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 - 다중우주의 비밀을 양자역학으로 파헤치다
로라 머시니-호턴 지음, 박초월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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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우주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든 과학에 별 흥미 없는 사람이든 이구동성으로 우주는 빅뱅(Big Bang)’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빅뱅, 즉 대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우주의 모습은 특이점(singularity)이었다. 모든 물질이 모여 있는 특이점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우주는 지금도 커지는 중이다.


그런데 우주의 시작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견해들이 주목받고 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빅뱅이 일어나서 현재 우주가 될 확률을 계산했다. 그가 내놓은 확률값은 놀랍게도 거의 0에 가깝다! 펜로즈는 우주가 태어나면서 점점 커지는 상태가 과거에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정말로 운좋게 우주가 생겼어도 결국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우주의 기원을 확인하기가 어려워도 여전히 과학자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히 숨기는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기존 견해를 회의적으로 접근하며 그것이 타당한지 검증한다.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일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료 과학자들의 반박과 비판을 받아들이는 일을 선호한다. 과학자들도 인간인지라 익숙한 것과 거리를 두면서 연구하는 것을 낯설어한다. 이미 검증된 이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우주론을 선호한다. ‘안정적인 우주론은 모든 과학자가 옳다고 인정한 법칙만으로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을 뜻한다. 안정적인 우주론의 대표적인 예가 단일우주론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단 하나뿐이다반면 다중우주론은 불안정한 우주론이다. 단일우주론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과학자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주 너머에 또 다른 우주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단일우주론 지지자는 다중우주론을 SF에 나올법한 이야기로 치부한다.


알바니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로라 머시니-호턴(Laura Mersini Houghton)은 다중우주론 지지자다. 그녀는 양자역학을 이용해 현재 우주가 다중우주의 일부인지를 설명한다우주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준 그녀의 책 ‘Before The Big Bang(원서는 2022년 출간)’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호턴은 우주론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뿐만 아니라 단일우주론을 지지하는 독자 또는 과학자들에게 자신이 왜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은 정말로 보기 드문 친절한 과학책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다중우주론을 설명하지 않는다. 먼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이론이다. 그동안 중력은 물질을 움직이게 만드는 으로만 인식됐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이 알려준 중력은 휘어진 공간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는 입자와 파동 상태로 동시에 존재한다. 심지어 입자였다가 파동으로, 또 파동이었다가 입자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면 아무리 뛰어난 관측 기술이 있다고 해도 양자 상태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양자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또 양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덕분에 과학자들은 우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고, 우주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저자는 끈 이론(string theory)평행우주론(Parallel Universe)과 같은 불안정한 우주론의 특징과 한계를 설명한다. 과거에 주목받은 여러 우주론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저자가 제안한 양자 경관 다중우주론이다저자가 생각하는 양자 다중우주는 여러 갈래로 된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파동을 함수로 표현하면 여러 우주가 탄생할 확률은 모두 0이 아니라 제각각 다른 확률이 나온다. 양자 다중우주 속에 우주가 탄생할 확률이 0인 우주와, 0이 아닌 우주가 있는 것이다이 우주론 역시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불안정한 우주론에 속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만만하다. 양자 다중우주론의 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저자는 계산과 관측 자료를 근거로 내세워 다중우주론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양자 다중우주론의 타당성을 근거로 내세워 우주의 탄생을 불가능하다고 본 펜로즈의 계산 결과가 틀렸음을 밝힌다.


