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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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정식출간본으로 재독하게 되니 기쁘다. 가제본에 이미 6장까지 내용을 주셔서 읽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 낯선 학문 분야이고 내용이 깊고 강렬해서 재독 후 논지의 윤곽이 훨씬 선명해진다.


https://blog.naver.com/kiyukk/223426088820

https://www.instagram.com/p/C6JL-1oSxq1/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논리적 설득은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전개하는 내용은, 그래서 더 거침없이 인류 문명의 여러 영역으로 뻗어나간다. 유전학과 진화론에서 정치, 경제, 문화까지 흥미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자연선택의 관심 대상은 유전자의 성공적인 번식이지 개체의 행복한 삶이 아니다. (...) 생물학적으로 건강하고 다양한 후손을 남길 수만 있다면 부부의 삶과 행복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사실과 가치를 잘 구분하고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 재밌을 이야기들이 많다. 이왕 벌어진 일, 역사적 사실, 과학적 발견과 결과와 싸우는 힘 낭비를 하지 않는 대신, 새롭고 독특한 시선을 배워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의도는 변화와 치유.

 

고민과 배려와 예의는 모두 어디다 내다버린 듯, 혐오와 오만과 자칭 심판자 노릇이 판치는 시절에, 진화론과 유전학에서 살피는 혐오를 확인해보는 일도 의미 있다.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위험대상을 인지하고 대처하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것, 과잉 대응이 생존에 낫다는 것. 이런 경험이 오래되어 생겨난 정서적 기제가 혐오라는 것이다(진화심리학).

 

약한 소수를 늘 대상으로 삼는 폭력과 혐오와 관련해서는, 생물학적 근거들에 기반을 둔 사실을 배우는 일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1,500종에게서 동성 간 성행위가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동성 간의 성행위가 진화적 적응의 역할을 했다는 것도, 이런 현상이 사회를 이루어 살거나 폭력 행위가 빈번한 종들에게서 더욱 많이 관찰된다는 것도. 결국 성애는 현상일 뿐이다.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사회의 첨예하고 고질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너무 늦지 않게 변화를 만드는 일은 아주 어렵고 방법이 있어도 지난한 시간을 애써야 한다. 그 시작은 인간을,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한계를 가졌는지 알아야 경계할 수 있으니까.

 

상품 아닌 것들 모두를 상품으로 만들고 등급을 나누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저자의 경고와 제안도 반가웠다. 관련 논의나 책 소식을 많이 듣게 되면 반가울 것이다. 두 번째지만 역시 충분히 소개하기란 어렵다. 충실한 이 책을 읽고 대화하는 독자들이 많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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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아신경외과 의사입니다 - 생사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을 살리는 세계 최고 소아신경외과 의사 이야기
제이 웰론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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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at moves us.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 뇌신경만은 아니겠지요. <낭만닥터 김사부>를 못 보았는데 이 책과 감동의 파동과 눈물의 온도가 같았다니 드라마도 궁금해집니다.

 

작고 약하고 어리고 아픈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일, 얼마나 뜨겁고 곡진한 사랑일지, 어른들이 지켜내지 못한 아이들 생각에 읽기 전인데 눈물이 빙글 돕니다.

 




 

타인의 생명을 맡는 일, 의업은 참 무겁고 두려운 일이다.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 만들고 두려움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 배움일 것이다. 그럼에도 회복과 쾌유까지는 미처 알지 못하고 예측할 수 있는 시간이 남는다.

 

의업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어렵다는 소아신경외과*, 환자가 어리고 체구가 작을수록 의학적으로도 그렇지만, 환자와의 소통도 달라져야한다. 의학드라마는 딱 한번 <닥터 하우스>를 보았지만, 이 책은 괴팍한 천재의 현란한 진단과 수술로 화려하던 그 드라마의 느낌과는 아주 다르다.

 

* 뇌와 척수에 문제가 있는 모든 연령대 아이들의 수술을 맡는다.

 

소아신경외과 의사들은 보호자, 환아들과 모든 단계를 함께 밟아나갔다. 아이들에게 수술이란 단순히 나을 기회, 살 기회를 의미했다. 가장 순수한 관점이다.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아프지 않다. 보호자에게는 아이의 생사를 뒤바꾸는 진단의 고통, 또 다른 인간의 개입을 허락하는데 필요한 신뢰가 따르는, 주체하기 힘든 감정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아주 낯선 소아 신경외과 수술실의 풍경, 그리고 수술 전후의 풍경들이, 읽을수록 한 장의 예술 작품이 채워져 나가는 의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25년간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이런 아프지만 놀랍고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하고 여러 번 눈물이 고였다.

