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 정작 우리만 몰랐던 한국인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
한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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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치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래 전 덴마크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기간이 있었는데, 세계 최고로 깔끔하고 안전하고 예의바른 나라들이라는 북유럽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만 있던 나는, 무척이나 이상적인 동료들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있는 어른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 계약파기를 하고 탈출하듯 떠나온 기억이 있다. 11월에 들어서자 해가 뜨지 않았다. 11시쯤 세상이 희뿌옇게 되다가 2시쯤 깜깜해졌다. 그동안에도 실내에서는 항상 조명을 켜두어야 한다. 여러 불특정 정신 예민증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나는 11월에 들어서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급기야 어느날은 죽을 것같은 공포에 통곡을 하고 짐을 쌌다.

 

이 책 제목의 '휘게'는 평생이 걸려도 덴마크어를 배울 수 없을 것같은 확신을 가진 내게도 그 정서가 잘 전달되던 단어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그 단어는 한국에 수입되면서 미디어상품으로 한층 더 세련되고 부정확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어 지친 나머지 차라리 '나 자신을 바꾸자'고 전향을 하고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방법들은 시대별로 늘 있어왔다. 한동안 불어닥친 인도여행과 명상, 요가도 그 중 하나이고, 현재에 가장 가까운 것은 소확행과 욜로 라이프스타일일 것이다.

물론 웃을 일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것보다는 찾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작은 행복들과 자구책들을 가능한 많이 자주하고 거기서 힘을 얻는 일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실제로 나도 거의 매일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거 없나, 자연스럽게 찾게도 된다. 하지만, 얼마나 부지런히 소확행과 욜로를 실천하는가는, 적어도 나와 내 주변 지인들의 경험으로는, '지속되는 행복'과 크게 상관이 없을 분더러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치 상처가 계속 낫지 않고 악화되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밴드를 사서, 아이 예뻐라, 기분이 좋아지네, 하고 바르는 느낌이랄까.

이딴 식으로 싸잡아 비판을 하려고 글을 시작한 건 아니고, 이토록 뭔가 아는 척 투덜거려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나 실질적 노력엔 게을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렇더라도 계기란 개인별로 다 다른 것이라, 체력과 열정이 매일 더 사그라드는 내게 언제쯤 가동할 에너지로 그 계기가 다가와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속은 시원했다, 부분적으로는 포기하고 싶었던 사고에 다시 힘을 보태줘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고 간명하고 확실하고 분명한 표현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그 사실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허황되거나 구태의연하거나 젠체하는 내용은 없다. 행복하고 싶었으나, 싶으나, 도무지 그럴 계기가 없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다. 곧 한가위 연휴, 모드 무탈하시고 평안하시고, 가능하면 누군가는 소원성취를 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언제까지 모를 것인가.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면 영원히 모를 수밖에 없는가.(중략) 알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알게 되어 있다. 나에 대해 모르고 행복해지는 법을 모른다면 배우면 된다.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행복해지는 법은 널리고 널렸다. 왜 배우지 않고 못 배웠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행복할 수 없다고만 할까. 17

 

내가 배운 것들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면 새로운 것을 배우면 된다.(중략)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많은 조건을 갖고 있고, 만약 없다면 현재를 바꿀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면 사실상 행복해질 일만 남은 게 아닐까. (중략) 가만히 있어서 달라지는 상황은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찾아오는 행복은 없다는 사실이다. 20

 

인생은 이벤트 위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27

 

인생의 본질은 삶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사람들은 자연 재해나 전쟁, 불행한 사고가 있지 않은 담에야 인간에게 부여된 기대수명만큼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 같다. 29

 

돈은 중요하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을 추구해야 한다.(중략) 돈이 목표라면 돈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 아닐 이유가 없다. (중략) 그리고 목표로 한 돈을 벌지 못했다고 인생에 실패했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 도니다. 당장 원하는 만큼의 돈이 수중에 없다고 해서 그만한 돈이 생길 때까지 인생의 모든 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행복해질 일은 영원히 없을 테니까. 행복에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명제는 이 경우에만 타당하다. 138

 

불만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더 행복하고 싶다는 의미다. (중략) 달관 세대 운운하는 것은 청년들에게 더 행복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나 같다. 달관 세대에 대한 예찬이란 어차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느끼면서 꿈도 희망도 갖지 말고 그렇게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포기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포기에서 오는 안도감을 행복이라 착각하지 말자. 그런 깨달음은 없다. 143

 

