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내 나이 또래라면 서구인 가운데는 자신을 68혁명 세대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1960년 4월 혁명 세대는 있어도 68혁명 세대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964년 6월에 한일협정반대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난 적은 있으나 그 운동과 68혁명과는 큰 관계가 없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개인적으로 68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68혁명은 세계사적 혁명의 의미를 지닌다고 믿기 때문이다.

68혁명 이후 5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그와 맞먹는 지각 변동이 생기는 것 같다. 이스랄의 가자 인민 학살을 두고 세계의 인민대중이 일떠선 모습이 그것으로, 미국의 대학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친팔레스타인 행동이 특히 눈길을 끈다. 4월 중순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교정을 장악한 농성이 시작된 데 이어 미국의 전역에서 벌이는 학생들의 시위와 집회, 특히 농성이 만만치 않다.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의 대학들에서 점거 농성이 벌어지고, 1,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체포되거나 구류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엊그제 CNN을 보니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경찰에 잡혀가는 모습이 현장 중계되더라. 컬럼비아대에서는 1968년에 베트남전쟁 반대를 외치며 학생들이 점거해 농성하던 해밀턴홀이 이번에 다시 후배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었다가 경찰에 탈환되기도 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1970년인데, 그해 5월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군인이 쏜 총에 학생 4명이 맞아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발한 적이 있다.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날 사건을 기록한, 내 세대라면 상당히 많은 이가 기억할 사진 하나가 있다. 총에 맞은 남학생이 너부러져 있고 여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그 앞에서 양손을 들고 절규하는 모습.

2024년으로 돌아와서 미국에서는 지금 수많은 대학에 데모가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경찰이나 군인이 쏜 총에 학생이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시위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참극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어 보인다. 개별 주마다 대응하는 방식은 달라 보이나, 대학에 따라 학생들의 평화집회 현장에 자동화기로 무장한 경찰이 진입하기도 하고, 미시간 대학인가에서는 대학 행정요원이 총을 든 저격병을 대학 건물 옥상으로 안내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미 의회는 학생들의 시위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와 관련해 의원 몇 명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스랄의 인종학살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기도 했다. 우리는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다.

2024년 현재 세계는 1968년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반체제 운동을 목격하기 시작한 것 같다. 역사의 반복인 셈이다. 단, 역사의 이번 반복은 맑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말한 것과는 다르다고 여겨진다. 맑스는 거기서 “역사는 반복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소극으로”라고 했다. 그러나 2024년 미국과 유럽 등의 대학에서 일어나는 반체제 운동을 소극으로 볼 일만은 아닌 듯싶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일으킨 쿠데타와 루이 보나파르트가 일으킨 쿠데타를 비교하면 후자가 소극임은 분명하나, 지금 미국과 세계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항의 운동은 1960년대 말 운동의 반복인 것 같기는 해도 소극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현재의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지금 상황이 지속된다면 소극 수준을 넘어서는 잠재력을 지닌 것 같기도 하다.

1968년의 혁명은 세계혁명으로 치부된다. 프랑스 파리의 5월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68혁명은 미국과 영국, 독일, 그리스, 일본 등 서방 주요 국가들 가운데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68혁명은 ‘반체제’ 운동으로 규정되곤 한다. 그것이 반기를 든 대상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 당시 기득권 세력 전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내놓고 보니 혁명의 가장 큰 적이었던 자본주의의 경우 받은 타격이나 상처가 그리 컸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당시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196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이윤율 하락을 겪으며 축적의 위기에 빠졌고, 그에 따라 상당히 취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를 거치며 세계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축적 전략을 구사하며 자신의 생존 능력을 입증해냈다. 그 사이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퇴조하여 세계는 갈수록 자본주의 유일 체제로 환원된 셈이다. 199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소련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속에 자본주의 체제는 그래서 역사의 장에 ‘종말’ 글씨가 쓰인 승리의 깃발을 꽂기까지 했다. 이런 점을 놓고 보면 1960년대 말의 반체제 운동은 때를 잘못 맞춘 셈인지 모른다.

