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복제하기 사계절 1318 문고 143
캐럴 마타스 지음, 김다봄 옮김 / 사계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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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이식을 위한 복제인간이란 소재가 낯설지 않아서, 기술만 해결되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기꺼이 할 것 같아서, 어쩌면 어떤복제는 이미 암암리에 유통 매매 되는 것도 같아서, 살짝 두렵기도 합니다.



 

의학의 치료 대상과 연구 범위는 내게는 불문명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적지 않습니다. 장기 이식이 가능해진지는 오래지요. 저도 장기기증서명을 한 상태이도 합니다. 가장 힘든 질문은 치료 대상이 나와 내 가족이고, 만약 충분한 자본과 기회가 있다면 과연 나는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괴물을 필요로 해요.” 내가 대답했다. “상처 입히고 경멸할 대상이 필요하니까요.”

 

생각해보니,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도 인간이 창조한 생명체를 소재로 경고와 메시지를 전하는 문학입니다. 애초에 성인의 몸을 지닌 존재와 달리 현대 의학은 DNA 복제와 유전자 가위 기술로 시작부터 디자인이 가능합니다.

 

나는 끔찍한 괴물이야.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 (...) 나는 똑똑하게 만들어진 거야. 운동도 잘하도록 만들어진 거고.”

 

번식의 본질은 DNA복제입니다. 그렇게만 따지면, 고전적인 방식을 따른 것과 현대의학기술을 사용한 것이 뭐가 다른지 경계가 불문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과 생명은 뭐가 다른지, 이미 철저한 계획 하에 체지방량도 조절되어 수태부터 출생, 성장, 도살까지 기계화된 체계로 관리되는 축산 동물은 그럼 더 이상 생명이 아닌 것인지, 질문은 복잡해지고 고민은 깊어집니다.

 

설령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고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우린 다른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거야. 인간이라는 게 바로 그런 존재인지도 몰라.”

 

다시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다움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는 사람답게 만드는가라는 오래되고 익숙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는 질문입니다. 답이 있다고 해도 그 답에 맞게 세상을 바꾸고 살아가는 일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게 우리는 사람답게 만드는 거야. 넌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도록 길러졌기 때문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게 된 거야.”

 

연구비만 벌어서, 자신이 하는 최전선의 과학 연구를 계속해서 완벽한 아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박사는 눈멀고 고민 없는 과학자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일이 인도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로 인간다움이 제거된 그가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도록 욕망과 수요가 있다는 것은 개인을 처벌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인류 문명과 사회 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나요? 자아라는 건, 고유성이라는 건, 경험과 기억일 뿐인가요? 정상과 표준의 스펙트럼 안에 들어와야 한다고 끊임없이 사회화하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배제, 차별, 혐오하는 사회는 그럼 왜 이러는 걸까요.

 

이 작품은 의료윤리만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동안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가장 활발하게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청소년들에게 문학이 풀어내는 메시지는 어떻게 닿을 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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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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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이고 무크지에는 [문어]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지구생명체는 항복하라>는 제목이 위협적이지 않고 뭔가 유쾌했는데, 문어가 실제 그 대사를 발화할 때는 결국 웃고 말았습니다.

 

그 내용 전에도 읽다가 너무(?) 자주 웃어서, 호르몬에 이상이 있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태연하고 능청스러운 블랙 코미디 같은 팍팍한 유머가 제 취향에 딱 맞습니다. 풍자와 비판을 위한 가장 맞춤한 가면을 착장한 듯, SF 장르가 한증 더 자유로운 여지와 허용을 준다고도 느낍니다.

