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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있는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당신이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나는 당신을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 당신이 받고 있는 혐의가 무엇 무엇인지, 당신과 당신 일당이 받았다는 뇌물이 모두 얼마인지, 당신이 지금도 모른다고 우기는 그 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 모두 몇 명인지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여럿 있다. 이 편지는 내가 그 이유를 당신에게 굳이 알려주려고 쓰는 것이다.


오바마와의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당신이 'poor' 어쩌고 하는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 국제적 망신이었다. 물론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도 그리 훌륭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순발력 부족이나 세련되지 않은 말솜씨를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길 능력 밖의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집단린치와 다름없다고 했다. 답변을 준비하느라 타이밍을 놓쳤다고 솔직하게 말하거나, 오바마의 말이 너무도 훌륭해서 넋을 놓고 듣고 있었노라고 썰렁한 농담이라도 하지 그랬는가? 무의식중에 당신이 읊조리듯 내뱉은 말에서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를 발견했다. 당신은 "말씀을 오래 하셔갖고" 라며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겼다. 당신은 늘 그런 식이었다. 묻는다. 살면서 당신에게 일어난 사건사고 중에서 당신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 하나라도 있는가? 아마 생각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에 당신에게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누구누구인가? 이것은 떠오르는 사람이 셀 수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당신은 책임질 줄 모른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대통령은 플레이어다. 한 국가를 놓고 생각할 때는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다. 그러나 당신은 임기 내내 플레이어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신은 언제나 평론가였고, 심판자였으며, 제3자였다. 나라꼴이 엉망이라는 한탄, 문제 일으킨 자를 색출하라는 명령, 현안마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강 건너 불구경. 이것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 당신의 주된 일이었다. 당신의 무책임함은 아마 여기서 연유할 것이다. 당신에게는 당신 일이 아닌 일에 책임감을 느낄 만큼의 도덕성이 없을 테니까. 혹시 당신이 성형시술과 각종 주사제와 기치료에 집착한 것도 스스로 당신 일이라고 여긴 일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당신은 아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대통령이 된 후로 당신이 특별 기자회견도 아닌 연두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자회견을 비롯한 당신의 대국민 메시지는 그 수가 얼마 되지도 않으니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 번 확인해보기 바란다. 거기서 당신이 말하는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팬클럽 회원과 다름없었다. 당신은 국민 앞에 꼭 '지지해 주신'이나 '믿고 성원해주신'과 같은 단서를 붙였다. 이게 무슨 뜻인가? 믿고 지지하는 사람만 보고 가겠다는 뜻이 아닌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그런 자리인가? 그러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자리인가? 그렇다고 '국민행복시대' 운운하면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최면을 걸라는 뜻은 아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의 언어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당신 진영의 사람들의 주된 공격 포인트는 '편 가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당신은 연예인 기질을 타고난 것 같다. "대통령님 힘내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장소를 잘도 찾아다녔다. 당신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서 정녕 부끄럽지 않았는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을 상대하겠다는 생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당신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당신의 현실감각과 판단력 부족은 여기서 비롯할 것이다. 언론에서는 태블릿 pc 보도 이후 지금까지 당신이 최악의 선택만을 해왔다고 분석한다. 웃기는 소리다. 당신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당신은 그렇게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거다. 당신이 가진 선택지와 일반인들이 가진 선택지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공직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권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답변을 잘 한다는 것은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며, 무엇보다 질문하는 주권자를 존중한다는 뜻이 된다. 높은 인격과 능력의 소유자인 당신이 듣기에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있을 수 있지만, 공직자는 다른 내용이 아니라 바로 그 내용에 관해 답해야 한다. 그것이 공직자의 의무이고 숙명이다. 일선 관공서에 전화를 해보라. 당장 답할 수 없는 질문의 답은 당신의 전화번호를 메모했다가 나중에라도 알려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답변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질문 자체를 받지 않으려 든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일의 행적에 대해서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말할 뿐, 무엇을 했는지는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한 여성의 사생활에 대한 저급한 호기심이 아니다. 주권자가 공직자에게 업무시간에 무엇을 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당신의 부하 중에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소리를 굳이 선언까지 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자를 극도로 혐오한다. 그자가 국회에서 주권자를 대신해 질문하는 국회의원에게 어떻게 답변했는지 당신도 잘 알 것이다. 반성해 보기 바란다. 탄핵심판에서 당신의 대리인단이 헌법재판관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했는지. 그리고 잘 헤아리기 바란다. 앞으로 있을 형사재판에서 당신과 당신의 변호인이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를. 제발 동문서답하지 말고 상대가 묻는 질문,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라. 그것이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고, 조금이라도 양형에 유리한 길일 것이다.