불안정한 우주론은 연구할 가치가 없는 이론이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계속 연구해야 할 이론이다. 안정적인 우주론은 완전히 닫힌 상태. 닫힌 상태를 유지하는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 편안해 보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닫힌 마음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불안정한 우주론은 열린 상태. 열린 상태의 이론을 연구하는 열린 마음의 과학자들은 검증받는 일을 좋아한다. 동료 과학자들의 외면과 무관심은 가설이 이론으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가설이 이론이 되지 못한 것을 실패한 결과가 아닌 배우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열린 마음의 과학자는 넘어져도 아쉬움을 툴툴 털어 버리고 다시 연구를 시작한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사실 세상에 처음 공개될 당시에 불안정한 이론이었다. 두 이론을 지지한 과학자들은 주류 이론에 과감히 도전한 열린 마음의 과학자였다재미있게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오랫동안 과학계를 군림해 온 뉴턴(Isaac Newton) 고전역학을 뒤집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주장한 열린 마음의 과학자였다. 하지만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보는 양자역학 앞에서는 닫힌 마음의 과학자가 되었다아인슈타인을 모순적인 과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게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과학자의 모습이다. 과학자는 세상의 이치를 완벽하게 설명할 줄 아는 천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과학자는 모순적이라서 친근하다. 과학자는 끈질기게 연구해서 기존 이론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졌으면서도 때로는 친숙한 이론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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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자연사 -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
마크 버트니스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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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연사(natural history)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이나 인간 이외의 자연 발전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자연사의 사전적 의미에 인간 생존의 역사, 인류사가 빠져 있다. 자연사와 인류사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있는 한 쌍의 단어로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을 자연 세계의 일부로 이해한다면 자연사와 인류사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두 발로 제대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짜 자원으로 활용했다. 자연을 개발 대상으로 인식한 인간중심주의가 득세하면서 자연 파괴 문제가 심각해졌다. 진화론에 심취한 지식인들은 인류의 문명, 특히 서양 문명이 진보의 정점에 있다고 착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작동된 무한경쟁 세계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보다 열등한 자연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되고, 자연이 있던 자리에 문명을 세운다.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한 문명사는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


문명의 자연사: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는 문명을 만든 인간을 치켜세우며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를 거부한다.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만 바라보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보는 관점도 따르지 않는다자연사를 논할 때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에 지나치게 쏠린 채 바라보면 인간은 지구에 민폐만 끼치는 동물로 비친다. 맞는 사실이지만, 자연을 약탈하는 인간의 폐해만 강조하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문명을 만든 인간의 능력이 간과된다이 책을 쓴 생태학자 마크 버트니스(Mark Bertness)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서로 얽혀 있는 관계로 본다. 인간을 자연 속의 일부로 보는 문명의 자연사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엮어진 지구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느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집합체다.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 24







이유 이유





* 54

 




폴 에얼릭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주]




* 뒤표지







[]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폴 에얼릭(1854~1915)인간의 본성()(이마고, 2008)의 저자이자 이 책의 추천사(책 뒤표지)를 쓴 미국의 생물학자 폴 에얼릭(Paul R. Ehrlich, 1932~ )과 동명이인이다. 인간의 본성()을 쓴 생물학자는 1964년에 자신의 논문에 공진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노벨상을 받은 폴 에얼릭은 독일 사람이다. 그러므로 ‘Paul Ehrlich’를 영어식이 아닌 독일어식으로 표기하면 파울 에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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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 않은 깊은 산 - 블랙홀에 대한 진짜 이야기
베키 스메서스트 지음, 하인해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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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블랙홀(black hole)은 이름이 많다우리에게 친숙한 블랙홀20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블랙홀의 첫 번째 이름은 검은 별(Dark star)’이었다.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블랙홀에게 이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영국의 성직자 존 미첼(John Michell)이다. 그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상상한 검은 별은 태양보다 무겁다. 검은 별은 질량이 매우 커서 빛이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중력이 세다미첼은 우주 어딘가에 검은 별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검은 별을 관측하지 못했다. 렌즈와 거울을 개량한 망원경으로 더 깊숙한 우주를 바라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검은 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블랙홀을 가르강튀아(Gargantua)’라고 부를 것이다가르강튀아는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가 쓴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다블랙홀도 한자어 이름이 있다. 黑洞.[주]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흑동? 흑통?은 두 가지 뜻을 가진 한자라서 음()도 두 개다. 골짜기를 뜻하면 골 동’, 밝음을 뜻하면 밝을 통이 된다.


