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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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전편 <천사들의 제국 1>이 순한 맛이라면 왠지 이번 <천사들의 제국 2>는 약간의 마라맛이 가미되었나고나할까? 미카엘 팽송만의 더 고뇌에 걸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관리하는 세 명의 인간들, 프랑스인 자크와 미국인 비너스, 그리고 러시아인 이고르까지... 왜 그들은 팽송과 어긋나 있을까... 흡사 그들과 팽송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날때는 정성껏 돌봐야한다. 왜냐면 아직 어린 자식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줄을 모르기때문이다. 그 자식이 성장한 후에는 어떠할까? 부모의 눈에는 아직도 아이이다. 그들의 모든 것은 어설퍼보일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스스로 독립적이다고 외쳐도 이미 그들의 처음을 보아버린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어리석어 보일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한다. 부모의 존재란 아이를 독립시켜 사회로 내보는 것, 거기까지 할 일을 해야한다. 그들의 인생에 잠입하여 아무리 인생의 조언을 쏟아내줘봤자 그들은 이미 성인이며 받아들이는 것 역시 그들의 마음이다.

<천사들의 제국 2>편에서 미카엘 팽송은 자신이 관리하는 인간들에게 예전만큼 더 이상 적극적이지는 않는 듯하다. 자신보다 먼저 천사가 된 라울, 그리고 프레디를 만나면서 미카엘의 천사로의 삶도 한층 더 풍요로워진 듯하다. 더 이상 인간에게 온 마음을 쏟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새로운 탐험에서 또 다른 은하들을 만나면서 거기서도 지구과 같은 시스템을 발견하는 미카엘 팽송... 아...과연 은하의 끝은 어디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관의 확장은 진실로 놀랍다. 책 중간 중간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도 등장하고 어찌보면 베르나르의 소설들은 모두 개별적이지 않고 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마 그것의 절대적인 물음 하나가 있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천사들의 제국2 >말미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책을 쓰면서 벌어진 일들이 적혀있다. 뜻하지 않게 벌어진 일들이 이 책을 쓸때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아소르스에서 야생 돌고래들과 스쿠버 다이빙을 한 일...아마 이 일을 계기로 돌고래족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 <나전 여왕>을 촬영한 것, 또한 프로방스 지방의 메르베유 골짜기 탐험이라던지 니스 천문대에서의 일식 관찰... 이 모든 일들이 이 책 속에 녹아있다. 자세히 천천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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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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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천사들의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예전에는 막연하게 천사란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천사의 삶은 왠지 인간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은 것같다.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 그것은 여타의 관리자의 일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환생 역시 그러하다. 인간이 환생하는 것... 전에는 환생을 대단한 거라 생각했다. 본래의 생을 잘 살아야 나중에 환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다르다. 죄가 많으면 환생한다. 다시 또 굴곡 진 인생을 살아내야하는 것이다. 여기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생이 목적이 아니라 환생을 지양하며 오직 성불을 목표로, 즉 깨달은 자를 목표로 이 생의 삶을 수양이라고 여기면서 사는 것... 과연 환생일까? 성불일까?

갑작스런 죽음, 비행기 사고... 맞다. 비행기 사고처럼 갑작스런 것도 없는 것이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져 죽다니... 그 후에 이어진 심판들... 왠지 심판은 공정하지 못한 느낌이다. 하물며 영화 [신과 함께]를 보아도 재판은 여러번을 걸쳐서 여러 신을 만나 이루어지는데, 왜인지 소설 속 심판은 심심하기 짝이 없다. 결국 대천사들의 심판에서 미카엘은 환생과 천사로의 생 중 후자를 선택하게 되어 환생은 면?하게 된다. 과연 그것이 더 나은 것일까?

