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천재다 2 - Seed Novel
하람 지음, Nardack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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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녀는 천재다 2권”에서는 드디어 윤시아와 평범이의 관계가 크게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평범이의 인간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편이다. 이번 2번째 이야기의 처음 고비는 윤시아에게 찾아온 어느 미소년의 고백이다. 문제는 그 미소년은 미소년이란 직함에 어울리게 외모는 기본에 학력과 집안까지 매우 좋은 학생이었다. 명문고에 다니면서 상위 1%에 들어가는 민준은 그런 평범이와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민준이가 윤시아를 찾아와서 그녀에게 사귀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윤시아는 그럴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민준의 행동과 행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평범이는 그것을 모르고 그저 자신보다 윤시아에게 고백한 민준을 보며, 자신도 납득하지 못하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것이다. 교문 앞에서 윤시아가 민준에게 냉대하게 굴면서 최수정과 평범이와 같이 가려고 했으나, 평범이는 그런 잘나고 잘난 윤시아의 옆에 있는 부담에 넘쳐 민준의 모습을 보니 그저 도망치기 바빴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도망치고 그 날 잠이 들었지만, 자기가 자는 동안 윤시아의 전화수신과 문자가 수없이 와있었다. 평범이는 자기가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낙담한 모습으로 이불 속에 눕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시장보러 가는데, 우연히 민준과 만나고 그와 원하지 않은 커피숍의 대화에서 평범이는 분노를 느낀다. 이 녀석만큼은 절대로 윤시아를 넘기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15년 지기로 그 어떤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거물에게 드디어 인간적인 삶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대상으로 지망한 민준은 자기보다 공부실력이 떨어지면 인간 취급도 하지 않은 이른바 엘리트주의였다. 사실 2번째 책에서 이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가 늦은 시간까지 자율학습에 학생들을 잡아 두는 것과 평소 평범이와 주변 학교생활로 보면 고등학교라는 억압된 공간을 느낄 수 있다.

 

 

획일화적인 사회구조와 그 사회구조 축소판인 학교, 그런다고 해도 준민의 태도는 이원화적인 인물설정에 과도하게 잡혔는지 모른다. 본래 누군가 좋은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만큼의 악역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가역적인 설정으로 본다면 말이다. 어째든 준민이는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평범이에게 수능모의고사에서 자기보다 잘 하면 평범이를 인정해준다고 한다.

 

 

전국모의고사에서 수준이 3등급 내지 4등급인 평범이에겐 너무 머나먼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둘째치더라도 (자기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서) 진실로 소중하게 여기는 윤시아를 위해 (겉으로 자기 자존심이라 하나) 준민과의 시험대결을 선택한다. 답도 없이 시작한 그의 무모함은 자기 스스로 낙담한다. 모든 공부도 그러하나 수학에 절망적인 성적에 그 성적만큼 평범이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이때 자신에게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천재소녀 최수정과 다른 여자고등학교에 전학을 간 이유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최수정은 이미 평범이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에 그에게 개인교습을 해주기로 했지만, 이유리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여자고교 앞에서 혼자 바보처럼 기다리는 평범이에게 이유리는 냉담하게도 변태로 취급한다. 게다가 그 변태 취급을 당한 후에 우울해 하는 평범이에게 로리콘드리아라고 놀려댄다. 이유리의 친근함은 그런 상대방에 대한 심한 장난인 것이다.

 

 

그런 험한 꼴을 당한 후에 평범이는 최수정과 이유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남은 2주 동안 자기가 이때까지 생각지도 않은 공부를 시작한다. 잠도 못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말이다. 게다가 윤시아를 눈에 가시처럼 보고 있으며, 그 윤시아와 가장 친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게 한 서유미 반장까지 가서 물어본다. 학년 3위인 반장이 솔직히 벅찬 대화 상대이나 오히려 반장은 쿨하게 반응한다. 그녀는 단지 평범이가 윤시아의 친구라서 싫은 것이지 평범이 그 자체는 싫지 않았다.

 

 

그렇게 2주의 결과가 나온 날에 평범이의 성적은 학급 내의 학생과 담임마저 패닉에 빠지게 했으나, 그 결과는 민준에게 이길 수 없었다. 그런 악에 빠진 평범이가 민준을 만나게 되자 민준은 평범이에게 쓰레기같은 녀석 물러서라 하나, 평범은 오히려 쓰레기이니깐 못하겠다고 버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윤시아가 등장한다. 평범은 성적은 민준보다 못했으나 상당히 좋은 결과인 반면 윤시아는 평소 평범이보다 못한 결과였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사람취급하지 않아 천재소녀 윤시아에게 대쉬한 민준에게 자기 역시 쓰레기라고 말하는 민준은 그만 기가 막혀 윤시아의 명치에 주먹을 가격한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본 평범이는 아무런 생각도 망설임 없이 민준과 싸운다. 손은 상처 나고, 그의 분노로 가득한 눈빛은 금방이라도 민준을 죽일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평범을 말린 사람은 다름 아닌 윤시아였다.

 

 

민준이 자리에 뜨자 윤시아는 의도적으로 맞은 것이라고 자신의 계산에 끼어든 평범이에게 핀잔을 준다. 윤시아는 평범이에게 그런 소리를 했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평범이가 일부러 공부한 것까지 알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맞아주어 최수정을 괴롭힌 일진을 소탕한 것처럼 민준에게 도리어 혼을 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평범이가 윤시아의 책략을 흐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평범의 행동은 오히려 윤시아에겐 진짜 친구라는 사실을 평범이가 자기는 이성적인 행동이 아닌 그저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왜 평범이는 사람이 좋은 것일까? 자신에게 얼마든지 합리적 이유를 대고 피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평범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윤시아의 그늘이라 본다. 그는 윤시아 앞에서는 그저 작은 소년이었다. 공부나 외모나 체육이나 그 모든 것으로 이길 수 없는 윤시아에게 자기 스스로 그녀와 친구하는 것이 너무 벅차게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만이 윤시아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은 완전 인정하고 윤시아를 받아준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그녀와의 친구관계의 압박은 늘 그에게 콤플렉스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한 마디로 평범이는 자기가 윤시아에게 억눌린 만큼 그 억눌림의 해소로 다른 누구에게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대가없이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2번째 책에서는 반장 서유미 중심으로 한 평범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착실하고 성실한 반장, 3학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학교 보충수업에서 그저 졸린 닭처럼 힘겨워 하는 모습을 평범이는 감지한다. 평소 눈치 없는 평범이지만, 같이 보충받은 교실에 아는 얼굴이라곤 반장 서유미였다.

