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도시 브뤼주
조르주 로덴바흐 지음, 임민지 옮김 / 미행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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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최초로 사진을 접목한

죽음의 도시 브뤼주를 읽고 - [단상]


 

조르주 로덴바흐(Georges Rodenbach) 지음

임민지 옮김 | [미행] | (2023)



 

소설에 최초로 사진을 접목한 벨기에 작가. 죽음의 도시 브뤼주저자 초상 사진을 찍은 나다르라는 사진작가가 초기 사진 역사에 등장하는 나다르라면, 저자는 그와 같은 당대의 초기 사진가들과 교류하며 문학에 그림대신사진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았음직하다. 당대의 프랑스 예술가들의 세계는 이미 일본 판화의 새로운 구도와 일상 소재로부터 받은 신선한 충격으로부터, 그리고 사진의 등장으로 새로운 분위기가 뒤섞어 묘한 흥분으로 뒤섞여 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화가는 세계를 그대로 복제하는 듯한 결과물을 내놓음으로써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고민하던 중이었을 것이며, 문인들은 회화를 자신의 글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바로 이런 새로운 예술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직전, 끓는점 직전의 분위기에 소설의 저자 조르주가 태어났으리라.


조르주가 파리의 문학 모임에 나가 문인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이 조르주가 자신의 초상사진을 찍으면서 나다르를 비롯한 초기 사진의 선구자들과 교류했을 법한 가능성을 더해준다. 세계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기술적 도구로서 더 나아가 새로운 가능성을, 이 벨기에 몽상가는 틀림없이 주목했을 것 같다. 다만 프랑스인들이 벨기에인들이 쓰는 불어를 조롱하던 행위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벨기에는 프랑스의 어설픈 변방으로 취급되었을 것 같다. 프랑스인들이 벨기에 프랑스어라고 구별해서 표현하기에 이런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벨기에 작가의 소설은 프랑스어로 쓰였다. 옮긴이의 설명을 읽고 상상할 수 있는 작가는 엉뚱하기도 했지만 문학에 진심이고 그만큼이나 성실했던 작가다. 이런 벨기에인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프랑스 지식인들의 시선을 작가도 느꼈던 것일까? 사진가 나다르가 찍었다는 그의 초상 자신에 남은 눈매를 볼 때마다, 저자의 몽상가다우면서도 슬픔을 어딘가에 숨기고 있을 법한 눈망울이 느껴진다.


 

소설에 실린 사진 속 도시의 건물들은 견고하고 육중하다. 남성적이고 견고한 문명과 관습의 흔적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그만큼이나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도덕의 감옥같이 느껴진다. 흔들림 없이 이 풍경들을 반영하는 고요한 호수 혹은 강은, 이 문명의 폭력을 견디며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사진은 이러한 진실을 담아내지 못하나, 소설가의 진실을 뒷받침하고 재구성한다. 19세기 당시 사진은 기술적인 이유로 긴 노출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결과 고정된 풍경 속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흔적은 지워져버린다. 마치 외젠 앗제의 파리 골목 사진처럼 말이다. 소설에 수록된 브뤼주의 풍경 사진 역시 덩그러니 건물만 보여주고 있다. 혹은 그나마도 희미한 인물들의 형상만 남아 있는 것이다. 사진에 희미하게 남은 사람의 흔적은 유령의 그것처럼 보인다. 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실존에 대한 증거이면서 동시에 죽은 이의 귀환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아내의 죽음으로 주인공 위그는 벨기에의 도시 브뤼주에 살게 되었다. 그에게 도시는 그 자체가 바로 아내나 다름없었다. 이 죽음의 도시는 끊임없이 위그에게 아내를 소환한다.


 

도시, 문명, 종교, 관습, 도덕, 규범, 죄의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필멸성, ‘죽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영원하고자하는 갈망, 행복을 무한히 연장하고픈 세속적 욕망, 앞으로도 영원히 살 것만 같은 오늘 하루에 대한 미련, 한여름 내내 울부짖던 매미 소리가 잦아들 즈음의 아찔한 시간 감각. 반대로 이 모든 건 존재가 어김없이 죽음으로 향할 뿐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규범과 죄의식은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 이라는 일종의 광기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 던져진 수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사태는 편집증과 우울증을 낳기도 하고, 때론 혹은 언제나 흑백사진의 무채색으로 사람들의 어께를 무겁게 짓누른다. 흑백사진과 소설의 글쓰기는 모두 인간과 모든 존재의 필멸성을 명상하게 해주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아마도 저자 조르주 로덴바흐가 발견한 사진의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영원은 오직 찰나에서만 반짝이는 법이라고 말이다. 시인의 이 말은 최초의 사진이 접목된 죽음의 도시 브뤼주에서 정말 적절하게도 반짝인다. 세계의 일부만을 프레임 안에 고착시킨 사진만으로도 저자 조르주 로덴바흐는 사진이 주는 분위기와 잔상을 자신의 소설에 훌륭하게 접목하여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 냈다











[책속으로]

(저자 서문)
[1] "우리가 기꺼이 선택한 이 브뤼주라는 도시는 현실에서는 거의 인간처럼 보인다... 도시가 가진 어떤 영향력이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발휘되는 것이다. 이곳의 경치와 종소리에 의해 사람들이 형성된다."(9)


[2] "브뤼주의 배경이 에피소드들에 가담하기 때문에 책의 페이지 사이에 끼워 넣어 재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9)


[3] "늦은 오후의 브뤼주 역시 어찌나 슬픈 도시인지! 위그는 그런 도시를 사랑했다! 그는 바로 그 슬픔 때문에 이 도시를 선택했고, 그런 큰일을 겪은 후 이곳에 와서 살게 된 것이다."(22)

[4] "죽은 도시는 곧 죽은 아내임이 틀림없었다. 그가 지닌 엄청난 슬픔의 감정이 그런 환경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견뎌낼 수 있는 삶은 이곳에서의 삶뿐이리라."(23)

[5] "이제 이 도시는 유독 ‘여신도’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도시의 양로원과 수녀원 담벼락,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돌로 된 소백의를 입고 무릎을 꿇은 듯한 모습의 교회에서 발산되는 것은 바로 신앙과 금욕에 대한 충고였다. 도시는 위그를 지배하고 그에게 복종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113)

[6] "위그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교회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죄에 대한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맴돌았고 또 못 박혔다."(124)

[7] "아름다운 행렬은 끝난 것이다.... 존재했던 모든 것, 삶의 광경, 아침의 부활과 같이 노래했던 모든 것이 모두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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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야망 - 자연의 완전성을 탐구하는 연금술의 역사
윌리엄 뉴먼 지음, 박요한 옮김 / 길(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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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학혁명을 이끈 연금술의 전통 들여다보기

- 프로메테우스의 야망를 읽고


 

윌리엄 뉴먼 지음 | 박요한 옮김 [도서출판길] | (2023)




 

