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티의 기적 - 코카콜라가 감동한
세스 골드먼 & 배리 네일버프 지음, 이유영 옮김, 최성윤 그림 / 부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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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음료회사 창업기를 그래픽 노블로 그려낸 책이다. “어니스트 티”는 공동 창업자들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다. 너무 달지 않고, 진짜 차 맛이 나는 음료는 어디 없을까 하는. 그래서 예일대 경영학 교수인 배리 네일버프와 그 제자였던 세스 골드먼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가 바로 어니스트 티였다.


책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거쳐 온 온갖 사소한 단계들부터 그려진다. 단순히 설탕을 적게 넣은 차를 만드는 게 끝이 아니다. 그걸 팔려면, 우선 담아낼 병을 준비하고, 제품을 드러낼 수 있는 라벨을 디자인하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설비를 갖추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단순히 차를 팔아줄 가게를 찾는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제품을 배급할 유통망을 갖춘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흔히 유통업이라는 걸 중간에서 물건 값을 떼어 먹는 사람들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그걸 제대로 유통시키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제품을 만든 사람이 일일이 모든 지역에 그걸 납품하러 다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코카콜라 같은 대형 업체라면 자체 유통망을 갖출 수도 있겠지만, 물류와 유통이라는 건 단기간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그 또한 중요한 사업의 영역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또 하나 마케팅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역시 아무리 좋은 제품이 있어도, 그걸 제대로 홍보할 수 없다면 당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팔 수가 없고, 그건 사업의 지속성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어디 홍보비가 충분할 수 있을까. 이 점에서 어니스트 티는 뜻밖의 행운을 몇 차례 만난다. 오프라 윈프리나 버락 오바바(당시는 상원의원이었다)가 어니스트 티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것. 물론 여기에는 그만큼 언제나 (물이 들어오기만 하면 노를 저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회사의 자세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공동 참업자인 두 사람의 성격도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교수인 배리는 논리적이고 조직적인 사고가 특징이었고, 세스는 타고난 낙관성과 열정의 소유자였다. 이 두 사람이 서로 각자의 장점을 적용시켜 사업의 위기를 만날 때마다 극복해 과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사람들의 차이점은 너무나 자주 갈등으로 비화되곤 하니 말이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그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느냐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니스트 티의 경우 제품을 담는 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위기가 닥친다. 애초에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인수한 공장이 도리어 온갖 불량 등으로 회사에 큰 어려움을 가져왔던 것. 또, 경쟁업체들의 방해나 음료 속 이물질 같은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재정적인 문제도 닥쳐왔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스타트업으로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앞서도 언급한 공동 창업자들의 장점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 모든 걸 개인적인 자질 덕분이라고만 치환할 수는 없다. 이들이 초지일관 견지해 왔던 경영학적 원칙들은 사업을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인들이었다. 무엇보다 뚜렷한 미션과 정직함이라는 회사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점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회사를 일궈내고, 그 회사를 통해 좋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일은 은근 매력적인 작업이다. 어떻게든 사람을 쥐어짜서, 원가절감을 하는 게 목표인 B급 경영 대신, 기업의 구성원 모두를, 나아가 그 기업의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유익한 가치를 전달하려는 노력은 기업이는 조직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공헌이다.


물론 경영이라는 게 여기 나온 에피소드들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닐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온갖 일상적인 일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 때로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거나 정신을 멍해지게 하는 일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리라. 그 모든 것들을 헤쳐 나가면서도 끝까지 사업의 미션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란 얼마나 힘들지.


최근 이런저런 경로로 스타트업 대표들,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과 교제를 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분들 모두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좋은 가치를 실현하는 좋은 회사들이 우리 사회에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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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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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에게는 꽤나 불쾌하고 아픈 명칭일 수도 있는 “기레기”라는 단어가 있다. 기자와 쓰레기를 더한 멸칭이다. 분면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단어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역시나 소위 기자라는 이들이 벌이는 행태 때문이다.

