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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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댓글]

이 책은 제목만 봐도 무엇을 소재로 했는지 알 수 있는 소설이다. 댓글부대는 지난 대선 때 특정 후보의 기사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았던 국가기관을 빗대 부르는 말이다. 세금을 받고 일하는 국가기관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격분을 했던 그 사건. 그 이후 그런 일들이 사라졌을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댓글부대의 활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바로 그 때 그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이 소설이 신간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소설의 내용보다 도대체 이런 무서운 시대에 저런 용감무쌍한 제목을 지은 지은이가 더 궁금했다. 장강명.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문학상을 많이 받은 사람이고, 그의 소설들은 우리나라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린 소설들이 많았다. 이번에 읽은 소설 <댓글부대>도 그런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처럼 시대를 이야기하는그래서 소설로나마 많은 이들의 이 사회의 부조리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온라인마케팅 업체]

-알렙은 온라인마케팅 업체다. 명목상…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그들이 하는 일은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다. 먼저 의뢰를 받는다. 의뢰의 종류는 개인적인 원한부터 경쟁업체의 이미지 죽이기, 반대로 자사의 이미지 개선 등이 있다. 그럼 팀-알렙은 치밀한 전략을 거쳐 간단히 할 수 있는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거나, 어떤 커뮤니티에 회원 가입을 해서 아무도 모르게 분란을 일으키는 등의 방법을 사용을 했다. 그리고 임무를 완수하면 돈을 받는다. -알렙의 멤버들은 전략 담당인 삼궁’, 작문을 주로 하는 찻탓캇’, 그리고 기술을 담당하는 ‘0110’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고, 돈을 받으면 공동생활비를 빼고 정확하게 삼분의 일로 나눠 가졌다. 그들 중에 주로 삼궁이 의뢰인을 만나고 가끔은 찻탓캇도 같이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의뢰를 하는 이들 중에 합포회로 알려져 있는 단체가 있다. 그들도 신분을 숨기기 때문에, -알렙 멤버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합포회 멤버들도 서로 본부장, 팀장, 대리, 사원으로 부르고 한 사람만 이철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그것도 분명 가명일 거라고 생각했다. 합포회가 팀-알렙에게 한 첫번째 의뢰는 대기업의 폐해를 고발하는 어떤 영화의 흥행을 실패하도록 여론을 조성하라는 것이었는데, -알렙은 아주 성공적으로 일을 해냈다.

그래서 곧바로 또 다른 의뢰를 받았다. 이번에는 폐쇄적이지만 진보성향의 커뮤니티를 없애라는 것이다. -알렙에게 이 정도는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커뮤니티에 가입을 해서 회원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와해시키거나 둘로 쪼개지게 만들었다.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해내자, 합포회는 그들에게 더 큰 제안을 했다. 물론 그들에게 떨어지는 돈도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금액이었다. 이번에도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동일한데, 그 규모가 달랐다. 진보성향의 아줌마들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커뮤니티가 그 목표물이다. 그들은 유모차 부대 등 사회의 각종 이슈를 만들어낼 정도로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다. 그리고 그들은 자체 검열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어서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합포회에서 가상의 인물을 지원해 주었다. 이 가상의 인물은 실체가 없지만, 주민등록번호는 완벽하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래서 팀-알렙은 합포회가 국정원과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렙은 그 가상의 인물을 이용하여 작전을 폈다. 그 가상의 인물이 그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일베’ 게시판에 올렸다. 그리고 슬며시 그 사실을 커뮤니티에 알렸다. 커뮤니티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가상의 인물에 대해 비판의 글들을 올렸다. 함정을 만들어 놓았는데, 완벽하게 빠져든 것이다. 가상의 인물과 그의 남편 역할을 맡은 ‘0110’에게 온갖 비방과 욕설이 쏟아졌다. 일부러 ‘0110’의 전화번호도 공개했는데, 그 전화번호로도 비방과 욕설이 쏟아졌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캡쳐하고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로 그 커뮤니티의 많은 회원들을 고소했다. 그것도 밀양경찰서에고소 당한 사람들은 밀양경찰서까지 출두해야만 했다. 아니면 합의를 해야만 했다이 사건 이후로 이 커뮤니티는 풍비박산 났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렸다.