이 책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연금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학술적 성격의 책이지만, 이 분야에 대해 궁금한 독자라면 읽기에 난해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연금술의 전통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데 작은 벽이 될 수는 있겠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무엇보다 주석을 포함하여 꼼꼼하게 번역한 역자를 한 명 알게 된 듯하다. 이 책이 첫 번째 번역서라고 하는데, 성실한 젊은 학자를 알게 된 것 같아 반가웠다. 또 상당수의 국내 논픽션 도서가 흔히 간과하는 한글 색인 작업까지 추가로 정리한 노력이 눈에 들어와서, 비전문가 독자로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독서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과학을 전공하긴 했으나 연금술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쩌면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셈이다. 읽고 나니 연금술의 전통이 근대, 특히 근대 화학이 탄생하는 데 실천적인 학문으로서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약간의 감을 잡게 해주었다고 평가해본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신으로 알려져 있다. ‘야망을 가진 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지니고, 인간에게 불을 비롯한 이성과 지식을 가져다준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내게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대표하는 성격은 인본주의적인 신, 인류에게 문명을 가져다 준 신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저자 윌리엄 뉴먼은 오히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생물의학 연구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앗아갈 것을 경고하며 언급한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이란 표현을 이 책의 제목으로 차용했다고 말한다. 과학과 종교의 오랜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암시하는 표현을 과학사 도서의 제목으로 가져온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연금술이 (아랍 과학을 동양의 전통에 넣을 수 있다면) ·서양의 오랜 전통으로서, 그리고 오랜 시간 엄연히 존재했던 문명의 기예로서 그 자체로 분명한 자리가 있음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책이다. 저자가 펼치는 논의가 적용되는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인 기원전 4-5세기 즈음부터 과학 혁명 즈음까지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연금술의 기원을 기원전으로 보고는 있지만, 이 전통은 주로 아랍 학자들이 연구하고 기록에 남긴 것에서 비롯된다. 중세(대략 9세기) 서양에서 학자들이 아랍어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에 재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에 연금술과 관련한 논쟁이 격화되었던 것은 12세기 즈음으로 보인다.

 


연금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구리나 철 같은 일반 금속을 으로 바꾸고자 했던 전통을 말한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사이비 과학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이 전통은 진지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되었던 것이 알려져 있다. 일례로 아이작 뉴튼과 로버트 보일이 교환한 서신에서 연금술의 전통과 관련된 현자의 돌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주의해야할 것은 이 때 이들이 주로 주목했던 연금술의 영역은 신비주의적인 주술의 영역보다는 실천적인 비법, 시행착오를 다룬 실험 화학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해볼 수 있는 화학실험 가운데 연금술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실험이 있다. 이를테면, 유황소금을 물에 녹여 검은 색의 유황소금 용액을 준비한다. 이 용액에 은으로 만든 반지나 은장신구를 넣고 30초에서 1분 정도 기다리면, 백색광이 나던 반지의 표면에서 유황성분과 결합하여 표면이 노란색으로 변색된다. 변색이 적절하게 잘 되면, 정말 금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반지가 은반지인지 금반지인지 판단해볼 수 있는데, 방법은 금과 은이 가진 고유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고, 이 것이 정말 금인지 은인지 판단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물질 고유의 특성인 밀도가 다르다는 정보, 혹은 은반지의 부피와 질량을 이용하여 밀도가 다르다는 점을 파악해내면, 색이 변한 은반지가 금아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변색된 은반지를 원래 색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금물에 알루미늄 호일을 넣고 끊인 물에 다시 넣으면 변색된 은반지가 원래의 은색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번에는 금속 원소의 이온화 경향차이에 따라 변색된 은반지의 표면에 결합된 유황성분이 떨어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아마 이 실험이야말로 실천적이고 시행착오를 거쳐 형성된 연금술의 경험으로부터 알게 된 지식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연금술이란 우선 저급한 금속 재료를 금과 같이 귀한 금속으로, 질적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추구했던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모방하고자 시도해보고, 수없이 실패하면서 조금씩 탁월함에 이르는 과정이었던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에 대한 모방을 넘어 자연을 변형시키고, 보다 나은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던 셈이다. 은반지 변색 과정 실험은 연금술의 역사가 과학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자연에 대한 모방(미메시스)’로서의 시도는 이 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는 화가 제욱시스에 관한 이야기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제욱시스에 관한 에피소드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도 언급되고 있다. 제욱시스가 어느 날 동료 화가와 사실적인 그림그리기 내기를 하는 에피소드다. 그림 내기는 자연의 사물을 실제처럼 그려낼 수 있는 지, 누가 더 가깝게 자연을 묘사할 수 있는지로 승자를 결정하는 내기였다. 제욱시스가 벽에 진짜 포도나무처럼 그림을 그리자 새가 날아와서 앉으려다 부딪쳐 죽었다고 한다. 이건 자연에 대한 모방기예를 겨루는 작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이 사례는 회화의 전통에서 자연을 실제처럼 실감나게 그려내는 문제와 이어져 있다. 아마 이러한 전통 혹은 논쟁에 확실히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은 아마도 19세기 초(1820년대)에 이루어진 사진의 발명이 아닐까 싶다.

 