오늘날은? 1960년대와도 1990년대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가 싶다. 56년 전과 30여년 전에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는 오늘날에 비하면 심각한 위기였다고 보기 어렵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서방 신세대는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운동에 참여한 셈이기도 하다. 반제, 반식민주의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 등으로, 그리고 당시 신생 독립국의 우후죽순 탄생으로 성공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마는 그때의 성공은 형식적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UN의 창립 시에 51개이던 회원국 수가 1974년에 이르러 136개로 대폭 늘어난 것은 언뜻 보면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운동의 위대한 성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신생 독립국 대부분이 나중에 신식민지로 전락한 점을 놓고 보면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체계의 상황이 정말 크게 변했다고 봐야 한다. 과거 반식민지였던 중국이 이제 PPP 기준 GDP 세계 제1위 국가가 된 것, 대부분이 과거 피식민지 국가들로 구성된 브릭스 국가들의 GDP가 제국주의 국가들로 구성된 G7의 그것을 능가한 것이 그 증거다. 오늘날 미국 등지에서 학생들이 일으키는 반체제 운동의 거대한 반향을 기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던 선배 세대의 노력이나 정성에도 불구하고 68혁명은 자본주의 극복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그것은 그때는 아직 혁명의 시간이 무르익지 않았던 점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아직은 운동이 미약할지 몰라도 시간은 무르익은 셈이라 할 수 있다. 서방 제국주의는 지금 더 이상 과거의 위력과 지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금 반체제 운동의 핵심 안건은 이스랄의 가자 인민 학살 문제일 것이다. 세계인이 뻔히 지켜보는 앞에 가자 인민을 무참하게 할살하는 이스랄의 안하무인식 태도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스랄의 그런 태도는 반인륜적이고 반국제법적이며 반-무슨무슨적이겠지만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이스랄의 잔혹 행위를 과거 서방의 제국주의가 비서방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던 전통의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등이 오늘날 백인 국가로 된 것은 유럽의 백인들이 광활한 비유럽 지역으로 진출하여 그곳 원주민들을 불법적이고 사악하고 포악한 각종 방법으로 제거해버린 결과다. (최근에 한 팟캐스트를 통해 들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 리처드 울프에 따르면) 이전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때는 비서방 사회가 서방의 공격과 침략을 막을 방어력이 태부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랄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과거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하던 행태를 반복한다? 이것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도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스랄에는 그럴 권리도 없으려니와 그럴 능력도 없다고 봐야 한다.

이스랄이 만행을 저지르는 것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도 계속 이스랄을 지원할 능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지리멸렬한 모습이 말해주는 바다. 게다가 이스랄이 인종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속한 서아시아의 국제정세도 크게 바뀌었다. 이전과는 달리 이란과 터키, 이집트, 사우디, UAE, 예멘, 레바논, 시리아 등 팔레스타인을 지원해줄 수 있는 아랍과 이슬람 국가들이 도열해 있지 않은가. 물론 이들 나라 가운데는 이집트와 사우디 등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랄과 우방이 된 나라도 있으나 그들은 올해부터는 브릭스에 새로 가입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스랄이 속한 오늘날의 서아시아 국제정세는 그 일대에 제대로 된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이다. 유럽인이 아시아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를 유린하며 그 일부 지역의 원주민을 학살하거나 제거하고 정착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기는 이제 지난 지 오래라고 봐야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지금 새로운 세대가 들고일어난 것은 세계사적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는 그것을 아직은 강 건너 불로만 보고 있다. 그러나 기대컨대 대학소요가 잠잠해지지 않고 가을학기까지 이어진다면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쓰이는 것을 볼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태는 68혁명과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반복에 해당하는 것 같다. 단, 반복되는 역사가 꼭 불변을 낳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자리에서 돌고 도는 결과만 낳는다면 역사의 반복은 소극으로 끝날지 모르나, 반복을 통해 어떤 벡터 운동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아직은 섣부르지마는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에서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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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é Pierre가 말했다: Le contraire de la misère ce n’est pas la richesse. Le contraire de la misère, c’est le partage. 빈곤의 반대는 부유가 아니라 공유, 그러니까 나눔이다, 그런 말이다. 이 말에 따르자면 신자유주의를 기치 삼은 제국주의는 99.9% 인류를 빈곤으로 몰아가는 음모 자체일 수밖에 없다. 자본은 그 마름 가운데 센 한 놈일 따름이다.

  

다른 맥락에서 곱씹을 우리 속담 하나 떠올린다: 가난 구제는 나라/나라님도 못 한다. 가난 구제가 어렵고도 끝없는 일이라는 말로 흔히 이해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라/나라님은 부자를 가리킨다. 부자는 빈자를 구제하지 않는다. 빈자는 빈자가 구제한다. 그게 바로 나눔이다. 나눔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가장 맑은 영혼으로 살았던 권정생이 말한다.

