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 관노트                                                     

2024년3 월27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부럴.

 

 

 

몇일간 우울했다.

물론 지금도 기분이 영 밝지는 않다.

뭐 때문일까?

요즘 흐리고 추운 날씨 탓일까?

희망이 없는 회사 탓일까? 그래도 버텨야 하는데...

아니면 점점 신체 나이를 먹으며 갱년기가 되어가는 육체의 노쇠함 탓일까?

고딩들 아빠이자 완산의 남편으로 살며 점점 무거워지는 아빠란 이름의 무게 탓일까?

 

 

 

그래, 이게 다 내탓이다.

내가 태어났으니 우울하고 괴롭다고 하니

모든게 내가 있어서 괴롭다면

시시때때로 올라와 얽히는 나의 인연의 실타래 때문이라면

어느것 부터 풀어야 하지?

 

 

 

본래 청정한 하늘은 여여한데

잠깐 구름에 가려졌다고 하늘이 탁해지는가?

탁해진 마음이 내 본 마음이 아님을 알지만

아직도 우울하고 밝지못한 주위만 보고 있다.

 

 

 

'심안으로 옳게 보아야 하나니' 가 주문처럼 외워진다.

육안으로는 외부의 현상을 보고

심안으로는 내면의 현상을 보고

육안으로 들어온 상과 심안으로 비춰지는 상이 둘이 아니라 하시지만

 

 

 

아직도 육안으로 보는 것에 끄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안으로 옳게 봐야지.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탓도 하지 말자.

내 탓도 하지 말자.

 

 

 

지연이의 씨부럴,

정말로 잘 돌려놓네?

듣기 참 좋다야. 씨부럴.

 

 

<문술법우가 전해준 지연이 관노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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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 관노트

2024년3 월21

제목: 내 좁디 족은 속그릇

나의 속은 참 좁다.

아량이나 배포가 좀 더 넓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마음공부를 해서 마음을 넓히고

책을 보면서 지식과 지혜를 넓히고

여유있게 세상과 나를 관조하고 싶은데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아 괴롭고

나는 아직도 마음에 휘둘려 주인 노릇을 못하고

아집, 아만, 아상이 가득차 버렸다.

어디 걷어서 덜어 놓을때 없나?

덜어 놓긴, 어디다 뭘 덜어 놔.

다시 놓아버려야지.

먼저 집어 들어야 놓을수 있다.

집기는 무척 힘들지만 일단 겨우 집어들면

아집, 아만, 아상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어느새 줄어져 버린다.

그걸 다시 놓으면

속그릇에 비해 작아진다.

그릇이 커야 담기도 수월한 법

작은 내 그릇

그릇을 키울수 없다면

담는걸 줄일수 밖에.

<어느 한 친구에게 계속 서운함이 올라와서 관 해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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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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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스토리텔링 애니(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지은이: 조너선 갓셜/ 노승영 옮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 1>.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모든 불교 경전의 첫구절>

 

 

 

우리 인간의 말하는 능력과 듣는 능력의  결합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종류의 생물체 보다 우수해진것은 틀림없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유발 하라리는 200만년전 영장류중에 가장 힘이 없던 종에 불과 했던 호모사피엔스가 오늘날 지구에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인지혁명(認知革命) 을 꼽았다.

우리 인류는 이야기로 소통을 하고 믿음을 공유하며 개인과 부족간의 유대를 하며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활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장 별볼일 없는 종에서 가장 뛰어난 사회적 동물로 발전한 셈이다.

 

 

이제 인류에게 이야기는 떠날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학, 영화, 게임, 오락, 음악, 무용, 철학, 정치, 과학 등등  모든 문명의 바탕에는 스토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게 다 태초의 말씀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야기가 곧 신이 되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조너선 갓셜의 책<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일독 할 만하다.

이 책을 보기전 나는 작년에 같은 작가의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를 먼저 읽었었다.

그때 당시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던 작가의 통찰은 이야기라는 것이 살아있는 유기체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멸망치 않고 존속하는 한 이야기 또한 같이 살아 나간다것 이다.

 

책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효용에 대하여 모든 이야기의 목적은 '상대를 구슬린다는데 있다' 는 관점으로 해석했다.

즉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꼬신다' 는 것이다.

상대를 나의 의도에 맞게 구슬리려면 짜임새 있게 서사를 넣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가 결국은 '구슬림' 이란 것이다.

상대를 구슬림으로 이야기에 공감하게 하고 화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효용 반면에 작가는 '이야기 꾼을 믿지 말라' 고 했다.

<플라톤의 국가>를 언급하며 플라톤의 위대한 스승이 당시의 시인들(이야기 꾼) 에 의한 선동으로 인해 대중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는 상대에 대한 분열 , 불신, 증오를 조장을 할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탈진실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범람하는 정보 미디어 홍수들, 가짜 뉴스, 보이스 피싱, 매일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는 유투버들의 선정성 콘텐츠들. 정치가들과 선동자들의 분열적인 구호들과 음모론 속에서 헤매고 있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발달로 우리는 심지어 챗GPT가 진실을 말하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이시대의 이야기 꾼은 다양하게 진화를 했고 또 현재도 진행중이다.