베키 스메서스트(Becky Smethurst)는 블랙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천체물리학자다. 그녀는 블랙홀이 태양계에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절대로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소원을 끔찍한 재앙으로 여긴다. 블랙홀을 사랑하는 천문학자는 자신의 소원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그녀가 블랙홀의 또 다른 이름 黑洞을 알게 된다면 매우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黑洞은 블랙홀의 진짜 모습에 가깝기 때문이다그녀가 쓴 검지 않은 깊은 산블랙홀을 둘러싼 오해를 풀어주는 책이다저자는 블랙홀은 이름과 다르게 검지 않으며 거대한 구멍으로 생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책 제목인 검지 않은 깊은 산은 저자가 평소에 블랙홀을 소개할 때 쓰는 표현이다블랙홀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만 하는 천체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것들은 모조리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블랙홀 주변에 빛을 포함한 물질들이 중력에 이끌려 궤도 운동을 한다이때 빛은 휘어진 상태가 된다블랙홀 주변에 맴도는 물질들이 점차 쌓이면 거대한 산이 된다. 물질로 이루어진 산들이 솟아나면 골짜기(洞)가 생긴다. 우리는 아주 멋진 광경이 펼쳐진 우주의 산골짜기를 가까이 볼 수 없지만, 그곳은 우주에서 가장 밝은(洞) 곳이다


검지 않은 깊은 산은 상상의 검은 별’이 정식으로 블랙홀로 인정받기까지 수백 년에 걸친 모든 연구의 여정을 보여준다. 블랙홀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한 연구의 역사에 너무나도 유명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그는 죽을 때까지 블랙홀의 존재를 부정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등이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남성 과학자들의 명성에 가려진 여성 과학자들도 주목한다.


책 속에 오류라는 구멍이 보인다. 독자가 금방 눈치챌 정도로 커다란 구멍은 아니지만, 사실과 다르므로 저자나 편집자 또는 번역자가 이 구멍을 메꿔야 한다.



* 91~92





 러더퍼드1907년 맨체스터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방사능 원소가 붕괴하면서 내보내는 물질들을 계속 연구했다. 그는 이미 세 가지 방사선을 발견하여 각각 알파, 베타, 감마(빛의 감마선도 여기에서 비롯된 용어이다)라고 불렀고, 붕괴가 일어나면 원자가 자발적으로 다른 종류의 원자(다른 원소)로 변형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이 발견으로 190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원문]


 In 1907, he moved to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where he continued to study what was emitted by radioactive elements when they decayed. He had already identified three different types of radiation, which he dubbed alpha, beta and gamma rays of light get their name from), and showed that when the decay happens an atom spontaneously transforms into another type of atom (another element). It was for this that he w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in 1908.



저자는 러더퍼드를 노벨 물리학상수상자로 착각했다. 러더퍼드는 노벨 화학상(Nobel Prize in Chemistry)’을 받았다.




* 100~101





 과학자들이 블랙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결정적인 사건은 1967년에 전파천문대에서 조셀린 벨 버넬(Jocelyn Bell Burnell)마틴 휴이시와 함께 초마다 진동하는 미지의 전파 신호를 발견하면서 일어났다. 이듬해에는 1054년에 중국의 천문학자들이 기록한 초신성 잔해인 게성운의 중심에서도 같은 전파 진동이 발견되었다. 1970년까지 50곳에서 발견된 이러한 전파 진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과학자들이 가장 크게 수긍한 설명은 중성자별의 회전이다. 이처럼 전파를 내보내는 별인 펄서(pulsar)는 별이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지에 관한 퍼즐을 완성할 잃어버린 조각이었다.



펄서를 발견한 학자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마틴 휴이시가 아니라 앤터니 휴이시(Antony Hewish)’저자가 휴이시를 펄서 공동 발견자인 천문학자 마틴 라일(Martin Ryle)과 혼동했다. 





[주] 위키백과 블랙홀’ 항목. 위키백과에 적힌 참조 주석에 따르면 黑洞의 출처는 한국천문학회가 편찬한 천문학 용어집》(서울대학교출판부)이다. 하지만 2013년에 출간된 천문학 용어집개정판에 블랙홀’은 있지만 黑洞’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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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차원의 세계 포스트 사이언스 (POST SCIENCE) 18
신카이 유미코.하인츠 호라이스.야자와 키요시 지음, 전재복 옮김 / 북스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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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  C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소굴로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세계

날쌔고 용감한 폴이 여기 있다.


