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넥슨사 게임인 클로져스 사건부터 꾸준히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비판하고 또 비판했다. 그동안 비판하면서 이런저런 대립적인 의견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 의견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 계속 대립해왔다. 심지어 같이 막걸리 사발을 나누던 분까지 인터넷으로 논쟁을 펼쳤다. 나하고 친한 교수님에게도 이런 문제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 나의 투쟁에서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진보성향이나 한국의 진보인사나 지식인들의 한계를 보았다. 그건 자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재 보수(그건 보수도 아니지만)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는 점이다. 전에도 이미 마인드C 작가나 아동성추행 관련 글을 남긴 보육교사가 법정에 나가야 할 때 그들의 소송비나 관련 비용을 메갈리아4에서 지원한다고 했다.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가 관계성이 없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게다가 극단적인 워마드와 관련이 없다고 하나, 왜 그들은 처음부터 티를 판매한 돈으로 법정소송비를 지원할까? 아니라고 해도 뭔가 수상한 요소가 많았다. 나는 이제부터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를 동일하게 메갈리아라고 말하겠다. 이번에 사건이 크게 된 것은 Jtbc에 어느 중학생의 인터뷰다. 서울코믹행사가 아닌 동인행사장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음란물을 돈을 주고 판 행위다.

 

아동청소년에게 돈을 주고 유해매체를 판 것은 법적으로 심의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 그것도 수익을 위해 판매한 점, 게다가 미성년자에 대한 검증절차 없었다는 점이다. 그 수위는 남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성기를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항문섹스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것을 그린 자들은 웹툰작가와 관계성이 많았는데, 웹툰작가들이 웹툰시장이 자기들이 만들었고 독자를 우롱했으며,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자, 한번 덤벼보라는 식으로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신고가 들어가고, 경찰도 현장에서 판매자를 불구속으로 입건했다. 그뒤 반응이 한남충(한국남자)과 한남충의 유충(어린 남자아이)에 번식탈락이라 하던 자들이 어느 순간 청소년의 인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이 어디를 봐서 페미니즘을 위한 조직인가? 페미니즘이라 하면서 소라넷 폐지운동을 하던 자들이 어느 순간 자신들이 만든 포르노잡지에 대해 인권침해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소라넷을 닫은 것을 잘 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자신들조차 워마드에서 활동하는 자가 한남패치와 강남패치를 운영했다. 술집(고급)에서 일하는 여자나 혹은 남자들의 신원을 캐서 온라인에 올리는데, 치사하게 해외서버로 돌려 접속했다. 처음에 이런 사이트를 두고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불만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의 덜미가 잡히고, 둘 다 여성이 운영하는 불법사이트고, 한 사람은 워마드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자였다.

 

소라넷 폐지를 하되 남의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하는 사이트 운영되는 것은 용납되는 것인가? 상식적으로도 법적으로 명백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페미니즘운동이란 이름아래 한국의 경찰과 검찰이 여성에 대한 탄압을 한다고 한다. 무슨 영국 1910~20년대 서프러제트 운동하고 하자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다. 펭크허스트 여사를 비롯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경찰에 잡혀도 떳떳하게 감옥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죄가 곧 사회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라 말하며, 스스로 고통을 감내했다.

 

그런데 메갈리아 워마드들은 자신이 경찰에 걸려도 마치 아닌 것처럼 발뺌하고, 경찰서로 가자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밝히는 순간, 회사에서 어떤 처분을 받을지, 집에서 무슨 대접을 받을지는 이미 정해진 결과다. 잘못을 했다면 반성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하나, 이들에게 그런 게 있을까?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처럼 남자무죄 여자유죄라는 논리로 말한다.

 

메갈리아4에선 워마드의 한남패치 강남패치 여성운영진에 대한 소송지원금을 약속했다는 게 드러났다.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가 다른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게다가 강남패치와 한남패치 운영자들은 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메갈리아와 워마드 회원들은 강남역에서 이상한 포스터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이미 예전부터 이들이 페미니즘이란 탈을 쓰고 있던 패거리즘이란 사실을 알았는데, 확연히 이제는 다시 말할 수 있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사회적 병폐이다. 도대체 얼마나 범죄를 저지르고, 극단적 광기현상을 보여줘야지 사람들은 인식할까?


 

이들의 이중성은 참으로 돋보인다. 자신들이 죄를 지으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니라 한국의 경찰은 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자에게 강력하다는 말을 하고, 거기에 여자는 봐주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한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봐줄 부분은 근골계의 육체적 부분이지 그 이상의 사회적, 정치적 영역은 아니다. 남자가 생물학적으로 근골계가 강하여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짓거리는 양아치나 할 짓이지, 만일 그것과 무관한 것이면 동일하게 처분을 받아야 한다.

 

이런 메갈리와 워마드를 두고 페미니즘운동이라 계속 적어대는 한겨례,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그리고 은근히 숟가락을 올린 시사인, 자신이 여성학자의 거대지목이라 여기며 계속 메갈리아 운동을 지지한 정희진 교수, 이 사람들의 머리에서 이 사건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이 사건이 계속 뉴스와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데, 왜 그들은 침묵을 지킬까? 불편한 것을 말하려면 자신도 불편한 것을 감내하는 게 답이 아닌가?

 

나는 메갈리와 페미니즘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고, 앞으로 말할 것이고, 페미니스트가 될 생각은 없지만, 사상적 자유와 인간의 가치관에 대한 다변성에서 페미니즘이란 사상을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에 도움이 된 것은 도서사이트에 페미니즘 관련 책자가 많이 팔린 것이지, 앞으로도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의 메인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경악을 할 것이다. 나는 몇 번이라도 말한다. 기존의 한국사회가 남성(그것도 돈 많고 권력 있는)이 지배했다고 말이다. 중요한 건 메갈리아와 워마드에서 가장 무시하는 존재가 20대 빈곤청년이다.

 

전에 알라딘 블로그 활동하면서 친한 분에게 덧글로 받은 것 중에 걱정된 게 있었다(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길), 덧글로 결혼하지 못한 게 경제적인 문제인 점을 누가 말하면 어떨까? 부분이 있었다(한국의 대부분 남성은 부유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그런 게 부족하니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논리는 한국남자는 돈이 없으면 여자에게 결혼대상이 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되는 전후관계성이 성립된다(내가 너무 외모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성격이나 인격에 결함이 있다면 당연히 고려해야 하나).

 

페미니즘이론에서 경제적으로 빈곤한 남성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사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사상에서 미디어에 의한 정치사회적 권력과 언론의 이익이 페미니즘이론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섹스와 돈>이란 책을 보면 나온다. 거기서 여성 그것도 어린 여성은 돈 많은 남자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여자가 되는 게 좋다고 말하던 미국의 미디어를 비판한다. 만약에 돈 때문에 나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남성들이 여성에게 외면당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페미니즘이론으로 그 부분을 지적할 사항이다.

