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엔 다니는 직장의 규모가 커졌다. 계속 작은 곳에만 있다가 그 6배정도에 달하는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초반엔 적응하기가 쉽진 않았는데 그래서 첫 한 두달간은 심지어 시간이 늦게가기까지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학습이 충분히 되고, 생활이 패턴화하면서 주변 자극과 새로운 학습자극이 부족해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급변하면 마치 어릴적처럼 시간이 다시 느려지는데 바로 그런 경험을 한 것 같다. 하여튼 그래서인지 올해 읽은 책은 85권에 불과하다. 작년 115권에 비해 무척 적어졌고, 목표인 연간 100권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쉬운 한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책을 거의 보지 않았는데 이것도 읽은 권수의 감소에 영향을 미친 듯 하다. 반면 미래책과 과학책 교육분야의 책을 많이 보았다. 읽은 책을 분야별로 정리해보았다. 


인문철학[8권]

자유론, 지리기술제도,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후불제 민주주의, BTS와 철학하기, 무엇이 옳은가, 공정하다는 착각, 의무란 무엇인가

미래[10권]

트렌트코리아2022, 세계미래보고서2022, 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 NFT 사용 설명서, 수소경제, 메타버스시티,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용설명서, 세계미래보고서2023, 세븐테크, 2045인공지능미래보고서

과학[17권]

생명이란 무엇인가, 암흑물질과 공룡, 열두 발자국, 모든 순간의 물리학, 엔트로피,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비만의 종말, 파란하늘 빨간지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애니멀 카인드,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단 하나의 방정식, 탄소로운 식탁, 센스 앤 넌센스, 떨림과 울림,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문학[4권]

클레이의 다리, 소마,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관객모독

교육[22권]

로컬에듀, 포노사피엔스를 위한 진로교육, 어린 시민,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 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트라이앵글의 심리, 우리는 청소년 시민입니다, 초등6년 글쓰기 캠프,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2025 미래교육 대전환, 교실 속으로 간 이해중심 통합교육과정, 교사교육과정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까, 학교의 미래 전문적 학습공동체로 열다, 과정중심피드백, 디지털지능, 한발앞선 부모는 인공지능을 공부한다. 교육을 가로막는 벽, 미래의 교육을 설계한다.자폐아들과 아빠의 작은 승리, IB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시험,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

사회[5권]

생명가격표, 좌우파 사전, 언론혐오사회, 시험능력주의, 두려움 없는 조직

역사[7권]

중앙아시아사,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폭격기의 달이 뜨면, 역사의 역사, 유라시아 역사기행, 첨단*유산,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경제[1권]

잠깐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예술,건축[6권]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1, 2권, 반고흐 예술의 편지1-2권, 공간혁명, 컬러의 힘

지리[4권]

지리의 힘 2, 앞으로 100년 인류의 미래를 위한 100장의 지도, 지도위의 붉은 선, 지리학이 중요하다.

경영투자[1권]

나는 대출없이 0원으로 소형아파트를 산다


다음은 올해 읽은 책 중 10권이다.

10.컬러의 말

이 책을 읽기 전 사실 색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공간심리학에 이어 색채심리학이 있듯 주변의 색채가 사람들의 정서와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모르게 크다.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여 준 책이기에 꼽았다. 물론 원래 색에 대해 잘 알고 관심있는 분에게 대단한 책은 아닐 것이다.



9.시험 능력주의

한국의 망국적 시험능력주의를 잘 지적한 책이다. 한국의 시험 능력주의는 정작 능력을 평가하지 않으며, 가진자가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지며, 그 통과자에게 과독한 혜택을 부여해 부작용을 초래하고, 교육의 본질을 파괴한다는게 책의 골자다.



8.미래의 교육을 설계한다.