 

-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폴> 주제가(1984KBS 방영) 중에서 -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Euclid)차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속이 꽉 찬 입체를 자르면 단면이 생긴다. 단면을 한 번 더 자르면 이 생긴다. 선을 자르면 이 된다. 입체는 3차원이다. 이 세상은 3차원 공간으로 되어 있다. 3차원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가로, 세로, 높이를 규정할 수 있다면은 2차원이다. 가로와 세로만 있다. 선은 1차원이다. 선 한 개 표시하면 위치와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점은 0차원이다. 점은 도형이 아니다. 공간도 아니다. 길이와 크기를 측정할 수 없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는 차원의 정의를 설명할 때 입체가 아닌 점부터 시작한다. (0차원)을 아무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면 선(1차원)이 생긴다. 선이 가로와 세로 방향으로 움직이면 면(2차원)이 된다. 면을 위아래로 움직이면 입체(3차원)가 된다푸앵카레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3차원에 차원 하나가 추가된 ‘4차원을 상상했다.


수학자들이 공통으로 정의를 내린 차원(0~3차원)공간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추가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합친 4차원을 제시한다. 아인슈타인의 4차원은 단순히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개념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4차원에 뉴턴(Isaac Newton)이 믿은 절대 시간절대공간이 없다. 뉴턴은 어느 장소든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절대 시간), 시간이 지나도 공간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절대공간). 아인슈타인은 정적인 상태로 된 차원의 정의를 뒤집는 새로운 이론을 내세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를 관찰하는 사람의 시간은 느리게 지나간다. 그런데 운동하는 물체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이 주변 환경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지나간다고 느낀다. 아인슈타인은 관찰하는 사람의 위치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주장했다. 시간은 어디서든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이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아인슈타인 이후에 활동한 물리학자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다차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칼루차(Theodor Kaluza)클라인(Oskar Klein)은 상대성이론과 전자기학을 융합한 ‘5차원 시공간을 제시했다. 두 사람이 제안한 5차원 시공간은 크기가 아주 작은 둥근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관측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는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의 연구 대상인 차원이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차원은 생각보다 쉽게 설명하기 힘든 개념이다. 나처럼 차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과학에 접근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수학자가 바라보는 차원과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차원은 차이가 있다. 수학자는 수식과 이론을 이용하면서 차원을 설명한다면, 물리학자는 관찰하고 검증하면서 차원을 이해하려고 한다.


물리학과 수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차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와 같은 입문서를 읽으면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일본인 저자 두 명과 독일 출신의 저자가 함께 썼다. 책을 번역한 역자는 수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다. 과학책을 읽기 전에 제일 먼저 원서가 출간된 연도를 확인해야 한다. 출간된 지 오래된 과학책은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원서는 2011년에 출간되었다. 13년 전에 나온 책이다. 오래된 외국 과학책을 출간하려는 번역자와 편집자는 새로 발견된 연구 성과를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책에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았고, 책의 빈 곳을 역자와 편집자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은 중력파(gravitational wave)검증되지 않은 것이라고 썼다(122). 책이 나온지 4년이 지난 2015년에 중력파를 검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저자들은 힉스 입자로 알려진 힉스 보손(Higgs boson)’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입자라고 소개했다.



* 165~166

 




 이론물리학자들은 표준이론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우주 질량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아직 미지의 입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입자에 힉스 보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략) 많은 물리학자나 우주론 학자는 이 거대한 장치가 성능을 발휘해서, 힉스 보손의 존재가 확인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힉스 입자는 중력파와 함께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오래된 숙제 중 하나였으나 2013년에 CERN(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이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201112월에 힉스 입자의 존재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를 먼저 공개했다.


책의 편집 상태도 좋지 않다. 오류와 오탈자가 너무 많다. 정오표 작성은 생략하고, 오류만 언급하겠다. 







