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백화점에 아이신발 수리할 게 생겨 개점 전에 터미널 영풍에 책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백화점과 서점 연결통로에 완전무장한 군인 두 명이 커다란 장총을 들고 앞에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뭔가 훈련이겠거니 짐작은 했지만 어찌나 섬뜩하던지 한구석으로 조용히 피해서 갔다.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서 군인들을 잠시만 봐도 죄지은 것도 없이 무서운데 80년 광주에서는 얼마나 두려웠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던 연세 높은 어르신 분들도 젊은 군인, 경찰에게 무슨 일이냐 묻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라는 눈치였다.

 

오매, 징해부러 또 뭔 난리당가.

 

다행히 화랑훈련 중이었다.

 

<26년>은 영화도 못 보고 이제서야 책을 몇 달 전에 보았다.

 

“화해와 용서란…… 잘못을 한 자가…… 반성을 하고 용서를 빌었을 때 그것이 화해이며 용서야.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그저 잊어버리는 것뿐이야……." - 《26년》 본문 中

 

<전두환 자서전>이 새로 생긴 청소년도서관에도 있어 의아해하는 중에 <전두환 타서전>을 발견했다. 꼼꼼하게 보지는 못했다.

 

<전두환 타서전>은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정신을 따라 그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그대로 엮어 편집하였다. 신문 기사 이외에는 어떠한 주관적 평도 수록하지 않았다. 그 당시 기사들이 상당히 어용적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그 기반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한계이자 장점으로 남을 것 같다.

 

<소년이 온다>는 그냥 두고두고 보게 될듯하다.

 

 

 

 

 

 

 

 

 

 

 

 

 

 

 

 

아 어제 한국시리즈 드디어 KIA 우승.

 

아들 단원평가도 봐줘야 하고 딸은 내일이 받아쓰기인데 한번만 대충 시키고 저녁도 일찍 먹고 컴퓨터방에서 정자세로 시청했다. 꽃범호가 초반부터 만루 홈런이어서 아, 정말 잘생겼다를 외치며 편안히 보다가 후반에 마음 졸이며 봤다.

 

양현종 선수 우왕.

김기태 감독님 주르륵. 김기태 감독님 나이 찾아보니 임창용 선수랑 별로 차이도 안 나는데(겨우 69년생이심) ㅜ.ㅠ 모자 벗고 인사하시는데 어찌나 짠하던지. 기아 감독하시면서 몇십 년은 나이드신듯하다.  

 

 

 

2009년에 우승할 때에는 강원도에서 딸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였고 열기를 느낄 수가 없었는데 8년 만에 광주에서 야구 보니 정말 새롭다.

 

우선 집앞 동네 공원에만 가도 선수들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캐치볼하는 애들이 있고 동네 소아과를 가도 기아유니폼 바디수트를 입은 아기도 간혹 볼 수 있다. 육아카페에서도 문화센터에서 양현종 선수를 보았다거나 산부인과에서 김선빈 선수를 보았다거나 주차장에서 윤석민 선수 가족들, 아기를 보았다는 목격담도 자주 나온다.

 

아무튼 이런 곳이다보니 우승 확정 순간 추워서 문을 꼭꼭 닫아두어 그렇지 이집 저집 함성 발사 중이었을 것이다. 간만에 쉬는 날이었던 애들아빠도 감격에 차서 편의점에 맥주를 더 사러 나갔는데 그 사이 내가 잠이 들어 아쉽다. 9시면 잠드는 노인네가 오늘 그래도 야구도 다 보고 같이 선전했다. ㅋ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야구장 습격사건>은 2009년엔가 산 책들일 것이다.