 

황당하면서도 허가 찔린 듯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작품은 현실의 많은 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 씁쓸함과 갑갑함으로부터 잠시 쉬어가게 해줍니다. 날카로운 시선과 깊은 사유는 여전하지만, 자전 소설이라 할 만큼 누적된 경험에서 흘러나온 담담한 문장들은 오히려 고수의 품격을 절감하게 합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왜 이 지경인가만 반복해서 묻는 삶을 사는 독자인 나는, 그럴 수는 없어서 다른 간절함과 진지함을 품고 현장들을 지키고 의문을 묻고 끌려가는 옆에 선 이들의 삶을, 축축하고 시린 눈으로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켜켜이 쌓여가던 질문들을 작가의 인터뷰와 다른 글들과 문학 속에서 많이도 찾고 만납니다. 하루가 부족한 듯 쏟아지는 불안과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뉴스들을 최대한 피해보는 것만으로는 부끄러움이 짙어갈 뿐입니다.

 

세상은 만들어가고 변화시키는 대상이니까, 이길 수 있어서 시작한 싸움이 아니니까, 그래도 저항의 기록은 중요하니까, 미래의 다른 싸움을 희망이라 부르며, 작은 발판을 마련해두고 살해가 아닌 저항을 위한 작은 무기를 넘겨주는 것이 포기하지 않는 많은 분들이 계속하는 일이겠지요.



 

<나의 문어 선생님> 이후 문어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거대 문어가 복도를 채운 채로 내게 다가와서 나를 톡톡 건드리며 항복하라... 고 한다면... 화면으로 쌓은 정신적 친밀감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과연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에는 어떤 놀라운 문학의 풍경과 현실로부터 온 목소리가 담겨있을까요. 하루라도 빨리 전지구적인 행동이 시작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쉽지 않을 듯해서 문득 너무나 무서워지는 기후이야기를 만날 [해파리]가 가장 궁금하긴 합니다.


연작이니 수록된 작품들을 다 읽고 나면 비로소 제게 남을 한 문장도 무척 기대됩니다. 설마 항복!”은 아니겠지요. 정식 출간본이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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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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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교수의 연구 데이터는 귀하다. 개인에게만 모든 문제의 책임을 묻는 대신 사회적 상처로 가시화된 기록은 실제로 소송에서 법정 증언으로 쓰인다. 건강과 질병은 그의 연구를 거쳐서 공정과 정의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가 찍은 사진들은 분석 보고가 남긴 현실을 드러내고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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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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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는 능력은 책임을 다하는 태도이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외면하고 덮고 묻어 버리는 대신 응답하는 일은 상상보다 어렵고 용기가 필요하다. 응답을 하면 자신의 응답에 대해서도 책임을 보여야한다. 대게 이 단계에서 나는 슬그머니 용기가 빠지고 계산이 빨라져서 결국엔 손해도 희생도 크지 않은 수준으로 타협하고 만다.

 

* response + ability = responsibility

 

그러니 이런 용기는 가능하면 어릴 적부터, 짧지 않는 시간을 경험하고 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릴 적 나는공부란 열심히 배워서 사회에 유익한 무엇을 환원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저자는 그런 초심을 잊거나 포기하지 않고 지향을 잃지도 않고 계속 걸어 나가 그 용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승섭 교수의 책들을 꾸준히 읽는 건, 저자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이 응답하는 결과물이 뜨거운 분노와 욕설과 비난에서 가장 먼, 데이터와 팩트에 기반을 둔 철저한 연구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은유를 사용한 문장들로도 전달하지만, 감정적 낙관으로 귀결되지 않는 글에서 독자인 나는 단단한 힘을 얻고 든든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냉정하게 살핀 데이터와 팩트를 읽으며 더 선명하게 보이는 현실에 울기도 한다.

 

임상의사를 하지 않음으로서 개개인의 고통으로부터는 멀어지지만, 고통 일반에 대해서는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마음을 내는 것. 그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거든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오래된 헛소리 같은 막(내뱉는)말들이 시끄러운 사회에 살면서 나는 자주 바랐다, 질리도록 합리적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적으로 표준화된 합리성의 방식으로 계약과 합의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조사하고 연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합리성이란 어떤 의미이고 수단일 수 있을까.

