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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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과 철학에 대해 알 수 있는데 소설과 삶이 일치하는듯해서 더 마음 아팠다.

 

잠시 살았던 강원도 한 면 소재지에서도, 지금 살고 있는 대도시의 공단 지역에서도 결혼 이민여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속해 있던 공동체의 언어와 문화를 잃고 '문맹'이 되어 낯선 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살아낸다. 자신을 배척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어떻게든 듣고 읽고 말하고 쓰려고 한다.

 

나는 5시 반에 일어난다. 아기를 먹이고 옷을 입히고, 나 역시 옷을 입고 공장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6시 반 버스를 타러 간다.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들어간다. 공장에서는 저녁 5시에 나온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딸아이를 찾고, 버스를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 장을 보고, 불을 피우고(아파트에는 중앙난방이 들어오지 않는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를 하고, 글을 조금 쓰고, 나 역시 잠을 잔다. 87-88쪽

 

힘겹고 치열했던 시기를 담담하게 서술해서 더 슬펐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 <어제>의 토비아스를 통해서도 이 시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거나 쓸 때에는 엄청난 제약이 따른다. 끝없이 문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식어나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보이는 동사나 형용사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은 사치이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52-53쪽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112쪽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113쪽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는 이런 상황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써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것은 물론 충분한 성찰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전쟁의 경험과 이방인으로서의 절절한 외로움이 언제나 장황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 표현된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103쪽

 

아이와 함께 외국어를 배우고 장시간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썼다. 네살에 이미 글자를 배워 닥치는 대로 읽었고 어떤 언어로 쓰였든 간에 문장이 일으키는 감각에 매료된 사람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작가가 적은 문장들이 나에게 환기시키는 감각, 나는 그것에 일찌감치 매료되었다. 문장은 작가의 것이었지만 감각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니까. 조용한 도서실의 한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활자들은 일렁이는 물결처럼 내 안을 흔들어놓았고 때로는 파도처럼 밀려와 나의 조그만 세계를 여지없이 부수었다.    116쪽

 

 

짧은 분량이고 그동안 그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읽고 나면 자꾸 질문을 하게 된다.

 

모국어 외에는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없지만 익히 알고 있는 그 모국어마저 제대로 쓰고 있는가, 하는 고민도 된다.

 

뜻도 모르고 장황하게 남들이 쓰는 상황에 의지해 쓰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오염된 언어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염려가 든다.

 

사전에서 단어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상황에 맞는 표현을 고르고 또 골라가며 정갈하고 단순하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삶이 곧 쓰기인 작가를 만나면 뭔가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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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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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자>, <D.P. 개의 날>로 유명한 만화가 김보통 님이 대기업 사원, 백수, 습작기를 거치는 과정이 담담하게 담겨 있다.

 

평생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지 못했던 작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원을 쫓아 그리고 어느 정도는 자신의 바람대로 대기업에 입사해 한동안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합리한 조직문화, 비인격적 대우에 질려버린다.

 

다들 회사 밖은 늑대나 이리가 출몰하는 곳이라고 겁을 주지만, 실은 안온한 그곳에서 양들은 털을 밀리며 그렇게 버티는 것이었다.

 

김보통은 회사를 관두고 무작정 따뜻한 데를 찾아 오키나와에 머문다. 그곳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을 것이라 생각하나 큰 성과는 없었고 돌아와서 퇴직금으로 작은 도서관을 해보려다 여러 현실적 문제에 부딪친다. 아마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아 도서관을 열었다 해도 잘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트위터에서 사람들 프로필을 무작정 그려주는 일을 하다가 최규석 작가와 연이 닿은 데부터 성공신화?가 시작된다. 김보통 님만의 소박한 그림체로 300여 명의 얼굴 사진이 나오는 페이지를 폈을 때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지만 인생을 건 모험, 도박이었다.

누군지 무척 궁금한 잘나가는 영화감독인 친구의 말도 쓰라리게 다가왔다. 어떤 패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다 보여야 한다는 것.

 

다행히 보통의 패는 그 시점에서 적중했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그런 마음으로 묵묵히 오다가 이른 길이었다.