사진의 발명으로 이제 자연에 대한 화가들의 모방작업이 더 이상의 논쟁이 되지 못했을 테다. 이후 화가들의 관심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세계를 어떻게 그리고 표현해야 하는가가 아니었을까. 이 때 화가들이 주목했던 것이 마침 유럽에 들어와 있던 새로운 전통, 특히 일본의 호쿠사이가 작업한 판화그림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명 우키요에 판화의 전통을 통해 유럽인의 색채에 대한 관심, 빛에 대한 묘사에 주목한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게 된 것으로 확장해볼 수도 있겠다. 여기에 은을 이용한 사진의 현상·인화술에 관계된 화학 역시 연금술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근대 사회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연금술의 전통을 단순히 마녀 과학’,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연금술의 전통이 무엇보다 실천적 기예로서 화학의 역사와 전통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의학공부를 했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에 특히 주목한다. 파라켈수스는 의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었지만, 정통 의학의 길에서 벗어나 당시에는 보다 천하게 여겨졌던 일종의 실험 의학(외과)’에 참여했다. 그리고 당대에 전통적인 의학의 권위로 영향력을 발휘하던 4원소설의 아리스토텔레스나 그 맥을 잇는 4체액설(병의 원인이 체내의 체액 사이에 발생하는 불균형에 따름)의 갈레노스의 의학적 견해를 비판하고 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문외한의 관점에서 정리해보자면, 갈레노스의 의학은 오히려 체내 기관의 기능 불균형에서 병의 원인을 찾는 관점을 고려할 때 한의학의 관점을 닮았다. 반면 외부에서 유입된 병의 원인을 퇴치하려는 관점에서 볼 때 파라켈수스의 의학적 견해는 오히려 현대 약리학의 전통에 맥이 닿아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파라켈수스의 주장과 실천 중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병을 유발하는 원인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사용하는 것, 특히 이를 위해 금속 성분을 약으로 처방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은을 처음으로 처방했다 것이다. 저자가 연금술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주목하는 파라켈수스의 연금술에 대한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파라켈수스가 흥미로운 인물이긴 하지만, 연금술을 반대하는 학자와 교회 세력에 의해 파라켈수스를 비롯한 연금술사들이 마법사들과 함께 불경스럽고 미신적인사람들로서 악마화되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서 출발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을 입자로 보는 질료입자론에 도달하는 데 연금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는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부연하면, 실험과학으로서 얻은 지식의 축적을 통해 연금술사, 과학자들은 점차 물질에 대한 입자설로 구체화해갔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입자설의 전통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자설에서는 모든 질료를 무한히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관점에서 모든 질료를 무한히 나눌 수 있다고 본다면, 세계는 무한히 잘게 쪼개져서 빈틈을 가질 수 없고, 결국 이 세계에 진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설명할 수가 있게 된다. 어쩌면 반대로 자연에는 진공이 없다라는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물질의 입자는 무한히 쪼개질 수 있다는 이른바 연속설을 주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주장이 기원 후 초기의 카톨릭 교부들(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형성된 스콜라 철학이 권위로 작용하여 중세를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카톨릭 세력,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지지하는 세력의 견제와 비판을 받은 이 이론과 달리,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로 대표되는 원자설의 전통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원자설은 모든 질료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아이스토텔레스의 연속설과 출발점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차이점은 이 입자를 작게 쪼개다보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atom)’를 가정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콜라 철학의 주요 토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설(연속입자설)’에 기반을 둔 반면,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론이 바로 원자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원자설의 관점에서 보면 갈릴레이의 제자이기도 했던 토리첼리가 발견한 진공개념도 설명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비전공자로서 여기에 주목한 이유는, 이 책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서 근대 과학의 주춧돌을 놓은 보일, 라부아지에 등의 질료입자론전통에 연금술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내 견해는 조금 다르다. 나는 고대 그리스에는 이미 두 가지 입자설의 전통이 있다고 보는 것에서 이해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속설이라고 표현한 입자설의 전통에 이미 기대고 있었다고 이해했다. 반대로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등의 맥을 잇는 관점에 따른 입자 이론은 원자설에 해당한다. 결국 입자를 무한히 작게 나눌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자개념은 연속설, 데모크리토스의 입자개념은 원자설로 나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입자설이 건전하게 대립과 경쟁을 통해 각자의 견해를 입증하고자 했다면, 세계의 질료에 대한 이해가 몇 세기는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설은 스콜라철학의 교리 형성, 교황 세력의 비호아래 중세에 지배적인 관념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로 대표되는 원자설의 전통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 전통을 지지하는 과학자들 물의 전기 분해와 같은 화학 실험을 통해 원자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근대 화학 혁명의 핵심이라 볼 수 있고, 이 위상 변화에 결정적으로 연금술이 영향을 미쳤다고 이해해보는 것이다. 다시말해 연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설전통에서 (근대 화학의 기원이 된) 데모크리토스로 대표되는 원자설전통에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 주는 역할을 했다고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이 부분은 과학사 전공자가 이를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다시 분명히 확인해보고 싶은 점이기에 내가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겨둔다. 이 분야의 대가가 쓴 책을 오독했을 확률이 99%이긴 하나, 조금 다르게 읽어보는 재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특히 흥미로운 주제인 호문쿨루스에 관한 이야기가 할애되어 있다. 이 부분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은 사람이면 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호문쿨루스에 대한 주제는 SF작가 테드 창의 당신의 인생 이야기에 실린 단편 일흔두 글자와 관련지어 흥미롭게 읽었다. 이 소설에서 호문쿨루스와 유대 신비주의 전통에서 나온 골렘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진흙으로 빚은 존재에게 생명력을 주는 것은 문자()’라는 모티브가 매우 생소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에서 이야기해주는 골렘의 전통에 관한 내용을 읽고서야 비로소 테드 창의 이 단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단편은 유대 신비주의에서 나온 골렘에 관한 믿음을 충실하게 자신의 소설에 적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보다 자세히 현재적인 주제나 관련 도서와 함게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책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연금술이 과학혁명, 특히 화학 분야에 미친 영향을 암시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화학사의 관점에서 연금술의 전통이 과학혁명기에 미친 영향의 단면을 살펴보려면 장하석 교수의 물은 H2O인가?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연금술은 우리가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인류의 역사에서 자연을 알고자 오랫동안 이루어진 도전 과정을 담고 있다. 보다 거칠게 말하면, 오래 시행착오를 거친 실천적인 방법론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이점은 연금술이 기여한 역할 가운데 하나로서, 근대의 과학혁명에 주도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물론 중요한 점은 화학분야의 과학혁명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며, 이미 중세시대에 큰 변화, 내지는 혁명이 이루어질 발화점 아래에서 만만치 않은 논쟁이 부글거리며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또 다른 영향은 연금술의 전통이 여전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연금술의 현재성이다. 여기에는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낳은 부정적인 측면도 포함된다. 정통 카톨릭 교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문제부터, 악마의 개입에 대한 논쟁, 이후의 마녀 사냥에 미친 영향, 우생학의 씨앗을 낳은 문제,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 생명 공학과 인공지능에 까지도 연금술의 영향은 미치고 있다.


 

최근, 논문 조작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황우석 박사가 현재 국내를 떠나 아랍에미리트(UAE)에 정착하여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는 낙타를 비롯하여 150마리 이상 동물 복제를 한 상태라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생명을 복제하고 자연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도전이 연금술의 전통으로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특히 중세에 연금술 논쟁을 일으킨 거대한 자료의 보고였던 아랍지역에서 동물 복제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연금술의 역사를 고려할 때 상징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전통이다. 다만 우리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의도한 대로, 연금술을 단순히 사이비 지식으로만 뭉뚱그려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금 느끼는 점은, 연금술이라는 전통은 인류의 문명 속에서 도도히 흐르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기예, 혹은 인간의 의식 및 삶과 공진화해온 인류의 기예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1] "자연에 기반을 둔 기예는 자연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아지도록 사물을 이끌거나, 아니면 자연을 그저 모방한다."(65)
-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에서 언급한 내용.

[2] "이전의 저작들 대부분과는 달리 《역학 문제들》은 자연을 강력하게 정복하는 것을 오히려 바람직한 목표로 설정한다. 기계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향해 실질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75)
-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담은 어느 후대 학자의 저서에 담긴 내용.

[3] "회화와 조각, 살아 있는 듯 보이는 오토마타를 제작하는 기예와는 달리 연금술은 자연적 생산물을 재생산하되 그 안에 포함된 모든 내부 성질까지도 재생산하기를 추구했던 기예였다."(78)

[4] "이처럼 확신 있는 표현들(‘자연적인 것보다 더 나은 것’, ‘참으로 은보다 더 나을 것’)은 대(大)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나타난 태도와 동일한데, 그는 인간이 만든 향료와 염료가 그것들이 따랐던 자연의 원본을 ‘정복했노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83)

[5] "마법은 천상의 힘을 물리적 물ㅊ에 이식함으로써, 의학은 인간의 몸을 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건강함으로 이끎으로써, 농업은 씨앗을 정성 들여 지배하고 경작함으로써, 자연적인 것을 더욱 탁월한 완전성으로 이끌 수 있다고 여겨졌다."(93)

[6] "다른 어떤 주제와도 다르게 연금술은 중세와 근대 초 사람들 모두에게 자연과학과 기술의 도덕적이고 존재론적인 한계를 깊이 성찰하게끔 하는 초점을 제시했다."(94)

[7] "연금술이 서유럽에 유입된 시기는 대개 로베르투스 케테넨시스가 유명한 아랍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했던 1144년으로 추산된다."(108)

[8] "마법의 기에는 신으로부터 허락된 악마의 능력과 지식을 수단으로 삼아 작용한다."(111)
- 중세 연금술 논쟁에서 반대했던 알베르투스의 맥을 잇는 페르투스의 언급.

[9]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상학》 제4권에서 종이 변성될 수 없음을 연금술의 기예가로 하여금 알게 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악마들은 [종을 변성시킬]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오로지 기예를 통해서만 일하기 때문이다."(112)
-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논증(연금술 비판/반대의 입장).

