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 믿음과 우연 학아재 모노그라프 2
김명석 지음 / 학아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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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은 엄밀하게 객관성의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개 중2때 정도에 배우는 경우의 수, 확률(probability)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께서는 확률에 객관과 주관이 혼재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말한 저 확률에 대해서는, 저자가 영어로는 chance로 한정하고, 우리말로 "일어남직함(p13)"으로 번역합니다. 저 확률은 주로 물리적 사건을 다룹니다. "사건"이라는 말은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정식 용어로 사용합니다. 

특히, 주관이 많이 끼어들어가는 확률은 명제를 다루는 확률입니다. 저자는 책 처음부터, 물리사건을 다루는 확률과, 명제를 다루는 확률은, 서로 매우 다르다고 전제하고 이 책 논의를 시작합니다. 독자는 먼저 이 점부터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또, 명제를 다루는 확률은 "일어남직함"과 대비하여 "믿음직함"으로 이름짓습니다. 이 책은 주로 명제의 "믿음직함"에 대한 논의입니다. 

명제의 진릿값에 대해서는 고1, 혹은 중2 정도에 약간 배우기 시작합니다. 어떤 명제는 참 아니면 거짓의 값을 가집니다(아니라면, 그건 명제가 아니라고 고교에서는 가르침). x값에 무엇을 대입하느냐에 따라서 참 혹은 거짓이 되는 걸 조건명제(혹은 명제함수)라고 합니다. 명제함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x에 어떤 값을 대입하니 참 또는 거짓, 두 함숫값 후보(=치역의 원소들) 중 하나가 딱딱 나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게 중등교육 과정에서 배웠던 명제인데,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사실 칼로 두부 자르듯 획일적으로 가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1+1=2 같은 건 판별이 쉽습니다. 그러나 예컨대 칸트의 "네 의지의 격률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게 하라"라든가, 헤겔의 "국가는 인륜의 최고 형태" 같은 건, 참과 거짓을 가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참보다는 거짓에서 훨씬 멀겠으나, 1+1=2만큼이나 참이라고는 단언이 어렵습니다(그래서 비트겐슈타인도 생전에 결국 나가떨어졌던 것입니다). 심지어 수학적 진리인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도 의심하여, 아니라면?을 전제하고 전개, 구축하는 로바쳅스키 기하학, 리만 기하학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참과 거짓 사이에 여러 중간값이 있다고 가정합니다(현실적이죠). 거짓이 0이고 참이 1이라면, 그 사이에 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여러 실숫값이 있습니다. 이 모습부터가 벌써 기존 확률과 닮았고, 게다가 그에 부가되는 여러 정리(특히 p54, p55 등에 나오는 것들)까지 기존 확률론의 구조, 공리와 신기하게도 부합합니다. C04 같은 경우,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우는 집합론에서의 n(A∪B)=n(A)+n(B)-n(A∩B)하고 사실 완전히 똑같은 내용입니다. 또 책 중반부 이하에 나오는 조건부 확률(=베이지언 확률)도 우리가 고2때 배웠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여튼 그래서 이 체계도 포괄하여 probability라 부르는 건데, 다만 (앞서 말했듯) 저자께서는 두 확률은 성격이 매우 다르기도 하다고 간주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물리사건을 다루는 있음직함과, 명제를 다루는 믿음직함은 서로 교차하는 부분이 어디인가? 대표적인 게 양자역학 현상의 역설(과연 역설인지 아닌지 모릅니다만)로 알려진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것입니다. 저자께서는 이미 전작 <엔트로피>에서 이 이슈를 논했었는데,  물리 현상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확률분포의 구조"를 끌어들인 데서 혼란이 일어났었고, 아직도 평범한 두뇌로는 이 미묘한 아이러니가 쉽게 납득이 안 됩니다. 내가 저 빛을 보는 순간, 그 입자의 위치가 결정된다? 주관과 객관, 믿음과 실재가 복잡하게 얽혀 혼재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자께서는 믿음직함과 일어남직함이 서로 다르다고 말씀하시지만, 거꾸로 독자인 저는 둘이 너무도 닮았으며(사실 당연한 게, 혹 아니라면 왜 둘 다 "확률"이겠습니까?), 심지어 p196 이하에서 저자가 새롭게 설명하는 몬티 홀 프라블럼도 이 관점으로 보니 다른 뜻으로 다가왔습니다. 답이 너무도 뻔한데, 왜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제법 똑똑하다는 사람들조차)이 오답을 내었을까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주관과 객관을 혼동해서입니다. 정답은, 바꾸는 편이 맞다이지만, 왠지 마음이 그러고 싶지 않게 흐르는 게 이 희한한 문제에 들어 있는 요소입니다. 또 사회자가 "답을 안 상태에서 문을 하나 열고" 이제 인식 상황이 바뀌었으니 베이지언을 적용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p200)도 칼날같이 예리합니다. 물론 몬티 홀 문제는 이미 바른 풀이가 많이 나와 있는 상태이며 난제도 뭣도 아니지만, 저자의 이런 논의 속에서 다시 보니 또 새로운 것입니다. 