 

그런데 정말 평범? 보통? 인 사람들에게 이런 길이 펼쳐질지는 미지수이다. 작가는 그래도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주시할 정도로 그림에 재능도 있었고 지겨웠다고는 하지만 대기업에서 4년이나 버티었던 근성? 도 있었다.

 

그래도 노력하면 나처럼 된다, 는 식이 아니라 담담하게 이렇게 지내다 어쩌다 잘 되었네요, 하는 투라서 잘 읽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백수였는데 오늘부터 만화가라고 소개하는 부분에서 찡했다.

 

인터뷰에 항상 고독이 탈을 쓰고 그랬는데도 김보통 치면 대기업 00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ㅋ

 

만화 그리기보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어시를 더 쓰고 자신이 하는 말의 거의 반이 뻥이라는 작가를 오래 지켜보아야겠다.  

 

그때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진 않다, 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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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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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비슷한 문화권이어서 가족의 풍경마저 같은 것일까?

 

신기할 정도로 <걸어도 걸어도>에서 묘사하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의 정경은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쌓아온 시간 속에서 서로 데면데면해졌고 작은 불평 불만을 자식들에게 내비친다.

 

어머니는 다 먹지도 못할 먹거리를 무리해서 장만하고 뿌듯해하고 자식들은 온갖 불평을 하면서도 먹어치운다. 어렸을 때의 일화를 이야기하는데 서로의 기억이 어긋나 있어 그게 또 많이 서운하다.

 

아버지는 한창 일에 빠져 살던 젊은 때처럼 가족들과 관계 맺기에 서투르고 무게 있게 보이길 원한다.

 

형제들은 서로 사는 처지나 형편이 다르고, 부모의 관심과 남은 자원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화자와 화자의 누이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막강한 대상을 두고 있다. 바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의사가 되었고 막 그 꿈을 펼치려 하던 때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죽은 의인이자 영원불멸의 이상적인 아이인 준페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준페이와 연관되어 있고 준페이만이 고귀하다. 차남인 료타는 오래 전 죽은 형의 방은 고요히 잘 보존되어 있는데 자신의 방은 온갖 잡동사니가 쌓인 창고가 되어버린 데에 크게 실망한다. 어릴 때의 총기가 엿보이는 작은 일화들도 부모님의 기억 속에는 형의 것으로 되어 있다. 료타가 아이를 하나 둔 미망인과 결혼한 것을 알고도 아버지는 무신경하게 아이 딸린 여자는 결혼이 힘들다고 말해버린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형 준페이가 죽은 후 그의 형수가 재혼하여 잘 산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와버린 실언이다. 이런 식으로 대화는 자주 어긋난다.

 

형의 기일에 전에 형이 구해준 아이였던 요시오라는 청년이 찾아온다. 아버지는 고도 비만에 프리터에 불과한 요시오가 자신의 귀하디 귀한 아이 준페이 대신 살아가는 게 못마땅하다. 물론 아버지도 모든 생명의 값은 동등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다만 그 동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억울하고 분하고 슬픈 감정을 저렇게 표현하는 것인데 료타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비인간적이고 냉혈하게만 보여 한참 훈계를 늘어놓는다.

 

가끔 가까운 노인 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저렇게 멍한 순간이 많다. 티브이를 보다가 장애인이 나오거나 힘든 분들이 나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든가 할 때. 

 

살아오면서 쌓인 이런저런 감정이 친밀한 사이에서는 어떤 포장 없이 바로 배설이 되어버린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이이다 보니 가끔 막말, 폭언 수준의 대화가 오고간다. 그래서 가장 상처받게 되는 관계는 어쩌면 가족 안에서의 관계가 아닐까.

 

언제나 예의를 차리고 늘 사람들을 거리를 대하고 만나는 편인 나도 본가에만 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않는 말, 할 수 없는 말들을 무신경하게 내뱉는다.

 

모든 질문은 그저 독촉으로 여겨지고 사소한 불만은 내게 가해지는 혹독한 평가로 여겨져 늘 마음이 불편하고 잔뜩 날이 서서 결국 서로를 베어버린다.

