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 - 저명 신경과 의사가 감각 이상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
기 레슈차이너 지음, 양진성 옮김 / 프리렉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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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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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 한세상 산다는 거 생각하기 달렸는데

무얼 그리 안타깝게 고개 숙여 앉아 있소.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

 

- 송골매 1집 수록곡 <세상만사>(1979) 중에서 -

 


이러구러: 정해진 방법 없이 이렇게 저렇게 일이 진행되는 모양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아무리 백번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눈으로 보면서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할 때 눈으로 보는 시각 정보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는지를 시사한다. 오감 중에 살아가는 데 절대로 없으면 안 되는 감각 하나만 떠올려보자. 아마도 대다수 사람은 시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봐도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눈으로 보는 시각 이미지가 실제 사물의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착시라고 한다. 1976년에 NASA가 공개한 화성 표면 사진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에 찍힌 화성 표면에 얼굴 형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화성의 얼굴이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고화질 사진으로 촬영한 화성 표면에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의 정체는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 또는 언덕이다. 화성에 얼굴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제대로 속았다. 그것도 자신들의 눈과 뇌에 속은 것이다. 그들은 왜 화성의 암석 덩어리에서 얼굴 형상이 보였던 것일까? 이러한 심리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한다. 우리는 모호하거나 불규칙한 형상의 물체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친숙한 형태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만 기묘한 형상이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레이돌리아가 빚어낸 형상은 허구이며 가짜에 가깝다.

 

눈으로 보는 것이 착각과 오류를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청각이 시각보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하듯이 듣는 것만 듣고 싶어 한다. 1994년에 발표한 댄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수록곡 <교실 이데아>에 사탄의 메시지가 있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음모론을 믿은 사람들은 <교실 이데아>를 역재생하면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고 했다. 몰상식한 개신교 인사들은 <교실 이데아>를 만든 서태지가 의도적으로 사탄의 메시지를 심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교실 이데아>는 사탄과 전혀 관련 없는 노래다. <교실 이데아> 음모론은 귀에 익은 발음을 떠올리려는 뇌와 청각 기관이 함께 일으킨 착각의 산물이다.


감각 인식 오류는 세상의 진실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먹어보면서 맛을 느끼고, 어떤 소리를 듣고, 직접 만져보면서 주변 세상을 인식한다. 오감을 총동원하여 느낀 세상을 진짜라고 믿는다. ? 당연히 내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했고, 먹어봤으니까. 하지만 우린 항상 크고 작은 감각에 속으면서 살아간다.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세상은 정확하지 않다. 개인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뇌는 생소한 경험보다 친숙한 경험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접하는 복잡한 정보를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세상은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는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감각의 한계와 특이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신경과 전문의다. 이 책에 소개된 환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감각을 가지면서 살아간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희소 질환인 선천성 무통각증을 겪는 사람, 향수 냄새가 지독한 악취로 느껴져서 괴로워하는 사람, 모든 것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채워진 왜곡된 형태로 보이는 사람까지. 이들은 모두 이상한 감각이 만들어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과장되고 왜곡된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환자가 있는 반면에 갑자기 찾아온 감각 이상 반응으로 인해 예전의 일상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진찰한 환자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그들의 복잡한 심경까지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서술 방식은 전문 지식과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 경험으로 무장한 의사나 학자들이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환자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기만 하는 전문가 입장에 서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건강하고 똑똑한 의사와 이상한 감각으로 인한 질환과 장애를 안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환자를 철저히 구분하게 만드는 경계를 무너뜨린다. 저자는 매우 솔직하다. 자신 또한 감각의 거짓말에 당한 적이 많다고 고백한다. 자기도 언젠가는 감각기관이 제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감각의 거짓말에 속는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오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감각이라고 믿고 있던 착각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감각의 속임수로 만들어진 세상과 진리를 지나치게 확신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감각의 한계, 즉 인간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한계가 불편하더라도 외면해서 안 된다. 의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감각 이상과 오류를 무조건 고쳐야 할 비정상적인 문제로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다.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상한 감각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건강하지 않고 불행하게 사는 장애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 어떤 환자는 감각 이상을 질병과 장애라기보다는 세상을 색다르게 보게 만드는 특별한 창()으로 여긴다. 감각의 거짓말을 피할 수 없는 우리는 똑똑하지 않지만, 살아갈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무능하지 않다. 이 세상을 무기력과 자책의 늪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감으로 해석한 각자만의 경험이 녹아든 감각의 제국(諸國)’ 속에서 살아간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른 사람이 구축한 감각의 제국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개입하고 지배하려는 사람을 감각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라고 불러야 하나. 이 한세상 산다는 건 오감으로 느끼기에 달렸다. 오감으로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라는 이유로 고개 숙여 앉아 있지 말자.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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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6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간간이 자주 보이네. ㅎ
난 눈을 못 믿겠으면 청각을 믿어보라고 할 참이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맨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게
청각이라잖아. 그런데 그것도 못 믿겠구만.
이건 딴 얘기지만, 송골매하면 배철수지만 세상만사는 구창모가 불렀지.
지난 3월말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71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배철수 씨가 그와 동갑이라더군. 세월 참 빨라.
나에겐 영원한 오빠지. ㅋ

