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졸지 모른다 문학동네 동시집 92
김개미 지음, 고마쭈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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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입학이라는 관문을 넘어가는 꼬맹이에게 선물한 책, 김개미 작가님 그림 솜씨 무엇! 반했습니다. 어린이도 어른들을 오해(?)하는 면이 많지만, 어른들은 어린이 시절을 겪었음에도, 어린이를 모르고 오해를 많이 합니다. 다 잊었기 때문일까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어른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어린이의 이미지, 짐작들, 투영된 기대들, 바라는 사항들이 아닌, 어린이들의 모습과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특히 더 놀랍고 인상적입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바사삭... 내가 쌓아온 편견과 기대가 바스라지고, 오래 전 어린이였던 기억이 돌아오면서, 당시의 내 현실과 지금 어린이들의 현실이 색지가 걷힌 듯 현실감 있게 보이고 느껴집니다.


단순화된 선악 구분과 연령차별 등을 내려놓고, 이미 고유한 존재로서 내면과 비밀과 감정을 가진 존재들을 만나게 됩니다. 철저히 일상적인 언어로 내밀한 이야기를 모두 전하는 시인의 능력, 시의 힘에 새삼 놀랍니다.





모두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어른들은 그렇게 살 수 있나요. 어른들이 하는 말에 어른들의 삶을 비춰보면 더 부끄러운 일도 찾기 힘듭니다. 패거리를 만들어, 욕하고 탓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현실의 풍경에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어른들이 정한 모든 것에 따라 살아가야하는 어린이들의 부대낌과 고충을, 손쉬운 애정 표현 대신 짐작해보려 애써봅니다. 어른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어린이는 없습니다. 어른들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등하원/등하교하는 어린이도 지키지 못하는 어른들이, 실은 어린이보다 훨씬 더 시끄럽게 떠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어른들이, 어린이를 싸잡아 거부하고 - 노키즈존 - 최소한의 안전망 - 민식이법 등 - 을 만드는 일을 거부합니다.


모두가 지혜롭고 훌륭한 어른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착하고 사랑스럽기만한 어린이로 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하고 모자란 존재들이 아닙니다. 


어릴 적 일기장에 적은 어린이로서의 다짐이 있다면, 기억할 수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자신과의 그 약속은 지켜졌나요. 그 바람에 도달했나요. 그 목표를 실현했나요. 어른은 어린이에게 지혜와 가르침을 구하며 살아야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다 부끄러운 어른으로 사는 제게 하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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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가족, 끝까지 가족 - 김성우 변호사의 상속, 성년후견, 이별 이야기
김성우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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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가장 나중에 겨우 바뀌는 것이라 알고 있었지만, 문제와 상황에 당면해서 관련법을 찾아보면 촘촘하게 변화해온 채워야할 조건들이 만만치 않다. 자연인으로 살지 못하는 사회적 존재인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적 조언과 가이드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읽고 배우고 싶은 반가운 책이다.

 

부모님과 관련되어 언젠가 처리해야할 문제들, 아이들과 관련해서 대비하고 처리해야할 문제들이 자신의 몫으로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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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상황과 주변 관계가 급격히 변화하며 위기를 겪을 수 있는 시기가 인생 후반전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가 문제들에 앞서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려면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나는 계획대로 사는 삶이 좋고 돌발이 너무나 싫다. 계획대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 루틴인 중요하고 꾸준히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20대부터 생각이 많았다. 알 수도 없고 대비도 어려운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서.

 

그래봐야 법과 사회의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뿐이지만, 할 수 있는 건 다해둔다는 자세로 준비했다. 먼저 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들로, 유서는 20대부터 썼고, 30대에 장기기증서약을 했고, 2018년 존엄사법이 시행된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이미 10만 명이나 먼저 했다고 하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과 관련된 고민과 불안은 관련 책과 법령과 문의와 상담을 통해 가능한 많이 알아보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급작스런 죽음이란, 어차피 죽은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남겨진 가족이 슬픔 이외의 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대비해두고 싶은 것이다.

