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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아무 것도 물질적으로 주고받고 하지 않으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동지라고 하면서 뭔가 주고받으면 그건 계보거든요.

계보는 이해관계로 결속한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 정치인들 보면 내 공천 받을 때 저 사람이 결정적으로 나를 도와줬다,

이런 부채의식 하나가 십 년씩 따라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공천을 나는 하나도 따준 게 없고, 

우리가 도와줬던 사람들은 뭔가 빚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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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는 고스톱은 인생을 배우는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광이나 피를 최소한으로 모아야 박을 면하니까,

유비무환의 자세를 기르고 포트폴리오 투자 교육을 할 수 있죠.

자기 패가 완전히 불리할 때는 버릴 패를 절묘하게 버리면서 

쇼당 찬스를 만드는 건 위기극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다른 데서는 다 무시하는 피를 많이 모아 가지고 이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민주적인 원칙을 구현하고 있는 놀이이고,

그밖에도 장점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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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무 현

      - 고은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법고시 합격하여


암울했던 유신독재 시절

침울했던 5공독재 시절

부산항 일대의 인권의 등대가 되어


그는 항상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그는 항상 어려운 사람 편이었다.

 

국회에서 모두들 앞으로 나와 비까번쩍할 때

그는 수줍어하듯 홀로 물러나 그늘이 되었다


거짓과 위선이 득세하는 정치판에서

그는 아마 정치를 하기 어려우리라.


속에서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 진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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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기록하라 -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
박태순.황석영 외 20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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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있음.

 

 



 

[기록 문학]

이 책은 녹색평론 146호에 실린 서평을 통해 알 게 책이다. 책의 제목과 지은 사람들만 보고도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소위 기록 문학이라는 하는 르포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굵직굵직한 일들을 직접 현장에서 기록한 글이다. 이 책의 부제는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이다. 책 제목인 <민중을 기록하라>도 잘 지은 제목인데, 부제인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라는 제목도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아주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역사서는 권력자들의 움직임을 따라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그들에 의해서 국가적인 사안이 결정되는 일이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의 진보는 민중들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런 민중들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런 민중들의 운동을 기록한 이들이 이 책의 지은이들이다.

르포. 르포라고 하면 생각나는 책은 공지영의 "의자놀이"란 책이다. 그 책은 쌍용자동차 해고 사건에 대한 르포인데, 그 사건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그 동안 읽은 르포들이 어떤 것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작년에 읽었던 세월호 사건에 관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과 역시 작년에 읽었던 히로세 다카시란 사람이 쓴 <체르노빌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번에 읽은 <민중을 기록하라>의 머리말에 외국의 유명한 르포에 관한 책들도 여럿 소개해 주었는데, 그 책들 중에 읽은 책도 있었다. 그 책은 바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그저 고전 문학으로 읽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책도 르포라고 할 수 있겠다. 지은이 조지 오웰이 직접 전쟁이 참여하면서 그 전쟁에 대한 기록을 세세히 남긴 글이니까 말이다.

 

[민중의 역사]

암튼, 이번에 읽은 <민중을 기록하라>. 이 책은 그 두께와 무게만큼 책의 내용 또한 진중하고 강한 가슴과 머리에 울림을 주었다. 명저(名著). 이 책을 보고 크게 느낀 바는 역사를 진보하기 위해서는 민중들이 큰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60, 70년대 노동 운동, 80년대 민주화 운동 모두가 결국 민중들의 큰 움직임, 그리고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역사가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오늘날을 생각해봤다. 권력은 권력을 이용하여 국민들로부터 자유를 빼앗는 등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있지만, 옛날과 달리 민중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다들 가만히 있는다. 물론 몇몇은 움직인다. 그리고 같이 움직이자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다들 가만히 있는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민중들은 사회부조리에 큰 움직임이 없다. 무엇이든 수긍하는 자세. 갑자기 이해심이 많아지셨는가? 그래서 오늘날 역사는 진보하지 못하고 퇴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최근의 르포는 민중들의 큰 흐름에 관한 기록이 아니고 사건 중심의 기록이다. 대부분 정상적인 국가라면 일어나지 말아야 사건들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