cyrus 2023-04-06 19:49   좋아요 1 | URL
계속 글을 써서 남기다가 또 갑자기 조용히 사라질 수 있어요. 이제는 정말 예전처럼 책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싶어요. 세월이 지나니까 체력과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네요. 시력은 정말 안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
 
우주로 가는 물리학 - 미시세계에서 암흑물질까지, 우주의 실체를 향한 여정
마이클 다인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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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과 모든 만물의 근원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나올까? 아인슈타인(Einstein)은 말년에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한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을 완성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 당시에 약력과 강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아인슈타인 사후에 등장하거나 활동하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은 통일장 이론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다. 현재 통일장 이론에 근접하는 후보 이론으로 많이 거론된 것이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M 이론(M-Theory)’이다. 초끈이론은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M 이론은 기존의 다섯 가지 초끈이론을 통합한 이론이다. M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10차원 공간과 시간인 1차원이 합친 11차원 시공간으로 되어 있다. 11차원 시공간에 존재하는 만물은 4차원으로 이루어진 얇은 막에 붙어 있다. 물리학자들은 M 이론의 ‘M’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M의 의미는 ‘membrane()’의 머리글자다.

 

초끈이론과 M 이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언젠가는 네 가지 힘과 모든 물질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이들의 낙관적 전망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초끈이론과 M 이론을 비판하는 물리학자들은 실험하여 정확한 결괏값을 도출하는 일에 익숙한 실험자. 이와 반대로 초끈이론과 M 이론을 옹호하는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추론을 중시하는 이론가에 속한다. 이렇듯 물리학자는 실험자와 이론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뉜다. 물리학계의 현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실험자와 이론가들이 서로 등을 돌린 상태로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모든 물리학자를 두 가지 유형으로 단순하게 분류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뉴턴(Newton)은 가장 위대한 실험자이자 이론가다. 물체의 운동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고전역학과 뉴턴이 독자적으로 만든 미적분은 각각 물리학과 수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물리학과 수학이 상호보완하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정립되었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을 쓴 저자 마이클 다인(Michael Dine)은 실험자와 이론가 양쪽 진영에 발을 걸치고 있는 물리학자다. 그는 물리학과 수학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은 실험자와 이론가들이 어떻게 물질과 우주의 기원을 탐구해왔는지 보여준다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이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은하를 관측하면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이론가들은 우주가 정적이지 않다고 예측했다. 러시아 물리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은 방정식을 이용해 팽창하는 우주 모형을 제시했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방정식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응용해서 유도한 것인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팽창하는 우주 모형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적인 우주 모형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그는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허블을 비롯한 실험자들이 관측을 통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를 ‘자신의 최대 실수라면서 인정했고 정적인 우주 모형을 철회했다.