 

겨우겨우 사는 삶이 가장 잘사는 삶이다.”

 

나눔 이치를 꿰뚫는 표현이다. 이 이치가 내 한평생을 관류했음에도 깨닫지 못해서 고마워하지 못하다가 최근 끈덕지고 빈틈없이 이어지는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엄밀하게 깨닫고 고마워하게 됐다. 제법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제자 하나가 뜬금없이 전화로 안부를 물은 데서 사건은 처음 벌어졌다. 그런 연락은 백발백중 그냥 안부 인사가 아니지 않던가.

 

그 입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바와 사뭇 다른 까닭에서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정승이고 나는 거지였으니까. 게다가 적어도 내가 아는 그에게 그 돈은 푼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절반을 다른 사람한테 꾸어 채워서 보냈다. 약속한 날을 어기기는 했지만, 그 돈은 돌아왔다.

 

물론 그다음 이야기는 더욱 놀랍게 이어진다. 얼마 뒤 그보다 조금 적은 돈을 다시 요청했고, 나는 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냈다. 얼마 뒤 그는 그 돈의 1/10가량을 요청했다. 그 뒤 두 번 더 같은 요청을 되풀이했다. 나는 드디어 물었다: 그 푼돈이 도움이 되기는 한가? 그렇다고 한다. 그렇겠지. 암은. 나는 그런 경우를 아직도 상상해 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돈 아닌 좋지 않은 상황 소식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서 보내지면서 아홉 달째 마지막으로 접어들었다. 전화가 왔다. 더는 죄송하단 말조차 하지 못하겠다면서도 그가 대화를 끊지 않는다. 여전히 그 푼돈이 유용하구나, 짐작했다. 실은 나도 결제해야 할 돈이 필요해서 시한을 주고 이 부분만 그때 먼저 갚는 것을 조건으로, 다시 돈을 보냈다.

 

다음 날 새벽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져 일어나 보니 그에게서 전화가 세 번이나 와 있었다. 이번에는 그 푼돈의 반을 마지막이라면서 요청했다. 다급했던 그 상황에서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를 헤아리며 아침 되어야 보낼 수 있는데 그래도 유효한가, 문자를 넣었다. 내 계좌에 그 정도 돈도 없어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면서 지갑을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그가 요청한 돈에서 부족한 딱 그만큼 남짓이 현금으로 들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은행으로 향했다. 채워서 송금하고 나니 계좌에는 이제 3,626원 있다. 완전히 텅 비지 않았으니 겨우겨우에 미달일까. 카드로 넣고 꺼낼 수 없는 돈이라 사실상 0원이니 그 수준으로 쳐도 괜찮을까. 홀연 내면이 울린다.

 

“쌀 한 톨 남으면 빈 독이 더 잘 느껴진다.”

 

한의원에 앉아 빈 지갑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여기 있던 푼돈은 숲 걷기를 하다 보면 카드로 결제하지 못할 만큼 영세한 음식점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 경우를 대비해 넣어두었던 거다. 그마저 털어냈으니 단식 숲 걷기도 하겠구나, 중얼댄다. 바로 그 찰나, 내 영혼은 절대 고요로 술렁인다. 여기까지 오라고 숲 생명들이 초대했음을 깨달아서다.

 

제자 편에서 보면 열 달째 자기 애옥살이를 함께해 준 가난뱅이 선생이 더없이 고마울 테고, 내 편에서 보면 빚두루마기 주제에 탈탈 털어 제자 곤경 나눈 일로 그를 방편 삼아 영적 삶 일깨우려 하신 팡이실이 니마고마께 엎드려 큰절해야 할 테다. 팡이실이 니마고마는 반제국주의 전사, 곧 나눔 주체들이다. 3,626원은 차고도 넘치는 군자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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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청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따라 정능산을 오르면서 오늘 숲 일정 막이 오른다. 비록 작은 골짜기지만 물과 습기를 품은 고운 풍경을 펼쳐내어 나를 대뜸 심취 상태로 데려간다. 천천히 오르다 재를 넘어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맞은편으로 내려간다. 길을 건너면 남북 방향으로 좁다랗게 누운 곧은 능선을 만난다.