 

다시 말한다.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이 아니고,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이란 존재로 통해 젠더를 넘어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의 수많은 약자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메갈리아란 이름으로 페미니즘을 더럽히지 말자. 그들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패거리즘이다. 한남패치와 강남패치 죄악에 정신적으로 충격 받은 사람 중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자살충동으로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그 대상에 일반인까지 포함 되어있으니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에 대해 무엇을 말할지 모르겠고, 그리고 그들조차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할지 난감하겠지만(논리로 통하지 않는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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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9-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 구절이 생각나네요.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중에서)

만화애니비평 2016-09-01 09:20   좋아요 1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제 블로그에 와서 감정으로 덧글을 남긴 알라딘 블로거 ˝ㄷㄹㅂ˝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자신도 ˝ㅁㄱㄹㅇ˝라고 했으니깐요. 그분이 그럴 반인륜적 존재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안할지..아니면 하나하나 조목조목 토론으로 진행한다면 그다지 문제없겠지만요

2016-09-0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9-01 09:51   좋아요 2 | URL
그래서 저는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전에 제 블로그에 와서 감정적으로 덧글을 남긴 분들, 그게 페미니즘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전에는 잘 와서 글남기더만 지금은 그것에 대한 해명이 없는 게 그다지 좋지 좋네요.
메갈리아와 페미니즘을 계속 저는 분리하고 있는데, 이 사태까지 이르렀어도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가 아니라 인간혐오인 반인륜 패거리일 뿐이죠.

별족 2016-09-0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부부싸움을 확전시키지 않으려면 주제를 한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는 어디 편인데?라고 묻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님의 비판도 옳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조직이나 사람이던지 잘못도 할 수 있고, 이상한 말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단호하게 단죄한다는 것이, 정말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요?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런 태도는 단죄자나 단죄받게 되는 조직이나 사람을 황폐화시킵니다. 그건, 지금 상황에서 님에게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메갈리아가 즐겁고 좋았던 적도 있었어서, 완전히 몹쓸 단체야,에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아무리 좋은 뜻으로 모였대도, 항상 좋은 모습일 수는 없다는 걸, 민주노동당이 사라질 때 너무 절절하게 느껴서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3:10   좋아요 2 | URL
저도 별족님의 이야기가 뭔지 알겠습니다. 우선 언론에서 그동안 공정한 시선으로 이번 사건을 다루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요구를 한 자를 두고 일베로 몰았습니다. 왜 비판? 왜 누구편?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두고 말씀드리자면 공격성 논리는 이미 진보매체와 언론, 지식인들이 했습니다. 이제와 서 너무 편가르지 말라하면 그동안 편가르기 당한 자들은 무엇이 됩니까?

이미 편가르기 가한자는 침묵, 그렇게 당한 자들이 이제 말이 옳은 편가르지 말자는 논지에서 누가 먼저 시작하여 그 부분을 매듭지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답이 아닌가요? 사람 때린 사람은 따로 있어 신고한 사람이 이제 거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여 ˝야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식에서 무슨 관용을 펼치는 게 옳은가 싶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했지만, 그것을 계속 요구하고 성찰하라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결국 범죄에 이르러서 그것조차 반성하지 않은 자들을 어떻게 저희들은 생각해야 할까요? 저에게 단죄자라는 칭호보단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는 게 정답이 아닌가요? 민노당이든 통진당이든 아니면 새누리이든 뭐든지 자기비판없이 흘러가서 붕괴되면 그건 누구의 책임입니까?

누구의 편을 말하기 전에 그 누구의 편이라고 먼저 말했던 자들이, 자신에게 비판을 하던 사람에게 주홍글씨 낙인을 찍은 자들이 먼저 회자정리하는 게 답이 아닐런지요?

별족 2016-09-01 13:21   좋아요 0 | URL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249 제가 논쟁을 따라가면서, 가장 공감하면서 읽은 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3:29   좋아요 1 | URL
님 저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저도 미디어투데이를 보고 있지만, 저 기사는 1달 전의 기사이고요. 지금 아래 기사를 보세요? 제가 뭐 때문에 글을 씁니까? 물타기하지마세요? 그리고 게임애니메이션 성우에 대한 산업구조에 대해 아십니까? 이미 증거가 다 나오는 판국에 기사내용을 9월 시점에 대해 다시 재조립하는 게 옳은 게 아닐까요?

지금 정의당 내부가 개판되었는데, 진짜 무엇을 저한테 말하고 싶은데요? 제가 메갈리아 논쟁에서 남여에 대한 프레임으로 봤다면 오산입니다. 저는 저들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여성 이룸으로 반인륜적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http://m.news.naver.com/read.nhn?oid=056&aid=0010357241&sid1=102&backUrl=/home.nhn&light=off

별족 2016-09-01 13:41   좋아요 0 | URL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스로를 `메갈리안`이라고 하신 분들을 모두 `그런 사람들`일 거라고 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패거리를 나누는 건 이 논쟁의 목적도 아니지 않나요? 그런 반 인륜적인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목적이라면, 주제를 좁혀서 이야기해야지, 티셔츠의 문구를 노말한데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래도, 이래도? 라며 어느 편인지 밝히라고 말하는 건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3:54   좋아요 1 | URL
제 글이나 덧글을 보면 메갈리아라고 하신 그 알라디너에 대해 아니라고 저는 판단했고요. 그리고 그동안 옹호하는 자들이 메가리아가 아니라 그 메갈리아에 대한 판단에 대하여 다시 자기비판하자는 논조로 계속 적어왔습니다.

티가 말하는 것은 노멀한데, 티로 판매되어 사용되는 것은 노멀하지 않습니다. 님 제게 말하려면 논리적으로 하세요. 티의 글은 (왕자는 필요없다)는 기표라고 합시다. 하지만 그 기의에서 (이 판매금은 메갈리아 활동에 씁니다. 그것도 범죄자의 변론에)

이미 님의 논리는 틀렸습니다. 저 티를 알든 모르든, 모르는 사람이 저 티가 평범한데, 알고보니 저런 식으로 사용되었어라고 알게 되면 그 당사자는 무엇이 됩니까? 제가 티를 산 사람들을 욕했습니까? 아니면 티를 판매한 사람들을 욕했습니까?

별족 2016-09-01 14:12   좋아요 0 | URL
사실, 우리가 쓰는 많은 소비재,의 소비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쓰입니다. 제가 한 어떤 소비는 팔레스타인에 폭탄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아마도. 그 모든 소비와 그 모든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이런 놈들이니, 아예 손을 끊어, 내지는 이런 놈들이었어, 몰랐지, 이제부터라도 아니라고 해, 라고는 못 하죠. 그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순정함을 요구하면서, 순정한 편에 순정하게만 서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일베,가 아니듯,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모든 걸 지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4:23   좋아요 1 | URL
무슨 말인줄은 압니다.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이라 하여 그 모든 것을 지지하지 않고, 일베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지지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그런 극단적 무리 내에 있었다면 비판의 자조는 없었는지? 아니면 브레이크를 시도하지 않았는지 조금 이상하면 한 번이라도 비판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님이 제게 하는 말이나 제가 님에게 하는 말이나 모두 원초적이고 정론적인 의견입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할 겁니다. 메갈리아는 틀려먹었다고 말이죠. 왜냐하면 지금 메갈리아에 사건이 터져도 자성하지 않고 계속 자신들이 옳다고 정신승리중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숙하여 성찰하여 국민 앞에서 반성하지 않은 이상 무슨 의미가 있죠?

