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권 4년은 그야말로 뉴스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세월호와 메르스, 국정원과 문체부, 배신자와 개돼지, 권력게임과 계파갈등, 연이은 인사 참사와 정책 실패 같은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뉴스가 뉴스를 덮고 있었다. 당신의 뜬금없던 개헌 발언 역시 그것을 노린 포석이었을 것이다. 아, 교활하면서도 어리석은 사람. 그 뉴스의 끝이자 정점은 개헌보다 더 큰 블랙홀, 최순실이었다.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모처럼 뉴스가 재미있었다. 그 혼란과 재미 속에서 모 종편 메인뉴스의 모토처럼 한걸음 더 들어간다는 것은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문제는 뉴스의 양이나 속도뿐이 아니었다. 뉴스 속에서 당신과 함께 나열되었던 단어들을 나는 기억한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주사제와 의약품과 성형시술법들, 옷과 신발의 브랜드명, 개와 고양이와 말의 이름, 샤워기와 변기, 청와대 근처 김밥집과 강남의 미용실, 억세게 운 좋았던 모 중소기업과 모 성형의원. 고백하건대 나에게 이것들은 일종의 포르노였다. 별거 아니란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당신의 뉴스를 찾아보았다. 볼 때는 흥미로웠으나, 보고 나면 뭔가 허탈했다. 괜한 짓을 한 것만 같았다. 


삼월의 마지막 날 봄비가 내렸다. 그날 새벽 당신이 구속되었고, 같은 날 운명처럼 세월호가 귀환했다. 나는 당신의 구속 소식을 접하면서 박사모나 탄기국 사람들처럼 절망하거나 슬프지도 않았지만, 웬일인지 크게 기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 느낌이 없었다. 마치 포르노의 마지막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포르노를 보듯 당신과 당신 일당들이 만들어내는 뉴스를 보아왔다. 이 말을 혹시라도 언론기관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말로 듣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오해다. 이것은 내가 당신의 뉴스를 소비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신이 임명한 국무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통위원 지명권을 행사한다는 뉴스가 포털 메인에 걸려있다. 마치 포르노를 보며 수음(手淫) 하다 들킨 기분이다. 그렇다. 내가 뉴스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지 못 할 때, 당신과 당신의 일당들은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가 있음을, 당신의 재판이 시작도 하지 않았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일당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음을. 아직 정권이 바뀐 것은 아님을. 세상이 바뀐 것은 더더욱 아님을.


당신의 뉴스가 별 느낌 없는 포르노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연인과의 재회처럼 기쁘게 느껴질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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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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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언어분석에서는 글이나 말의 내용 이해에 중요한 내용어보다는 별 쓸모없어 보이는 기능어가 더 중요하단다. 아니 절대적이란다. 저자가 제시한 내용어와 기능어의 분류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기능어 분석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저자를 흉내내 말하자면 이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삶의 진실이란 언제나 작고 하찮은 것에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면 성급한 일반화가 될까?


<우울한>

저자는 언어분석을 할 때 '자신의 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대화중에 실시간으로 상대의 언어를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떤 글에 대한 사후 분석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키워드가 되는 단어들의 수를 일일이 세어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시간을 절약해 줄 뿐 아니라 더 정확하기까지 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이 대목에서 약간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기계가 사람보다 심리분석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훗날 사람보다 더 뛰어난 공감능력을 지닌 기계가 등장하지는 않을까? 과학자들은 사람과 더 닮은 기계를 만들지 못해서 안달인데, 이런 우울한 생각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안심하다>

이 책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사용한 단어는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확실하지만, 단어 사용 스타일의 변화가 그 사람을 바꾸지는 못 한다. 전문가란 사람이 이런 말을 해주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단어 몇 개 달리 사용한다고 사람 자체가 바뀌게 된다면, 뭐랄까 그건 너무 재미없고, 실망스러우며, 정의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는 마법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아보니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삶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길 바란다.