 

 

과묵하고 조용한 반장 그 착실한 그녀가 보충수업에 졸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평범이는 홍삼드링크를 내밀지만, 그녀에게 완강하게 거부당한다. 그녀는 이성적으로 평범이가 싫어한다고 말한 것처럼 윤시아 옆에 있는 평범이가 짜증나는 존재로 여겼다. 그런 어색한 반장과의 사이에서 어느날 평범이는 답답한 보충1반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온다. 그런데 그 자리에 많이 보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반장 서유미, 그녀는 옥상 난간에 올라가 마치 뛰어 내릴 것처럼 위험했다. 평범이는 반장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잡아 댕겼다. 그리고 반장은 평범이 위로 떨어졌다. 평범이 눈에 자살시도로 보였으나, 반장은 그저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이는 그녀의 섬뜩한 모습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발 하나가 공중 위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일을 윤시아에게 보고한 평범이에게 반장의 소문을 듣는다. 그녀는 고등학생이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착실한 반장이 아르바이트에 보충수업에서 졸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런 평범이의 고민 속에 반장은 평범이에게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한다. 예상 밖의 그녀의 제안, 그리고 반장 집에 찾아가자 충격에 빠진 평범이, 반장의 남동생 현석이를 보는 순간 평범이는 반장의 그늘을 보았다. 현석이는 자폐증세로 심각한 집착과 난폭한 행동을 했다. 평범이가 처음 간 날 현석이가 두꺼운 책을 누나에게 던진 것이다. 게다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재며, 반장의 저녁준비 중에 실수로 음식을 흘리자, 방에 흘린 음식까지 주워먹는 것이다.

 

 

그리고 말리려는 평범이에게 저항까지 했다. 13세의 남자아이라고 생각하기에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반장이 평범이를 자기집에 데리고 이유는 아버지 사망 이후 어머니가 집안살림을 위해 일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자기가 대신 일하니 1달 동안 동생을 봐달라는 것이다. 평범이는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을 이 괴로운 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반응을 본 반장은 평범이보고 자기를 좋아하냐 물어본다. 하지만 평범이는 여성으로 반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그늘을 받아준 것이다.

 

 

반장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한편으로 납득했다. 그가 바로 윤시아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하다는 것은 좋은 것만도 나쁜 것만도 아니라 주변생활에 큰 불행이나 사건이 없다는 의미다. 클로버라는 식물에서 잎이 4장이면 행운이나 3장은 행복이라 했다. 평범은 3장의 클로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클로버는 3장과 4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3장에서 1장이나 2장을 떼어도 클로버다. 그런 클로버가 반장 서유미인 것이다.

 

 

그리고 3장의 클로버 사이의 4장을 가지고 태어난 윤시아는 그야말로 축복받았다. 천재미소녀, 그렇지만 그녀 역시 어두운 과거를 있었고, 그 어두운 그늘에 있던 사람은 평범이었다. 그런 평범이기에 최수정도 평범이를 친구로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반장에게는 다른 이면이었다. 왜냐하면 평범이가 윤시아에게 반장의 일을 말하고, 반장 집에 윤시아가 가면서 부터이다. 윤시아는 분명 천재이고, 평범한 사람과 대할 수 있을 정도로 상식과 교양이 있으며, 겉모습을 보자면 그저 미인이다.

 

 

그렇지만 천재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 비교되고, 그 비교에 의해 차별당할 수 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저 배척받는 일을 윤시아도 있었다. 그런 윤시아이기에 반장의 동생 현석과 윤시아는 깊은 공감을 나눈 것이다. 그렇지만 반장은 그것을 가지지 못했다. 현석이는 유미에게 누나라고 부른 적도 없으면서 윤시아에게 시아누나라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반장은 윤시아를 더욱 더 미워했다.

 

 

왜 윤시아는 완벽한 외모와 지성을 타고나서 저렇게 잘난 듯이 살아가는데, 왜 자신의 동생은 천재이면서 사반트 증세로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도 자신을 힘들게 하느냐 말이다. 거기다가 자신에게 십 년 동안 누나라고 말해주지 않은 현석이 얼마 되지도 않은 시아에게 누나라고 하는 순간 반장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분노로 가득했다. 반장이 윤시아를 미워한 이유는 바로 동생과의 삶에서 하늘은 공평하지 않은 것과 공평하지 못한 상태에서 윤시아에겐 평범이가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자신의 동생은 장애로 눈이 있어도 세상의 빛도 볼 수 없는데, 그래서 자기는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거기다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 모든 것을 윤시아가 가졌기에 너무 비참하게 느낀 것이다. 윤시아의 방문으로 평범이의 뺨을 때린 반장,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윤시아는 마음속으로 아파한다. 대신 그녀의 말에선 평범이의 처음으로 때리는 뺨을 빼앗긴 사실을 말이다. 윤시아는 자신의 친구를 자신처럼 대하는 반장에게 질투했고, 반장은 자기 동생이 천재라서 모든 것을 포기한 자신의 인생에 평범이를 친구로 둔 윤시아를 질투했다.

 

 

그런 난감한 싸움에 평범이는 윤시아에게 아쉬움의 대상으로 반장에게 윤시아를 데리고 온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런 평범이가 느낀 것은 평범하니 그저 물러설 것이란 좌절감이다. 그런데 의외로 윤시아는 평범이에게 책을 던져 그를 때린 후에 그를 설교한다. 가서 반장을 도우라고 말이다. 윤시아는 알 수 있었다. 반장에게 평범이가 필요하고, 현석이에게 자기가 필요했으나, 갈 수 없기에 오직 평범이만이 현석을 구해줄 수 있다고 말이다.

 

 

윤시아가 없는 평범이의 하루는 고되고 힘들었다. 자신의 평범한 머리로 윤시아에게 따라갈 수 없었고, 윤시아와 현석이의 대화 속에서 자신은 소외됨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보자면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윤시아는 그런 사람들 속에 있는 평범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그런 힘겨운 투쟁 속에서 평범이는 윤시아와 최수정에게 조언을 받으며 반장과 현석을 위해 노력한다.

 

 

사실 이 모습에 반장은 매우 놀란다. 반장은 자지가 뺨을 때려 평범이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낙담했었다. 그러나 그가 오자 반장은 다시 평범이에게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 평범은 반장을 이성적인 존재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경하는 마음이라고 대답한다. 반장은 그저 평범이를 보며 미소 지으며 납득한다. 그런 긴 시간이 지난 후에 현석이는 장애아동이 모이는 특수학교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전에 평범이는 현석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야기는 평범이가 홀로 현석이를 돌볼 때 우연히 현석이가 왜 유미누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유였다. 그 사실은 교통사고로 반장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린 시절의 반장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때 현석이가 귀찮게 굴자, 어린 시절 반장 무심코 현석이에게 자기에게 말 걸지 말라고 한다. 이때의 정신적 충격으로 현석이는 이후로 반장에게 유미누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시아누나란 말은 그렇게 잘하는데, 그 대신 자신의 친누나에겐 말조차도 제대로 걸지 못한 것이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잊어도 현석이만 그 사실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평범이는 현석이가 누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누나에 대한 말에 절대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멀리 다른 곳에 가면 좋은지 그리고 힘든지 물어보니, 현석이는 모두가 힘들어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현석이에게 평범이가 오직 그 난국을 타파하는 것은 지난 과거로부터 시작된 엇갈림을 다시 원위치밖에 없었다.