 

야구 잘알못이지만 어려서부터 보기는 봤다. 대학 가서도 그렇고 해태(기아)가 우승할 때면 해태 골수팬이었던 아버지도 살아 계셔서 계속 보셨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1. ‘브라보콘 팔아 연봉 주는 팀’이 써내려간 전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1983년부터 1997년 사이 아홉 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아홉 번 모두 우승했던 전설의 팀, 해태 타이거즈.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와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삼성 라이온즈가 2002년에서야 두 번째 우승을 거둔 것과 비교한다면, ‘새까맣고 새빨간’ 유니폼의 타이거즈가 기록한 9번의 우승은 불가사의처럼 보인다. 타이거즈는 20년간 여섯 명의 정규시즌 MVP와 46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 공수 주요부문 타이틀 홀더만 46명을 배출한 무적의 팀이었다.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를 한국의 뉴욕 양키스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라고 부를 수는 없다. 브라보콘을 팔아 연봉 주는 팀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팀, 대한민국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된 호남에 연고를 두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펼친 야구는 단순히 야구가 아니라 우리가 힘겹게 건너온 한 시대의 초상이며, 그들이 보여준 열정과 집념은 무기력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자극제이다. <출판사 책 소개>

 

타지 생활에서 야구 중계 관람은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었을게다.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은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팀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그 지역 기반의 지도자 김대중을 엮어 다소 투박하게 기술한 책이지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삼미슈퍼스타즈...>야 뭐 지금도 널리 읽히는 스테디셀러이고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도 그런대로 잘 봤던 기억이 난다.  

<야구장 습격사건>은 일본야구야 더 말할 것 없이 잘알못이라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하루키 에세이 같아 편하게 흥미롭게 본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응원하는 팀은 한국선수들이 많이 뛰었던 주니치 드래곤즈. 이 아저씨 야구를 넘모 좋아해서 다시 태어나면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누가 다시 나를 낳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야구선수들 연습경기 하는 걸 먼 발치서 지켜보는 건 예삿일이다. 다행히 이와세나 이치로 정도는 나도 주워들은 이름이라 그 뒷이야기 듣는 것도 재미있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미루어졌던 동생 결혼식이 내년 2월로 확정이 되었단다.

으왕 한국시리즈 우승보다 더 감격스러운 것. 주말에 듣고 너무나 반가웠다.

 

13년차 주부이지만 역시 내공이 부족해 날이 밝으면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고 검색도 해가며 같이 신혼 가전이나 가구를 보러다니려고 한다. 결혼준비를 이렇게 야무지게 했다는 블로그도 넘쳐나는데 굳이 낡은 정보를 가진 나에게 묻는 건 결혼을 앞둔 신부의 막막한 마음 때문이겠지.

 

큰일 앞두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

 

동생은 국민학교 시절부터 늘 탬버린을 안 가져와도 물감이나 크레파스가 떨어져도 고학년 반으로 나를 찾아와 언니힝~ 부르기부터 했다. 요새도 최근에 결혼한 친구들이 있는데도 한복이나 신행 등을 굳이 내게 묻는다. 나는 무조건 아끼려 알아보느라 골치 썩지 말고 꼭 하고 싶은 건 그대로 추진하라고만 조언한다. 돈대줄 것도 아니면서. ㅋ 그 옛날에 결혼준비하며 무조건 알뜰 최저가를 고집하다 일생 한번인 신행도 망친 기억이 있다.

 

이런 나의 조언에 힘입어 신행은 하와이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언니잉, 실은 부곡하와이야 (크게 웃음) 나는 정색하며 거기 없어진 지 언제인데. 이런 애가 결혼준비를 한다니 걱정 한가득이다. 어째 딸키워 시집 보내는 듯하다. 실제로 엄마가 아직도 회복 중이시니 내가 오가며 봐줄 게 좀 된다.

 

살림을 책으로 배우는 건 위험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블로그보다 <생활도감> 같은 부류가 훨씬 유용한듯하다. 내가 놓치는 건 없는지 잘 봐주어야겠다.

 

오늘 하루 라디오에서 이용의 노래가 종일 나오겠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은 그런 노래들도.

 

힘겨웠던 여름날에 이런 날이 오리라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주변이 정돈되어 예정대로 결혼이 진행되니 감격스럽다.

 

 

 

 

 

 

 

 

 

 

 

 

 

 

 

아...

 

제목과 다르게 어제는 비통한 사건사고도 많았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 두 분이나 벌써 고인이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1박2일에서도 정말 친근했던 구탱이형. 영면에 들다.