p307에서 저자는 기존 "대칭성"에다 새 이름 "한결의 원리"를 준다고 하시는데 왠지 저도 이 편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p313에서 마침내 저자가 단언하듯, 일어남직함과 믿음직함의 결정적 차이는 동역학을 따르고 않고의 여부입니다. 독자들이 깊이 음미하고 되새길 묵직한 명제(?)이며, 매우 난해한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 주신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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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단어
홍성미 외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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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을 보면 필자께서는 영화 <인턴>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미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인데도 권위의식 없고, 딸뻘보다 어린 CEO 밑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며 수행하는 인턴사원. 요즘은 사실 은퇴자들이 어디 가서 꼰대질하지 않고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도 꼬박꼬박 존대하며 자기 할 일 열심리 합니다. 물론 젊은 시절에도 후졌던 사람은 늙어서라고 뭐 멋진 모습이 나오겠습니까만. 사회가 선진화하다 보니 사람들도 그에 맞게 매너 좋아지고 세련되고 감정보다는 이성을 더 찾아가는 것입니다.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자신은 과연 남에게 요구하는 그 덕목을 본인에게 관철하는 중인지를 먼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p63)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검색 한번 해 보고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얄팍하고 단편적인 지식 몇 점을 갖고 잘난척하는 건 그야말로 우습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보다 근본적인 걸 꿰뚫을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건데... 문제는 정말로 지식도 지혜도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무식해서 아무 가망도 없는 사람이, 대책없이 자기중심적(p67)이기까지 해서 지식 없는 자신에게 지혜는 누가 자동으로 채워 준 것처럼 날뛴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지식을 쌓아 보려고 노력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은, 그 정신에 지혜도 대단히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면 제 입으로 지혜니 뭐니를 떠들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만 할 뿐입니다. 내가 부족하다 싶으면 조용히 인정(p155)하고, 불평할 시간에 자기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숫자의 미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아홉수(p47)라는 게 있을 리도 없고, 나이 계산을 무슨 기준으로 하는지도 정해진 게 아닌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그 구간으로 볼지도 모호합니다. 아홉수를 잘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운수대통하기라도 하나요? 예전에는 질병, 천재지변에 워낙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기에 사방팔방에서 죽음에의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렇겠습니까.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살다 죽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생의 구간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건 좋다는 생각입니다. 