잘 들으세요. 메갈리아의 일련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고, 진보라는 매체는 그 일련의 행동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사람을 일베 내지 여성혐오자로 밀어붙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과 재검토를 요청해도 묵살되고 오히려 조롱이나 높은 벽을 느꼈습니다. 손을 끊은 쪽은 먼저 누구이죠? 그 자들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다시 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반성도 없이 사과도 없이 비판도 없이 흘러가는 상황에서 님이 말하는 요지 자체가 납득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순정에서 제 글을 봐도 남자인 저도 청소년 시절 야한게임이나 하고 야한 사진 보면 눈 돌아갑니다. 그리고 여성들도 멋진 남자 보고 스타일 좋은 남자보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정된 성관념이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죠. 그런다고 없는 사실을 억지로 만들어 마치 성폭행범 내지 범죄자로 내몬 사람들에게 무슨 순정의 가치를 내밀어야 하나요?

만일 님 친구분이 속옷을 갈아입는 도중 도촬당하거나 아니면 길가다 사진이 찍혀 술집여자다라는 식으로 몰려 주변인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심지어 그런 곳이 고발되자 거기 회원들이 자유에 대한 억압과 공권력 난무라 해봅시다. 순정함이란 단어를 내밀기 전에 역지사지의 정신이 우선이 아닐까 싶네요.

별족 2016-09-01 14:44   좋아요 0 | URL
저는, 여기 알라딘,에서 님이 이렇게 흥분하실 만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하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는 충분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4:56   좋아요 1 | URL
글쎄요. 흥분했을 것이라 봅니다. 제가 참고로 서브컬처 세계에 발을 들인 자고, 그 서브컬처 세계가 완전히 박살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심정에서 제 기분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님은 저에게 논리적으로 덧글을 달아야 하는데, 저보고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하시네요. 오히려 감정적으로 돌아보자는 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이 흥분적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님이 저에게 해야할 말은 이 문제자체 근본을 따지야지 저라는 존재에 말돌리기 하는 것은 논조가 맞지 않군요.

자신의 말이 저에게 닿지 않아 저라는 존재로 인신공격까지는 아니나 그런 뉘앙스로 접근하는게 참 재밌네요. 차라리 이 글을 본다면, 지금 저 문제해결방안으로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민폐를 멈추고, 그들이 미러링한 일베에 대한 적절한 비판과 대처, 그 후 이런 사회적 문제가 근본으로 나온 것이 자본주의사회와 적자생존 경쟁주의이니 이에 대한 대안을 말해야 하며, 이후 어떤 정치를 위해 앞으로 우리가 선택해야 하나가 옳은 게 아닌가요?

제가 알라딘에서 흥분하여 이런 글을 적든 말든은 님이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님이 관여할 바는 제가 이런 글을 적어서 틀린 내용과 잘못된 인식이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비판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동시에 저에 대한 비판은 저를 비판하는 분들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메갈리아와 워마드 비판만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님은 단지 제가 적은 글(현실에서 일어난 사실을 거론하여 비판한 게)이 불편한 겁니까?

별족 2016-09-01 15:54   좋아요 0 | URL
어쩌면 저도 사로잡힌 문제라서요. 제가 어느 쪽에서든 욕을 먹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메갈리아와 워마드 사태를 계속 지켜보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정도로 심각할 줄 생각조치 못했다. 알라딘 블로그에서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한 비판을 날렸을 때 어느 분이(분명 메갈리아는 아닌 것 같으나 자신도 메갈리아 하라고 하는) 소라넷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런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단지 아는 것은 성인용 야한 사이트 정도?

 

이성적인 것보다 왠지 모르게 감정적인 질문 덧글에서 나는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조금 엇갈리는 부분이 소라넷 폐지운동을 하던 사람 중에 메갈리아 활동자가 있었고, 그 활동자는 대구어린이집 어린이 성희롱사건으로 뉴스기사까지 난 사람이라 그렇다. 만일 단순히 여성운동으로 소라넷 폐지라면 이해가도, 어린이 성기를 두고 이상한 글을 적어 사이트넷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 받은 그 여성은 결국 신상이 털려 각종 비난과 비방을 당해야 했다.

 

결국 경찰에 진정을 넣었으나 오히려 그 사람이 저지른 죄 때문에 메갈리아 여성의 진정은 허용되지 않았다(그리고 메갈리아 티가 이 사람의 법정소송에 대한 후원금으로 들어간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마인드C작가에 대한 루머나 거짓말, 심지어 성폭행도 안 당했는데 했다고 하는 무고에서 이런 것을 두고 페미니즘 운동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정당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기존 남성주의사회의 폭력성은 다 아는 바이나, 그것으로 인해 폭력적으로 한다고 해도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페미니즘 이름을 덮은 행위에서 이게 이성으로 판단해야 할 것인지 감정으로 계속 대립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에 대한 반론은 좋다. 그러나 성재기씨의 죽음을 두고 재기하라에서 예전에 여성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어 그래서 열 받아서 했다 그것도 좋다. 그러나 전태일의 죽음에서 남자들보고 태일하란이야기에서 이미 상황은 오버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능욕, 그것도 광복절 전후이다. 위안부에 억지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원통이 하늘을 찌르는데, 독립군들이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가? 여성위안부 관련하여 여성학자가 이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메갈리아 옹호하는 자였다. 문제는 독립군이 해오던 무장투쟁을 부정하는 것 자체가 위안부 여성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영화 <귀향>에서 주인공(손숙 선생의 어린 시절 역할)이 독립군에 의해 구출되는데,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다.

 

독립군들이 일제에 의해 사살당하고 고문당하고 처참하게 타지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이들의 무장투쟁을 두고 조롱하고, 광복절에도 일장기를 가지고 그들의 정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위안부 여성에 대한 생각이 있는 자들인가? 일부가 그런다고 해서 그 일부가 있는 사이트에서 그것을 용인하고, 그 용인을 하는 사이트가 페미니즘운동이라 한다면 이성적으로 무엇이라 여겨야 할까?

 

서브컬처 사태와 관련하여 청소년에게 음란물을 판매했다. 문제는 그 동인지에는 남자학생이 성기노출에 동성애하는 요소가 나왔다. 결국 음란물과 상업지에 대한 사전검토도 없이 미성년자에게 판매하여 법에 저촉되었다. 여성인권을 외친 메갈리아 진영이 이제는 청소년에게 인권이란 이름을 외쳤다. 그들이 외치는 한남충이 어른만이 아니라 한남충의 유충까지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야한 동인지 판매에서 청소년 인권의 보편성으로 넘어간다.

