도 생각났다), 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하고 제일 가까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서 일본인의 정서가 유럽인들의 그것보다는 내 심성에 가까운 것이 당연하여 같은 엽기 이야기라도 교카의 글들이 훨씬 더 매혹적이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엽기니 고딕이니 하다가 난데없이 매혹적이었다고? 이렇게 질문하실 수 있을 거다. 왜? 엽기라고 매혹적이면 안 된다는 법 있나? 한 번 읽어보시라. 내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아실 수 있을 터.

 고백하노니 이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거 참 일본 사람들 문장 하나는 진짜 뇌쇄적, 감각적으로 잘 만든다. <고야산 스님>과 <초롱불 노래>를 발표한 시대의 딱 가운데 조선에선 『만세보』를 통해 이인직이 <혈의 누>를 연재하고 있었다. 아 쪽팔려. 이거 참. 이즈미 교카가 1873년 생. 그의 문장은 모르긴 모르지만 19세기에 이미 완성을 하여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쓸 1900년과 1910년엔 아주 제대로 무르익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글은 자연을 이해하는 동양인들의 독특한 시선이 가득하다. 일본 특유의 괴기(좋게 말하면 환상)스러운 일화가 자연의 묘사 속에 용해되어 마치 예술지상 혹은 낭만성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하, 이렇게 쓰고보니 내가 뭘 아는 것처럼 쉽게 얘기하는 거 같아 차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근데 이렇게 문장이 짜르르하니 감각적으로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거 그거 대단한 거고 쉽게 이룰 수 없는 성취같은데 내가 일본 소설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있든지 아니면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문장을 이렇게 만드는 솜씨가 부럽겠지만, 나처럼 평생 독자의 즐거움만 누릴 사람들한텐 이런 류의 것들이 (이를테면 말씀입죠) 마치 진한 탕수육 소스처럼 너무 빨리 질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먹을 거리로도 난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단 맛을 즐겼다면 나처럼 술 좋아하는 인간들 40살 넘게 살기 힘들었을 거다. 독서도 뭐 비슷하지 않겠어?

 그러나 단 음식에 대한 호오, 통음의 즐거움에 관한 호오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듯이 이즈미 교카의 환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매혹적이고 몽환스런 문장에 관한 호오도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아니겠는가. 좋건 싫건 반드시 한 번 직접 읽어보시고 결정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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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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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얘기했던 랄프 엘리슨도 똑같은 제목 Invisible Man 으로 소설을 썼다. 물론 투명인간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다르다. 랄프 엘리슨은 1940년대 미국에서 흑인의 지위와 존재의 의미에 관하여 서술하며 흑인은 인간은 인간이로되 백인에겐 전혀 지위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아무 의미도 없는 투명인간이란 의미로 사용한 반면, 1897년에 발간한 웰즈는 물리학 가운데 광학의 경우 빛의 굴절과 반사로 인한 시각적 인식을 기초로 사람 몸에 화학적 처리를 하여 모든 빛을 그냥 통과시킬 수 있게 세포를 조작, 실제로 모든 빛을 통과하는 투명인간을 만들어낸다. 이는 19세기 초반 21세의 꽃다운 아가씨 메리 셀리가 창작한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궤를 잇는다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터.

 이렇게 얘기하면, 그리고 일찌기 여러가지 만화나 영화를 통해 좀 희화화한 투명인간을 하도 많이 봐서(나만해도 최근에 본 투명인간이 숀 코넬리가 주연을 맡은 <젠틀맨 리그>이고 가장 오래된 것이 소년중앙의 만화를 통해서였다), 이 책을 뭐 그냥 그런 동화나 청소년용이라고 가비얍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천만의 말씀. 아니나 달라 타임지 선정 100대 영문소설이란다. 이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고, 만화나 영화를 통해서 볼 때와 다르게 활자를 읽으면서는 생각해볼 만한 것이 있다. 나하고 다른 거. 그것에 관하여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적으로 간주하는 현상. 거기다가 내가 속한 진영이 절대 다수이면? 그럼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동성애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거의 대부분이 이성애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아주 불쾌한 존재들이고 그들이 저지르는 사랑의 현상은 폭력적이며 더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불결한 것이며 그 존재들과 악수하는 거 하나 가지고도 동성애라는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위험스럽고도 부도덕적인, 잘못 태어난 비인간非人間이 되버리는 거다. 동성애자 말고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우리 사회로 일하러 또는 살러 온 사람들, (개인사 하나 포함시켜도 뭐라 하지 않겠지 뭐) 기업집단에서 소수의 나이 많은 직원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 책 제목처럼 투명인간 취급 받는 직장인 무리, 도시빈민, 유기자녀 기타등등.