오늘날 우리가 이런 사회에서 살게 된 것은 앞 세대 민중들의 일구어놓은 것이 크다. 그들이 자갈길 같은 우리나라 시스템을 시멘트 길 같은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세대는 빚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갚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날의 모순을 바로 잡아야 한다. 시멘트 길을 고속도로로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바꾸기 어렵다면 그것을 바꾸려는 사람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 오늘날 가장 큰 모순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핵발전소와 그에 따른 방사능이다. 이 책을 펴기 전에 이 책에서 탈핵에 대한 르포가 있었으면 바랬는데,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 미래에,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핵발전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핵발전소를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소수의 시민 단체나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만의 목소리는 너무 작다. 좀 더 많은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갖게 되고, 다 같이 힘을 모아 소리를 질러야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쉽지 않다. 핵발전소를 없애기는커녕 늘리려고만 한다. 핵발전소에 찬성하는 정당이 압도적인 일등을 하고 있다. 다가오는 하나의 선거를 앞두고 있다. 탈핵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지만, 결과는 벌써 눈에 보이듯 뻔하다. 너무 암울하다.

올해 선거로 인해 2주기가 되는 세월호 사건도 묻히게 될 것 같다. 점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세월호 사건. 하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세월호 사건에 대한 르포는 싣지 않고 정우영이란 분의 시로 대신했다. 슬프다. 아직도 이런 모순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희망이 잘 안 보인다는 것에 더욱 슬프다.

...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는 맞지만 모두 지나간 것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읽을 때는 오늘 아침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글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많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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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언제부터 한국인은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들로 되어버렸을까.

나는 자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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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이라는 글쓴이의 비판에 나도 자유롭지 못하고 불편했다. 사실 나 또한 바쁜 회사 생활을 핑계로, 그리고 개인적인 성격의 이유 등으로 지금의 자리에 불편한 안주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작가의 역할]

이 책의 실린 글들의 지은이는 대부분 소설가나 시인이다. 그래서 글들은 참 쉽게 읽혀진다. 공지영, 김남일, 이원규, 안재성 등 좋아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반가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르포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새삼 놀랐다. 그러면서 이런 르포들은 어디서 접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책 마지막에 이 책의 출처들이 적혀 있었다. 문학계간지 등 문학잡지에 실렸던 글들이 많았다. 최근 문학관련 잡지를 하나 구독을 해볼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들었다.

2009년 용산에서 자신들의 집과 가게를 지켜려다가 공권력에 의해 목숨들을 잃은,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한 르포를 실으면서 당시 작가들이 한 선언을 실었다. 그 선언이야말로 시대를 대하는 작가들의 역할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던 산소 같은 작가의 자세. 이런 작가들이 있다면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의 선언이 작가 뿐만 아닌 모든 민중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희망은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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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의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 200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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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수정하여 작성함.

(39쪽)
언제부터 한국인은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들로 되어버렸을까.
나는 자책감을 느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아래의 근로자들로부터 위로 솟구쳐 올라가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편의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듯한 노동운동이 되고 있어요.
이래서는 되지 않습니다.
근로자들이 밑에서부터 자기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며,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학생들이 근로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여튼 전태일 씨의 분신자살은 획기적인 살신성인의 의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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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쪽)

언제부터 한국인은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들로 되어버렸을까.

나는 자책감을 느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아래의 근로자들로부터 위로 솟구쳐 올라가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편의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듯한 노동운동이 되고 있어요.

이래서는 되지 않습니다. 

근로자들이 밑에서부터 자기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며,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학생들이 근로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여튼 전태일 씨의 분신자살은 획기적인 살신성인의 의거입니다."