 

진짜...오보가 아닌지 계속 검색해봤다. 시어머님이 구봉서 님 돌아가셨을 때 엄청 충격받으셨는데 나도 그런 기분이다. 동시대 거의 동년배나 다름없는 분들의 죽음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였지만 겨우 마흔 갓 넘겼는데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지인들이 내게도 몇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은 작품들 열심히 보며 고이고이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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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9-28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어제는 진짜 프로분실러 아들 덕분에 여기저기 연락하고 학교를 헤매고 다녔다. 화요일엔가 새로 산 점퍼(우리 형편에는 꽤 고가인 아웃도어 점퍼)를 분실해 반에 있겠지 했는데 없는 것이다. 학교분실물함에도 가보라 하고 창피하지만 담임선생님에게도 문자를 드렸지만 못 찾았다. 그러다 혹시나 하고 방과후 바둑 선생님에게 연락드리니 뭔가 파란 걸 보셨다 해서 아이더러 가보라 하니 3시인데도 문이 잠겼단다.

 

그 와중에 팽이 한다고 운동장에 애들 기다린다고 난리. 게다가 이제 가방까지 학교 운동장에 두고 오고.

 

팽이하라 보내고 다시 방과후반에 가보니 교실 사물함 뒤에 점퍼가 널브러져 있다. 거의 물려입히다 딸애랑 남매 커플룩으로 산 점퍼라 찾으니 무지 반가웠다.

 

아들은 1학년에만 실내화를 네 번 잃어버렸다. 실내화란 게 참 이렇게 잃어버리기도 힘들다.  접이식 우산 몇 개에, 소풍 가면 새로 산 모자나 도시락 뚜껑 놓고오는 건 다반사다. 필통은 있지만 연필이 가방 속에 굴러다니고 늘 몇 자루 사라진다.

 

딸은 이와 대조적으로 학기 초에 필통 세팅한 고대로 가지고 다닌다. 점퍼는 벗으면 항상 가방 안에 두고 소풍 가면 시킨대로 점퍼 벗으면 허리에 둘러맨다. 모자도 혹시 벗게 되면 길이 조절하는 버클 풀러 가방에 야무지게 매고 온다. 피곤한 점은 가끔 숙제를 잊고 안 가지고 오면 학교에 도로 간다는 것이다.

 

*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는 육아하면서 겪는 소소한 일들을 엮은 가족소설이다. 애들이 보더니 여든까지 아냐? 라고 배운 티를 내는데 미취학 아이가 속담을 접하고 자기에게 익숙한 단어로 이해한 것이다. 이 두 책은 엄청 소소한데 특이하게도 작가의 이력이 나의 행동 반경과 겹친다. 애들 키우며 살았던 강원도나 현재 본가 부천이 자주 나오고 작가님이 계시는 곳에 현재 살고 있어서 그런지 공간들이 막 그려진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님 정말 부인 잘 만나셨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모두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246-247쪽)

 

 

 

 

 

 

 

 

 

 

 

 

 

 

 

 

 

 

 

 

 

 

 

 

 

 

 

 

 

 

어제 문화의 날이라 도서관에서 다 읽은 아이들 책과 교환해온 책들이다. 아이들 책도 성인책으로 바꾸어주니 좋다. 증정도서나 수험서 등이 아닌 출간된 지 5년 내의 상태 좋은 책들만 해당된다.  

 

진화심리학을 가볍게 푼 <본성이 답이다>부터 읽고 있다.

 

 

 

 

 

 

 

 

 

 

 

 

 

 

 

도서관 예약 끝에 받은 책이다. 아직 읽어본 적이 없는 이시구로.

기대되고 두렵기도 하다. 상을 받은 작가들과 인연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일단 빌려보기로 하자.

 

 

 

 

 

 

 

 

 

 

 

 

 

 

 

 

지난 주에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일단 내가 의연해지기로 했다.

 

아들이 방과후 가기 전에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는데  티와 바지에서 쉰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 말에 의하면 급식실에서 '보이지 않는 일진'(아들 표현)인 희철(김희철 닮음)이랑 부딪혔는데 식판 국물이 흘러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경악한 내 표정을 보더니 그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돌아서다 실수라서 자기도 사과 받고 끝냈다고 한다. 내가 정말 그애 표정까지 미안한 거냐고 하니 그렇다고 장난으로 사과한 건 아니라고 해서 넘어갔다.