살면서 꼭 해야 하는 포기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누군가는 힘들이지 않고 충족했던 것들을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건 무책임하고 비열한 짓이다. 나는 ‘어차피’라는 말을 대단히 싫어하는데 ‘어차피’라는 말은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소확행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날에 잠시의 활력소가 되는 정도면 충분하다. (중략) 하지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목적에서 나온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준다. 163

 


행복하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나는 행복하고 싶은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 상태가 되고 싶은가? 나는 왜 그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그전에 나는 누구인가? 208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긴다. 그동안 무언가를 붙잡고 있던 힘과 시간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내려놓기 전까지는 매달려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중략) 내려놓는 지혜를 발휘할 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까지 할 수 있을 만큼 힘을 내 본 다음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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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놀이터
박성우 지음, 황로우 그림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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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던 어제, 비 오는 날엔 젖는 것, 흙 묻는 것을 아직 탐탁지 않아 하는 꼬맹이들과 이 책을 펼쳤다. 창비 그림책의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거의 매번 아이들에게서 느끼는 지라, 더구나 [아홉 살 사전] 시리즈를 출간하신 박성우님 책이라 기대가 한껏 높았다.

 

예상대로(?!) 꼬맹이들은 아름다운 색감에 여러 번 즐거워하고, 실사보다 몇 만 배 귀여운 캐릭터들에 신나하고, 책의 메시지와 내용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는 묻지 않아 모르겠지만, 창 밖에 몰아치는 비바람에 대한 언급은 없이 그림그리기에 몰입했다.

 

사실, 창비 그림책에 대한 애정으로 치자면 꼬맹이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애정하는 나는 혼자 한 장 씩 두근거리며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먼 과거 생각이 더 또렸해지는 법이라 그런지, 멀고 먼 초등생 놀이터의 추억이 급 소환되었고, 소나기 놀이터의 장면들과 겹쳐졌다. 박성우 작가님도, 황로우 일러스트레이터님도 참 대단하신단 생각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감탄이 되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얼핏 간단한 그림체 같지만 얼마나 표정이 풍부한지, 모든 배경들도 얼마나 세심하고 섬세한지 말로는 백분의 일도 묘사할 수가 없다. 그림인데 빗소리가 반짝반짝 들리는 것같고, 청량한 세상의 향이 느껴지는 것같다. 이파리 하나, 모래알 한 알, 풀씨 하나, 나팔꽃 줄기, 참나리 꽃잎, 빛나는 열매들, 급히 귀가하는 개미, 소나기를 반기는 이끼와 달팽이, 사랑스러운 거미와 악기 소리가 나는 듯한 거미줄. 이 모든 캐릭터들이 놀이터 세상 곳곳에서 비를 맞는 모습이 동요와 함께 잃어버렸던 의성어로 의태어로 귀여운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텅 빈 놀이터의 그네와 미끄럼틀과 철봉에 아이들처럼 사랑스럽고 요란하고 즐겁게 노는 빗방울들이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럽다.

 

물론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예쁜 옷이 아니라, 가장 편한 옷들을 입고 놀이터로 나온 아이들이 빗방울들와 함께 어울려 노는 장면이다.

 

아이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다치게 하는 어른들의 세대인 나로서는 이런 풍경이 끝까지 응원하고 싶은 희망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꼬맹이들이 있는 각 가정에 보급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작가님과 일러스트레이터님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에 경애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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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 지구 가장 깊은 곳에서 만난 미지의 세계
제임스 네스터 지음, 김학영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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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일 때 꼬맹이가 바다 속을 여행하는 동화를 읽고 너무나 두근거려 몇 년을 운 좋은 밤 나도 바닷속을 여행하며 아름다운 조개도 긴수염고래도 만나는 꿈을 꾸었다. 잃어버린 상상력, 그리움, 추억, 고향을 만나게 해주는 과학책! 특별히 반갑고 귀하고 소중한 작업이다. 건승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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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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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성함이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본 책이 없어서 혼자 당황했다. 최근 [은주의 영화]를 읽은 친구의 추천으로 덕분에 드디어 읽게 되었다. 무겁고 아프고 서글픈 세월을 살아가는 이야기 8편이다. 읽다 보면, 우리는 늘 사는 일이 이토록 불안하고, 시절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상처는 깊어가고, 나이가 드는 일은 외롭고 쓸쓸한 일일 수밖에 없나 하는 서러운 생각이 절로 든다. 등장인물들은 폭력과 상처에도 말 못하고 숨죽여 살다가 어떤 계기로 소리 지르고 울고 노래한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 알아 듣지 못할 전남사투리가 판소리 가락처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각각의 단편들은 하나의 인물이나 일화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작가가 살아 온 세대와 사회를 교차하여 위로의 말을 보내고 있다. 5.18이 보이고, 1989년 조선대 학생 이철규 의문사, 평택 쌍용자동차, 가족의 해체, 세대가 지나도 대물림되는 고달픈 삶,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 이렇게 반복되는 불행들이 가득한 현실에서 시대가 변했다는 말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한편 작가는 이런 슬픔과 불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은주의 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느낀 것처럼 당사자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소통과 행동을 제안하는 것으로 읽힌다.