 

 

*

형의 성묘를 갔을 때 노랑나비가 따라오고 집 안에서도 나비가 날아들자 엄마는 형 준페이의 현신(現身)이라 여기고 요란하게 동요한다.

 

이것도 우리집이랑 비슷하다. 어디선가 새가 날아들면 늘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러 온 거라고 하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늘 면박을 준다. 엄마랑 아빠는 생전에 그다지 사이가 좋거나 하지 않았어라든가 아버지 살아계셨어도 우리가 부자로 살 리는 없어라든가 하면서.

 

그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것 같지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든가 지금이라면 좀 더 이렇게 했을 텐데라든가......이제 와서 그런 감상에 젖을 때가 종종 있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과 함께 가라앉아서, 오히려 흐름을 가로막는다. 잃어버릴 것이 많았던 하루하루 속에서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인생이란 언제나 한발 늦는다는 깨달음이다. 체념과도 비슷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10쪽

 

소설을 읽는 내내 나직이(류준열 배우 목소리로) 여러 문단들이 마음에 박혔다. 

 

*

아들 친구들이 와서 오렌지망고청을 타주고 다시 이어서 쓴다.

 

극적인 사건이라고는 장남 준페이의 이른 죽음이 다이고 대개 소소한 일화들로 채워진다. 우리 누구나 한번쯤은 가족과 보냈을 그런 시간들로 채워진다. 가족은 이런 것이라든가 가족애는 이래야만 하는 것이다, 가 아닌 가족이라는 관계로 얽힌 풍경을 보여준다.

 

걸어도 걸어도 조각배처럼

나는 흔들리고

또 흔들려 당신 품 속으로  137쪽

 

소설에서는 엄마와 료타의 다감한 추억이 얽힌 노래 가사인데

영화에서는 사연 깊은 노래로 나온다.

 

엄마의 영화 속 대사로 미루어보아 

남편이 젊은 시절 잠시 한눈을 팔았고

밤늦은 시간에 그를 찾으러 아이를 업고 나가 엄마는 이 노래를 듣게 된다.

 

한창 어린 아이들과 말 그대로 독박육아 중에

일을 핑계로 나간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정겹게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듣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 이 사연 많은 노래를 들으며 원한을 달래는 엄마가 애처로웠다.

 

가족이 있다고 해도 

가끔은 이렇게 혼자 숨어서 듣는 노래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 수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같이 느끼고 같이 아파해줄 수는 없다.

그저 지켜볼 수 있는 정도이다.

 

책을 읽고 나면 여러 가지 회한에 답답하고 묵직하고 썩 개운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그냥 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살아내는구나, 

나만 비정상은 아니구나 하며 살짝 마음이 놓이는 구석도 있다.

 

완벽하게 이해받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그런 관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위태위태 흔들흔들하며 너무 멀어지지만 않게 그렇게 나아가는 거다.

시간이 주는 무게를 견디고 이토록 험한 세파를 같이 헤쳐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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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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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2 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추사의 말년 글씨체를 보여주고 이전 글씨도 보이며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준 적이 있다.

 

아, 글씨도 늙을 수 있구나.

늙었을 때의 글씨도 나름대로 멋이 있구나.

 

글씨는 그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같은 사람이 쓴 글씨여도 초등학생 때 쓴 글씨와 고등학생 때 쓴 글씨가 당연히 다르고, 이십 대에 쓴 글씨와 사십 대에 쓴 글씨도 다르다. 칠십 대, 팔십 대가 되면 더욱 그렇다. 십 대 때는 동그란 글씨만 썼던 소녀도 할머니가 되면 자연히 그런 글씨를 쓰지 않게 된다. 글씨도 나이와 함께 변화한다.   182쪽

 

동생이 시집을 가게 되어 집을 정리하면서 편지 뭉치들을 많이 발견하고는 버려도 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무심히, 어, 했다가 아니 그래도 가서 좀 볼게, 했다. 

 

그렇다. 나도 아직은 어딘가 좀 낡은 인간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얼마 전에는 친정도 아니고 우리집에서 대학 때 전공노트, 대학원 때 노트도 발견했다. 확실히 글씨가 미세하게 변했다. 특히 요즘 필사를 가끔 하는데 글씨가 참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낀다. 많이 길쭉하고 허술해졌다. 

