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이층집의 창문에서 한 여자가 정원을 본다. 정원에는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말 그대로 평화롭고 향기로운 풍경이다. 오가와 이토의 『토와의 정원』의 표지가 주는 이미지다. 그 이미지와 제목이 주는 평온함 때문에 이 소설이 궁금했다. 오가와 이토의 소설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기운을 예감했다고 할까. 동화처럼 마냥 따뜻하고 예쁜 소설을 기대했다. 어떤 면에서는 기대에 부응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닿기까지의 여정이 순탄치 않았다.


작고 예쁜 집에 토와가 산다. 엄마와 단둘이 산다. 눈이 보이지 않는 토와에게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엄마 냄새, 엄마 느낌, 엄마가 전해주는 사랑으로 토와는 너무 행복하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지낸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아빠가 전해주는 물건으로 생활하니까 큰 문제도 없다. 토와는 그를 ‘수요일 아빠’라 부른다. 진짜 아빠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믿는다. 엄마는 다른 가족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다. 적어도 엄마가 토와를 혼자 남겨두고 일을 하러 가기 전까지는.


토와는 엄마가 준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진다. 깨어나면 엄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날들을 보낸다. 토와는 엄마와 떨어지는 건 싫지만 엄마의 말이니 들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도 엄마는 집에 오지 않았다. 토와는 온전히 혼자 남은 것이다. 아빠가 전해주는 물건으로 생활을 이어가지만 눈이 안 보이는 토와는 곧 세상과 단절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이 토와의 집을 ‘쓰레기 집’이라고 부르는 걸 알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토와는 세상과 만난다. 치료와 재활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면서 하나씩 일상을 배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엄마가 토와를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온 토와는 점자를 통해 책을 읽고 안내견 ‘조이’와 생활을 시작한다. 조이와 도서관에도 가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기억을 더듬는다. 엄마가 읽어준 이야기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 토와에게 이야기는 하나의 피난처였다. 정원과 함께. 계절의 변하는 모습, 아침이 오고 저녁이 되는 것들을 새소리와 꽃의 냄새로 느끼는 토와. 그 안에서 토와는 치유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토와와 하나가 되어 눈을 감는다. 토와의 정원을 걷는다. 식물이 자라는 감동과 그것들이 주는 기쁨을 느낀다.


발바닥에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눈, 코, 입, 귀가 있어서 발바닥이 직접 지구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랑스러운 식물들의 가지며 잎사귀에 살포시 손바닥을 대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들의 소리를 포착한다. 그 식물이 괜찮은 상태인지 아니면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지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이윽고 그것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는 나 자신이 안테나가 된 기분으로 식물이 보내는 메시지를 포착한다. 그런 다음 손바닥으로 흙을 만지며 식물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169쪽)


엄마와 단둘만의 세계였던 토와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사람들과 교류하고 이웃도 만났다.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고 토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동화 속 잠자는 공주가 아닌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토와의 말처럼 살아 있다는 건 정말 놀랍다.


“살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구나.” (278쪽)


앞을 못 보는 나일지라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거들이 잔뜩 숨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나하나를 내 작은 손바닥으로 사랑해 주고 싶다. 그러려고 태어난 것이니까. 이 몸이 살아 있는 한, 밤하늘에는 나만의 별자리가 쉼 없이 생겨난다. (282~283쪽)


소설 속 토와의 모습을 그려본다. 나는 알 수 없는 그녀의 감각,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 상상한다. 맨발로 정원을 거니는 토와. 그녀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생각한다. 살아 있으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 버겁게 여겨지는 날들, 주어진 하루의 소중함을. 그리고 기대하고 소망한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갈 굉장한 이야기를, 나만의 정원에서 자라날 어떤 아름다움을. 


이처럼 오가와 이토의 소설엔 치우와 회복의 시간이 있다. 유명한 다른 소설을 다 읽은 건 아니고 겨우 『마리카의 장갑』만 읽었지만 작가의 전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자명한 사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건 대단한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든 것들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안겨준다. 그 하나가 바로 자연일지도 모른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사랑하는 이와의 어쩔 수 없는 이별로 감당할 수 삶과 마주하는 소설 속 마리카에게 자작나무가 주는 위안처럼. 