96쪽에 아인슈타인의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1880년에 태어나서 1952년에 사망했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1879년에 태어나서 1955년에 태어났다. 1880년에 태어나서 1952년에 죽은 아인슈타인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6촌 동생이자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귀화한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이다.







133쪽 각주에 있는 닐스 보어(Niels Bohr)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연도가 틀렸다. ‘1926이 아니라 ‘1922이다. 192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장 바티스트 페랭(Jean Baptiste Perr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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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0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상한 나라 폴! 너도 알고있니? 근데 84년이라고? 더 됐을 것 같은데. 나 초등학교 때 본 것 같은데. 암튼 내 최애 만화영화였지. ㅋ

cyrus 2024-05-04 19:25   좋아요 1 | URL
나무위키에 ‘이상한 나라의 폴’ 국내 방영 역사가 나오는데요, 1977년 TBC에서 처음 방영했어요. 그런데 너무 오래돼서 오프닝 영상이 남아 있지 않고요, 1984년 KBS판 만화 오프닝 영상이 유튜브에 있어요. 이때 나온 주제가가 저도 아는, 그 노래에요. 만화가 생각보다 진짜 오래됐어요. 저는 1996년에 나온 SBS판을 봤거든요. ^^

stella.K 2024-05-04 20:1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이게 버전이 여럿 있구나. 96년도에도 있었다니 몰랐네. 난 오리지널 버전으로 본 거지. 진짜 어릴 때 생각난다. 😭

그레이스 2024-05-0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나라의 폴, 저도 봤죠. 신밧드의 모험을 볼 때랑 비슷한 느낌을 받맜던듯 해요^^

cyrus 2024-05-04 19:27   좋아요 0 | URL
<신밧드의 모험>, 이 만화도 제가 초등학생 때 봤어요. KBS에 방영했어요. ^^
 




314일은 파이 데이. 파이는 그리스 문자 π이며 원주율을 뜻하는 수학 기호다원주는 원의 둘레를 뜻한다. 원주에서 원지름을 나누면 원주율이 나온다. 원주율은 끝이 없는 값이다. 3.14로 시작해서 숫자가 계속된다. 근삿값인 3.14가 원주율이다. 수학자들은 3.14와 숫자가 같은 314일을 원주율을 기념하는 날로 정했다.


1년이 12개월이 아니라 20개월이라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1년이 금방 지나간다고 하소연한다. 시간이 빠르다. 다음 달이면 5월이다. 달 수가 많아지면 나이 한 살 먹는 속도가 덜 빠르게 느껴질까? 갑자기 궁금하긴 한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해서 상상의 나래를 ‘1년은 20개월’, 딱 여기까지만 펼치겠다.


1년이 20개월인 세상에서 ‘1729은 파이 데이와 더불어 수학자들을 위한 특별한 날이다1729.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수다. 하지만 이 네 자리 숫자는 수학자들에게는 뜻 깊은 수다1,729의 숨은 의미를 꿰뚫어 본 수학자가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이다라마누잔은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수학자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라마누잔은 스스로 수학을 공부했으며 복잡한 수식을 공책에 적어 가면서 계산했다
















* 로버트 카니겔, 김희봉 옮김 수학이 나를 불렀다: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사이언스북스, 2000)




라마누잔은 자신이 직접 풀어서 증명한 수식과 정리들을 편지에 써서 영국의 수학자들에게 보냈다그의 비범한 능력이 영국에 알려지지만, 오만한 제국의 수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드프리 하디(Godfrey Harold Hardy)는 생각이 달랐다. 당시 하디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하디는 생소한 증명 방식에 흥미를 느꼈고, 인도 청년을 영국으로 초청한다. 하지만 라마누잔은 단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떠나본 적 없는 힌두교 신자였다. 우여곡절 끝에 라마누잔은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라마누잔은 하디와 함께 연구했고, 하디는 그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그러나 영국은 여전히 오만했으며 유독 라마누잔에게 쌀쌀맞게 구는 제국이었다. 라마누잔은 채식주의자여서 영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영국의 쌀쌀한 날씨는 라마누잔을 괴롭혔다. 몸은 얼어붙어 있어도 정신만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열정은 수식과 기호로 가득한 라마누잔의 삶이 차갑게 식지 않도록 데워 주었다.
