여고생 땐 밤톨같이 단단한 글씨체였는데.

뚜유폰트로 제작한다면 제작할 수도 있을 만큼.  

 

*

<츠바키 문구점>은 이렇게 사라져가는 문화인 편지와 대필업에 얽힌 이야기이다. 

 선대(할머니)의 문구점과 대필업을 이어받은 주인공 포포는 선대와 풀지 못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선대의 유업인 대필업은 성실히 수행한다.

 

손님들 각자의 사연을 주의 깊게 듣고 그 상황에 맞는 내용을 구사해 어울리는 글씨로 잘 적어보낸다. 물리적인 편지지나 우표, 봉투, 도장 등에도 세심하게 마음을 쓴다.

 

여러 가지 사연이 다 인상깊었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걸 거부하는 편지나 '절연장'이 신선했다. 오래 사귄 연인끼리도 카톡 하나 없이 차단만으로 잠수 이별도 하는 세상에 부러 의뢰를 해서 인연을 잘 매듭 지으려 하는 것이 고풍스럽게 여겨진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절교'씩이나 하는가, 그저 카톡 차단이나 SNS 친구 끊기로 해결되는 세상인데.

 

사람들이 많이 강해지고 독해진 듯하나 이런 식의 인연 맺음은 자아가 많이 허약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흔해진듯하다. 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마무리가 중한데  그 마무리에 드는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기 싫고 두렵기도 해서 잠수를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보낸 즐거운 시간, 정말 고마워.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이제 서로 거짓말하는 것은 그만두지 않겠니?

나는 너와의 멋진 시간을 멋진 시간인 채,

가슴에 담아 두고 싶어.

이것은 나의 절연장이야.

이제 널 만날 일은 없을 거야.

이유는 알겠지.

너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렴.   256쪽 

 

연인이 아닌 동성에게 보내는 익명 씨의 절연장이다.

이걸 받으면 상대는 순간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강하게 묶어두었던 우정이라는 끈을 끊고 결국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차원 높은 배려라는 생각도 든다.

 

포포는 연락이 닿는 혈육은 없지만 바바라 부인, 빵티, 남작, 큐피라는 아이, 큐피의 아빠와 유사가족 관계를 맺고 소소하게 일상의 낙을 찾는다. 마지막에 좀 급작스럽게 큐피와 큐피의 아빠와 이어지는 것말고는 읽는 동안 평안했다.

 

언젠가 츠바키(동백나무) 문구점이 있을듯한 가마쿠라를 거닐어 보고 싶다. 지금은 그저 역자 후기에 가마쿠라 여행기가 실려 있어서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뿐.

 

부록으로 포포가 쓴 듯한 그동안의 편지들이 실려 있다. 일본어 잘알못이라 필체가 어떤지까지 가늠할 수 없어 안타깝다.

 

요즘 좋은 연필들을 사모으고 있는데

아이들만 주지 말고 나도 부지런히 써야겠다.

 

오래 전에 소식이 끊긴 벗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도 써보고 싶다.

 

 

"평범한 편지도 써주십니까?"

소노다 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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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카스트
스즈키 쇼 지음, 혼다 유키 해설, 김희박 옮김 /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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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교실에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정말이냐고? 자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언젠가 지켜본 적이 있는데 진짜 아이들이 닿는 것도 싫어하는 그런 애들이 전교에 한둘은 있었다.

 

요즘 애들은 왕따, 학폭이나 일으키고 허 인성이 참.... 혀를 끌끌 찰 것만은 아니다. 우리 세대에도 뭔가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아이들은 늘 있었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모든 아이들이 그냥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원래 1학년 때부터 성격이나 하고 다니는 게 그랬고 생긴 것도 그렇고 아무튼 원래 그렇단다.

아들아 너마저. ㅜ.ㅠ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하다 여기고 부정하려고 해도 교실 역시 사회의 축소판이며 어쩌면 학교현실은 사회보다 더 잔인하다.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와 같은 차별과 배제는 현실에서도 흔하다.