<우리>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단어는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다. 굳이 이 책을 열어보지 않아도 이 단어가 집단 정체성과 관련있음은 명확하다.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집단 정체성을 강조하기 좋은 시절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집단 정체성은 고정관념, 편견, 차별과 친하다. 열차는 멀리 떨어진 지역들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선로가 지나는 어느 한 지역을 갈라놓기도 한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맞잡은 두 손에 누군가는 걸려 넘어질 수 있다. 가끔 누군가를 넘어뜨리기 위해 손을 맞잡자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는 자들이 있어 기함하기도 한다.


<참다>

언어분석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타인의 심리를 읽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책들보다도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과연 이 책의 방법론이 나의 일상에 얼마나 필요한가? 타인의 심리를 읽어내야 하는 일이 내게 그리도 많은가? 많다면 왜 많은가?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복잡한 방법론이 아니라 시간이 아닌가? 전문가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그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이 책에 대한 나의 흥미는 내가 그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없음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사람의 심리를 읽는 방법에 대한 흥미보다 사람 자체에 대한 흥미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에게 그런 흥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왜>

어떤 일마다 배후에 누군가의 어떤 의도와 목적이 감춰져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그리 환영받을 만한 태도는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묻는다. 이런 것을 누가 왜 알고 싶어 할까? 이런 연구가 현실에서 가능하게 하는 실제적인 힘은 무엇일까? 노골적으로 물어서 이런 연구에 필요한 돈은 누가 대는 걸까? 책에는 언어분석을 선거운동이나 기업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으며, 활용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다. 나는 왜 이런 대목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권력과 자본의 속성을 떠올리며 불편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알면서도 불편하다. 그것이 문제다.


<그녀>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그녀가 떠올랐다. 특히 '지위', '거짓말', '권력'이라는 테마에서 그랬다. 요즘 나는 그녀의 심리상태에 대해 관심, 아니 의문이 많다.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그녀가 어떨 때는 악마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칠푼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욕망의 화신 같다가도, 뒷방 늙은이 같기도 하다. 문제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나'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과 관련해 보자면 그녀는 대명사를 많이, 특히 지시대명사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대명사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특성이 뭐하고 했더라? 그녀는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알다 / 모르다>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다'와 '모르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미국 보수진영 사람들이 오바마에 대해 착각했던 것처럼 나의 착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이 둘이라는 사실이 단박에 떠올랐다. 그리고 뜬금없게도 상대의 심리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상대의 심리를 아는 것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까? 그리고 그 앎에는 혹시 나의 착각이나 편견, 자기기만이 섞여있지는 않을까? 나는 그런 회의의 끝에서 다시 한 번 '그녀'와 만났다. '그녀'가 받았던 표는 아마도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던진 표가 대다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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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 너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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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흥미롭지 않은 것을 다루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흥미로운 책이 되었다.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동서분당에서 기축옥사에 이르는 시간 동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결코 쉽지 않았을 작업이다. 흥미롭지 않다고 한 것은 저자의 작업이 선악의 이분법이 아닌 각 정파와 논객들이 저마다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을 지르는 등장인물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는 사극의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목에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넣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당시의 정치 현안과 인물 사이의 관계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비전문가로서 따라가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나의 사건이 종결되었나 싶으면 비슷한 성격의 다른 사건이 꼬리를 물었고, 인물들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해 그 관계가 얽히고설켰다. 하지만 나는 당쟁을 이토록 건조하게 다룬 글을 처음 보기에 이 책을 흥미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관심을 끌었던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림의 분열을 사헌부와 사간원의 언관들이 주도했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 국왕 선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책에 따르면 조선 정치의 두 축은 대신과 언관이다. 대신은 국정의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임무이고, 언관은 관리의 부패를 막는 것이 주 임무라고 되어있다. 사실 내게는 언관이 대신과 나란히 정치운영의 축으로 언급되는 것마저도 생경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이르면 언관이 스스로의 권위를 대신의 그것보다 위에 두었다는 대목에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의 권위가 추락했다는 것을 대신의 임무인 국정현안 해결이 불가능해졌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왕조국가에서 국왕이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신하들이 분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열을 이끈 담론은 국정현안이 아니라, 서로의 부패혐의에 대한 탄핵이다. 이것이 파국으로 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거칠게 말해서 언관은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집단이다. 오늘날로 치면 민정수석실이나, 감사원, 검찰청의 임무 정도가 될 것이다. 조정의 인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부패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피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따라서 그들이 하는 일의 최후는 늘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언관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언관들에게 주어진 임무가 그러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책에 설명된 그들 집단의 의사결정 방법은 또 어떠한가? 사헌부와 사간원은 전원합의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당연히 전원합의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때마다 피혐과 처치라는 (내가 보기에) 극단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 결국 언관이 누군가를 탄핵하면, 탄핵을 당한 관리, 그를 탄핵한 언관, 그 언관의 탄핵에 동조한 언관과 반대한 언관 중 누군가는 자리를 떠나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홍문관 관원까지도 옷을 벗어야 했다. 한마디로 누군가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끝나는 게임이다. 이 역시 개개인의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결정 시스템의 문제이다.


