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를 따르는 중동에서는 발바닥과 신발 밑바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행위다. 과거 서양에도 발과 관련된 금기가 있었다. 여인의 맨발은 동침의 의미로 간주하여 금기시했다. 그래서 발을 그리고 싶은 화가들은 초월적 존재인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맨발을 그려 예술적 욕구를 대신 채웠다. 전설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이 무대 위에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춤을 추자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그때까지도 맨발은 금기였고 맨발을 보여주는 것은 스스로 창녀라고 선언하는 격이라 덩컨은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렸다.

 

 

 

 

 

 

 

 

 

 

 

 

 

 

 

 

 

 

 

 

 

 

 

 

 

 

 

 

 

 

맨발 한 번 그려서 곤혹을 치른 예술가들도 있었다. 카라바조는 길거리에서 만난 집시나 부랑자, 창녀의 초라한 모습을 성자나 예수의 모델로 삼았다.

 

 

 

 

교회 제단의 장식화인 『성 마태오와 천사』를 마감 기한 내에 완성했지만, 교회 측 인사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교회 측 인사들은 카라바조가 묘사한 성인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대머리 농부처럼 생긴 성인이 한쪽 발을 드러내놓은 자세가 불경스럽게 느꼈다. 하는 수없이 카라바조는 그림을 다시 그려야 했다. 카라바조는 항상 품 안에 칼을 지니면서 다녔고, 싸움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의 괴팍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거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교회는 수정된 그림을 받아들였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거절당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카라바조 이전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예수나 성인들의 맨발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예수』는 과감한 원근법을 이용하여 예수의 죽음을 묘사했다. 만테냐는 예수의 죽음을 종교적으로 미화하는 대신에 예수의 시체의 추함과 비통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예수의 양손과 양발에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이 보인다. 상흔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비극적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 만테냐의 원근법은 렘브란트의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에서 재현된다. 해부된 시체의 모습이 만테냐의 죽은 예수를 닮았다. 다만 렘브란트는 해부용 시체의 양발을 크게 그렸다. 이때 당시 해부용 시체는 교수당한 죄인들의 몸만 가능했다. 데이만 박사가 해부한 시체 역시 살아있을 때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의 하찮은 몸은 예수의 죽은 몸과 흡사하게 표현되는 영광을 누렸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는 탕아 앞에 잔뜩 허리 굽힌 아버지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 표정에는 온화함이 묻어난다. 낮은 자에게 허리를 굽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세상을 향해 은혜를 베푸는 예수의 사랑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자세가 인상 깊어서 그런지,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탕아의 맨발을 유심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재산을 탕진한 채 돌아온 아들은 너덜너덜한 누더기에다 밑창이 다 터진 신발하며, 행색이 남루하기 이를 데 없다. 이 그림에 영감을 얻어 책을 쓴 헨리 나우웬은 탕아의 망가진 신발이 가난에 찌들어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보게 되면, 만테냐의 『죽은 예수』의 묘사가 덜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제단화 가운데 그림은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왼쪽에는 마리아가 실신하여 요한의 품에 안겨 있고,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오른편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긴 손가락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세례 요한의 손가락에 주목한 관람객들은 충격적인 묘사를 확인한다.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시체처럼 예수의 몸은 처참하다. 특히 커다란 못이 관통한 예수의 양발을 볼 것.

 

 

 

 

 

 

 

 

 

 

 

 

 

 

 

 

 

컴퓨터 모니터에 그림을 확대해서 보는 것보다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 1》의 도판을 보는 것이 좋다. 그 책에 예수의 양발을 확대한 도판이 있다. 그뤼네발트는 피를 흘리는 양발의 상처를 극대화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에로틱한 발》의 저자 윌리엄 로시는 발이 남근을 상징하는 이유가 생명의 원천인 대지, 즉 어머니와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쿠르베의 『목욕하는 여인』은 마네의 『올랭피아』만큼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비평가들에게 비난을 받은 그림이다. 그들은 목욕하는 여인이 여신이나 요정이 아니라 평범한 여자라는 점, 그리고 옷을 입은 여자가 음란하게 묘사되었다고 지적했다. 옷을 입은 여자는 한쪽 발만 버선을 신었다. 버선을 신지 않은 맨발에는 흙이 묻어 있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맨발을 사실적으로 그린 쿠르베가 의도적으로 에로티시즘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들 눈에는 흙이 묻은 여인의 발이 상당히 에로틱하게 느꼈던가 보다. 흙이 묻은 맨발을 그린 쿠르베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쿠르베는 자연을 ‘어머니의 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의도가 담겨 있다면, 『목욕하는 여인』은 음란한 그림이라고 볼 수 없다. 쿠르베는 자신의 신념대로 목욕하는 천사가 아닌 목욕하는 여인을 사실적으로 그렸을 뿐이다.