* G. H. 하디, 정회성 옮김 어느 수학자의 변명: 수학을 너무도 사랑한 한 고독한 수학자 이야기(세시, 2016)




몸이 허약해진 라마누잔은 병원에 입원했고, 자주 병문안을 온 하디와 수학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었다. 하디는 병원에 가기 위해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였다고 말했다. 하디는 1,729를 평범한 택시 번호라고 했지만, 라마누잔은 매우 흥미로운 수라고 생각했다1,729서로 다른 두 개의 수를 세제곱 해서 더하는 방법이 두 가지인 가장 작은 수1,729를 눈여겨본 라마누잔에 대한 일화는 하디의 자서전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 나온다. 수학자들은 1,729 하디-라마누잔 수또는 택시 수(Taxicab number)라고 부른다.

















* 스토 야스시, 전종훈 옮김 《최소한의 수식으로 이해하는 우주의 수학》 (플루토, 2024)


* 콜린 스튜어트, 오혜정 옮김 《숫자로 끝내는 수학 100: 100개의 숫자로 이해하는 수학!》 (지브레인, 2016)




1,729가 유명해지면서 라마누잔은 천재 수학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또 원주율을 구하는 수식을 발견했는데, 여전히 수학자들은 그가 어떻게 수식을 생각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스토 야스시(須藤 靖)의 책 우주의 수학에 라마누잔이 증명한 원주율 구하는 식이 나온다. 스토 야스시는 이 책에서 수식이 아름답다고 예찬하면서도 라마누잔이 풀이한 수식은 복잡해서 아름다움이 느끼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극찬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라마누잔의 공책에 온갖 수학 공식과 정리들이 채워져 있다. 수식을 푸는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 적혀 있다. 라마누잔은 힌두교에 숭배받는 나마기리(Namagiri)라는 여신이 꿈속에 나타나 수학을 가르치고, 잠에서 깨고 나면 여신이 알려준 것을 공책에 적는다고 했다.


택시 수 1,729와 여신이 가르쳐준 것을 받아 적었다는 공책들. 라마누잔의 비범한 능력을 강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과학자의 천재성만 보여주는 과학의 신화화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 중에 발생되는 일들(측정 오류, 예상하지 못한 변수 등)을 생략한다. 미발표된 라마누잔의 공책은 총 네 권이다. 네 권의 공책 속에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는 공식들이 있다고만 알려졌는데, 잘못 증명된 공식들도 포함되어 있다.


라마누잔은 1,729가 특별한 수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라마누잔의 공책에 1,729를 계산한 기록이 있다. 라마누잔은 자신이 직접 푼 계산 방식을 기억하고 있어서 하디에게 1,729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1,729를 하디-라마누잔 수라고 부를 수 없다.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과학 해설자 콜린 스튜어트(Colin Stuart)의 견해에 따르면 1657년에 수학자들이 1,729를 연구한 기록이 남아 있다. 1,729특별한 수’일 뿐, ‘특별한 수학자의 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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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마누잔. 낯설지가 않네. 언젠가 이 사람 전기영화를 본적이 있는 거 같은데 제목이 생각이나질 않는다. 영화 괜찮았는데.

cyrus 2024-05-01 20:14   좋아요 0 | URL
영화 제목이 <무한대를 본 남자>예요. ^^

stella.K 2024-05-02 09:59   좋아요 0 | URL
아, 맞아. 무한대를 본 남자! 너도 봤나?

cyrus 2024-05-04 11:26   좋아요 0 | URL
영화 안 봤어요. ^^;;

카스피 2024-04-2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마누잔 이분 저도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너무 일찍 돌아가셨더군요

cyrus 2024-05-01 20:16   좋아요 0 | URL
네, 만약 라마누잔이 오래 살았다면 가우스와 오일러에 견줄만한 천재 수학자로 알려졌을 거예요. 영화 제목은 <무한대를 본 남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