(163쪽)

이 글은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조그마한 행복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제약이 부당하게 가해져서도 안 되며,

그것을 파괴하는 어떤 행위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고도로 분화된 산업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과심을 자기 자신의 문제,

즉 개인의 문제로만 수렴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울타리를 정해 놓고 그 속에서 안주하며 

이웃들에게 눈 돌릴 겨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와 같은 굴레의 연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누구이며,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소홀하기 쉽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전달매체의 다양한 분화와 발달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생각들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 매체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생각은 접하기가 쉽지 않다.

혹 그것들이 표현된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제약이나 전달자들의 의도에 가려

참모습이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 또한 없지 않다.

개개인의 삶의 과정들이 한데 모여 드러나는 총체적 현상을 우리는 문화라고 이름 짓는다.

나날의 삶이 시간 속에 무르녹아 역사의 부분을 이루는 이 문화엔,

그 가운데 사실의 기록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과 드러나 있지 않는 부분이 공존한다.

실제로 드러나 있지 않은 부분 속에 더 많은 삶의 애환들이 담겨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53쪽)

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의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수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 2009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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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가격으로 보급판이 전격적으로 출간되어

...

뒤도 안보고 질렀다.

..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의 진한 감동이

이어지길 바라며...

...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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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
영화 '']

이 소설은 두어 달 전에 영화 예고편으로 알게 된 책이다. 소재가 독특한 영화라서, 그 영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원작 소설이 있었다. 요즘 영화보기가 쉽지 않아서, 책으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엠마 도노휴라는 아일랜드 사람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이 소설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했는데, 자신의 친딸을 밀실에 24년간 가두면서 폭행과 나쁜 짓을 한 사건이라고 한다. 소설보다  실재 사건이 더 잔인하고 무서운 사건이었다. 이렇듯 요즘 세상에는 소설보다 더 무서운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연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이제 그런 무서운 일들이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이 과연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환경도 날이 갈수록 나빠진다. 그저 과학기술만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이 더 나아지는 세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암튼, 그런 모티브로 소설을 썼다고 해서, 평범한 범죄 소설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고, 영화로까지 만든 것 같다.

아참! 이 영화에서 엄마 역할을 했던 브리 라슨라는 배우는 얼마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영화가 된 것 같다. 나도 언제가는 꼭 봐야겠다.

 

[잭의 세상]

소설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 잭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가 바로 다섯 살 잭이다. 영화 예고편을 보지 않았다면, 잭이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예고편을 봐서잭이 조그마한 방에 엄마와 갇혀 있다는 것을 금방 이해했고, 잭이 이야기하는 것을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읽는 이들은 ?’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그들은 그 조그마한 방에 갇혔는가? 그 궁금증으로 책에 더욱 몰입하게 되고, 그 이유를 알게 되고는 분노하게 된다.