물리학자들은 실험을 진행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수학을 연결했다. 수학은 실험자들이 쩔쩔매게 했던 물리학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수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물리학자들은 우주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서로 자신의 견해를 검증하면서 협력하고 있는 실험자와 이론가의 관계를 생각하면 마이클 다인의 책 제목은 우주로 가는 물리학이 아니라 우주로 가는 물리학과 수학이어야 한다수식을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독자들은 안심해도 된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에 유일하게 나온 수식은 ‘E=mc2’뿐이니까.


저자는 이 책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실험자와 이론가들도 소개했다. 그렇지만 한 권의 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많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뛰어난 성과 중에 핵심만 추려서 설명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몇몇 학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활동한 리투아니아 출신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는 기하학으로 4차원 시공간 모델을 제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민코프스키에게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운 덕분에 특수상대성이론을 다듬을 수 있었다. 벨기에의 가톨릭 성직자인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의 기원을 연구해서 허블보다 먼저 우주 팽창론을 발표했다. 상대성이론과 우주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두 사람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주로 가는 물리학을 쓴 저자와 번역자가 실수를 범했다. 그들의 실수로 인해 본의 아니게 책에 오류와 오역이 생겼. 이 책의 번역자는 과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이한음 씨.



* 38




 

 신을 논외로 친다면, 시간의 경과가 어디에서나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까? 사실 이 질문은 19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가 제기했다. 아인슈타인을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던 마흐는 뉴턴이 주장한 절대시간을 이렇게 평했다.


[원문]

 

 Leaving God aside, what proves that the passage of time is the same everywhere and always? Indeed, this question was raised by Ernst Mach, a physicist and philosopher who was active in Austria in the latter part of the nineteenth century. One of Einstein’s intellectual heroes, Mach wrote of Newton’s insistence on absolute time.



‘One of Einstein’s intellectual heroes, Mach’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던 마흐또는 아인슈타인의 지적 영웅 중 한 명인 마흐로 번역해야 맞다. 마흐는 뉴턴이 가정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형이상학적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지구상 모든 물체는 뉴턴이 가정한 절대 운동이 아닌 상대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마흐의 원리라고 한다. 마흐의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마흐가 아인슈타인을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다는 표현은 오역이다.




* 51




 

 갈릴레오의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낙하하는 물체를 연구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지만, 꼼꼼한 관찰을 토대로 한 진술은 아니었다. 갈릴레오는 이 주장에 회의적이었고 그 문제를 실험을 통해 조사했다. 그가 정말로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질량이 다른 물체들을 떨어뜨렸는지는 학술적 논쟁거리다.


[원문]

 

 Galileo’s most famous experiments were his studies of falling objects. Archimedes, the ancient Greek philosopher, had asserted that heavy objects fall faster than lighter ones. This was a plausible guess, but not a statement based on careful observations. Galileo was skeptical and studied the question experimentally. Whether he actually dropped objects of different mass from the Leaning Tower of Pisa is a subject of scholarly debate.



떨어지는 물체의 운동을 처음으로 언급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는 아르키메데스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와 부력의 실체를 발견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무기와 각종 기계를 만든 공학자이기도 하다저자가 학자 이름을 착각했다. 이한음 씨는 저자의 오류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번역했다.




* 178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는 예전 소련에서 중요한 과학자이자 반체제 목소리를 낸 주요 인사였다. 1921년에 태어난 그는 1950년대에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 그는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소련을 이렇게 평했다. “우리 국가는 암세포와 비슷하다. 절대 신념과 팽창주의, 반대자의 전체주의적 억압, 권위주의 권력 구조를 갖추고 국내 및 외교 정책의 가장 중요한 결정에 대한 대중 통제력의 철저한 부재, 그 어떤 중요한 사항도 시민에게 알리지 않고, 외부 세계에 문을 닫고, 여행도 정보 교류의 자유도 없는 폐쇄 사회다.” 인권과 군축을 옹호한 공로로 그는 1975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 그는 수용소로 보내졌고, 1988에 생을 마감했다.