미래의 교육은 교과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지금 당장 세상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구성해야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교육에 대한 상당히 신선한 실천적 시각과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7.좌우파사전

한국의 좌우파는 갈등이 매우 심하다. 좌파의 우파를 지지하면서도 그들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이 책을 봐야할 것이다. 우파는 경제적으론 자유와 불평등을 당연시 하며 성과를 얻기 위한 공정한 게임을 강조한다. 때문엔 교육은 경쟁구도를 선호하며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동정하나 동등한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북한이나 성소수자 등을 부정하며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 반면 좌파는 협력을 강조하며 문화적 다양성과 소수자를 옹호하고 지원하며 사회적 양자를 보호하는데 주력한다. 이들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교육을 강조하며 경제적으로 분배를 옹호한다.

6.지도위의 붉은 선

지리적 요소 뿐만 아니라 문화 경제적 요소도 지리학적 관점에서 잘 풀어서 쓴 책이다. 책에선 독일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를 다루고 있으며 재미나고 독특한 점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후위기 부의 집중 같은 최근의 주요 세계적 현안도 역사 지리적 관점에서 다룬 다는 점이다. 지리의 힘 같은 책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추천한다.


5.암흑물질과 공룡

공룡이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거대한 소행성으로 인해 멸종된 것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왜 떨어졌는지에 대해선 딱히 설명이 없는데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을 그 원인으로 찾은 것이 이 책이다.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데 우주는 완전 균일하지는 않으며 우리 항성계는 때론 암흐물질이 더 많아 소행성이 몰린 오르트 구름대에 섭동이 가해지는 현상을 주기적으로 겪게 된다. 이로 인해 태양계의 중심으로 소행성대가 향하게 되고 과거에 이것은 지구의 표면을 때려 우리가 금속을 손쉽게 얻게 해주었으며 가장 최근엔 공룡의 멸종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4.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요즘 우영우가 유행하며 자폐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지만 사실 원조는 영화 레인맨이다. 그리고 우영우의 자폐인은 드라마의 전개상 어쩔수 없긴 하지만 상당히 비현실적 자폐인이다. 자폐인중 극히 일부만 갖는 서번트 신드롬을 갖는데다가 의사소통 및 공감이 거의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자폐인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여튼 이런 자폐의 역사를 미국에서 지난 100년간 살펴본 책이다. 최초의 자폐진단, 그리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지원을 받기 위한 지난 수십년간의 노력이 담겨 있다.


3.생명가격표

생명은 마땅히 값으로 헤아릴 수 없으나 우린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생명을 읽게 한 사람에 대해 보상을 치루게 해야한다. 때문에 생명을 돈으로 치는 가격표는 사실상 어느사회나 존재한다. 책은 놀랍게도 생명 자체에는 값을 매기지 않는 현실과 사회의 강자들이 약자의 생명에 대해 얼마나 가중치를 낮게 두는지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책은 주로 미국의 사례인데 그나마 이들의 보상치는 한국보다 훨씬 높다.


2. 지리의 힘 2편

지리의 힘 1권에 이어 나온 2권이다. 1권이 주요 강대국을 다뤄다면 2권은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들이다. 호주, 이란, 사우디, 그리스, 에디오피아 등을 다룬다. 특히, 이란과 사우디, 그리스, 에디오피아는 모두 인접한 편이라 상당히 연관성을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책은 말미에 우주를 새로운 지리의 영역으로 편입하고 다루는데 지극히 당연하며 앞서가는 조치란 생각이다. 현재까지의 전쟁과 지리는 어떻게 보면 평면이었는데 우주 시대로 인해 앞으로는 3차원이 된다. 지리의 힘은 최근 1-2권을 묶어 리커버 판이 나왔다.