미카엘 팽송은 이제 수호천사가 된다. 수호천사의 자격을 얻은 미카엘 팽송은 세 인간의 삶과 함께한다. 그들을 변호하고 지켜야되는 임무가 그의 새로운 역할이다. 또한 팽송이 관리하는 인간이 나중에 죽어서 영계로 왔을때 그들을 최대한 변호해서 환생의 벌을 막아야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미카엘의 수호천사가 그를 변호한 것처럼 말이다.

미카엘은 세 명의 영혼을 태어날때부터 관리한다. 흡사 수호천사란 대모,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육체의 어머니는 따로 있지만 정신, 즉 영혼의 어머니는 수호천사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 나오는 전생의 세계관은 몹시도 흥미롭다. 인간이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라 광물이거나 다른 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 역시도 말이다.

아.. 마카엘은 과연 인간의 선택에 얼마나 관여할 수 있을 것인가? 미카엘이 관리하는 인간은 과연 그의 말대로 잘 따라올 것인가? 선택이란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천사들의 제국2에서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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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5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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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민음사 (펴냄)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다. 전혀 다른 결말이었다. 나는 그냥 프랑수아즈가 영원히 그자비에르를 떠날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프랑수아즈가 그자비에르에게 보인 집착 혹은 성정은 강렬했다. 오히려 둘은 서로가 원래가 하나인 양 생각이 된다. 최초에 하나인 자가 둘로 갈라져서 둘 중 하나를 없애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도 싶다.

소설 [초대받은 여자]를 쓸 때 보부아르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능력 혹은 성정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주인공인 프랑수아즈는 해냈고, 해낼 것이니까 말이다. 그것도 그 자신의 능력과 선택으로 말이다. 보부아르는 유독 글을 쓸 때 그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자신의 선택, 자기 선택의 능력을 말이다. 아마 철학적 생각을 어릴 때부터 즐겨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해온 성향상 그녀는 무언가 한 가지를 할 때도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왜 이러지? 이건 뭐지? 왜 안돼? 뭔가 잘못된 거지?... 아... 한마디로 생각이 너무 많다. 그 생각 많음은 자기 자신으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에서 오는 것일까? 보부아르는 끊임없이 그런 유들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관찰하는 여성이었다. 절대 한순간도 허투루 살기 싫어하는 사람이랄까? 그러기에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었을 것이리라.

프랑수아즈는 그자비에르에게 무언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스스로 그녀를 선택했고 그녀를 망가뜨렸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기에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 자신의 못 본 척할 수 없는 말썽꾸러기 자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 스스로 낳았으니 그녀가 해결해야 된다. 그것만이 프랑수아즈 자신과 그자비에르를 원래대로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이 인간이란 존재가 과연 그렇게 위대한가이다. 보부아르가 실험했던 그 어떤 제약도 없는 삼각연애란 그녀 스스로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이었다. 과연 이런 실험이 맞는가?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아니었나? 아니면 실험을 기꺼이 제안하고 응한 그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만심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 관계는 이기적이다. 둘의 관계는 오직 둘만이 알 수 있다. 최근 획기적인 가족 실험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다섯 명의 여성과 사는 한 명의 남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평온하게 말이다. 생각할수록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 속을 더 들여다보고 싶기도. 보부아르라면 과연 어떤 말을 해줬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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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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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민음사 (펴냄)

소설은 꽤 흥미이었다. 유독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전적인 이야기와도 같은 내용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으며 그녀가 생각했던 사랑과 존중의 의미 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세 인물 프랑수아즈, 피에르, 그자비에르는 현실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어가고 있는 사랑과 연애를 둘러싼 모든 모순적인 이야기들의 삼각관계들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프랑수아즈는 보부아르를 연상시키고 피에르는 샤르트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이 보부아르의 첫 장편소설임을 짐작하게 할 때 역시 아 그렇구나 하는 수긍도 가는 것이다. 샤르트르와 제자 올가 코사키에비치는 흡사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를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그 삼각관계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나 홀로 분투하는 자는 프랑수아즈, 즉 보부아르 자신이다. 흡사 자신이 벌어놓은 관계의 판에서 자신 존재의 심판자가 된다고나 할까... 열다섯 살에 철학으로 마음을 굳히고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여기서 떠올려진다. 그리고 난 왜인지 이 판에서 주인공은 프랑수아즈이고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의 실험대 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의미를 사랑과 존중과 더 나아가 인간의 모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에 대한 모든 것을 실험하려고 애쓰는 철학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시절 사랑의 이해라고나 할까...