내가 잊을 수 없는 당신의 표정 두 개가 있다. 먼저 세월호 참사 당일 뒤늦게 중대본에 나타난 당신의 표정이다. 백번을 양보해 늦을 수도 있다고 치자. 천번을 양보해 '구명조끼' 발언을 할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자국민의 참사를 앞에 둔 대통령의 표정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날 당신의 표정은 수업시간에 졸다가 깼는데, 갑자기 선생에게 어려운 질문을 받은 학생의 표정이었다. 단순한 표정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감과 능력의 문제다. 그날 당신의 표정은 전혀 마음 아프지 않다는 것과, 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그 표정에도 의미가 부여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대선에 출마했던 것인지 묻고 싶다.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표정은 올해 초 뜬금없었던 기자간담회에서 보였던 표정이다. 블랙리스트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하는 당신의 표정, 그 표정은 흡사 나쁜 짓을 하다가 현장에서 걸린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당신의 대답이 거짓이었다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대통령으로서 어찌 기본적인 표정관리도 안 되는지, 그러면서도 뭐 하러 탄핵 중에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내가 어리석은 지도 모르겠다. 그 기자간담회 마저도 당신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 혹시 외교무대에서도 그런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너무 무례한 것인가?


당신의 표정은 아니지만 내가 잊지 못 하는 표정이 하나 더 있다. 당신 집권 초 당신의 (외교성과가 아닌) 한복에 관한 뉴스를 전하던 모 종편채널 앵커의 표정이다. 아, 그것은 마치 걸그룹을 응원하는 삼촌팬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 앵커를 욕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어느 조직이나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나는 그 앵커의 표정을 만든 분위기의 근원이 당신이라고 생각한다. 비약이라고 해도 좋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컨디션이 자주 좋지 않다는 전언, 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당신이 눈물을 흘렸다는 전언 등 그 이상야릇한 전언들이 공식채널에서 가능했던 분위기도 당신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없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 마지막 이유가 이것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 죄, 공적 시스템을 웃음거리로 만든 죄.


이제 고백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이 편지는 당신에게 보내려던 편지가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다. 나는 예전부터 당신을 보면서 묘한 불편함을 느껴왔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닮았다는 불편함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어딘가 어색하고 수동적인 자세, 자기 의견을 확실히 밝히지 못 하고 말끝을 흐리는 버릇, 위기 때마다 드러나는 판단력과 결단력의 부족, 좋아하는 일만 하려는 유아적 태도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닮은 점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바로 세상사를 대하는 제3자적 태도다. 고백하건대 나의 평론가적 비평가적 태도는 당신보다 훨씬 중증 수준이다. 나는 요즘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조직의 구성원 가운데 비평가와 분석가가 많아지는 것은 그 조직이 곧 붕괴할 조짐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당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나 자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신과 나는 적대적 공생관계였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을 끊임없이 비국민으로 몰아붙이는 힘으로 권력을 유지했고, 나는 그런 당신을 비평하고 평론하는 재미로 지난 4년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당신을 비평하고 평론하고 있다. 지난날의 나라면 대통령과 범부는 다르다고, 나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다고 변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은 아니지만, 주권자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통령이었던 당신이 이 지경이 되는 동안 주권자인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비극은 당신과 나의 선택지의 다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비극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것이다. 내가 진실로 당신의 개과천선을 바랐던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혹시 당신이 남은 임기 동안 계속 그러하기를, 그래서 내가 당신을 마음껏 욕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아닌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도 없이 이 편지를 맺는다. 당신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변하지 않을 모양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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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리에서 대통령 후보들의 현수막을 보았다. 내가 본 네 개의 문구 중 가장 높은 점수는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에 주겠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반문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변화 자체가 희망이 되는 암울한 시기이므로 최고점으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정치를 냉소의 대상에서 변화의 도구로 격상하려는 시도가 엿보여 좋았다.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은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문구였다. 앞부분은 개혁의 냄새를, 뒷부분은 안정의 냄새를 풍겼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고민은 이해하지만, 뭔가 좀 아쉽다. 메시지도 분명하지 않고, 대구도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임팩트가 없다. '정부다운 정부, 리더다운 리더'라고 고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별 걱정을 다 한다. 임팩트가 강하기로는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과 '국민이 이깁니다'가 막상막하다. 눈에 잘 들어오기는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자유대한민국은 내 조국 대한민국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부터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지키겠다는 것일까? 국정농단 세력으로부터? 4대강의 재앙으로부터?