 

[배신 속의 배신]

합포회는 팀-알렙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삼궁을 따로 데리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순간 삼궁은 긴장했다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없애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를 데려간 그곳에는 어떤 나이 많은 대기업 회장이 있었다. 지금까지 합포회에서 의뢰한 것은 모두 그가 뒤에서 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저 그런 진보성향의 커뮤니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리고는 또다른 의뢰를 했다. 이번에는 정말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었다. 그 대기업 회장은 젊은이들이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십대들의 성향을 보수 성향을 갖게 하는 일을 해보라고 했다. 돈은 얼마든지 지원해준다고 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삼궁을 비롯한 팀-알렙은 전략을 짰다. 그리고 캠페인들을 벌이기로 했다. 그 캠페인을 통해 은연 중에 진보 진영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에 반대되는 것을 합리화하였다. 그로 인해 그들에게 보수 성향을 심어주려는 계획이었다. 십대들이 쉽게 관심 가질 만한 것들로 이용했고, 그들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캠페인은 안전사고 등으로 인해 여러 목숨을 잃는 일도 일어났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찻탓캇이 팀-알렙을 배신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하는 일들로 인해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진 것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들이 해온 일을 진보 성향을 띤 신문의 기자인 임상진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배신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해 그는 비밀 유지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찻탓캇은 자신이 본 얼굴 중에 한 명이 경제단체의 임원이라고 알려주었다. 임상진은 특종이라고 해서, 그 인터뷰를 기사화하려고 했지만, 편집부에서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그 제보가 정확한지 신중을 기하자고 했다. ‘찻탓캇이 지목한 사람에게 접근을 하려고 하자, 그가 잠적해버린 것을 보고 그 신문사는 그 제보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기사를 싣기로 했다. 정부, 대기업에서 밀어주는 합포회의 정체가 온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기사가 나오고, 곧바로 관련인으로 지목 당한 경제 단체의 임원은 반박을 하고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잠적한 것이 아니고, 그냥 우연히 전화를 받지 못할 피치 못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에 나오는 내용들이 실제와 다르다는 반대 제보가 나오기 시작했고, 기사에 언급된 인물들이 직접 연락을 해와서 기사와 다르다고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기사를 쓴 임상진을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찻탓캇에게 연락을 해보려고 했으나 연락두절이다. 임상진은 이 일로 신문사에서 상벌위원회가 열렸고, 좌천당했고, 그리고 그 진보성향의 신문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었다. 이것은 팀-알렙의 작전이었다. 진보신문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기 위한 또 다른 작전. 자신들의 얼굴까지 공개하면서까지 위험부담이 있던 작전. ‘찻탓캇은 당분간 중국으로 밀입국하여 몸을 숨기기로 했다. ‘찻탓캇은 술집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여인과 함께 가려고 했지만그녀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혼자 밀입국을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바다 한가운데로 가면 그곳에서 그를 싣고 갈 중국배가 기다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약간은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뱃사공이 찻탓캇을 죽이고 바다에 수장시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찻탓캇은 죽으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 일은 물론 합포회에서 한 짓이었다. 다른 팀-알렙의 멤버들을 모르게 한 일이다. 합포회는 팀-알렙의 리더격인 삼궁은 몇 년 더 이용해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삼궁을 비롯한 팀-알렙은 자신들이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돈의 권력에 의해 사라지게 될 피라미였던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끝났는데한가지 궁금한 부분이 있다. ‘찻탓캇이 가명을 쓰면서 철저하게 자기의 신상을 숨기면서 일을 했는데, 굳이 중국을 밀입국해서 가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가 밀입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있었는데, 내가 놓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여론을 바꾸기 위해 굳이 이런 댓글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 방법이 아니어도 충분히 여론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말이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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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은 말한다. 

"의가에서 남북의 명칭이 있어 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에 치우쳐 있으나 의약의 도는 면면히 이어졌으니

우리나라의 의학교 '동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천하의 중심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세계' 그 자체였다.

중국의 북쪽과 남쪽은 도저히 같은 나라라고 하기엔 기후와 음식이 너무 달랐다.