이미 정파적으로 한 쪽에 확고하게 줄을 선 기자들이 벌이는 낯간지러운 찬양쇼나 닥치고 까고 보는 걸 무슨 대단한 비판의식의 표출이라는 자아도취, 문제를 가리기 위한 물타기 기사나, 뻔히 돈을 받고 쓰는 게 보이는 광고성 기사들, 자신이 적대적으로 여기는 정치세력을 비난하기 위해 몇 년 전 스스로가 썼던 기사의 논조를 180도 바꾸면서도 아무런 해명 따위도 하지 않는 뻔뻔함 뭐 이런 행태들이 모아진 결과일 것이다. 어디 재활용도 안 되는 악성 쓰레기.

물론 이 모든 것이 기자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마당에 위에서 시키는 걸 거부하는 건 여느 직장처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리라. 또, 일개 기자가 가질 수 있는 통찰의 한계도 분명하지 않은가. 때로 그들이 하이에나 떼처럼 보이는 건, 몇몇 수준 이하의 개체들의 난동이 크게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최근 우후죽순 생겨난 온라인 신문과 무자격 기자들도 한 몫을 했을 수 있고.

이 책의 저자인 김인정 또한 기자의 한 명이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다른 기자다. 기레기의 홍수 속에서,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이렇게 말하면 좀 박한 평가가 되려나) 애쓰는, 어쩌면 좋은 기자 중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어떻게 하면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 한 가득 채워져 있다.

책에 실려 있는 다양한 고민의 핵심에는 어떻게 고통을 기사로 써 내야 할까라는 질문이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사로 접하는 사건들은 대개 누군가의 고통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맞고, 죽고, 학대당하는, 사기와 온갖 억울한 일들로 뉴스와 신문의 기사면이 채워져 있는 것. 그러니 저자의 고민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그냥 보여주면 그만이 아니다. 보여주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하는데, 대개의 사건은 연속적이라 어디서부터 들을지를 결정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많은 경우 복잡한 문제로 깊이 들어가기 보다는 그저 겉핥기식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데 그치곤 한다. 당연히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아니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제대로 된 인식을 갖추기도 어려워진다.

​누군가의 아픔을 전시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다.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구도에서 지방의 뉴스는 늘 무슨 문제가 있을 때나 등장하는 특별출연자역에 한정되고,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에 관한 기사에서의 논조의 문제 등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기사란 단순히 어떤 사건의 내용을 요약 서술하는 것 이상이라는 게 금세 드러난다.

AI의 발달로 이제 기사 역시(신문기사만이 아니라 텔레비전 뉴스까지도) AI가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AI가 과연 탐사보도를 할 수 있을까? 비대칭적인 정보의 양을 가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제를 적절하게 다룰 능력이 있을까?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어린 시선을 스스로 필터링하고 뭔가 나아갈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AI의 객관성을 우리는 늘 신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역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건 단지 기자라는 명함만 파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며 오랫동안 준비한, 그리고 밥벌이라는 중요하고도 치열한 영역 가운데서도 소위 기자정신을 지켜내려는 배짱이 있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사실 무언가 해답을 제시해 주는 책은 아니다. 저자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해 왔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잔뜩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하는 고민을 함께 해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유익이 있지 않을까. 물론 저자의 모든 관점에 동의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다면, 또는 기자라는 직업에 흥미가 있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언론이 어쩌구 하면서 한 마디 얹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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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디자인
사와다 도모히로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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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 보면 어떤 내용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 책이었다. 물론 제목에 사용된 단어야 익숙하지만, ‘이게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다고?’ 하는 느낌. 저자는 일본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카피라이터였다. 청춘의 나이에 입사해 몇 년 간 일에 몰두하며 살았던 그는, 입사 10년 만에 얻은 아이가 시각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엔 충격에 빠진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삶의 궤적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해 그는 우선 실제 장애인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식으로 200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후, 그는 비로소 약점은 다양성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을 표준삼아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이 여기에 맞춰 구축되고 제작되고 유통된다. 만약 장애인들이 여기에 맞춰서 살아가야만 한다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꾼다면, 그래서 장애인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본다면 그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구부러지는 빨대라든지 한 손으로 불을 켜는 라이터는 모두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었다가 이제는 널리 퍼진 발명품들의 예다.