이렇듯 언관의 임무와 의사결정 방식은 언제나 'All or Nothing'이었다. 정책 현안이라면 토론을 통해 조정하고 양보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인사문제는 쓰지 않으면 버리는 것뿐이다. 거기에 언관들의 피혐과 처치는 심하게 말해서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을 합법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언관의 지위가 대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넘어서 대신의 권위를 넘어섰다는 점이었고, 이런 상황을 통제해야할 국왕의 힘이 약했다는 점이었다. 대신의 권위의 부재는 국정공백의 다름 아니고, 왕권이 약하다는 말은 브레이크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이러니 선조 재임 초 사림이 분열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정책을 두고 싸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으며, 그 싸움을 그만두고 싶어도 쉽게 그만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대방의 비리혐의(그마저도 대개는 과거의 혐의)를 두고 싸우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부패한 구세력이 앞선 시대를 망쳐놓았다는 진단과 그들에 의해 선배 사림이 도륙을 당했던 뼈아픈 기억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시기 사림이 놓인 정치 지형 자체일 것이다.


언관이 속한 사헌부, 사간원에 홍문관을 더해 삼사라고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중앙정치에 사림이 진출하고 삼사의 기능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성종 대부터다. 동서분당의 시점에서 볼 때 이미 오래 진행되어 온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사림이 스스로 만든 시스템의 함정에 빠지는 일종의 자승자박을 본다. 삼사를 장악한 사림이 부패한 구세력과 한판 겨룬다. 물론 많은 피를 흘렸지만 사림은 승자가 된다. 이제 삼사의 사림이 그 칼을 내부로 향할 수밖에 없게 된 형국, 그 형국에서 분당과 당쟁은 필연이지 않았을까? 구세력이 몰락했다고 해서 삼사의 관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스스로 그 권위가 대신을 능가한다고 여기는 그들이 말이다. 이 대목에서 국정현안을 주도할 대신의 권위의 부재와 약한 왕권이 아쉬움(이것은 추후의 비극을 알고 있는 나의 현재적 평가이자 감정이다.)으로 남는다. 물론 이 역시 사림의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사림은 부패한 선배 대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사림을 포함한) 사대부들 전체는 국왕을 조선의 단독 주권자로 여기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선조의 경우 방계라는 콤플렉스와 인순왕후의 그늘, 세자 수업을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점 등을 생각하면, 동서분당이 이루어진 재임 초반에 이렇다 할 정치를 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선조가 재임 초부터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개혁이든 수구든) 국정운영에 임했다면 사림이 분열하고 비정상적인 당쟁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어리석은 가정일 것이다. 선조 이후의 군주들은 모두 붕당을 혁파하지 못했고, 결국 그것에 휘둘리거나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중국이라는 거대 문명의 지척에서 좋든 싫든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던 한반도처럼, 성리학적 명분론으로 똘똘 뭉친 사림이라는 신세력을 받아들인 조선의 중앙정치가 분열과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어쩌면 같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민생이라는 현안이 외면된 것이 아쉽고, (먼 훗날의 일이지만) 인조반정이나 세도정치처럼 왕권이 어이없이 추락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여기서 저자의 결론인 '도덕적 확신'에 대해 반론 아닌 반론을 제기해야겠다. '도덕적 확신'이 사림의 분열과 대립을 증폭했다는 저자의 진단에 나는 동의한다. 