 

<교실 카스트>는 이렇듯 현존하는 학생들 간의 묘한 역학관계를 밝히고 하부계층이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밝히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관심사와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같은 연령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커리큘럼 하에 한 공간에 지나치게 장시간 머무르게 하는 곳이다.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같은 공간 장시간 이게 의외로 큰 문제다.

 

초중등 시기에 학폭, 왕따를 경험했는데 대학에 가서 극복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대학에 가서 그 학생이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기보다는 학급 체제가 아니라 수업을 선택하여 듣고 집단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중등 시기에 보다 커리큘럼을 다양화하여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에 맞게 수업할 수 있다면 계급이 공고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학급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다수의 아이들을 관리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에 학급 체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는 정보의 축적이 계급을 나눈다고 한다. 아이들은 발달을 다 마치지 않았고 판단력 역시 아직 부족한 초등 시기에 서로에 대한 정보를 축적한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 똑똑한 아이, 힘센 아이, 예쁜 아이 등 아이들 사이의 평가는 사실 무자비하다. (결국 어른들의 시선이 투영된 결과이다)

 

이때 감정표현이 서투르거나 별 특징 없는 아이들 중 아주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아이들의 배척을 받는 애들이 몇 명 생기고 고학년이 되면 그간 축적한 정보에 의해 그 아이는 헤어날 길이 없는 비호감 재수탱이로 낙인 찍힌다. 그애 곁에만 가도 아이들은 옮는다고 싫어한다. 대체 뭐가 옮아?

 

책에서는 하위계급 아동이 적극적인 성격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하는 것도 다 소용이 없다고 한다. 오직 지배계급 아이들이 그만 이제 그애를 받아주자 하는 신호가 떨어져야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배층 아이들의 특성은 호감 가는 외모, 이성들 사이의 인기, 공부, 운동, 가무 실력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공통되는 특성이라면 소통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상위계급인지 학급에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쉬는 시간이든 수업시간이든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고 쉽게 호응받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상위계급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어떻게 행동해도 비웃음을 산다면 그애는 하위계급인 것이다.

 

소위 초등 시절부터 약은 아이들.

이 아이들이 학급의 행사를 주관하고 학급의 귀찮은 일은 적당히 다른 애들에게 맡긴다. 이 아이들에게 권위를 실어주는 건 놀랍게도 교사이다. (우리가 이미 학창시절에 목도한지라 별로 놀랍지 않을 수도 있지만. ) 교사들도 필요에 따라 "상위계급 아이들에게 아첨하고" 각 계급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다. 

 

기가 약한 교사들이 상위계급 아이들에게 찍혀 힘들게 교직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교사들 사이의 계급이라면 인기교사, 비인기교사로 나눌 수 있겠다. 중등에서는 상위계급 아이들이 인기 교사들과 협력해 그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나머지는 비주류이고 비인기교사들이 하위계급 아이들을 챙겨주어도 그 아이들은 크게 반가워하지 않는다.    

 

학교에는 수업말고도 축제나 운동회 등 각종 행사가 있는데 이때 성과를 내기 위해 상위 학생들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책에서 재미있는 사례는 해외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상위계급 아이들이 물갈이로 배가 아파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게 되자 하위계급 아이들만으로도 무사히 프로그램을 잘 마쳤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한 것이지 애초 계급간에 능력 차라는 것이 크지 않은 것이다.

 

화합의 장이라는 명목으로 마련하는 축제가 계급간의 차이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여름에 학교운동장에서 6학년 아이가 학예회에서 출 걸그룹 댄스를 친구에게 앙칼지게 가르치는 걸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의 현실이라지만 우리나라의 학교현장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사라면 이 책을 읽고 학급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권력을 분산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학부모라면 내 아이의 소통력에 대해 고민하고 중심 그룹에 속하는 아이들을 잘 지켜보고 적대적으로 지내지는 말라고 조언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교실 카스트'는 인정하기 싫어도 현존한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책임은 상당 부분 어른들에게 있다. 외모지상주의, 물질숭배, 능력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이 쉽게 이러한 가치들을 내면화하고 자신들의 세계에 적용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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