 

늘 되풀이되는 깨달음이 이번에도 아프다. 사적인 일상을 일부 희생하면서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나서서 행동하진 못하고, 지난하고 힘겨운 싸움일 줄 알지만 큰 권력 앞에 힘들게 투쟁하는 단체나 대신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는 곳에 그저 정기후원을 하는 정도로 면죄부를 주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마치 그 행위만으로 적당히 무관심하게 일상을 보내면서. 큰 사건의 직접 피해자들도 안타깝고, 주변에서 소외되는 이들도 아프다. 언젠가는 소설 밖의 현실과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언제나 맴돈다.

 

이 소설들이 지금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 가닿아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까. 말을 걸 수나 있을까?

​혹은 누가 이 소설들에 말을 걸어오기나 할까?

​소설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의미가 있기는 할까?

​나는 혹시 노래를 익혀 ‘밤무대 가수’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는 것이 ‘존재 의의’로서는 좀 더 윗길이지 않았을까?

​소설이 세상에서 그리 유용한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는 해도

어쨌거나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앞으로 사는 동안은 소설을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소설’로밖에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공선옥

...............................................

나는 저런 길모퉁이에서 파란 제복을 입고 호각을 불고 있었는데,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길을 건너오던 너희 엄마가 내 옆을 지나가더라. 예뻐서 호각 소리를 더 크게 냈다. 너희 어마가 한 번 더 돌아볼까 봐, 가슴을 졸였지. 정말로 돌아보더라. 숨이 멈을 뻔했지. 거의 영화였다, 영화였어.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거의 영화였다, 영화였어, 했던 순간이 내 영화의 시작이었다. 74

 

"아따, 그런 말 하지들 마쑈, 저 아래 누구 집, 누구 집 해서 죽은 사람들이 얼매나 많은디. 우리 집 가시내는 직접적 피해를 입은 것도 없고 단지 달구새끼 때문에 충격을 좀 먹은 것을 가지고 무슨 피해자는 피해자여…." 79

 

카메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가 숨을 쉰다. 카메라가 큰 숨으로 나를 빨아들인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카메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카메라 속에서 카메라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카메라 속에서는 카메라가 필요 없다는 것을. 카메라 속에서는 내가 카메라이고 카메라가 이모다. 나는 이제 이모가 되었다. 83

 

"군인들이 너한테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등신처럼 구냐고요, 가시내야아." 92

 

울지 말라고 했건만, 카메라 밖에서 엄마가 울다가 악을 쓴다. 미친 가시내야, 아니 은주야,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좋은 일 하는 셈치고 밖으로 나오너라.(중략) 언니 땜에 엄마가 죽고 싶다고 난리잖아 지그음. 누구는 밤새 알바하고 왔는데 누구는 골방에 처박혀서 사람 미치게 하고 엄마는 죽고 싶다 난리고 아빠는 아픈 몸에 술만 마시고오, 나만, 나만 살아보겠다고 이 고생을 왜 해야 하냐고오. 100

 

말 들어보니 그날 밤에 대학생 한 명이 검문에 걸려 쫓기고 있었다등만. 이 어린애가 저 잡을라고 쫓아온 사람들인 줄 알고 그 밤에 쫓기다가 어이없이 사고를 당한 거여. (중략) 그렇게 그날 밤에 이 산에서 두 놈이 쫓기다가 죽은 것이여. 두 놈 다 자기만 쫓아오는 줄 알았겄제이. 129

 

시내에서 학생들이 철규를 살려내라,고 데모를 해. 우리 철규를 왜 살려내라고 하나, 왜 그러느냐고 우리 철규를 당신들이 아냐고, 왈칵 물었지. 대학생들도 울어. 울면서 나한테 물어. 이철규 누냐냐고. 아니라고, 나는 박철규 에미라고 했지. 129

 

오랫동안, 철규는 카메라 밖을 뚫을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 침묵이 너무 단단해서, 뭐라고 말을 붙여볼 수조차 없는 그런 침묵이었다. 오랜 침묵의 뒤에 소년 철규는 카메라 저편으로 사라졌다. 내 영화가 소년 철규의 그 오랜 침묵의 끝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135