1.엔트로피

우주는 엔트로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작은 점 같은 것에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이 모여있다가 극히 약간의 요동에 펴져나갔으며 역시 매우 짧은 시간에 매우 커진 후 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는 물질과 에너지가 질서정연한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의 이전으로 이것이 확률적으로 더 일어나기 쉬운 상태이다. 우주의 모든 역사는 이 진행과정이며 이것이 모두 끝나는 날이 모든 것의 끝이 된다. 인간과 우리 항성계 같이 엔트로피가 낮은 고도의 것들은 이 법칙을 위협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다른 지역의 엔트로피를 더욱 높여 법칙을 위배치 않는다. 인간은 환경을 파괴하고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며 지구라는 닫힌계의 엔트로피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이는 당연히 다른 생물체를 파괴하는 일이 되며 점점더 낮은 엔트로피를 얻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 문명의 발달과 에너지 소비가 다른 문명의 파괴 및 우주의 파괴를 앞당기는 것이라는 견해를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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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판타지 - 포르노라는 신화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파헤치다
매트 프래드 지음, 임가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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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는 포르노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매매춘에 대해선 거의 모든 나라가 비교적 엄격하게 불법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포르노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포르노가 다른 예술품 및 표현물과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이미 상당히 큰 산업규모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포르노는 10년정도 전에 미국에서만 연간 130억 달러의 산업 규모를 형성했으며 세계적으로는 200억 달러에 달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 그 두배나 1.5배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업규모가 큰 만큼 소비층 및 생산자도 다양하고 많다. 밀레니얼 남성의 63%, 그리고 여성의 23%가 일주일에 적어도 여러차례 포르노를 시청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트래픽이 가장 많은 100만개 사이트 중 42337개가 포르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포르노는 매매춘을 뜻하는 prone에 글이나 삽화를 의미하는 graphos가 합성된 것으로 매매춘을 표현하는 글이나 그림이 된다. 포르노는 다른 것과 구분이 어렵긴 하지만 성적 흥분을 일으켜 자위를 하게 만드느냐의 여부가 가장 결정적 차이다. 예술품이나 다른 표현물들은 수용자를 그런 상태로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자는 포르노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생산자 이외에는 모든 이들에게 부정적 역할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포르노를 보는 남여 성인들 및 미성년자 그리고 포르노에 출현하는 여성들이 피해자가 된다. 

 우선 출연하는 여성들이다. 한때 사회 분위기가 동서양을 통틀어 가부장적이어서 여성의 성욕 및 성이 억압된 적이 있다. 때문에 여성의 과감한 포르노 출연과 포르노 소비가 이런 억압된 여성의 성의 해방구나 탈출구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포르노에 출연하는 여성들은 대개 수동적 자세에 취하며, 공격적인 언어나 신체폭력에 노출되기 쉽상이다. 이런 매체에 대한 출연 및 소비를 성의 해방이나 탈출로 볼 수 있을까? 