마당 너머로는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그 너머에 치유의 땅이 있습니다. 치유의 땅은 정령들이 사는 신성한 숲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가면 호수가 나옵니다. 가진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마리카의 장갑』 중에서)


어떤 상실과 상처는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야 조금씩 회복된다. 돌이켜보면 내겐 그 회복의 시간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건 책, 그리고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나무였다. 『토와의 정원』을 읽으면서 그 시간들이 포개어졌다. 그것들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고맙고 감사하다. 묵묵히 나를 견뎌준 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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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6-16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쁜 이야기네요. 순백의 자작나무는 치유와 환생을 의미하기도 한다더라고요.

자목련 2021-06-17 10:33   좋아요 2 | URL
아, 정말요?
자작나무를 더 좋아할 것 같아요^^*

scott 2021-07-07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
이책 일러스트 그리신분 책 이번 신간 주문 했놨는데
기대됩니다
이번 한주 건강하게 !

새파랑 2021-07-07 16:35   좋아요 2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7-09 16:10   좋아요 3 | URL
스콧 님,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저도 축하드리며 신나는 주말 보내시고요^^

자목련 2021-07-09 16:11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저도 축하드리립니다.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9   좋아요 2 | URL
^^*

그레이스 2021-07-0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1-07-09 16:0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도 축하드려요!
건강하고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초딩 2021-07-0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8   좋아요 1 | URL
^^*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다양한 죽음 속에는 언젠가 내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하루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겪을지도 모를 오늘이, 지금 내 옆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정말로 남은 것은 집도, 돈도, 명예도 아니다.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프롤로그, 13쪽)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죽음이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걸 목도하는 일,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경험하는 일은 삶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안겨준다. 나와 연결된 죽음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는 게 지겹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죽음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이, 죽음조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외롭고 쓸쓸한 죽음은 뭔가 사연이 많을 것만 같다. 유품정리사 김새별, 전애원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 우리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그들이 남긴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다. 그런 면에서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하는 유품정리사인 저자가 의뢰를 받고 죽음의 자리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깨끗하게 원상 복귀를 해 달라 독촉한다. 그러나 저자는 죽음의 시간이 가득한 공간, 지독한 악취로 뒤덮인 곳에서 청소를 하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가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을 준비했을지 남겨진 것들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에서 들려주는 죽음은 환대의 손길이 전혀 없는 고독한 죽음이 많다. 부모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자녀에게 자신의 걱정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잘 지내지 못한 이들. 쓸쓸하다 못해 처연한 삶의 흔적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쩌다가 가족이 있는데도 혼자 죽음을 맞이했을까.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그게 가장 큰 이유다. 어느 할머니의 경우 혼자 살 집을 구하면서 농담처럼 주인 할아버지에게 이 집에서 죽어도 괜찮냐고 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역시 괜찮다고 하셨다고. 할머니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셨던 것일까. 부모의 마음과 다르게 남겨진 자식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홀로 사시다 돌아가신 부모의 집을 청소 의뢰하는 유족의 놀라운 행동에 그만 놀라고 만다. 앞의 할머니 가족은 아니다. 소식을 끊고 살다가 유품을 정리하는 저자가 당연히 돌려줄 귀중품(현금, 귀금속, 문서)만 챙기는 이들이라니. 그들의 고인을 가족으로 생각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1인 가족이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괴로움은 삶에 다달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행복이 우리를 찾아온다. 당연하게 여겨서 모를 뿐이다.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고 기적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태어났으므로 이미 나는 선택받은 존재다. (156쪽)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잘 살고 있을까. 유품정리사의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 죽음을 지켜줄 이 없는 고독한 사람, 사건 사고의 희생당한 사람, 그들 모두 잘 살고 싶었을 것이다. 죽음의 자리가 아닌 삶의 자리에 서고 싶었을 것이다. 고된 일을 하면서 번 월급으로 삶을 주변의 노숙자를 챙기며 살았던 이의 마지막을 동행하는 노숙자들의 이야기,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무참하게 죽은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이의 사연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일면식도 없는 그 아이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 울어야 할까. 언제까지 그 슬픔과 고통을 숨죽여 삼켜야 할까. 그날만 생각하면 엄마 옷에 얼굴을 묻고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와도 다시 일어나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것을. (198쪽)


언젠가 마주할 죽음이지만 정작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큰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때뿐이다. 늘어나는 물건들을 볼 때마다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잘 안된다. 남겨진 것들이 나를 말해준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저자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은 더욱 유용하다.


