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간단한 외식 한끼 하기가 너무나 두려울 정도입니다.몸이 안좋아 집에 있을적에 가끔 먹었던 6천원짜리 제육정식도 어느샌가 9천원으로 올랐고 안오르던 순대국도 만원이 디니 정말 나가서 먹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자주 가는 곳이 집 근처에 있는 버거킹 입니다.장우산을 지판이 삼아 천천히 운동겸 지나가곤 하는데 가끔 와퍼 주니어 1+1이 5천원 와퍼가 3,900원으로 할인 행사를 할 경우 얼른 구매를 합니다.이경우 와퍼는 잘라서 주니어 와퍼는 한개씩 먹으면 두끼를 해결할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와퍼도 1~2년 사이에 기격이 대폭 올랐습니다,와퍼는 행사시 3천원,주니어 와퍼는 1+1에 3천원인지 한 것 같은데 비교해보면 급격히 가격이 오른것을 알수 있지요.

하지만 다른 음식값이 평균 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행사 구매시 저렴한 가격에 두끼를 해결할수 있는 버거킹이 개인적으로 참 혜자스럽단 생각이 듭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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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에 글을 다시 쓴지 한달이 채 안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그 어느때보다도 론나리 글을 열심히 쓰는 것 같습니다.


개인사정상 한 일년 반 남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다보니 바깥생활이나 인터넷등도 못하고 참 암울하고 암담한 생활을 하였지요.그러다보니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되고 마치 늪속에 빠진것 같은 기분을 하루하루 느끼면서 지냈습니다.

알라디너 모님의 경우 육체적 질병으로 외부와는 단절되었지만 알라딘 서재를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하졌지만 전 그것도 안되다보니 정말 울적한 나날들 이었습니다.이당시 유일한 낙은 오로지 라디오뿐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다행히 한 눈이나 희미하게 보이기에 세상과 소통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알라딘 서재에 글을 올리니 정말 그간 울적했던 것이 확 날아길 정도입니다.일년 반동안 머리속에 있던 생각들을 서재에 계속 올리고 있는데 아직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론라리 많습니다.

제 병의 특성상 다시 시신경의 실핏줄이 터져서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재에 글을 올릴 수 있을때 정말 원 없이 글을 써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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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눈 상태가 한쪽은 거의 시력이 노이지 않고 있어(교수님과 수술상담을 했는데 전공의 사직문제로 일정을 전혀채 잡질 못하고 있네요),책을 읽는 것은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잘 안보이기도 하거니와 흰 바탕에 검을 글씨가 아른 아른 거려 가독력이 무첨ㄱ 떨어지기 때문이죠.그래 요즘은 유투부를 많이 보는데 눈에 가까이대고 볼수 있거니와 컬러이기에 그나마 보기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서재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다행인것은화면 확대기능이 있어서 크게 볼수 있기에 글을 쓸수있네요.다만 위에 썼듯 글자가 이른거려서 후에 있어모변 상당한 오타를 발견하게 되는데 수정하는라 틀린 글자 찾기도 힘들어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눈이라도 보여서 서재에 글을 쓰는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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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즐겨보던 유튜브중의 하나가 오사카 뭐라는 채널이 있습니다.한국으로 치면 부동산 중개인인 마쓰다 부장이란 분이 오사카 인근의 맛집을 소개하면서 시원하게 맥주와 들이키며 음식을 맛있게 먹는 채널이었죠.

마쓰다(마츠다) 부장이 말한다

근데 이거 어느새 입소문이 낫는지 마쓰다 무장님은 한국의 각종 예능 채널에 출현하게 됩니다.

사실 마쓰다 부장님이 한일 혼혈로 한국에서 초중고를 나와 한국말이 한국인 못지 않게 능숙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방송출연을 통해 방송인 정준하씨의 고등학교 후배이며 특이하게 전방에서 군복무를 마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마쓰다 부장님은 어려서는 원해 한일 이중 국적자였는데 군부대 입대후 얼본의 이중국적 허용불허정책에 따라 한국 국적을 취하했다고 하더군요.


그래 전 마쓰다 부장님이 일본인으로서(사실 일본은 징병제국가가 아니어서 남성들이 군대갈 일이 없습니다),유일하게 한국 군대를 갔다온 사람인줄 알았더니만 아니 글쎄 한국에서 군대를 두번이나 다녀온 일본인이 있더라고요.

남자라면 꿈에서도 조차 하기싫은 군대 두번가는 것,그것도 싸이 형아보다 수십년전에 이를 한 일본인이 있었다는 사싱을 알고 계셨는지요.


그 일본인은 후지이 히데도라는 사람이었습니다.해방당시 어머니와 두 여동생과 춘천에서 살던 후지이는 가난하여 일본에 돌아갈 여비도 없어 일본에서 온 한국인이라고 속이고 서울의 작은 회사에 취직에 가족을 부양했다고 합니다.그러다 육이오가 터지고 서울에 입성한 인민군에 잡혀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그는 이때 수용소에서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3년간 포로생활을 하다 반공포로로 나왔고 이후 서울로 가려다가 다시 부산역에서 병역기피단속반에 걸려 다시 국군에 입대하게 됩니다.후지이는 일년간 복무하다 휴가시 서울로 올라와 한국 외부부에 일본 귀국신청을 했으나 그로부터도 일년간 더 복무한 후 귀국이 허락되어 56년 일본 패전후 십년만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도 두번가기 싫다는 군대를 그것도 북한과 남한 두 군대를 모두 복문한 일본인의 신기한 이야기 였습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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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 비디오를 많이 보신 알라디너 분들이라면 비디오를 돌리자마자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고 있다는 남자 성우의 나레이션을 기억하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지금이야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져서 호랑이가 얼마나 무섭고 민간에 피해를 주었는지 모르지만 실제 조선왕조 실록에도 종시대에 궁궐안에 호랑이가 나왔다는 기록당과 더불어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잡는 착호갑사라는 직업이 있던 것으로 보아 당시 민중들에게 호랑이란 엄청 공포스러운 존재였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속담에도 호랑이와 관련된 것이 무척 많고 햇님 달님이란 동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호랑이는 조선시대 민중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산군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호랑이에 대한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중국에는  '조선 사람은 1년의 반을 호랑이를 쫓느라 보내고 나머지 반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호환에 관해서는 영국의 여류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 버드는 자신의 책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비숍은 자신이 책에서 사람들이 밤에 호랑이를 두려워 해 서로를 끈으로 묶고 횃불을 흔들며 야단스럽게 길을 간다 라면서 중국의 속담이 허풍이 아님을 적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호랑이가 사리진 것은 영화 대호에서 알수 있듯이 일본인들이 그 가죽을 얻기위해 사냥을 해서 그 씨를 말려버렸기 때문인데 다시 호환이란 단어를 들어도 좋으니 한반도에 호랑이가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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