 

이 문제의 희철 군과 어린이집, 1학년에도 한 반이었다. 얼굴은 아이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생겼고 운동도 잘하고 처세에 능하다.

공원이나 놀이터에서도 늘 우리가 물 가지고 다니는지 알고 따라다니며 물을 마셨다. 결정적으로 1학년 겨울에 아들이랑 눈싸움할 때 장갑도 빌려서 끼고는 아무데나 던져두고 돌려주었다고 했던 전적이 있어 약간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그런 친구다.  

 

<교실 카스트>는 일본 상황이긴 하지만 한국 현실과도 들어맞는다. 학교는 어쩌면 사회보다 더 철저히 계급사회이다. 성적, 외모, 집안환경, 아이들 개인의 인간적 매력 등에 따라 교실 내에서 서열이 정해지고 각 그룹은 학급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는다. 교사는 상위그룹 아이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해 학급을 손쉽게 경영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는 현재 교실에 오면 어느 그룹일까? 현재는 물리적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배가 좀더 정교해졌고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학폭이 열리자 아이가 친구랑 대화를 녹음한 자료를 내놓아 판도가 뒤바뀌기도 했다.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중학생이 친구와의 대화를 녹음하다니.

 

*

딸아이가 처한 위치도 나름대로 머리 아팠다. 영화 <우리들> 같은 여아들의 세계도 만만치 않다.

딸아이는 현재 반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가 별로 없다. 역시나 걸그룹같이 어여쁜 아이가 반 여자애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딸아이는 그 그룹에 속하지 않고 마이웨이하려고 학교에서 열심히 책보고 그림 그리고 그애들 그룹이 아닌 두세 명 정도랑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작 2학년인데 말과 행동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중학생 같다. 자기한테 도전하는 애가 있으면 인기투표를 해서 눌러버리고(선생님이 뒤늦게 아시고 투표 금지시켰지만 당한아이는 마침 집안일과 맞물려 겸사겸사 전학을 갔다) 학교에 화려한 드레스나 한복을 입고 오기도 한다고. 반에서 늘 뒤에서 애들과 춤을 추고 화장실로 친한애들과 몰려다닌다. 중2 아니고 초2 인데 요즘은 정말 빠르다.

 

이렇듯이 학기 말이 되어가다보니 우리 아이들이 속한 그룹이나 위치를 나름대로 알고 있다.

중심 그룹은 아니지만(내가 우리 아이들도 은근히 중심 그룹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이고 창피하기도 하다) 중심 그룹 아이들과도 척지지 않고 이만하면 잘 지내는 편이다.

 

무엇보다 학교 다녀오면 집에 엄마가 있고 간식거리와 장난감, 읽을책이 있다. 집에 고정적으로 놀러오는 애들이 있고 가끔 생일파티에 초대받기도 한다.

 

금요일에만 애들 놀러오게 하라는 약속을 자주 어기기는 하지만 아이들 친구 엄마들이 거의 일해서 가끔은 사람 있는 집에 오고 싶어하는듯해서 한 시간이라도 놀다 가라고 한다. 학원 오가며 비는 그 한 시간이 유년의 한 조각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일하는 엄마 대신에 나를 반겨주었던 친구 엄마들이 내어준 떡 한 쪽이나 그 집에서 읽었던 책이 가끔 떠오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정말 끝없이 내 일부를 내어주는 시간들이다.

 

숙명의 기아팬(이름 약자마저 KIA임)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도 못보고 있다. 책도 누더기 시간에 이것저것 읽다보니 뭐가 남는지 모르겠다. 글발도 후져지고 말발은 더 말할 것 없이 유치해져서 이렇게 화면에 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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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극장에서 아이들과 본 영화이다.

초등 4학년, 2학년 과연 잘 볼까 싶었는데 다행히 버텨주었고 나름의 감상도 내놓았다.