1. 삶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정리를 습관화하세요. 2. 직접 하기 힘든 말이 있다면 글로 적어보세요. 3. 중요한 물건을 찾기 쉬운 곳에 보관하세요. 4.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지 마세요. 5. 가진 것들을 충분히 사용하세요. 6. 누구 때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사세요. 7.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기세요.


우리는 모두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떠난 자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 현재의 이 삶을 잘 살아내는 건 아닐까. 삶의 소중함을 더욱 일깨워주며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말해주는 책이다. 죽음이 전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함께 떠오르는 책이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공간을 정리하는 책  『수런거리는 유산들』이다. 


죽음의 형태는 다르지만 그 죽음 곁에는 여전히 삶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할까. 물건과 공간의 주인은 사라지고 남겨진 것들을 통해 그들을 기억한다. 김새별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느꼈을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인에 대한 애정만 제외하면 말이다. 죽음 이후에야 우리는 삶을 돌본다. 죽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삶의 그것이다. 죽음과 삶이 서로를 마주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 『수런거리는 유산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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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25 10: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 좋으네요. 저는 무엇이든 아끼지는 않는데 자주 숨겨놓는 사람이라서요. ㅠㅠㅠㅠ 죽음에 대한 책들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자목련 2021-05-27 08:57   좋아요 2 | URL
네, 저도 그래요. 죽음에 관해 다루는 책들을 읽으면서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단발머리 님, 비 오는 목요일 편안하게 보내세요^^

scott 2021-06-04 2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자목련 2021-06-07 08:30   좋아요 2 | URL
스콧 님, 감사합니다.
저도 축하드려요!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시작하세요^^

그레이스 2021-06-04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6-07 08:32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 님의 당선, 저도 축하드립니다.
향기로운 날들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06-04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 드립니다~!!

자목련 2021-06-07 08:34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 감사해요.
새파랑 님의 멋진 리뷰를 보며 제 책장에 <새하얀 마음>에게 미안해져요. ㅎ
건강하고 즐거운 한 주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21-06-04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6-07 08:3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6월 보내세요^^

초딩 2021-06-04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다소 따분하고, 개인의 일기라 읽기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죽음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도 삶도 연결되어 곁에 있고, 사는게 무엇일까? 죽는게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현대의 과학들이 말하고 과거의 현자들이 이야기했듯이 (아우렐리우스가 이런 부분을 이야기할 땐 정말 고대의 과학과 철학이 얼마나 발전했었을까라고 겨외감이 듭니다) 원소의 모임과 흩어짐 뿐 일 것인데, 그리고 자연의 질서 아래 그 과정이 지나간느 것일 뿐인데, 벗어나지도 못하는 우리는 걱정하고 궁금해하고 파헤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복잡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라고 하나 봅니다.

:-)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6-07 08:40   좋아요 2 | URL
원소의 모임과 흩어짐 뿐이라는 말이 유독 깊게 다가오네요. 삶의 의미를 두는 일은 무엇일까 싶기도 하고요.
초딩 님, 저도 축하드려요.
현재인, 오늘 즐겁게 살아가요^^
 

5월의 비는 무슨 빛일까. 초록빛일까. 그건 봄의 색일까, 여름의 색일까. 봄이어도 좋고 여름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5월의 첫날부터 비가 내리더니 비를 만나는 날이 많아졌다. 비는 고요함을 요구한다. 빗소리를 들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창에 닿은 비의 흔적은 창을 열고 보면 찾을 수 없다. 비가 오고 있는 순간이어도 비는 없는 듯 보인다.





느닷없이 더위가 몰려오는 것 같더니 서늘해졌다가 다시 이 비가 그치면 봄날이 올 거란다. 봄날이 온다는 건 활동하기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활동하기 좋다는 게 딱히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날은 봄날이어야 하고 감자꽃은 피어야 하고 장미도 피어야 한다. 꽃들은 피어나고 모를 심을 준비를 하는 논에는 충분할 정도로 비가 왔으니 5월의 비는 좀 쉬어도 좋겠다. 어쩌면 작년처럼 비가 많은 날들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좀 슬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다 지났다. 특정한 누군가의 날이 있다는 건 그만큼 그들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이 부족하다는 증거인 지도 모른다.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어린이가 없다. 어린이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그런 어린이가 자라서 성년이 되고 누군가는 어버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도 있겠다.