 또 다른 긍정적 주장은 포르노를 통해 여성의 권력이 신장된다는 주장이다. 일부 여성 출연자들이 스타덤에 오르기에 이런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성이 포르노에 출연하는 것은 대개 세 가지 이유 때문인데 명성과 수익, 성욕이다. 여성출연진은 남성출연진에 비해 두배가 넘는 급여를 받으며 일부 출연자들은 명성이 높아져 자기만의 브랜드나 프로그램알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수익은 착취하는 남성 생산자로 향한다. 또한 여성은 출연과정에서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이는 성공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은 포르노에 출연하며 많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언어적 신체적 폭력이 많다. 2007년 304건의 포르노 영상을 조사한 결과 3376건에서 언어 신체폭력이 나타났으며 이는 영상의 매 1분 30초마다 폭력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장면의 88%에서 뺨때리기, 재갈물리가, 머리채 당기기, 엉덩이 때리기 등의 신체폭력이 등장했다. 언어폭력은 장면의 48.7%에서 나타났으며 폭력의 주제는 73% 당연히 남성이었다. 여성이 폭력의 주체로 나타난 경우도 상대 남성을 향하기 보다는 같은 출연 여성을 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포르노에서 언어신체적으로 얻어맞는 여성은 긍정적 반응을 보여야한다. 무려 95%에서 여성은 폭력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포르노의 장면들이 이렇게 구성되기에 여성 출연진은 많은 폭력을 감내해야 하고 격렬한 정사장면등의 촬영으로 신체가 파괴되거나 상당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포르노의 소비자인 남성도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된다. 포르노에 자주 노출되는 남성들은 성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여자 친구 및 아내같은 자신의 성적 파트너와 정상적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여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갖게 된다. 포르노를 거부하는 노팸이란 집단이 있는데 이들의 64%는 이전에 극단적 포르노 중독자였다. 이런 중독자들의 19%에서 조루증, 25%가 파트너와의 성관계에 흥미를 잃었고, 31%가 절정도달에 여러움을 34%가 발기부전을 겪었다. 하지만 노팸이 된 후 이들의 60%가 성기능이 개선되었다고 대답했다. 포르노는 강한 자극을 주어 중독과 비슷한 작용을 뇌에 일으키는데 그래서 포르노를 자주 접한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자극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때문에 이런 성기능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게일다인스는 포르노를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우선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이다.  포르노는 남성우위의 시각에서 촬영되며 여성은 마치 남성의 성적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때문에 이런 시각이 정립된다. 둘째는 사용자가 성적판타지에 빠져 이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성적 파트너가 포르노에 등장하는 인물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비슷한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셋째는 성적 학대 메뉴얼의 제공이다. 실제 1962-1995년 12323명을 대상으로 46년간 진행한 연구결과 포르노를 자주 접한 사람들은 비정상적 성적 취향(31.5%), 성폭력을 저지를 가능성(22.5%), 강간에 대한 잘못된 통념 수용(31%)이 증가했다. 

 저자는 포르노는 너무 많은 성적 판타지와 가학적 장면을 보여주어 결국 시청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대하는 사람이 인간이며 존중받아야할 인격체라는 사실을 망각시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포르노인해 포르노 출연 여성과 자신의 성적 파트너는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는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때문에 이런 포르노를 사회적으로 금기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본질을 헤아리며 피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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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말 : 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 컬러 시리즈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이용재 옮김 / 윌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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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무척이나 색이 다채롭고 화려하며 가격이 싸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화학이란게 발달하기 전까지 인간은 색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무척이나 지난했고 위험했으며 원료도 적었다. 그래서 색을 특정 계급이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로마 황제의 보라색은 무척이나 귀했기에 고약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색이 될 수 있었고 귀한 청금석에서 나오는 울트란 마린이란 파랑은 값비싼 그림이나 성모마리아의 색이 될 수 있었다.

 책 컬러의 말에는 이런 색들의 종류와 의미 과거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수록되었다. 약간 백과사전식 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이런 측면에서 컬러의 힘보다는 다소 읽기 힘들고 깊이가 부족하단 느낌이다. 

 서양은 동양과 다르게 색을 회화에서 화려하게 쓰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다. 서양에서도 색은 부족했고 그래서인지 과거 소묘가 순수와 지성을 상징했고 채색은 천박하고 여성적이라고 천시했다. 하지만 색이 많이 확보되기 시작하며 이런 경향도 변화한다. 

 흰색은 타자성을 품고 배타적이고 전제적이며 신경질적이다. 과거엔 흰색으로 리드화이트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맹독성이었다. 그래서 사용자와 제조자는 납중독에 걸렸다. 백악도 흰색으로 많이 썼다. 백악을 물속에서 갈고 닦으면 켜켜이 갈라지는데 맨위의 가장 곱고 하얀 켜가 파리 화이트로 고급 흰색이었고 아래 급이 낮은 것들이 백악 초크로 미술에 많이 사용되었다. 

 노랑은 인간에게 질환의 전조색이다. 그리고 황색재난, 나치가 유대인에게 부여한 노란별 등 선정주의에도 잘 쓰는 색이다. 하지만 노랑은 가치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금발은 서양에서 이상적인 머리색으로 취급된다. 중국에서 노랑은 포르노와 황제의 색이고, 인도에서는 영혼세계의 색이며 노랑은 무엇보다 황금의 색이다. 금발은 서양에서 타락한 성적 이미지의 색이면서도 인기가 좋아 동화주인공의 절대다수가 금발이다. 미술에서 금박은 밝은 부분은 흰색, 어두은 부분은 검은색으로 만들어버려 효과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의 가치로 인해 금박은 사용되었다.

