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일상생활의 구조
오늘부터 읽기 시작. ‘서론‘, ‘서문‘을 읽었고 ‘제1장 수의 무게‘ 중 두번째 챕터를 읽고 있다. 서론에서 산업혁명이 도래하기까지의 경제사회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물질문명 혹은 물질생활‘의 삼분법적 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제 1장에서 부족한 통계수치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인구를 통계학적 기반에서 최대한 추론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이 책을 처음 검색했을 때 표지에 사용된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이 그림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수확>인데 얼마 전 읽었던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서 알게 된 그림이었다.
˝멀리까지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농부 몇몇이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배경 중반쯤 교회가 있고 그 뒤로 항구 그리고 황금빛 들판이 아스라이 지평선까지 굽이쳐 펼쳐진다.... 맨 앞쪽 구석에는 일을 하다가 배나무 아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홉 명의 농부의 모습이 다소 희극적이면서도 애정을 담아 묘사되어 있다.(164쪽 )˝

패트릭 브링리의 책을 읽을 때 책에 등장하는 그림, 조각 작품들과 유적, 설치 미술들을 하나하나 검색해보며 읽다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그 아름답고 따스한 색감에 매료되어 꽤 여러번 찾아 보기도 했는데 뜻하지 않게 다시 보게 되어 너무 좋았다. 19세기 이전의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의 세계는 누가 뭐래도 강력한 농업 기반의 사회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에 꼭 알맞는 그림으로 <곡물수확>보다 더 어울리는 그림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책 읽을 때마다 정말 갖고 싶다 생각했던 그림을 부분이나마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서론
1952년에 뤼시앵 페브르가 자신이 기획한 세계의 운명 (Destins du Monde)』총서를 위해서 이 책을 써달라고 부탁했을 때, 나는 얼마나 끝없는 모험에발을 들인 것인지 분명히 상상도 못했다. 원칙적으로는 전(前)산업화(pré-industriel, preindustrial) 시기의 유럽 경제사에 관한 저작들을 단순히 재손질하여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종 원사료를 다시 보아야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는 중에 15-18세기의 이른바 경제적 현실들을 직접 관찰하면서 당황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적 현실들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여러 도식들과 잘 맞지 않거나 때로는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 P15

그러나 실제로 관찰한 19세기 이전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물론 우리는 그 진화과정을 추적해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진화과정이란 하나라기보다는 서로 대립되고 어깨를 겨루며 심지어 서로 상반되기까지 한 여러 진화과정들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경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그중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묘사하기 좋아하는 것은 이른바 시장경제이다. 
그것은 농업활동, 노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거래소, 은행, 정기시期市, foire, fair), 그리고 물론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의 메커니즘들을 뜻한다. 
경제학은 바로 이 명료한, 심지어 "투명한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활발히 움직여가고 또 그렇기 때문에 파악하기 쉬운 과정들에 대해서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학은 처음부터 다른 것들을 사상한 채 이런 특별한 분야만 골라서 보았던 것이다. - P16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불투명한 영역, 다시 말해서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폭넓은 영역을 뜻하는 더 알맞은 이름이 없어서, 나는 이것을 "물질생활(vie marerielle, material life)" 혹은
"물질문명(civilisation materielle, material civilization)"이라고 명명했다.
확실히 이 표현은 너무 모호하다. 그러나 현재를 보는 시각이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듯이
과거를 보는 나의 시각이 공유된다면, 언젠가는 이
하부경제(infra-economie), 다시 말해서 자급자족적이거나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재화와 용역을 물물교환하는, 경제활동의 이 또다른 덜 형식적아 절반을 가리키는 데에 더 적잘한 명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17

다른 한편으로, 시장이라는 광범한 층의 밑이 아니라 그 위로 활발한 사회적 위계가 높이 발달해 있다. 이런 위계조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환과정을 왜곡시키며 기존질서를 교란시킨다. 원하든 아니면 의식적으로는 원하지않든 간에, 그것은 비정상과 "소란스러움"을 만들어내며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18세기의 암스테르담 상인이나 16세기의 제노바 상인은 이 위계의 상층에 자리 잡고서 원거리에서 유럽 경제나 세계경제의 전 분야를 뒤흔들 수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이 특권적인 주인공 집단은 일반인이 모르는 유통과 계산을 수행했다. 예를 들면 환업무는 원거리 무역과 신용수단의 복잡한 운용과 연결되어 있어서 소수 특권적인 사람에게만 개방된 정교한 기술이었다.  - P17

시장경제의 투명성 위에 위치하면서 그 시장경제에 대해 일종의 상방(上方) 한계를 이루는 이 두 번째의 불투명한 영역이내 생각으로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영역이었다. 시장경제 없이 자본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자리 잡고 그곳에서 번영한다.
이 #삼분법적 도식#은 내가 관찰한 요소들을 분류해가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거의 저절로 형성되었지만,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너무 명료하게 갈라놓았으며, 나아가서는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처음부터 이 시각을 주정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

#삼분법적 도식: 위로부터 보면 차례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물질문명 혹은 물질생활‘이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비가 와서 나의 정원에도 못나가고...
어제 모내기 한 집 앞 동네 어르신 논에도 물이 가득하고 그 위로 ☁️ 잔뜩 낀 하늘이 비친다.
온 세상이 물 먹고 푸르다.
봄꽃은 다 떨어졌고 이제 여름 꽃들이 한창 봉오리를 맺고 있다.
작년 마당 한 귀퉁이에 벽돌 막아 만든 꽃밭에
아네모네, 송엽국, 종이꽃? 등등을 심었었는데 아네모네만 살아남았다. 하얀 꽃잎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 넘 예뻐서 아네모네 10포트 주문해서
또 심었다. 내년엔 더 늘어 있겠지?