[10] "우리의 의도는 이러한 연금술 토론문제들을 일일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연금술이 기예-자연 논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표본이 될만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문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140)

[11] "실제로 《헤르메스 서》를 비롯한 중세의 여러 연금술 문헌이 채택한 인공-자연 구별의 경험주의적 접근법은 베이컨과 그의 17세기 후예들인 로버트 보일, 존 로크의 입장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141)

[12] "기본 금소의 황금변성에 관해 게베르는 원소들이 상호 변성된다는 질료형상적 설명을 입자론적 설명으로 대체했다. 그의 전복적인 사고는 17세기에 이르러 다니엘 제네르트와 로버트 보일의 입자론적 화학을 통해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160)

[13] "가장 중요한 계기는 교황 요한 22세가 연금술을 정죄하는 교서 <그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를 반포했던 사건이었는데, 이 교서는 변성이 ‘사물의 본성 안에 있지 않다’고 논증함으로써 연금술사들에게 위조범이라는 딱지를 붙였다."(170)

[14] "스위스의 주목할만한 의학 및 종교 저술가이자 파라켈수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테오프라스투스 폰 호헨하임(1493-1541)은 자연마법 및 비의적 실천과 깊게 연결된 근본 과학으로서의 연금술을 옹호했던 갑작스러운 인물이었다."(209)


"파라켈수스의 연금술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술을 의학에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실험실 기술로 생명의 여러 과정을 설명하는 진정한 화학적 생리학으로 확장되었다. (...) 파라켈수수스의 우주론적 의화학에 필적할 만한 포괄적인 사상이 중세에는 없었다고 말해야 정당할 것이다."(210)

[15] "비링구치오가 활동했던 1520년대 후반의 피렌체는 연금술을 향한 관심이 집중된 도시였다."(245)

[17]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모든 광물과 돌은 하루 동안에 만들어졌으며,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불완전하지 않았다. 신은 각각의 모든 종을 온전하게 창조했으므로 그것을 변성시키려는 시도는 불경한 것이다."(270)

[18] "인공 생명에 관한 고대 후기 및 중세의 이론은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들이 제시해놓은 개요에 따른 자연 발생 이론에 기초한 범주이고, 다른 하나는 주엣 유대교의 골렘처럼 창조주 신의 우주론적 신화에 기초한 범주다."(298)

[20] "정자는 형상이고 생리혈은 질료라는 관점으로 태아의 발생을 설명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이후로 도전을 피할 길은 없었을 테지만, 그의 이론은 중세 전체를 지배하는 규범이 되었다."(305)

[21] "조시모스는 기원후 1세기에 성립했던 그 유명한 철학 및 종교 대화 모음집인 《헤르메스 전집》의 저자로 알려졌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를 추종했던 인물이다. 《헤르메스 전집》에서 눈에 띄는 주제는 몸이 영혼의 감옥이라는 영지주의적 아이디어였다. 헤르메스에 따르면, 물질적 세계는 영혼으로 채워져 활성화되었지만 타락에 의해 오염되었다."(307)

[22] "살라만-압살 설화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인공적인 인간 생명이라는 주제는 이슬람 문명권에서 열정적으로 채택되었다. 특별히 아랍 문화에서 이 주제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겹치는 두 가지 전통으로 계승되었다. 하나는 비의적 성질을 다루는 가장 뛰어난 분야, 즉 라틴 중세에서 자연마법(magia naturalis)이라고 불리던 분야다. 다른 하나는 물론 연금술이다."(316)

[23] "유대교 학자들이 생각했던 인간 생명 복제의 작업 방식은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왔던 어떤 전통들과도 전혀 다르다. 골렘(Golem)은 종교적 마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생명을 얻은 인공 인간이다."(324)


"골렘은 카발라(Cabala)라는 다소 막연한 이름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유대교 신비주의의 산물이다. 카발라는 가장 오랜 출발점에서부터 히브리어 단어와 문자의 의미를 강조해왔다."(326)

[24] "유대학자 게르숌 숄렘과 파라켈수스 연구자 발터 파겔은 골렘이 16세기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를 미리 보여주었다고 논증한다."(329)
- 게르숌 숄렘은 유대계 독일학자 발터 벤야민의 절친이었음.

[25]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창조주와 평범한 피조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는 히브리 골렘과 가장 먼 대척점에 서 있다.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는 유대교의 골렘과는 달리 공격적이지도 않고 위협적이지도 않기에 파괴될 필요가 없다. 벙어리가 된 존재로서 말을 하지 못하는 골렘은 어떤 점에서는 열등한 하위 인간이다."(330)

[26] "오늘날과 비교하는 것이 경솔한 일이 아니라면 어쩌면 골렘은 보통의 생물학적 과정이 비-생물하적 방법에 의해 제거되거나 복제되는, 로봇공학이나 사이버네틱스, 인공지능의 세계와 같은 ‘딱딱한’(hard) 인공 생명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진정한 의미의 호문쿨루스는 생물학을 제거하기보다는 변화시키는, 즉 시험관 수정이나 클로닝, 생명공학과 같은 ‘축축한(wet)‘ 세계의 소산이다."(331)

[27] "1957년 파올로 로시의 탁월한 연구서 《프랜시스 베이컨: 마법에서 과학으로》가 출판된 이래, 이 고명한 대법관 베룰람 남작(베이컨)이 연금술 문헌으로부터 의미 있는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 책에서 로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베이컨의 주제가 연금술 및 자연마법 저작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437)

[28] "베이컨이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확장해 실험으로부터 도출된 지식에 우선권을 부여했던 것은 기예-자연 논쟁에서 기예를 지지하는 입장의 주된 근간이 되었던 ‘제작자의 지식’ 개념으로부터 그가 빚을 졌음을 보여준다."(458)

"베이컨이 기예를 자연에 동화시킨 것은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지만, 그의 견해는 실험을 향한 그의 빈틈없는 태도와 결합해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주목할 만한 결실을 맺었다. 아마도 베이컨주의적 태도를 지녔던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이제 우리가 살펴볼 ‘자연주의자’ 로버트 보일일 것이다."(459)


[29] "과거 한태의 인식과는 달리 최근에는 보일이 연금술로부터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애에 걸쳐 기본 금속을 금으로 변성시키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수께끼 같은 스승이었던 아메리카 망명자 조지 스타키를 비롯한 연금술사들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보일은 자신의 물질 이론의 상당 부분을 연금술적 화학으로부터 비롯된 아이디어 위에 세워두었다."(460)

[30] "더 흥미로운 사실은 보일이 기예-자연 구별에 대한 자신의 수정된 입장을 가지고 스콜라주의의 질료형상론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보일이 보기에 기계론의 가장 큰 적은 실체적 형상 이론이었다."(461)

[31] "물질적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접근 불가능한 실체적 형상이라는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름 아닌 이러한 접근 가능한 속성들이다. 로크 자신이 직접 변성 연금술에 관여했다는 점, 그리고 보일이 죽을 때까지 현자의 돌이라는 주제로 아이작 뉴턴과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점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473)
- 로크가 연금술적 의화학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연구되어 있다.