 빨강은 권력과 더불어 욕말 및 공격성 같은 치열한 색이다. 그리고 매춘부의 색이자 악마의 색이기도 하다. 빨강은 권력과 강하게 연결된다. 영국군의 레드코트와 로마장군의 색이다. 또한 국가정체성에 가장 인기가 있는 색으로 빨강이 사용된 국기는 75%나 된다. 빨강은 성적 매력으로 작용해 빨강은 입은 여종업원은 남성고객에게 팁은 26%나 더 받는다고 한다. 반면 성적은 떨어뜨리고 스포츠 경기력은 올려준다. 

 보라색은 특별하고 권력을 상징하는 색이다. 로마 집정관의 색이고 통치자의 색이다. 4세기 로마에서 보라는 오직 황제만이 사용했으며 위반자는 사형이었다. 비잔틴의 여왕은 왕손을 짙은 와인색의 방에서 출산했다고 한다. 

 파랑색은 의외로 서양에서 폄하되왔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빨강 검정 흰색을 삼색으로 숭상했다. 특히 로마인에게 파랑은 야만의 색이었다. 야만으로 대적한 켈트인이 이를 몸에 발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대 이집트는 파랑을 선호했다. 변화는 12세기에 시작된다. 프랑스의 유력귀족이자 고딕건축의 신봉자인 에보르 쉬제르가 신의 색이라며 파랑을 신봉했다. 그는 생트비 수도원 재건축을 감독했고 장인들이 유명한 코발트색 창문을 만드는 기술을 사용했다. 동정녀 마리아는 원래 어두운 색을 입었는데 이것이 파랑으로 변모한다. 그래서 중세부터 마리아의 색은 귀한 염료인 울트라 마린으로 바뀐다. 파랑 중 하나인 인디고는 인도에서 와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인디고는 교역로가 단순하면서도 통과지점이 많아 가격이 매우 비쌌다. 서양의 신항로 개척이 이뤄지고 식민지가 생겨나자 가격이 하락했고 19세기 말 인공인디고가 개발되자 평범해졌다. 파랑은 천대의 색에서 귀한 색이었다 평범해지며 오히려 대중의 색이 되어버렸다. 청바지가 대표적인데 청바지의 파랑은 패션의 민주화를 상징한다. 

 녹색은 시골의 편안함과 환경친화적 장치를 연상시킨다. 많은 문화권에서 녹색은 정원이나 봄과 연결되며 긍정적이다. 낙원이 곧 정원을 뜻하는 아랍권에서는 녹색은 12세기에 주도권을 잡는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랑한 낙원의 색이 녹색이다. 그래서 이후 아랍권의 국기는 녹색이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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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이 되었다. "해가 바뀌는게 뭐가 대순가. 그냥 인위적으로 인간이 지구의 공전주기 규칙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 것 뿐인데." 라고 되네이면서도 난 늘 그렇듯 연말 해넘어가는 방송을 늘 생중계로 시청한다. 다른 가족들은 거의 항상 이른 잠자리에 들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 보고야 만다. 재야의 종소리도 오랜만에 들었고 새해 카운트 다운은 늘 듣는다. 생각보다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남들이 이 시기를 좋아하는 분위기라도 즐기는게 확실하다.