[원문]

 

 Andrei Sakharov was an important scientist and leading dissident voice in the former Soviet Union. (중략) For his work as an advocate for human rights and arms control, he won the Nobel Peace Prize in 1975. In 1980, he was sent into internal exile, passing away in 1988.



1980년에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공개적으로 규탄하자 소련 정부는 그와 가족을 고리키 시(현재 명칭은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한 아파트에 가택 연금시켰다


‘Internal exile’은 국내의 외딴 지역으로 격리(유배)되는 형태인 내부 망명을 뜻한다. 사하로프가 수용소로 보내졌다는 표현은 오역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하로프의 사망 연도를 착각했다. 사하로프는 1989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이한음 씨는 ‘철학자 아르키메데스에 이어서 저자의 오류를 확인하지 못했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223

 

 규소, 게르마늄, 제논[주] 같은 물질을 이용해서 다양한 검출 실험이 이루어졌다.



[주] 대한화학회는 라틴어 및 독일어로 된 화학 용어를 영어로 표기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게르마늄(Germanium)을 영문식으로 표기하면 저마늄이다. 제논은 대한화학회가 권장한 이름인데, 과거에 이 원소는 크세논(Xenon)이라고 불렸다


변경된 화학 용어를 반드시 써라는 법은 없다. 사실 대한화학회의 화학 용어 개정안에 문제점이 있고, 대부분 국내 과학자들은 화학 용어 개정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 명칭을 쓴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다만 과거 명칭에 익숙한 독자는 새롭게 변경된 명칭을 잘 모를 수 있다. 저자와 번역자는 화학 용어를 쓸 때 과거 명칭과 대한화학회가 지정한 새로운 명칭을 함께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저마늄(게르마늄), 제논(크세논)’으로 쓰면 된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쓰는 저자와 번역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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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 - 온 세상을 뒤흔들어온 가장 미세한 존재들에 대하여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헬무트 융비르트 지음, 유영미 옮김, 김성건 감수 / 갈매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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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쓴 유일한 소설 콘택트(Contact, 1985)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앨리 애로웨이(Ellie Arroway)는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천문학자다그녀는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인간 이외에 또 다른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세이건은 SETI(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올해 92일에 작고한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1961년에 열린 SETI 프로젝트 회의에서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외계 지적 생명체 문명의 수를 계산하는 일명 드레이크 방정식을 제안했다이 방정식을 이용해 계산해 보면 우주에 외계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문명의 수는 수십 개에서 최대 수천만 개까지다드레이크 방정식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과학자들은 우주에 외계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가설과 계산법을 제시했다. 인류와 비슷한 수준의 외계 지적 생명체는 당연히 존재한다는 믿음이 팽배했던 학계에 이탈리아 출신 미국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는데?”

 

57년간 SETI 프로젝트의 선봉대 역할을 했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2020년에 해체되었다. 그래도 세계 각국 기관과 과학자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전파 신호를 보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실제로 있다면 그들은 우리가 보낸 전파 신호를 확인하고 우리에게 회답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페르미가 던진 질문에 제대로 한 방 먹어서 얼얼할 텐데 그래도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그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가 대답하지 않는 이유를 나름 그럴싸하게 설명한다. 그중 하나가 동물원 가설이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우리를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동물원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가 인간들이 자신들의 수준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인간이 지구와 우주의 중심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가 침묵하는 이유가 못마땅하다. 우주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 이 XX들이 생까고 있는 거라면 우리는 쪽팔려서 어떡하나?”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지구와 인간의 존재를 알리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존중한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인간 중심주의를 다 벗어버리지 못했다. 인간이 보기에 지구는 우리의 이다. 인간은 집주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살기 시작한 동식물을 학살했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 자연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인간은 우주도 개발하려고 한다우주 개발에 성공하면 우리의 집은 더 넓어진다그런데 우주에 정말 우리 인간만 있을까? 우리만 있다고 해서 공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지구와 우주는 인간을 위한 터전이 아니다. 우주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우주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존재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미생물이라고 부른다우주는 혼자가 아니다.


