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마스크 수급이 불안정하던 때, 신분 증빙용으로 여권 들고 약국에 줄 서 있었던 기억을 꺼내니 친구가 "정말? 정말?"을 연발하며 놀라워하는 걸 보면서,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합니다. 코로나가 확산 일로에 있던 때, 아파트 단지 내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항균력 99.9% 시트지와 '턱스크 혹은 노마스크 주민은 엘리베이터 이용 마시라'는 경고문도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던 때는 서울 소재 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거주지역이 탄로(?)났다는 한 모녀가 전국구 뉴스거리가 되었더랬죠. 코로나 확진 사실을 숨기고 과외를 했던 인하대 대학원생은 실형까지 받았고요. QR 코드 확인 없이는 공공장소 출입이 어려워졌기에 홈리스 분들이 (도서관이나 백화점에 비치된) 정수기를 이용 못해 물조차 마시기 어려웠다는 인터뷰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터널을 지나는 와중에 너도나도 '포스트코로나'를 예측했지요. 드디어 그 터널을 지나온 2023년 시점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저는 코로나가 개인 및 공동체적 차원에서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포스트코로나 #팬데믹 #마스크


위 키워드로 검색하면 아찔할 정도로 많은 신간이 쏟아집니다. 시류를 파악하는 데 부지런한 저자와 발 빠른 출판사들 덕분이지요. 책이 워낙 많아서, 고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으로 고른 이유는 지은이의 약력 때문이었습니다. 정수근 교수는 연세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친 심리학 박사입니다. 네임벨류에 넙죽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법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자의 전문성이 '코로나 시대 정신건강'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다뤄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저자는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봄, 즉 약 6개월 안팎의 기간 동안 [팬데믹 브레인]을 집필했다고 후기에서 밝힙니다. 또한 본인이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므로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거나, 최신자료를 활용하다보니 정식으로 학술지로 출간되지 않은 연구들에도 기댔다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편집을 야박하게 했다면 230쪽을 150쪽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을 본문은, ""코로나는 우리의 뇌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를 Q&A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1, 2, 3부로 구성된 책의 얼개를 가볍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인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사회적 고립 실험' 중이라는 전제하에 팬데믹을 겪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서술합니다. 저자는 감염 후유증으로 섬망, 브레인 포그, 그리고 인지저하증을 언급하고,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인지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리학자인 만큼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나 축소가 해마(인지능력과 관련)의 축소로 연결된다는 실험, 코로나로 인한 스킨십 부재 혹은 감소가 뇌의 체감각 기회를 감소시켜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무서운 연구결과도 언급합니다. 특히, 소위 "코로나 베이비"의 인지능력 저하에 대한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11~2019년 사이 태어난 아기들 IQ 98~107인데 반해서,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태어난 아기들 IQ 평균은 86, 2021년생 아기들 아이큐 평균은 78.9 였다고 합니다. (뭣이 중한디? 심리학자는 역시 '인지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를 느끼게 했던 1부 였습니다)

2부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


2부에서는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끌 이야기들을 카드뉴스 수준으로 나열합니다. 예를 들어, 줌 피로(Zoom Fatigue)의 원인이나, "마기꾼"의 비밀(마스크의 인식방해 효과), 마스크와 언어습득 능력의 상관관계 등등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린 익숙한 화두들이 각각 소챕터를 이루는 구성입니다.

저는 2부를 읽다 여러 차례, 책을 덮었는데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백신접종 후유증의 개인편차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믿고 기대하느냐에 따라 후유증을 심하게 혹은 약하게 겪도록 만들 수 있다"(135)고 주장합니다. 출판사측에서는 친절하게도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만큼 아프다"라는 소제목을 달아 주었지만 저는 고개 갸우뚱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적인 사람일수록 작업기억용량이 크다는 주장도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주장을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리학 문외한이라 "작업 기억 용량"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중장기적 손익 계산을 더 잘하는 사람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더 협조적이라는 주장으로 윗 글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작업 기억용량"만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자발적 협조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한데요. 반례를 들자면, 외부로부터의 시선, 즉 문화적 압력이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 유럽과 미국에 비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 지키는 데 철저했습니다. 