주말 스승의 날에는 나의 유일한 스승님께 꽃을 선물로 보내드렸다. 카네이션을 고를까 하다가 수국을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수국을 선물하는 이기적인 제자다. 수국이 선생님께 도착하는 시간까지 걱정이 많았다. 수국의 상태를 알 수 없어서다. 그건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꽃을 주문할 때마다 그런 것 같다. 살아 있는 식물의 이동에 대한 불안함.





5월의 비는 계속 이어질까. 5월의 비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은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 구병모의 『바늘과 가죽의 시』,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이다. 시인이 들려주는 예술 이야기, 신비로운 동화를 연상시키는 소설, 그리고 소설에서 죽음을 그렸던 소설가의 에세이.


5월의 절반이 훌쩍 지나고 2021년의 절반을 향하고 있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수요일의 쉼표를 생각하면 빨리 가는게 좋은 걸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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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5-17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국수국 복스럽네요. 색도 어쩜 저리 이쁠까요.
꽃을 받고 싶을 때가 있죠. 어떤 꽃이든 좋구요.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것이니.
살아 있는 식물의 이동, 걱정되는 맘 공감해요. 저도 그런 마음 든 적이 있거든요.
이번 어버이날에 작은아이가 멀리서 이곳 꽃집을 통해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넘 안타까운게
그날 주문량이 많아서였는지 몰라도 바구니가 넘 엉성하고 꽃 몇 개는 거의 시들하고 ㅠㅠ
아이가 보낸 마음을 아니 더 안타까워서 씁쓸했어요. 그래도 아직 몇 송이는 따로 작은 화병에
꽂아 살렸네요.^^ 자목련 님 건안하시길요. 어느새 오월도 중반을 지나다니요^^

자목련 2021-05-19 15:0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안부 너무 반갑고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국수국의 날들인 것 같아요. 꽃은 언제나 좋아요.!
따님이 보낸 꽃바구니 그 마음을 생각하면 저도 속상하네요.

프레이야 님, 향기롭고 맑은 5월 이어가세요~
 



나는 딸이다. 엄마와 딸이라고 쓰면서 엄마와 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엄마랑 몇 가지나 했을까 기억을 더듬는다. 굳이 엄마와 딸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구분하지 않더라도 나는 엄마랑 함께 한 게 거의 없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도 큰언니랑 갔고 속옷을 사준 것도 여름용 샌들과 원피스를 사준 것도 큰언니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는 왜 그랬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논으로 밭으로 갯벌로 일하러 다니느라 셋째 딸에게 필요한 게 뭔지 살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이 아니더라도 엄마는 항상 그립다. 그래도 대놓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어버이날일 것이다. 여기저기 어버이날과 함께 자동으로 떠오르는 카네이션과 용돈, 감사편지 같은 글들이 있었다. 사랑이 가득 담긴 글이었다. 살짝 부럽기도 했고 살짝 우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제 낮에는 낮술을 마셨다. 지금 생각하니 한 캔으로는 부족했다.


엄마와 딸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엄마가 등장하는 소설, 5월에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을 하나씩 꺼내본다. 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강진아의 『오늘의 엄마』, 가장 최근에 만난 제시 버튼의 『컨페션』이 생각난다.


대부분의 일하는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어쩔 수 없이 돌봄을 부탁한다. 돌봄은 끝이 없다. 백수린의 장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화자의 엄마가 유학을 하는 동안 화자는 할머니와 지낸다. 그 시간을 짐작하는 이는 그런 유년시절의 간직한 사람들이다. 여전히 육아는 어렵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의 기관은 적다. 할머니의 돌봄에서 자란 화자가 하는 말,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되고 엄마의 삶이 궁금하지만 곧 그 모든 것은 아이를 향한다.