 

솔직히 말해 나도 옛날 동급생이나 야한 게임이나 만화를 봤다. 그런다고 해서 자랑스럽게 본 것도 아니고, 나는 이런 것 안 보니 깨끗한 놈이란 가식 따위 덜진 않는다. 야한 것을 볼 수 있겠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던가 아니면, 서브컬처에서 당당히 팔겠다고 오히려 신고 해보란 식은 무엇인지? 메갈리아 사태가 번진 것은 서브컬처 계통이었다. 그들이 지금 서브컬처에서 활동하면서 일반 대중이나 심지어 여성학자도 잘 모르는 세계이다.

 

소라넷 폐지는 옳고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답이다. 그런데 반대로 워마드와 메갈리아하고 연계된 동인지판매대의 음란물은 괜찮은 것인가? 3D 여성과 2D 남성의 차이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자신들이 오타쿠와 비오타쿠로 나눌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도 모르는 사이트로 놀라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한남패치와 강남패치, 둘 다 여성이 운영한 점이고 이들에 대한 검거가 이루어지자 메갈리아와 워마드에서 난리가 났다. 이들은 그 뉴스가 있는 곳에 가서 덧글 달기와 소송에 대한 지원금을 지원하려 한다.

 

소라넷 폐지와 한남패치, 강남패치 사건을 두고 무엇을 봐야 하나? 한남패치와 강남패치는 유흥업소에 일하는 여성과 남성의 사진을 유포하는 사이트다. 범죄원인도 성형수술 부작용에 따른 우울증과 어느 여성이 재벌의 외손녀란 이유로 막대한 상속을 받아서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페미니즘 담론? 게다가 이들은 남의 신상은 공개해도 자신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회사에 알리지 말아 달라 한다.

 

(기사사이트 : http://www.ytn.co.kr/_ln/0103_201608301203003932,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60830120014972&RIGHT_COMM=R1)

 

처음 그 사이트들에 대해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상당히 혐오적으로 대하다가 어느 순간 진실을 알자 지원사격을 하자고 한다. 검거의 상황에서 경찰이 여험하고 있다고 하는 정신승리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자꾸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페미니즘이라 말하나, 그게 오히려 한국의 페미니즘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러링의 대상이 조롱과 비방이라도 범죄까지 미러링한다면 그 여죄로 법적 처벌도 감내해야 할 사항이다.

 

어떤 덧글은 경찰에 여성이 체포되면 여자가 사회적 약자라서 봐주는 게 아니라 하는데, 사회적으로 법 앞에서 오히려 평등해야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른다. 워마드와 메갈리아의 업적은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 논쟁과 관련하여 책들이 많이 팔렸다. 하지만 기존에 나온 서적보다 이미 페미니즘 고전 도서(매릴린 옐롬의 서적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펭크허스트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읽어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과 접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말하고 싶다. 자정정화가 없는 것, 즉 자신의 행위나 자신의 지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 결국 붕괴된다.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객관적인 사건을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좋겠다. 여성들이 처한 불리한 조건을 두고 개선하는데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 있는 남성사회의 비판이 틀렸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발적 범죄나 계획된 악의로 인해 발생된 범죄에 대해 계속 외면한다면 진보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기만으로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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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메갈리아와 워마드 이 집단들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려 했는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왔습니다. 전태일이란 노동자를 아십니까? 옷공장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어린소녀(여공)들의 인권을 위해 그분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 후 화염아래 사라져갔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고통스럽게 생명이 꺼져가는 전태일을 두고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평생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죽기 전날 여동생 되신 분은 학비가 없다면 오빠 전태일에게 용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전태일은 알겠다는 말만 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페미니즘 논쟁에서 언제부터 페미니즘이 이런 식의 글을 쓰는 게 된다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결코 인간이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억압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하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문화적인 발상력으로 재치와 유머로서 남성들에게 반격하면 됩니다. 저는 분명히 그런 것에 대해 나쁘다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강조하다시피 뭐든 사물과 사리에는 정도라는 게 있고, 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말과 행동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으로 죽어간 전태일에 대해 불타서 죽은 그 분의 한에 이런 조롱 용납됩니까? 여성의 메아리가 옳다 그르다로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써 그럴 수가 있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걱정됩니다. 현재 진보성향의 분들이 메갈리아나 워마드 행동에 지지한다고 하자 합시다. 위의 사진이 보입니까?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합니다. 물론 대통령 이전의 변호인 노무현은 더 좋아합니다. 한국의 진보성향에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죽음에서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진보층이 보신다면 성재기 씨가 한강으로 뛰어내리는 장면과 그 뒤에 합성된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이게 과연 무엇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요? 위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님은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실 적에 그분의 영정앞에 아쉬움을 토로하시던 분입니다.

진보인사 그리고 진보성향 정당으로 정의당이 있습니다. 정의당에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도 많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토록 비판의 말을 날리던 노회찬 의원님도 노무현재단 초청으로 강연을 오르고, 과거의 라이벌이던 유시민 씨와 같이 방송하고 정치사회적인 운동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이른바 "운지"라는 단어를 일베에서 사용합니다. 저런 요소를 저 사진을 담고 있는 점에서 더 이상 일베와 같다 다르다를 논할 상황은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저보고 노빠라 해도 좋습니다. 노빠이니 이래 글을 올리겠죠? 저는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 반대되는 분에게 틀렸다란 말을 들을 것이란 생각까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를 묻고 싶습니다. 

아래는 윤봉길 의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전에 자칭 페미니즘 운동가라는 분들이 윤봉길 의사 엉덩이에 폭탄을 집어넣고, 안중근 의사의 요도에 칼을 집어넣고 싶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사람이 항일운동 중 항일(테러리즘)행위를 두고, 일본을 위협한 나쁜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물론 일본 제국주의에 동의하면 테러리스트지만, 우리에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던진 분입니다. 

저는 저들을 페미니스트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노동운동가 김진숙 씨에 대해 직접적으로 도와준 것도 없고, 삼성백혈동 여성노동자를 위한 사회운동, 마트 내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지원,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죽음에 지금의 자취를 남긴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단지 저들은 자신들의 티를 산 사람에게 불똥이 튀어 거리로 나온 패거리 수준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불만의 기저에 한국 남성중심사회가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 행위를 인정해야 할까요?


일제시대 위안부에 끌려가 해방 후 자신들의 원한조차 풀지 못한 채 그 분들은 눈을 감고 있습니다. 한국의 독립투사들이 왜 목숨걸고 싸울까요? 조선의 민중이 일제에 의한 억압과 폭력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다시 말할 겁니다. 뭐든지 넘어야 할 선도 있고 넘지 말아야 선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국남자들의 한심함만 비웃는 것이라면 몰라도, 단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슬프고 한스러움 죽음조차 조롱당해야 하던 이 분들, 저는 여성남성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묻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외치고 싶습니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단지 패거리 집단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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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8-23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하네요. 지난 번엔 안중근의사 희화화해서 올리더니..