 

이제 영원히 떠나버린 자기 어머니를 만나러 응급실로 들어가던 어린 딸의 통곡을 나는 기억한다. 여전히 그 소리가 들린다. 그때 느꼈던 그 느낌,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 어디론가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한, 생명을 맡기고 구하는 관계들이, 교육과 의료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잘못된 채로 오랜 세월 산적하여서, 마치 인간의 생각과 성품과 직업윤리와 도덕의 문제처럼 선동되고 오도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서글펐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다수는 오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다.

 

요즘에는 번아웃burnout’이나 도덕적 상처moral injury(...)’처럼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의사나 의료 종사자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용어가 있다. 위험한 상황이다. 여기에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여유 없는 환경과 비난이 더해지면 주변의 모두를 향한 신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생사를 가르를 결정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사람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신뢰의 자리에는 의심이, 배려의 자리에는 혐오가 들어선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 없었다. 그저 분노 그리고 죄책감이 전부였다.”

 

생사를 가르는 일은 때론 너무나 사소하고 우연적일 때도 있어서 우리는 황망한 사태와 결과에 슬퍼지기도 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세월과 사람 수만큼 서로가 애써서 무려 죽음에서 삶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의사이기도 환자이기도 보호자이기도 할 수 있는 서로를 함께 응원하고 위로하는 공존의 풍경이 여름 녹음처럼 늘어나길 바란다.

 

신경외과에서 상실의 슬픔은 풍토병과 같은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피해갈 길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반복되는 슬픔을 지켜보면서 결국 나는 슬픔이 기쁨만큼이나 우리 삶의 일부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 상실과 사랑은 틀림없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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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대화 공부 - 서로의 차이를 넘어 품위 있게 공존하는
켄지 요시노.데이비드 글래스고 지음, 황가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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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인내심, 깊이 등등... 대화에 필요한 것들이 늘어나도 부족할 판에 솔솔 사라지고 있다. 어떤 고약한 인간으로 살게 될지 나는 내 매일과 노후가 걱정이다.

 

부제는 어렵고... “서로의 차이를 넘어 품위 있게 공존하는원제는 더 어렵다. “Say the Right Thing: How to Talk About Identity, Diversity, and Justice” 어른이 올바르게 말해야 하는 것에는, 정체성, 다양성 그리고 정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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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동안에는 배울 게 끝이 없다는 건 거의(?) 확실한 진실이라서 사는 게 쉽지 않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할 때는 물론, 알던 사람 역시 살아 있는 한 변하기 때문에 - 자신도 마찬가지 - 만남과 대화는 늘 업데이트되어야한다.

 

대화란 지식과 순발력과 기타 등등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고도의 능력이다. 모두 다른 존재들이 대화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 기적이자 불가능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잘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내가 짐작한 일반적이고 이론적인 대화이론이 아니었다.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면 귀 기울이게 되듯, 사적이면서 사회적인 이야기가 가독성이 크다. ‘사회 정체성에 관한 대화, 라는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로서 자신들을 찾아온 이들의 지지가ally가 되려고 함에도 대화 실패를 겪는다는 고백이 더 열심히 읽고 싶은 동기부여가 된다. 나는 어려운 일을 쉽다고 하는 이들을 전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곱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워크숍에 참가해서 내용을 배우는 것은 물론, 대화 실습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내용이다. 상황과 사회시스템은 다르지만, 대화와 소통의 문제에 있어 공통적인 고민들 - 회피, 굴절, 부인, 공격 - 이 더 많아서 유의미하고, 짐작한대로 숙지와 실천은 쉽지 않다. 그래도 원칙들과 주의하고 탐구할 유형들을 꼭 잘 배우고 변하고 싶다.

 

견해차가 계속 좁혀지지 않을 때는 존중하는 태도로 부동의해라(내 번째 원칙). 그리고 상대방에게 보상해야 할 때는 진심으로 사과해라‘’(다섯 번째 원칙).”

 

나는 대화의 출발이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편견이 있다는 걸 모두 인정하고,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는 공통 상식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게 가능해서 대화의 태도와 내용과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상상을 자주 한다.

 

좋은 책과 강연과 다른 이들의 글을 통해 배운 것이 혼자한 공부보다 백만 배 더 많다.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채로 살아온 세월에 심하게 놀라기도 하지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 고맙다. 이젠 대중과학서로 뇌과학도 배우는 시절이다. 조금 조금씩 서로 알려주고 배우고 하는 일상도 당연해지길 바란다. 대화와 소통에는 다양한 지식이 많이 필요하고 늘 충분하지 않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고 무지를 고칠 수 있다. 그것이 무지의 인지다. 더 골치 아픈 것은 무지의 부지*.” * 무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 변화가 더 어렵다.