 

 

현석이가 원주로 기차타기로 한 날, 반장과 평범이는 현석을 데리고 기차역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기차를 기다리며 현석이가 기차표를 꺼내기로 했는데, 기차표 대신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현석이가 직접 적은 글이 있었고, 거기에는 현석이 누나 유미에게 전해주고 싶은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현석이의 말을 들은 유미는 그저 현석이를 품에 안고 눈물로 흘린 뿐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부분에서 평범이가 제안한 방법을 결코 윤시아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윤시아에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1권 째에 본 이유리만큼 평범이는 윤시아에게 과거에 어떤 큰 일이 있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이유리에게 과거의 윤시아를 본다는 것처럼 평범이가 반장과 현석이에게 해준 선물은 윤시아가 예측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윤시아가 어떤 계기인지 모르나, 평범이의 행동패턴을 모두 예지하는 윤시아를 여기까지 지내게 만든 것은 평범이는 결코 사람을 논리적인 계산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것이다.

 

 

그런 평범이기에 윤시아는 현석이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이고, 그 후에 현석이는 누나와 사이좋게 지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알아봐주는 최수정과 이유리까지 만나게 된다. 친구가 없던 현석이에게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평범이는 자기가 손해보고 게다가 찌질이까지 들은 마당에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다. 찌질한 바보 평범이는 어떻게 보면 너무 평범한 것이 아니라 너무 평범하다 못해 특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평범이가 자신 스스로 너무 평범하나고 나약한 인간이라 옆에서 제대로 잘봐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1권 째부터 윤시아에게 절교 선언하다가 된통 혼나서 취소까지 해야 했고, 윤시아와 진짜 친구가 되어준 것이 고마워 최수정을 위해 온몸이 멍이 되도록 맞았다. 이 모든 사건들은 사실 평범이가 용기 있고 도덕심이 높은 인간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깊이 자기도 모르는 깊은 무의식의 공간에 윤시아라는 괴물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괴물은 마음속 깊이 봉인되어 자기도 모르는 상태이나, 이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미국 헤이버드 대학교에서 온 최수정의 사촌오빠 수민이 오고 나서 부터이다. 수민은 수정을 아끼는 괴짜오빠이나, 상당한 수재이다. 그런 수재가 천재소녀 윤시아를 만나면서 수민은 오로지 윤시아에게 마음을 돌렸다. 평범이를 관찰하고 사촌동생 수정을 위해 평범이에게 수정과 사귀기를 원한 수민이에게 평범이는 자기가 가진 윤시아에 대한 일들을 새롭게 돌아봐야 했다.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으나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평범이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그녀와 지낸 일들을 알아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군계일학에서 닭장 속의 소년 평범이, 그 닭장위로 날아가는 윤시아, 평범이는 닭장에 있는 자기 때문에 학이 날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윤시아라는 친구는 오랜 지기이기도 하나 선망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대상이었다. 오만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평범이에게 선택이 다가온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최수정인가? 아니라면 자신의 허락 없이 대답하지 않으면 성질내는 윤시아인가? 좋아하는 사람이 윤시아여도 그것이 너무 깊은 내면에 각인되어 그것조차 알지 못한 평범이는 고뇌를 한다. 수민에게 들은 강렬한 이야기에서 자신이 우유부단하고 겁쟁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 우유부단함이 최수정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그러면 그럴수록 윤시아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말이다. 평범이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붙잡혀 있는 것은 윤시아와 최수정이 아닌 자기 내면속의 시아의 그림자였다.

 

 

그런 운명의 갈림길에서 평범이는 최수정의 고백을 거절하고, 윤시아에게 달려가고, 거기서 수민의 꾸지람까지 먹는다. 그리고 다시 윤시아를 찾아 그녀에게 고백을 한다. 다리가 삐어 절룩거려 자신의 등에 업힌 천재소녀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 고백마저도 너무 싱겁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윤시아>, 자기의 깊은 내면을 알았음에도 그것이 너무 깊이 들어간 나머지 그렇게 말해버리는 평범이, 그런 평범이에게 윤시아는 대답 대신 가만히 있었다. 평범이가 윤시아가 대답이 없어 자냐 말에 목을 조르면서 나 잠잘 거니까 시끄럽다고 대답한다.

 

 

게다가 멋도 확신도 낭만도 없이 고백받은 윤시아는 평범이의 행동에 한심하다고 하나 자기 역시 한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평범이는 깨달지 못한 것이 있다. 윤시아는 평범이가 한심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한심하다는 뜻이다. 윤시아에게 오로지 평범이만이 친구이나 평범이는 그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윤시아를 자기에게 떨어져 주기를 바란다. 그런 평범이를 보면서 억지로 참으며 생트집을 잡는 윤시아로선 과연 누가 한심한가를 독백하는 것이다.

 

 

1권 째에 최수정은 평범이에게 진짜 천재는 필요 없는 기억은 버린다고 한다. 이성적인 존재일수록 자기 판단이 정확하기에 그런 것이다. 2권까지를 읽다보면 1권과 달리 평범이의 입장보다는 윤시아의 입장으로 넘어가기가 좋을 것이다. 2권 째의 연일일이라는 2사람의 생일에서 윤시아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평범이는 그 눈물을 보지 못했으나, 평범이 동생인 주선영은 윤시아의 슬픈 모습을 본 것이다.

 

 

그 이유는 이전에 평범이의 생일에 윤시아가 준 선물을 어느 상장에 넣어 먼지가 수북할 정도로 쌓인 것이다. 평범이가 생각하는 윤시아의 생일에는 가격으로 매긴 용돈살인범 선물만을 회상한다. 그에 반해 윤시아의 선물은 가격적인 부분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었다. 특별한 존재이기에 나를 골려먹을까라는 평범이의 생각이나, 그 선물들은 윤시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많았다. 그 선물상자 안에는 먼지로 쌓인 스웨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윤시아가 가져온 선물은 하얀색 볼품없는 스웨터였다.

 

 

볼품없고 멋은 없으나 한번 세탁기에 돌렸는지 좋은 냄새가 난 것으로 보아 분명 윤시아는 평범이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평범이는 그저 윤시아가 내가 평범하여 그런 스웨터가 어울리니 그것이나 입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평범이는 생인파티가 열리는 윤시아의 집에 가서 스웨터를 입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볼품이 진짜 없는지 평범이 친구인 한성이는 평범이의 스웨터 입은 모습에 비웃기까지 한다. 그러나 평범이는 굴하지 않고 스웨터를 봄까지 계속 입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윤시아의 마음을 풀어준 것이었다.

 

 

이 작품의 2권까지 읽다보면 1권부터 시작한 것처럼 윤시아는 분명 평범이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러나 평범이는 그런 윤시아의 행동에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이 평범하고 만만한 소꿉친구로 놀리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윤시아의 깊은 마음과 더불어 상처 받는 모습도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그런 둔감한 평범이의 모습에 윤시아는 이끌려는지 모른다. 둔감하기에 상대방과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둔감하기에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대하는 평범이를 말이다.

 

 

인간에게 가진 성격이나 속성은 뭐든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은 점들이 있으면 나쁜 점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특별한 천재소녀로 태어난 윤시아가 평범이에게 특별히 대해주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윤시아에게 특별하게 대하지만, 그 특별함 윤시아란 존재에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평범이의 반의 반장이 윤시아를 싫어하는 것이고, 반장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윤시아를 멀리 하려는 모습도 있는 것이다. 그런 윤시아가 오직 말을 거는 사람은 평범이다. 최수정이 처음 와서 체육복을 평범이에게 빌리려고 할 때 최수정은 여학생이고, 평범이는 남학생이다.