 투명인간으로 몸을 바꾸는 의사이자 물리학자 그리핀이 원래부터 성격이 좀 괴팍했지만 그렇다고 병적으로 그런 건 아니고 일반사회적 견지로 받아들여질 수준의 충동성과 남향성(문제적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 두 가지)을 가진 천재이지만 그의 모습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리핀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위협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사람들은 투명인간을 공포스러워하여 집단적 피해망상에 빠질 수밖에 없고 드디어 집단 사냥에 나서게 된다. 처음엔 그리핀의 심성 속에 있던 작은 폭력성도 인간들에 의하여 적대적으로 취급을 받으면서 조금씩 커지다가 원래부터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엄연히 있다는 진리에 입각해서 크레센도 크레센도 몰토 크레센도 폭력의 충동이 지수함수를 그리게 되어 스스로 아무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괴물로 변화하고 만다.

 이러한 투쟁과 절망과 파멸의 전경이 책에 다 나와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른 방면으로도 볼 수 있는데, 난 이 방법이 매우 마음에 들지도 않거니와 참 재수없는 감상이라고 여기는데, 그건, 내 몸이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도덕적 조심성 없이 행동할 수 있고, 거의 대부분 완전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며, 이런 것들을 다 합쳐 무한 자유를 보장하는 선망의 눈길이다. 난 안다. 누군가는 이런 시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걸. 그러나 당부하노니, 그렇게 살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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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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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제임스가 <한 여자의 초상>에서는 주인공 이사벨 아처가 부자한테 시집간 이모 잘 둔 덕에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고 덜커덕 7만 달러, 2017년 현재 한국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251억원을 멋쟁이 이모부한테 상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얼굴 잘생긴 거 빼고 완전히 별 볼일 없는 남자 만나 굴곡을 겪는 이야기를 하더니, <아메리칸>에서는 크리스토퍼 뉴만이란 서민 출신의 미국인을 등장시켜 30대 중반에 세계적인 밀리어네어로 성공하고선 더 이상 돈벌이에 염증을 느껴 유럽일주에 나서 구대륙의 귀족들 알기를 갑순이 코딱지처럼 한다는 설정을 만들어놨다. 직설적인 내 감상을 먼저 얘기하자면, 오직 <한 여자의 일생>과 <아메리칸>에 국한한 헨리 제임스는 진짜 밥맛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가 ① 자신은 개뿔도 한 일 없으면서 물총 한 번 잘 맞아 어려서부터 호의호식하여 세상 어려운지 모르고 평생을 사는 거 ② 우리나라 독고탁 처럼 어느날 잃어버린 아버지(또는 친척)이 돌아와 거금의 유산을 상속해줘 한 순간 떼부자가 되거나 생각도 않던 신분상승을 이루는 거 ③ 물론 자신의 굉장한 노력을 수반했겠지만 전혀 가능하지 않은 행운을 등에 업어 이른 나이에 주체할 수 없이 돈을 벌거나 상상도 할 수 없는 권력을 틀어쥐는 거, 뭐 이런 건데 그럼 내가 헨리 제임스의 두 작품을 밥맛이라고 하는 걸 이해하실 수 있을 터. 게다가 <아메리칸>의 주인공, 우연히 이름이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같은 크리스토퍼 뉴만이란 작자가 유럽에 가서 오직 교양있고 품위있고 잘 생긴 수준은 되고, 거기다가 상당한 계급의 아가씨를 골라 장가들기로 하다가 친구 마누라 소개로 그런 여자를 발견해 온갖 방해를 무릅쓰면서 결혼을 향해 돌진하는 이야기. 참 미친다. 연애소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백만장자 미국인의 돈지랄로 시작하는 500쪽을 넘어가는 장편소설을 관통하는 건 돈의 위력과 유럽 귀족계급의 권위의 극한대립이다. 제임스의 세월은 당연히 부르주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테니 부르주아 계급의 대표선수이자 주인공인 뉴만은 원래부터가 직선적이고 정의파에다가 일체 꾸밈없으며 사해평화와 만민평등(물론 일본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지만) 의식에 충만한 의리의 돌쇠이고, 800년 귀족 벨가드 가문은 폐쇄와 권위주의와 가식과 부정과 비노동과 기타등등의 악덕을 총칭하게 만들었다.