당연히 체질과 질병 및 치법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북의와 남의의 전통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 역시 동쪽을 담당해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동의라는 명칭에는 북의와 남의에 견줄 만한 

또 하나의 일가를 이루겠다는 야심찬 안목이 깔려 있는 셈이다.

아, 그렇다고 여기에 민족주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당시 세계는 중화문명권이었고, 의학의 목표란 어디까지나

보편지의 추구에 있었지 조선적 특성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한편 '보감'은 거울에 비친 듯 명료하다는 의미다.

"거울에 만물을 밝게 비추어 형체를 놓치지 아니"한다.

하여, "환자가 책을 펼쳐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에 비친 듯이 명확하니

함부로 치료하여 요절하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문장의 주어가 의사가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이다.

즉, 아픈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동의보감'은 최고의 지성을 집대성해 놓았지만,

결코 전문가나 고급 인텔리들만을 위한 저서가 아니었다.(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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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하늘에 육극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육부가 있고,

하늘에 팔풍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팔절이 있다.

하늘에 구성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구규가 있고,

하늘에 십이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십이경맥이 있다.

하늘에 이십사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24개의 수혈이 있고,

하늘에 365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365개의 골절이 있다.

<내경편>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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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단 이쯤해서 정리를 해보자.

정(精)은 생명의 기초를 이루는 물질적 토대를 의미한다.

기(氣)는 이 질료를 움직이는 에너지다.

그리고 신(神)은 정기의 흐름에 벡터를 부여하는 컨트롤러 역할을 한다.

이 셋은 서로 맞물로 돌아가면서 변전을 거듭한다.

"정(精)은 신(神)을 낳고 신은 정(精)을 기른다.

서로가 서로를 낳는 이 기묘한 관계. 

그런데 이 둘의 관계를 적절하게 연결해 주는 매개체, 그것이 바로 기(氣)다.

정(精)과 신(神)을 생성한 기(氣)가 다시 정(精)과 신을 매개한다.

이로써 기(氣)는 정(精)과 신(神)의 모태이면서 동시에 정(精)과 신(神)을 매개하는 실제적인 에너지로 작동한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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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 병은 기에서 생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내면 기가 거슬러 오르고, 기뻐하면 기가 느슨해지며,

슬퍼하면 기가 사그러지고, 두려원하면 기가 내려가며,

추우면 기가 수렴되고, 열이 나면 기가 빠져나가며,

놀라면 기가 어지러워지고, 피로하면 기가 소모되며,

생각을 하면 기가 맺힙니다." (15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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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뻐하면 심이 흔들려 혈을 만들지 못한다.

갑자기 성내면 간이 상하여 혈을 간직하지 못한다.

근심이 쌓이면 폐가 상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비가 상하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이 상하는데, 이것은 모두 혈을 움직인다. 

...... 갑자기 기뻐하여 심을 상하면 기가 늘어져 심장이 피를 내보내지 못해

간은 받을 것이 없게 된다. 갑자기 성내어 간이 상하면 기가 거슬러올라 

간으로 혈이 못들어와서 피가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

또 성생활이 과도하여 음화가 끓어오르면 혈이 화를 따라 올라가

경맥을 벗어나 마구 돌아다닌다. (25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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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일상의 희로애락을 엿보게 하는 처방전들도 있다.

* 부부를 서로 아끼게 하는 방법 : 부부간에 불화가 있을 때는

원앙 고기로 국을 끓여서 몰래 먹이면 서로 아끼게 된다.

5월 5일에 뻐꾸기를 잡아 다리나 머리의 뼈를 차고 다니면

부부가 서로 아끼게 된다.

* 질투를 하지 않게 하는 방법 : 의이인, 천문동, 붉은 기장쌀을 모두

같은 양으로 가루 내고 꿀로 반죽하여 환을 만들어 남녀가 모으면

모두 질투하지 않는다. (85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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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 꿈이 없이 푹 잘 수 있을까?

"동의보감"에선 그 방법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잘 때 모로 누워 무릎을 굽히고 자면 심기를 도울 수 있다.

일어날 때 기지개를 켜면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다.

반듯하게 누워 자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낮잠을 자면 안 되는 것은 기가 빠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때는 하룻밤에 늘 5번씩 돌아누워야 한다." 