작년엔 듬성듬성하던 잔디밭에 잔디 사다 메우고 잘 자라는 거 보며 뿌듯해하고 흐뭇해했는데 남편의 한순간 실수로 (군데군데 제초제가 든 조루 휘휘 휘두르는 바람에 잔디 다 듁음 ㅠㅠ) 엉망된 잔디밭에 다시 잔디 사다 메웠다. 언제 자랄까...
속상해.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는데...
거기다 잔디밭에 이끼가 잔뜩 끼었다. 이끼약 사다 뿌렸는데 어떠려나 모르겠다. 무작정 맹독성 약을 뿌릴 수는 없으니 되도록이면 친환경 약제를 구입, 사용하려고 노력하지만 ‘빨리‘에 익숙해진 갈급한 마음에는 바로 가시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한 해, 한 해 정성과 노력, 시간과 금전을 더해 천천히 변화하는 정원을 보며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배우려 한다.
내년엔 분명 달라진 모습을 내어줄 걸 알기에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어떨 땐 내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내어주기도 하는 작은 정원에서 큰 위안을 받는다.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정원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원예가는 성장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나머지는 자기 시간과 방식에 따라 자라는 식물의 생명력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방임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돌봄에는 특별한 종류의 관심, 디테일을 알아차리는 이해가 필요하다. 식물은 환경에 민감하고, 성장하는 데에는 온도, 바람, 비, 햇빛, 해충 등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많은 식물은 어떻게든 견뎌내지만, 그래도 정원을 가꾸는 데는 질병의 기미를 미리 알아차리거나 어떻게 하면 잘 자라는지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 P45

땅을 가꿀 때는 세상을 향한 돌봄의 태도도 가꾸게 된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에서는 이 돌봄의 자세가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다. 
‘수선‘보다 ‘교체‘를 우선시하는 문화는 파편화한 사회망과 도시 생활의 빠른 속도와 결합해서, 돌봄을 폄하하는 가치 체계를 세웠다. 사실 우리는 돌봄을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일에서 너무 멀어졌다. 
최근에 환경운동가 겸 사회 운동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말했듯이‘, 돌봄은 ‘급진적 개념‘이 되었다. - P45

가치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대다수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은 돌봄 충동을 무시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기계는 보통 사람들이 수리할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서받는 즉각적인 피드백과 ‘좋아요‘에 익숙하다. 
식물뿐 아니라 우리 몸과 정신에도 작용하는 자연의 느린 리듬은 가치를 잃었다. 자연의 리듬은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즉석 해결‘ 마인드와 맞지 않는다. - P45

이런 압력은(정신건강에 어떤 속성 치료가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빠른 결과를 약속하는 
치료 패키지와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로 나타난다. 잘못된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내면 문제를 이해해서 곧바로 그것의 타격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영속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신경 연결 통로를 놓는 데는 여전히 여러 달이 걸린다. 좀 더 복잡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언가 성장하기를 기다려야 할 뿐 아니라 그보다 먼저 우리가 정말로 성장을 바라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스스로 변화를 원한다고 생각해도, 변화는 대부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P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1
톨루베예프 기관차 차고에서 최고의 열차 기관사로 손꼽히는 사람은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말체프였다. - P213

당시 서른 살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일급 기관사 자격증을 소지한 그는 오래 전부터 고속열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우리 차고에 처음으로 IS형 특급 열차가 배당되었을 때, 말체프가 이 열차의 기관차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올바른 결정이었다. 말체프의 조수로는 기관차고에서 수리공으로 일했던 중년의 표도르 페트로비치 드라바노프가 일하게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기관사 시험을 통과해 다른 열차에서 일하게 되었고, 내가 그를 대신해 말체프의 조수로 임명되었다. 그 전까지 나는 마력수가 낮은 낡은 열차의 부기관사로 일하고 있었다.
- P213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는 내가 자신과 한 조가 된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그는 누가 조수로 일하든 개의치 않는 듯했다.
열차가 출발하기 전, 나는 평소대로 열차의 모든 
연결 부위를 확인하고, 보조 기계장치들도 일일이 점검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열차 운행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그런데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는 내가 일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으면서도, 다시 한 번 자기 손으로 기계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 P214

그 후로도 이런 일이 매번 되풀이되었고, 나는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가 내 일에 간섭하는데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물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러나 열차 운행이 시작되면, 이런 사실을나는 곧 까맣게 잊어버렸다. - P214