 

지도에는 이름조차 없는 나지막한 산줄기지만 남쪽 끄트머리께에서는 버쩍 머리를 들었다 놓으면서 서울대학교 교정을 동서로 가르는 분기점을 마련해 준다. 반대로 그 북쪽 끄트머리에서는 관악산깨나 드나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모르지만, 유서 깊은 공간 하나를 품는다. 덕수공원이다. 나도 여러 번 스치듯 지나갔다.

 

덕수공원 이름은 덕수(德水) 이씨에서 왔다. 덕수 이씨 중흥조인 이변(李邊)과 그 아들을 포함한 일족이 여기 묻혀 있다. 이변은 조선 전기 고위 문관으로 국가에 세운 공이 많아 그가 죽자, 조정에서 예장을 치러주고 여기에 모셨으며 후손이 수호 봉사를 계속해 왔다 한다. 충무공 이순신이 바로 그 이변의 5대손이다.

 

서울서 태어나 자란 이순신이 걸출한 중흥조 선영에 다녀갔을, 나아가 드나들었을 가능성은 작지 않다. 그런데, 개울 건너 바로 맞은편에 인헌공 강감찬 생가터가 있다. 왜놈들이 훼손하기 전 원형을 간직한 석탑서껀 마을 사람들이 기려온 신성한 낙성대를 모른 채 지나쳤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왜놈들이 훼손하고, 그 부역자 박정희가 멋대로 옮겨 놓은 강감찬 탑


이순신이 어렸을 그 무렵 이미 왜구 소란은 물론 국가적 전란 위기 담론이 일반 백성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면, 강감찬 석탑 아래서 왜적 물리치는 장수가 되는 꿈을 꾸는 이순신을 상상하는 일이 마냥 소설은 아니다. 수백 년을 가로지르는 공시성으로 두 영웅을 서사화하는 일이 그저 드라마는 아니다.

 

한참이나 숲을 떠나지 못하고 나는 서성거린다. 특권층 부역자 박정희가 억지스럽게 꾸면 놓은 안국사, 동네 한복판에 이지러진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생가터를 들여다보는 강감찬과 골프연습장·구민운동장에 둘러싸여 오그라진 선영을 들여다보는 이순신 시선으로 오늘 내가 어떻게 알량한 부역자인지 들여다본다.

 

숲길을 이따금 뒤돌아보면서 음식점으로 간다. 여느 때처럼 삼삼오오 떼지은 개신교도들로 북적인다. 한쪽 구석에 앉아 천천히 밥을 먹는데 주인이 다가와 빨리 먹으라고 재촉한다. 수긍은 하지만 수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괭하게 마음 드러내지도 못한다. 무지렁이 부역자다운 소심한 응징은 다신 안 가는 정도 따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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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며칠 전에, 미국의 하원이 일주일 전인 지난 20일에 우크라이나에 608억 달러를 지원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내용의 글을 페북에 올렸었다.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주 초인 23일에 상원을 통과해 24일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되었다고 한다. 우크에 보낸다는 608억 달러는 이스랄에 보낼 264억, 타이완 등에 보낼 80억 달러가 포함되어 총 950억 달러를 이루는 전체 예산의 한 부분이다(합산해보면 608+264+80=952인데 왜 950억이라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또 많은 언론에서 우크에 보내는 금액을 610억 달러라고들 하는데 그 까닭 역시 알 수 없다). 보다시피 950억 가운데 우크에 배정된 금액이 가장 많아 전체의 64%를 차지한다. 미국이 그만큼 우크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는 셈이고 또 중시한다는 표시라고 하겠다.

미국이 우크에 거액의 돈을 보내는 것을 보고 도대체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했다. 608억 달러의 사용 내역을 알아보려고 나름대로 여러 소식통을 뒤져봤는데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된 내용을 접하지 못하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인트메리대학과 산타클라라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라는 잭 라스무스가 쓴 글을 읽으니 이해가 좀 되는 것 같아서 소개한다. 라스무스에 따르면, 우크에 “배정된” 예산 중 우크에 가게 되는 돈 액수는 사실 많지 않고 대부분 미국에서 쓰일 모양이다.