그리고 문제의 '국민이 이깁니다'. 오늘 잠시 동안 나를 사색에 빠지게 한 문구다. 이 문구를 내세운 후보의 소속 정당 이름에도 '국민'이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국민이 어떤 경쟁에서 누구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일까? 이기는 것은 좋은 것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저들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일까? 전부가 이기는 싸움이나 경쟁은 없으니, 아마도 전국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지지자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속 정당의 당원들을 말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나는 이명박의 '국민성공시대'와 박근혜의 '100% 대한민국, 국민행복시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말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을 살고 나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아니다. 이미 그 자체로 거짓말이다. 전국의 모든 고3 수험생은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다. 나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모든 수험생이 동시에 서울대에 합격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참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기호 3번의 말을 믿는다. 어떤 국민은 이길 것이다, 반드시. 문제는 내가 그 국민의 범주에 들 수 있는가 이다. 어떤 국민이 승리할 때, 어떤 국민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 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나와 내 이웃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왔다. 


소위 전문가들은 모든 선거는 51대 49의 싸움이라고, 중도 표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모든 선거는 자신의 당선으로 인해 크고 작은 이익을 침해당할 수 있는 유권자를 누가 더 많이 설득하거나, 속이는 지를 겨루는 게임이라고. 나는 설득당하는 것과 속아넘어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믿는다. 내가 대통령 후보라면 이런 구호로 설득하고 속일 것이다. '자살하지 않는 나라'. 참모들은 반대가 심하겠지만, 작은 글씨로 적을 문구도 몇 개 구상했다. '뇌물 공여자가 자살하지 않는 나라', '국정원 요원이 자살하지 않는 나라'도 그 중 하나다. 오늘 스산한 거리를 걸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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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지 2017-04-2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국민이 이긴다는 말은 안철수도 했고 문재인도 했습니다.
두사람 도우 왜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는지 참 알 수 없네요.

책의속밖 2017-04-20 18:32   좋아요 0 | URL
당연히 그랬겠지요. 현수막을 보고 쓴 글이라 특정인을 겨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요. 제가 지지하는 후보 포함해서 모든 정치인은 ‘국민‘이란 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고, 그때 우리 유권자는 속을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집권 4년은 그야말로 뉴스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세월호와 메르스, 국정원과 문체부, 배신자와 개돼지, 권력게임과 계파갈등, 연이은 인사 참사와 정책 실패 같은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뉴스가 뉴스를 덮고 있었다. 당신의 뜬금없던 개헌 발언 역시 그것을 노린 포석이었을 것이다. 아, 교활하면서도 어리석은 사람. 그 뉴스의 끝이자 정점은 개헌보다 더 큰 블랙홀, 최순실이었다.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모처럼 뉴스가 재미있었다. 그 혼란과 재미 속에서 모 종편 메인뉴스의 모토처럼 한걸음 더 들어간다는 것은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문제는 뉴스의 양이나 속도뿐이 아니었다. 뉴스 속에서 당신과 함께 나열되었던 단어들을 나는 기억한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주사제와 의약품과 성형시술법들, 옷과 신발의 브랜드명, 개와 고양이와 말의 이름, 샤워기와 변기, 청와대 근처 김밥집과 강남의 미용실, 억세게 운 좋았던 모 중소기업과 모 성형의원. 고백하건대 나에게 이것들은 일종의 포르노였다. 별거 아니란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당신의 뉴스를 찾아보았다. 볼 때는 흥미로웠으나, 보고 나면 뭔가 허탈했다. 괜한 짓을 한 것만 같았다. 