 

 

상식적으로 처음 전학 온 것도 모자라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여고생에게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의 체육복을 빌려서 입게 한 것은 주변 여학생과 사이가 매우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실 그렇게 윤시아에게 평범이에게 와서 반강제적으로 빌려간 체육복의 의미는 평범이가 윤시아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평범한 그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사람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음이다. 최수정도 고백 전에 6개월 동안 평범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물론 얼마 되지 않은 전학생이 그렇게 빨리 친구의 친구인 평범이를 좋아한 것은 이상한 일이나 최수정은 15년 동안 평범이를 지켜본 윤시아의 이야기로 통해 15년 치의 평범이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평범이의 15년에 대한 면을 모두 이해했어도, 15년 동안의 윤시아와의 깊은 인연의 끈은 가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2권을 읽으면서 이 라이트노벨은 단순히 라이트노벨로 보이기엔 너무 현실적인 부분이 강했다. 재미요소보단 다소 감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자극한 것이 여력하게 보인다.

 

너무 높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으나, 라이트노벨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가까이 붙어 있지만, 라이트노벨 역시 문학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제목에서 “그녀는 천재다”처럼 평범이가 다가가려는 윤시아에게 도달하는 것은 최종적인 서사의 완료이다. 그러나 그 가는 와중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사연이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역시 중요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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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재다 1 - Seed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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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별해지기 바란다. 그러나 자신들이 특별해지는 만큼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인간에게 자신이 남들보다 위에 있고자 하는 우월의식과 더불어 남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내면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들은 개인적인 활동으로 타인의 시야를 받기보다는 개인과 개인이 모인 그룹 사이에서 동시에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으나 더 중요한 점은 인간은 자신이 그 사회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적인 면들이 자기 일상적 요소에서 발견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리고 그 특이한 인간이 자기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매우 밀접하다면 말이다.

 

한국 라이트노벨 작품인 “그녀는 천재다” 제1권을 읽어보며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독특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낯설음과 그 낯선 공간에서 일어나는 어느 한 남학생의 일상을 토대로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라이트노벨이 경소설이란 이유로 상당히 외면 받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사실 경소설 역시 일상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습이나 또는 삶의 이면에 가려워진 인간의 욕망을 다루지 않은 것이다.

 

그런 부분을 본다면 고전적인 문학소설에서 다루는 담론이나 범주에 닿을 수 없을망정 현대소설과 비교하면 그렇게 차이난다고 볼 수만 없다. 단지 설정에서 다소 재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시나리오를 지닌 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천재다”를 읽어 보면서 흔히 우리가 TV나 뉴스, 신문에서 나타나 가끔 관심을 유도하는 천재들이 평범한 공간에 있으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인가를 다루는 것은 그렇게 비현실적인 부분이 아니라 본다.

 

이 작품의 히로인으로 등장한 윤시아에 대해 보자면 이 작품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이름 대신 평범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학생의 시선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완벽히 마스터 하는 인간이다. 공부와 체육은 기본이고 외모와 몸매, 게다가 합기도까지 완벽하게 수련하여 어린 시절 태권도 했다는 평범이를 그냥 가볍게 제압한다.

 

작품에서 히로인의 존재로 본다면 남성중심의 스토리전개라 하여도 여성의 강력한 현대사회의 각인은 여실히 드러난다. 보통 서사구조를 지닌 작품에서 여성이 수동적인 존재로 많이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반해 여기는 오히려 남성인 평범이가 수동적인 존재로 나오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경향보다는 무의식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매우 강하다.

 

그런 평범이의 성격에 따라 이른바 둔감한 녀석이란 호칭을 붙이기 딱 좋은 케이스라는 점이다. 이 작품의 발단은 천재소녀인 윤시아가 대학교 면접시험 당일에 화문고등학교 내의 큰 이슈로 떠오른다. 검은 긴 머리카락과 명석해 보이는 그녀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머리카락 색을 노랗게 물들이고, 잘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기 스스로 퇴학한다고 하고, 얼굴에 진한 화장과 귀에는 철렁철렁한 귀걸이까지 달려 있었다.

 

그 상태에서 학교에서 뛰쳐나가 모든 학교 선생이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때 그 누구도 그녀에게 상대할 수 없는 지경에 오직 그녀에게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평범이만 브레이크가 고장난 벤츠인 윤시아를 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원인은 바로 평범이에게 있었다. 그녀는 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윤시아는 천재라는 점에서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스터한 상태이다. 게다가 고2에 명문대 면접만 가면 붙을 운명이다.

 

그녀는 사실 명문고 대신 국립고로 선택하고, 대학에 일찍 가기보단 평범한 여학생으로 위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학년 1위에 어려운 외국학회 영문논문까지 독파하여 이해하는 그녀에게 보통 사람에게는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그런 그녀에게 평범이는 절교를 선언했다. 결국 그 절교선언이 2주 후의 불붙은 화약고처럼 터진 것이다.

 

평범이와 윤시아는 본래 15년 지기 소꿉친구이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서로 잘 어울렸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오랜 친구에게 크나큰 벽을 느낀다. 평범이는 자신의 이름도 거론할 것도 없이 그저 윤시아의 친구로 남았을 뿐이다. 그에게 윤시아란 머나먼 왕국에 살고 있는 완벽한 공주였다. 윤시아 앞에서는 초라한 자신이기에 그는 언제나 윤시아 앞에서 주눅이 들고 수동적 존재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것을 견디지 못해 절교선언했으나, 윤시아에게 친구는 오로지 평범이만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유일하게 천재소녀 윤시아라기 보다는 천재소녀인 윤시아로 말이다. 사실 윤시아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인간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상이한 존재에 대해서는 배척하며,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 질투를 한다. 게다가 그 질투의 대상이 완벽한 조건을 가지게 되면 될수록이다.

 

엘리트의 존재는 결국 보통 사람들과 괴리감을 주게 되어 엘리트끼리 뭉치게 되는 경향이 있으나, 그 엘리트 사이조차도 분류가 생성되면 다시 외면을 당한다. 그런 소외의식을 느끼는 존재가 윤시아이었다. 물론 절교 선언에 대한 취소와 영원히 그런 잔인한 말을 하지 않겠다는 평범이의 말에 문제는 해결되지만, 평소에 하지 않을 담배와 술까지 도전한 윤시아의 모습을 본다면 그녀의 마음은 심하게 상처받은 것이다.

 

평범이의 한달 용돈이 든 지갑을 다 날려버리고, 게다가 술도 못 마시면서 술에 취해 평범이의 등에 업혀 집에 가는 윤시아는 눈물을 보이며 내 곁에 떠나지 말라고 버리지 말라고 한다. 평범이는 윤시아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보단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무의식적 행동과 감성적인 태도로 대한다. 그런데 이것이 후에 전학온 최수정이란 여학생에게 큰 위안감이 된다.