광고전문가로서 저자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훈련을 오랫동안 해 온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과 같은 장애인들의 ‘약점’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살려내야 할 무엇으로 보기로 한다. 이 때부터 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중 하나로 저자 자신의 약점이기도 한 스포츠(나와 비슷하게 몸으로 하는 운동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저자) 영역에도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이른바 ‘유루스포츠’가 그것.


유루스포츠란 일본어로 느슨하게(유루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가리킨다. 손에 비누칠을 하고 하는 핸드볼경기인 핸드소프볼, 애벌레 모양의 침낭 비슷한 경기복에 들어가 구르고 기어가며 하는 애벌레 럭비, 강한 충격을 가하면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센서가 장착된 공을 사용해 아기울음소리가 나면 상대에게 공을 넘겨야 하는 아기 농구 같은 것들이 책에 소개 된 유루스포츠의 예다. 단지 누군가를 우대하기 위해 핸디캡을 마련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아예 승리하는 방식을 자체를 바꿔 기존의 강자들과 약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이다.


물론 이 주장이 더 빨리 달리고, 더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불리하게 만들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엘리트 스포츠에 매몰되어 대중이 직접 참여해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좀 더 본질적인 체육활동에 집중해 만들어 본 또 하나의 스포츠 영역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이제까지 광고회사에서 더 많은(Scale) 사람들에게 더 빨리(Speed) 알리고, 짧은 기간(Short)에 그 역할을 마쳐왔다. 하지만 이제 눈을 돌려 좀 더 천천히(Slow), 작은 것부터(Small), 키워가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Sustainable)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라는 자기파괴적인 기초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소진해버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래야 또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아도 되는 존재일까?


저자는 이 질문을 단지 자신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적용해 볼 것을 권한다. 책 후반에는 어떻게 하면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며 살 수 있는지에 관해 간략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요새 유행하는 퍼스널 브랜딩과도 약간 맥이 닿아있는 느낌인지라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물론 모두가 이런 창의적인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 게다. 누군가는 틀에 박혀있지만 필요한 일을 해야만 사회라는 곳이 굴러갈 테니까. 하지만 그 안정된 틀이 누군가의 희생을 깔고 가야만 하는 거라면, 틀을 흔들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어렵게 쓰이지 않았으면서도 좋은 메시지를 던져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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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1 : 침묵의 언어 이상의 도서관 46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 한길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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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면서 추천받은 책이다. 필리핀 선교사로 10년 넘게 사역하시던 분이었는데, 타문화권에서 일을 하는 게 어디 쉬울까. 우리에겐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관행들이, 실은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무엇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면 결코 이런 일은 제대로 해 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시니 한 번쯤 읽어 볼만하다.


책 제목인 ‘침묵의 언어’는 비언어적 언어(의사소통 수단)을 가리킨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곤 한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표정으로 말할 수도 있고, 특정한 제스처는 거의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앞서도 말했듯,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명한 무엇이지만, 그 영역 밖으로 나가면 전혀 다를 수 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한 학기 동안 수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 학기를 지나서는 딱히 쓸 데가 마땅히 없기도 해서 더 익히지 않는 바람에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는 게 몇 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손위 남자 형제를 가리키는 수어였다. 가운데 손가락만 펴고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접은 채로 손바닥을 자신 쪽을 향하게 해서 들어 올리는 거였다. 그렇다. 꽤 많은 나라들에서 욕으로 사용되는 그 제스처와 너무나 비슷하다(그래서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건지도). 당연히 수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동작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는 이런 문제에 쉽게 부딪히곤 한다. 흔히 어떤 나라 사람들은 이렇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고, 저 나라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속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것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편견들은 사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대로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