 12월 초에 직장에서 회식을 했다. 학생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직장 동료 대부분이 3-4월에 코로나를 앓았다. 난 우리 부서 중 유일한 순종 무감염자였는데 이를 과시하듯 연말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직장에서 연말에 상줘야한다고 으스댔다. 다들 어이 없다는 듯 쳐다보았는데 바로 다음 주인 12월 둘째 주 어디선가 코로나에 걸려온 큰 아들 녀석에 의해 감염자가 되고 말았다. 하여튼 쓸데없는 말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직장 특성상 12월은 무척 바쁘다. 사실 3월과 더불어 가장 바쁜 시기인데 나의 직책은 12월이 정말로 더욱 더 바쁘다. 그런 시기에 일주일을 일을 못잡고 날리니 무척이나 속이 탔다. 물론 원격으로 상당부분 처리하긴 했지만 그럴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일주일의 격리 후 복귀하여 다시 밀린 일을 따라잡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집둥이라 어디 잘 안나가도 잘 버티는 성격인데 생각보다 일주일간의 격리는 힘들었다. 그리고 코로나는 생각보다 아팠다.

 하여튼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왔다고 생각하던 무렵,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만 2009년 4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지주막하출혈이었다. 당시 부동산을 하시던 엄마는 머리가 무척 아프다고 아버지께 연락을 했다. 아버지와 동생이 부랴부랴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혈관이 터졌다. 목격한 동생의 말로 몸의 구멍에서 모두 피가 스며나왔다고 했다. 의사는 이 부분의 출혈은 수술을 해도 생존률이 30%정도이고 살아남아도 손상이 심해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고 했다. 아버진 수술을 고민했지만 당시 어렸던 나와 동생 그리고 뇌출혈이 휴유증이 뭔지 모르는 가족들은 수술을 감행했다.

 그렇게 엄마는 14년을 와병했다.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머리약간과 오른팔 약간에 불과했고, 정신은 중증 치매에 가까웠다. 수술 한달 정도 후 의식을 차렸고 좋아지는 듯 했지만 적극적인 치료에도 상태는 내리막이었다. 요양원에서 9년 요양병원에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돈은 돈대로 많이 나갔고, 어느 순간부터 일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지도 오래되었다. 엄마는 내 안에서 서서히 죽어갔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본가를 찾아 엄마를 봤다. 코로나로 요양병원은 상당히 엄격한 면회 제한을 했기에 실제로 뵙는건 거의 2년만이었다. 멀쩡할 무렵 나처럼 무척 살이 많던 엄마는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눈도 잘 뜨지 못했다. 다행이 데려간 다섯 살 둘째 녀석이 할머니가 신기한지 옆에 누워 30분 이상 장난질을 쳤다. 이게 엄마에게 괴롭힘이었는지 재롱이었는지는 난 알길이 없다. 그냥 좋아하셨을 것 같은 느낌 뿐이다.

 오후 3시에 집으로 돌아가 7시가 될 무렵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본가로 돌아가 장례를 치뤘다. 최근 코로나 창궐과 강추위로 사망자가 많아 장례를 크리스마스부터 치뤘다. 다행히 상조를 가입해 두었다. 이거나마 없었다면 정말로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오래 누워계셔서 언젠가 이런 날이 올줄 알았고 그래서 괜찮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건 그것이고 실제로 돌아가심은 무척이나 달랐다. 

 그렇게 12월이 가버리고 1월이 왔다.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여 엄청나게 쌓여있는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간 내 직장생활에 야근은 없었는데 벌써 3일째다. 2022년의 12월은 정말 아픈 달이었다. 이런 시기가 다시 있을까 싶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10일이 지났지만 지금도 문득, 갑작스레, 아무이유없이 불연 듯 생각이 난다. 그럴때 마다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죄송해요, 또는 잘 살께요다. 종교도 전혀 믿지 않고 생물체가 죽으면 원자 수준에서 다른 무기물이나 유기물의 일부로 구성된다고 믿으면서도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 계시고 평안하며 나와 가족을 바라보고 지켜주실 거라 믿는다. 내가 운이 없다면 가까운 시일내에 천수를 누린다면 다소 훗날 죽겠지만 그 순간에도 찾는건 엄마가 될 것 같다. 사람은 늘어서도 어려서도 항상 엄마를 찾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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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3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연말연시에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날씨가 많이 춥네요.
따뜻한 밤 되세요.