 

저자들이 단지 지식을 늘리고 개인이 내적 변화를 만드는 일에 멈추지 않고, ‘밖으로 향하는실천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좋고 반갑다.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다음 행동이 꼭 필요하다. 변화는 행동으로만 만들 수 있다.

 

“‘나는 사과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 잘못을 고치는 방법은 피해를 바로잡는 것이다.”(정의회복CLT 이사 코린 맥Corine Mack)

 

행동으로 저지른 잘못에서 말로 빠져나올 수는 없다.”

 

그 변화는 구조적 해결까지 가야한다. 지난하고 고되고 못하게 하려는 방해는 강력하지만, 목표와 도착지가 분명히 그러하다는 것을 잊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연인이 아닌 사회적 관계 속에 사는 인간에게 다른 정답은 없다.

 

잘 설계되었다면 시스템은 대규모로 사람들을 돕는다. 잘못 설계되었다면 시스템은 어떤 개별적 실수보다도 널리 피해를 확산시킨다.”

 

위계를 만들도 정하는 인간의 오랜 버릇. 아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인지하고 있다면 주의할 수는 있다. 역지사지가 도움이 된다. 누가 내게 가르치려드는 것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자는 동료로 다가올 때 더 귀 기울여 듣고 싶어진다는 것.

 

소개하지 못한 내용이 빙산의 나머지 부분처럼 더 많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읽고 더 자주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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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파랑 - 성우 남도형, 목소리로 세상을 물들이다
남도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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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루와 코발트 블루를 오래 좋아했다. 실은 지금도 좋아한다. 블루를 좋아해서 블루가 들어간 작명을 많이 한, 나는 모르던 성우 아이돌의 파랑파랑한 에세이다.

 

직업이 성우이니 육성을 듣고 싶어 유튜브를 찾아봤다. www.youtube.com/@NDH_Blueclub 이제 문장에서 육성을 더 선명하게 들으며 재밌게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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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진행되고 이루어지는 모든 일, 그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있는 직업이 성우다.”

 

안다고 생각한 지식이 얼마나 단편적인지는 그 지식이 속한 세계를 만나게 될 때 깨닫는다. 만화나 영화에서 목소리만으로 연기를 하거나 내레이션을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말로 이루어지는 일은 세상에 얼마나 많고 다양할 것인가.

 

누군가 나의 숨은 능력을 알아봐줄 때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중년의 독자라서, 성우 프리랜서도 처음 알았다. 성우란 방송국에 소속된 직원인줄만 알았는데. 음성 샘플 USB를 들고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니 무슨 얘기인지 어리둥절하게 성우란 직업 세계를 배워나간다.

 

“KBS 공채 성우가 되면 일정 기간 방송국 소속 성우로만 활동을 해야 한다. 그 이후는 프리랜서로 자동 전환된다.”

 

TV를 좋아하거나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사정을 잘 모르고 프로그램도 낯선 게 많고 10여 년간은 한국에 없어서 더 모르고, 귀국해서도 TV 없이 여러 해를 살아서 잘 몰랐다. 더빙 외화 -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 - 2010, 2014년에 폐지되었다는 것도.

 

애써 시험을 보고 합격한 이후에도 - 실은 거의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 시험 이상의 어려운 도전들과 좌절들은 이어진다. 그 과정을 모두 배움이라고 여기면서 성장하면 진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인이 되는 것이다. 쉽지 않아 병이 들기도 한다.

 

이명은 7개월이나 지속되었다.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에 미칠 것 같았고 점점 피폐해졌다.”

 

무엇이건 계기로 삼아 성장과 변화를 도모하는 이들이 있다. 저자가 20대에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이렇게 긍정적인 것이 놀라웠다. 이명을 계기로 삶의 패턴을 다잡고, 몸을 돌보고, 이명이 안 들리는 날의 행복을 만끽하고, 중요한 것들을 챙겨나가는 변화.

 

“‘이 말을 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항상 스스로에게 물아봐야 해. 성우는 바르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

 

쉬운 단어들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바르다는 것에는 여러 내용이 함께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준비해야하는 것들이 분명하다. 모국어라고 해서 누구나 유창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란 화술과 동의어가 아니다. 말은 생각보다 더 노골적인 신분증과 같다. 삶이 즉시 드러난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을 더 자주 돌아보고 객관화시켜야했고, 그랬기 때문에 자신을 더욱 답게잘 세울 수 있었다고 느낀다. 이런 장기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유지되려면, 늘 자신과,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해야했을 것이다.