 

영화를 다시 보고 충격을 받은 건 수용소 가기 이전의 삶이 영화 내에서 훨씬 긴 시간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소박하고 아름답게 촘촘하게 구축된 세계가 단번에 파괴되는 것이 아이들에게 큰 충격이었나보다. 아들은 나오면서 독일이 정말 싫다, 이럴수는 없어, 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제 4학년인 아들은 딱 한 번 나오는 키스씬에서 고개를 돌리고 아주 유난이셨다. 키도 140이 넘어가고 몸무게도 40킬로가 넘어가지만 귀여운 구석이.

 

딸은 수용소 장면부터 공포에 질려 가자고 하더니 그래도 봤다. 수용소에서 귀도가 독일군 장교말을 엉터리로 번역하는 부분에서 애들이 배를 잡고 웃어서 민망했다. 영화 끝무렵에는 미취학 아동들이 다가고 우리만 남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열심히 보고 아빠가 정말 대단하다더니 일요일 저녁에서야 아빠가 죽은 걸 알고 충격받은 눈치이다. 아..끌려가서 총소리가 들렸잖아, 바보야 라고 오빠가 소리쳐서 알게 되었다. 다쳐서 어디서 있나보다 했지. 다 그런 거면 좋겠다.

 

아이들과 추억의 영화를 다시 보니 어쩐지 OST 흐를 때부터 주책맞게 울컥하다가 막상 시작하고 나서는 애들이랑 같이 신나게 웃으면서 봤다.  

 

나오니 충장축제라서 풍선터트리기에 만원 버리고 알라딘에서 책사고 일찍 들어왔다.

시내 알라딘에 그렇게 사람 많고 더러운 건 처음본다.

 

 

 

 

 

 

 

 

 

 

 

 

 

 

 

 

 

<인간 실격>은 드디어 주말에 다 읽고

<스토너>는 3분의 1이 남았다.

스토너와 요조

이렇게 놓고 보니 대조적인 두 사내

 

늘 끝까지 본 적이 없는 <인간 실격>을 중년이 되어서야 다 읽었다. 이 시기에 읽으니 그래도 요조가 웬 역겨운 미친놈이 아니라 한없이 가여운 사내로 보인다. 그래도 주변 여성들의 신산한 삶도 안쓰럽기만 하다.  

 

˝우리가 아는 요조는 정말이지 순수하고 재치있고, 술만 안 마셨더라면, 아니, 술을 마셨어도.. 하느님처럼 착한 친구였어요.˝

 

자신의 전 생애를 알뜰하게 낭비해버린 사내와 그 곁에서 역시 소모된 여자들의 삶이 참 덧없다.

다 읽고 나니 나윤선이 부른 <사의 찬미>를 다시 듣고 싶어졌다. 

 

<스토너>는 아껴서 야금야금 읽고 있다. 초반부에 잘 읽다가 중반부에 한번 늘어지다가 스토너가 이상한 학생과 돌+아이 동료교수 때문에 고생하는 부분에서는 대학원 시절이 겹쳐졌다. 꼭 그런 함량 미달의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무지를 도리어 현학으로 감추는 학생이 있고 그 학생에게서 어린시절의 자신을 찾고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고집불통 교수가 있다. 학부 시절에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편애하는 교수님도 있어서 별로 놀랍지도 않다. ㅋ   

 

스토너, 스토너 부인 이디스, 그들의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도 이해가 된다. 정말 철저하게 외로운 스토너 못지 않게 이디스도 결혼생활이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가을이라 연달아 현장학습이 잡혀 있다. 아무리 별주부라 해도 그래도 체험학습 도시락만은 신경 써서 싸준다.

 

아끼는 책 중 하나인 <도시락의 시간>을 간만에 펼쳐본다.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도시락 컨셉으로 싸서 보내면 애들 분명히 입나오기 때문에 어여쁜 도시락 책을 펴서 참고한다.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
_ 04. 핑크색 밥알과 하트 계란말이

 

딸아이 어린이집 시절에 좋아하던 캐릭터가 리락쿠마여서 늘 사각초밥을 사서 리락쿠마 몇 마리 넣어주었다. 그 시절 딸아이는 맘에 드는 애들에게만 그걸 나눠주고 온갖 유세를 부린 모양이다.