닷슈 2023-01-04 21: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연말연시에 이런 일이 있다보니 참 뭔가 그랬습니다.

mini74 2023-01-03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닷슈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뮤슨 말이 위로가 될까싶습니다. 그냥 토닥토닥 손 한 번 꼭 잡아드리고 싶네요.

닷슈 2023-01-04 21:57   좋아요 0 | URL
미니님은 참 착하신 것 같습니다. 글을 보면 항상 그렇습니다.

scott 2023-01-03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만에 만난 어머님 ㅠ.ㅠ
마지막 순간 손주의 사랑 느끼고 떠나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 하기 힘들지만
닷슈님 어머님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닷슈 2023-01-04 21:57   좋아요 1 | URL
둘째가 큰 일 했다 생각합니다. 다른 인척분들은 큰 아들인 저와 손주 보는 걸 기다렸다가 가신 거라 말씀들 많이 하시더군요.

책읽는나무 2023-01-04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시군요.
코로나 후유증도 심하던데, 마음 추스리시는데 더욱 힘이 드시겠습니다.
엄마는 늘 찾게 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저는 몇 년이 되었는데도 어제 소설을 한 권 읽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고 그립고 그렇더라구요.
어머님 아픔이 없는 편안하고 좋은 곳에 가셨길 기원드리겠습니다.

닷슈 2023-01-04 21:58   좋아요 1 | URL
인간에게 엄마는 정말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파엘 2023-01-04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닷슈 2023-01-04 21: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1-04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14년동안이나 투병하셨다니 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마음 잘 추스리시고
건강도 잘 회복하시기 바래요^^

닷슈 2023-01-04 21:59   좋아요 1 | URL
14년은 정말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 긴 기간 내내 엄마는 요양원 병원 천정만 보고 사셨습니다. 그게 정말 아픈 부분입니다.

호우 2023-01-04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어쩌면 바쁜 생활이 지나고 문득 한가해질 때 더 허전하고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닷슈님. 마음 잘 추스르시고 건강하세요.

닷슈 2023-01-0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오히려 한가해지면 더 생각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일이 마무리 되어 가거든요.
 
의무란 무엇인가 - 마스크 시대의 정치학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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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사회 시민에겐 권리와 의무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부여된다. 하지만 권리는 주로 나의 생존권과 행복추구와 직접적 관련이 있기에 누구나 환영하고 주장하는 반면 국가와 사회, 이웃을 위해 나의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는 의무는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 의무는 약간의 원죄까지 있다. 시민사회가 성립하기 이전 사람들이 신민이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그들에겐 이렇다할 권리는 없고, 일년 내내 수확한 작물을 절반 가량 지주에게 빼앗기고, 국가에도 바치며, 노역에 시달리는 의무만이 가득했다. 물론 국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기근이나 흉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지키긴 했다. 하지만 백성 자신은 물론 국가까지 그것을 백성의 권리라고 생각해본적은 감히 없었다.

 그러다 시민사회가 들어서며 신민은 시민이 되고 기본권을 바탕으로 한 권리가 생겨난다. 이 시기가 19세기 무렵이다. 19세기 이후엔 국가에게 시민의 행복을 증진시킬 의무가 생겨난다. 민주주의로 인해 공화정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의 행복 추구는 반드시 충돌하는 지점이 생겨나기에 국가에겐 이 시기부터 인권과 시민권 그리고 이것을 갖고 있는 개인간의 권리와 의무의 조화를 어떻게 실현시키는가가 지상과제가 되었다. 