 신구 세력, 아메리카와 유럽의 충돌을 뉴만이란 작자 장가드는 일화로 조망하는 제임스의 솜씨야 일단 탁월하다고 아니할 수 없으나 나 읽기에 재수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쉼없이 펼쳐지는 뉴만의 돈지랄이 나중엔 진짜 하품나고 한심하고 짜증난다. 소위 자수성가한 인간이 돈지랄을 해? 그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 다 아시지? 특급호텔 일반실에 묵는 록펠러와 로열 스위트에서 자빠져 자는 록펠러의 아들 이야기. 그게 진실이여.

 다른 얘기 하지말고 책 <아메리칸> 이야기나 하라고? 절대 못한다. 연애소설의 스토리에 관해선 셋 중 하나. 온갖 역경을 뚫고 결혼에 성공해서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거하고, 결국 큐피드의 화살이 비껴나가 눈물이 앞을 가려 에이 썅 이따위 세상 더 살아 뭐하나 부둥켜 안고 물에 빠져 죽는 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만 간직한채 남은 세월 꿋꿋하게 살아가는 거. 근데 그거 가르쳐드리면 책은 뭐하러 읽어? 그러니 못 가르쳐드리지. 이해 해주셔.

 하나 더. 역자 최경도. 앗싸 웃겼어. 요즘에 伊藤博文을 '이등박문'이라고 읽는 사람 있으셔? '이토 히로부미'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이 책에서 악역을 맡은 귀족 집구석 '벨가드'가家를 진짜 '벨가드'라고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꼭 이등박문이라고 써놓은 걸 읽은 거 같은 느낌. 처음부터 그랬는데 소설 속에서 뉴만하고 좋은 벨가드가 오페라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출연진에 절리나라고 있는 거다. 절리나. 절리나. 이게 누구? 일단 아래 링크한 거 들어보셔.

 

 

 노래가사가 처음부터 이렇거든. Batti, batti o bel Masetto. La tua povera Zerlina 정말로 Zerlina가 '절리나'도 들리세요? 난 암만 들어도 '체를리나'라고 들리는데. 이거 말고도 여러군데 있는데 대표로 하나만 꼽아본 거다.

 이거 읽고 에밀 졸라의 명작 <제르미날: Germinal>을 '저미날'로 쓴 교양인이 한 명 있었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지 뭐야. 흐흐흐....

 


 

* 링크한 유툽은 동영상을 가지고 올 수도 있었으나 암만해도 노래 예쁘게 부르는 루치아 폽이 훨씬 좋아서 위의 것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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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1-05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등박문 ㅋㅋㅋ 그 악명 높은 민음사 판 <나사의 회전>을 번역한 사람이군요! ㅋㅋㅋ

Falstaff 2017-01-06 08:24   좋아요 0 | URL
아, 그래서 제가 민음사 <나사의 회전>을 그리 재미없게 읽었군요! 벤자민 브리튼이 만든 으스스한 오페라를 먼저 보고 얼른 사서 읽었더니 이거 참, 원작이 훨씬 재미 없는 거예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3-03-17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다가 댓글들 보고 안 읽기로 했습니다. 나사의 회전 악명이 높은데 같은 번역자인지 몰랐네요.

Falstaff 2023-03-17 21: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근데 이 작품은 제임스 가운데서 재미있는 축일 겁니다. 다른 역자를 함 찾아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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