재롱잔치 가니 다들 그거 어떻게 만드냐고 난리였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가서는 반애들이 이게 뭐여, 유치해 하니 이제 시들해져서 엄마 그냥 초밥은 두고 김밥만 싸줘, 라고 한다.

 

그래도 사과라도 토끼 모양으로 깎고 비엔나 문어나 메추리알 토끼, 돼지 검색해서 싸주면 좋아한다. 안 먹어본 애 주었어 라고 거들먹거리기도 하고 누가 싸왔는지 미니언즈 좀 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스팸 토토로도 있고 뭐 도시락 호작질에는 끝이 없다. 몇년만 참으면 이제 김밥집에서 사가는 날이 올게다. ㅋ

 

다음달 독서모임에 이 책 참고해서 도시락 싸가면 좋을 것 같다.

사회초년생 때나 조교할 때 도시락 먹던 그 시기같이 나만을 위한 도시락을 정성껏 싸서 두런두런 책수다 참 좋겠다.

 

그래도 말이죠, 단순 반복 작업이라 해도 즐거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나는 그걸 발견했죠. 그래서 이 일이 참 좋아요. <도시락의 시간> 32쪽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행운도 따라오나 봐요 184쪽

 

이 가을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머무르며 책도 읽으니 좋쿠나.

 

오늘은 학교 책읽기 봉사날이라

간만에 찾은 궁극의 체크무늬 재킷을 입을 수 있어 또 좋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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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램프를 사면 책을 주는 알라딘.

 

알라딘 컵라이트와 스타벅스의 콜라보

 

스타벅스 그란데 사이즈 컵이랑은 꼭 들어맞고

 

아래 컵들에는 그냥 걸쳐만 두는 수준.

 

아들이 애정하는 마음의 소리.

 

 

괜찮아, 자연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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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내 주변에는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간혹 있었다.

 

최초의 기억은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전학 가서 사귄 친구랑 이동도서관 책 기다리던 시간들이다. 정말 성실한 말단공무원의 전형이면서 어딘가 불쌍한 하이킥 신애아빠 역 했던 배우분 닮은 이동도서관 아저씨 얼굴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 친구랑은 붙어다니며 책도 참 많이 읽고 친구집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오빠 애칭? 이상한 별명도 알 정도였는데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멀어졌다. 아마 그 시기에 성당 친구들과 놀면서 차차 함께할 시간이 적어진 것이겠지.

 

중고등 학교 때는 허세로 세계명작을 읽고 입시 대비로 한국단편이나 고전을 읽느라(진짜로 단편은 원문을 다 읽음) 책에 대해 함께 나눌 친구가 없었다.

 

대학은 관련 전공을 택했으나 역시 독서 취향이 맞는 친구들이 없었다. 친한 과 동기도 몇 없었는데 다들 일찍 진로를 정해 그쪽 공부를 파는 눈치라 뜬구름잡는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잠시 오열)

동아리 세미나에서는 정말 내 취향 아닌 책들만 읽었다. 이때 읽지 않은 책을 그럴듯하게 읽은 걸로 둔갑하는 기술을 배웠다. 어느 날 정말로 읽어간 날이었나. 선배들 이야기를 듣다가 아 이분들도 나랑 별다를 것 없네, 하고 속으로 웃었다.

 

일하면서 책을 보고 또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 작가분 동호회를 하던 시기가 북클럽의 황금기였다. 초창기에는 그분 책 위주로 읽었지만 나중에는 이런저런 자기가 읽은 책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시기가 왔다. 그때 겹치는 책 위주로 서로 재미있었던 부분 이야기하며 쿵짝 맞아 돌아다니던 시기가 '청춘'이었나보다. 각종 예술영화관을 돌아다니고 작가들 강의도 따라다니고 고궁이나 근교를 같이 산책하며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하던 시기. 어느 호프집에서 쌍둥이같이 보일 정도로 같은 옷을 입고 나와 가아프 이야기하던 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들과도 더는 연이 닿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야 SNS도 휴대전화도 있지만 어쩐지 이민간 친구같이 서로의 시차를 느껴 잘 연락하지 않게 된다.

