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워크
E. F. 슈마허 지음, 박혜영 옮김 / 느린걸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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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이 대세인 요즘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그의 사상이 압축되어 있다. 중간에 실화는 약간 지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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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명제가 있습니다.

1. 죽음보다 못한 삶도 있다.
2. 숨을 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산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군요. 주인공이 한 나병촌에 들어가서 환자와 애기를 나눕니다. 죽어가는 나병환자는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살아오면서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지..하지만 난 더 살고 싶어" (정확한 대사는 아닙니다.본 지가 오래되서) 이 대사를 떠올린 이유는 역시 니체가 자발적 죽음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신을 부정하고 자신이 운명의 주체로 서며 죽음까지도 스스로 결정하는 인간.그런 인간이 니체의 이상향일 것입니다.(중학교 때 들은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모든 종교의 공통된 가장 큰 죄악은 자살이라고 하더군요.감히 신이 내린 운명을 거역했다는 거죠.그 선생님은 아무 맥락없이 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아마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자살을 막기 위한 배려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스승님인 셈이죠)
 
제가 니체를 읽으면서 떠올린 작가가 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입니다. 고졸 출신에 그 당시까지 최연소로 아쿠타카와 문학상에 당선된 사람입니다.(이 기록이 나중에 무라카미 류한테 깨졌나요? 혹시 아시는 분?)  
이렇게 말하면 무슨 엄청난 엘리트 적인... 
마치 엄청나게 섬세하고 천재적인 기인을 떠올리기 쉬우나....

 이 사람은 소설가가 아니면 깡패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여자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느니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학창 시절에 하도 공부를 안 하고 말썽을 피워서 학교 측에서 졸업시험 때 답을 가르쳐 주면서 얼른 학교에서 나가라고 했다는 군요. 회사가 도산할 위기에 처하자 업무가 없어져서 남는 시간에 쓴 소설이 아쿠타카와 상에 당선되는,( 그 전까지 제대로 된 문학잡지 이름도 몰랐다는군요) 그야말로  문학지망생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은 사람입니다. 항상 "소설이라니,분수에 맞지 않아"하고 읊조리면서도 소설을 버리지 못하는 ,본인은 자기가 쓰는 게 아니라 그 누군가가 쓴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소설에는 엄청난 남성성이 흘러 넘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은 어떤 가요? "샐러리맨을 하려고 태어난게 아니야", "그렇게까지 살고싶은가", "삶의 의미 따위를 물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영락없이 신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이 사람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운명의 결정과 책임을 전부 스스로 떠안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자살도 끼여 있습니다.마치 니체가 덕은 자신으로의 회귀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치의 기준을 철저히 내부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들이 가장 경멸하는 것은 한 자리에 정착하고 조직에 속하고,회사에 출근하고, 가정을 이루고 편안히 늙어가는 것 입니다. 개인의 끝없는 자유를 추구하고, 삶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완전연소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의 소설에서는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에 대한 본능적인 적개심이 느껴집니다. 그런데,이런 주인공들을 보면 어째 냄새가 니체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됩니다. 어쩌면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그게 뭔지는 정확히 지어 말할 수 없짐나) 제가 둘을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자에 대한 태도도 같군요. 니체가 여자에게<채찍>을 가지고 가라고 충고한다면  이 사람은 여자가 뭐라고 하면 차라리 한 방 먹여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이 사람이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자신은 무뢰한 삶,완전연소의 삶만이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숨을 쉰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자가 진정으로 산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라고요.  삶이라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에 대한 무한한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원령공주의 나병환자라면 인간답지 못한 삶을 끝내기 위해 (들뢰즈처럼?) 자살하는 게 영웅적인 삶일까요? 아니면 삶 그 자체에 의미를 가지고 더 애착을 가지고 자연사를 기다리는 것이 영웅적인 삶일까요? 그도 아니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나병환자들을 위한 투쟁을 하는 것이 영웅적인 삶일까요?
여러분이라면 1번과 2번 중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추신:만약 죽음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진다면,,,, 이런 생각은 어떻습니까?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죽는 다면 나의 묘비명엔 어떤 문구가 새겨질까?...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래도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아,삶에 관해 떠오른 생각도 있습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모든 것에 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전사의 삶이다" 저는 이 문장에서 니체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긍정과 삶에 대한 투쟁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과연 최고의 전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떠한 삶의 조건이 닥쳐와도 나의 삶을 축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 자신에게 물어보니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군요. 여러분도 한 번 해보세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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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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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피가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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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자서전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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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켄지의 <천년동안에>를 보면 끝없이 흐르는 주인공이 나온다. 한 곳에 정착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개인의 끝없는 자유를 추구하며 한없이 흐르는 존재. 아마도 겐지에게 이런 캐릭터는 자신이 평생 추구한 이상향일 것이다. <도망치는 자의 노래>,<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같은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이런 이상을 정말(!) 현실에서 이루어 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겐지도 알았을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삶. 물론 나중에 부두 노동자로 정착하긴 했지만 이런 사람의 삶을 보면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어떤 공포나 두려움, 불안도 없었단 말인가. 도시노동자가 되기 싫어서 끝없이 유랑한다. 나는 끝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마지노선을 이 사람은 벗어난다. 사랑마저도 뿌리치고 유랑하는 모습, 감탄만 나올 뿐이다.  

좀더 자세한 내용이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에릭호퍼가 자신의 이야기를 아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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