결국 침대 광고에 나오듯 똑바로 누워 자는 것은 오히려 몸에 해로운 셈이다.

하긴 아이들의 경우 자면서도 얼마나 왕성하게 움직이는가?

그런 맥락에서 "손을 가슴 위에 얹으면 가위에 눌릴 수 있다" (19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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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은 내 몸과 외부의 기운이 어긋나서 발생한다. 

따라서 그 책임은 일단 나에게 있다. 

따라서 아프다는 건 내가 내 몸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약과 의사는 도우미일 뿐, 치료는 전적으로 환자의 몫이다.

어디 병뿐이랴. 인생사 전체가 그렇지 않은가.

통과의례나 성장통, 그리고 연령별 주기마다 찾아오는 문턱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번뇌와 아픔을 겪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무망한 노릇도 없다.

미봉책으로 피하고 나면 그것은 무시무시하게 성장하여 문득 내 앞을 가로막는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마취나 진통제가 발달해도 통증 자체를 없애 버릴 수는 없다.

생명이 창조되면서 질병이 탄생했듯이, 질병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고,

동시에 통증이 없는 삶 역시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겪어야 할 건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352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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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다. 내 아이의 인생 역시 길다.

유년기와 10대의 성취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내 아이 역시 중년과 노년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의 핵심은 생로병사의 마디를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힘이다. 

무의식이나 직관, 영성, 그리고 카리스마 등이 다 거기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교육상품으로 기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일단 더 많이, 더 빨리 가르치겠다는 그 마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마음이 확 쏠리는 것을 일단 멈추는 것, 

나아가 속도 위주의 교육적 욕망과 배치를 바꾸는 것, 그게 더 일차적이다. 

일단 부모들이 먼저 그런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특히 엄마와 아이는 신체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엄마가 호흡을 길고 평화롭게 하는 공부를 한다면 

아이 또한 자연스럽게 그 리듬과 강밀도에 접속하게 된다. 

길은 그 다음에 절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여, 느긋하게 기다리시라. 

큰 그릇은 천천히, 늦게 이루어지는 법이니. (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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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임금이고 혈(血)은 신하이고 기(氣)는 백성이니, 

