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대사란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다. 그러니 실제 대화에서 타인의 말을 사람마다 다르게받아들이듯, 번역가마다 서로 다른 뉘앙스를 살린 다양한 번역이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번역가는 대사의 전달자가 아니라 대사에서 풍기는 뉘앙스의 냄새를 판별해서 전달하는 사람인지도모르겠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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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일을 겪은 후로 사람을 대하는게 조금은 달라졌다.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일부러 상대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더라.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과의 마지막날이 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라도소중한 사람에겐 물론이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마지막 인사는 무던히 하는 게 좋다. 억지로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은 인사하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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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류의 관심사가 달라져 지금과 같은 과학적 호기심이 멈추고 전혀 다른 것들이 인간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약간은 위안이 돼.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뿐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현존하는 무시무시한 핵전쟁의 가능성이 더 끔찍한 것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네.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우리가 설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 마침내우리는 지구의 유한한 실제 크기가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네. 기술이 무르익어 찾아온 위기지. 지금부터 다음세기 초반까지 세계에 불어닥칠 위기는 이전 양상보다 훨씬 더심각할 거야. 언제, 어떻게 끝날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 언젠가 인류의 관심사가 달라져 지금과 같은 과학적 호기심이 멈추고 전혀 다른 것들이 인간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약간은 위안이 돼.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뿐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거미줄이 거미의 일부이듯 기술도 우리의 일부일 뿐이니까. 하지만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가 더는 지속되지 못할 티핑 포인트로 나아가고 있는 듯해. 이제 진보는 이해를 초월할 만큼 빠르고 복잡해질 걸세. 기술력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진 성과이고, 과학은 지극히 중립적이어서 어떤 목적으로든 쓰일 수 있는 통제 수단을 제공할 뿐 모든 사안에 무관심하지. 어떤 특정한 발명품의 비뚤어진 파괴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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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아빠는 말하려는 의지를, 혹은 말할 능력 자체를 상실했다. 왜 갑자기 침묵하는 것인지 의사들조차 의학적 이유를 대지 못했다. 나는 아빠가 의식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본다. 정신 능력의 약화는 아빠 같은 사람이 견디기엔 너무 버거운 공포였을 테니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아빠 나이는 고작쉰셋, 아직 한창 잘나가던 때였다. 아빠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성과 뛰어난 능력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아빠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공포가 다른 모든 생각을 몰아냈다. 아빠는 생각하는 자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그려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따라서 마침내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품위를전혀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아빠는 죽음이란 게 남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인 양 그래서 자신은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없다는 듯, 그렇게 죽음에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어린애처럼 굴었다. 아빠의 의식은 뛰어넘을 수도, 그 너머를 바라볼수도 없는 한계에 부딪혀 움츠러들었고, 아빠는 거칠게 반항했다. 여러 이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지만, 흐려지는 정신으로 고통받는 아빠만큼 힘겨워하는 사람은 본 적이없다. 아빠의 병세가 빠르게 나빠질 것이며 결국 목숨을 앗아가리란 것을 이미 다들 알고 있던 무렵,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적이 있다. 소련에 핵 공격을 먼저 단행해 수많은 이를 몰살할 방안을 태연히 고안했으면서, 자기 죽음을 대면할 때는 왜평정심과 품격을 차리지 못하느냐고 말이다. "그건 전혀 다른문제지." 아빠는 대답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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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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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가 딱히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는 편견을 갖게 하지만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들다. 대출사기와 대출의 늪에 빠져드는 이야기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처럼 상세하게 서술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는 현실 속 이야기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새삼스럽게 경각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사실 가족의 부탁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줬는데 대출이자를 주지 않아 내 월급에서 몇년간 대출이자를 계속 냈던 기억이 떠오르며 원금은 커녕 대출이자도 받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결국 내가 모아놓은 돈을 다 모아서 원금을 대신 갚아버린 것이 생각났다. 당시 내게는 전재산에 맞먹는 금액이었는데 대출이자를 부담한 금액을 생각하니 원금에 버금가는 금액을 지출했던 것이라 더 늦기전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버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서술트릭이 담겨있어서 책을 다 읽고난 후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 드는 건 독자로서의 느낌이고, 소설 속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 중 실상 속이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일까 싶다. 

소설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다시피 해 살아가고 있는 다카요의 이양기로 시작하고 있다. 아이가 있어 취업을 하는데도 제한적일수밖에 없고 그나마도 일자리가 없어 월세도 밀려있고 집주인에게 퇴거명령까지 받고있는 상황이다. 취업이 되지 않으니 신용이 없어 대출을 받고 싶어도 받기가 쉽지 않다. 결국 불법 개인 사채업자에게 연108%라는 고이율로 대출을 받게 되는데 ......


어떤 방법으로 조금씩 대출금을 늘려 받게 하는지, 그렇게 하면서 결국 돈을 받아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방법들이 나오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 이상으로 속은 좀 매스꺼운 기분이었다. 서서히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현실에서도 빚을 갚지 못할만큼 빚을 지고 있으면서 여전히 돈을 빌리고 빌린 돈으로 사치부리며 사는 사람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소설 속 인물들의 절박한 사정보다는 이번만, 조금만 더 하면서 자꾸만 대출액을 늘려가는 인물들에게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더 기분이 나쁜 건 그렇게 사람들을 늪의 수렁으로 조금씩 몰아넣고 있는 사기꾼들이 세상 곳곳에 넘쳐나게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이야기를 읽는 재미만으로 읽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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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5-10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출사기가 소재로 등장하는 책인가요. 일본 작가의 책이니까 설정상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겠지만, 비슷한 점도 많을 것 같아요. 부채도 자산이라는 이야기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과도한 빚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불법 사금융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chika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