 

 

 

 

 

 

 

 

 

 

 

 

 

 

 

 

 

 

요즘은 남녀노소 샌들을 신고 다닌다. 이제 샌들은 여름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샌들의 계절이 다가오기 전부터 피부 각질이나 무좀 흔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바닥 각질이 전체적으로 두꺼워져 허연 가루처럼 떨어진다. 발바닥이나 발가락 사이에 물집 형태의 무좀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발에서 나타나는 이런 신호들이 단지 청결하지 않아서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어머니들의 갈라진 발바닥은 한평생을 가족들의 바닥으로 살아온 거룩한 삶의 흔적이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다. 그들은 물집이 생기고, 발바닥이 갈라져도 아픔을 꾹 참은 채 생존의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 발은 에로틱하지 않다. 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숭고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곰곰 생각해서 발을 보시라.

 

 

 

※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s://www.wikiart.org/)에서 가져왔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11-0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발바닥에 실 꼬맨 발보니..움찔했습니다.ㄷㄷㄷ

cyrus 2016-11-04 11:57   좋아요 1 | URL
그럴 수밖에요. ㅎㅎㅎ

표맥(漂麥) 2016-11-0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을 보여주는 것이 스스로를 창녀라... 이 비슷한게 길거리에서 머리를 풀고 있는 여인을 매춘부로 보는 문화도 있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cyrus 2016-11-04 11:58   좋아요 0 | URL
부정적인 금기와 관련된 대상을 살펴보면, 제일 많은 게 ‘여자’입니다. 여자에는 이렇게 하지 마라는 식의 금기는 남자들이 만든 거죠. ^^;;

stella.K 2016-11-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유레카님 책에 저 사진이 있던가...? 잊고 있었다.ㅋ
알고보면 발이 참 많은 것들을 말해주긴 하지.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대벌이란 책에서
전족을 한 부인 발을 주인공이 좋아해서 밤이면
에로틱하게 만지곤 했다는 말이 생각났어.
그런데 실제로 전족한 발 보니 작아서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에로틱하다는 느낌은 못 받겠던데. 기형이잖아.


어렸을 땐 발이 나름 괜찮았는데 나이드니까 못 생겨지더라.
각질도 많고. 무좀도 좀 생기고.
에고, 불쌍한 내 발. 아껴줘야 하는데...ㅠ

cyrus 2016-11-04 15:50   좋아요 0 | URL
저는 발바닥에 땀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도 피부가 벗겨지고, 가려움이 심한 무좀에 걸리진 않아요. 하지만 겨울만 되면 각질이 잘 생겨요.

전족은 제 취향(?)은 아니에요. ㅎㅎㅎ 전족 때문에 작아진 발 사진을 보면
그저 아플 것 같다는 느낌만 들어요. ^^;;
 
우리가 악몽을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

 

 

 

 

 

 

 

 

 

 

 

 

 

 

 

가면이 가지는 의미는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많다.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이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성격만을 일관되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한다. 예를 들어, 나는 친구들을 대할 때, 일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여 ‘cyrus’가 되어 회원의 글을 읽을 때 각각 다른 사회적 가면을 사용한다. 만약 이 가면들을 모두 강제로 벗겨버린다면, 남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방어능력을 잃어버린 상처 입은 인간이다. 가면 속에 가려진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위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은 위협적이다. 그의 그림에는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이 엉켜 있는 가면(얼굴)들이 가득하다. 앙소르는 낯익은 것의 낯선 배신을 시도한다.

 

 

 

 

 

 

해골 화가에서 앙소르는 그림 그리는 해골로 묘사된다. 만약에 앙소르가 자신의 모습을 해골로 그리지 않았으면 이 그림은 낯익은 얼굴을 그린 평범한 자화상이 된다. 앙소르는 해골이라는 낯선 가면을 쓴다. 그의 아틀리에는 실재(낯익은 것)와 환상(낯선 것)이 서로 엉겨 상호 침투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행복한 책읽기를 쓴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앙소르의 그림이 주는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그림 속 얼굴과 화가의 실제 모습이 같아야 자화상이 성립된다. 그런데 앙소르는 낯익은 얼굴을 스스로 벗겨 낸다. 이젤 밑에 젊은 남성의 모습을 한 가면이 있다. 젊은 시절의 앙소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골 가면을 쓴 앙소르는 우리가 아는 화가가 아니다. 섬뜩한 죽음그 자체다. 그림 속 죽음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관객에게 말한다. “내가 화가(앙소르)로 보이니?”