엄마, 엄마도요. 내가 생겼을 때, 이런 마음이었어요? (『친애하고, 친애하는』 중에서)


어른이 되고 점차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과 마주하지만 엄마의 삶을 고단함을 알기엔 충분하지 않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없이 엄마는 떠났다. 엄마와의 이별을 순차적으로 기록한 강진아의 소설 『오늘의 엄마』는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머문다. 이별을 예감하며 살아가는 일상은 자칫 무겁고 어두울 것 같지만 아니다. 사는 일은 벼나지 않기에 그저 아픔을 지켜보고 때로 웃고 때로 울면서 살아간다. 이 소설은 엄마보다는 암으로 떠난 큰언니가 더 겹쳐졌다.


엄마의 시간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시키고 독립까지가 끝이라고 여겼지만 소설이나 현실에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딸을 외면할 수 없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보면 더욱 실감 난다. 스스로를 부양하는 일도 버거운데 딸이 일상을 침범하는 것 같다. 딸의 선택을 인정할 수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 딸과 엄마 사이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물론 소설에서는 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조금씩 다가가며 응원과 연대를 보내지만.


‘엄마’란 말에는 존재보다는 역할이 앞선다. 나의 존재의 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걸 희생하도록 강요했던 시대가 지났지만 엄마를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는 과정을 다룬 제시 버튼의 『컨페션』을 읽다 보면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엄마와 딸, 친구 같은 사이. 주변에서 그런 모녀를 볼 때면 마음이 환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엄마와 딸은 막역해지는 것 같다. 조카와 올케언니를 봐도 그렇다. 엄마를 생각하는 작은 배려들이 예쁘고 대견하다. 한 사람의 딸로 태어나 그 우주에서 유영하고 사라지는 일, 축복받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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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5-10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가 나이가 많으셨어요. 그래서 초경이니 뭐니 다 언니들이 챙겨줬어요. 제게 엄마는 엄마와 할머니의 중간쯤 ㅎㅎ요즘 아이들은 정말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고 일상을 공유하더라고요. 부럽다가도 우리 엄마도 저렇게 예쁘고 젊게 입고 나랑 다니고 싶었을텐데하며 ㅠㅠ 엄마가 짠해지더라고요. 자목련님 옆에 계심 제가 찐하게 한 분 안아드리고 싶네요. 자목련님 축복받은 인생 저도 응원합니다

자목련 2021-05-11 09:07   좋아요 2 | URL
엄마의 마음을 조금 빨리 헤아렸더라면 싶어요. 고모와 사촌동생이 같이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는 걸 보면 참 좋아보여요.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조금 크다 싶으면 고모에게 안겨(?)주더라고요. 미니 님의 품에 쏙 안기는 아침,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화장한 화요일 보내세요!!

지유 2021-05-10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애어른이라 엄마와 딸을 소재로 한 글은 다 남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요. 세상의 모녀 이야기가 다 제 이야기로 깊숙이 다가와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자목련 2021-05-11 09:0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지요.
지유 님, 어머님이랑 소소한 일상을 즐겁게 나누는 하루 이어가시길 바라요^^

붕붕툐툐 2021-05-10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셋째딸! 저희 엄마는 지금도 딸이라면 벌벌 떠시는 딸바보. 그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데, 어떨 땐 내가 그 사랑에 전혀 못 미치는게 너무 죄스럽고 그렇습니다.

자목련 2021-05-11 09:00   좋아요 2 | URL
딸바보 어머님이 계시니 정말 부러워요.
붕붕툐툐 님도 어머님바보 같은 걸요. 어머님이랑 좋은 시간 많이 보내세요^^
 