몸을 다스릴 줄 알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백성을 아끼면 나라가 편안해지듯이 기가 고갈되면 사람은 죽는다.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고 망한 나라는 보전할 수 없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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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나는 희생되는 거죠. 남에게 충분히 희생을 당하고 돌을 맞아도 할 수 있는 게 사랑이거든요.
스스로 돌아보세요. 이렇게 죽이고 싶도록 누군가를 미워한 적 없었죠?
그러니 사랑도 못하는 거예요. 사랑과 미움은 같은 감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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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자전거 배우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몇 번 넘어져요.
지금 이분은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자건거를 안 타는 거예요. 
그러면 영원히 자전거 못 배워요. 영원히 사랑 못 해요.
어떩하려고 그래요? 지금 빨리, 이번 달 안에 넘어져야 해요.
빨리빨리 넘어져야 해요. 한 번만 넘어지면 별 거 아니란 걸 알아요.
넘어져 보신 분들은 알죠? 넘어졌을 때는 죽을 것  같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한 달 가요? 일 년 가나요? 안 가요. 
겁이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넘어져요.
자전거 탈 때 넘어질 걸 생각하면 넘어지요.
'에이 씨, 그냥 간다' 이런 생각으로 쭉 가세요.
그러면 자전거를 잘 타게 돼요. 자전거를 타려면 넘어지는 게 무섭지 않다는 걸 배워야 하는데,
그걸 배우는 좋은 방법은 너머져 보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그게 무서워서 안 넘어지면, 자전거 위에 목 올라가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는 자신이 안해 본 걸 무서워해요. 가 보면 별거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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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요령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거예요.
'나중에 사랑이 아니면 어쩌지?' 이런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생각하면 사랑 못 해요. 하나만 따져요. 감정에 정직했느냐만.
내가 가진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죠.
하지만 사랑이라고 느꼈으면 정직하게 하고, 아니라는 게 확인될 때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이게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그것만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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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정직해져요. 
내가 거짓이고 허영이 많아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의 그 모습을 다 얘기해 주게 됩니다.
진짜료 사랑을 하게 되면 다 얘기를 해요.
자기 상처, 흉터를 모두 보여 주는 거예요. 
왜냐면 자기를 다 보여 주고 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죠.
그걸 숨기게 되면 평생 연기를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은 본인에게 약점을 보이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본인의 과거를 부정하는 남자랑 왜 만나요? 만날 이유가 없죠. 만나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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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몸과 정신은 함께 갑니다. 
정신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면, 몸 상태도 상당히 안 좋은 거예요.
정신적 문제를 몸과 나누어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의 몸과 정신은 하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무언가를 의심하거나 우울한 증세가 있다면,
일차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해결을 할 수 있어요.
강건하게 운동을 하면 100퍼센트 해결이 되죠. 어렵지 않아요.
정신에 문제가 생기면 몸에, 몸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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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이게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여러분은 결정을 못 해요, 평생.
그러니까 결정을 하고, 거기서 실패도 하고, 또 거기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또 새롭게 결정하고, 거기서 다시 배우는 겁니다.
삶은 헬리콥터로 정상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힘들여 정상에 오르는 데 묘미가 있으니까요.
미래에 대해서 자꾸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하는 거는 여러분이 비겁하다는 얘기밖에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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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상처받을 걸 자꾸 생각하면, 지금 해야 될 걸 못합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공포를 크게 만들어서, 현재 해야 할 것을 안 하게 하는 기발한 상상력의 귀재들이거든요.
좀 불안할 것 같으면 '미래에 힘들 거야'라는 생각을 엄청 크게 해서,
이 생각이 충분이 커지면 지금 해야 할 걸 안 해요.
차라리 '난 비겁해서 못 해. 난 용기가 없어서 못 해' 이렇게 인정을 해야 되는데 그건 싫은 거죠.
마치 합리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합리적으로 머리가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죠.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해요.
해야만 했던 것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 자기의 삶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진짜 힘든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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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사랑 앞에서 머리까지 발끝까지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만, 우리는 단지 그것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니까요.
그리는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사이'는 물론 들뢰즈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차이'이겠고,
바디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둘'로도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제 우리는 압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
나아가 그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도 막을 수 없는 것을.
그래서 하염없이 우리는 기다리는 겁니다.
상대방도 그렇게 자신을 바꿀 수 있을 때까지요.
물론 내가 내민 손을 상대방이 잡아 주었을 때,
우리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요. 
그는 언제든지 잡았던 손을 뺄 수 있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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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같이 읽기]

이 책을 읽기 직전에 강헌의 <명리>를 읽었다. <명리>를 읽으면서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란 책이 생각났다. <명리>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았고, 그리고 <명리>에서 읽은 내용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내어 읽었다. 강헌의 <명리>와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연달아 읽었더니, 명리를 이해하는 데 더 좋았던 것 같다. 잘했다 싶다. 내침김에 명리에 관한 또 읽어볼까? 강헌의 <명리>에서 여러 번 소개한 <조용헌의 명리사주학 이야기>를 읽어볼까?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서도 음양오행과 명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강헌의 <명리>에서는 원국에 대해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실전편이라고 하면, 이번에 읽은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명리와 사주팔자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리뷰는 바로 직전에 읽은 강헌의 <명리>를 읽고 쓴 리뷰에 나온 내용과 겹치는 내용은 생략했다.