우크에 배정된 전체 안보 지원금 가운데 232억 달러는 이미 생산되어 우크에 보낸 미국 내 무기업자들에게 가고, 138억 달러는 미국의 무기 재고 가운데 이미 생산되어 선적되었거나 추가로 생산될 무기의 보충을 위해 배정되어 있다고 한다. 라스무스가 보기에 아직 생산되지 않은 무기에 쓰일 돈은 많아야 100억 달러이고, 250〜300억 달러는 이미 우크에 배송되었거나 배송되고 있는 무기에 쓰일 예정이다. 정리해보면, 이번에 우크에 지원하기로 한 608억 달러 가운데 1/3에서 1/2에 가까운 액수는 미국 측이 사전에 우크에 보낸 무기의 값이라는 말이고, 새로 보낼 무기는 100억 정도로 전체 지원 예산의 1/6밖에는 되지 안 되는 셈이다. 우크에 이미 보냈거나 보내는 중인 무기, 그리고 앞으로 새로 만들어서 보낼 무기 구매에 들어가는 돈 이외에는 우크 전쟁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미군(비밀리에 우크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정보요원이나 우크 군 훈련과 무기 운용 지원 전문 요원 등)에 지원할 113억 달러, 우크 정부의 재정을 지원할 78억 달러가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은 미국이 이번에 우크에 지원한다고 하는 608억의 대부분은 미국 안에서 쓰이고 우크에 도달하는 액수는 사실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크의 재정을 지원하는 데에 쓰이는 78억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이 미국의 방산업체들과 미군 병력에 들어가는 셈인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챙기는 것은 물론 방산업체들로 보인다.

그저께 올린 포스팅에서 이미 언급한 바이지만 이번에 우크 지원 법안이 통과되는 데에는 6개월이나 되는 긴 시간이 소요된 것은 풀뿌리 민심을 대변한다는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 통과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하원의장인 마이크 존슨이 그들의 관점을 대변해 법안 상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존슨이 마지막에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 군산업체의 로비에 휘둘린 결과라고 한다. 사실 군산업체로서는 법안 통과가 되지 않으면 큰 낭패를 입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무기를 이미 우크에 보내지 않았으면 보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예산 승인을 받기 전에 승인받을 것을 전제로 군산업체로부터 미리 무기를 받아 우크에 지원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의 예산집행 관행을 잘 알지는 못하나 행정부가 대놓고 불법 저지르는 것이 예사인 듯한데 과연 그럴 수 있는지, 그래도 되는지 궁금하다. 미국이라는 나라 이상하게 돌아가누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문제의 예산안을 놓고 20일 미 하원에서 의원들이 표결한 결과는 찬성이 310명, 반대는 111명이었다고 한다. 310명 가운데 210명은 여당인 민주당 의원이었으니, 공화당 의원 가운데 100명이 찬성한 셈이다. 라스무스 교수는 이런 표결 분포를 놓고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지지하는 하원 의원이 적어도 3/4인 셈이고, 상원에서는 그 비중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원의장이 6개월간 법안 상정을 거부하며 버티다가 막판에 태도를 싹 바꾼 이유가 그런 점 때문 아니었나 싶다. 의원의 절대다수가 군산복합체의 명령을 듣고 있는 판에 존슨인들 어떻게 할 수 없었을 법하다.

하지만 존슨은 이번에 소속 정당에서는 큰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공화당 출신으로 미국 남부 국경에서의 외국인 유입 문제를 놓고 바이든 행정부와 각을 세워왔는데 막판에 굴복하고 법안 표결을 허용하고 말았는데, 이것은 공화당 내 다수의 의사와는 배치된다. 공화당 의원 211명 가운데 이번 법안에 반대한 의원은 111명으로 당내 다수에 해당한다. 그런 점 때문에 존슨이 자당의 강경파에 의해 불신임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하원의장직에서도 쫓겨날 수 있다. 하원의장 신임 투표가 이뤄지면 민주당 의원들이 존슨을 축출하려는 공화당 다수파 쪽을 지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슨의 전임인 케빈 매카시도 그런 식으로 의장직을 잃은 바 있다.