[32] "그(괴테)의 작품 가운데 연금술이 가장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다름 아닌 《파우스트》 제2부 제2막에서다. 여기서 우리는 파우스트의 현학적인 조수 바그너가 환상적인 연금술 실험실에서 편히 앉아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과 마주치게 된다."(497)

[33] "1829년 겨울, 괴테는 에커만에게 《파우스트》 제2부 제2막을 들려주었다. 괴테는 호문쿨루스가 단지 조수 바그너 혼자만의 피조물이 아니라 그 제작 과정에 메피스토펠레스도 능동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분명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호문쿨루스의 기원에 악마적 요소도 포함된다는 강조점에도 불구하고, 괴테는 자신이 공감했던 지점에 어떠한 의심도 남겨두지 않았다."(501)

[34] "우리 시대의 신문 삽화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여전히 15세기에 토스타도가 염려했고 16세기에 파라켈수스의 후계자들이 즐거워했던 수많은 이슈에 의해 에워싸여 있다. 체외 발생과 복제, 여성의 ‘대리모’, 유전 공학이 불러오리라 예견되는 결과들은 근대 이전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결과들 속에 이미 나타나 있다."(506)

[35] "뉴먼에 따르면, 중세 후기 연금술사들은 질료를 입자로 이해하는 구체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연금술사들의 이른바 질료입자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되어 중세 스콜라주의를 지배했던 이념인 질료형상 이론과는 대척점에 놓여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질료형상 이론 또는 실체적 형상 이론이 근대 초 화학자들의 등장으로 극복된 것이 아니라 이미 중세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경쟁자와 대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관점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549)
- 옮긴이 해제

[36] "뉴먼은 연금술사들의 실험 행위야말로 중세 후기의 입자론을 고대 그리스 및 헬레니즘 시대의 원자론으로부터 구별해주는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고 주장했다."(549)
- 옮긴이 해제
-내가 이해하는 관점은 뉴먼과 달리, 연금술의 실험 행위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되어 중세를 지배했던 ‘연속적 입자론’으로부터 고대 그리스 및 헬레니즘 시대의 ‘원자론’을 재발견하고 그 맥을 화학 혁명으로 이어지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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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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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이상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온 노학자의 독서론



독서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



 


장마철 폭우로 걱정하다가 밖에서 맹렬히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차린다. 아파트 뒤에 있는 조그만 숲에서 어느 날부터 울어대기 시작했다. 매미들의 절규처럼 들리는 이 합창을 듣노라면,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요새는 눈이 부쩍 나빠진 것 같은데, 읽고 싶은 책은 끝이 없다. 하여, 나의 책읽기는 언제나 아쉽고 부진하다.

 


잠시 눈을 돌려 책 더미에서 아담한 책 두 권을 찾아냈다. 한국학의 대가 김열규 교수의 독서론을 담은 독서공부. 저자의 생애는 대한민국 근대사에 모두 걸쳐 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소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로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어서야 조선어를 국어로 배우게 되었다는 저자. 그에겐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일본식 이름도 있다. 그가 대학교 신입생이던 1950년 여름에는 이른바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서울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기차를 간신히 얻어 타고 부산으로 귀향했다는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들어볼 법한 경험담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어려웠던 시기를 견딜 만 하게 해준 것은 무엇보다 독서였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급하게 버리고 간 책들을 구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독서의 기본을 익히기 시작했다. 학교가기 전부터 시작하여 반세기 이상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책이었다. 저자의 삶은 바로 독서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독서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할 것 같다. ‘독서는 앎이고 배움이자, 그 자체로 인간의 성숙 과정에 이르게 하는 삶이었다고.


 

어린 저자에게 최초의 독서는 할머니의 옛 이야기였다. 그의 읽기인생은 바로 듣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실감나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온몸으로 책읽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러 번이고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저자가 귀로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살갗이 움찔대고 눈이 빛나며 입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동동거리는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추억하는 최초의 책읽기는 바로 할머니의 이바구듣기였던 셈이다. 저자는 유년 시절의 듣기가 읽기, 나아가 쓰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여기서 온몸으로 책읽기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을 때 나타나는 몸의 생리적 반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게 온몸으로 책읽기변신하기였다. 읽는 자신이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가 되고,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가 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읽기란 나의 재창조였고, 신생(新生)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어린 시절부터 흥미를 보였던 문학읽기는 무엇보다 변신하고 둔갑하기였던 셈이다.


 

책읽기 과정에서 독자에게 요구되는 온 몸으로 책읽기마음의 변신모두는 공통적으로 책읽기에 참여하는 독자의 상상력을 요한다. 상상력은 이제 신경가소성이 가져다주는 신경 네트워크 형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책읽기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되어간다. 말 그대로 독서를 통해 는 거듭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평생 지속한 책읽기는 변신의 독서였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온 몸으로 책을 읽으며 마음의 둔갑을 수행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 하나 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건 파우스트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은 단테의 정신혹은 두이노의 비가에 담긴 정신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방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다. 방랑하다보면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선택하여 탐색하다가도 되돌아 나오는 등의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파우스트의 정신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파우스트에 언급되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말은 떠올리게 된다. 그건 이 말이 바로 방랑과 시행착오, 그리고 순례의 과정을 겪어내는 인간의 정신을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나는 이를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의 과정을 끌어안는 책읽기의 정신이라 이해해보았다. 평생에 걸친 저자의 독서 편력기를 읽으며 함께 찾아낸 그의 공부론’, 공부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으름 피우는 중년의 책읽기 여정에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요즘 청소년들은 학원에서 각 교과 과목을 매우 세분화해놓은 수업을 듣곤 한다. 국어과목을 예로 들면, 학교에서 나가는 진도에 따라 교과내용을 예습, 복습할 수 있는 수업, 그리고 독서 및 글쓰기또는 독서 논술이란 이름으로 별도의 분야를 제공하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모양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학원에서, 나아가 가정에서까지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노골적인 요구도 받는 모양이다. 이 과정은 효율성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학습이 아닌가 싶다. 책읽기든 공부든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시행착오를 겪어볼 겨를 없이 잘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가도록 요구하고,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길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학생에 따라 어느 정도는 이런 시스템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에 너무 의존하게 된 나머지, 개인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이런 시스템에만 익숙해지는 경우다. 이런 방식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좋지 않은 방식으로 폐기되곤 한다. 이른바 시행착오의 과정이 부족하다. 당사자가 현상을 개선하고 극복할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김열규 교수의 독서 편력기를 읽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균형 잡힌 감성과 지성을 갖춘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일임을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책 선택의 주도권을 주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일은 주도적인 독서가뿐만 아니라,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독자들에게 반세기가 넘는 저자의 독서 경험을 풀어낸 독서를 통해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초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유년시절 글자를 처음 만난 후 소년과 청년 시기를 거치며 폭넓은 삶의 기초를 독서로부터 다졌다. 장년과 노년에 이르러서는 형성된 자신만의 독서 기술을 통해 자유자재로 변신하기도 하고,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다. 수잔 손탁이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라고 했던가. 이 말도 결국 같은 맥락의 독서 예찬이 아닐까 싶다. 독서란 어제의 나, 낡은 나를 죽이고새롭게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저자의 독서론을 정리해볼 수 있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마칠까 한다.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 읽기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인격이나 인성의 탄생을 위한 모태일지도 모른다.”(85)





  

[1]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내 정서 속에 몽땅 녹아들게 하는 것이었다. 내 감각으로 남김없이 그 이야기를 집어삼키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 속의 모든 사건, 등장인물의 모든 움직임이 내 몸속의 뼈마디며 근육줄기 속에서 살아 약동하는 것이었다. 나는 온몸으로 들었다. 귀만이 듣고 있었던 게 아니다. 물론 처음엔 귀가 열리지만 이내 살갗이 따라서 움찔대고 눈이 빛나고 입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동동거린다. 그 모든 과정이 바로 할머니 ‘이바구’ 듣기였다."(29)

[2]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도 ‘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 읽기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인격이나 인성의 탄생을 위한 모태일지도 모른다."(85)

[3] "그것(읽기)은 단순한 정서적인 또는 지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건 새로이 무엇으론가 바뀌는 것이었다. 변신(變身)이었다. 나는 크눌프가 되고 토니오 크뢰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읽기는 나의 재창조였다. 아니 신생(新生)이었다."(86)

[4] "문학 읽기를 통해 나는 홍길동처럼, 손오공처럼 변신하고 둔갑했다. 마음의 둔갑. 문학 읽기란 그런 것이다. 희망, 동경 같은 낱말들이 나를 매혹하기 시작한 것도 그 덕분이다."(99)