 

 

 

 

 

 

 

 

 

 

앙소르는 가면뿐만 아니라 해골을 주제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는 죽은 인간이 부패하는 현상에 매료되었다. 앙소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스텐데라는 마을에 시체가 엄청나게 많았다. 17세기 초 스페인이 벨기에를 점령한 적이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오스텐데가 확장 공사를 하게 되면서 스페인 군대에 희생당한 시체들이 대량 발굴되었다. 어린 앙소르는 땅 속에 묻힌 시체를 보게 되었고, 그 상황은 지워지지 않는 섬뜩한 기억으로 남았다. 앙소르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불안한 정서를 잊기 위해서 앙소르는 죽음의 신으로 분장했다. 그리고 가면을 쓴 자들과 함께 카니발 연회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하고 있다. 하지만 앙소르의 카니발은 유쾌하다기보다는 기괴하다. ‘낯익은 얼굴의 가면과 낯선해골이 함께 어우러진 앙소르의 그림에서 죽음과 불안을 읽는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5-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가면을 쓰고
가면무도회로 갑니다~

cyrus 2016-05-11 20:04   좋아요 0 | URL
알라딘/북플은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공간 같아요. 오늘은 어떤 가면을 쓰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생각하니까요. ^^

yureka01 2016-05-1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x-ray찍어도 보이는 해골인데,단지 사진일뿐이겠지만...
해골이 가면이 아니라 진면이란 보장이 없겠지요.
간혹 자신도 자신이 낯설 때가 많아서 말이죠..ㅋㄷㄷㄷㄷ

cyrus 2016-05-11 20:06   좋아요 1 | URL
어떻게 보면 우리 몸을 이루는 해골도 진짜가 아닐 수 있겠어요. 뼈도 세월이 지나면 부식되어 사라지니까요. ^^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5-1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
˝언어유희˝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지금은 재밌네요^^

cyrus 2016-05-11 20:28   좋아요 0 | URL
여기 오랫동안 놀다보면 점점 지겨워질 때가 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으로는 옛날에 앙소르 전시회가 열렸던 것으로기억합니다. 아니면, 종합 전시회 때 옹소르 작품 몇 점이 있었는지.. 하튼, 그림을 본 기억이 나네요..


하튼 그림이 굉장히 독특해서 아주 기묘한 감상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기분 더럽달까... ㅎㅎㅎㅎㅎㅎㅎ 참 독특한 감상이었씁니다..

cyrus 2016-05-12 17: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기분이 더럽습니다. 사실 앙소르가 가면과 해골을 그려서 무얼 나타내고자 하는 건지 전문가들도 잘 몰라요. ㅎㅎㅎ

yamoo 2016-05-1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앙소르는 처음 듣는 미술가네요~
좋은 화가 소개 감사합니다~ 찾아 봐야 겠어요!

cyrus 2016-05-12 17:11   좋아요 0 | URL
그림이 무섭고, 어둡습니다. 그 점을 참고해주세요. ^^;;
 

 

 

배고픈 당나귀가 길을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건초 더미를 발견했다. 그쪽으로 발걸음으로 옮기는 순간, 그 옆에 있는 다른 건초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는군.’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모두 맛있어 보였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 건초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이 먹고 싶어졌다. 밤새도록 갈팡질팡하던 당나귀는 굶어 죽고 말았다. 그는 건초 한 개도 입에 대지 못했다. 자기 앞에 놓인 두 개의 건초 더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줄곧 고민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당나귀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 우화는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로 알려졌다.

 

당나귀가 말해주듯 때때로 선택의 자유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거나 개인의 삶을 좀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당나귀는 다른 건초 더미를 배제하고 어떤 한 건초 더미를 선택할 충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될 뿐이었다. 어떤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고 남겨진 것이 곧바로 하찮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당나귀는 미련하고 욕심이 너무 많다. 우리 또한 당나귀처럼 무언가의 결정을 눈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는 우매한 모습을 드러낸다. 뷔리당은 당나귀를 통해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조롱했다.