한 사람의 몸 안에 있는 미생물의 수는 드레이크 방정식으로 계산해서 나온 외계 지적 생명체 문명의 수보다 많다. 우리 몸 안에 10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미생물은 지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미생물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지구의 집주인이다미생물보다 한참 늦게 나타난 인간은 미생물이 만든 지구에 염치없이 얹혀살고 있다.


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는 천문학 관련 팟 캐스트를 진행하는 과학 저술가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Florian Freistetter)와 생물학자 헬무트 융비르트(Helmut Jungwirth) 함께 쓴 책이다. 두 사람은 과학 대중화를 위해 만들어진 모임인 사이언스 버스터즈(Science Busters)’ 소속 회원이다. 이 책은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주거나 악영향을 주는 100개의 미생물을 소개한다. 우리는 수많은 미생물과 접촉(contact)하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아주 작은 고마운 존재를 모른그저 미생물을 병을 일으키는 세균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미생물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빵과 맥주는 미생물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방사성 폐기물은 우리가 만든 쓰레기인데도 버리지 못한다.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지하 암염층에 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암염층에 물이 들어가면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물이 흘러나올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려면 암염층에 사는 할로박테리움 노리센스(Halobacterium noricence)라는 미생물이 필요한데, 이 미생물은 방사성 폐기물의 확산을 막아준다인간이 우주에 정착하려면 미생물과의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우주 온실에 사용되는 비료는 소변이다. 그런데 소변에 있는 암모니아는 해롭다연두벌레라고도 불리는 유글레나 그라실라스(Euglena gracilis)는 암모니아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광합성 작용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낸다.






믹소트리카 파라독사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 린 마굴리스는 칼 세이건의 전처다. 




이 책에 미국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언급해서 유명해진 미생물 믹소트리카 파라독사(Mixotricha paradoxa)가 나온다.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특정 지역에만 서식하는 흰개미 몸속에 있다. 이 미생물의 몸에 있는 25만여 개의 섬모는 박테리아다믹소트리카 파라독사에 섬모처럼 생긴 수많은 박테리아가 기생하고 있다그런데 박테리아가 없으면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는 끈적한 소화액이 가득한 흰개미 내장 속에 살지 못한다.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은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는 보답으로 박테리아에게 양분을 공급해준다. 해러웨이는 이들의 공생 관계에 주목하면서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를 독립적인 하나의 개체로 분류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두 생명체는 한 몸이 되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를 읽으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가 모두 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십억 년 전 초신성 폭발로 우주를 떠돌던 별의 물질들이 뭉쳐져 지구를 만들고, 이것을 재료 삼아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만들어졌다. 이 책에서 세이건은 인간을 별의 먼지라고 했다. 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를 읽으면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라는 질문에 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 병균에 맞서고, 우리 몸에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서 공급해준 미생물 덕분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인간은 미생물로 만들어졌. 아주 오래된 우리의 친족(kind)인 미생물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을 알면 더 잘 보인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51





카톨릭 가톨릭

 





* 71





로버트 코흐 로베르트 코흐[주1]



[1] 코흐는 독일인이므로 ‘Robert’독일식으로 표기하면 로베르트. 94쪽과 222쪽에 로베르트 코흐로 표기되어 있다.






* 95





페트라의 접시 페트리의 접시






* 106






탐사선 호이겐스 탐사선 하위헌스 [주2]



[2] 네덜란드어 이름인 하위헌스의 구() 외래어 표기는 영어식 발음인 호이겐스였다. 토성 탐사선의 정식 명칭은 카시니-하위헌스(Cassini-Huygens)’.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 이탈리아 우주국(ASI)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토성의 고리 사이에 있는 틈인 카시니 간극을 발견한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시니와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을 발견한 하위헌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본체인 우주선 카시니호와 부속 착륙선인 하위헌스호로 이루어져 있어서 카시니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327쪽에 언급된 우주탐사선 카시니는 하위헌스호다.