 

글도 재밌고 쉽게 잘 쓰는 저자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읽고 나니, 파랑이 잘 어울린다. 맑으면 황사와 미세먼지, 아니면 비가 오는 봄에, 덕분에 푸른빛을 찾아 고개를 올려다보곤 했다. 앞으로도 바라는 만큼 푸르러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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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의 흑역사 - 인간은 믿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톰 필립스.존 엘리지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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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거짓말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다 기억 해야해서 무척 부지런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뇌과학은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매일 하며 산다고 한다. 오늘도 난 거짓말 안 한 것 같은데...

 

음모론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퍼트리지는 않았지만 휘둘려서 은밀하게 믿거나 의심한 경험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왜 이렇게 낭비적인 일을 할까. 분했다.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서.

 

화를 낸다고 싫어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럴 바에는 철저히 정체를 파악하는 편이 낫다.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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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구도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 우리 뇌는 패턴 찾기에 워낙 능해서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패턴도 보인다고 착각한다.”

 

어릴 적 꽤 무서운 이야기부터 웃긴 이야기까지 귀에서 귀로 전해지던 시절이 덕분에 기억난다. 아주 어릴 적에도 음모론은 혹할 매력이 충분했다. 저자가 사례를 들면서, 누구 잘못인지,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지목하지 않아서 편안하다. 음모론은 왜 계속 만들어지고 왜 계속 퍼져나가고 설득력을 가지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음모론이 난데없이 뚝딱 생겨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전부터 있던 형태가 새로운 사회적 맥락에 맞게 수정 보완되어 등장하는 게 보통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어쩐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인간은 도대체 언제부터 거짓말을 거침없이 능수능란하게 해왔는가... 왜 이런 진화의 방향을 택한 걸까... 와중에 내용은 웃기고 재밌다.

 

음모론이 성행했던 이유는 뭘까? 극적인 사건이 평범하거나 임의적인 원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례성 편향의 효과다.”

 

솔직하게 관심이 가는 건 고대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인간 세상을 떠돌며 영향력을 뿌려대는 지금의 들이다. 너무나 이상하고 허접한 이야기도 있는데, 모든 썰에는 그걸 믿는 이들이 존재한다. 내 알바가 아니라고 더 자주 말하고 싶다. 인간으로 사는 일이 종종 너무 버겁다.

 

인지적 편향이 작용한다. (...) ‘행위자성agenticity’이라는 것으로 패턴에 의미와 의도, 행위자를 부여하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패턴을 감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패턴을 일으킨 주체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 이는 우리가 가진 마음 이론때문이다.”

 

내 불호와 거부감은 아무런 힘이 없고, 이런 썰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이야기를 만들고 믿는 인간의 문명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또 궁금하다. 왜 이런 진화...ㅠㅠ

 

자기는 믿지 않더라고 음모론을 통해 정치나 국제 관계 등 현실에 얼마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결국 중요한 것은 (...) 음모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귀에 들어가느냐다. (...) 아무리 터무니없는 음모론도 세상의 누군가는 믿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렇게 누덕누덕한 흑역사가 인류의 초상이고 기록이다.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여기는, 내가 굳건히 믿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썰과 나의 흑역사는 당시의 내가 누구인가는 어렴풋이 알려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음모론의 황금기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런 시기는 처음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 오늘날의 초음모론은 지난 수 세기의 음모론을 원천으로 삼고 있지만, 규모나 형태, 그리고 현실에서 괴리된 정도가 현격히 다르다.”

 

과거엔 거짓과 진실이라는 두 가지를 구분하자는 제안이 있었다면, 이제 세상은 거짓, 착각, 망상, 오해, 음모 - 덜 유해하거나 심각하게 유해하거나 -, 악의, 선동... 더 많아진 구분 목록들이 난무한다.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저자가 제공한 가이드를 읽었다. 자문도 해보았다. 도무지 늘지 않는 지혜와 혜안이 조금은 더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 이불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끄러운 흑역사가 가득하지만... 앞으로 좀 더 잘하자...

 

우리는 음모론을 심각하게 간주해야 한다. (...) 간편한 서사에 매몰된다면, 가짜 패턴에 속는다면, 모든 불행의 배후에는 사악한 악당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면 (...) 우리 삶을 좌우하는 숨은 힘의 진짜 패턴을 세심히 밝혀내는 작업을 할 수 없다. 그런 작업을 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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