삼월의 마지막 날 봄비가 내렸다. 그날 새벽 당신이 구속되었고, 같은 날 운명처럼 세월호가 귀환했다. 나는 당신의 구속 소식을 접하면서 박사모나 탄기국 사람들처럼 절망하거나 슬프지도 않았지만, 웬일인지 크게 기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 느낌이 없었다. 마치 포르노의 마지막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포르노를 보듯 당신과 당신 일당들이 만들어내는 뉴스를 보아왔다. 이 말을 혹시라도 언론기관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말로 듣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오해다. 이것은 내가 당신의 뉴스를 소비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신이 임명한 국무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통위원 지명권을 행사한다는 뉴스가 포털 메인에 걸려있다. 마치 포르노를 보며 수음(手淫) 하다 들킨 기분이다. 그렇다. 내가 뉴스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지 못 할 때, 당신과 당신의 일당들은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가 있음을, 당신의 재판이 시작도 하지 않았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일당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음을. 아직 정권이 바뀐 것은 아님을. 세상이 바뀐 것은 더더욱 아님을.


당신의 뉴스가 별 느낌 없는 포르노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연인과의 재회처럼 기쁘게 느껴질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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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저는 야구를 모릅니다. 야구장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경기 중계를 볼 때면 아직도 모르는 규칙이 종종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응원하는 팀이 있고, 중계방송을 열심히 봅니다. 물론 이글스를 응원하지는 않습니다. 감독님께서 얼마 전에 라디오 인터뷰를 하셨더군요. 직접 듣지는 못 했고, CBS <김현정의 뉴스쇼>라는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감독님 말씀 중 궁금한 점 두 가지를 여쭈어 봅니다. 첫째, 거의 모든 투수가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를 말려야 하지 않느냐는 앵커의 물음에 감독님은 타협하지 않고, '거기'를 넘어야 강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지만 참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쭙습니다. 말리셨다는 겁니까? 독려하셨다는 겁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말리셨지만, 속으로는 반기셨다는 뜻입니까? 두 번째로 앵커와 기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가 혹사당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에 이글스 투수들도 포함된다고 여겨도 되겠습니까? 감독님은 '혹사 논란'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아니라면 모두가 혹사당하고 있으니 그냥 모르는 척 해달라거나, 누가 나한테 돌을 던질 수 있느냐는 취지로 하신 말씀입니까?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가 혹사당하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문제라고 인식하고 계십니까?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선배 세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닙니다. 이 질문은 안 들으신 걸로 해주십시오. 아마도 감독님은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무슨 자격으로 감독님께 문제해결을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이 질문에 답하시라고 강요할 자격부터가 없겠군요.


'과학이란 마치 길 건너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반대편 가로등 아래서 열쇠를 찾고 있는 술 취한 사람과 같다. 가로등 아래에 빛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은 없다.' 아시겠지만, 촘스키의 말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지요. 저는 감독님께서 야구를 그만두시는 날까지 감독님의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감독님은 지금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계십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찾고 계십니다. 감독님의 야구는 옳습니다. 감독님의 야구 인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는 감독님의 야구가 옳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사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추사가 그랬다지요. 지인들이 추사체가 '괴하다'는 말들 듣고 와서 추사에게 전하자, '괴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밖에 쓸 줄 모른다'고요. 과연 추사다운 자존심과 고집입니다. 훗날 감독님의 야구가 추사체만큼의 명품이 될 수도 있을까요? 추사체는 전범을 따르지 않은 글씨입니다. 추사체가 명품인 이유는 바로 그 파격에 있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감독님의 야구는 옳습니다. 일종의 전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범을 뛰어넘는 파격이 이미 등장했고, 그것이 이제는 또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다른 젊은 감독들을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야구를 모릅니다. 따라서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 찾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덕분에 감독님께서 찾고 계신 열쇠가 '거기'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잘 보입니다. 중언부언했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감독님, 열쇠는 '거기' 없습니다. 외람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과 이글스의 행운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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