운행 중인 기관차의 상태를 표시하는 이런저런 
계측기나 전방 선로의 상황을 지켜보다 나는 이따금 말체프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감에 가득찬 대가의 표정으로 열차를 몰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모든 외부 세계를 자신의 내적 체험으로 끌어들여 그것을 장악하는, 영감에 휩싸인 예술가의 집중력이 엿보였다.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가 앞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같아도 앞쪽 선로들의 상황과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모습 모두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기차가 질주하면서 일어•나는 바람 때문에 도상에서 참새가 날아올랐다.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날•아가는 참새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지나간 뒤 참새가 어떻게 됐는지, 참새가 어디로 날아갔는지 그렇게 확인하는 것이다.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 ‘불속의 원‘과 인간본성에 대하여...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인데 자그마치 31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eBook으로 읽고 있는데 종이책의 두배 정도인 1,45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다.
수록 작품이 31 편이라는 것, 1,45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에 압도당한 마음과는 달리 일단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금방 빠져 들어 읽어나가게 된다. 작품이 주는 몰입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게 될 만큼 비범한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원래 악한 것이 아닐까 ... 그런 생각을 굳히게 만들다니... 플래너리 오코너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가히 최고가 아닐까!

오늘은 단편 중 ‘불속의 원‘, ‘추방자‘를 읽었다.
안좋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 스토리인걸 분명 알 수 있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어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불속의 원‘을 읽을 때 특히 그랬다.
어린 딸(아이)과 함께 사는, 농장을 운영하는 코프 부인 집에 예전에 일했던 일꾼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가지고 친구 두 명과 함께 찾아온다.
소년들은 코프 부인의 호의에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코프 부인의 농장에 눌러 앉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태는 코프부인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그들을 내보내기 위해 애쓰지만 사태는 점입가경의 지경에 이른다. 농장에서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코프부인은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 안심을 하는데... 어느 날 코프 부인의 어린 딸이 숲에 들어갔다가 세 소년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숨어서 지켜보던 중에 모아놓은 성냥으로 숲에 불을 지르는 모습을 발견한다. 농장과 농장 건너의 숲은 코프부인의 경작지이지만 소년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농장의 동물들을 풀어놓고 함부로 말을 타고 돌아다니고 우유를 훔쳐먹기도 하는 등 온갖 말썽을 일삼는다. 어린 딸이 있는 엄마인 코프 부인은 그런 아이들을 집에 들일 수 없을 뿐더러 같이 데려온 친구들도 고분고분하지는 않아 불안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건초창고에서 잠을 자겠다는 것을 거절하자 숲에서 노숙을 하겠단다. 건조한 계절이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숲에 들일 수 없다는 코프 부인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비행을 일삼는다. 이렇게 결국 아무렇지 않게 숲에 불을 놓는, 파국을 향해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듯한 이 작품을 읽다보면 역시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단 것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그들은 옷을 입었다. 햇빛이 파월의 안경에 하얀 점 두 개를 찍어서 눈을 가렸다. 
"나는 할 일을 알아. 이제 하자." 파월이 말하고 주머니에서 조그만 물건을 꺼내 두 소년에게 보여 주었다. 그들은 파월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1분은 족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제 의논은 다 끝났다는 듯 파월이 여행가방을 집어 들었고, 모두 일어나서 아이와 3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이제 나무에서 뗀 아이의 뺨에는 나무껍질 무늬가 붉고 흰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501/1453)

아이는 소년들이 걸음을 멈추고 각자 가진 성냥을 모두 모은 뒤 덤불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소년들은 환성과 고함을 지르며 입에 손을 대고 두드렸고, 잠시 후 아이와 소년들 중간에 생겨난 가느다란 불이 점점 넓어졌다. 불은 아이가 보는 눈앞에서 덤불
위로 뻗어 올라 나무들의 낮은 가지를 집어삼켰다.
바람이 불어 불조각을 위로 실어 날랐고, 소년들은
비명을 지르며 불 뒤로 사라졌다.(501/1453)

아이는 돌아서서 들판 저편으로 가려고했지만 다리가 무거워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낯선 고통이 아이를 무겁게 
눌렀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달리기 시작했다.
(502/1453)

아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유유히 걸어가는 깜둥이들 너머 화강암 색깔의 숲 속에서 연기 기둥이 맹렬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이는 꼿꼿이 서서 귀를 기울였고, 멀리서 몇차례 기쁨의 함성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그소리는 마치 예언자들이 
불의 용광로 속, 천사들이 비워 준 동그란 원 안에서 춤을 추는것 같았다. (504/14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푸른사상 세계문학전집 2
케이트 쇼팽 지음, 여국현 옮김 / 푸른사상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굳이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선입견 없이 읽어도 좋을 여러 단편들. 그리고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 삶과 죽음, 전쟁의 참상, 인종적*계층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식,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가지고 관습에 저항하는 의식을 가진 여성들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케이트 쇼팽을 기억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