 

합리성을 빌미로 약자의 투쟁을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합리성은 지식의 양으로 얼마만큼 내 입장을 뒷받침하느냐의 여부인데, 지식 생산엔 자원자본이 들어갑니다. 그런 자원이 없는 이들은 기본적인 생존을 이야기하는 데에도 (...)”

 

정책과 법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는 데이터와 통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데이터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부재한 상태다. 현대사회에서 숫자로 기록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정책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김승섭 교수의 연구 데이터는 귀하다. 개인에게만 모든 문제의 책임을 묻는 대신 사회적 상처로 가시화된 기록은 실제로 소송에서 법정 증언으로 쓰인다. 건강과 질병은 그의 연구를 거쳐서 공정과 정의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가 찍은 사진들은 분석 보고가 남긴 현실을 드러내고 채운다.



 

모두가 어수선한 몇 주간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책모임을 시작한 것은 참가한 우리 모두에게 참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다. 지금도 누가 툭 건들면 눈물이 푹 떨어질 지도 모르는 심리 상태지만, 몸도 마음도 한껏 움츠려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읽고 쓰고 얘기를 나눴다. 연구자가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눈앞이 뿌옇다고 세상을 버릴 수는 없다.

 

앞뒤 맥락을 잘라낸 채 몇 마디 말을 인용하며 사람과 사건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일이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대에, 이 두꺼운 책들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 (...)”

 

휠체어가 갈 수 있는 모든 길과 장소에는 휠체어가 없어도 걸을 수 있는 모두가 갈 수 있다.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손에 쥐어지는 작은 무기들, 저항하고 지키기 위한 무기들은 다른 이들도 보호한다. 타인의 고통을 측정할 방법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고민한 질문을 계속하는 이들이 있다.

 

전선戰線은 하나가 아니고, 특정 맥락과 상황에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질문하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태도이다. 표준은 무엇이고 정상은 무엇이냐고 따져 묻고 편견을 구분해내자는 애씀이다.

 

차별하는 줄 모르고 하는 차별 행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그 인식과 경계와 행동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공적 마인드가 없는 권력과 저널리즘이 없는 언론은 인지도 부끄러움도 없이 자극적이고 저질스러운 표적 생산과 공격을 일삼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일상에서 약해서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를 희생양으로 삼기에 주저함이 없다. 연령, 성별, 직업군도 모르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에 참여하는 불특정한 구성원들은 각자의 삶에서 발화된 분노를 그 희생양에 쏟아 붓는다,

 

노인은 많고 어른은 적은 사회라서, 나이만 먹은 중년 성인인 나는 부끄럽다. 이토록 불완전한 우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인 차별주의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어 살지 않으려면, 공동체의 시스템을 늘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엉뚱한 범임을 지목해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역사 속에서 그 싸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격리하고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었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공부도, 인간이 살아가는 법도 잘 모르겠다고,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 부조리한 사회라는 걸 밝히니 대답이 더 멀고 무겁다고 하지만, 계속 공부만 하시라고 응원하고 싶은 학자다. 기록 이상의 의미를 품은 책으로 자주 만나 뵙자고 마음을 조아려 부탁드리고 싶은 연구하는 학자다.

 

공부가 직업인 사람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특히나 연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기에 좌절의 연속이에요. 그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그 좌절에 익숙한 몸이 돼야 하지요.”

 

마지막으로 고통과 분노의 에너지로 존재하는 경험들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해 논문과 책의 형태로 정리하는 사회역학**이라는 학문분야가 널리 알려지고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늘었으면 하고 바란다.

 

종교도 기복의 성격이 강하고, 의학 역시 출세와 자산 증식을 위한 기술직업으로 여겨진지 오래지만, 그래서 더욱 만들어갈 미래와 공동체에 관한 다양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Social Epidemiology,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 제도, 관계 등을 추적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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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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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세계, 직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에세이 읽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경험이 고유하고 특별했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경비원의 경험과 시선과 그 이상이 담긴 이 책에 몹시 설레고 두근거렸다.