 

 

 

 

 

 

 

 

 

 

 

 

 

 

 

우화의 주연은 당나귀지만, 그의 최후에 영향을 준 건초 더미를 무시할 수 없다. 중세에 건초 더미는 인간의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해석되었다. 그렇게 되면 뷔리당의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욕심이 자유의지의 힘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5세기 네덜란드에는 이런 유행가가 있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지상의 훌륭한 것들을 건초 더미처럼 쌓아 올렸는데, 사람들이 그 더미를 혼자 독차지하려고 서로 다툰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 노래에서 가장 유명한 가사 한 구절이 건초의 부정적 의미를 강조한다. 결국, 그것은 모두 건초일 뿐이다.” 욕심 많은 인간은 보잘것없는 건초마저 탐낸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건초 수레(1500, 삼면제단화 중앙 부분)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인간의 무력함을 풍자하기 위해 건초 더미 수레를 소재로 한 똑같은 그림 두 점을 제작했다. 엄청난 높이로 쌓아 올린 건초 더미 수레가 지나가자 온갖 직업과 계급의 사람들이 뒤따라온다.

 

 

 

                    

 

 

농부뿐만 아니라 왕과 왕비(혹은 귀족 부부), 교황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복장의 인물들도 행진에 동참한다.

 

 

 

                  

 

건초 더미 수레 위에는 노래를 연주하는 젊은 연인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건초 더미 위에 올라가려고 시도한다. 이들의 행진은 즐겁고 유쾌하다기보다는 혼잡하다. 이와 중에 서로 싸우는 시민들도 있다.

 

 

 

                  

 

 

그림 오른쪽 밑에 시골 아낙네들이 건초 더미를 자루에 실어 넣는다. 뚱뚱한 수도원은 아낙네들의 일을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건초 더미 수레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괴상한 짐승처럼 생긴 악마들이 수레를 끌고 있다. 그들은 건초 더미에 욕심을 부리는 인간들을 유혹하여 지옥으로 이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감지한지 못한 채 행진한다. 하늘 위의 예수도 개판 5분 전인 속세의 상황을 말리지 못한다.

 

기독교의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가 탐욕(Avaritia)이다. 보스는 죄악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는 건초는 소유하고 싶은 물화(物貨). 탐욕은 갈등을 초래한다.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고 강조하던 종교인들마저 악덕의 그림자에 점령당했다. 수도승은 아낙네들이 바치는 건초 더미를 받으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건초 더미 꼭대기 위의 연인들은 환락의 잔치를 즐긴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한다. 재물이 많을수록 달콤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들의 욕심은 부질없다. 어차피 죽으면 소유할 수 없다. 하나뿐인 인생에 헛된 욕심만 부리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다. 탐욕은 자꾸만 우릴 부추긴다. 하나도 모자라서 하나 더를 원한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남이 가진 것을 노린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얼마나 가졌는지 비교해보기도 한다. 뷔리당의 당나귀 같은 사람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교하면 별반 차이 없는 두 개의 재물 앞에 생각이 많아진다. 둘 중 하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리석은 당나귀가 있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그 역시 두 개의 건초 더미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두 개의 건초 더미의 양은 동일하다. 양쪽 건초에 가격표가 있다. 왼쪽 건초의 가격은 5만 원, 오른쪽 건초의 가격은 천 원이다. 당나귀는 고민하지 않고, 왼쪽 건초를 먹는다. 건초의 양이 비슷해도 높은 가격으로 매겨진 건초가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당나귀는 5만 원짜리 건초 더미를 실컷 먹고 왔다고 동료 당나귀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당나귀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베블런(Veblen)의 당나귀. 당나귀 이름의 의미가 이해가 안 되는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베블런 효과'를 검색해보시길.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03-0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블런효과..이거 사진 찍다보면 뽀대주의자를 간혹 보게 됩니다.
사진 실력이 자신이 가진 카메라 가격과 동일시하는 착각....
돼지목에 진주인지는 고려한 바가 없었거든요..

cyrus 2016-03-09 14:20   좋아요 1 | URL
사진 찍는 일에도 베블런 효과가 작동되고 있었군요. 사진 실력이 그저 그런 수준인데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림스네 2016-03-0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에는 건초더미를 인간의 탐욕의 대상으로 해석했네요.
그림 해석이 재미있어요.
베블런 당나귀도 재미있고,

cyrus 2016-03-09 14:24   좋아요 0 | URL
중세 역사를 공부할 때 재미있는 내용이 중세에 유행한 상징들에 관한 것입니다. 중세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자연과 사물이 신의 의미가 들어있는 피조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상징에 종교적 분위기가 남아있습니다.