7년 전.... 7년 전 잭의 엄마는 대학교 1학년의 어여쁜 학생이었다. 물론 그때 잭은 태어나기 전이다. 올드 닉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개가 잘못되었다면서 도와달라고 해서 사정을 하는 바람에, 그의 차를 탔는데, 그 이후로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조그마한 방이었던 것이다. 그 방은 사방이 박혀 있었고벽은 납으로 되어 있어 완벽한 방음이 되었고철문으로 잠겨 있었다. 창문도 천장에 달려 있는 창이 하나가 전부였다. 천장에 있는 조그마한 천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바깥 세상은 그 네모로 보이는 하늘이 전부였다. 그녀는 몇 번 탈출을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 방법이 없었다.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고밤마다 형광등을 껐다켰다해서 빛을 이용해서 자신을 알리려고 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녀는 왜 갇혔을까? 그녀를 가둔 올드 닉이 싸이코인 이유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전에 그를 알고 지낸 것도 아니다. 그녀를 가둔 이유는 그녀의 생명을 담보로 그녀를 강간하려는 이유가 전부였다. 그 잔인한 이유로 그녀의 자유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반항을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올드 닉의 아이까지 갖게 되었고, 이내 유산을 하였다. 그 조그마한 방에서 아이 낳는 것이 쉽겠는가. 그런데, 다시 임신하게 되었고, 그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잭이다. 그 조그마한 방에서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것도 범죄자의 아이를하지만, 엄마는 잭을 무척 사랑했다. 오랜 감금생활과 폭행을 견디게 해줄 수 있는 힘이었고, 희망이었고, 행복이었다. 잭은 엄마에게 모든 것이었다. 그 오랜 세월 그 좁은 방에서 갇혀 지내면서 미치지 않은 것도 잭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잭에게도 엄마가 전부였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그 방을 나가본 적이 없다. 잭에게는 그곳이 곧 세상이었다. 그는 외롭지 않았다. 엄마가 있었고, 화분이 있었고, 침대가 있었고, 싱크대가 있었고, 벽장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잭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 방에는 공중파 몇 개가 나오는 TV와 최소한의 가구와 용품이 있었고, 그리고 일요일마다 꼭 필요한 만큼의 생필품을 범죄자가 가져다 주었다.

잭은 다섯 살이 되면서 호기심이 많아졌다. 우리 둘째가 다섯 살인데, 호기심 대장이다. 우리 아이들이랑 잭의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소설에 더욱 집중을 한 것 같다. 잭의 행동 하나하나에 우리 아이들의 행동을 떠올리기도 했다. 잭의 궁금증은 엄마가 해결해주었다. 엄마는 잭에게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을 많이 알려주었다. 잭은 글도 잘 읽었다. 잭은 누구 못지 않게 행복한 아이였다. 그만큼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올드 닉은 가끔씩 밤에 찾아왔고, 그러면 잭은 벽장 안에 숨어서 삐그덕거리는 침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가 가고 나서야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었다.

...

 

[탈주]

엄마는 어느 날 범죄자에게 대들었다가 벌을 받았단다. 올드 닉이 방에 들어오는 전기를 끊어버린 것이다. 냉장고 음식도 상해가고, 난방이 안되어 무척 추웠다. 엄마는 이때 다시 한번 탈주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잭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엄마는 잭이 모르고 있던 바깥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진짜 세상 말이다. 이 좁은 방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이다. 갇히게 된 이유도 해주었다. 잭은 혼란스러웠다. TV속의 세상은 모두 가짜이고, 이 좁은 방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잭은 바깥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했다. 엄마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잭에게 탈주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고잭은 결국 엄마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계획은 이랬다. 엄마는 잭에게 아픈 척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올드 닉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할 것이고, 병원에 도착하면 소리쳐서 살려달라고, 경찰을 만나라고 이야기했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은 잭은 싫다고 했다. 무섭다고 했다. 정말 무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고, 엄마가 그렇게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잭은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 종일 아픈 연기를 했다. 그리고 올드 닉이 왔다. 하지만, 그는 안 된다고 했다. 그냥 그들을 두고 올드 닉은 돌아갔다.

엄마도 예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로 두번째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진짜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죽은 척하기. 어제 조치를 안 취해서 결국 잭이 죽었다고 올드 닉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잭을 데리고 갈 거라고... 그때 소리지르면서 도망가라고... 경찰을 만나라고... 이것은 아픈 척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엄마는 양탄자에 잭을 돌돌 말고, 악취가 나게 만들었다. 최대한 시체와 비슷한 냄새를 나려고 말이다. 더러워서 올드 닉이 시신 확인을 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잭은 무서워서 못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바깥세상을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양탄자 속에서 죽은 척하는 연습을 하고, 돌돌 만 양탄자에서 빠져나오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 엄마는 어제 병원에 가지 않아서 결국 잭이 죽었다면서 울부짖는 연기를 했다. 올드 닉이 속아서 당황을 했다. 그리고 빨리 시체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잭을 데리고 갔다. 양탄자에 싼 채로 트럭 뒤에 실었다. 돌돌 만 양탄자에서 빠져나와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간신히 빠져왔는데, 올드 닉이 알아차렸다. 잭은 도망을 갔지만, 이내 올드 닉에게 잡혔다. 그런데, 다행히 이 장면을 산책하던 어떤 아저씨가 모두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 아저씨가 질문을 던지자 당황한 올드 닉은 잭을 버리고 혼자 도망을 갔다. 그 아저씨가 경찰을 불러주었고, 드디어 잭은 드디어 경찰을 만났다. 그보다 잭은 드디어 진짜 세상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경잘에게 상황을 이야기해서 경찰은 엄마가 갇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리고 엄마와 다시 만났다. 드디어 그들은 그 길고 긴 감금생활에서 벗어난 것이다.