만화애니비평 2016-08-24 08:48   좋아요 1 | URL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 후손이 미국에 자기 조상을 찾아가는데 해외여행가냐고 조롱합니다. 남자면 나이구분 없이 죽은 사람까지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요? 참으로 의아합니다.

2016-08-23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8-24 08:49   좋아요 2 | URL
지금 새누리에서 건국절을 헌법에서 1948년으로 하려고 하는데, 임시정부의 부정에서 친일파들의 행위를 보면 어이없습니다.

그런데 독립투사를 마치 테러리스트로 본다는 것은 왠지 새누리 역사관점 스탠스와 왜이리 동조되는지,

뉴라이트의 하던 개소리가 생각납니다.

시이소오 2016-08-24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이해할수 없는 방식의 남협이네요.
왜 저리 일베를 따라해서 가뜩이나 상승한 페미니즘기류에 찬물을 끼얹는지. 일베의 자작극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네요

만화애니비평 2016-08-24 08:50   좋아요 1 | URL
저는 메갈리아가 한국 페미니즘 운동 중심이 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런 상황에 계속 가면 일반 대중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요?

22c 2016-08-24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글이 `일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글쎄요, 그렇다면 저런 글 올리는 분들이 퇴출되어야 하는데 어째서 영웅 취급을 받을까요.

만화애니비평 2016-08-24 08:52   좋아요 1 | URL
저 일부를 정화하지 않고, 오히려 덧글이 계속 달리고, 인기까지 얻고 있더군요.

게다가 메갈리아의 티 판매에서 ˝나는 왕자가 필요없다˝는 사기라고 봅니다.
그들은 왕자가 필요없고 자신에게 돈 잘 대줄 호구만 필요합니다.

메갈 사이트 통계자료를 참조하니 돈 있는 남자에게 얻어먹으면 갓치들 잘했다는 식으로 하고, 돈 없는 남자들은 아주 깡끄리 무시합니다.

남여간 더치페이를 두고 이게 여성을 깔본다는 식으로 말하니, 남여평등에서 권리의 분배만큼 책임은 분배도 중요한데, 누가 과연 차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립간 2016-08-24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W가 말씀했던 미러링의 긍정 효과와 제가 우려했던 악순환의 부정 효과의 힘겨루기라고 생각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8-24 08:55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예전에 제가 메갈리아 옹호론자 비판글에서 다락방님의 덧글이 생각나는군요. 저분은 제가 올린 사진과 영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페미니스트라면 저걸 용납되는지 싶네요. 그게 아니면 스스로 내부정화를 시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일베에서 그런 시도 하려다가 실패했습니다. 메갈리아 내부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존 페미니즘 운동 아니 진보운동까지 싸그리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겠죠. 그런 뒤에 한국 여성의 인권은 전진할지 후퇴할지는 글쎼요? 미러링의 효과에서 일베가 518 희생자를 두고 홍어택배라고 놀려 징역먹었듯이, 같이 징역들어가는게 미러링이어야겠죠.

소조 2016-08-24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알라디너 곰곰생각하는발님이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네요^^

만화애니비평 2016-08-24 09:53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하나. 개인적 님 블로그에 무슨 글이 있을까도 궁금하네요. ^^

루쉰P 2016-08-26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이리 심하게 하는 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강준만 교수님의 `증오 산업주의`라는 책을 봐도 지금 정치도 그렇고, 모든 것이 증오를 해야 장사가 되는 그런 형국이라 써 있더군요. 내부 집단이 외부의 적을 만들고 그들을 향해 증오를 외치면 그게 내부 결속력도 잘되고 서로 간의 친밀도도 높여준다나 했던 걸 봤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렇게 전투적(?)으로 더 험한 말을 창조한 사람이 영웅 대접을 받는다고 했구요...

정말이지 상식적이고 충분히 비판을 할만한 것이면 도리에 맞게 한다면 더욱더 메갈리안분들이 힘을 얻고 자신들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텐데, 안타깝네요.

만화애니비평 2016-08-27 12:42   좋아요 2 | URL
세상에 정의로운 사람은 필요없어요
자신을 정의롭게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죠.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살펴 볼 것은 제작진들과 영화감독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존에 만들어온 작품들과 흐름,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알아야만 정확하게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1,000만 관객을 이룩한 <부산행>은 기존 애니메이션 감독이 실사영화를 제작하면서 성공한 이례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산행>의 이전 이야기가 <서울역>이란 이유로 보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여기서 관객들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그건 그들이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 왔는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산행>에서 공유가 한 어린 딸을 안고 무사히 아내의 품에 전해주기 위해 목숨을 거는 투쟁을 보여준다. <부산행>은 기존 내러티브(Narrative)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그건 최종장면에서 수안과 임산부 성경이 무사히 군인들로부터 구출을 받는 점이다. 절망의 가운데 마지막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대중의 공감을 상당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돼지의 왕>이나 <내 사랑 단백질>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인디영화관에서 36개 좌석에 앉은 30명 넘은 관객 중에서 연상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음을 느꼈다. <서울역><부산역>처럼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부산행>의 주인공은 수안의 아버지 석우처럼 어느 대기업에 다니는 핸섬하고 멋진 아버지가 아니다. 다소 가정환경에 무심하게 보여도 결국 딸의 부탁을 들어주고 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아버지로 끝이 난다.

 

서울역까지 차를 끌고 가는데, 일반 국산승용차가 아니라 외제차를 타고 간다.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위치에서 보자면 성공한 인간이 단지 불운한 상황에서 재난을 맞이한 것 뿐이다. 하지만 영화 <서울역>은 다르다. 이 영화가 불편한 것은 <부산행>에서 보여주지 않은 국가사회의 맨 얼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서울역>은 우리가 알거나 모르거나 혹은 기만적으로 숨기려한 이야기를 드러낸 이야기이다. 연상호 감독은 처음부터 관객에서 불쾌감을 주기 위해 이 작품을 기획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부산행>을 생각하고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마무리되면서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의 입 속에서 별로 좋은 평판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인터넷 영화정보란에서도 그렇다. 연상호 감독에 대해 조금 더 잘 알았더라면 <서울역>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으면 그런 판단이 나올 수가 없었다고 본다. 영화에서 이미 사람들은 제목과 포스터를 보고 첫 장면에서 나오는 상황을 두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끝나길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면 좋은 영화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영화이다. 처음부터 인디영화관 그것도 독립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서울역>에서 관객들이 친절한 영화를 바란 것부터 실수라고 여긴다. 연상호 감독이 <서울역>이란 제목처럼 이 영화에서 서울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 초반부 어느 노인이 목에서 피 흘리며 힘들게 서울역 광장을 지나간다. 어느 청년들이 도와주려 하나, 막상 앞에 가자 노숙자인 것을 알고 다시 되돌아온다. 그 두 사람은 처음에 분배와 복지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막상 현실은 노숙자를 비롯한 룸펜프롤레타리아에겐 별개의 이야기였다.