[5] "릴케는 짙푸른 아드리아해가 내려다보이는 두이노성에서 창작에 몰두하곤 했는데, 이 시집의 제목은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괴테 《파우스트》의 주인공이나 단테 《신곡》의 주인공처럼 방랑과 시행착오와 순례를 겪어내는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153)

[6] "괴테는 일찍이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사람은 무엇인가를 구하는 동안 잘못에 빠진다’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파우스트의 정신’ 이고, 더 나아가 어느 정도는 ‘단테의 정신’ 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이노의 비가》의 정신이기도 하고."(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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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19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미가 벌써 우나요? 저의 동네는 아직입니다. 조만간 울것 같긴한데 그러면 얼추 올장마도 끝나가는구나 하는데 아직 울지않는 걸 보면ᆢㅠ
저도 몇년 전 이 책 읽었습니다. 참 좋더군요. 공부도 읽으면 좋은데 걍 다음 생에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ㅋ ㅋ

초란공 2023-07-19 12:22   좋아요 1 | URL
저희 동네 매미는 지난 주부터 울었던 것 같은데 성질이 좀 급한 녀석들인가 봅니다. ^^;; 짝 찾느라 숫기 충만한.... <공부>는 찾아놓은 김에 설렁설렁 읽어볼까 합니다~
 
[세트] 범도 1~2 - 전2권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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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믿음의 불씨를 지켜낸 그들의 이야기다



범도


방현석 지음, [문학동네] (2023)




 

소설은 15세의 소년 포수가 꿩 사냥에 나서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훗날 대한광복군 대장이 된 소년이 나라 잃은 부대를 이끌고 북만주의 암흑 속에서 행군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영하의 혹한 속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과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추위를 견디다가도, 이들의 죽음을 자각하고 이내 몸서리쳤으리라. 나라를 되찾고자 한 기나긴 여정에서 그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제 몸처럼 아끼던 동료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는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펼쳐질 운명을 예감했을까. 아니면 당신이 사냥했던 동물들처럼 눈앞에 마주한 운명을 의연히 받아들이기로 다짐했을까.


 

무엇보다 그는 포수였다. 포수는 총으로 야생의 생명을 거두는 이들이다. , 아무 생명에게나 무기를 들이대지 않는다. 소년에게 사냥을 가르쳐준 신포수는 사냥꾼과 포수의 차이점을 이렇게 일러주었다. ‘심장을 맞춰 고통스럽게 낙명시키는 총잡이는 사냥꾼일 뿐이다. 포수라면 사냥감의 두부에 있는 급소를 맞추어 고통 없이 일격에 낙명시켜야 한다. 호랑이를 잡는 범포는, 호랑이와 마주했을 때 단 한 번의 실수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울러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목숨이 하나라는 것도 말이다. 그런 이유로 포수는 사냥감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이들에게 죽음은 그만큼 가까이 체감하는 현실이었다. 자신의 때가 되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말년에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해 여생을 보냈던 일흔 줄의 홍범도 역시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남은 지인과 옛 동지들을 불러 아낌없이 베풀고 떠난 그는 정녕 조선의 포수였다.


 

한 나라에 왕이 있고, 태평한 시대였다면 홍범도는 수포수가 되거나 군영에서 왕을 호위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개인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줄 국가라는 주체가 사라져버렸던 까닭이다. 부와 권력을 지닌 계급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나라의 존재 여부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망국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기도 했다. 일부는 가진 것 없고 미약한 이들을 착취하고 짓밟았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타인의 것을 빼앗는 도적이 되기도 했다. 도적이 되지 않은 이들은 제 살을 베어 먹어야할 정도로 가난했다. 끊임없이 유린당하는 비루한 운명에 결박당한 존재들이었다. 살아가는 일이 죽는 일보다 못한 시절이었다. 이들에게 망국은 차라리 새로운 희망이라도 되지 않았을까.


 

범도를 가르쳤던 신포수는 맹수보다 무서운 짐승이 인간이라 일러주었다. 범도가 동물을 잡는 포수가 아니라 인간이란 짐승을 잡게 된 까닭을, 녹두장군 전봉준이 한 말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동학의 난을 일으킨 지도자 전봉준이 관군에 붙잡혔을 때, 서광범이란 인물이 전봉준을 조사했다. 서광범은 스물 다섯의 나이에 일본 세력을 등에 업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무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서른다섯에 법무대신이 된 서광범이 취조하자 전봉준이 대답했다.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백성들의 원성과 절규다. 봉기를 일으킨 것은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함이었다.”(1291) 범도는 자국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왕을 믿는 대신, 갈 곳도, 먹을 것도, 머물 곳도 잃은 사람들을 지켜주려 했다.


 

15세 때 나이를 속이고 관군에 들어가 무관이 되었다가 탈영한 소년은 어느 새 일본군을 잡기 시작했다. 타국의 군대가 들어와 백성들을 괴롭힐 때, 국가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했다. 군주는 백성의 믿음을 스스로 저버렸고,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엄연한 국가의 모습이던가. 운명은 포수나 무관으로 조용히 살아갈 수 있었던 한 남자의 삶도 영영 바꾸어놓았다. 현실에서 개개인은 나름의 보존 의지에 따라 욕망을 추구한다. 소설 범도는 구한말-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 공간, 국가가 사라진 진창 속에서 허우적대던 이들이 각자의 욕망을 성취하고자 격렬하게 부대끼던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소설을 읽다가 눈길이 오래 머문 부분은 계급의 높고 낮음, 지식의 많고 적음을 떠나 많은 이들이 조직이나 공동체를 배반하고 변절해간 모습이었다. 조선 유림의 거두 유인석의 부대를 배신하고 도망친 박상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일진회의 윤응순 같은 인물들, 혹은 안중근 및 홍범도와 의형제를 맺고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했지만 나중에 밀정이 된 엄인섭을 떠올려본다. 이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소설에서도 홍범도의 참모들은 엄인섭이 일본의 밀정이 된 이유를 궁금해 했다. 왜 그랬을까. 혹자는 세상을 바꾸려 덤벼들었지만, 세상보다 제 자신을 바꾸는 것이 쉬었기 때문일 것이라 진단하기도 했다. 삶에서 실존적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구는 이웃과 나라를 배반하고 자신의 살 길을 도모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홍범도의 눈으로 소설 속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많은 이들이 변절하게 된 이유 한 가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다음은 의병장 유인석이 홍범도에게 한 말이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인의예지신이오. 어질지 않은 정치는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고, 의로움이 없는 정치는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며, 도리를 모르는 정치는 나라를 기울게 만드는 법이오. (...) 허나, 아직 조선에는 마지막 하나, ()이 남아 있소. ()은 백성들이 서로를 지켜 더불어 다시 일어서려는 믿음의 힘인바, 이 가물거리는 믿음의 마지막 불씨를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든 지켜나가야 하오.”(2, 285)


 

당시 일본군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청나라와 러시아 군대를 위협하며 동아시아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많은 조선인들이 조직과 공동체에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있던 믿음의 불씨가 꺼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군주가 국가와 백성을 저버린 상황에서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은 믿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렸을 테다. 안중근은 단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자 단독 작전을 결심했다. 홍범도는 그에게 장총을 쓰고 퇴로를 확보하라 권했지만, 안중근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싸운 건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아무도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아니까 싸우는 것이라고. 변절한 조선 관리 박상준 앞에 홍범도가 나타났을 때, 그는 오히려 홍범도를 회유하려 했다. ‘앞으로 천년은 일본이 조선을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건 변절한 자의 소신이었다. 그의 말에서 변절의 이유를 짐작해본다. 나라 잃은 인간에게 남아 있던 작은 믿음의 불씨가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가슴 속 믿음의 불씨를 지키지 못한 이들은 냉소와 허무주의, 패배주의에 잠식되고, 새로운 지배자의 논리가 소신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지구를 정복한 생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대한 자연 앞에선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인간의 역사는 불가항력과도 같은 자연의 위력에 끊임없이 패배한 역사이기도 하다. 다만 인간은 판도라의 항아리에 남은 희망을 붙들었던 존재다. 아무리 무모한 희망일지라도 여기에 기대어 다시 일어섰던 것이다. 혼자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다시 일으켜 줄 수 있는 존재의 의미가 인간(人間)이란 단어에 있지 않은가.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과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불가능한 무언가를 가능하다고 믿고, 이를 위해 저를 던져 넣는 존재.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인간의 유별남이 여기에 있다.