 

만약 자식이 어린 경우에는 더 어려워진다. 이 책에서도 신탁 사례를 들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을 통해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사후 대비 이전에 노후 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은 언제 마음 편히 살 수 있는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평생이 고단한 것도 같다.

 

나는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라, 상상하고 준비하는 일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노후와 사후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생각과 태도는 다를 것이다. 이 책에는 상당히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당연하겠지만, 이만큼 살고도 처음 들어보는 경우도 있다. 구체적인 현실 사례들이니 더 선명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는 유언과 상속의 내용이 유용하다. 특히 시대적 변화에 민감한 기능이니 기왕이면 정확하고 자세히 알아두는 편이 좋다. 상속 대상에는 빚이 포함된다는 것, 그럴 경우 선택 사항도 도움이 된다. 가족관계도 막연히 하는 기대와 나중에 닥친 현실이 사뭇 다른 경우가 적지 않으니, 현실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적 이슈가 된 의 한계와 관련된 지적 사례들 - 구하라 법 등 - 도 법을 바꾸자는 사회적 요구를 형성하는데 공부가 된다. 그때는 남의 일이었어도 내 일이 될 수 있는 것이 법이고 사회적 이슈이다. 상속에 관한 법도 완벽할 순 없으니, 현행법과 제도의 수정은 언젠가는 불가피해진다.

 

개인적 관심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면, 친권 문제를 만나 한국사회의 미성년자들의 취약한 처지를 생각하게 하고, 무엇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하는 본질적인 질문에도 이른다. 단지 핏줄이기 때문에 연락도 없이 남처럼 살아도, 사망 후 상속 문제에 있어서는, 수십 년을 함께 산 실질적 가족보다 법적 권리에 있어 우선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제도일까.



 

노후는 물론 사후를 준비하는 일 모두가 사회제도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행위에는 사회적 권리와 의무가 따르고,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를 고치는 행위도 포함된다. 사회적 존재로 살고 죽는 이들의 선택은 죽음 이후에도 사회적 영향을 남긴다.

 

따라서 단순히 재산을 나누고 물려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능하면 사는 동안 추구한 가치와 철학이 반영되고 구현되는 방식으로 상속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런 고민과 공부가 필요한 이에게 이 책이 친절한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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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기 때문에
나태주 지음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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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시인의 에세이, 오랜만에 아무데나 펴보기, 내명(內明)... 밖보다 안이 밝다. 요즘은 안팎이 어두침침하다. 매일을 살다 문득 기억이 나면 근육을 움직여서 웃어보려 한다. 화를 내는 일도 버겁지만, 삼키기만 하면 몸이 굳는다.





그러니 고운 제목의 책이 반갑고 고맙다. 가만히 천천히 읽다보면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풍경이 떠오르고, 병이 나서 오른 열처럼 뜨겁던 기분이 식어간다. 비염이 심해서 긴 산책이 어려워졌는데, 책 속 산책을 떠나기에 맞춤한 작은 길들이 문장들 속에 여럿이다.


“애당초 글은 사람을 좋아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는 데서 출발한다. 정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겨우 반백년 산 독자이나, 몸이 다치고 사고에 휘말렸던, 기적처럼 운 좋게 도와준 분들이 없었다면 죽었을 고비는 있었다.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고 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내게 있는 조그마한 좋은 것들은 그런 경험들로부터 배우고 변한 것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혜가 모자라 어디로도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버티는 근력이 더 필요하다.


“몸을 한번 크게 다치고 나면 날마다 순간마다 몸이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는 삶이 안겨주는 보람과 기쁨으로 버티며 온갖 일을 하고 있다.”


“나이 팔십이 가까워서야 겨우 책이 팔리고 내 글을 알아주는 독자가 생겼다. 그것도 어린 독자가 많이 생겼다. 이거야말로 내가 마이너임을 자처하며 오래 견뎌온 결과요 축복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이들이 함께 좋아하며 외우는 시가 있다는 건, 순간 삶이 해사해지는 기분을 들게 한다. 나는 광화문 현판에 오래 머문 시도, 기억 속에 오래 머문 시도, 필사와 인용으로 온라인에 번지는 시들도 좋았다.