초대받은 여자로 일컬어지는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 본인이 데려온 여자이다. 유독 마음을 써가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녀의 저돌적인 성질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불도저 같은 매력에 오히려 피에르보다도 먼저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결국 피에르와 그자비에르의 관계를 방관하는 처지를 초래한 것일 수도...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프랑수아즈가 결국 깨달았던 사랑의 이해는 무엇이었을까이다. 프랑수아즈가 피에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왜 그녀는 인간의 감정이 변덕스럽고 이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그로 인해 그녀 자신이 고통스러울 거라는 것도... 어쩌면 그녀는 그 고통 역시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이해해 보려 했을 듯하다.

아...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는 사랑이란 것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축복을 프랑수아즈에게 강요한다. 결국 프랑수아즈에게 남은 것은 선택뿐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 그녀의 마음을 말이다. 어쩌면 그녀 마음의 거울은 피에르와 그자비에르가 이미 비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2편으로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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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세 자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288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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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ㆍ세 자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내가 체호프에 대해서 생각한 것은 처음에는 왜 이렇게 사람들은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매력을 잘 못 느낄까 하는 부분이었다. 다들 단편소설의 아버지라느니, 체호프를 빼놓고서는 러시아문학을 논할 수 없다고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더 나아가서 그의 많은 희곡들이 상영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다시 그의 연극이 새롭게 각색해서 영화로도 탄생하는 것. 모든 것의 어쩌면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나의 눈에는 한편으로는 과대 포장되어 있는 과자 봉투와도 같았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체호프를 많이 몰랐다는 것...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왠지 러시아 문학하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대작을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그 풍경 역시 광활하게 연상이 되어 소소하게 일컬어지고 잔잔한 이야기는 왜인지 내 눈 한편으로 비켜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서 진작 중요한 이야기는 이런 유의 이야기들인데 말이다.

세 자매는 우선 유명하다. 러시아에 가면 어느 극장에서나 체호프의 희곡으로 극을 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유독 인기가 있는 것은 바로 세 자매이다. 러시아 말기 지방 소도시를 배경하는 이 작품은 프로조로프 일가의 세 자매의 일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1주기이며 막내 이리나의 명명일인 어느 봄날이 배경이다. 나는 이 작품을 뻬쩨르부르크에서 연극으로 본 적이 있는데 흐드러진 벚꽃 나무 아내로 연극배우들이 무대를 펼치고 향기 비슷한 것들이 주위로 올라왔는데, 유독 그 분홍색 벚꽃과 더불어 코를 매혹시킨 향은 아직까지 기억에 박혀있다.

올가, 마샤 이리나... 세 자매의 삶. 올가는 삶이 힘들다. 매일이 고단함의 연속이다. 올가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면서 먹고 살 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쉽사리 그만두지도 못한다. (꼭 현대인의 삶과도 같다.) 일찍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마샤는 결혼 생활에 지쳐있다. 그러던 중 베르시닌과 눈이 맞게 된다. 하지만 사랑을 맹세한 베르시닌은 군대와 함께 도시를 떠나게 된다. 노동만이 희망이라고 여기던 막내 이리나는 일에서 환멸만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사랑이 배제된 결혼을 하면서까지 모스크바로 떠나고자 하지만 좌절되고 만다. 그들이 극 내내 말하고 있는 아직 인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 결국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왠지 희망보다는 공허에 가깝게 들린다.

이 책에는 세 자매뿐만 아니라 아내라는 글도 실려있다. 모두 체호프의 삶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왜 체호프를 현대인들이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글들은 모두 옛 시절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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