 

경제학적으로 자본주의는 부르주와 프롤레타리아로 구분된다. 부르주아는 자본을 가지고 자신의 자본력을 늘리기 위해 고정된 생산도구에 임금노동자를 하여금 노동하게 하여 이윤을 재생산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프롤레타리아는 임금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한국으로 따지면 직장에 다니는 소시민 같은 부류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자신이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영화 <서울역>은 바로 그런 현실을 꼬집기는 영화이다.

 

또한 룸펜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처럼 아무런 자본도 없지만, 노동을 하지 않은 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노숙자, 부랑아, 깡패, 창녀, 사기꾼 등등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은 부류이기도 하다. <부산행>의 주인공은 고소득층의 화이트칼라의 세계로 본다면, <서울역>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패배자들의 인생으로 한국사회를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아주 재미없고, 불친절하다. 그런 점을 깨닫지 않고 영화관을 와서 재미없다고 말하면 떠나는 분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영상으로 굴절된 예술을 본 것이 아니라 단지 문화콘텐츠란 이름을 소비하기 위해 온 것이다.

 

기호가 상품이고, 상품이 기호이니, 연상호 감독이란 네이밍이 하나의 브랜드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 주인공은 원래 사창가에서 도망친 혜선, 혜선의 남자친구 기웅, 그리고 혜선의 비즈니스적인 아버지 석규로 등장한다. 혜선과 동거하는 기웅은 정상적인 집이 아니라 여관방에서 투숙하고, 기웅은 여관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여 강제로 퇴실당할 상황에 처해진다. 기웅은 PC방에 가서 혜선의 얼굴을 인터넷에 올리고 성매매 여성으로 광고한다. 이때 예전 포주인 석규가 보고 찾아온다.

 

기웅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었고, 월급을 받아도 여관비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역>은 바로 여기서부터 엄청난 주제가 시작되었다. 영화제목 <서울역>처럼 우리가 서울역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부류는 무엇인가? 바로 노숙자이다. 과거 그들도 나름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좌절하여 집을 잃은 채 역사에서 잠을 자고 생계를 유지한다. 가족에게 버림받았기에 연고자도 없고, 하루를 비참하게 살아간다. 구걸하고 술을 마시고, 싸움도 한다.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서울역에 좀비에게 물려 감염된 노인이 다시 좀비가 되고, 서서히 주변 사람들을 덮친다. 좀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어느 순간 서울역 중심으로 좀비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도미노 하나가 쓰러지면 마지막까지 무너지는 붕괴현상이 시작되기 시작한 점이다. 좀비를 피해 사람들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경찰까지 충돌하게 되었다.

 

문제는 경찰이 출동해도 아무런 대응이 되지 않은 점이다. 혜선이 찾아간 지구대 경찰관이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좀비라는 것보단 노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자본주의 시장구조에서 인간은 생명을 가진 하나의 존재성보단 겉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에 따라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혜선도 처음 자신이 노숙자가 아니라고 하나, 혜선의 신발이 벗겨짐에 따라 경찰 역시 혜선을 노숙자 취급을 한다. 가진 게 없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존재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아갈 수 있으며, 국가는 여기에 대해 충실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경찰은 좀비에 의해 일어난 재난을 노숙자나 국가반란세력의 음모로 생각한다. 처음 경찰이 오자 다수 진압부대가 버스로 차벽을 만들어낸다. 혜선이 끝까지 도망치다 중간에 막힐 때 버스위로 올라가는 시민을 향해 경찰은 물대포를 발사한다. 버스 아래로 기어가는 사람에겐 가루를 발사하여 차벽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시민들은 좀비를 피해 재난을 피해 도망치려는데 오히려 국가치안기관은 시민을 구하지 않고 그들을 폭도로 취급한다. 그들이 폭도로 취급받은 것은 혜선이 파출소 유치장에서 좀비로부터 도망칠 때 옆 자리의 경찰관이 노숙자와 다수의 좀비들을 국가전복자인 폭도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파출소로 진압 중인 기동대 입장에서 좀비들은 폭로처럼 보이고, 일선 경찰관도 살해당했다. 이런 과정에서 군대가 출동하고, 그들은 총구를 서울시민에게 겨누었다. 혜선과 같이 도망친 노숙자는 좀비를 피하기 위해 차벽을 올라서자 어느 군인이 사격한 총에 의해 즉사한다. 그가 즉사하기 전 2002년 월드컵 한국축구팀 응원티를 입은 남자가 자신은 이때까지 국가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을 당한 게 억울하고, 같이 자리에 있던 피난민들에게 너와 다르다고 한다. 사살당한 노숙자 역시 자신 역시 국가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서울역><부산행>보다 더 충격적으로 상황을 보여주고, 현실을 살아가는 국민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살았다고 하나 국가는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폭로는 한국경제의 뿌리 깊은 장소로 인도된다. 혜선이 마지막으로 도망친 곳은 다림건설 사무소, 설계 및 시공사무실 옆에 값 비싼 자재로 이루어진 모델하우스가 조성되어 있다. 보통 사람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고가의 내부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다.

 

혜선을 찾아온 기용, 그리고 기용 옆에 있던 포주 석규가 모이면서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숨은 욕망의 신화를 보여준다. 그것은 부동산 신화이다. 혜선과 기용은 집이 없기에 여관에서 생활하고, 노숙자들은 갈 곳이 없기에 서울역에서 방황한다. 포주 석규는 혜선을 이용하여 고급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모두들 집에 대한 욕망과 애한으로 이어진다. 혜선은 자기 집에 가고 싶다고 하나, 석규는 혜선 때문에 빚을 지어 그것을 해결하려고 혜선의 집에 갔다고 한다.

 

혜선의 아버지는 딸의 빚을 갚기 위해 1주일이란 시간을 달라고 했고, 석규가 다시 찾아가자 혜선의 아버지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혜선은 계속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집을 가출하여 어둠의 세계에 몸을 들인 이후로 아버지에게 가지 못한 혜선, 그래도 언젠가 다시 귀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하지만 그 믿음조차 깨지고 혜선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결국 약자를 먹으면서 성장해온 한국사회, 그 중심이 부동산시장이고, 부동산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돌아가야 할 터전을 빼앗은 리바이어던 같은 괴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도미노의 운명처럼 쓰러져간 것이다. 도미노 붕괴에서 도미노는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까지 내몰고 간다. 좀비들은 많은 도미노 중에 하나이다. 작은 도미노 하나가 거대한 도미노 벽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든 도미노 판에서 어느 한 도미노의 붕괴를 외면하고 있다. 점차 증가되는 노숙자의 수, 임금저하와 물가상승은 소시민들로 하여금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 지하철 광고판이 눈에 명확하게 들어온다.

 

부동산시장은 마치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왜 국가는 좀비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을까? 개처럼 일하고 살아온 이들은 그들의 눈에는 하나의 소모품이고, 소모품이 다 되면 아무 필요 없는 폐기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부산행>에서도 좀비로 서울이 난리 나는 상황에서 뉴스기사에선 국가전복세력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들이 희생당하는 이유는 노숙자들은 찾아갈 곳이 없기에 돌아갈 곳이 없기에 아무 필요 없기에 그런 것이다.