처음에 좋았던 인연이 계속 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못 될 가능성도 큽니다. 아니 뜻대로 안 되기가 훨씬 흔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처음에야 못 견딜 만큼 아프고 괴롭겠지만, 겪다 보면 그런대로 참을 만합니다. 그래서 필자님도 p135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면역력이 생긴다 같은 말을 하시는 거겠습니다. p138에서 인용된 영문에서 if 조건절의 would는 소망, 희망을 뜻하는 용법이겠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사실 쓰레기 봉투라는 게 그렇게 튼튼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조금 욕심을 부리면 북 찢어집니다. 매번 겪으면서도 겪을 때마다 뭘 좀 배우지 못하고 매번 봉투를 찢습니다. 여기서 필자가 끌어내신 교훈은, 내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믿는 행동을 너무 고집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냥 남들 따라하는 행동은, 시도해 보고 결과가 안 좋으면 그냥 단념합니다. 그런데 내가 내 나름 애 써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인데 남들이 수용 안 한다? 이럴 때는 내 생각에 애착이 생겨서 계속 고집하는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내 나름의 정의감(p146)까지 붙으면 대책이 없어집니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남들한테도 정의이겠는지, 나한테 뭘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한테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남 욕하지 말고, 저런 행동을 나는 하지 말아야지 자성이 앞서야 하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나이가 젊은 분들도 난임으로 고생하시곤 합니다. 어려운 시도 끝에 임신에 드디어 성공하셨는데, p206을 보면 이상하게도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마음이 편안하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세상사(世上事)는 우리가 이해 못 할 신비한 일들이 많습니다. 태어날 때 여러 가지로 걱정했는데, 지금은 또래보다 키도 크고 건강해서 너무도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네요. 이런 일은 생판 남이 읽어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네 분의 필자가 아홉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로 본인들의 사는 이야기에서 잔잔한 교훈을 도출하는 책인데, 공감되거나 흐뭇해지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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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공부 수학문해력 하나로 끝난다 - 초등학교 4학년, 수포자가 되는 이유
김은정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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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도 잘 생각해 보면 대략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공부에 고비가 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과목보다 수학이 더 발목을 세게 잡았는데, 계산도 어려워지고 개념도 뭔가 더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원하는 전공을 이어나가려면, 수학을 못 해서는 선택의 폭이 크게 좁아지며, 취업 후에도 직장에서의 위상이 안정적이기 힘듭니다. 따라서 초 4 때 이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해 내느냐가 아이의 장래를 보다 밝게 진행하게 돕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과목을 암기로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과학도 일부 과목은 그저 암기 훈련으로 바뀐지 오래이며, 심지어 수학도 암기 과목(p32)이 되곤 합니다. 물론 저자께서도 수학에 전혀 암기가 필요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중3 때 배우는 근의 공식도, 고1 때 배우는 코사인 법칙도, 고2 때 배우는 삼각함수의 합성이나, 합을 곱으로 바꾸기도, 올림피아드 기하 할 때 배우는 메넬라오스 정리도 모두가 다 암기입니다. 그러나 수학은 기본적으로 창의럭과 상상력을 요하며, 저런 공식들은 문제를 풀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것이지, 영단어나 세계지리 자원 매장지 외우듯 외우는 사항은 아닙니다. 이유도 모르고 뭘 외우는 일만큼 생지옥살이도 없겠는데, 수학은 본디 문제를 풀고 환희를 느끼는 활동이어야 하므로 뭔가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p148 이하에는 자기 주도 학습의 본질과 효과에 대해 설명이 이어집니다. 

p94 이하에서 저자는 수학 교육 과정에서 무엇이 인재, 학생들의 정신에 배양되어야 하는지를 논합니다. 교육부에서 정한 "수학적 사고"에는 내용적 사고와 기능적 사고가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 보면 과연 이런 자질을 갖춰야 수학을 잘하게 되겠구나 싶은 항목들입니다. p98에서 저자가 강조하듯이, 수학은 남한테 이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혼자 힘으로,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그 핵심이 놓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빛나는 창의력이나 순발력뿐 아니라 인내심(p103)도 배울 수 있습니다. p97에서 저자는 장연희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아무 생각 없이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어내는 게 아니라, 생각, 제발 생각이라는 걸 하며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수학은 대단히 복합적인 정신 작용을 요합니다. 개념과 논리도 잘 활용해야 하지만, 직관도 중요합니다. 직관이 슬슬 무력화하는 것도 초4때부터입니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항상 같다는 원리를 두고 옛 사람들은 "바보가 건널 수 없는 다리"라고 불렀습니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을 것 같지만, 원에 접하는 어떤 선과 현이 이루는 각, 그리고 그 현의 원주각이 같다는 정리는, 그게 과연 옳다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또, 몬티 파이톤의 역설은, 일일이 경우의 수를 안 따지고도 "바꾸는 편이 유리하다"는 걸 (영화 <21>에서 주인공이 말하듯) 직관적으로 바로 알아챌 수는 없을까요? p88에서 저자는 개념, 직관 등을 두루 키워 궁극적으로는 수학적 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는 수학문해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습니다. p66 이하에서 저자는 "왜 수학 선생님이, 국어도 아니고 수학에서 독해력, 문해력을 강조할까?"라고 물은 후, 류승재 저자의 책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언어능력이 또래보다 2년 이상 뛰어난 아이들이, 수학 선행 능력, 심화 능력이 모두 뛰어나며, 1년 뛰어난 아이들도 선행 능력은 뛰어나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언어와 수학의 자질이 실은 매우 밀접하게 이어져 있으며, 저 문장을 잘 읽어 보면 역시 심화능력이 선행능력보다는 더 뛰어나고 중요한 자질임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선행능력과 심화능력도 구분하지 않는데, 그래서 아이가 이해를 하든 못 하든, 진도만 빠르게 빼면 일단 안심합니다. 이건 분명 큰 착각인데, 책 곳곳에서 저자께서는 일반인들의 이런 잘못된 통념을 비판합니다. 문제 인식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아이의 수학 실력이 개선될 리가 없습니다. 