 

소설에서 내가 주목했던 이들은 불가능함 앞에서도 굴복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역사에 이름이 기록된 이들뿐만 아니라 이름으로도 기록되지 못했던 이들을 소설 속에서 상상해보았다. 이야기 속에는 나라를 잃고 타국에서 떠돌며 적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의 고단함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홍범도는 군사 조직의 지도자였지만, 무기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장이나 광산, 심지어 바다에서 고기잡이로도 일했다. 그의 곁에는 적은 노임이나마 일부를 독립 자금으로 내놓은 동료 광부들이 있었다. 또 최후의 생존 수단으로 보관하던 금·은반지, 비녀 등을 독립군 후원 기금으로 내놓았던 조선 동포 부인들과 부인회 여성들도 있었다. 봉오동 전투 당시 부녀자들은 물과 주먹밥을 만들어 교전지역으로 직접 나르기도 했다. 밥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이들은 지면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이들이 없었다면 일본군 병력의 절반 이하로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었을까.

 


홍범도의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고 한다.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에 있던 조선인 17만 명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당했다. 이 때 홍범도 역시 남카자흐스탄의 사나리크로 던져졌고, 이곳의 한 극장에서 3년 넘게 수위로 일했다. 그의 정체를 알아본 극작가가 홍범도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연극을 본 홍범도는 내 이야기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주시오라고 말했다. 이 말의 여운은 꽤나 오래 남았다. 홍범도가 말한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전장에서 함께 싸운 가족과 동료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독립운동에 내놓은 이들이었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그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나라를 잃고 국경을 넘어 어디를 가든 학교부터 지었던 이들, 척박한 만주의 벼논에서 끊임없이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벼 베기를 하던 이들처럼. 엄혹한 현실에서 가슴에 남은 믿음의 불씨를 지켜낸 이들이 바로 그들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홍범도란 이름은 한 개인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일본과 조국을 배신하고 타자화한 대상을 짓밟았던 세력에 맞서 싸웠던 모든 이들을 대표하는 집합명사이며, 겨례의 믿음의 불씨를 지켜낸 이들을 호명하는 이름이었다.


 

마침내 안중근의 말, 성경의 문장처럼 우리의 광복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어두운 밤사이 수많은 희생을 치른 후에야 말이다. 우리는 속절없이 패배하기도 했지만,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에 싸웠던수많은 그들이 있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소박한 일상은 그들의 희생에서 빌어 왔다. 독립을 열망하며 독립 활동에 참여하고 때론 희생당한 이들에 크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변절자들은 일본이 우리의 강토를 영원히 지배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이 믿음은 소신이 되기도 했다. 이에 맞선 이들은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우리에게 권리도 주어지지 않음을 깨달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제 안의 믿음의 불씨를 지키고자 싸웠다.


 

나라를 다시 세운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홍범도가 부탁한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잠들지 말아야 하는 날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후손인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나아가 우리가 반드시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는 일본의 조슈군벌이 여전히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까닭이다. 홍범도의 부대가 북만주의 혹한 속에서 행군하던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도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백무아가 홍범도를 향해 수없이 속삭였을 살아 있으라는 말을,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에도 해본다. 백무아의 심정으로 한 가지 바람을 남긴다. ‘그들의 이야기여, 부디, 잠들지 말고 깨어있으라. 그리고 살아남으라.’ 이 유산은 홍범도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그들모두가 오늘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 속 믿음의 불씨를 태우는 연료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되풀이 되어 이 불씨가 꺼지지 않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거울처럼 비추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1]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백성들의 원성과 절규다. 봉기를 일으킨 것은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함이었다."(1권 291면)
- 녹두장군 전봉준의 언행록에 실린 전봉준 취조서 내용

[2] "유능한 사람도 많고 선량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유능하면서도 선량한 사람은 드물었다. 남의 객상 머슴살이로 시작해서 원산과 덕원 일대에서 손꼽히는 객상을 일으킨 여연과 선형우 부부는 그런 아주 드문 사람이었다.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부러운 가족이었다. 지켜주고 싶었다."(1권 491면)

[3] "우린 포수야. 포수는 포수의 목숨을 사냥감의 숫자와 견주지 않아."(2권 112면)
- 중대장으로 참여한 아들 홍양순의 청년중대가 장진 능골 전투와 다랏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의기양양한 아들에게 범도가 한 말.

[4]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오월 십팔일 열두시였다."(2권 132면)
- 홍범도가 전투일지에 기록한 아들의 전사 내용.

[5] "전쟁은 나라와 나라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쟁을 벌여야 할 상대인 일본이란 나라는 있었지만, 정작 그 일본과 전쟁을 할 주체인 우리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꾼 조선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의 주체로 나서기는커녕 일본을 상대로 싸우는 우리를 ‘비적’으로 규정했다."(2권 156면)

[6] 백무아: "이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그렇게 할말이 없습네까? (...) 내 명치 아래에서 그녀의 심장이 파닥파닥 뛰었다. 그 뛰는 심장으로 그녀가 내게 가만히 속삭였다. ‘살아 있으라.’"(2권 162면)

[7] "전투는 깃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허세가 통하는 전장도 아니었다. 오직 준비된 실력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기세만이 승리를 안겨주었다."(2권 190면)

[8] "제가 적의 수괴 한 두를 잡는다고 해서, 장군님게서 일본군 수백, 수천 두를 잡는다고 해서 물러날 일본이 아니겠지요. 그걸 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싸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아무도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아니까 싸우는 것이지요."(2권 273면)
- 안중근이 홍범도에게 한 말.

[9] "한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인의예지신이오. (...) 하여, 인의예지가 무너진 지금의 조선은 장군의 말대로 이미 넘어졌소이다. 허나, 아직 조선에는 마지막 하나, 신이 남아 있소. 신은 백성들이 서로를 지켜 더불어 다시 일어서려는 믿음의 힘인바, 이 가물거리는 믿음의 마지막 불씨를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든 지켜나가야 하오. 여기에 남은 항일의 마지막 불씨마저 꺼트리면 아니 되오."(2권 285면)
- 유림의 거두이자 의병장을 지낸 유인석이 홍범도에게 한 말.

[10] "차라리 총칼이 유일한 법전이고, 강한 자는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왜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는가."(2권 315면)
-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일본의 침략행위를 외면하는 강대국을 질타하던 23세 청년 리위종의 말.

[11]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런 노동자가 일하는 광산과 공장과 부두와 농장이었다."(2권 343면)

[12] "스스로 싸우지 않는 자에게 차례질 권리는 없단 말입니다."(2권 398면)
- 백무아가 범도에게 했던 말.