 

[진짜 세상] 

한편, 그들을 가두었던 올드 닉은 경찰에 잡혀서 철창신세가 되었다. 다른 범죄 소설이었다면 올드 닉의 재판 현장과 그 사건의 진실을 캐는 것을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태어나자마자 5년 동안 감금되었다가 진짜 세상에 나온 다섯 살 잭이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인 것이고, 읽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적시는 것이다.

그들은 탈출했지만,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사회와 시스템은 그들은 치료의 목적이라며 정신병원에 머물게 하고 이런저런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을 환자 취급을 당하고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엄마는 그런 것들이 화가 났다.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절차라고 했다. 병원의 태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상황을 왜곡하고 자극적인 TV 보도를 했던 것이다. 잭은 이 진짜 세상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자극,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것이다. 심지어 계단도 그에게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서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와 둘만 있었던 그 방을 그리워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엄마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와 삼촌 등 엄마의 가족들과도 만났다. 엄마가 감금해 있는 동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혼을 해서 할아버지는 호주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레오라는 새로운 사람과 같이 살고 있었다. 할어버지도 엄마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호주에서 만나러 왔지만, 범인의 아들인 잭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곧 돌아갔다. 잭과 엄마는 계속 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절차라는 이유로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엄마는 TV 인터뷰도 하게 되었는데, 언론 기자들은 잔인하고 악의적인 질문만 해댔다. 엄마는 제발 그냥 우리를 놔두라고 하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장면을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열을 내며 촬영도 하고, 플래시가 더욱 많이 터졌다. 이런 언론의 모습이 소설 속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안타깝다. 나쁜 사람들...

엄마는 그 일이 있고 많은 약을 먹었다.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엄마가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엄마는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았고. 잭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굿바이]

잭은 할머니와 새할아버지 레오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잭은 엄마를 그리워하고, 가끔 엄마와 함께 있던 방을 그리워했다. 할머니는 잭을 보살폈지만갑자기 생긴 진짜 세상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다섯 살 손자는 할머니에게도 낯설었다. 잭에게 가끔씩 화를 내기도 했다. 오히려 그의 새할아버지가 잭을 잘 보살펴주었다. 다행히 엄마가 의식이 돌아와서 전화 통화를 하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엄마는 돌아왔다. 잭이 엄마를 다시 만나서 안정을 취하는 듯했지만, 하지만, 여전히 잭은 새로운 진짜 세상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와 둘이 지냈던 그 방을 몹시 그리워했다. 잭에게 있어 그 방에서는 행복이 대부분이었는데, ‘진짜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섭기도 하고잭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그 방을 몹시 그리워해서 엄마는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그 방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방은 예전에 행복만 가득했던 그 방이 아니었다. 그래도 잭은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방 안의 침대, 싱크대, 세면대 등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씽크대, 안녕 벽, 안녕 침대, 안녕 바닥...

그래, 잭은 그 방을 나오면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세상에 적응이 어려웠던 것이다. 소설은 여기서 끝났지만, 이 소설을 읽은 이들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앞으로 잭은 진짜 세상에 잘 적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될 거라고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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