“한동안 시를 썼다고 시인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인은 현재형으로 시를 쓰고 있어야 한다. (...) 하루도 시를 생각하지 않거나 시를 읽지 않고 넘긴 날이 없다.”


요즘엔 슬픈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뭘 이겨내려고 무엇을 해봤다거나, 진료 상담 내용이 좋아졌다거나. 힘들지 않은 삶이 있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애쓰는 이들이 조금 덜 힘들게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당부 같은 말처럼 ‘오래 살면 전반부 서툰 인생이 보완될까.’ 아직 너무 숨 가쁘게 살아서 문제이니, ‘멈추고 줄여야 할까.’ 억지로 몸을 일으켜 ‘겉치레’라도 대충하고 감정을 삼키며 멀쩡한 척 사는 일을 멈춰야 하는 걸까. 


버티고 선 익숙해서 더 버거운 일상의 이야기와 다른, 시인의 질문들이 그래도 좋다. 누군가와 함께 나눠보고 싶던 이야기,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던 이야기, 나이가 얼마든, 인생과 소망과 별과 꿈과 희망과 사람으로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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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실수는 무리수 - 수학 중독자들이 빠지는 무한한 세계
이상엽 지음, 이솔 그림 / 해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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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어들이 많지만, 특히 ‘수학(數學)’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이런 큰 오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학문의 정의가 단어대로라면, 숫자를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인데, 내가 이해한 수학은 그런 학문이 아니다.




영어로는 숫자를 계산하는 산수arithmetics와 수학mathematics가 구분되어 있으니 구분이 된다. 이제는 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수학 영재라고 뽑아서 암산 빨리하기를 시키는 것은 씁쓸하고 부끄러운 수학 이해다.


수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수학 언어가 없으면 표현할 수 없는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내게 수학은 문자의 논리학이자 해석이자 답이다. 수리물리학이란 과목도 있는데, 현실과 유리된 증명의 세계가 얼마나 편안했던지. 두통 치료에도 늘 효과가 있었다.


물리학이나 수학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화들짝 놀라고 기피하는 존재가 되는 경험은 흔했다. 지금은 방송 출연하는 다정한 물리학자도 있고, 물리학 주제의 책이 대중과학서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물리학의 연구과제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도 흥하다. 이런 영화들의 흥행을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물리학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어!




다시 수학 얘기를 하자면, 다른 모든 언어와 마찬가지로 수학도 사유의 방식이자 표현수단이다. 입시경쟁사회에서 뜬구름 같은 소리일 수도 있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서 공부하는 수학은 그런 형태다. 


이 책은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목요일을 일부러 골라 읽었다. 기대한대로 엄청 웃었다. 중의적인 의미의 제목도 기발하다. 이 제목을 보고 뭐가 생각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관심사와 세계관을 이루는 방식이 조금은 드러난다. 나는 여전히 실수, 허수, 유리수, 무리수가 떠오른다.




수학책이지만 농담으로 채워진 수학책이다. 가족 모임에서 유용한 얘깃거리가 될 것 같아서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 물론 기대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도전할 결심! 오해는 마시라, 이 책의 농담을 다 이해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흔히 하던 농담들을 다시 만나 반가웠고, 새롭게 이해한 재치 있는 농담들에 즐겁다. 140개 중에 어떤 것은 진짜 썰렁하고 어떤 것은 헛웃음이 난다. 그런 조합들이 수학을 더 만만하게 느끼게 하니 이 또한 사려 깊게 기획된 것인가. 일러스트레이션이 이해를 크게 돕는다.