사라지는 봄의 아쉬움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연분홍의 표지, 벚꽃잎이 흩날린다. 말랑말랑한 연애,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벚꽃나무 아래』란 제목 옆 ‘시체가 묻혀 있다’는 문장은 섬뜩하다. 정말 벚꽃나무 아래에 우리는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집 『벚꽃나무 아래』는 그런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모두 12편으로 제법 긴 중편, 단편, 아주 짧은 일기 같은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화자는 대부분은 병약한 존재다. 깊은 병을 앓고 있거나 그로 인해 요양을 위해 홀로 지내는 경우도 많다. 몸이 아프다는 건 우울한 일이고 그 시간이 지속되면 우울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소설 속 화자는 전혀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러 아닌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걸 다 포기한 마음 같기도 하다. 제목부터 기꺼이 병을 맞아주겠다는 태도의 「태평스러운 환자」속 요시다는 폐가 나쁘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다 병으로 인해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요시다는 밤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의사를 부르기도 그렇고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병을 아는 어머니가 좀 더 정성껏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 그런 그에게 들려온 잡화점 딸의 죽음. 그녀 역시 폐병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해 태연함을 보이는 요시다의 태도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그것일 것이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다. 소설 곳곳에서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생활, 그 안에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만나는데 어둡거나 무거운 신산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신비롭다. 바다에 대한 이미지, 바다를 보고 느끼는 감정을 들려주는「바다」나 아픈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다 발견한 과일 가게 앞 레몬을 구매하는 이야기 「레몬」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 편의 긴 편지를 읽는 기분이 드는 「바다」의 이런 부분은 내가 아는 바다가 아닌 처음 접하는 바다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것은 실로 밝고 쾌활하고 생기가 넘치는 바다다. 아직 피로나 근심과 걱정에 더럽혀진 적 없는 순수하게 밝은 바다다. 유람객이나 병자의 눈에 닳고 닳아 너무 달아져 버린 포트와인 같은 바다가 아니다. 시큼하고 떫고 거품이 생긴 와인같이 아주 깊고 야만적이 바다다. (「바다」, 77쪽)

어디 그뿐인가. 자신을 지배하는 모든 감정이 레몬 한 알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레몬」의 문장들. 폐결핵으로 신경쇠약까지 걸렸지만 전혀 곤란하지 않다는 화자는 하루 종일 우울해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레몬. 자유자재로 감정을 지배하는 가지이 모토지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이끄는 병에 저항하고 대항한다고 느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아서 나는 거리 위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함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레몬」, 147쪽)

그러나 병세로 인해 세상과 단절하듯 지내는 화자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소설도 있다. 요양지였던 N 해안에서 우연히 만난 K에 대한 이야기「K의 죽음」가 그렇다. 화자는 바닷가에서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쫓는 K와 이야기를 나눈다. 한 달 가까이 지냈지만 K의 죽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건강이 좋아져 그곳을 떠난 화자에게 들려온 K의 죽음. 밤을 가득 채우는 달, 그리고 바다.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지만 K는 그때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까. 홀로 적막했을 K가 달로 갔을 거라는 화자의 바람이 맞았으면 싶은 마음이 든다.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스스로를 견디고 위로할 방법을 갖기 마련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 혼잣말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표제작 「벚꽃나무 아래」에서 느낄 수 있다. 독백처럼, 편지처럼 시작하는 이 단편에서 화자는 자신과는 다르게 생생한 아름다움이 불안할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달랠 공상이 필요했던 아닐까.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 (「벚꽃나무 아래」, 200쪽)


온통 우울하지만 우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단편집이다. 권태로운 아름다움, 쓸쓸한 위태로움이라고 할까. 아무렇지 않게 수북하게 쌓인 꽃잎을 밟고 지나가는 삶이라고 할까. 생의 절망 앞에서 한없이 간절한 기도가 들리는 듯하다. 31세의 나이로 영면한 작가의 작품집이라는 게 아쉽고도 아쉬울 뿐이다. 일본 작가들의 산문집 『슬픈 인간』 과 함께 읽으면 좋을 단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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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2 10: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어보니 아름답고 우아한 우울이라는게 뭔지 느낌이 오네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재능있는 사람들이 요절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안타까운 ~

자목련 2021-04-23 10:42   좋아요 3 | URL
슬프고 절망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않고, 화자가 그러했어요. 말씀처럼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소설을 만날 수 있었겠죠.

scott 2021-05-07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하 ~축하~
저도 이책 읽고 감동!!(온통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ㅎㅎ)

오월에 건강하게~
오늘 황사 조심 하귀 ^ㅅ^

자목련 2021-05-09 16:20   좋아요 2 | URL
스콧 님, 감사해요. 그리고 저도 축하드려요.
5월인데 마냥 날씨가 좋지는 않네요. 춥기도 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요.
남은 오후 즐겁고 평온하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5-07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5-09 16:20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5월 이어가세요^^

초딩 2021-05-08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페이퍼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2 | URL
초딩 님,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야말로 멋진 데미안의 글 축하드려요^^
편안한 오이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1-05-08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감사합니다. 저도 한아름의 축하를 보네요^^
향기로운 5월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