"수학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몰입이다. 수학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 습관, 손가락으로 하는 것이다.(p139)" 저자가 인용한 이 문장들은 어느 사교육업체의 카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올바른 수학 교육의 핵심이 다 담겼다고 합니다. 수학을 잘하는 게, 타고나면서부터 머리가 좋은, 프리드리히 가우스나 앙리 푸앙카레나 폰노이만 같은 천재들에게만 가능하다면 우리들 대부분은 그냥 마음편하게 일생을 수포자로 살기로 하고 일찌감치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학은 길만 바르게 접어들면 누구나 잘할 수 있고, 수학의 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 세상도 더 개선되므로, 오히려 어린 학생들에게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수학 공부를 가르치는 게 의무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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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독일어 첫걸음 - 왕초보부터 A2까지 한 달 완성 GO! 독학 시리즈
김성희 지음, 김현정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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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어려워하는 우리들을 위해 시원스쿨에서 그래도 초보자 배려를 많이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접했던 외국어 교재들은 불친절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보면 독일어 알파벳도 모르는 학습자들을 위해 매우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p17을 보면, R r의 명칭은 에아 혹은 에르흐라고 합니다. 저는 고교 때 이 철자 이름을 에르라고 배웠는데, 이 책, 같은 페이지의 예를 보면 Bruder(형제)의 발음도 "브흐루더"라고 한글로 적어 놓았습니다. 사실 Radio 같은 단어도, 독어 원어민들은 "하디오"처럼 발음해서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p51을 보면 식사 전 대화하기 코너에서 구튼 아페티트 라고 인사를 받으면, 답 인사를 당케, 글라이히팔스라고 합니다. 이게 왜 "너도"가 되느냐면, gleich가 같다는 뜻, fall이 경우라는 뜻이라서 그렇습니다. 뭐 생각할 필요없이 입에서 바로바로 나오게 외우는 게 최상이긴 합니다만. 

사진은 영어로 photo입니다만 독일어로는 Foto라고 합니다. 그래서 p62를 보면 Familienfoto가 가족사진이라고 나옵니다. 명사에 -in이 붙으면 여성형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그래서 하나의 엄마 직업을 말할 때 선생님이 Lehrerin입니다. p86을 보면... 독어 공부 초장에 배우는 표현이 Wie heissen Sie?인데 영어와 달리 독어 동사 heissen은 "불리다(be called)"라는 수동 표현이라는 게 특이합니다. 여튼 그래서 Hans는 그것을 독일어로 뭐라고 해?라고 물을 때 이 heissen 동사를 쓰며, 여기서 또 알아둬야 할 게 "독일어로"라는 표현이 전치사 auf를 써서 auf Deutsch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영어는 달라서, 그냥 in German이라고 하면 되죠. 동계어라도 이게 언어 감각이 다른 대목이겠습니다. 

시원에서 나온 외국어 교재가 다 그렇습니다만 말문트고 코너에서 회화 표현을, 핵심배우고, 문법다지고에서 문법 사항을, 실력높이고에서 여러 응용문제를 통해 복습을, 어희늘리고에서 다른 유용한 표현들을 배웁니다. 그리고 마지막 독일만나고 코너에서 독일의 역사, 사회,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습니다. 