3부 "펜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3부는 "팬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제목에 담긴 낙관적 뉘앙스 그대로 인간이 팬데믹을 잘 이겨내리라는 데 저자가 한 표를 던집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자여서 그런지, 흥미롭게도 그 재난 극복의 힘을 "인간 뇌의 가소성"에서 찾습니다. 즉, 심리한 문외한이자 평범한 독자로서 제가 보기에 그 관점은 1부와 2부에서 내내 보이는 전지구적 차원의 재난에 대한 개인화된 해석과 해법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정수근은 팬데믹 이겨내는 해법으로, 종교 활동 등 사회적 교류와 지지 높이기, 감정 조절력 높이기, 공포 영화를 즐겨주지, 꿀잠 자기 등 지극히 개인화된 차원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앞서 말했던 QR 코드가 없어 공공시설의 정수기 사용을 못했던 홈리스분에게 공포 영화를 즐겨서 회복 탄력을 높이거나 꿀잠 자라는 해법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저자 정수근 교수는 코로나 시기와 현재에도 활발하게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저자의 최근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팬데믹과 관련한 심리 문제를 다룬 글은 없더라고요. 저는 저자가 2024년쯤에 [팬데믹 브레인] 후속판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시 내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직 정수근 교수만 제시할 수 있는 화두와 날카로운 분석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팬데믹 브레인]이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잠정적인 썰 위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한 걸음 멀어져서 차분하게 분석한 내용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팬데믹 브레인]을 읽으며, 오늘날의 미디어가 전문가적 지식이라는 것을 얼마나 빠르고 널리 대중화시키는지, 전문가적 지식이 얼마나 평준화되고 있는지 느꼈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에서 제시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SNS인풀루언서가 발행하는 가쉽거리 포스팅이나 뉴스에서 많이 읽어왔거든요. 이 점은 흥미롭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주, 충청북도의 한 사찰에서 찍어 온 사진입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았고, 음용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없는데도 기꺼이 바가지를 들어 물을 드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코로나 시절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광경입니다.


다시 한번,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과 망각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와 정신건강에 관한 다른 글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자료 아시는 분들은 댓글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3-10-1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공녀 동화 보물창고 44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에델 프랭클린 베츠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버전의 한국어 번역서를 비교해서 보았는데 제 소견에는 전하림님의 번역이 매우 매끄럽고 이해하기 쉬워서, 추천합니다. 유년기의 극빈함을 결국 글쓰기로 극복해낸 저자와 소공녀 세라 사이에는 유사성이 크네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3-10-07 0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공녀 세라!
저 초4 때...아, 국4 때네요.ㅋㅋㅋ
소공녀 독후감 써냈었는데 학교 대표로 상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도 대회까지 올라간다던데 거기선 연락이 없어 아쉬웠지만 유리관 속에 들어있는 엄청 큰 트로피를 부상으로 받아왔었어요. 엄마 아빠의 엄청난 자랑거리였던지 안방 자개 장식장 한가운데 똭 놔두고 놀러오시는 손님들마다 자랑을...ㅋㅋㅋ
그래서인지 그 후로 소공녀 제목만 들어도 그 황금 트로피가 늘 생각납니다. 소중한 추억거리라 자랑질을^^;;

얄라알라 2023-10-07 15:26   좋아요 0 | URL
책읽는 나무님^^ 시 대회 상에서 유리관 속 트로피라면 ˝대상?˝

게다가 황금!!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신데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글재주가 남다르셨던 나무님도 넘 멋지시지만, 따님의 재능을 칭찬하고 더 키워주실 수 있으신 부모님께서도 참 멋지신 것 같아요.

전 학교 대회에서만 상 받고, 각잡고 외부 글짓기 대회만 나가면 좌르르 미끄당 해서 책읽는 나무님처럼 황금 들어간 기억이 없어요 ㅎㅎㅎ

소공녀 어른 되어 다시 읽으니, 또 다른 맛이긴 합니다. 저자가 가난을 견뎌내면서 세라처럼 이야기의 힘으로 자기 주문을, 자기 세뇌를 참 많이 했겠다 싶어요

책읽는나무 2023-10-07 22:47   좋아요 1 | URL
저도 학교 대표로 두세 번 나갔을 땐 죄다 미끄러졌었어요. 저 독후감은 학교 숙제로 제출했었는데 선생님이 외부에 응모했었는지 몰랐었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부에서 받았던 상이었습니다.
근데 그 황금 트로피는 대상은 아니었고 최우수상이었나? 그랬을 겁니다. 중등 2명 초등 2명 그렇게 4명한테 줬었는데요. 여튼 트로피가 엄청 컸었어요. 근데 그 자랑스럽게 반짝이던 트로피가 시간이 지날 수록 칠이 벗겨져...ㅜㅜ
트로피 위에 여신이 월계수 관을 들고 있었는데 그 여신의 옷도 자꾸 벗겨지고...ㅋㅋㅋ
동심이 많이 깨졌었습니다.ㅋㅋㅋ
전 진짜 황금인 줄 알았거든요.@.@

암튼 소공녀 세라의 이야기는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다면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긴 하겠습니다.
전 예전에 <제인 에어> 를 읽었을 때, 제인 에어가 숙모에게 쫓겨나 기숙 학교에 들어가 제인 에어는 구박받고 있던 친구를 만나거든요. 제인 에어와 그 친구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 받던 모습을 보며 소공녀 세라를 좀 떠올리기도 했었어요.
선생님께 구박받고 있던 그 친구가 정신력이 고매해 보여 꼭 세라같았어요.^^