 

 

 

모든게 진짜 같아 보인다.

진짜 처럼 보이는것은 진짜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고 들리는 말들을 다 믿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야기 꾼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을 조장하는 시대의 이야기가 바로 2500년전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리스 시대와 다르지 않다고 본 작가의 통찰과 시공간을 연결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력에 감탄했었다.

 

그때 받은 감동으로 작가의 전작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이번에 읽게 되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출판> 2014년 에 출판이 되었고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위즈덤 하우스 출판>  2023년에 나왔다.)

 

두 책의 작가(조너선 갓셜)은 영문학 교수이자 과학적 인문학의 선두주자를 자처한다.

작가는 스토리와 인간의 상관관계를 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시종 유쾌한 어투로 이야기속의 세상 즉 네버랜드에 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두 책 모두 인류를 '호모 픽투스(Homo fictus:이야기 하는 인간)'라는 관점 에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만 아쉽다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통찰은 훌륭하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정신없이 풀어 놓아서 읽고난 후 정리가 잘 안되고 있다.

(독후감을 쓰면서 뭘 쓰고 있는건지 나도 헤매고 있다가 다 지워버렸다.

결국 당연히 나의 문해력의 문제라고 봐야지. )

 

 

그렇지만 작가의 두 책을 비교한다면 나에게는 작년에 읽었던 후속작<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위즈덤 하우스 출판>이 더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소장가치를 따진다면 전작<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출판>은 서가에 두고두고 읽어볼 책이 될것 같다.

 

 

 

앞의 태초의 말씀과 여시아문을 다시 살펴본다면,

기독교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불교는 듣는것에서 시작한다.

말하는것과 듣는것 중 어느것이 먼저 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청각장애인은 말을 못한다.

그렇게 보면 듣는게 좀 더 중요 하지 않을까?

 

 

 

나의 어린시절, 초딩 3학년때 였다.

그 당시 우리반에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다.

다른 애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고 나는 '옛날 이야기' 를 말했다.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에 우리가 표현했던 춤이나 노래, 옛날 이야기 하기 같은 장기자랑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넓게 본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존재의 행위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이는 곧  말하는 것이 되며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즉 나의 이야기속에서 나는 주연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세상에서는 내 뜻대로 만들수 있지않을까?

 

태초의 말씀은 곧 내가 되는 것이다.

 

단어를 늘어놓는 것은 작가이지만 단어 자체는 생명이 없어 생기를 불어넣을 촉매가 필요하다. 그 촉매는 독자의 상상력이다. - P26

우리 몸은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 시공간에 늘 갇혀있지만 상상력은 우리를 해방해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넘나들게 해준다. - P32

...뽕 가기 위해서...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요점이다. 픽션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이다. - P51

모든 사람의 뇌에는 작은 셜록 홈스가 들어있다...이야기하는 마음은 의미 중독자이다. - P133

이야기는 공동체의 가치를 강화하고...사회를 결속하는...
이야기는 젊은이를 문화에 적응시킨다.
이야기는 집단을 정의한다.
이야기는 무엇이 고귀한 행동인지, 무엇이 비난받을 행동인지 알려 준다.
이야기는 사회의 윤활유이자 접착제이다.
이야기는 우리를 균질화한다. 즉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 P170

우리중 90퍼센트는 자신의 운전이 평균 이상이라 생각하며 대학교수 중 94퍼센트는 자신의 업무 능력이 평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위비곤 호수 효과:라디오 방송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로, 이곳에 사는 여자들은 모두 힘세고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고 아이들은 모두 평균이상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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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 월14

제목: 한마음이 아니라면

어제 저녁,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는 완산에게 나는 호들갑스런 마음으로 다가갔다.

낮에 지인을 통해 받은 설이의 입시관련 정보를 알려줘야 했다.

학원정보에 따르면 지금 설이의 스펙으로는 우리가 희망하는 대학이 어려울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완산 옆에서 나는 프린트 해온 자료를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려고 했다.

이때 손가락에 침을 발라 프린트물을 한장 넘길때 였다.

완산이 손가락에 침 뭍이지 말라고 한소리를 했다.

나 왈: '그게 왜? 어때서? 잘 안넘겨 지니까 침 바르는 거지.'

그때 완산에게서 더럽다는 표정이 읽혔다.

한 순간에 내 마음은 싸늘하게 냉각되어 버렸다.

'됐다. 그만 두자.' 하고 말하려던 내용과 굳어진 마음을 전부 회수해 버렸다.

그리곤 나는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완산은 잠시후 나에게 한소리를 했다.

'무슨 남자가 쉽게 화를 내?'

나는 아무 대꾸도 안했다.