독일어는 다른 언어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 전철, 일종의 파티클이 동사 앞에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는 부분입니다.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 분리전철이고, 언제나 딱 붙었으면 비분리전철인데, 비분리전철은 그냥 하나의 동사로 보면 되므로 어렵지 않습니다. p112에서 이 분리동사 중 aussehen을 배우는데, 뜻은 "~처럼 보이다"라고 책에 나옵니다. 이 단어도, 분리동사이므로 아우스제엔이라고 읽는 게 원칙이나 독일어 네이티브들은 그러지 않고 아우세엔 같이 발음합니다. 잘못된 관행이긴 하나 원어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언어현실이기도 합니다. 

또 독일어에도 현재시제 단수 2, 3인칭에서만 불규칙변화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은 아이러니이지만 불규칙도 그 나름 규칙성이 있어서 이걸 캐치하면 아주 어렵지는 않은데, p113을 보면 nehmen 같은 것은 모음뿐 아니라 자음철자까지 바뀌므로(사실은 모음의 장단 때문이긴 하지만) 완전한 불규칙입니다. 같은 페이지의 gefallen은 불규칙 중에서는 그 변화가 예측 가능한 편입니다. 

p124에서 화법조동사를 배웁니다. 화법조동사는 영어에 없는 개념이므로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접속법에는 1식이 있고 2식이 있는데... 앞 p113에서 nehmen의 현재 불규칙 변화를 배웠고, 여기 p125에서 이걸 다시 짚습니다. 이 동사가 영어의 take 비슷하기 때문에 많이 쓰이는 편입니다. p133에 "저도 여기 길 잘 몰라요."라고 할 때, fremd라는 형용사가 영어의 strange, not familiar의 뜻입니다. 

어떤 형용사는 항상 특정 전치사만을 수반하게 하는데 이건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p161에는 ferig 다음에 오는 mit, zufrieden 뒤에 오는 mit를 가르칩니다. 또 Recht haben이라고 해서 "~가 맞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관용 표현을 배우게 합니다. zu Abend essen이 저녁 먹는다는 뜻인데, 앞에 오는 zu 전치사에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올컬러 편집이고 단어마다 발음이 한글로 달려 있어서 초보자한테 너무 편합니다. 역시 시원스쿨.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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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행복수업
김지수 지음, 나태주 인터뷰이 / 열림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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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2021) 11월에 이어령 교수님과의 인터뷰책 <마지막 수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 적 있습니다. 당시 인터뷰어가 책 중에서건 책 밖에서건 사람들 칭찬이 자자하던 김지수씨였는데 지금 이 책에서 니태주 시인과의 대담을 이끌어가는 분도 그분입니다. 출판사도, 같은 열림원입니다. 저자(인터뷰어) 서문 p10에도 이를 의식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름난 문인, 혹은 그 누구라도 자서전, 회고록 등의 형식으로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아주 능숙한 누군가가 대신 자신을 밝혀 주고 표현해 주는 것도 멋진 일입니다. 

p19에 나오듯이 오히려 나이 든 층보다는 나이 어린 독자들이 나태주 시인을 더 알아봅니다. 내년이면 여든이신 시인인데 그 독자층의 연령이 역전된 느낌입니다. 김지수 기자님 표현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그의 시를 랩처럼 읊고 다닌다"는 겁니다. 연예인 중에도 연세가 드신 후에 대중 사이에 확 각인된 분들이 있는데, 독자인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나 시인께서 젊으셨을 때에는 교직 활동에 전념하시느라 창작에 온전한 열정을 쏟기 어렵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아니면 독자들이 늦게서야 그를 알아본?). p170에 보면 40대 중후반에 장학사를 지내셨던 이야기가 잠시 나오는데 상하권력관계로 구분되는 관료 사회의 생리에 대한 그의 분노가 표현됩니다. 