[13] "백무아가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을 순백의 눈으로 뒤덮어버릴 겨울을 기다리는 가을이라면 김알렉산드라는 찬란한 봄을 확신하고 기다리는 겨울이었다."(420)
- 백무아는 갑신정변 당시 민란 진압에 파견된 범도의 동료 백무현의 동생으로, 훗날 미국 해군성 정보국 요원이 된다. 김알렉산드라는 러시아 혁명 이후 들어선 소비에트 정권의 극동 소비에트 인민정부 외무장관이었다.

[14] "우리는 봉오동을 바쳐 봉오동에서 이겼다."(2권 560)
- 마을을 일구어낸 조선인들은 터전을 내놓고 광복군을 도았으나, 패배한 일본군은 봉오동 주민들을 학살했다.

[15] "일본군의 약탈과 방화, 강간과 살상은 잔혹하고 집요했으며, 무엇보다도 계획적이었다. (...) 공포를 전염병처럼 확산시켜 항거의 의지를 완전히 꺾는 것이 ‘불령선인 초토화 계획’의 목표였다."(2권 586면)

[16] "엿새를 꼬박 굶으며 빈총을 들고 일본군에게 쥐새끼처럼 쫓겨다녀야 했던 기억을 내 뱃가죽은 이십 년이 넘도록 잊은 적이 없었다."(2권 603면)

[17] "얼음덩어리가 되지 않으려면 걷고 또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오직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북만주의 밤이었다. 다시 아침해가 떠오를 때까지 우리는 잠들지 말아야 했다."(2권 636면)

[18] "그의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
"홍범도. 1939년 3월 25일부터 월 1백 루블의 봉급을 받고 고려극장의 수위로 근무한다."(2권 637면)
-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한국으로 올 때, 카자흐스탄 정부가 함께 보낸 홍범도의 취업명령서.

[19] "의로움과 생명,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을 때는 의로움을 택하라."(2권 643면)
- 서로군정서 총재 이상룡의 유고 문장.

[20] "나는 조선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기에 아무 여한이 없다. 정의를 지키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한 우리의 행동은 죄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재판의 결과에 복종할 수 없다."(645)
- 거금 15만원을 들고 무기를 구하러 떠났던 철혈광복단원 한상호(21세)가 밀정 엄인섭의 밀고로 체포되어 받은 재판에서 행한 최후 진술. 함께 했던 윤준희(29세), 임국정(26세)와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 애국지사들.

[21] "대원수 폐하의 고굉(팔과 다리)으로, 황군(일본군)의 일원으로 한 번 죽음으로써 그 책무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명예를 완수하는 길이다."(2권 663면)
- 지청천 장군과 일본 육사 동기였던 이응준이 1943년 8월 3일자 매일 신보에 한 말. 이응준은 일본군 대좌로 승진한 후 일본이 패망하자 서울로 빠져나와 미군정청 국방사령관 고문으로 변신한 인물.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 친일파 군인들을 주축을로 대한민국 국군 창건 작업을 주도하고 초대 육군 참모총장이 된 인물.

[22]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신사다."(2권 667면)- 지청천 장군의 일본 육사 동기였던 신태영이 1942년 용산정차장 사령관이 되어 당시 경성일보에 한 말.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군 중좌로 일본에 충성한 인물. 이응준과 신태영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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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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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원제: A Field Guide to Getting Lost, 2005)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 지음 |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




그는 자신의 심연을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언어의 바구니에 상실과 이질성이란 우물물을 어김없이 길어내는 작가다. 리베카 솔닛의 글을 많이 접하진 않았지만, 그의 언어를 따라가다보면 가끔 작가가 내뿜는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어떤 경우엔 그가 현대 문명에도 살아 남은 샤먼의 숨겨진 사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앞을 지나치는 모든 존재의 생겨남은 한 치의 어김 없이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는 이들 존재의 소멸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길을 잃지 않는 현대인은 어쩌면 미래에 자신의 운명을 단단히 묶어 놓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목적, 방향감각을 분명히 지니고(있다고 믿고) 나아가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또는 착각)을 의심하지 않는 미래중독자들인 셈이다. 문명인들의 모든 병은 어쩌면 이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말하는 길을 잃는 사람은 자신이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는 이들로 보인다. 이 새롭고 이질적인 감각으로 소멸을 향해 가는 우리의 존재양식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듯하다. 길을 잃은 이들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인정하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당장 자신의 한 쪽 발을 어디에 내딛을 지에만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솔닛의 글을 따라가다 책의 끝무렵 눈에 들어온 문장들이 있었다. 한 맹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 맹인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자신이 가보지 않은 낯선 곳으로 물건을 팔러 다닌다. 처음 가보는 길을 건널 때, 그는 타인의 도움을 당당하게 요청한다. 길을 잃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 중에는 바로 이런 기술 필요한 것이 아닐까. 여기서 내가 주목한 점은 나와 상대 사이에 도움을 주고 받는 행위를 의무로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필요한 하나의 원리로서 이해하는 일이었다. 맹인은 자신의 결핍()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길 잃기의 기술을 발휘하여 자존과 자유를 얻었으며, 나아가 세상과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셈이다.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도움을 구하는 행위는 아주 너그러운 행위인데 왜냐하면 남들이 우리를 돕게 하고 우리가 남들의 도움을 받게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이런 깨닫는 것도 괜찮습니다. 가끔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끔은 우리가 도움을 제공합니다. 그럴 , 적대적인 세상은 아주 다른 곳으로 변합니다. 도움이 받아들여지고 주어지는 세상이 됩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자신이 엮어낸 세상, 설득력 있고 확고한 세상이 다급하고 절박한 것이 됩니다. 너그러운 세상, 도움이 오가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엮어낸 세상을 굳이 단호하게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277)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문명은 구성원 서로를 고립시킴으로써 길을 잃게 한다. 내가 이해하기에 솔닛의 말은 우리 윗 세대에게 이미 있던 하나의 원리, 이들이 자라면서 습득하던 도움 주고 받기의 문화를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한 가지 도움을 받으면 때로는 이에 대한 보답을 하나의 의무로서 여기기도 한다. 나아가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하나의 삶의 원리로 되찾을 수 있다면 방향감각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현재 적대적인 세상이 아주 다른 곳으로 변할 것이라 말하는 솔닛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번 독서에서 작가가 말하는 길 잃기의 기술 가운데 크게 공감하게 된 부분이다. 솔닛의 통찰은 언제나 놀랍고 근사하다.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도움을 구하는 행위는 아주 너그러운 행위인데 왜냐하면 남들이 우리를 돕게 하고 우리가 남들의 도움을 받게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이런 걸 깨닫는 것도 괜찮습니다. 가끔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끔은 우리가 도움을 제공합니다. 그럴 때, 이 적대적인 세상은 아주 다른 곳으로 변합니다. 도움이 받아들여지고 주어지는 세상이 됩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자신이 엮어낸 세상, 설득력 있고 확고한 세상이 덜 다급하고 덜 절박한 것이 됩니다. 너그러운 세상, 도움이 오가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엮어낸 세상을 굳이 단호하게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2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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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7-10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베카솔닛을 문장도, 긴 머리칼과 음성도 근사하지만
작가에게서 현대 문명의 샤먼을 찾아내시는 초란공님 글이 근사합니다!
김명남 번역가님이 리베카솔닛 전문이신가봐요^^ 이런 문장들은 옮기기도 이해하기도, 공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아요^^

초란공 2023-07-11 10:42   좋아요 0 | URL
우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남 번역가는 번역도 멋진데 글도 잘쓰시더라구요. 묻지마 구입하는 번역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