* 167쪽


 세균은 아주 미세하다. 전형적인 박테리아는 1마이크로미터 정도의 크기다. 100만분의 1미터로, 우리 머리카락 지름보다 60배 정도 작다. 이런 점에서 1999년에 발견된 티오마르가리타 나미비엔시스(Thiomargarita namibiensis)라는 박테리아는 아주 거대하다.[주3] 최대 0.75밀리미터 크기다. 이 문장의 마침표만 한 크기다. 현미경 없이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3] 세상에서 가장 큰 세균은 티오마가리타 마그니피카(Thiomargarita magnifica). 올해 623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보고된 이 박테리아는 서인도 제도의 과들루프섬의 맹그로브 숲에서 발견되었다티오마가리타 마그니피카의 길이는 1cm로 일반 박테리아보다 5,000배나 크다(사진 출처: <“에베레스트만한 사람 나온 셈길이 1초거대 박테리아 발견>, 조선일보, 2022624)

 





* 308





 요나트는 2009년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토머스 스타이츠,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과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네 번째 여성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은 그보다 45년 전 상을 받은 도러시 호지킨(Dorothy Hodgkin)이었다.[주4]




[4]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은 마리 퀴리(Marie Curie). 그녀는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1911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 354





 울프사이먼 팀이 ‘GFAJ-1’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모노호에서 서식하는 할로모나다세아(Halomonadaceae)에 과의[5] 박테리아는 유독한 비소가 보통의 생물에서 인이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5] 오자. 할로모나다세아과 또는 할로모나다과로 써야 한다.






* 377





 롭 던(Rod Dunn)집에서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미생물에서 다지류, 꼽등이, 꿀벌에 이르기까지 우리 집 자연사 [주6]




[6] 집에서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2020년에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생물학자의 집 안 탐사기(홍주연 옮김, 까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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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을 알고 싶어서 도서관 몇 군데 들락날락했다. 출산과 육아 관련 책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그중 한 권이 출산, 그 놀라운 역사이 책은 절판되었다. 진작 이 책을 알았으면 미리 샀을 텐데.
















* [절판] 티나 캐시디 출산, 그 놀라운 역사(후마니타스, 2015)




이 책의 저자는 기자다. 그녀는 처음 임신했을 때 자연 출산을 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고, 이때 경험을 토대로 출산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책의 번역에 참여한 역자가 총 다섯 명이다. 이들은 2002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정책 관리 전공 입학 동기다. 책이 출간된 당시(2015)에 다섯 명의 역자 모두 보건정책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는 주제와 내용 면에서는 좋은 책이다. 하지만 책 곳곳에 잘못 알려진 상식과 오해의 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 있다저자는 같이 사는 여성들의 월경 주기가 비슷해지는 현상인 생리 동기화를 언급했다



 자매, 수녀, 친한 동료처럼 매일매일을 함께하는 여성들이 매달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월경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379)



하지만 오래전부터 생리 동기화 연구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생리 동기화를 우연의 일치로 결론 내린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저자는 정자 속에 있는 호르몬인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 자궁경관을 열어주게 만드는(자궁 이완) 물질이라고 말한다.



 사실, 성관계가 출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정자는 자궁경관이 열리도록 도와주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362)



프로스타글란딘의 종류가 많다. A~H까지의 8으로 분류되며 작용도 다양하다. 특히 E, F족은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프로스타글란딘은 자궁 이완뿐만 아니라 자궁 수축도 유발한다생리 날이 가까워지면 프로스타글란딘 분비가 많아진다자궁이 수축하면 불필요한 점막과 혈액이 체외로 배출되는데 이 현상이 바로 생리다. 그렇지만 자궁 내막에 프로스타글란딘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자궁 수축이 강해져서 생리통을 유발한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의 저자는 성관계가 출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임신한 아내를 위해 성관계를 금해야 하는 남편으로선 임신 중 성관계의 순기능이 듣기 좋은 말일 수 있겠다하지만 전문가 한 사람의 말만 믿고 너무 뜰떠선 안 된다. 임신 중 성관계가 좋은지 나쁜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미국의 아빠 육아 전문가 아민 A. 브롯(Armin A. Brott)임신 중 성관계를 하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민 A. 브롯제니퍼 애쉬 공저 진짜 아빠 백과사전초보 아빠를 위한 세상의 모든 지식》 (보물창고, 2018)