 

사실 최수정이란 여학생 역시 천재이다. 그녀는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학년 2위로 차지한다. 그녀는 천재적인 요소로 윤시아와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인간과 친해지기 어렵게 된다. 그녀 역시 지나친 능력을 가진 탓에 주변 인간들에게 미움을 산다. 더 후에 나타나는 이유리 역시 가시를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고슴도치와 같은 행동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천재라는 좋은 칭호만큼 외로움과 배타적인 인간관계에 당해야 했다.

 

이 중에서 최수정은 윤시아와 친해지면서 평범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 역시 친구가 없는 점에서 윤시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그리고 윤시아가 평범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평범이와 친해지게 된다. 그녀는 평범이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평범이가 윤시아에게 하는 것과 같이 해줄 것이라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시아가 자신이 어떤 존재에 상관없이 언제나 친구로서 대해주는 평범이를 원하는 것처럼 최수정 역시 윤시아와 같은 욕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하는 것에서 비로소 인간적인 관계가 성립하는 말이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최수정이기에 평범이의 태도는 확실히 최수정에게 큰 위안이 되기도 하나, 그런 평범이의 이해타산적이지 못한 인간관계로 자신의 어둠에 이끌어가게 한다. 평범이는 자신이 최수정의 어둠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최수정을 괴롭히는 동네 일진에게 달려든다. 어떻게 보다면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라는 의미는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사실 싸움기술을 본다면 평범이 옆의 윤시아가 월등했으나 평범이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일진과 싸웠다. 게다가 싸움은 윤시아가 월등해도 윤시아를 지켜주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범이는 일진에게 얻어맞아 온몸에 타박상을 입어 싸움이 끝난 후에는 기절하여 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 남은 일진을 정리한 것은 윤시아였다. 처음부터 윤시아는 자신이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으나 앞뒤 없이 뛰쳐나간 평범이를 보면서 그가 친구라는 사실을 행복해 하였다.

 

이 작품을 보면 사실 가장 평범한 사람이 가장 강할 수가 있고, 가장 강력한 사람이 약할 수 있다. 윤시아 앞에서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평범이, 가끔 그런 평범이의 말과 태도에 상처받는 윤시아, 그런 2사람의 사이를 보고 부러워하는 최수정, 평범이가 마치 어린 시절 윤시아처럼 보이는 이유리, “그녀는 천재다” 1권에서는 평범이는 분명 이 천재소녀 앞에서는 상당히 벅찬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이 너무 평범하여 때로는 좌절하기도 때로는 그냥 당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겐 지능과 두뇌에는 천재는 있어도 친구간의 우정과 사랑에는 천재는 없다. 또한 자기들과 전혀 다른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과 그렇게 집단적으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천재는 없다. 너무 평범한 평범이가 때로는 평범 이상으로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나 그 평범한 바보의 진실 앞에는 천재들은 천재로 평범이를 대하는 것이 친구로서 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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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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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진치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았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서 이 조르바라고 하는 특유하고 괴팍한 노인이 실제 인물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사실에 많은 당황함을 느꼈다. 그 조르바라는 인물은 너무 특이하고 낯설고 또는 너무 가깝게 여기게 만드는 남자였다.

 

아마 이 소설에서 나라는 인물은 니코스 카진치키스일 것이다. 그의 행로에 대해 잘은 모르겠으나, 그가 아마 이 소설로 보이는 내용으로 보아 조르바라는 남자가 그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조르바라는 남자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기에 그가 여행을 떠나면서 조르바의 그림자를 느끼고, 조르바가 죽어가는 순간 조르바의 죽음을 알았을까?

 

자신의 곁에 없는 조르바, 하지만 이 소설의 나라는 인물은 조르바의 죽음을 느끼고, 조르바의 영혼을 숨 쉬었다. 그는 조르바와 다른 사람이었으나 어느 사이에 조르바의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아주 고생스러우며 마음 아팠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느끼는 내 감정은 아마 인간의 본연의 가치 내지 존재적인 희열일 것이다. 마치 조르바를 보는 순간 이 말이 생각난다. “신은 죽었다”고 말이다. 조르바에겐 신이나 천사나 혹은 악마든지 뭐든지 관여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신이 되려는가? 아니면 악마가 되려는가?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나오는 싱클레어 모습처럼 그 자신의 존재의 여부가 선악으로 이원화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되었다.

 

그런 만큼 조르바의 깊은 상처와 슬픔, 고뇌도 너무 깊은 바다처럼 캄캄했으며, 그가 용솟아 오르는 춤과 흥처럼 모든 것을 초월했다. 이 작품 후기에서 나오듯이 작가인 니코스 카진치키스는 니체를 아주 좋아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 송도 좋아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시의 작가 호메로스도 좋아했다.

 

니체를 좋아한 만큼 그의 조르바를 볼 때면 마치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찬사하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생각난다. 포도주는 모두를 즐겁게 만들기도 하나 모두를 미치게 한다. 하지만 이 자애롭고 잔인한 디오니소스야 말로 신중의 신이요.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의 주인공 갈탄광의 사장이 술집에서 만난 조르바는 그저 직설적이고, 공격적이고, 아무런 생각 없이 말하는 것 같아도 그 속에 철학 이상이 있었다.

 

아니 그는 진정한 철학자가 아니었을까? 조르바라는 끓는 피가 흐르는 노인이 말이다.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다. 그의 말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또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후회를 버렸다. 조르바는 모든 것을 비우고 모든 것을 채워 넣는 마법의 항아리였다. 경건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크레타 섬에서 조르바는 자신의 욕망을 갈구했다.

 

맛있는 고기와 생선을 게걸스럽게 먹고, 술을 있는 그대로 부어 마시고,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은 이방인과는 춤으로서 대화했다. 늙은 카바레 여가수인 오르탕스 부인을 유혹하여 그녀를 자신의 성적 욕망으로 갈구하다가 마치 아주 귀찮고 피곤한 여자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전형적인 바람둥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오히려 그녀를 유혹의 나락에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손으로 갔다.

 

억지로 만들어져 버린 약혼과 그 뒤에 결혼식, 그런 결혼식을 마치고 오르탕스 부인은 이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험한 인생의 종지부를 마치고, 인간처럼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조르바와 더불어 탄광 사장이 보는 앞에서 결혼했지만 결국 병으로 죽는다. 조르바는 새로운 여자를 찾아 그냥 갈 것으로 보일 인간이었으나, 그 누구보다도 부인을 저주했고 부인을 탐욕했고 부인을 사랑했고 부인을 애도했다.

 

부인이 병으로 땀과 진으로 침대가 범벅되어 냄새가 코를 질러 죽어가는 순간, 동네 주민들은 그녀에게 장송곡이라 해두고 그녀의 집에 가서 있는 물건을 가져갔다. 그녀의 모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말이다. 그녀가 마침내 마지막 숨소리마져 끊어지자 동네 노파들과 청년들은 성난 이리 떼처럼 몰려들어 오르탕스의 물건을 가져간다. 심지어 창문과 대문까지도 말이다. 남은 것은 오르탕스의 뚱뚱한 발바닥이 새겨진 낡은 신발이었다.