서니데이 2016-03-0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가 강조된 그림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3-09 20:2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
 

 

 

 

 

 

 

 

 

 

 

 

 

 

 

 

 

 

 

아직도 일본 크리넥스 광고를 쉬이 잊을 수가 없다. 꼬마 오니와 흰옷의 여인이 나오는 그 광고 말이다. 이 광고를 두세 번 봤는데도 으스스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광고를 보면서 어떤 그림이 생각났다. 이 그림도 특이하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하위징아는 이 그림에서 퇴폐적인 느낌을 받았다. 《무서운 그림》 시리즈의 저자 나가노 교코는 이 그림을 ‘불온하고 기묘한 에로티시즘’을 자아낸다고 했다.  

 

 

 

 

 

 

장 푸케  「믈룅의 성모 마리아」 (1450년)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다. 그런데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이 어색하다. 마리아는 하얀 피부를 가졌고 이마가 훤하다. 특이하게 동글동글한 가슴 한쪽만 드러냈다. 왕관과 옷이 없었으면 하얀 마네킹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기 예수의 시선이 부자연스럽다. 아기 예수는 왼손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 주변을 에워싼 천사들이 더 기괴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천사는 보통 흰색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천사는 날개 달린 빨간색, 파란색 괴물처럼 그려졌다. 특히 빨간색 천사는 일본 크리넥스 광고에 나온 꼬마 오니를 보는 것 같다. 빨간색 천사가 파란색 천사보다 많다. 천사도 아기 예수처럼 표정이 없다. 강렬한 색깔 탓인지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는 것 같다. 빨간색 천사는 세라핌(Seraphim), 파란색 천사는 케루빔(Cherubim)이다. 세라핌은 천사 중 최고의 지위를 가졌다. 원래 날개가 세 쌍, 즉 여섯 개로 되어 있다고 한다. 붉은색 피부에 여섯 개의 날개를 지닌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기괴한 분위기가 한층 더 배가 되었을 것이다. 케루빔은 이름의 의미와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천사다. ‘cherub’은 ‘귀여운 아기 천사’라는 뜻이다. 케루빔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불의 칼로 쫓아냈다. 세라핌 다음으로 지위가 높다.

 

이 그림은 장 푸케(1420?~1480?)가 제작한 두 폭의 제단화 오른쪽 날개 부분이다. ‘믈룅의 성모 마리아(The Melun Madonna)’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믈룅은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장 푸케는 프랑스 르네상스 회화를 대표하는 궁정 화가다. 그는 샤를 7세(1403~1461)의 총애를 받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기존의 종교화와 달리 믈룅의 마리아는 고귀한 귀족 부인처럼 그려졌다. 푸케는 샤를 7세의 정부 아녜스 소렐(1421~1450)을 모델로 마리아를 그렸다. 이 그림을 아녜스 소렐의 초상화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소렐은 궁정의 패션 스타였다. 그녀는 가슴을 드러내는 복장을 하고 다녔다. 또한 처음으로 다이아몬드를 몸에 걸쳐서 등장했다. 오늘날에는 다이아몬드는 여성을 빛나게 해주는 보석이지만, 소렐이 다이아몬드를 달고 다니기 전에는 보석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소렐은 새하얀 피부색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반을 넣은 물을 피부 곳곳에 발랐다. 백반을 넣은 물은 피부를 하얗게 해주는 화장품이다. 여기에 수은이 첨가되기도 했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지려고 몸의 잔털을 없앴다. 속눈썹, 이마 위의 잔털까지 모두 핀셋으로 뽑았다. 그래서 마리아의 이마가 넓은 것이다. 소렐뿐만 아니라 그 당시 귀족, 왕족의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치장했다. 마리아가 한쪽 가슴만 드러낸 이유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마리아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보여주기 위해서 가슴을 일부러 완벽하면서도 현실감 없게 그렸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마리아의 가슴은 에로틱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젖줄이 나오는 신성한 대상이다. 하지만 가슴을 드러낸 마리아를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교황이다. 그는 소렐이 유행시킨 가슴을 드러낸 복장에 불평했다고 한다.  