얄라알라 2023-10-08 16:08   좋아요 1 | URL
아웅...... 책읽는나무님 매력 터져요 ㅎㅎㅎ 엄청 큰 트로피였으니, 설마 금매달처럼 깨물어보시진 못하셨겠죠? 진짜 금인줄 아셨다가 칠이 벗겨지다니 ㅋㅋㅋ아이공...어린이 책읽는나무님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까요?^^ 사랑스러운 어린이이십니다

서니데이 2023-10-08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만화영화도 보고, 어린이용 문고본도 보긴 했는데, 이제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최근 번역을 읽어보면 이전보다는 원작에 가까울 것 같긴 해요.
얄라알라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10-08 16:0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저는 어렸을 때 너무 좋아해서 [소공녀] [소공자] [비밀의 화원] 몇 번씩이나 읽었는지 몰라요.

공통적으로 모두, 끝에 가서는 보상 받는 해피 엔드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엔딩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어른 되어 다시 읽으니 떠오르더라고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연휴의 가운데 날, 일요일 행복한 시간 보내시어요^^
 


사회학자 윤여일, 1990년대론






1. 90년대 규정
■ 단수가 아닌 복수plurality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이질적.시간성들이 교차하고 혼재하고 갈등.
■ 90년대 언제부터?
: 1987년, 1991년에 주목! 
: 대비법, 단절론의 유행_ 1980s 대항문화 vs. 1990s 문화주의
: 1999년 밀레니엄 신드롬

2. 문학
■1980s 군부정부의.언론기본법으로 비판언론탄압받고 잡지 폐간됨.
■ ˝문학동네˝ 1994 창간, ‘투사-사상가-선각자로서 작가‘에서 시장의 관심을 받는작가로
■ 문단권력논쟁
: 문언유착_ 조선일보와 문학동네
: 크게 보면 비단 문학계 뿐 아니라.학계, 문화계, 정치권, 언론계 등 여러 영역.내.권력의 문제

04. 사상
■1980년대 ‘불온서적‘ 사회과학서
■ 포스트모더니즘.등장
■지적.주체성의 문제, 탈식민화
■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분기하는.사상계: 키워드는#타자#욕망#감각#몸#해체#개성#개별자

05. 문화
■ 소비대중문화의 출현과 확산
: 대중문화지의.범람.그.자체가.특징적인.대중문화현상


『비평과 전망』은 창간 이후 출판자본을 갖춘 대표적 문학지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와 그 편집위원들을 ‘문단권력‘으로 지목해 줄기차게 비판했다. 이들만이 아니라민음사, 실천문학사, 세계사 등이 발간하는 당시 문학지는 주식회사인 출판사와 공생관계에 있었다.  - P49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3-09-30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90년대가 정말 잡지의 르네상스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잡지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문단권력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자신
들은 절대 권력이 아니라고 부인하
는 게 아니겠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2023년 '어퍼컷튜브'님이 제작한 영상에 헌납한 시간을 책 읽는 데 썼다면? (죄송합니다. 질문에 불손한 의도는 없어요. 어퍼컷튜브님, 책덕후 제가 책을 포기하고 수백 시간 투자했을 만큼 고퀄 영상을 올려주셨으니 구독자로서 감사드립니다). 새벽에 몇 시간씩 스크린 앞에서 놀다가 잠들 때면, '이 시간에 책 읽었다면?' 매번 후회막급 질문이 따라온다. 

*

그리고 질문에 답해보자면, '못 해도 20권?'

왜냐하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보니 결과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연휴 이틀 동안 이동 거리는 짧았으나 차 안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는데, 그 와중 무려 두 권 읽었으니까. (물론 핸드폰 동시충전해가며 중간중간 놀기도 했다.) 그래서 동기부여 겸 자화자찬 목적으로 이 포스팅을 올린다.


 [혼자여서 좋은 직업]은 9월 28일, 교통체증을 잊고 읽었다. 일본 작품을 찾아서 읽는 수준의 열독자는 아닌지라 권남희 번역가를 몰랐다. 하지만 이 책 표지는 진작 눈에 담아 두었다. 판매량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권남희는 국수 넘겨 먹듯 글이 술술 넘어가게 잘 쓰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생활형 유머 감각이 남다르고 낙천적인 성품이 문장에 담겨있어서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감히 책 한 권으로 남의 삶을 단정짓는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읽어보니 권남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앙다물고 뭔가를 결심하지 않아도, 특유의 친화력과 인간적 매력 덕분에 삶의 고비에서 술술 일이 잘 풀리는 사람. 배울 점이다.