이때 식탁에 차려진 저녁을 나는 말 없이 먹었다.

하지만 나의 머리속엔 부부 사이에 온갖 정이 다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몇년전 부터 종종 마음이 들떠 있다가 어느 순간 완산의 표정이나 말 한마디에 내마음이 순식간에 냉랭해지곤 했었다.

아마도 이런 냉전이 부부사이에 자주 나거나 지속되면 관계가 파탄나는게 아닌가 싶다.

머리속의 망상을 한창 이어가고 있을때 완산이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당신은 요즘 갱년기야? 왜 그리 쉽게 화를 내?'

나 왈: '화 안냈어. 다만 당신이 뭐라고 한소리 하니까 순간적으로 말하기 싫어졌어.'

완산 왈: '당신은 마음공부 한다고 한달에 한번 줌법회도 하면서 이정도 밖에 안돼?'

아, 또... 윽. 완산의 한마디에 또 무너졌다.

완산은 내가 평소에도 침을 뭍히는 것 같은 지저분해 보이는 행동이 좀 많다고 사람들 앞에서 주의하라고 몇번을 얘기 했지만 내가 잘 안듣는다고 했다.

그러게 말일세...

요즘 내가 나이를 먹는가 보다. 왜 그럴까? 진짜 갱년기가 왔을까?

낮에 유튜브, 수요법회에서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설법이든 강의를 들으면 들을때 뿐이고 실제로 실천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나' 를 내려 놓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관 한다고 하는게 그게 될 법인가? "

그렇다.

내가 지금 그런 형국이구나.

아직도 다스려지지 않은 내 안의 중생들.

참성품은 여여하지만 내 육신속의 중생들은 아직도 아우성이다.

 

결국 완산과 나는 낮에 얻은 입시 관련 정보를 설이한테 알려 주지 말자고 했다.

어쩌면 정보를 제공한 학원의 목적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돼었다.

대학합격 수준을 어렵게 잡아야 학부모들에게 입시학원 등록을 유도할 수 있을테니까.

또 이런 정보는 아직 확신이 없는 설이한테는 도움보다 오히려 불안감만 키워줄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을것 같았다.

그리고 완산은 이것 때문에 서로 다투게 되었으니 사실 이 정보 자체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한마음이 안된다면 그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이럴때 완산은 도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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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 월12

 

 

 

제목:  움직이는것은 그대의 마음이다. (仁者心動_ 육조단경 중에서)

두번째 사색

육조혜능이 오조홍인에게서 의발과 법을 전수받고 남방에서 숨어 살다가 어느덧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느낀후 세상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광주의 법성사란 사찰에서 열반경 법회가 열렸는데 혜능은 그 법회에 청중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사찰에 세워진 깃발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을 보고 스님들 의견이 분분했다.

'저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야! 저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바람이 움직이니 깃발이 움직이니 대중들은 설왕설해를 하며 논쟁을 하던중,

그때 혜능이 홀연히 답한다.

'움직이는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그럼 뭔데?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라고 하자 청중은 놀랐다고 한다.(一衆駭然: 일중해연)

그렇게 5조의 법을 이은 6조가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당시의 대중은 어떻게 혜능이 단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는 것이다.'

라는 대답에 심상치 않음을 알고 놀랐을까?

무시 할 수도 있는 답이 아닌가?

어떻게 대중들은 혜능의 대답에 탄복할 수 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혜능의 대답보다 그당시 대중들이 답을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 이란 답을 아는 인식을 대중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볼수 있다.

 

즉, 혜능이 당시에 깨달음을 지녔다고 하지만  그 깨달음을 아는 대중의 안목 또한 대단한게 아닌가 싶다.

 

쇼펜하우어가 천재는 자신의 경지를 보통일반 사람들도 직관적으로 알수 있게 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한바가 있다.

즉 천재성을 깨달음으로 바꿔 표현한다면 진정한 각자(覺者)의 위대함은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지만 발현 되지 않은 불성을 자각(自覺)하게 해주는데 있다.

그래서 선지식(善知識)은 각자(覺者) 이여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이 아닐까?

어쩌면 천재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발현시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 보통 사람들 가운데 한두명 특출난 천재성을 발현한 사람, 혹은 깨달은 사람이 나타나면 이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숨겨진 천재성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타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거나 깨달음의 경지를 단박에 알수 있다면 그건 이미 본인 내면에 본래 갖추고 있던 천재성이나 불성을 비추어 본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

이렇게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거의 완성형이 아닌가?

다만 아직 알이 깨지기 전 상태, 어미 새가 밖에서 한번 쪼아 주는게 부족한 상태.

선지식의 할과 방의 한방이 필요한 상태가 아닐까?

 

석가모니 부처님과 큰스님을 비롯한 모든 선지식은 지금도 우리에게 줄 한방을 준비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알 껍질 안에서 좀 더 쪼아 놓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결국 성장과 완성은 어쩌면 한껍질 벗겨내는가에 달려 있는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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