 

연애하면서 남편이 추천하는 책은 이상하게 잘 안 읽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자 책은 꽤 보는 편인데 읽는 분야가 완전히 다르다. 만화, 역사서 정도나 조금 겹치고.

 

잠시 학교에서 일하던 때는 (이제는 희귀종인) 독서하는 아이들이 추천한 책을 읽기도 했다. 독서 동아리 담당이라 같이 메이즈러너 보러 간 게 기억에 남는다. 외고간 아이가 추천한 더 기버도 잘 읽었다. 아이는 원어로 읽고 난 번역서로 끙.

 

이때는 사실 육아와 일에 치여 거의 책을 읽지 못했던 시기이지만 어릴 때 독서모임에서 만났던 작가분의 글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 뿌듯했다. 애들은 노잼이라 하는 소설이었지만 내가 못 가르쳐서 그렇게 느낀 거겠지.

  

아이 낳고 기르면서는 그림책, 육아서에 버닝하다 2년 전부터 정신차리고 보던 책이나 새로운 책을 보려고 한다. 여전히 문학, 에세이 비중이 크지만 실용, 심리 분야가 늘었다. 역사나 과학 분야를 더 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그래서 올 초에는 학교독서모임에 가입했는데 그건 반애들 책읽어주는 모임이었다. (잠시 크게 웃음) 그리고 우리학교는 상당히 활동적이라 책 읽기보다 만들고 활동하는 시간 비중이 더 크다. 상당히 바람직하다. 이런 모임에서 신기하게 본인 책은 많이 안 보시는 분이 많다,기보다는 현실의 애들 이야기, 학교 뒷담화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사람도서관같아 이야기 잘 듣다가 온다. 심심할 때 대여하고픈 분도 있다.

 

작년 말부터인가 지역육아카페에 잡다한 글을 올리다 그런 글도 좋아해주시는 분이 있어 독서 모임을 하게 되었다. 아직 시작 단계인데 모임을 꾸리려고 하니 뭔가 지표로 삼을 만한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앞의 책들이 생각이 났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꽤 오래 전에 읽었나보다. 이제는 따스한 이미지만이 남았네. 같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이 모임을 잘 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원하는지 잘 알아야 하는데 아직은 어떨지 감이 안 온다. 그런데 모임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모임 자체가 알아서 굴러가기도 하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롤모델이라면 전의 모임같이 친목과 독서의 경계 수준 정도이다. 육아에 지친 심신에 작은 활력이 된다면...... 잠시라도 내 감정과 사고에 충실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간 내가 혼자 놀던 데 같이 가고 혼자 보던 책 같이 읽고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 많이 듣기.

다짐 또 다짐, 우선 듣기.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다가도 책이 나오면 어떤 책인지 궁금해하고 가방에 늘 한두 권은 책이 있고 문구류를 격하게 아낀다. (희귀동물 시리즈 고운 노트들을 애들이 다 끼적여두어 마음 아프다. 숨겨두었다가 중학교 가면 줄 것을. 요새는 또 거의 필기도 안 하고 안 시켜서 애들은 필기의 재미를 모른다, 기보다 내가 구식이겠지. ㅎ)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 집은 정리가 쉽지 않다. 늘 여기저기 책이 널려 있고 함부로 꽂아두어도 안 된다. 읽다가 두는 거면 서표 붙이거나 하래도 말을 안 듣고 자기 읽던 데 덮어두었다고 골을 낸다.

 

책길이가 일정하게 맞지 않아 정리가 쉽지 않다. 같은 책이 두 권인 경우가 있다. 읽다가 서로 본다고 싸워서 보다 못해 각자 사주기도 한다. 다행히 요새는 번갈아 볼 정도로 컸다. 그래도 초등이라 뭐뭐는 자기 책이라 여전히 우기고 싸운다.

  

요새는 애들보다 먼저 잠들어 3-4시에 일어나면 집안 꼴이 가관이다. 이 방 저 방에 책과 머그가 잔뜩 널려 있다. 올빼미족에서 애들 덕분에 얼리버드가 되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무엇을 잡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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