 

소렐은 네 번째 아이를 사산하면서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그녀의 죽음이 비소 중독에 의한 타살로 추정되었지만, 실제 소렐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 사인이 수은 중독으로 밝혀졌다. 소렐은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바람에 너무 일찍 생을 마감했다. 수은이 들어간 백반은 피부병이나 천연두 흉터를 가리는 데 유용한 화장품으로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하는 죽음의 물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소렐은 너무 허무한 죽음을 맞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제단화가 완성되었다. ‘믈룅의 성모 마리아’는 죽기 전 소렐의 모습이 완벽하게 남아있는 그림이 되었다. 그녀는 죽어서도 그림이 되어 아름다움을 발휘했다. 아마도 하위징아는 눈을 지그시 감은 마리아의 모습에서 생기가 사라지기 직전의 소렐이 떠올랐을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푸케의 그림에 어울리는 말이다. 소렐의 죽음을 아쉬워한 귀족 남자들은 마리아에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를 간접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6-01-12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그림이 3탄까지 나왔군요. ^^

cyrus 2016-01-13 16:20   좋아요 0 | URL
`무서운`이 들어간 제목 때문에 이 책이 인기를 많이 받았습니다. ^^

초딩 2016-01-1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림 보고 우선 담아 봅니다.

cyrus 2016-01-13 16:21   좋아요 0 | URL
책을 읽어보면 그림이 무섭지 않게 느껴질겁니다. ^^

stella.K 2016-01-1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거 그림 한 번 독특하다.
불경스럽다기 보다 정말 고전스럽다는 느낌이 확...!ㅋ

cyrus 2016-01-13 16:24   좋아요 0 | URL
이 그림이 많이 튀어 보여도 걸작에 속합니다. ^^

나비종 2016-01-15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정면을 바라보는 단 한 명의 세라핌이네요. 음, 또, 성모마리아의 얼굴과 오른손과 아기 예수의 왼쪽 팔꿈치로 이루어진 커다란 삼각형 안에 닮은 꼴로 들어가 있는 또 다른 삼각형이 인상적입니다. 아기 예수의 왼쪽 팔꿈치와 마리아의 배쪽으로 늘어뜨려진 장식용 띠와 마리아의 왼쪽 가슴이 꼭지점이 되네요. 왜 하필 왼쪽을 드러냈을까. 구도를 맞추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왼쪽에는 심장이 있으니까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얀 심장 같기도 해서 야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네요.
그런데, 네크로필리아는 개인적으로 이해되지않는 감정입니다. 무섭기도 하구요ㅡㅡ;
 
그릇에 대하여

 

 

 

 

그릇은 인간 됨됨이에 대한 은유이다. 평생 대접받기를 원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곰곰생각하는발의 그릇에 대하여중에서)

 

나는 동시대 함께 살아있는 작가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싶습니다. 죽고 난 후 작가는 자기 작품에서 손이 떠납니다. 떠나버린 작가의 허울 같은 작품이야 남겠지만 작가의 살아있는 온기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에 귀를 열고 눈으로 듣는 그런 활동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yureka01동시대를 함께 사는 작가들중에서)

 

    

 

 

세상에 수많은 그릇이 있다. 재료에 따라 스테인리스 스틸·놋쇠·플라스틱·나무·자기로 나뉘고, 용도에 따라 밥그릇·접시 등으로 분류된다. 그것뿐이 아니다. 혼자의 힘으로 들 수 없을 만큼 큰 용기도 있고, 물 한 방울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그릇도 있다. 사람의 능력은 곧잘 그릇에 비유된다. 큰 그릇은 능력이 크고, 작은 그릇은 능력이 작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릇의 크기와 용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듯이 사람의 인생도 그러하다. 아무리 값비싼 좋은 그릇이라도 개밥을 담으면 개밥그릇이 된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담고 비운 그릇을 깨끗이 씻는다. 그래야 새로운 음식을 담을 수 있다. 그릇이란 자고로 뭔가를 담아두는 게 그 쓰임의 본 용도이건만, 요즘은 싸움판에 차출(?)됐다. 정치판의 밥그릇 싸움이 그 대표라 할 만하다. 정치인들은 국민이 맡긴 신성한 권력을 이용해 밥그릇이나 챙기고 팔자를 고치느라 바쁘다.