 생체정치 개념도 등장한다. 생명정치 또는 생명관리 정치라고도 하는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노동력과 소비자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그런 차원에서 국가가 체계적으로 국민의 몸과 건강, 수명, 인구를 관리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과거 국가도 중시했던 것이긴 하다. 국가에게 국민은 국방, 세금의 징수대상이었기 때문이며 호구가 많은 것은 곧 어느정도 국력이란 인식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생체정치는 차원을 달리한다. 우선 국민의 생명과 건강, 최소한의 경제권이 기본권 달성의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추구권, 인권 등의 기본권은 당연히 육체적 안녕이 보장될때야 의미가 있다. 죽은 사람이나 뇌사자, 혹은 견딜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자에게 교육받을 권리,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권리 따윈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는 국가가 근현대 사회에 이르러 이런 생체정치를 추구할만한 제도적 기술적 과학적 수단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같았으면 돌림병이 번져도 그 근원과 이렇다할 해결방법을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적극적 예방접종과 치료수단, 방역지침을 수행할만한 행정적 권력과 제도를 갖고 있다. 

 때문에 공중위생은 19세기가 지나는 동안 점점 더 중요한 국가의 의무가 되었다. 생체정치는 사회정치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국가는 두 가지 책임이 있는데 하나는 개인의 행복추구이며 다른 하나는 공공의 이익이다. 양자는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기본권이 국가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의무로 인해 시민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민주시민사회에서 국가의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의무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생산성과 효율성, 창의성을 높여 국부를 최대로 증진시키기에 국가의 입맛에 딱 맞는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기본권과 공공의 이익을 침해한다. 불평등과 환경오염, 시민 개인간의 공공성을 흐트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지배한 20세기 내내 불평등과 경쟁을 옹호하는 것과 평등과 연대의 옹호간의 기나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코로나 19사태다. 코로나 19를 맞아 실시한 대부분 민주 국가의 방역 정치는 연대적 생체정치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 혹은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적극적 방역 정치를 행하지 않는 것은 코로나에 가장 취약한 상대적 약자를 먼저 의도적으로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코로나 정책을 행하지 않아도 부유층은 소득에 큰 지장이 없고 안전하고 쾌적한 곳에 격리될 수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웬만한 생활을 다 누릴수 있다. 하지만 그런것이 모두 없는 빈자층은 죽음과 감염을 피하기 어렵다. 이처럼 국가가 사회의 전체적 효율을 중심으로 의무를 방기해 약자를 의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사회적 다윈주의로 파시즘정권이 행했던 일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민주국가는 약자 보호의 조치를 통해 시민의 일상적인 삶에 개입하고 기본권을 일시, 부분적으로 제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처럼 두 기본권이 충돌을 일으킬 때는 국가는 어느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당연히 생명권이 우선이 된다.  

 이렇게 국가의 방역이 당연하다고 해도 문제가 되는 두 가지 측면이 남아있다. 첫째는 국가의 위생조치가 팬데믹을 막을 만큼 효과적이었는가, 그리고 둘째는 이처럼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코로나의 경우 방대한 방역을 벌였음에도 그와 유사한 피해는 주는 다른 상황에 대해 국가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라는 문제다. 전자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므로 언급하기가 어렵지만 한국의 경우가 가장 모범 사례로 꼽힌다. 적당한 개방과 자유를 추구해 시장과 인권을 지키면서도 방역수준을 높게 가져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적 방역을 우선한 중국이나 초기 많은 죽음을 불러온 이탈리아나, 미국의 사례는 좋지 못한 사례다. 두번째의 경우 사례로 들만한 것은 흡연이나 음주, 안전사고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이 불어오는 인명의 손실은 코로나 이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타인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으며 개인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해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자본주의로 인해 흐트러진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그 해결방안으로 은퇴후 2년간 주당15시간의 사회적 봉사활동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고 사회의 약자의 생활을 느껴보는게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독일사회의 반발이 많았는지 변명도 꽤 길게 써놓았다. 저자가 보기에 코로나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 혹은 국가에 대한 음모나 권리침해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반대한 사람들은 결국 의무를 저버린 자들이 된다. 여러 그럴듯한 이유로 사회적 약자이자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간 직접적인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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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15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닷슈 2022-12-15 22: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세요. 눈 조심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