[내가 곧 우주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강헌, 인문학자인 고미숙.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 명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명리가 홀대 받는 경향이 있는데, 지은이 고미숙은 그 이유를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찾았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의 시각으로 다른 지역의 문화를 타자와, 하위주체화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문화와 가치관을 받아들인 동양에서 오랫동안 중시 여겨왔던 것을 무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행(五行)목화토금수‘목’은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고, 계절로는 봄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슨 일을 시작하면서 木처럼 해야 하는데火처럼 하는 경우가 있다. 형식에만 너무 집착하고, 소리만 요란한 시작.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가버린 그런 것.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모든 일은 순리가 있는 법. 오행이 이런 삶의 교훈도 알려주고 있다. 무슨 일을 마음먹고 시작할 때, 이 말을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끗발이 개끗발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고미숙은 사주 뿐만 아니라 관상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주는 시간적 관찰이고, 관상은 공간적 관찰이라고 하면서, 사주가 관상이고, 관상이 곧 사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주와 관상은 곧 나의 생로병사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동양의학에서 관상과 사주는 필수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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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삶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고로, 나를 아는 것이 곧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렇듯 인생과 우주, 미시와 거시가 중첩, 교차되다 보니 음양오행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앎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풍수지리와 관상, 의학과 사주명리, 기문둔답과 매화역수 등등. 특히 동양의학을 하려면 관상과 사주명리는 필수적이다. 이 둘은 몸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사주명리는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평생의 운을 읽어내는 것이고 관상은 얼굴에 드러나 있는 운명의 지도를 읽는 것이다오장육부의 기운적 배치는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고 그 얼굴에 드러난 기운에 따라 일생의 리듬을 밟아 간다는 것이 기본원리이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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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역과 명리를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어서, 누군가 주역과 명리의 차이가 뭐냐고 물어보면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역은 사건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고, 명리는 인생 전체의 지도를 보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주 명리가 철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명리라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철학도 내가 알기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을 한다. 그러니 명리와 철학은 형제와 같은 관계인 것이다.

 가끔 혁명이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나를 희생하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를 희생하면서 바꾸는 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내가 곧 우주이고, 자연이 곧 나의 연장이기 때문에, 나를 희생하면 우주가 희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관계가 중요하다]

올해는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60년만에 오는 백호띠 해, 흑룡띠 해라고 떠들석한 적도 있다. 도대체 색깔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그냥 장삿속으로 갖다 붙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 해를 육십갑자를 부를 때 천간을 이루는 오행을 색깔로 표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2010년이 경인년으로 60년만에 오는 백호, 즉 하얀 호랑이띠 해라고 했고, 2012년은 임진년으로 흑룡, 즉 검은 용띠 해라고 했고, 올해는 병신년 빨간 원숭이띠 해라고 한다. 육십갑자 중에 십이지지가 나타내는 것은 띠를 나타낸다. 경인년의 ‘인’은 호랑이띠, 임진년의 ‘진’은 용띠, 병신년의 ‘신’은 원숭이띠를 나타낸다. 그리고 육십갑자의 십천간은 아래와 같이 오행과 연결이 되고, 그 오행이 의미하는 색깔도 아래와 같이 맺어진다.

, -> -> 녹색

, -> -> 빨간색

, -> -> 노란색

, -> -> 흰색

, -> -> 검정

그러니까 경인년의 ‘경’은 오행으로는 金이고, 그것은 흰색을 의미하는 것이고, 임진년의 ‘임’은 오행으로는 水이고, 색깔로는 검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병신년의 ‘병’은 오행으로 火, 색깔은 빨간색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인년은 흰색 호랑이가 되는 것이고, 임진년은 검정색 용이 되는 것이고, 올해 병신년은 붉은색 원숭이가 되는 것이다.

강헌의 <명리>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팔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간이고, 나머지 팔자들과 일간 간의 관계도 중요하다. 동양 사상에는 “관계가 존재를 우선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간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일간을 중심으로 각각의 팔자들의 관계 또한 중요한 거다. 관계의 중요성 때문에 오행의 개수보다 서로 어떤 생극적 관계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관계의 중요성은 사회생활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협력해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관계보다 개인의 능력을 더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서, 사회가 더 삭막해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는 협력보다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순행대로 살지 않아서 더 힘들고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다시 예부터 내려오는 동양사상의 중요한 가치인 “관계”를 중시 여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잠시 이야기가 나의 잡생각으로 빠져나갔는데, 다시 책 이야기를 하면, 오행은 우리 몸과도 관계를 맺는다. 이것은 <동의보감>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행과 우리 몸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 ,

- 심장, 소장,

- 비장, 위장

- , 대장

- 신장, 방광

그래서 자신이 부족한 오행과 연계되는 우리 몸의 기관에 더욱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

관계만큼 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것.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사주팔자에도 중요하다. 만약 내 사주팔자에 넘치는 것이 있으면, 줄여주어야 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보충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해주는 것이 지장간이라는 것이다. 강헌의 <명리>를 읽고 나서도 이야기했지만, 지장간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쓸 능력은 되지 못한다. 패스~~