저자는 선조 초의 사림을 '시비와 원칙에 민감한 젊고 비타협적인 지식인들'이라고 평했다. 이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이런 인간형이 과연 조선의 선조 대에만 존재했는가? 이러한 인간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선조 대에 동서분당이 되었고, 그 이후의 당쟁이 기형적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까? 다른 인간형의 무리가 집권했다면 선조 대에 분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가 집권했다 하더라도 정치의 중심은 이미 대신이 아니라 언관이었고, 언관이 만들어내는 담론은 국정현안이 아니라 부패한 상대에 대한 탄핵이었다. 탄핵안 처리 역시 피혐과 처치라는 의사결정 방법이 고착화되어 있었으며, 국왕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에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는 것뿐이었다.


힘들게 이 문제를 파고든 저자가 '도덕적 확신'이라는 개인적 신념의 차원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지 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아니, 저자의 작업으로 당시의 구조적 문제가 낱낱이 드러났음에도 결론에서 명확하게 언급해주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말해야겠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도덕적 확신'이라는 답은 왠지 문제의 성격 자체를 개인 차원으로 변질시키는 것 같아 수긍하기 어렵다. 나는 역사와 정치를 모르기에 조심스럽지만, 역사적 사건은 대개 인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믿기에 그러하다. 사림의 '도덕적 확신'이 어떤 정치 구조를 만들었다면, 반대로 그 구조가 사림의 정치 행위를 어떤 식으로든 구속했을 터이다. 그것이 규명되지 않았기에 나는 저자의 물음을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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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십일월이 가볍게 흔들릴 때

벽과 달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볍고 마른 마찰음

침묵과 방관 속에 창궐(猖獗)을 하면 치사하고 역겨워라

죽지 않기 위해 살아온 날들이여


나뭇가지 끝, 위태롭게 매달린 낙엽

떨어지면 닥칠 북풍과 한설이 두려워

광장에 나가지 못 하는 십일월의 오후

서서히 고사(枯死)하는 불구의 가슴에 떨어뜨리는

한 방울의 구차한 인공의 눈물


조소(嘲笑)는 넘치고 용기는 아까워

죄없는 달력만 촛불로 불을 댕기며 나는 웃는데

따뜻한 햇볕이 차라리 서러운

봄마다


벚꽃의 집단투신을 보며 나는 사춘(思春)과 관음(觀淫)의 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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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생각해보면 대학시절 가장 잘 한 짓은 전국으로 여행을 다닌 일이었다.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여행의 가치를 논하거나, 여행의 목적을 밝히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나에게 여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 자체로 찬란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여러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 한지 십 년이 넘었다. 어쩌면 여행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전 불면의 밤에 그동안 다녀왔던 곳과 미처 가보지 못 했던 곳들 중에서 12경을 선정해봤다. 제목을 붙이자면 '내 마음대로 고른 혼자 보기 좋은 12경'쯤 되겠다. 혼자 놀기 좋아하는 성격, 역사에 대한 작은 관심,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답사여행의 길잡이>라는 책 덕분에 나의 여행지는 주로 답사지가 선택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여행을 답사라고 부르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여행이든 답사든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3월 - 순천 조계산