 

나는 경비원이 서 있기에 좋은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서 미술관에서는 눈을 감지 않아도 느끼고 싶은 것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부제에서 한 남자는 숨어버렸다고 한다. 사랑하는 책들이지만, 현실이 버거워서 책 속으로 숨어버리는 날들이 많아지는 나는, 그의 사연이 미술관과 예술 작품보다 더 마음이 쓰였다.

 

상실감과 슬픔은 가벼이 다룰 수 없는 비통과 애도이고, 육체는 무력감에 빠진다. 아니 그는 그래도 시간을 보내는 일을 찾았으니 완전한 무력감은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거대한 장소가 마련해주는 숨을 수 있는 장소와 여지가 내게도 안도가 되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 이의 행보가 다른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닿는 과정이 잔잔하게 아름다웠다.

 

미국 이민을 가서 뉴욕에서 살고 있는 어릴 적부터의 오랜 친구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반짝이고 화려한 것들보다 이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 레코드 가게, 싸구려 식당, 그리고 워싱턴 스퀘어의 분수대로 이루어진 도시가 궁금해졌다. 업타운의 소란함보다 숨기 좋은 공간들이.

 

졸업 후 뉴욕 중심가의 고층 빌딩에서 화려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정작 나에게 아름다움, 우아함, 상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 준 것은 그런 조용한 공간들이었다.”

 

2008년 미술관 일을 시작하며, 그가 향하는 곳들을 함께 따라가 보았다. 2백만 개가 넘는 유물을 소장했다니 평생 보아도 못 볼 예술 작품들의 산적함에 짧은 인생이 더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도 말을 거는 사람이 없는 근무지, 문을 열기 30분 전, 램브란트, 보티첼리, 디에고, 고야…….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이집트관이었다. 시간은 일방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직선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죽음이 삶이고 과거가 현재이고 미래라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나이가 되니 영화 <컨텍트>의 시간처럼 내가 보는 시간도 모두 순환한다.

 

이집트인들은 시간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네해’, 즉 수백만년 간 이라 불렀고, 그것의 본질은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과 같은 순환이었다.”

 

그가 입은 미술관 경비복, 푸른 제복 아래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수많은 사연들은 사람이 각자 어떤 고군분투를 하며, 세상에 자신만의 색으로 반짝임을 남기며 고유한 무늬를 새기며 사는 지를 상기하게 한다.

 

관람객으로 미술관을 방문해서 보고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해가 생긴다. 타인의 것은 타인의 것들이다. 우리는 대개 무지와 기우에 근거하며 남을 판단한다. 제복을 입고 있어도 각자가 가진 꿈과 취향은 가려지지 않고, 모두의 경험은 여전히 고유하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고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스산한 기분이 들고 여러 복잡한 생각에 불안해지는 겨울에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이야기가 더 좋아서, 읽는 동안에는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편안해졌다. 더 아름다운 건 예술인지 삶인지 잠시 생각하다, 애초에 그런 구분과 비교는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단 하나의 이데아도 정답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며 나는 여러 종류의 아름다움을 만났을 것이다. 표현한 언어가 없거나 부족해서 뭉쳐진 감정들로 기억하지만, 종류가 다름은 알 수 있다.

 

이 책은 참 아름다운 책이다. 짐작을 많이 벗어나는 책을 좋아하는데 에세이라서, 미술관이라서 이렇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낯설고 새로운 내용들로 대체되었다. 무엇보다 가만히 사유하게 되는 순간이 늘어나는 깊은 글이다.

 

삶이란 단순함과 정적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 군말 없이 살아가며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냉소가 차오르기도 하는 시절, 우리의 삶도 우연도 사연도 예술도 이렇게 신비롭고 경이롭고 아름다울 수 있지, 하는 오랜 감동을 소환해준다. 앞으로 내가 조금 더 친절하거나 다정한 표정과 말과 행동을 하는데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 , 아름다운 모든 존재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멀리 보내는 눈길이 시큰해지는 밤이었다. 세상은 서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세밀한 부분들로 가득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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