 

이런저런 생각들이 간단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이 애가 잘 살고 있는지,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제 남편하고도 상관없는,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 깊은 곳, 제 몸속 어딘가, 저만이 알고 있는 우물 같은 장소에 웅크린 딱딱한 것, 그것을 굳이 슬픔이라거나 그늘이라고 하면 좀 민망해질 수도 있을, 그런 것이 딸에게도 있을 것이다, 왜 없겠는가, 사람의 자식인데… 153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별과 별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거 아니냐, 사람 사이처럼 말이지." 157

 

나의 염소 가족들은 언제쯤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일 수 있을까.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다 함께 모여서 어느 햇빛 가득한 봄날이거나 햇빛이 만들어낸 그늘이 싱그러운 여름날의 언덕에서 향긋한 식사를 즐길 수 있을까. 162

 

“맞소, 우린 사측의 개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피로와 슬픔과 분노가 서려 있기는 쇠철문 바깥 사람들이나 안 사람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고 있었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진 아수라를 구경하러 나온 공장 인근 마을 개들이 저물어오는 벌판을 동네 양아치들처럼 몰려다녔다.(중략) “나도 배고픈데 울 아빠도 디게 목마르고 배고프겠다.”“사는 기 이케 서룹다.” 185~186

 

"나는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말들은 내 속에서 통통하게 살이 찔 것이고 배가 고프면 내 말들을 먹을 것이다." 191

 

옛날은 내게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선명한 시간’은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해야지 안 그러면 사람이 ‘시낭고낭’ 앓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시작한 이야기가 [은주의 영화]다. [은주의 영화]는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를 내게 데려다 주리라. 어쩌면 문 앞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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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법원 -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권석천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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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부터 살고 봐야 한다는 도그마 속에서

조직의 존재 이유를 배신해왔습니다. 5

 

‘사법농단’의 근본적 원인은

대법원장을 받들고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현실의 법원

 

나에게는 국정 농단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사법 농단이 드러나는 시기, 주변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언제 제대로 기능한 적이 있느냐, 법이 언제 약자의 편이었냐, 뭘 새삼스럽게 놀라냐......

 

그렇게 본다면, 나는 정말 별 생각없이 살아왔다. 흔히 흔히 판사는 명예, 검사는 권력, 변호사는 돈이라고 하는 구분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 법조계에서 판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견고했다. 그것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사법 체계가 판결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그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판사들에게 그에 해당하는 직업윤리를 기대하고 사회적 존경을 보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흡족하지 않더라도 판결에 승복하는 일이 사회 전체의 정의와 공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끄덕이기도 했다.


사법권 독립의 두 기둥은 '법원의 독립' 과 '법관의 독립'이다. 두 가지는 같은 길을 걷지만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외부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내부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대법원장도 재판에 관한 한 판사에게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없다. 지시나 명령을 하면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다. 판사의 판단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뿐이다. 15


사법 농단이 근본적으로 충격과 분노를 주는 것은 이러한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일련의 시기를 지내오면서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뿌리부터 믿지 않게 되었다. 판사들이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반성도 없고 개선될 여지도 없다는 이 끔찍한 현실. 이런 식으로 어른이 되고 현실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법원은 독립적이고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하는 곳이라고 그런 희망을 여전히 갖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믿음일지라도 그들이 그저 승진과 보신에 급급한 관료들이라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절망적이다.

 

이번에 들키지만 않았다면 이들은 이렇게 유구한 세월을 물셀 틈 없이 견고하게 범죄를 저지르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범죄자들이 퇴직 후 국회의원이 되어 입법을 망쳤을 수도 있다. 언제나 바르게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그런 이들을 수없이 많이 만난 운 좋은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한편 한국 사회에는 이런 두 얼굴의 범죄자들이 너무 흔하게 존재해서 자정 능력이란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고 법원을 무너진 채로 방치하고 법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법 체계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인생의 뒤흔들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다. 불공정한 수사 대상이 되고 증거 없이 기소되고 부정의한 판결을 받는 대상이 되어 살아 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당장 뭐가 있을까 싶지만, 일단 해당 사태를 정확하게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은 필수이다. 명백한 악의와 의도를 가지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가짜 뉴스들이 활개를 치고, 기성 언론들조차 삥뜯고 돈먹기,처럼 보이는 저질 영업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는 요즘엔 더욱 그러하다.