 

서울역에는 한국에서 아무 필요 없는 사람들이 뭉치는 공간이다. 희망도 삶의 의지도 없이 그저 하루를 어떻게든 보내려고 하는 그들, 연상호 감독은 결코 친절한 제작자가 아니다. 이미 영상에서 보이는 그림체가 <돼지의 왕><>에서 등장하는 그림체와 유사하다. 부드러움보단 날카로운 이미지로 관객에게 충격을 던져준다.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 역시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오늘도 뉴스에서 이런 기사가 나온다. 강남 부동산 불패가 말이다. 인간의 욕망은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승천하고 있다. 작품에서 좀비를 만드는 것은 전염병이나, 현실에서 인간을 좀비처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단지 애니메이션 안의 좀비는 머리가 박살나지 않은 한 계속 멈추지 않고 움직이나, 현실의 좀비들은 한 번 잘못 맞으면 즉사한다. 하지만 억울하다 말도 못하고 사회적으로 반란분자 내지 폭동으로 취급당한다. 영화 마지막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석규의 소망은 고급 아파트를 사서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침대 위에서 격렬한 섹스를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것도 좌절되자, 혜선을 강제로 범하려 하나, 막상 혜선의 심장이 정지한다. 그리고 좀비로 변한 혜선에게 물어 뜯인 채 그 삶이 끝난다. 우리를 착취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 착취하며 파멸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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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8-2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그레이트...만화애니비평님의 글은 정말 숨도 못 쉬고 읽게 되네요.

글을 쭉 읽으니, 정말이지 <서울역>이란 영화를 보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월호`를 비롯한 국가가 행한 모든 범죄에 대한 오마쥬처럼 영화가 묘사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부동산`이라 표현되겠지만 `돈`이겠죠. 오로지 지금 세상은 `돈`이라는 교주를 모시고 좀비들처럼 살고 있으니 말이에요.

저도 따지고 보면 `돈`을 더 벌기 위해 고시원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좀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여기서 지내다 보니 정말 사람이 거주하는 평수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수가 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갑갑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적당함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ㅎ

밤에 불 끄고 잠 들라치면 어느 기사의 말처럼, 묘비 속으로 관뚜껑 닫고 눕는 느낌이에요 ㅋㅋ 워낙 좁아서 말이지요. 그래도 나름 여기서 공기를 최대한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장수참숯`도 사서 방에 숯도 놓고 선풍기로 공기 순화을 시키고 있어요. 이런 점에 있어서는 좀비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만화애니비평님은 어디 잡지라도 글 쓰시면 많이 팔릴 듯 싶은뎅 ㅋ 글 솜씨가 너무 좋으십니다. ㅎ

만화애니비평 2016-08-27 12:43   좋아요 0 | URL
재미가 아니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점에서 재미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시원이라니...아유...고시원 블루스를 어느 네이버블로거의 글을 보니 참으로 안습...

글은 아직 멀었습니다..으흐흐
 

<사드>란 영화를 보면서 주변 관객의 반응을 느껴보았다. 아마 이 영화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상영하는 작품 중에 Summer special란 이벤트 상영회인 점도 있고,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프랑스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국영화의 문제점으로 제작 시작부터 검열이 심한 반면, 프랑스는 그런 점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점에 모호하게 위치한 영화작품들이 프랑스영화는 많다. 물론 이 영화에선 다소 정사씬과 노출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 에밀리를 맡은 여배우 이실드 르 베스코의 경우 상부 가슴은 기본이고, 성기 부분까지 드러난다. 물론 흥분될 수 있기도 하지만, 야하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는다. 영상 시각으로 보이는 무의식적인 감각과 이성으로 텍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전후맥락을 잘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마친 후 많은 분들이 옆에서 별로라거나 혹은 내용이 기대 이하란 반응에서 <사드>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시기가 프랑스대혁명 이후란 점, 그리고 테르미도르반동 전후라는 점이다.

 

17897월 프랑스 바스티유 관장은 총격 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인류 최초 민중이 스스로 앞서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왕족과 귀족, 성직자들은 부패와 무능으로 권력에서 밀려나고, 루이16세는 신민이었던 자들이 이제는 시민이 되어 그를 왕족이 아닌 일개 인간으로 만들었다. 루이16세가 프랑스혁명 이후 바로 죽지 않았고, 해외도피가 발각되면서 목이 잘리게 되었다. 루이16세의 죽음은 자코뱅당의 독재화로 이어지고, 자코뱅의 판결아래 단두대에서 매일 수백 내지 수천의 인간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었다.

 

영화 <사드>는 자코뱅당의 독주가 제일 심하던 1794년이고,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를 비롯한 자코뱅 극단세력은 처음에는 왕족과 귀족의 목을 베더니, 이제는 자코뱅당의 반대 세력인 지롱드파와 자코뱅당 내의 온건세력까지 목을 벤다. 그래서 1794년 로베스피에르의 동지이며 유명한 혁명가 당통을 단두대 앞으로 보냈고, 이 사건을 토대로 게오르크 뷔히너는 <당통의 죽음>이란 연극을 만들고, 안제이 바이다 감독은 <당통>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사드가 수도원으로 옮겨질 당시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가장 무서운 시기였다.

 

그 수도원은 언제 죽을지 모를 귀족들이 운 좋게 뇌물을 주어 피신해 온 곳이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무서운 공포정치와 피 냄새나는 거리에서 도망친 그들에게 수도원은 유일한 은신처이었다. 사드가 여기에 올 때 그는 환영받지 못했다. 사드는 인류가 만든 문학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도발적이며, 정신분석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를 만들었다. 흔히 우리는 SM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여기서 사디즘이 나온 것은 사드의 이름에서 나왔다.

 

그의 유명한 문제저작 <소돔의 120일>

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프랑스 파리 대부호와 권력가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17(119)동안 산장에서 그들만의 향연을 펼친다. 이야기꾼 네 명을 부르고, 각자의 사연을 토대 잔인하고 끔찍한 행위를 되새긴다. 처음에는 성폭행 수준으로 끝나다가, 남색, 분뇨먹이기, 손가락 및 신체 절단까지 이어진다. 사드의 소설에서 이미 그는 프랑스혁명 전부터 감금상태였고, 그는 젊을 때부터 많은 여성들과 섹스스캔들을 일으켰다. 아내의 자매가 수녀로 있었는데도 서로 관계를 맺어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태어나서 청장년을 보낸 시기는 루이14세였고, 루이14세는 짐은 곧 국가라는 왕권신수설을 펼쳤다.