 

세상에 드문 수학 덕후들은 즐거울 것이고, 입시 수학에 지친 학생들에게도 수학으로 웃을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이고, 수포자라고 자신을 규정한 어른 독자에게도 낯설어서 좋은 농담 수학을 만날 기회이다. 각 학과별로 이런 재치 있는 농담 책이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웃고 나면 조금은 힘이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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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알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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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 가까운 장편이다. 기대보다 큰 선물 상자를 받은 것처럼 신이 났다. 새로운 시리즈라 기대, 해외문학 시리즈라 기대. 여성작가들의 작품이라 기대, 블랙 코미디라니 더욱 기대하며 펼쳤다.


“그 무더운 밤 C4호에서 블랜딘 왓킨스가 육체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아니다. 그녀는 그저 무(無)의 반대다.”


원제 - 토끼장 The rabbit hutch - 이 복잡한 생각이 들게 했지만, 크지 않은 빼곡한 활자들에 빠져, 어느새 각자의 사연에 끌려 들어간다. 낯선 배경의 번역 문학을 만날 때마다, 이 순간이 가장 신비롭다.


“언제나처럼 인터넷에서는 포식자들이 난동을 부린다. (...) 모두가 하지도 않은 일로 서로에게 벌을 주는 시대.”


불면증으로 수면유도제를 매일 먹고 5시간의 깨지 않는 수면을 겨우 확보하는 대가로 거의 하루 종일 멍하거나 졸렸던 때라서, 읽다 졸면 문장이 꿈에서 이어지거나 책에 없는 문장을 꿈에서 만나기도 했다. 덕분에 환상문학을 꿈결처럼 느끼며 읽는 재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했다.


“인터넷은 우울하다. 이런 시기에 수돗물 한 컵을 마시듯 현실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좋은 친구를 곁에 두면 된다.”


독자인 나는 한껏 어리둥절해지는 경험을 두려워하지도 기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선명하다고 느끼는 망상보다, ‘보통’과 ‘정상’에서 먼 방식으로 견고한 거짓이 깨어져 나가는 편이 좋다. 더운 여름이 배경이라 더 설득력을 가지는, 뜨거운 도발 같은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다 좋다.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고 싶다면 아기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 그게 어떤 모습일까?”


한국어 제목이 ‘우주의 알’이 된 이유가 궁금해서, 이스터 에그처럼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읽기의 즐거움을 더하는 동력이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이, 사는 일이, 너나없이 이토록 복잡하고 버거울 때도 있다는 것이 생명력을 거꾸로 입증하는 사례들 같다.


“믿음은 증거의 부재에 입각하죠. (...) ‘우주의 알’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증거를 내주지 않는 거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그렇게 불렀죠. 우주의 알.”


세상엔 ‘완벽한 무엇’은 없는 것도 같다. 악인이라 할지라도. 서사는 알면 알수록 그 대상(생명 있는 존재들)의 허약함과 삶의 온갖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아픈 비밀은 많은데 무서운 악의는 별로 없는, 단지 ‘보통’과 ‘정상’의 범주에 쉽게 자리 잡지 못하는 욕망이 보인다.


“있잖아, 좀 이상한 일이 있어. 일어난 지 좀 됐는데, 좀 웃기는 일이고, 미친 건 아니야. 그냥 좀 이상한 일이야.”


어쩌면 인간들이 이렇다는 이야기가 많을수록, 삶이 그렇다는 사례가 많을수록, 서로의 차이를 찾고 만들어 혐오하는 일 대신, 측은히 여기고 이해하는 그런 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꿈을 잠시 꿔본다. 누군가는 ‘꿈 깨’라고 할 것 같고, 또 누군가는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할 것 같다.


“삶이 윤리적이라고 여겨지지 위해서는 체계적인 불평등을 부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블랜딘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아름답게 직조된 사람들과 삶이 드러나는 결말 부분은 노출되지 않으면 좋겠다. ‘언어의 부산물로 진화한’ 내 의식에는 안타까운 혼란과 아픔을 지나 명치가 뻐근해지는, 애틋하고 인상적인 후감이 진하게 오래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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