어쨌거나 이번에 ‘지원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러샤 군의 진격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크는 당분간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어 버틸 힘을 조금 번 셈이다. 하지만 정말 조금일 뿐이다. 작년에는 608억보다 훨씬 더 큰 액수의 지원을 받았고 또 자국군의 병력도 아직 상당히 남은 상태였는데도 우크는 6월 초에 시작된 ‘반격’ 두어 달 만에 대패했다. 지금 우크 군이 전선 전체에서 패퇴하고 있는 것도 작년의 반격이 대실패로 끝난 이후 군사적으로 아무런 만회도 하지 못한 양상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이번에 608억 달러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사정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지원 예산이 새로 배정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지원될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 것만이 문제인 것도 아니라고 한다. 물론 새로 들어올 무기가 적은 것도 문제이겠으나, 더 큰 문제는 예산이 배정되어도 배정된 돈에 상당하는 무기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배정된 예산으로 우크에 보내주기로 한 100억 달러에 상당하는 무기 가운데 당장 우크에 보낼 수 있는 무기를 찾기 어렵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100억의 절반을 상회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무기를 생산하려는 데에도 수년이 걸린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것은 이번에 미 의회가 배정한 예산으로 우크가 올해 안에 지원받을 수 있는 무기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그런 점을 모를 리 없는 바이든 행정부가 예산 법안 통과를 요청한 것은 11월 선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체 608억은 950억의 64%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번에 미국이 우크에 보낸다는 예산 가운데 실제로 우크에 가는 금액은 액수도 적으려니와 특히 무기와 관련한 예산은 미국 자체의 무기 생산력 저하로 당장 집행되기 어렵다는 것이 실상이라면, 미국의 정치계급은 왜 온갖 수를 써가며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일까? 당장은 방산업체의 로비가 막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원의장 존슨, 존슨에게 법안을 상정하라고 압박을 넣은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상원 전임 법사위원장 린지 그레이엄, 이번에 안보지원법안에 찬성한 100명의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전원, 게다가 올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등이 모두 방산업체의 이익을 위해 바이든 행정부와 손을 함께 잡은 셈이다. 나아가서 바이든 정권은 우크가 얼마 되지 않지마는 이번에 받는 예산으로 11월 대선까지는 러샤에 패배당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볼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기를 쓰고 우크에 돈을 보내려 하는 것은 11월까지만 우크 군이 버텨주기를 바라고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바람대로 우크 군이 전선을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생명이 희생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지원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우크의 희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전선에서 들리는 소식을 놓고 보건대 여름쯤이면 모든 전선에서 우크 군대가 와해할 기미도 보인다. 우크 군으로서는 차라리 빨리 패배하는 것이 희생자를 줄이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바이든의 재선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재임 기간 세계 전체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바이든이 혹여라도 재선될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도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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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침스럽다, 득돌같다, 안쫑잡다, 점직하다, 툽상스럽다, 푸닥지다, 후파문하다, 훈감하다···


한글로 쓴 말인데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진기한 외계어다. 글자는 낯익지만 뜻은 처음 대하는 한자어보다 낯설다. 요즘 이 진기한 외계어 공부를 곡진히 한다. 나지막이 발음해 보면 묘한 매력을 풍기며 다가들지만 그렇다고 뜻 한 자락을 슬쩍이라도 내어주는 법은 거의 없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한평생 무지렁이 말글 부역자로 살아왔다는 딱 부러진 증거들이다. 부끄럽다가 슬프다가··· 마침내는 어이가 없어진다. 언제 어디서든 마주치는 일이라 맥마저 풀린다.


30년쯤 전에 어떤 스님이 내게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내 전생이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죽은 고려말 어떤 임금이라 했다. 그땐 웃어넘겼지만 70년 가까이 살아보니 마냥 허튼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글로 된 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한시(漢詩)가 빨리 외워진다. 아니, 한시는 한 번 읽으면 그냥 통째로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배운 적도 없는데 한시를 짓는다. 나중에 다시 보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기도 한다. 전생이 흘린 증거 아닐까, 갸웃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천재 신진서가 보지 못하는 수를 AI가 제시하는 세상에서 꺼내기 민망하다. 이 민망함도 사실은 부역자가 지녀온 가짜 자의식이다. 제국과 그 부역 국 상위 1% 인간 100%가 미신에 기대어 사는 게 더 핍진한 현실이니 말이다. 제국의 찬란한 우주 과학은 휴거 미신 덕이고, “The kyong can do no wrong!” 확신은 천공에서 발원하니 내가 유서 깊은 부역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전생 이야기를 들먹이는 일이 뭐 그리 우스꽝스럽겠는가.

 

아까 점직하다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뜻이다. 점직해서 나는 외계 모국어를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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