 

내게 창의성과 혁신성이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일부러 고른 책. [시선의 발견]! 그러고 보니, 나는 새내기기 때도 카피라이터나 광고기획자의 글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그때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마치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듯, 내 부족분을 다른 이들의 충만한 경험과 지혜로 충당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통통 튀는 노란 책을 찾아다니는 걸 보면, 그 보충은 잘 이뤄지지 않았나 보다. 

[시선의 발견]을 쓴 임영균은 '갓기획'의 대표로서 정부기관 및 기업체에서 기획 관련 강연을 부업(본업) 삼는 듯하다. 이 분의 강의는 안 들어봤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을 것 같다. "사례 맛집"이다! [시선의 발견]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좌르르 나열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정주영 회장의 보리싹 기획'은 그 기발함과 대범성 면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워낙 유명한 일화라 다른 출처를 통해 익히 들어왔어도 또 놀랍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을 대비 UN군 묘소를 초록으로 단장하는 과정에, 전국의 조경업체가 모두 '엄동설한 잔디 깔기 불가'라고 했을 때 초록 보리를 공수해오다니! 



이번 연휴 기간에 [번역의 모험]도 읽고 있다. 1/3 지점을 넘어가고 있다. 예문을 풍성히 들어주어서, 번역학원을 다녀본 적 없는 이에게 특히 유용하다. [펜데믹 브레인]과 [나는 정상인가]도 줄 서 있다. 6일 연휴 기간에 과연 내가 스크린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몇 권이나 더 읽을지 궁금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23-09-30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어라고 해서 겨우 만들어내는 타입이다 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뭔가를 해나가는 사람이 부럽네요. 제 직업이 딱히 ‘혼자여서 좋은‘ 직업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 계속 혼자 일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함께 의논하고 결정할 partner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또 이렇게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얄라알라 2023-09-30 14:02   좋아요 1 | URL
‘혼자 일해서‘ 좋은 점 중에는 책덕후 Transient님의 책 수납에 대해 아무도 터치 하지 않는 점도 있을 듯 합니다^^
일도 하시고, 새벽 04시에 운동하러 일어나시고 그 부지런하심을 흉내도 못내겠어요^^

transient-guest 2023-10-01 00:29   좋아요 1 | URL
자유는 확실히 혼자 일하는만큼 누리고 있습니다 잠깐이지만 직원이 있었었는데요 은근히 눈치를 보게 되더라구요 뭘 해도 ㅎ

페크pek0501 2023-10-03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휴 기간 동안 책 한 줄 못 읽었어요. 일로 바빴죠. 병 나지 않게 조심할 뿐...
명절이 되면 싱글들이 부러워진다는...

얄라알라 2023-10-03 17:30   좋아요 1 | URL
저는 몇 권 들고 다녔는데 끝까지 읽지는 못했네요. 건강 잘 챙기시어요 페크님
 

여기서 달리게 될 줄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호수 둘레길을 처음 찾았는데, 총 3Km 중 약 1/3지점, 1Km 즈음 걷고나니 갑자기 뛰고 싶었습니다. 실은 반대방향에서 달려오던, 마라토너 특화 운동복과 신발 풀장착하신 할아버지를 보고 감명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뛰고 싶어졌습니다. 추석 명절이라 가족단위로 많은 분들이 산책하시는데 죄송스러웠지만, 질주 본능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주욱 달리느라 사진 속 호수의 풍경이 일정하죠? 반대 방향에서는 달리느라 사진 찍지를 못했습니다. (이 동네 살면, 매일 둘레길 2바퀴씩 달리기 하기 딱 좋겠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행복한책읽기 2023-09-29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알라님. 질주본능. 추석에도 달리다. ㅋ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시는 듯해, 알라디너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좋아요. 저는 더더 바빠져서 책 읽을 겨를도 잘 안나요. ㅠㅠ 인증이나 하러 들렀다가 알라님 글과 사진이 딱 걸려 인사 드리고 갑니다. 해피 추석~~ ^^

얄라알라 2023-09-29 23:39   좋아요 0 | URL
방금 추석 달 보고 왔어요. 정확히는 달무리!
행복한책읽기님께서 해피추석 인사 전해주시니, 감개 무량입니다.

얼마만인가요? 바쁘시다니 좋으면서도, 아무쪼록 쉬엄쉬엄 워라밸하시고 행복하시어요!

은오 2023-09-30 0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 동네에 살면 산책 싫어하는 저도 맨날 나가서 걷고(뛰는건 싫다..)싶을 것 같은데요! 😱

transient-guest 2023-09-30 0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리기는 걷기와 다른 즐거움이 있죠.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일주일에 한번 뛸까 말까 하네요.

moonnight 2023-09-30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존경합니다 @_@;;; 달려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네요@_@;;;;

이하라 2023-09-30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명 받으실만 하셨습니다. 연로하신 분들께서도 달리시는데 자극이 되실만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