 파트너가 조산, 전치태반, 자궁경부무력증(자궁경부가 태아를 안에 품고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것) 등의 위험이나 병력이 있다면,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먼저 의사와 상의하자. 유두 자극과 오르가슴은 자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약간의 수축을 유발할 수도 있다. 파트너에게 이런 증상이 있거나 조산의 위험이 있다면, 섹스할 때 콘돔을 사용하도록 하자. 물론 피임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정액에 있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호르몬이 자궁 수축을 유발할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


(진짜 아빠 백과사전》 중에서, 147쪽)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진짜 아빠 백과사전을 동시에 만나지 않았다면 한쪽으로 쏠린 정보만 봤을 테니까비록 지금은 미혼이고 내 인생 계획에 결혼은 없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서 공부하려고 한다. 내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에게 잘난 척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싶지 않다. 내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말했다간 그 과정에서 정보가 와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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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기숙사에서 합숙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리(월경) 주기는 같아질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A라는 여성이 생리를 하면 그녀와 같이 사는 A의 친구 B도 생리를 한다. 1971년 미국의 생물학자 마사 매클린톡(Martha McClintock)과 캐서린 스턴(Catherine Stern)은 학술지 <네이처>(Nature)여자들이 함께 살면 생리 주기가 비슷해진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 학자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135명의 여학생의 생리 주기를 조사한 결과 이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생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사 매클린톡은 여성들의 생리 주기를 일치하게 만든 원인이 페로몬(pheromone)이라고 주장했다. 땀 속에 페로몬이 있는데, 이 화학 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지면 같이 사는 여자의 코로 향한다. 코는 페로몬을 화학적 신호로 받아들인 다음, 그 신호를 해독해서 생리를 일으키는 정보를 확인한. 페로몬 속에 있는 정보를 인식한 여자의 몸은 페로몬을 발산한 여성의 생리 주기에 맞추려고 한다. 이 현상을 생리 동기화(Menstrual synchrony, 또는 월경 동기화)’라고 한다동기화(同期化)란 두 개의 개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주기로 운동하는 현상이다. 생리 동기화는 발견자의 이름이 붙여진 매클린톡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개정 증보 2, 2020, 어크로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4악장’ 편에 <박수의 물리학>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의 주제는 동기화(synchronization). 책의 저자 정재승 교수는 이 글의 초반부에 매클린톡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동기화 현상에 관해 설명한다저자의 말에 따르면 여성의 생리 주기는 일정한 주기를 가진 운동이다. 여성들의 겨드랑이에 나온 땀에 호르몬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생리 동기화를 일으키는 매개체다.
















* [절판] 스티븐 스트로가츠 동시성의 과학, 싱크 Sync: 혼돈스런 자연과 일상에서 어떻게 질서가 발생하는가?(김영사, 2005)




이 글에 동기화 현상을 컴퓨터로 확인한 스티븐 스트로가츠(Steven Strogatz)가 언급된다. 동시성의 과학, 싱크 Sync(Sync: the emerging science of spontaneous order, 2003)는 국내에 처음 선보인 그의 책이다. 스트로가츠는 이 책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동기화 현상을 제시하는데, 여기에 매클린톡 효과도 포함되어 있다.
