 

 

 

 

우리나라 전통식기 중에 탕기(湯器)’라는 것이 있다. , 찌개를 담는 그릇이다. 탕기는 밥그릇(주발)의 모양과 비슷하다. 그래서 탕기를 밥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만큼 탕기는 12역을 소화할 줄 아는 식탁 위의 주연배우다. 그러나 특별한 음식을 담는 그릇이 식탁 위에 등장하면, 탕기는 잠시 물러나 있다. 반병두리는 떡국이나 비빔밥을 담을 때 쓰는 그릇이며, 벙거짓골  전골 요리를 담는 그릇이다. 특별한 날이면 이 두 개의 그릇이 탕기를 대신하여 식탁 위의 주연배우로 발탁된다. 탕기는 가장 많이 식탁에 등장했고, 아주 많이 사용했음에도 다른 그릇에 비하면 너무 평범하다. 이름도 평범하다. 뜨거운 국을 담는 그릇이라고 해서 이름이 탕기로 남게 되었다. 조반기, 대접, 바리, 보시기, 양푼, 이런 그릇의 이름이나 용도는 사람들이 알아도, 탕기는 잘 모른다. 사람들에 눈에는 그저 국그릇일 뿐이다. 밥그릇을 닮아서 이걸 탕기라고 부르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식탁의 주연배우가 아니라 약방에 감초역할을 하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에 가깝다. 그래서 탕기는 소중하다. 밥과 국 아무나 담을 수 있는 편안한 그릇이니까.

 

 

 

 

 

 

 

 

 

 

 

 

 

 

 

 

 

 

 

그릇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사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외국에서 탕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탕기는 사람이다. 외국인 이름이 탕기라니, 특이하다. 쥘리앙 탕기(Tanguy)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에 있는 그림물감 가게를 운영했다. 탕기의 가게는 단순히 물감을 파는 그저 그런 곳이 아니었다. 파리 코뮌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과 화가들이 탕기의 그림물감 가게를 자주 방문했다. 탕기는 싼값에 그림을 팔기도 했다. 그가 파는 그림은 이름이 알려진 화가가 제작한 것이 아니었다. 무명 화가의 그림들이 많았다. 탕기는 가난한 젊은 화가들을 아낌없이 지원할 정도로 배려심이 많았다. 돈이 없는 화가들은 품질 좋은 그림물감을 사지 못한다. 탕기는 화가들에게 그림물감을 빌려주었다. 물감뿐만 아니라 미술 도구와 돈도 잘 빌려주었다. 탕기의 배려에 크게 감동한 화가들은 돈 걱정 없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그들은 완성한 그림을 재력이 있는 그림 애호가에게 팔지 않고, 바로 탕기에 건네주었다.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으로 탕기의 은혜에 보답했다. 그의 온정을 잊지 않은 화가들은 탕기를 페르(Père, 아버지, 영감, 아저씨)’라고 불렀다.

 

 

 

 

 

 

빈센트 반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1887)

 

 

 

 

 

 

빈센트 반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1888)

 

 

 

 

 

빈센트 반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1888)

 

 

 

탕기가 물감을 파는 가게 주인이지만, 나름 그림 보는 눈이 있었다. 탕기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 목판화(우키요에)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가게에 오는 화가들 역시 자연스럽게 일본 목판화의 새로운 세계에 매료되었다. 파리에 정착한 네덜란드 출신의 젊은 화가도 탕기가 수집한 목판화에 푹 빠졌다. 이 화가 또한 탕기에게 신세를 지면서 생활했다. 그리고 가게를 찾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는 마음씨 좋은 탕기를 위해서 초상화를 제작했다. 탕기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앉아 있다. 그의 태도에 인자한 품성이 느껴진다. 초상화 배경에 일본 목판화들이 가득하다. 이 그림에 관한 뒷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탕기의 초상화가 너무 성의 없게 그려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 화가는 탕기를 향한 무한한 존경심과 자신의 예술적 뿌리를 드러내려고 일본 목판화를 그려 넣었다. 부전자전(父傳子傳). 아버지의 모습이나 품행은 아들이 그대로 전해 받는다. 화가는 탕기를 만나게 되면서 일본 목판화의 매력에 빠졌고, 인상주의 회화에 주목했다. 탕기의 심미안을 화가가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화가의 친아버지는 예술에 자도 모르는 목사였다. 크게 낙심했던 화가는 파리에서 진짜 아버지를 찾았다. 파리의 이방인을 친절하게 대해주고,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는 소중한 아버지. 탕기는 화가의 삶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아버지(Père)였다.