앞서 말한 선교사님과의 대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시간에 대한 다른 감각 부분이었다. 우리 달리 도심지를 제외하고는 교통수단이 지프니 말고는 거의 갖춰지지 않은 필리핀의 경우, 정확한 시간에 약속을 잡는 것이 애초에 무리라는 것. 이런 걸 모른 채로 필리핀인들이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스텝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오해가 쌓이면 결국 의견 충돌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책은 이런 다양한 영역들에 대한 실제 사례들과 저자가 정리한 비언어적 언어의 다양한 양상들을 잘 제시하고 있다. 문화 간 차이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판된 것만 해도 2013년이니 벌써 10년 전이고, 원서는 무려 1959년에 나왔으니 그 사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이해를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미 당시에도 미국 정부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했다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싶다. 우리나라는 불과 1년 후 4.19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이승만 정부의 극심한 정치 부패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기초적인 인문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한 사례들의 나열을 넘어, 저자 나름대로 이런 다양한 영역들의 정리를 통한 체계화까지 시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 책보다 좀 더 세련된 책들도 분명 있겠지만, 역시 근본을 손에 드는 게 주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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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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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볍게 생각해고 손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읽기가 어려웠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번역 투의 문체가 참 힘들다. 당장 책의 부제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이다. 무슨 말인지 뉘앙스는 이해가 되지만, 이게 우리말이 맞긴 한가? 보니 전문번역자가 아니라 박사학위까지 받은 관련 분야 전공자이다. 물론 모든 문장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좀처럼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또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집필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점이다. 앞서의 부제를 보면서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종의 대안자본주의를 제시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물론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예컨대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미국 오리건주의 한 산지의 버섯채집인들로 구성된 캠프는 조금은 임금노동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러 사람들로 채워져 있긴 했지만, 그게 이 책의 저자가 찬양하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 같지는 않다. 애초에 이 송이버섯 채집 경제는 너무나 규모가 작아서 무슨 구조를 논할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럼 또 송이버섯의 생태와 관련된 다양한 과정들을 추적하는 식물학적 접근이냐, 이 또한 책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게 또 중심인가 싶으면 그건 아니다. 환경보호나 생태학적 관점도 담겨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메인은 아니고.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제를 보면, 저자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어떤 지역에 사는 특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송이버섯을 중심에 두고, 그걸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인 듯하다. 연구 주제가 독특하긴 하다. 여기에 포스트인문주의 같은 조금은 어려운 말을 사용해 설명을 하긴 하지만, 뭔가를 그려내고 있다는 정도만 와 닿는다. 애초에 이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은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다큐 클립을 보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경우엔 그런 걸 또 한참 들여다보며 재미를 느끼긴 한다.


우선은 일본에서 송이버섯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자세한 서술이 눈에 들어온다. 송이버섯은 대규모로 재배할 수 없고 그저 채집할 수 있을 뿐이기에, 어떤 산업적인 구조라는 게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또 송이의 가치를 높여주는지라, 일본에서 (좋은) 송이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과는 다른 차원의 선물로 여겨진다는 것.


한편으로 미국의 송이채집자들의 세계도 흥미롭다.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온 소수민족들이 대거 포진한 이들의 무리는, 저마다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버섯채집허가증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종종 사유지에도 들어간다)에서 송이를 채집하는 삶을 꾸려간다. 그러면서 이들은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난 일종의 자유를 누리는데 그들이 채집한 송이를 판매해서 생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판매 과정이 일종의 경매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또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송이버섯의 생태 부분과 관련해서, 우리가 흔히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즉 인간이 개입을 덜 하고 알아서 각 생물들이 자라도록 하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 또한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송이는 교란된 숲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벌목이 이루어지고, 인디언들이 일부러 불을 내 화전을 일구고 떠난 자리, 겉으로만 보면 삼림이 훼손된 것 같은 그런 자리에서만 송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저 잘 ‘보존’된 숲은 ‘방치’된 숲일 수도 있다는, 그래서 오히려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지적은 꽤 새롭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과적으로 이 책은 송이버섯을 둘러싼 수많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다는 느낌이다. 다양한 주제들과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 또 그들의 고향을 비롯한 다양한 지리적 내용들이 이리저리 섞여 풀려나온다.(알라딘에서 이 책의 분류는 인류학, 식물학, 생태학, 환경학까지 망라한다 ㅋ)


다만 버섯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경제가 뭔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엄청난 찬사(대개 책의 추천사라는 게 그렇지만)가 오히려 살짝 부담스럽달까. 다만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어떤 변화를 주는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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