* [절판] 티나 캐시디 출산, 그 놀라운 역사(후마니타스, 2015)

 



출산 문화의 역사라는 주제를 다룬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는 좋든 나쁘든 인류 탄생과 아주 밀접한 출산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의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로 친밀한 부부의 호르몬 수치 변화가 같아지는 현상을 제시한다. 그는 이 현상이 매클린톡 효과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자매, 수녀, 친한 동료처럼 매일매일 함께하는 여성들이 매달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월경을 한다고 주장한다(379).


대다수 여성은 매클린톡 효과라든가 생리 동기화를 들어본 적이 없어도, 함께 생활하는 친구와 생리 주기가 비슷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신기한 경험을 잊지 못한 여성들은 매클린톡 효과를 여성의 우정과 연대감을 보여주는 생리적 징표로 여기고 싶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성차별적 관용어 여자의 적은 여자에 반박하기 위해 매클린톡 효과를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매클린톡 효과는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필터를 거쳐야 하는 가설로 남아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매클린톡 효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1980년대부터 여러 과학자가 매클린톡 효과를 재현하는 실험을 수행했고, 페로몬과 생리 동기화의 연관성에 반박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매클린톡 효과를 비판하는 과학자들은 생리 동기화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 마르탱 뱅클레르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여성의 몸과 건강에 관한 사소하지만 절실한 질문과 답변(교양인, 2022)

 

* 프랑스 카르프, 카트린 조르주와이오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초경에서 완경까지 내 몸으로 쓰는 일기(도서출판 , 2019)

 

* 엘리즈 티에보 이것은 나의 피: 익숙하고 낯선 생리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2018)




페미니스트와 여성의학 전문가들은 월경을 부정적인 편견(생리혈은 더럽다)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이를 금기하는 사회적 분위기(생리하는 날을 그날이라고 부르는 것)에 꾸준히 문제 제기해왔다. 그들도 과학적 증거가 빈약한 매클린톡 효과를 부정한다


페미니스트 기자 엘리즈 티에보(Élise Thiébaut)는 생리에 관한 부정적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이것은 나의 피를 썼다. 이 책에 그녀는 매클린톡 효과를 소개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과학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194~195)’라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클린톡 효과와 상반되는 연구 결과들도 언급한다. 1992년 미국의 인류학자 H. 클라이드 윌슨 주니어(H. Clyde Wilson Jr.)매클린톡의 연구 방법이 잘못되었으며 생리 주기가 예측 불가능하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는 두 명의 프랑스 출신 기자가 함께 쓴 책이다. 두 저자는 여성 언론지에 여성의 몸과 건강을 주제로 한 글을 써왔다. 이 둘 중 한 명이 매클린톡 효과에 관한 내용을 썼을 텐데, (누군지 알 수 없는) 저자에 따르면 여성을 포함한 인간에게는 생리 동기화와 관련된 화학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것을 해독할 능력도 없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인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는 올해에 나온 책이다. 책의 저자 마르탱 뱅클레르(Martin Winckler)는 의사다. 그는 25년 동안 병원에 일하면서 수많은 여성 환자를 만났는데, 이를 계기로 여성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매클린톡 효과가 낭설이라고 말한다(54).


매클린톡 효과는 과학적 회의주의 필터를 여전히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50여 년 전에 나온 연구 결과를 폐기해야 할까? 생리 동기화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과학계의 시선이 상식이 된 이상, 낡은 지식에 이별을 고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클린톡 효과는 버려야 할 지식이 아니라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한 가설이다.


정재승 교수의 <박수의 물리학>과학 콘서트에 연주된 4악장에서 생긴 음 이탈(삑사리)’이. 지금으로선 이 음 이탈(글 이탈?)이 거슬리긴 하지만, 개정 증보 3판이 나올 때까지 10년을 참아야 한다.[주] 10년 후에 나올 개정 증보 3판에 음 이탈이 나지 않은 글이 수록되길 고대한다.






[] 10년 후에 다시 쓰게 될 과학 콘서트‘20년 늦은 커튼콜에는 다시 10년의 성과가 덧붙여질 것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10년 늦은 커튼콜’ 중에서,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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