 

이 네덜란드 화가는 병마에 시달리다가 젊은 나이에 자살하고 말았다. 화가의 장례식에 탕기가 와주었다. 화가의 생의 온기가 멈추는 순간, 그가 남긴 그림의 온기도 사라진다. 탕기는 자신이 보관해둔 화가의 그림이 허무한 운명을 맞이한 것에 안타까워했다. 탕기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무명 화가의 그림에 이토록 애정을 가졌으니.

    

 

 

 

 

빈센트 반 고흐 글라디올러스 화병(1886)

 

! 가여운 빈센트! 어떻게 그런 불행한 일이...... 미르보 씨! 얼마나 엄청나게 불행한 일입니까! 그처럼 천재적인 사람이! 그처럼 선량한 인간이! 잠깐, 그 사람의 중요한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요? 그의 그림들은 걸작입니다!”

 

사람 좋은 탕기 영감은 자신의 상점에서 4, 5점의 캔버스를 가지고 돌아오더니 우리들 주위에 있는 의자의 발판 틀에다 기대어 놓았다. (중략)

 

인간이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렇게 슬플 수가! 내가 보기에 당신은 아직 빈센트가 그린 글라디올러스 화병을 알지 못하는 것 같구려. 마지막 그린 그림 중의 하나올시다. 대단한 작품이지요! 그 사람처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글라디올러스 화병을 찾아보렵니다. 몇 분만 기다려 주세요.”

 

(옥타브 미르보의 <화가들> 중에서, 파스칼 보나푸 반 고흐, 태양의 화가146~147쪽 발췌 인용)

    

 

 

탕기(湯器)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서민적 체취가 짙게 느껴진다. 탕기(Tanguy)는 소탈하다. 화려하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자주 찾았다.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존재들이다. 탕기(湯器)는 밥그릇이 되어도 투정하지 않는다. 탕기(Tanguy)는 화가들이 돈이든 물감이든 빌려달라고 자신을 찾아오면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릇의 크기나 모양은 정신의 크기나 됨됨이와는 상관이 없다. 탕기(湯器)와 탕기(Tanguy)는 외형은 초라해 보여도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비운 자리가 깨끗하게 넓은 귀한 그릇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맥(漂麥) 2015-12-04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탕기(湯器)와 탕기(Tanguy)는 외형은 초라해 보여도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비운 자리가 깨끗하게 넓은 귀한 그릇이다... 마음에 듭니다.^^

cyrus 2015-12-07 09:44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yureka01 2015-12-04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시대의 예술가를 알아보는 안목..그 온기를 느끼는 공감력...결국 인품에서 나오나 봅니다.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들 뒤에는 후원자가 꼭 필요한 이유더라구요..

cyrus 2015-12-07 09:46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의 글에 제 글을 먼댓글 설정할려고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유레카님의 블로그에 먼댓글 설정이 안 된 것 같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그 보니 제가 탕기와 룰랭을 혼동했거든요. 탕기는 물감 파는 사람이었고, 룰랭은 우체부였죠... ㅎㅎㅎㅎㅎ 룰랭이 그렇게 자주 찾아갔다네요. 술 마시러... 갈 때는 고흐 형편을 알고 있어서 늘 술과 안주가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cyrus 2015-12-07 09:47   좋아요 0 | URL
저는 탕기가 그림 파는 화상인 줄 알았어요. 착각했어요. 그림물감 가게 사장이라는 사실을 이 글을 쓸 때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

서니데이 2015-12-0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릇 사진을 보다보니, 뚜껑이 있는 그릇이 많이 있네요. 전에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뚜껑있는 국그릇을 집에서 쓰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오래 전에 썼던 그릇처럼 느껴져요.
고흐는 동생이 먼저 생각나는 편인데, 앞으로는 탕기는 그림보다 그릇이 먼저 생각날 것 같아요.
cyrus 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2-07 09:53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뚜껑 있는 그릇을 가정집에서 보는 것이 드물어졌어요. ^^

yureka01 2015-12-0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몰랐습니다..저도 이런 기능을 모르겠더라구요.트랙백 걸기..해본적이 없었거든요 ..ㅎㅎㅎ^^..인용.. 감사합니다~~~

cyrus 2015-12-07 14:49   좋아요 1 | URL
가끔 이웃이 쓴 글을 읽고, 영감을 얻으면 감사의 의미로 먼댓글 기능을 사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