 

왕이란 신에게서 받은 권력이며, 왕이 행하는 모든 게 신의 섭리로 이루어지기에 신을 부정한 사드는 곧 왕국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사드는 신을 믿지 않았고, 무신론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연관을 추구했다. 그의 자연관은 지금이 중요하다는 점이고, 내세는 없으며 언젠가 모든 건 소멸해도 세상을 존재한다는 점이다. 죽음의 두려움에 무서워하기보단 지금이라도 조금 더 즐기기 원하는 실존주의적 인생관을 보여준다.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이며 이데올로그인 장 자크 루소의 사상과 사드의 철학은 많은 차이점은 보여주나, 근원은 같다. 바로 자연성이란 점이다. 루소는 자연적 인간상에서 이미 인간은 사회로 인해 부패하여 더 이상 미개인으로 갈 수 없으나 자신만의 판단력을 살려 미덕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래서 루소의 사상은 이성보단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감성은 이성 이전에 그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에 반해 사드의 자연성이란 인간 존재 자체에서 동물적 감각을 추구한다. 성적행위는 인간 종족 유지만이 아니라 쾌락과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고 여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모두 수도원에 와서 우울하고 불안한 반명 사드는 뭔가 재미있고 흥미로우면 다른 이들까지 즐거움을 준다. 로베스피에르가 찾아와서 행사를 열려고 했을 때 많은 귀족들은 자신의 목이 달라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도 사드는 당당했다. 에밀리는 이런 사드에게 빠지게 되면서 영화는 포르노그래피 영상에서도 하나의 철학을 제시한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에밀리가 처음 성행위를 하려고 했을 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사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에 대한 흥미, 그가 저술한 책을 읽은 후 불쾌감과 동시에 호기심이다.

 

남성은 성적욕구가 들끓는 존재이나, 여성 역시 성적욕구가 없을 리가 없다. 지겨운 수도원 생활, 억압된 분위기, 공포정치의 극단성에서 그녀는 자신이 갇힌 세계에 절망하기보단 뭔가 새로운 문을 필요했다. 사드라는 문에서 사드는 정원사 청년과 에밀리에게 성행위를 하길 바란다. 청년은 건장하고 착실한 사람이고, 에밀리는 매우 똑똑하고 사리가 밝은 소녀였다. 하지만 에밀리의 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로베스피에르가 오자말자 많은 인간이 단두대 아래 사라져갔고, 에밀리 부모조차 그럴 운명에 처했다.

 

에밀리가 살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임산부는 사형에 처해지지 않은 점이다. 사드는 그녀에게 새로운 쾌락과 세상을 알기 위한 방법이라면 그녀의 부모입장에서 생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프랑스는 계급사회였고, 정원사는 처음 보면 알 수 있듯이 노예라는 단어로 칭해졌고, 에밀리는 귀족의 영애이다. 에밀리가 아버지의 바람 피는 장면을 본 후 실망할 때 정원사가 준 꽃 한송이를 처음에 받다가 건물 내로 들어오자 바로 버린다. 처음 그녀는 계급신분제라는 틀에 메여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드에 의해 그 생각이 달라졌으며, 정원사와의 섹스행위는 단순히 성적욕구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적행위를 하는 남녀 사이에 계급이란 칭호는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사드는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성적인 관념에서 계급사회에서 하위계급과 지배계급은 서로 다른 식으로 성관계를 유지하고, 남성지배계급이 하녀나 평민을 첩으로 두기는 하나, 정부인으로 두지 않는다. 자유라는 단어에서 성적인 해방 역시 그런 의미로 볼 수 있으며, 평등한 관계로도 볼 수 있다.

 

에밀리와 성행위를 고민하는 정원사에게 사드는 정원사에게 채찍으로 자신을 때리라고 한다. 왜 그럴까? 사드는 계급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만약 귀족과 노예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 노예는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의 시각은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려면 프랑스대혁명, 장 자크 루소, 소돔의 120일이란 연계성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란 무엇일까 에서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처럼 공포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아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보면 잘 재현해내었다. 테르미도르 반동 때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먼저 권총자살을 하려 한다. 하지만 권총자살은 실패하고 턱이 입에서 떨어져 나가 붕대로 감싼다. 마지막에 턱에 감긴 붕대를 풀자 그는 통증을 느끼고, 그의 목 위로 단두대의 칼날이 내려온다. 사드의 정부를 데리고 살던 남자 역시 자코뱅당 일원으로 단두대로 사라진다. 영화는 자코뱅당의 몰락 후 귀족들이 다시 자신의 집에 가면서 끝이 난다. 프랑스대혁명은 프랑스 피지배계급의 경제적 빈곤으로 발발했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은 경제적으로 부르주아들이 자신의 돈을 내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 전에 국가와 종교로부터 외면을 받고, 프랑스대혁명 때는 국가와 도덕이란 이름 앞에서 외면 받은 사드지만, 그가 생각한 자유와 평등은 오늘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로베스피에르는 루소는 매우 존경했고, 루소가 죽기 전 그를 방문했으며, 잠을 잘 때 <사회계약론>을 자신의 머리 옆에 둘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루소가 한 가르침에서 제일 첫 구절을 망각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 쇠사슬에 묶여있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심각한 쇠살에 묶여 있다라고 말이다.

 




사드에겐 그런 쇠사슬이 없었다. 물론 너무 성적인 욕망에 집착한 사드이기에 문제적 인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적 인간이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사고를 발견할 수 없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또 다른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여주인공인 이실드 르 베스코의 연기에 많은 인상을 받았다. <사드>2000년에 상영되었지만, 제작은 1999년에 이루어졌다. 1982년생인 그녀가 영화출연 시 나이는 이제 18세 소녀였다. 카메라 앞에 나체로 연기하고, 자신의 음부에 사드 역을 맡은 남주인공의 손을 접촉된다.

 

그래도 그 연기에 충실하게 소화한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굴은 보면 한국의 여자배우처럼 그렇게 미인이 아니란 점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파란 두 눈을 보는 순간 마치 나는 아주 맑은 호수가 거기에 있다고 느꼈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두 눈빛에서 모든 것을 투영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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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8-2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영화를 어떻게든 구해 봐야 겠습니다. 사드 소설은 본 적이 없지만, 영화는 관심이 가네요..오래전 영화라서 구하기 힘들 듯하지만 그래도 구해 봐야 겠어요.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ㅎ

만화애니비평 2016-08-22 13:48   좋아요 0 | URL
오~ 야무님이 이토록 관심을..ㅎㅎㅎ
부산에서 운좋게 상영하더군요..ㅎㅎ

루쉰P 2016-08-2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드와 루소의 공통점이 자연이라니....엄밀히 말하면 계급제 등 당시 숨막히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랄까? 그런 공통점이 있다니...깜놀
만화애니비평님의 식견에 놀랐어요 ㅋ 사실 사드는 밥맛이어서 ㅋㅋㅋ 지나친 성욕주의자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런 면이 있다는 건 새롭네요
아....저는 만화애니비평님 정도의 식견을 언제 가질 수 있을까염
글 진짜 잘 쓰신다 ㅋ

만화애니비평 2016-08-23 09:21   좋아요 0 | URL
루소와 사드는 둘 다 인간 안의 자연성을 추구했는데
루소는 감정이란 인간애
사드는 무의식 속의 성욕이죠

감정과 무의식에서 인간의 구별이 없이 모두 대할 수 있죠,,,
원초적인 것인지 원천적인 것인지의 차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