 

 

[운명은 결국 나의 것]

운명은 숙명론이 아니다. 운명은 을 내가 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리학은 잘 운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네비게이션 같은 것이다. 그래도 아직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길이 있어도 자신이 더 자신있는 길이 있다면 그쪽으로 핸들을 틀면 된다. 결국 그 길의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나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말을 잘 따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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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주명리학을 말하면 숙명론이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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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팔자를 고치고 싶다면,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깨달음은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이 아니라,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고, 지혜는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팔자를 바꾸고 싶다면 지혜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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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정보는 소유와 축적의 대상이지만 지혜는 깨달음의 영역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다' '도달하다'의 합성어다. 낡은 사유의 지평을 깨고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히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앎과 몸 사이의 '간극'이 없어야 한다. 간극이 없으면 깨닫게 되고 깨달음이 있으면 간극이 줄어든다. 고로,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곧 지혜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이, 지혜에 대한 열정이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다! 팔자를 고치고 싶은가? 그럼 가장 먼저 지혜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용신이 무엇인지 절로 드러나게 될 터이니.(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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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삶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고로, 나를 아는 것이 곧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렇듯 인생과 우주, 미시와 거시가 중첩, 교차되다 보니 음양오행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앎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풍수지리와 관상, 의학과 사주명리, 기문둔답과 매화역수 등등. 특히 동양의학을 하려면 관상과 사주명리는 필수적이다. 이 둘은 몸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사주명리는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평생의 운을 읽어내는 것이고 관상은 얼굴에 드러나 있는 운명의 지도를 읽는 것이다. 오장육부의 기운적 배치는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고 그 얼굴에 드러난 기운에 따라 일생의 리듬을 밟아 간다는 것이 기본원리이다.(49쪽)

보통 사주명리학을 말하면 숙명론이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127쪽)

지식과 정보는 소유와 축적의 대상이지만 지혜는 깨달음의 영역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다`와 `도달하다`의 합성어다. 낡은 사유의 지평을 깨고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히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앎과 몸 사이의 `간극`이 없어야 한다. 간극이 없으면 깨닫게 되고 깨달음이 있으면 간극이 줄어든다. 고로,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곧 지혜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이, 지혜에 대한 열정이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다! 팔자를 고치고 싶은가? 그럼 가장 먼저 지혜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용신이 무엇인지 절로 드러나게 될 터이니.(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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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쪽)

출발부터 형식에 집착하면 그건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가버린 겨이다.

여름은 화려하다. 안으로 응축했던 열정들이 다 바깥으로 분출되는 단계다.

그래서 속은 비어 버린다. 속빈 강정!

겉은 눈부시지만 안은 탁하다. 

조직은 비대해지고 명성은 높아지는데 그 안에 있는 개인들은 더 이상 고양되지 못하는 단계가 여기에 해당한다.(39)


(49쪽)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삶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고로, 나를 아는 것이 곧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렇듯 인생과 우주, 미시와 거시가 중첩, 교차되다 보니 ㅇ
음양오행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앎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풍수지리와 관상, 의학과 사주명리, 기문둔답과 매화역수 등등.
특히 동양의학을 하려면 관상과 사주명리는 필수적이다.
이 둘은 몸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사주명리는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평생의 운을 읽어내는 것이고
관상은 얼굴에 드러나 있는 운명의 지도를 읽는 것이다. 
오장육부의 기운적 배치는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고
그 얼굴에 드러난 기운에 따라 일생의 리듬을 밟아 간다는 것이 기본원리이다.

(127쪽)
보통 사주명리학을 말하면 숙명론이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250쪽)
지식과 정보는 소유와 축적의 대상이지만 지혜는 깨달음의 영역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다'와 '도달하다'의 합성어다.
낡은 사유의 지평을 깨고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히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앎과 몸 사이의 '간극'이 없어야 한다.
간극이 없으면 깨닫게 되고 깨달음이 있으면 간극이 줄어든다.
고로,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곧 지혜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이, 지혜에 대한 열정이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다!
팔자를 고치고 싶은가?
그럼 가장 먼저 지혜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용신이 무엇인지 절로 드러나게 될 터이니.(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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