 

모두 오르탕스 부인이 죽기를 바랐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르바만큼 눈물을 흘렀다. 매우 격정하고 고뇌했다. 그녀가 매우 불쌍하고 가엾게 여겼다. 그러나 죽고 나서 모든 것을 정리하자 조르바는 거기에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죽어간 오르탕스 부인을 대신해 열심히 살아가려 했다. 그리고 엉덩이가 펑펑한 젊은 과부와 그 과부의 어린 두 아이와 살아가며 새로운 인생을 꾸린다.

 

조르바는 오늘 죽기를 살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으로 오직 오늘만을 생각한다. 철학자들이 철학이 메마른 곳에 성직자조차도 성난 이리와 잔혹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르바가 소크라테스처럼 죽음과 경계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유쾌하면서 비극적인 조르바, 하지만 그것은 그의 깨달음이었다.

그리스와 크레타 섬에서는 터키와 불가리아와 많은 시련의 투쟁을 거친 것 같다. 조르바는 자신도 용사가 되어 불가리아의 병사들의 목을 베고 심장을 망가뜨렸다. 그러나 그것만이 최선의 가치라고 알았다. 어릴 적에 터키 사람에 의해 교수형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조르바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발에다 키스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것이라고.

 

그러나 조르바는 그것이 엉망임을 알았다. 국가, 종교, 민족, 사상 그 많고 많은 존재들이 아무 짝에도 소용없음을 알았다. 어디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해방한 그였다. 그가 그리스인을 위해 총을 들 때 불가리아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어느 불가리아 집에 들어가서 어느 여성을 발견하고, 한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한손으로 그녀의 커다란 유방을 잡는다.

 

여자는 공포에 질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조르바에게 자신의 침대에 와서 같이 밤을 보내게 해주고, 게다가 불가리아 옷까지 빌려주어 그를 탈출시킨다. 조르바는 그 후에 귀대하여 파르핀으로 그 동네를 불사르면서 그녀가 그 슬픈 과부가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슬픔은 불가리아의 유명한 신부의 암살이다. 그 신부는 매우 유명하고 잔인하기로 소문났다.

 

그래서 조르바는 그 신부가 마구간에 오기를 기다린 후에 잠복하여 그 신부의 목을 베어 그 목에서 귀를 잘라간다. 어느 날 무기를 숨기고 와서 동네장터에 오니 어느 꼬마들이 구걸한다. 그 꼬마들은 굶주리고 여의고 희망이 없이 눈물범벅되던 애들이다. 그런데 그 애들의 아버지가 신부였다. 오! 이런 자신에게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죄를 얼마나 지었는지! 조르바는 모든 돈과 구매물품들을 그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조르바는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얻었다. 진정한 자유를 말이다. 오히려 자유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고 부수고 말았다. 윤리라는 척도가 오히려 인간이 인간다움을 고민하는 윤리, 또한 철학까지 부수었다. 그리고 조르바는 그 인간들을 가두는 윤리 같지 않은 윤리, 철학 같지 않은 철학을 부수고 버리고 조롱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조롱하고 사랑한 것이다.

 

그런 조르바를 보는 젊은 사장의 눈에서는 많은 심정의 변화를 느낀다. 나는 이 사장의 이야기에서 슬프게 여긴 것은 오르탕스 부인과 더불어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오렌지나무의 과부이다. 그 과부는 몸매 라인이 매우 아름답고, 블라우스 밑으로 살짝 내려가자 그녀의 젖가슴 윗부분은 매우 하얗고 탐스러웠다. 조르바는 그녀가 사장을 좋아함을 알고 있었다. 조르바는 그녀에게 진정한 자비와 인간답게 대하는 방법은 사장의 딱딱한 껍질을 파괴하라고 했다.

 

그녀의 가슴을 붙잡고, 입술을 깊이 음미하고, 그녀의 깊은 세계에 들어가기를 바란 것이다. 음흉하고 야하고 짐승 같은 것이 그녀를 구원하리라고 말이다. 아마 그런 것 같다. 세상 모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인간들은 혼자이고 싶지 않다. 여자들은 모두 집에서 기다리나, 남자들은 그녀들을 버리고 전쟁에 가서 죽이고 죽여 가엾은 과부와 고아들을 만들었다. 조르바의 정력은 과부들과 고아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 과부는 아름다움이 죄인지 동네 청년 중에 그녀를 사랑했으나, 반대를 하여 자살을 하자, 그 청년의 가족이 그녀를 죽이려 한다. 아무 죄도 없는데, 단지 과부라는 이유로 말이다. 교회 안에 몰아넣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 그녀를 죽이려는 남자에게 조르바는 있는 힘을 다해 싸우나 자신의 귀가 찢어지고, 젊은 사장은 말리려다 저지당한다. 결국 그 오렌지나무를 키우는 아름다운 과부는 여자로서의 꽃도 제대로 피우지 못한 채 목이 베인다.

 

그리고 그 목은 더 비극적으로 교회 문턱에 버려진다. 그것이 사랑인가? 그것인 인간의 윤리인가? 신이 살아있는 교회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그녀는 무참히 생을 마감한다. 축복받지 못한 운명에 농락에 당하며, 사랑조차 받지 못하며, 경멸 속에서 죽어간다. 과부를 보면서 조르바는 슬퍼한다.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은 테인데 조르바만이 슬퍼한다. 사장도 슬퍼한다. 그렇지만 이 두 남자 외에 슬퍼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조르바는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오렌지나무의 과부가 보낸 향수 좋은 물을 젊은 사장에게 있는 것을 알자 조르바는 그 물을 몸에 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아주 좋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그렇게 욕심 많고 격정적이고 음흉하고 직설적이나, 그 누구도 진실적이었다. 니체의 책에서 나의 주변 사람들이 아닌 나의 주변 외의 사람에게 친절하라고 한다. 자신 안의 인간을 사랑하면 그것은 단지 자신의 이기심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국가와 성직자는 그저 조르바에겐 나쁜 존재에 불과했다. 그들이 사람들을 얽매이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로 있고 싶은 초인, 그 초인 조르바, 그의 죽음은 결코 죽었다 할 수 없다. 그가 아주 잘 타고 아끼던 산투리를 젊은 사장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듣던 사장은 그가 죽기 전에 크게 웃다가 울다가 생명의 촛불이 껴졌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기뻐하면서 슬퍼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영혼을 나누던 그 젊은 사장의 회유할 수 없는 슬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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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홀든, 그 녀석은 매우 어리고 어린 마음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홀든이란 친구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랄 수가 없다. 언제나 자기 기분이 가는대로 행동하는 홀든이다. 그러나 홀든이란 친구에 대해 나는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가 왜 그렇게 우울한 기분으로 살아가느냐 말이다.

 

이 소설은 홀든이 퇴학처분을 받아 자신이 다니고 있는 팬시 고등학교에서 나와 자기 집까지 가는 귀로라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것이다. 홀든은 펜싱부 부장인 주제에 펜싱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는 도중에 실수하여 펜싱도구까지 분실한다. 그런 와중에도 붉은 가죽모자를 1달러를 지불하고 사는 기막힌 행동도 보인다.