나의 여행은 1월이 아니라 새봄 3월에 시작한다. 따로 봄꽃 구경을 갈 일은 없겠지만, 순천 조계산이라면 좋다. 조계산에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선암사다. 선암사는 해우소뿐 아니라 볼거리가 많은데, 특히 진입로가 좋다. 마치 외부세계와 단절된 어떤 별천지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주차장을 지나면 키 큰 나무들이 있는데, 죽는다면 이곳에서 죽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을 해봤다. 그때는 어렸고, 지금은 나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간다면 조계산을 오르며 죽음보다는 봄을 생각하고 싶다. 조계산은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라고 한다.


4월 - 창녕 관룡사

나의 12경에 창녕이라는 소도시가 포함된 것은 그곳에 관룡사가 있기 때문이고, 관룡사라는 작은 절이 포함된 것은 그곳에 용선대가 있기 때문이다. 관룡사에서 조금만 산을 오르면 부처님 한 분이 앉아계신데, 바로 용선대다. 이곳에 부처님을 모신 사람들의 불심이 얼마나 깊은지는 모르겠지만, 부처님과 함께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일품이다. 근처에 숙소를 잡고 이곳에서 해맞이를 해도 좋을 것이다. 화왕산과 관룡산이 철쭉과 진달래로 유명하다기에 4월에 배치했다. 물론 해맞이가 아니어도 좋고, 꽃이 피지 않아도 좋다.


5월 - 고창

아직 가보지 못 했기에 어느 한 곳을 꼽지 못 한다. 고창을 여행하게 되면 바쁠 것 같다. 그 유명한 선운사 동백꽃은 운이 좋으면 5월 초까지 볼 수 있다고 하고, 신록의 계절과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고인돌이라는 무덤도 있다. 물론 고창읍성과 운곡습지도 들러야 한다. 그리고 고창에는 청보리밭이 있다. 고창이 5월의 여행지인 이유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고, 내가 여러 여행지들 중에서 가장 기대하는 곳이기도 하다. 넓고 푸른 보리밭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한 번 흘려보고 싶은데, 아직 보지 못 한 곳이라서 가능한 유치한 상상인 셈이다.


6월 - 부안 변산반도

변산반도에서는 먼저 내소사를 보아야 한다. 진입로의 전나무 숲길은 청량하고, 대웅전 꽃창살은 어여쁘다. 꽃창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월이 쌓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주름 같기도 하고, 오래된 헌책 같기도 하다. 내소사를 보고나서 변산을 오르는 것도 좋다. 큰 힘 들이지 않고, 폭포와 호수와 숲과 기암을 모두 볼 수 있다. 코앞이 바다니 그야말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단체여행은 질색이지만, 이곳만큼은 누군가 함께 해도 좋다.



7월 - 단양 온달산성

어쩌다 보니 온달산성을 7월에 넣게 되었다. 여름에 산성을 오르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오르는 길이 아주 짧고, 일단 오르고 나면 가슴이 절로 시원해지는 풍광이 기다리고 있다. 유홍준 선생이 전쟁을 위해 쌓은 것인지 후대의 답사객을 위해 쌓은 것인지 모를 정도라고 극찬했던 답사지가 바로 이곳이다. 온달산성에 올라 남한강 물줄기와 소백산맥을 바라보면 과연 그런 평을 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감동을 배가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산성 밑에 있는 온달동굴을 먼저 보고 올라가는 것이다.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8월 - 안동 병산서원

안동 여행에서 가장 큰 실수는 병산서원을 찾지 않은 것이었다. 하회마을 입구에서 병산서원까지 걷는 길도 좋다던데, 당시에 하회마을을 찾았으면서도 왜 병산서원에 들를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병산서원에 대해서는 서원으로서 갖는 역사적 의미나, 서애 류성룡의 업적과 생애,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진에 담긴 병산서원 주변 풍광에 반했을 뿐이다. 만대루에 오르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곳에서 하루 종일 병산을 바라보다 와야겠다. 배롱나무 꽃이 핀다고 해서 8월 여행지로 꼽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곳이다.