"좋아요라는 디지털 아멘으로 유지되는 서울(p21)"을 떠나 김 기자님은 시인을 공주에서 만납니다. 예전부터 교육의 도시로 유명했던 곳(마침 나 시인도 공주사범을 나온 분입니다. 현 거주지이기도 하고)이라서 인터뷰 배경으로 더욱 제격인 듯합니다. 나이 차를 떠나 태주, 지수로 호칭하며(실제 대담에서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인격 간 교유와 소통, 영향력 교역을 희망하는 김 기자님의 심적 세팅이 재미있습니다. p183에 보면 "태주는 가만히 노래하듯 시를 읊었다."는 문장도 있습니다. p78에서는 태주와 지수 사이(!)의 우정이 논의됩니다. 공주(公主)의 남자라든가 무수리가 왜 나오나 했는데 시인을 공주(公州)에서 만나서라는 데 생각이 비로소 미치니 김지수 기자님이 참 어린이 같다 싶기도 했습니다. 하긴 인생의 신산을 다 겪은 노시인 앞에서 누구라도 어린이이긴 합니다. 

저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왜 이렇게 "예쁨"에 대해 말이 자주 나오나 의아했었습니다. 물론 문학이란, 시란, 결국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발버둥이긴 합니다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태주 시인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시구(詩句)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중략) 너도 그렇다"의 그 <풀꽃(p119)> 아니겠습니까. 이 시의 기막힌 포인트는 마지막 행의 갑작스러운 "너도 그렇다"죠. 

서문 p8을 보면 나 시인이 함께 떨자고 손 내밀어 줬다는 말이 있어서 무슨 뜻인가 했는데 본문 p46에 그 말이 나오더군요. 솔직히, 어떻게 보면 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질문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는데, 나 시인께서 (좀 의외다 싶게) 마치 모든 질문에 대해 답들을 준비하고 사시는 분처럼, 때로 기발한, 심오한 답들을 척척 하시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시인들은 (독자인 제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상대에게 맞춰 주기보다 본인 감정, 사고에만 충실한 분들이 많다고 여겨서였습니다. 그런데 좀 바꿔서 생각해 보면, 뻔하고 진부한 질문만 했으면 나 시인께서도 역시 뻔한 답만 하셨을지 모릅니다. 인터뷰어가 이처럼 좋은 답이 나오겠다 싶은 질문을 하시니 명답현답이 뽑아진 것 아닐지. 

p30, p31을 보면 시인은 지난 세기의 윤동주, 김소월 두 시인이 왜 이렇게 국민적으로 유독 애송되는가에 대해 한국인의 눈높이에 딱 맞는 분들이라는 답을 하십니다. <새로운 길(윤동주)>이 인용되는데, 시인은 "한국인이 이런 밍밍한 시를 좋아하기도 한다"는 취지로 골랐다고 하십니다. 밍밍하긴 하지만 김지수 기자도 말하듯이,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보면 그 특유의 리듬감이 참 좋습니다. 수미쌍관의 대표적 예죠. 

또 <윤사월(박목월)>은 참 좋지만 특수한 쪽으로 너무 갔기에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안 된다고 아쉬워하십니다. 두 작품 모두, 시인께서 젊으셨을 때 가르치셨던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이기도 하겠습니다. 특수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시각장애인이 등장한다는 이유에서? 눈먼 처녀니까 어차피 방문을 열고 밖을 봐 봐야 소용이 없고, 새 봄에 설레는 마음 달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건데 시상(詩想)은 참 기가 막힙니다. 이러니 박목월 시인이죠. 아무튼 이런 언급으로부터 나태주 시인께서는 대중성이라는 덕목에도 주의를 기울이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p148을 보면 이상, 김수영은 위대한 발명자이며, 자신은 소소한 발견자라고 겸손해하십니다. 발명과 발견의 차이도 예전 국어 교과서에 어느 설명문 주제로 다뤄진 적 있죠. p121에, 생전에 "나 군"이라고 그를 부른 박 시인에 대한 회고가 있습니다. 

깨치지 못하면 외우기라도 해야(p276) 언젠가는 문리가 트이는지도 모릅니다. 시인께서는, 공부도 못하고 빽도 없는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과거 교사로서의 자신을 탓하십니다. "시인은 희극 배우이자 감정의 서비스맨입니다(p296)." 우리 시대의 시인은 예전과는 역할이 매우 달라진 듯합니다. 시인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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