 

그는 도대체가 앞뒤와 좌우를 구분하고 판단하여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그는 아예 지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지각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어른도 되지 않았는데, 어른인 척하는 청소년의 방황하는 모습이다. 아마 그의 비행적인 요소나 반항적인 요소들은 분명 많은 억압들이 있었을 것이다.

 

못된 장난이나 담배와 술에 빠지고, 이기지 못할 녀석들에게 싸움을 걸어 맞는 홀든이 왜 그렇게도 허무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의 가정사를 보니 그의 마음이 공감이 간다. 자신이 매우 좋아하던 남동생 앨리, 앨리는 매우 머리가 붉은 남자아이였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나 홀든은 자신의 남동생 앨리가 똑똑하고 친절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착하고 좋은 동생이 3년 전에 백혈병으로 죽고 만다. 앨리의 죽음에 대해 홀든은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동생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동생이 죽었다는 그 분노와 우울이 폭발하여 미친 듯이 자신의 오른손으로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들의 유리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쳐댔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 소년이 저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차량유리를 그대로 돌진했으니 어떻게 되었을까? 홀든은 지금도 오른손을 꽉 쥐어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오른손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프다는 자각이나 제대로 했을까나? 아마 못했을 것이다. 홀든의 동생이 죽은 것 자체가 자신의 모든 오감을 잡아먹었으니 말이다.

 

그의 오감을 잡아먹어버린 동생의 죽음에서 홀든은 동생이 죽은 것은 알았으나, 죽었다고 가슴깊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묘에 참배할 때 홀든은 다른 식구들은 모두 거기에 다가가도 자신은 다가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동생이 저 차갑고 딱딱한 땅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이유에서 말이다. 그는 동신이 육체와 달리 영혼이 어디론가 있을 것이라 했다. 그는 종교를 제대로 믿지 않았다. 거의 무신론자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도 동생의 유령이 다시 그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와서 거의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추운 거리를 해매고 있을 때 그는 환각에 반 쯤 빠진다. 그의 환각에서 죽은 동생과 대화하는 홀든을 볼 수 있다. 그리운 동생, 자신의 슬픔과 좌절에서 홀든은 오로지 동생만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했다. 다행히도 홀든에게 동생은 사랑스럽고 똑똑한 앨리만 아니었다. 아주 귀엽고 똑똑하고 고집스러운 여동생 피비가 있었다.

 

홀든은 집에 오기까지 기숙사에서 기숙사 동료인 스트라드레이터와 싸우고, 택시기사와 대화하면서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당하고,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학교 녀석의 어머니를 만나 거짓말까지 했다. 그것도 모자라 아주 예쁜 아가씨인 샐리를 만나 그녀를 오히려 화를 내게 만들고, 호텔에서는 호텔 벨보이가 부른 창녀에게 성적행위 대신 이상한 말만 골라서 하다가 바보 취급당한다.

 

게다가 5달러만 그칠 줄 알았는데, 결국 15달러까지 주게 되었다. 복부에 강한 펀치까지 맞고서 말이다. 집에 오는 여로가 아주 괴롭고 재미없고 짜증나던 홀든에게 훨씬 더 비참한 기분을 들게 만든 것이다. 그런 주제에 나이가 어려 보일까봐 일부러 술을 시키고 담배도 피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서있기도 하였다. 하다못해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를 들이댄다. 자기 머리색이 하얀 색이라 나는 좀 나이를 먹었소, 그러니 내 말을 똑똑히 들어주시오란 말이다.

 

홀든의 행동들은 아직 철이 덜 든 중고등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에 큰 결핍이 있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남동생 앨리의 죽음, 그 와중에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를 지배할 수 없어도 유일한 지배자인 피비가 말이다. 아마도 그의 우울은 동생의 죽음과 연계가 깊은 듯하다.

 

그는 교장선생이나 주변 어른들의 행동에 못마땅했다. 아니 교장이나 주변 어른들의 행동과 비슷해지는 학생들도 싫어했다. 그는 가난하고 구색이 좋지 못한 학부모에게 변기에 물을 흘러 보내듯이 지나가는 교장이 혐오스러웠고, 그런 교장에게 아부를 맞추는 선생 역시 구역질 날 정도로 보기 싫어했다.

 

홀든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머리가 빈 놈들의 세상이고, 그런 빈 놈들 사이에 멍청한 여자들과 같이 어울리는 지겨운 세상이었다. 게다가 멍청한 인간들은 모두 허풍과 가식으로 물들여져 있어서 홀든은 매일 구역질이 나서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을 쉬지 않고 한 것이다. 수요일에 집에 가는 것을 왜 퇴학처분 받는 당일부터 했겠냐는 말이다.

 

그가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인간에 대해 말할 때도 당황스러웠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 중에는 대하기 편하고 좋은 선생인 앤톨리니(홀든은 그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즉 변태로 여겼다)와 그 앤톨리니 선생이 자비를 베풀어주었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제임스 캐슬, 평소에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하고, 게다가 학교에서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 제임스가 학교에서 홀든도 마음에 들지 않은 녀석에 대해 험담하다가 그 녀석과 그 녀석의 친구에게 집단 구타당하는 도중 창밖으로 뛰어내려 낙사하였다. 아마 홀든이 이 작품 초반에 스트라드레이터와 싸울 때, 그는 분명 그 거구의 덩치에게 이길 수 없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홀든은 덤벼들었고, 얼굴에는 피범벅이 되었다. 자기 역시 왜소하고 못났지만 자신에 대해 끝까지 지키려한 제임스에게 큰 인상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다고 하여 홀든은 죽은 제임스가 아니다. 단지 학교가 싫었고, 학교와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싫었다. 특히 어른들이 매우 싫어했다. 어린 시절 친구 제인의 양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그가 어른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수함을 좋아했다. 자신의 행동들은 순수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인지 홀든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동생 피비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한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나다면”라는 로버트 번스가 쓴 시에서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란 노래를 피비에게 말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말이다. 그는 호밀밭에서 그저 지키고 있으면서 주변에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처럼 그는 아이들을 지키는 그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결국 죽은 동생인 앨리, 덩치 매우 좋고 여자를 제대로 밝히는 스트라드레이터부터 제인을 보호하고 싶다는 것이다. 제인이 예전에 양아버지에게 그렇게 학대당하는데, 이제 그 돼지 같은 녀석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홀든은 억제할 수 없었고, 결국 낙사한 제임스처럼 무차별 공격하고 무차별로 얻어맞은 것이다. 그런 우울함이 더했는지, 홀든은 자신이 동부에서 살기를 거부했다.