제가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중대한 상황을 또다시 무관심과 진영논리의 휴지통에 욱여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과거'를 손가락질하는 대신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모두이 미래'를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관련자 몇몇의 처벌을 판단하는 형사법정의 좁은 틀에 '사법농단'의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제 서막을 올렸을 뿐입니다. (중략) 이 순간에도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에 선악이 없듯 진실에도 선악이 없습니다. 맞서지 않으면 진실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조금은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냅니다. 부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고, 대안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7

묵직한 책이다. 논픽션인데 스릴러 영화처럼 진땀을 흘리며 읽었다. 목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17년 2월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 제출부터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의 진상 조사, 검찰 수사와 재판,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내막까지 담겨 있고, 끝까지 읽다 보면 이탄희 판사가 왜 두 번 사표를 내야 했는지, 판사들은 왜 좌절해야 했는지, 한국 법원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고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파악하지 힘들만큼 다수의 사람들과 사건들이 얽히고설켜서 당사자들이 아니면 사건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화가 나고 우울하기고 하지만 전직 판사 이탄희 변호사의 담담하고 절제된 증언을 읽다 보면 다행히 차분해지는 장점을 가진 책이다.


분리 통치의 체계 안에서 자신의 고민을 같은 조직 사람들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떤 부당한 일이 맡겨져도 해내야 할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 62

 

조직논리는 무섭다.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조직만 무사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의 명예나 인격쯤은 한입에 집어삼킨다. 어느 조직에서나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면 바로 공격이 시작된다. 사생활이나 인성에 대한 공격이다. 문제 삼을 것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공격한다. 131

양승태 코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해보자. (행정처를 통한 대법원장의) 압력이나 (판사에 관한 평판 등에 대한) 얘기에 꿋꿋하게 버틴 행정처 판사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일선 법원 판사 중에서 행정처 전화 한 통에 쩔쩔맨 이들이 분명히 있지 않았는가. 더욱이 압력은 교묘해지고 내면화되고 있다. 유신시대나 제5공화국 때는 외부의 압력에 맞서면 판사사회 내부에서 박수를 받았다. 민주화로 외부의 압력이 사라진 대신 법원 내부의 압력은 훨씬 세졌다. 내부의 압력에 순응하지 않으면 판사로서의 평판에 금이 가고 판사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게 된다. 이제는 양심껏 재판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오히려 법관의 양심을 지키기 어려워진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379


언론에서 떠드는 사법 개혁은 마치 검찰 조직의 정비로만 들리지만, 사법체계의 폐쇄성과 악취들을 걷어 내는 작업이 필수불가결해 보인다. 그 잔인한 조직 체계 안에서도 양심을 지키려 저항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서서 알려야 할 것들을 알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들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희망삼아 언젠가 나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사법 농단의 역사적 의미와 새롭게 찾아낸 사법 신뢰에 대해 기뻐하며 이야기 나눌 시간을 꿈꾼다.

 

우스운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만일 사표를 낸 판사가 이탄희가 아니었다면 많이 달랐을 거예요. 이탄희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거든요. 재판 잘한다는 소문도 났지만 행정처TF일도 많이 했어요. 그것도 굉장히 열성적으로 하면서, 샤프하고, 예의바르고... 그러니까 다들 인정했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판사였어요. 평판이 좋았던, 아니 굉장히 좋았던 판사가 무슨 부당한 지시를 받고 사표를 썼다는 것만으로, 그걸로 게임 끝이었던 거죠.(지방법원 부장판사) 135

 

'사법농단' 사태는 구시대적인 시스템이 더이상 기능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내부자 몇몇이 입을 맞춰 은폐하면 감출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법원에도 교과서에서 읽은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탄희의 저항은 새로운 세대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뒤이어 나타난 희망의 징후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이다. '판사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작됐던 판사들의 자발적인 회의체가 법원의 공식 기구로 자리잡았다.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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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에 연루된 이들을 법관이 아닌 '요원'

요원의 특징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더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심리적으로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

​"뭐든지 은폐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

  
"법관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본인의 법정에서 주장과 증거를 통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또 은폐가 아닌 진실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이다."

"근데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원행정처 법관들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사안을 은폐하려고 했으며 '다 시키는 대로 했다',

'수족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있다."

“나하고 여기, 여기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회 공동학술대회가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인사권자에게 보은해라.”

“판사 뒷조사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 부분은 이미 정책 결정이 됐다.”

  
"더 무서운 건 한 번 요원의 덕목을 내면화한 사람은

완벽히 법관의 상태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저는 그걸 확신한다."

​"국민들은 사법행정 잘하고 제도설계 잘하는 법관을 존경하는 게 아니다."

"법관이 잘 할 수 있는 건 재판이다, 법관은 재판만 잘하면 된다."

"사법개혁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법관은 재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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