9월 - 합천 영암사터

나는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사진을 배우지 않은 것과,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던 곳이 바로 영암사터다. 한마디로 숨이 턱 막히는 경관이고,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나의 글이 비루하게 느껴지는 경관이다. 이름처럼 전각은 없고 터만 남은 곳이다. 그러나 황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쌍사자석등을 감상하기에는 그것이 오히려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황매산 철쭉이 유명하다기에 일부러 봄을 피해 배정했다. 폐사지는 혼자 조용히 다녀와야 제맛인 법이다. 발굴과 복원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찾았을 때 혹시 아쉬움이 생길까 걱정이다.


10월 - 청송 주왕산과 주산지

고창과 함께 꼭 가볼 곳으로 벼르고 있는 곳이 바로 청송이다. 청송에는 주왕산과 주산지가 있기 때문이다. 주왕산은 산행이 쉬우면서도 단풍과 기암절벽이 일품이라고 하고, 주산지는 그 빼어난 경치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주산지의 새벽 물안개는 사진만으로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무더위가 물러갔다 싶더니 어느덧 10월이 코앞이다. 이번 가을에는 주왕산의 단풍과 주산지의 물안개를 보고 싶다. 



11월 - 청도 운문사

11월은 마땅히 운문사의 몫이다. 내소사가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고, 부석사가 가을 저녁의 장엄한 해넘이라면 운문사는 초겨울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이다.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도 아니고, 눈이 내리는 한겨울도 아니다. 반드시 초겨울이어야 한다. 운문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 도량이다. 편견 때문이었을까? '처연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곳이었다. 일정을 맞추지 못 해 어두워진 다음에 도착한 운문사 입구에서 들리던 법고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운문사 가는 길에 보이는 청도의 산 능선은 덤이다. 내가 보았던 것 중에서 제일 예쁜 능선이었다.


12월 - 괴산 화양구곡

12월과 1월의 여행지는 눈 속에 은신하기 좋은 곳을 골랐다. 화양구곡이 12월인 이유는 '중화의 볕'이라는 시대착오적 이름이 붙은 곳에서 새해를 시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전에 화양동을 한여름에 찾았을 때는 더위에 지치고, 피서객에 치였다. 그래서 화양구곡 산책로를 걸으면서 눈이 쌓인 화양동을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화양구곡은 우암 송시열과 인연이 깊은 곳인데, 청천에서 우암 묘소를 먼저 보고 찾아도 좋다. 물론 그 경치만 보아도 좋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화양동은 설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1월 - 담양 소쇄원

소쇄원은 인공정원이지만 그 어느 여행지보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인공과 자연이 어울려서 정원의 경계를 분명치 않게 만든다고들 한다. 어디까지가 정원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인지 모를 곳이니, 삶이 곧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인 사람에게는 최고의 여행지가 될 것 같다. 소쇄원은 그 태생부터가 몸을 숨기기 위한 곳이다. 함박눈이 펄펄 쏟아지는 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소쇄원에 들어가 며칠 숨고 싶다.



2월 - 여주 고달사터

폐사지를 여행하기에는 2월만큼 좋은 때가 없을 듯하다. 때는 뒤숭숭하고, 날씨는 스산하다. 폐사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분위기다. 경주의 감은사터, 익산의 미륵사터, 보령의 성주사터, 그리고 원주의 여러 폐사지들도 좋지만 여주 고달사터를 선택했다. 2월의 그것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때문이다. 합천 영암사터는 강렬한 인상의 그림을 한 폭 보여주지만, 고달사터는 그렇지 않다. 분위기를 느낄 뿐이다. 그 분위기는 글로 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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