 

아주 따뜻하고 아는 자들도 없는 서부에서 그저 벙어리처럼 살며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이별의 편지를 적고, 멀리 떠나려 했다. 그런데 동생이 큰 짐을 들고 나왔다. 만약 홀든이 떠나면 사랑스런 여동생 피비도 같이 갈 것이라고 말이다. 홀든은 순간 앞이 깜깜했다. 자신은 자신만이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했는데, 자신은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어린 영혼을 보호하려 했는데, 그 어린 영혼이 자신과 같이 절벽에 동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홀든은 어린 동생이 그렇게 강하게 나오자 동생의 마음을 달래고, 동생을 위해 회전목마를 타는 것까지 지켜본다. 홀든이 바라보는 회전목마 위의 피비는 세상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천사와 같음이라. 그리고 홀든은 회전목마 타기 전에 피비와 약속한 것처럼 집을 떠나지 않고, 단지 자기 재활에 들어간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독백한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그는 자기가 정말 싫어하는 녀석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들이 싫은데도 그들의 이름을 들으면 그리워지다니, 홀든은 자기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토록 혐오스럽게 한 그들을 생각하고 있으니깐? 아마 홀든은 그런 혐오스럽지만 세상이란 큰 세계에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서 역할은 단단히 소화했다. 피비를 바라보는 한 다정한 오빠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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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한 날들에게
마이클 킴볼 지음, 김현철 옮김 / 갤리온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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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우울한 날들에게 나온 주인공 Mr. 조너선에게 먼저 추도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물론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처럼, 조너선의 이야기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불운한 어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방된 현실 내지 재현된 현실이라 말해주고 싶다.

 

조너선의 자살을 읽어가다 보면 그의 일기를 읽고, 그가 남긴 메모와 스크랩,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들이 외롭게 죽어간 조너선의 과거를 찾아간다. 불운하게 죽은 조너선을 찾아가는 사람은 조너선의 단 하나뿐인 동생인 로버트다. 로버트는 자기 형인 조너선의 죽음을 통해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의 일기를 찾아 그의 아버지를 찾아 그의 기억을 더듬어 로버트는 어린 시절 형을 돌이켜 보려고 한다. 그토록 문제만 일으키고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형을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내 곧 후회를 불러 일으켜 왔다. 아니 그 모든 비극적인 결말은 결국 자신도 가해자 중에 하나였다.

 

형인 조너선은 너무 우울하고 슬프고 거기다 못해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당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일 처음 대하는 존재는 어머니고, 그 다음에 어머니 주변 사람이다. 어머니인 Mrs. 앨리스는 아들인 조너선과 로버트를 끔찍하게 아끼던 좋은 어머니였다. 조너선이 괴로워하면 언제나 안아주던 어머니이었다.

 

그런 앨리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너선은 비뚤어진 청소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일을 하고 결혼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조너선은 안식처를 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의 망령들이 그를 죽을 때까지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가? 라는 근원적인 부분이다.

 

인간의 근원은 어머니가 존재하는 가족이란 커뮤니티이다.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사회규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은 가족이란 뜻이다. 그런 가족이란 인간적 유대가 깨어지면 어떻게 인간이 망가져 가고, 그 망가져 가는 인간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워 눈물이 앞을 가리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지 알려준다.

 

소설의 비극적인 주인공 조너선은 항상 강박관념에 시달려왔다. 그의 강박관념은 자신도 알고 있었으나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인간은 이성이란 사유로 통해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 이성 안의 본질적인 감정과 무의식의 세계는 이성의 통제가 한계가 있었다. 조너선의 무의식 속에 갇혀진 우울과 공포는 이미 어른이 되어서도 존재했다.

 

그 모든 배후는 조너선을 세상에 나오게 한 아버지 토머스였다. 토머스는 젊은 시절 제법 인물도 괜찮았고, 월급도 좋았던 남자였던 모양이었다. 아마 어머니 앨리스와 만나기 전에도 많은 여자와 만나 그는 청춘을 누렸을 것이다. 문제는 어머니 앨리스와 만나면서 앨리스가 임신을 했고, 피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앨리스는 심한 복통에 괴로워하면서 정해진 출산일로부터 2주나 지연되었다.

 

당시 계절은 매우 추운 겨울, 밖에는 심한 눈보라로 차들이 도로에서 도저히 달릴 수 없었다. 그때 심한 복통이 앨리스를 덮친 것이다. 어렵게 겨우 제설차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무사히 조너선을 출산했으나, 조너선의 탄생은 가족들에게 행복이란 대신 불운 내지 비극이었다. 아버지 토마스는 조너선을 매우 싫어했고, 그것이 나이를 먹어가며 조너선에게 누적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그보다 어린 아기들은 매우 감정에 민감하고, 주변 상황에 그대로 몸에 베여 버리는 시기이다. 조너선은 그때부터 이미 비뚤어져 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고, 겨우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몇 년 뒤에 태어난 앨리스의 두 번째 아들인 로버트는 조너선에게 하나의 위협이었다.

 

로버트가 나오면 자신을 유일하게 바라보는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말이다. 그런다고 앨리스는 로버트가 태어나도 여전히 조너선을 사랑했다. 조너선을 위해 그녀가 바친 헌신은 마음이 아프다. 일일이 조너선을 챙겨주고, 지켜봐주고 학교를 다른 곳에 갈 때도 짐도 챙겨주었다. 정신병원에서 처음 진료 받을 때 조너선의 자신감을 채워주기 위해 좋은 옷에 치아교정까지 해주었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아버지 토마스가 조너선을 심하게 구타하려 할 때 옆에서 앨리스가 막아준 것이다. 대신 어머니 앨리스는 밤에 아버지 토마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조너선은 이런 기억 속에서 계속 성장했다. 아버지 모든 것이 저주했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원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고 했으며, 그의 죽음 전에 유언은 하나의 저주였다.

 

저주의 주문이 아버지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그의 모든 인생은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우울증과 편집증으로 이어졌다. 키도 크고 아주 멋진 사랑스러운 여자 사라와 살아가면서도 조너선은 그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라의 기억에서도 그녀는 조너선의 일들을 보이면서 그가 얼마나 심한 병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자기도 못알아 봤다는 기억만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조너선의 기록에는 그녀가 매우 슬픈 얼굴로 울고 있는 사실도, 자기도 너무 슬프고 우울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이성은 마지막까지 놓친 게 아니라 표출될 수 없었다. 분명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로 될 수 없으나 그는 강박관념과 편집적인 증세로 그렇게 되자고 신념하기를 원했다. 물론 이룰 수 없었지만, 그것이 되고자 알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오직 본인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의 일기를 보고 로버트는 당시 자신의 눈에서 형은 그저 문제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일기로 통해 보는 형은 지극히 정상은 아니나 그 모든 일들이 형의 문제가 아니라 형의 주변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로버트가 본 조너선은 어떤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 모두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의 입장은 명확히 서술했다.

 

게다가 자신의 과오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도 알았다. 물론 거기에 대한 사과와 후회도 알았다. 죽기 전에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야기까지 적어놓았다. 과연 그가 제 정신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 어째든 이 일기를 본다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엄청 많을 것이다. 사소한 뭔가에 집착하여 현실이란 공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인물을 말이다.

 

또한 생각해보면 나도 조너선과 같은 증세가 아니나, 그런 정신적인 억압이나 우울은 있다. 뭔가 나 자신이 갇혀있고, 터질 수 없는 응어리 같은 것이 말이다. 조너선의 경우 정말 정신병적인 증세가 있겠지만, 그런 증세의 표출의 강약일 뿐이지 우리 인간 역시 조너선처럼 뭔가 과거에 시달리거나 거기에 자신의 마음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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