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문제를 한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로 바라본다. 아주 고전적인 예가 되겠다.


윤석열은 박근혜 탄핵 사태때 과잉 수사와 기소로 사람들을 때려잡았다. 그리고 똑같은 과잉 수사 방식으로 조국을 때려잡았고 이재명을 때려 잡았다. 그리고 지금 인턴 의사들을 때려 잡고 있다. 다 똑같은 방식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박근혜 사태때부터 잘못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일종의 혁명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하자. 그때는 조금만 문제가 있어 보이면 구속부터 시켜 놓고 보았다. 그러면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에서 구속이란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사법부 판결에 앞서 벌주는 것을 뜻한다.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국민들은 이러 저러한 사람을 구속 수사하라고 피켓팅을 한다. 윤석열은 전공의의 단체 행동을 주도하거나 사주한 사람을 구속 수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이런 판국이다. 윤석열과 국민 사이의 간격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면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무엇을 해야 했나? 탄핵 국면에서 헝클어진 법치 체계를 수리해야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했나? 합법적으로 집권했고 단임 정권에 불과한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수사한다며 윤석열은 자기 조직을 대폭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고 문재인은 그에 아낌없이 도장을 찍어 주었다. 윤석열은 아낌없이 과잉 수사와 기소를 했고 문재인은 거기서 일말의 문제 의식도 느끼지 못했다. 민주주의 정부의 지도자로서 문재인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백낙청 교수는 문재인은 정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사태들은 단지 그 결과들일 뿐이다. 어쨌든 역사는 소수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한번 결정적 순간이 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그것을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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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담슨의 철학사 시리즈(a history of philosophy without any gaps) 중 이슬람 철학사와 인도 철학사를 읽었다. 처음엔 이슬람 철학사만 읽으려 했는데 인도 철학사까지 읽게 되었고, 이제는 고전 그리스 철학부터 죽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분량이 적지 않으므로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알라딘을 검색해 보니 철학사 첫 권이 분권으로 한국어 출간되어 있다. 그런데 품절이란다.)


저자는 아마도 중세 이전 서양 철학사와 이슬람 철학사가 전문 영역인 것 같다. 그렇다는 것은 서양 중세 철학도 그의 영역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또 인도 철학까지 섭렵할 수 있었을까? 그의 철학사를 읽으면서 내내 경이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혹 중국 철학사까지 가능할까 하는 기대감도 가져보게 된다. 빈틈 없는 철학사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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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요일 점심 때 동네 근처 오데온 극장에서 듄 파트 투를 봤다. 몇 년 전에 같은 곳에서 파트 원을 봤었다.


파트 투가 더 좋다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파트 원을 더 좋게 보는 소수파에 속하는 것 같다. 나는 캐릭터에 대한 탐구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빌드업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듄 파트 원이 그런 영화였고, 드라마 시리즈로 보자면 와이어, 마인드헌터, 베터 콜 사울 등이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여기 저기 귀동냥으로 대충 내용은 알고 있다. 내 생각에 지금은 21세기이기 때문에 원작을 준용하는 방식으로 3부가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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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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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저자가 쓴 최근작들을 읽고 싶어 책꽂이를 기웃거리다가 <니체의 인생강의>, <초인수업> 두 권을 집어들었다. 선물받은 책들이다. 금방 다 읽었다.


그저께 한국인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가 커피 테이블 아래 놓인 그 책들을 발견했다.

"한국어 책을 읽은지 오래 되었는데 이 책들은 어때요?"

나는 부정적 평가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 좀 머뭇거렸다.

"여러 모로 실망스러운 책들이었네요."

"그러니까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안읽게 되고요..."

"그래서 고전을 읽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들 하지요."

나는 커피 테이블 아래 놓여있는 <괴테와의 대화>를 가리켰다. 그러나 그 책의 과도한 두툼함으로 책에 대한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저 두 책에 대해 부정적 품평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알라딘 리뷰들을 찾아보았다. 한없이 5에 가까운 4.5의 평점들을 받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마음껏 슬퍼해도 되리라. 나는 슬펐다.


저 책을 쓴 저자들은 수십 년 동안 니체를 연구하고 번역한 전문 연구자들이다. 그들의 생산품에 저 고투의 시간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란, 어떤 독자가 1시간 30분 만에 읽어내었다 할 정도의 깊이를 가진, 문자 그대로 얄팍한 처세술 책이었다. 오해하지 말자. 저 책들이 처세술 책이어서 슬펐다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의 연구와 고투가 저런 얄팍함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사실에 슬퍼진 것이다. 


좀 더 독해져볼까? 니체에 따르면 바퀴벌레도 인간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슬퍼진 나는 곧장 내가 (진지하게) 읽은 유일한 니체의 책, 거의 모든 문장에 연필로, 볼펜으로, 파란색으로, 까만 색으로, 빨간 색으로 줄이 그어져 있는 니체의 책, <선악을 넘어서>를 펼쳐들었다. 읽을 때마다 이 책은 충격을 주고, 화나게 하고, 멈추어 생각하게 한다. 니체 스스로의 말 그대로 이 책은 피로 쓰여져있다. 영혼과 영혼이 대화하게끔 강제한다. 그리고 다시 확인했다. 바퀴벌레도, 똥도, 간질도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은 무조건 옳다는 것을. 저 책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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